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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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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쓰던 글이다. 2007년 <미디어2.0> 서문에서 벤야민의 아우라의 부활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었다. 벤야민, 맥루한(매클루언), 플루서, 뒤르케임 등에 관련된 책을 읽었나보다. 지금도 벤야민 읽는 것을 계속하고 있고, '아우라의 부활'에 대해 심혜련교수가 쓴 책도 나왔다.

좀 되었지만 아감벤의 <장치란 무엇인가>를 읽고, 벤야민-푸코-들뢰즈를 이어붙여 볼 수 있는, 어딘가 연결되는 것 같은데 하는 지점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아우라를 '장치-배치'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다. 반종교개혁, 또는 카톨릭혁명을 통해 바티칸이 만들어내려고 했던 '성스러운 장소성'-제의적 효과, 정말 그것을 만들어낸 '종교적' 장치의 작동 결과/효과로 아우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장치란 무엇인가? 장치학을 위한 서론 - 10점
조르조 아감벤.양창렬 지음/난장

어떤 하나의 배치가 우리의 몸을 변양(옷 매무새를 바로하게 하는 등의 mode의 변화)시키고, 어떤 감응(성스러운 느낌, 신과 합일된 듯한 느낌 등)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다. 르네상스의 예술과 건축술은 이렇게 종교와 결합된다/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전 글들에서 언표적 배치에 의한 '비물체적 변환 (또는 비물질적 변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우린 당연하게도 기계적 배치에 의한 '비언표적 변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사물(물질, 관계, 구조 등)의 배치/질서(특히 장소적 위치)가 바뀌면서 '의미'가 바뀌는 것이다. 이론(의미) 없이 먼저 의미가 만들어져버렸다고 해야하나! 비물체적 변환에 대한 유비적인 표현이다. 물질운동의 표면효과/사건으로 의미가 드러난다고 하면 이론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기에. (하지만 인간 자체가 의식(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론/전략은 여전히 중요하다.)

교회-성화(성서화)-예술 등으로 연결된 카톨릭적 배치가 기술적 복제물인 사진이 나오면서, 그 예술품(사진)의 위치가 바뀌면서 의미가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효과가 제의적인 것에서 전시적인 것으로 바뀐다고 벤야민이 말했다고 생각한다.예술/종교의 층이 그것과 별개로 발전한 기술의 층과 만나면서 예술은 탈영토화되고 다른 것으로 재영토화 된다. 벤야민은 그것을 '비평적'으로 발견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말해보자! 사진기의 발명에 의해 전통적인 예술품은 다양체가 되었다.  (사진-기술적 복제품인) 예술품은  다양한 장소에 위치해 그 숨겨진 의미나 효과가 (또는 역량/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보면 하나의 단일한 정체성으로 짓눌려있더 TV(방송 프로그램, 콘텐츠)가 기술의 발전에 의해 하나의 다양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 결과 어떤 사건이, 의미나 효과가 나타날지 ...

아래 게재한 문서를 보면 검정색과 붉은 색 글씨로 되어있다. 먼저 쓴 것이 검정이고, 쓴 것을 보면서 다시 덧붙인 부분이 붉은 색이다. 아래 옮겨놓은 글에서는 붉은 색 대신 파랑색 글씨를 썼다. 그리고 가끔 나오는 붉은 색 글씨는 어떤 이유에선지 다시 덧붙인 것인데 본문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위의 붉은 색은 작은 글씨로 그때 그때 떠오른 생각이나, 다른 책에서 끌어왔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쓴 것이다.

이글 역시 쓰다가 말았다. 몇 권의 책을 들고 한달 이상을 궁싯거리며, 링크로 연결되 웹문서를 읽는 것처럼 어떤 책의 인용에서 그 인용된 책을 찾아읽고를 반복하면서 어떤 책을 찾아갔다가 그 책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
"나는 노상강도처럼 책을 읽는다. 이책 저책 띄엄 띄엄")  시작해야 할 외부적인 이유가 없는 것처럼 끝내야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고, 아마 또 다른 것에 관심이 갔을게다.

어떤 의미에서 자기 이해가 끝났다고 생각했으니 더 이상 쓸 이유를 잃었을 수도 있다. 
 (아래 글에 '자기이해 부분: 논의의 핵심 단락의 시작-끝'을 찾기 쉽도록 녹색으로 표시해 둔다.)

