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 위치로그 : 태그 : 방명록 : 관리자 : 새글쓰기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블로그에 오신것을 환영해요^^
[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45
42
527474
2012.9.5일 DICON에서 발표한 자료이다. 7.24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연 콘텐츠미래전략포럼에서 <콘텐츠 유통환경 변화와 콘텐츠 생태계 건전화 시나리오>에서 일부 내용을 업데이트했다. <콘텐츠의 미래, 플랫폼과 스토리텔링>이란 제목을 달았다.

뉴미디어로 인한 "콘텐츠 비즈니스 환경변화"에서는 C-P-N-T모델을 가지고 플랫폼과 터미널의 역할 증대와 전통미디어의 '위기'에 대해 이야기했다. 모두가 플랫폼 사업자가 될 수 있는 기술적 '가능성'과 이 기술적 잠재력을 이용해 플랫폼을 구축한 사업자가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위기론'의 핵심이다. 개인적으로 위기론의 많은 부분이 부풀려졌다고 생각한다. (<미디어2.0>의 첫번째 이야기였던 "경계없는 세계, 위기론과 대세론"에서의 생각이 유지되고 있다.)
 
새로운 병목

그런데 앞으로 시장에서는 '더 큰 위기'를 보게될 것 같다. (포털 중심의) 인터넷 환경에 길들여진 많은 사업자들이 무주공산이라고 여겼던 콘텐츠(Contents)와 네트워크(Network)가 새로운 병목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는 러셀 뉴만(Russell Neuman)의 에서 "부족한 것은 기술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라 대중의 관심이다"를 인용했다. 앞서 말한 '위기론'에 대해 부정적인 이유 중 하나이다. 플랫폼이 파편화되고 앞으로 정말 '관심경제'란 개념이 더 중요해진다면 뉴만의 91년 통찰이 맞다는 것이 증명될 것이다. 또 네트워크에서는 올해 2월에 있었던 KT에 의한 스마트TV 접속차단을 예로 들었다.
 
새로운 병목 -  content, network

 
새로운 소비 행태

N스크린 서비스를 <월인천강>에 빗대 설명했는데 '달-콘텐츠'는 '천개의 강-N개의 스크린'에 비춰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래도달이 비친 강도 멋져보이지만  뉴만의 말처럼 '달'이 중요하다.

N스크린이 '밥벌이'와 관련 있다면 개인적 관심사는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변화들이다. 뉴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미학적(?) 효과들과 이에 의한 미디어 자신은 어떻게 될까이다. 2007년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서문에서 이야기했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 아우라의 부활'에 대한 연장선이다. 미디어에 의해 사람들의 '지각(perception)' 능력의 변화를,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하면 사람들에게 잠재해 있던 지각 능력이 활성화되는 현대적 조건을 알고 싶다. 이를 위해 라이프니츠의 "미세지각"이란 개념에 의지해서 몇년간 책을 읽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살펴보고 있다.

같은 맥락이지만 또 다른 관심은 매스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이다. (어떤 시대의 매스) 미디어가 사회,문화적으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공감"과 "스토리텔링"이란 키워드로 살펴보고 있다.

미세지각은 인터넷이라는 기술적 조건을 만나 사람들에게 잠재해 있던 '지각들'이 어떻게 집단화 되는지, 이런 것들이 현재의 민주주의, 정서적/윤리적 혼란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보는 하나의 관점을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또 매스미디어는 어떤 방식으로 '사회를 보호'하고 (지각 및 공감의 일반화를 통한)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을까, 또는 그런 것을 막을까하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아래 장표)
 
미세지각과 공감, 개인매체와 매스미디어
  



미디어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기술
 
미디어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기술은 DICON을 위해 새로 작성했다. 앞에서 이야기한 개인적인 관심의 연장이다. 스피노자가 '종적인 특징들은 그것들이 동일한 정서(affection)들을 가질 수 있을 때이다'라는 말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어떤 사물/사건을 보고 느끼는 것이 틀리다면 같은 종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스피노자의 시대에 종교전쟁에서 구교도가 신교도를, 신교도가 구교도를 죽일 수 있었던 것도 종이 틀리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그는 생각한 것은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래서 그 시대의 철학자들은 공감(common sense)에 대해 이야기 한다. 홉스, 흄, 아담 스미스 등의 영국 경험론자들도 이런 대열에 세울 수 있다.