관련글 -----------------------------------------------------------

발터 벤야민 - 아우라 (2007.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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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후 (201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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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 2008.12.17일

여기 지금, 그리고 역사적 유일성과 진품성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완벽한 복제에도 여전히 하나의 것이 결여되어 있다”• [가장 완벽한 복제도 원본을 대체할 수 없다. 결국은 원본을 대체할 수 없는 복제품이 스스로 하나의 위상을 가질 때 문제가 발행한다. 그리고 복제품이 원본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 원본 자체의 존재론적 위상의 붕괴와 새롭게 나타난 복제품에 대한 존재론적 위상의 정립이 그것이다.]고 말한다. 그것은 예술작품이 놓여 있는 장소에서의 일회적 현존,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이다. 이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은 어떤 예술작품이 역사를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일회적 현존이 아닌 그 밖의 어디에서도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거니와, 예술작품은 그것이 존속하는 동안 그 역사에 종속되어 왔다.”

예술작품이 ‘그 역사에 종속되어 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예술작품을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 예술작품(the original)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예술작품의 역사성 때문이라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일회적 현존 안에서 예술작품의 역사가 이루어지며,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일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일회적 현존의 역사에 의해서이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역사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발생하는 작품의 물리적 변화, 소유관계의 변화, 그리고 어떤 예술작품에 대해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복사물의 종류와 수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물리적 구조에서 겪은 변화의 흔적은 화학적 혹은 물리적 방식의 분석을 통해서만 추적될 수 있고, 복제에서는 수행될 수 없다.[수공업적 복제의 경우 이런 흔적을 추적할 수 있지만 이때는 이 작품이 복제가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될 때, 또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소유관계의 변화의 흔적은 전통에 관한 문제이며, 그것의 추적은 원작에 입각해야 한다. 그런데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에서 역사가 현실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런 것보다는 복사물로부터 원본을 보호하기 위한 것 때문인 듯 하다.

“물론 예술작품의 역사는 그[물리적 구조, 소유관계의 변화] 이상을 포함한다. 이를테면 모나리자의 역사는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 모나리자로부터 만들어진 복사물의 종류와 수를 포괄한다.”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항상 복제가 가능했고, 인간이 만든 것은 항상 인간에 의해 모방될 수 있었기 때문에 ‘변화의 흔적’들, 즉 어떤 예술작품의 역사는 추적되고 관리되어야만 했다. 배제의 역사, 복제를 원작과 구분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 관리의 불가능성, 또는 관리의 불필요성, 역사의 끝 <<이중섭의 빨래터 사건>> [역사의 상실 = 기술복제의 의미] 법적 제도적 관계만 남아 ... 저작권 같은

그는 “원작의 여기와 지금이 그것의 진품성의 개념을 결정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원작의 여기와 지금, 즉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이 그것의 진품성의 개념을 결정한다는 판단의 근거에는 역사가 있다. 즉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과 진품성을 관계 맺어주는 것은 역사성이다. 또는 동어반복처럼 보이지만 어떤 예술작품이 진품인 것은 그것이 역사적으로 진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한다.

“사물의 진품성은 그 기원으로부터 전승될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물질적 지속으로부터 역사적 증거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의 총괄이다.”

“물질적 지속”은 예술작품의 현존성, 즉 여기에 지금 있는 예술작품이며, “역사적 증거물”은 앞에서 살펴본 물리적 변화, 소유관계의 변화, 수공적 복제물의 종류와 수 및 그 이상의 것을 포괄한다. 하지만 진품성은 어떤 사물의 물질적 지속에 근거를 둠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그것이 원작인지 모작(模作)인지의 여부는 역사적 증거물에 의해 보증 받아야 한다. 즉 진품성을 구성하는 것은 어떤 작품의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의 결합을 통해서이다.• [아우라, 탈맥락화, 역사 없음] {예술작품에서 역사로 향하는 발걸음과 역사에서 예술작품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원환을 이루면서 예술의 근거를 만들고 있다. 하이데거,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p.66} 이렇게 성립된 진품성의 개념은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 가능한 시대를 맞아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 [사물의 진품성을 구성하는] 후자〔역사적 증거〕는 전자〔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전자가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에 있어서는 후자, 사물의 역사적 증거도 위협받게 된다. 물론 위협받게 되는 것은 역사적 증거 뿐이지만, 그러나 이처럼 위협받게 되는 것은 또한 사물의 권위〔진품성〕이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적 복제 그 자체라기보다는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만드는 기술적 복제[이것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벗어난 것을 왜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까? 두가지 차원에서 설명해야 한다.]이다. 벤야민도 기술적 복제가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과 이에 근거한 예술작품의 역사, 그리고 일회적 현존과 역사의 총괄로서의 예술작품의 진품성이라는 개념까지 도달한 후 이번에는 반대의 순환이 시작된다.

기술적 복제는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만들어내며 이를 통해 역사적 증거를 위협한다. 역사적 증거에 대한 위협은 다시 사물의 권위, 즉 진품성을 위협하고 결과적으로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벤야민은 복제의 고유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며 그것을 찾아 나선다. “진품성은 통상 모조로 낙인 찍힌 수공적 복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완전한 권위를 유지” 하지만 “기술복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기술복제에는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사람 능력의 변화, 또는 사람의 인지구조와 다른 기계적 인지구조, 그에 따른 효과 ... 아우라의 상실, 맥루한의 인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현대적 지각의 특징-진중권 p.44’]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만드는 기술적 복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무엇일까? 역사, 담론이 진품성을 위협하는 속에서 우리는 담론의 물질성이란 개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아우라의 상실은 복제품에서, 원작에서는 아우라가 상실되지 않는다. 결국 이렇게 생각해 보자! 원작에 대해 자립적인 복제품이 아우라 없이 존재한다. 예술작품의 새로운 존재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원작의 아우라가 상실되지 않는다. 원작의 지금, 여기의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왜냐 기술복제를 통해 사람들을 탈마법화(탈영토화) 시키면서 다시 영토화 한다. 예술의 장의 논리에 사람들이 끌려들어간다. 전시된 것을 보고 원작을 갈구한다. 등등


기술복제의 고유성, 사람의 능력을 벗어남


[역사적 유일성의 상실] 벤야민은 이것을 먼저 사진술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사진술은 사람의 자연적 시각, 즉 육안(肉眼)으로는 전혀 포착할 수 없는 다양한 시점(視點)의 선택이 가능하고 확대나 고속촬영 기법 등을 통해 자의적으로 시각(視角)을 변경할 수 있다. 이렇듯 기술적 복제는 수공적 복제와 달리 진품을 다양한 ‘봄(視)’의 방식을 통해 다시 세울 수 있다.[진열하는 것이 아닌 건립하다, 하이데거] 이런 방식을 통해서 기술적 복제는 수공적 복제보다 원본으로부터 자립적으로 될 수 있고, 자립적으로 된다.• [렘브란트전에서 LCD, 빔프로젝터 화면 앞에 모여있는 아이들] - 2008.12.27일 관람

수공적 복제에 대한 사진의 우월성, 하지만 탁월한 모작에 대한 르네상스인의 반응은 사뭇다르며, 모작이 하나의 예술작품, 즉 오리지널로 되기도 한다.

또 “기술적 복제는 원작의 모상을 원작 그 자체가 이를 수 없는 상황에 옮겨놓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술적 복제는 … 수용자들이 원작의 모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한다.[원격현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자]” “원작의 모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음반을 이용할 경우 수용자들이 음악당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을 자기 집의 방안에서건 자동차를 타면서건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진을 이용할 경우에는 대성당이나 외국에 있는 미술관을 떠나 미술 애호가의 집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기술적 복제는 복제된 작품을 통하여 원본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 전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기술복제가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인간의 확장, 맥루한]’은 원작의 모상에 더 가깝게 복제하면서도 원작에서 벗어나 자립성을 갖도록 하는 것, 또 이것을 대량으로 복제 가능하게 하여 여러 곳에 편재(遍在)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대중 시대에 널리 유포되는 한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상품화될 수 있다. 기술복제의 대중적 유포, 또 이를 통한 무한한 전시 가능성이 다시 원작 전시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다. 전시가치가 실제 자본의 증식,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벤야민이 말한 전시가치가 전개되면서 나타나는 ‘다른’ 효과, 예기치 않은 효과, 김상환,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 pp.316~317의 내용에 대한 비평] 기술복제는 인터넷과 같이 시간, 장소의 극복을 위해여 존재했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 등등  기술/기계에 의한 창작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자립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사고하는 기계를 최초로 생각한 누구?