우리가 사는 현재는 인터넷 기반의 개인미디어에 의해 동일 사물을 보면서 다른 정서를 갖고, 이를 퍼브리싱(publishing)하고, 서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정서적 폭발(다양한 지각들의 출현)에 따라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이런 정서적 폭발에 대한 (형이상학적/인간학적) 전제가 앞서 이야기한 "미세지각"이다. 무한한 세계를 알 수 있는 무한한 지각들!
 
또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는 '3일 간 지행된 연극 경영인 디오니소스 축제를 위해 대략 노동자 100가구 정도가 4년간 생활할 비용, 아테네가 일년 간 해군을 유지하는 비용의 10분의 1에 달하는 돈'을 왜 썼을까?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소유한 30세 이상의 남성이 모두 볼 수 있는 규모의 디오니소스 극장을 왜 세웠을까? 이런 질문을 한다. 공동체(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 정서적 연대감(공감)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질문을 한다.

18세기 <사회계약론>을 쓴 프랑스의 장자크 루소의 소설인 <신엘로이즈>를 살펴보면서 당시의 뉴미디어 기술인 인쇄술과 스토리(소설)이 만나 대중들의 특정 정서를 집단적으로 발전시켜 인권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는지, 또 '상상된 공감'을 통해 어떻게 '상상의 공동체'를 만들었는지를 살펴본다. 매스미디어가 현재의 사회를 만들고 또 보호(달리 보면 진보를 막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TV가 "매순간 대규모의 대중 수용자로부터 인정을 얻고, 빠르고 예측 가능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나쁘던 좋던 스피노자가 말한 '공통 정서'를 만들어내는 역사상 가장 발전된 형식의 미디어이다. 그리고 그 정서를 만들어 내는 것은 무엇보다도 먼저 '스토리'이다. 이 스토리 위에서 우리의 윤리적 감성이 공조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언제나 미디어는 이를 위해 그 시대에 가장 발전된 배포 기술(또는 체계)을 이용했다.

정서적 연대감

이런 이야기들의 배경에는 2005년 시작한 SBS 뉴미디어전략, 그리고 그즈음 나온 BBC의 전략(Creative Future)가 있다. 국내에 소개된 BBC의 전략은 대부분 (눈으로 확인한 것은 모두) 기술환경의 변화, BBC의 (기술적) 대응과 그 결과에 맞춰져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들의 전략의 개념 셋 안에 있던 "강한 정서적 연대감(stronger emotional connections)이란 말이었다. 그리고 또 "젊은 세대(the yong)" 이야기.

개인적으로 하는 '쓸데없는' 고민들 중 하나가 왜 회사는 나에게 월급을 주는가? 또 왜 사회는 회사를 부양하는가이다. 우리가 생산적인 노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에서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공감'을 만들고 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상상이든 어떻든) '공동체'를 만드는 것인듯하다. 이런 이유로 내가 월급을 받는다고 생각하고, 공동체를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한다. 크게 마음에는 들지않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이것을 다른 말로 번역하면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 내에 에이전트로 일하는 것이니. 하지만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 가치가 있고, 또 많은 사람의 삶을 위해서 더 났다고 생각한다.

BBC의 전략에서 가장 근저에 있는 것이 '강한 정서적 연대감'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뉴미디어를 통해 방송을 넘어선 세계가 올 것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그말을 곧이 곧대로 믿지않는다. 방송이란 무엇인가? 왜 사회에 방송이 존재하는가? 방송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 어떤 효과를 만들고 있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먼저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때가 온다면 그때야 현재적 의미의 방송이 없어질 것이다. 방송에 대한 기술적 접근이 아닌 본질주의적 접근이랄까. 이렇게 해야 과도한 기술주의자 - 자본주의적인 뉴미디어 테크노크라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맞서서 다시 생각해볼 수 있다. 힘의 균형이 깨져 한쪽으로 너무 쏠렸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BBC 톰슨사장의 글을 2006년 읽었다. 어떤 분이 기사를 쓰면서 인용문으로 번역해 놓은 글이었다. 그리고 최근(벌써 1년이 되었나보다) 원문을 찾아 다시 읽었다. 원문과 번역되어 인용된 내용이 180도 달랐다. 원하는 대로 만들어놓은 '번안소설'이었다. 뉴미디어를 바라보는 과도한 '기술주의' 환경의 영향 때문이다. 머리 속에 먼저 자리 잡고 있던 '프레임(사고패턴)'의 힘이다. '존재의 이유' 중심으로 어떤 사물을 보려는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 왜곡과 이것의 확대재생산, 근원(origin)에 대한 무시와 가상(virtual)에 대한 열광 ......