주석 -----------------------------------------

• 이 인용문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가장 완벽한 복제도 원본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인용된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특별한 언급이 없을 경우 파시즘에 관한 문헌을 읽고 공부하는 CP Group(강유원, 김성열, 김재석, 박수민, 서민우, 신기철, 지주형)이 번역한 것을 사용하였다. 인용문 중 〔  〕 안의 말들은 역자들이 붙인 것이다. 필자가 추가하였을 경우에는 [  ]를 사용하였다. 이글에서 별도로 인용처를 밝히지 않고 “  ”로 표시했을 경우 모두 이글을 인용한 것이다.
   이 번역문은 http://allestelle.net/resources/2005/04/04/108 (2009.1.10)에서 볼 수 있다.  
   번역문은 


•• 어떤 예술작품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은 부르디외가 말하는 ‘예술의 장(場)’이다. 이곳에서 예술작품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전기 작가, 문헌학자, 예술사가, 문학사 등이 활동하면서 전통, 운영 법칙, 모집 규칙 등 그곳에 필요한 역사를 갖춘다.

••• 쉽게 말해 역사적으로 진품이었기 때문에 진품이다. 또는 ‘여기, 지금’ 있는 어떤 예술작품이 진품임을 역사적으로 보증하기 때문에 진품이다. 진품임을 역사적으로 보증하기 위해 물리적 변화에 대한 분석부터, 전문가의 평가까지를 포함한 제도적 기술들이 만들어진다. KBS 방송 프로그램인 <TV쇼 진품명품>은 ‘예술의 장(場)’의 구성원인 고미술 전문가들이 출연하여 작품의 역사를 고증하고, 진품임을 보증하는 일련의 제도적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 안에는 TV(방송)이 가지고 있는 권위가 깊숙이 개입된다.

•••• 그 이상의 것, 즉 ‘예술의 장(場)’에서 생산된 어떤 예술작품에 관해 만들어진 담론(談論) 및 그것들 간의 역사적 관계, 또 이런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관계까지도 포괄한다.

•••••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은 다시 ‘역사적 일회성과 실체적 유일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김상환, pp317~318)

••••••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은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여기서 훼손은 물리적 변화를 의미한다. (강조는 필자)

••••••• 여기서 ‘다양한 봄의 방식’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데 ‘봄(視)’은 단순히 보는 행위를 지칭하지 않는다. 한자에서 ‘視’는 어원상 똑똑히 보이다, 가만히 계속하여 보다, 자세히 보다 등의 뜻을 가진다.

•••••••• “수공적 복제”는 사람이 직접 보고 그린(또는 만든) 원작을 모사한 위조품을 말한다.

••••••••• ‘자립적으로 된다’는 것은 진품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진품이 가지고 있던 다른 잠재성을 풀어내 보여준다는 것은 아닐까?

•••••••••• 디지털 기술과 통신(Internet)의 발전에 의해 이제 미술작품과 음악, 영화 등을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웹 서버(web server)에 접속하여 볼 수 있다. 벤야민의 논의가 디지털 환경에서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량’이란 측면에서 이제 ‘복제’가 하나씩 진행되는 모사가 아닌 ‘생산’이 된다.