우리가 해오던 것 ... 방송의 본질에 대한 질문

BBC의 전략을 원문 그래로 읽으면 디지털의 두번째 물결인 인터넷은 방송 영역 너머의 세상으로 방송을 데려다 줄 것이라고 예측한다.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닌 밀려가는 것이란 의미가 강하다. 이 새로운 환경에서 방송은 'Push Service'에서 'Pull Service'로, 즉 온디맨드 서비스로 바뀔 것이다. 그런데 BBC는 이 환경에서 새로운 서비스를 잘하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해오던 것을 잘하겠다고 한다. 인터넷에 대한 대응은 "이는 새로운 서비스에 관한 것 아니라, 이미 우리가 해오던 것을 어떻게 달리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The second wave of digital will be far more disruptive than the first and the foundations of traditional media will be swept away, taking us beyond broadcasting. The BBC needs a creative response to the amazing, bewildering, exciting and inspiring changes in both technology and expectations. ... On-demand changes everything. It means we need to rethink the way we conceive, commission, produce, package and distribute our content. This isn't about new services it's about doing what we already do differently."
우리가 해오던 것이 무엇일까? 공공 서비스 콘텐츠(public service contents)를 수용자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서는 새로운 방식("어떻게 달리")으로 하는 것 뿐이다. 뉴미디어에 대한 접근이 '규범적'이다. 도구적이지 않고 당위적이다. '수용자들이 집에 있든 이동 중이든, 어떤 미디어 방식이든 어떤 디바이스 유형이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제공'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이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사회가 그들을 부양하는 이유이다. 그렇다고 왜 사회가 그들을 부양할까?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서'인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곳에서 다시 하겠다. 그런데 나는 사회 - 공동체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근거가 스토리(콘텐츠)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연대감'이라고 생각한다. 즉, 공감이다.

이런 까닭에 BBC 뉴미디어 전략의 핵심이 '강한 정서적 연대감'이라고 달리 읽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적어도 내가) 뉴미디어 관련된 일을 '열심히'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가는 길

2005~2006년 이후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부터 지금의 '콘텐츠 연합 플랫폼'까지, 우리가 seamless('천의무봉'/끊김없는/이으매가 없는)한, 또는 유비쿼터한, 지금의 n스크린 서비스를 하는 이유이다.
"텔레비젼 프로그램은 매 순간 대규모의 대중 수용자로부터 인정을 얻고, 빠르고 예측 가능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이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에서 한 말이다. 우린 텔레비젼과 같은 효과를 뉴미디어 속에서도 얻기 위해 분투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지금의' 방송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막 기술과 자본을 가지고 '뉴'미디어에 들어온 신참자들과 다른 Mission과 세계상을 가지고 '같은 일'을 한다. 정말 '같은 일'일까?

P.S. 정서적 효과를 어떻게 사용하는냐에 따라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또는 싫어하는 미디어가 된다.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닌 ...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것은 어떤 사람은 싫어한다. 중립성이나 객관성 이전에 왜 미디어가 이 사회에 있는지를 생각한 후, 그것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이용되는지를 살펴야한다. ... 미디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임에는 틀림없지만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환상일까? 소설이나 시, 문학처럼 말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12.10.04일 쓰기 시작하여, 12.22일 완료함

2012/12/22 19:59 2012/12/22 19:59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
From. david Baik 2013/02/13 17:14Delete / ModifyReply
PDF 다운로드시 에러가 나오네요`
From. jjpark 2013/02/23 21:22Delete / ModifyReply
확인했는데 잘열리는데요! 다운받으면서 파일이 깨졌을 수도 있습니다. 다른 PC에서 받아보세요.
◀ 이전 페이지 : [1] : 다음 페이지 ▶
[로그인][오픈아이디란?]
«   2017/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럽스타(Luv Star)와 L....
갈라파고스에 대한 단상.
풍수화의 시방시와 다....
여기, 슬픈 사람이 있다.
<Contents Evolution ....
민주적 전제정 : 토크....
황용엽 _ 인간의 길 :....
2007년 이후.
SBS 유튜브 한국 서비....
‘몸-경험’에서 매체로....
플랫폼 제국들을 가로....
방송통신 융합시대의 ....
미디어와 스토리텔링,.... 2
초저가 수신료 시장형....
콘텐츠연합플랫폼 - p....
N스크린 - 콘텐츠 유.... 5
IPTV 사업 예측 및 현황. 2
우공이산의 정신, 디....
나에게 던진 질문 - .... 1
"미국의 민주주의"를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