기술복제와 대중문화의 출현


기술적으로 복제된 작품이 이처럼 원본에 대하여 더 많은 자립도를 갖고, 더 원작에 가깝게 대량으로 제작되어 유포될 수 있게 됨에 따라 예술작품의 사회적 성격이 앞선 시기와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기술복제 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를 비교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신앙과 관습에 기초한 집단적 사회”였던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 기독교적 전통에서 보면 예술작품의 수용자들(公衆)은 전체적인 사회공동체로 확장되어 있었다. 예술이 존재했던 장소들에는 문화적 공동체의 대다수가 함께 모여들었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예술작품을 받아들이고 채택된 약호(code)에 따라 이야기했다. 또 그 장소가 공동체의 만남의 장소로서 모든 수용자들에게 개방적이었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은 공적인 성격을 띠었다. 공동체적인 성격의 근본적인 균열이 존재하지 않고 유지되는 전통적인 아프리카 사회에서의 예술작품들도 이런 형태로 사회적으로 수용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만들어진 작품들 안에 드러나는 상징들의 의미는 사회 문화적 삶을 통해서 형성된 사전지식(pre-knowledge)에 의해 유식한 사람들만이 아닌 공동체 성원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중세 유럽의 경우 기독교적인 제도와 실천의 통합에 의해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사회적 환경과 대성당의 천정과 벽면을 차지했던 성화(聖畵)들 속에서 제시됐던 예술적 환경이 다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예술사적으로 보면 로마네스크와 고딕시대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다음은 예술작품이 보다 제한된 방식으로 서로 다른 계급 또는 사회집단들에 의해 전유되는 시기로서, 균열되기 시작한 사회집단들, 또는 분화되기 시작한 계급들에 따라 다양한 예술형식들이 동시에 존재했다. 이때의 예술작품은 작가 개인의 천재성과 영감의 소산이라고 이해되면서 사회 전체를 위해 타당한 약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었다. 그보다 사회가 계급과 집단으로 분화되어 그 분화된 정도에 따라 각각의 계급 또는 집단에 맞는 약호가 다양하게 존재했다. 루이 14세는 통치 말엽에 그의 저택들에 걸려있었던 화란풍의 회화들을 가리키며 ‘이 끔찍한 것들을 치워버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평화로운 중산층의 집안 장면이 군주에게는 대역죄(lèse majesté)의 범죄처럼 보였던 것이다. 주권자인 군주의 취미, 궁정의 취미 그리고 중산계급(bourgeois)의 취미 간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했다. 균열된 사회 속에서 전달자들의 약호들과 수신자들의 약호들 사이에는 언제든지 과도한 거리가 존재할 수 있었고 이로부터 절대적이고 해소되지 못할 오해가 발생 수 있었다. 절대주의 국가의 성립과 자본주의적 발전을 거치면서 사회집단이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이전 중세시대 수용자들(公衆)의 통일성은 다양성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했다. 벤야민이 그의 글에서 “전통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르네상스 이후의 시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은 문학, 미술 그리고 음악을 재생시키는 기계적 수단이 발전하는 시기로서, 작품들과 수용자들(公衆) 간의 관계, 작품들과 작품들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작품들과 수용자들 자체까지 변화가 시작된다. 기술적 방법들을 이용하면서 수용자들의 통일성이 다양성에 의해 대체되었던 이전 시기와 반대로 예술을 대중화함으로써 수용자들을 다시 통합한다. 예술은 대중문화로 대체된다. 대중매체는 예술을 기계적 방식을 이용해 대중적으로 생산하며 수용자들도 일정 정도의 교육을 받은 특별한 계층으로서의 교양인(敎養人)이 아닌 말 그대로의 대중이 그 주류가 된다. 대중매체를 통한 대중문화는 원본에 대하여 더 많은 자립도를 갖고, 더 원작에 가깝게 대량으로 제작되어 유포, 전시될 수 있다는 기술복제의 고유성에 위에서 성립한다. 벤야민은 아밸 강스(Abel Gance)를 인용하여 문학, 미술, 음악이 기계적 복제 수단인 영화를 통해 재생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 될 것이다 … 모든 전설, 모든 신화 그리고 모든 신화적 인물, 모든 종교 창시자, 아니 모든 종교가 … 카메라 빛에 의한 부활을 기다리며 영웅들은 〔영화의〕 문 앞에 몰려든다.”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벤야민과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의 논의 속에서 뒤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권용선.. p.174를 볼 것

주석 -----------------------------------------

■ 여기서 언급하는 변화는 ‘예술작품의 사회적 기능’, ‘사회적 수용’ 방식의 변화이다.


■■ 최태만, 『미술과 도시, 예술가의 눈에 비친 도시와 삶』, 열화당, 1995, p.34

■■■ ‘상징들의 의미’는 앞에서 말한 ‘채택된 약호(code)’이다.

■■■■ 예술작품의 사회적 기능, 또는 사회적 수용방식의 세 시기 구분은 『美學의 理解』(김문환 編, 문예출판사, 1989) pp.379~388을 참고할 것.
기계적 복제, 그것을 이용한 기계적 재생산 방식의 이용을 통한 대중매체의 발달과 대중문화의 등장, 이에 따른 예술분야에서의 변화 및 대중문화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등에 대해서는 심혜련, 「매체에 대한 미학적 접근 - 대중매체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고찰을 중심으로」(매체철학연구회 지음,『매체철학의 이해』, 인간사랑, 2005, pp.127~169)를 볼 것.

■■■■■ ‘영화를 통해 재생되는 것’은 ‘영화에 재매개(remediation) 되어 다시 살아나는 것'이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재매개를 통해 이른 예술 영역이 재조명되어 숨어 있던 의미가 더욱 부각될 수 있고, 영상을 이용함으로써 더욱 대중화될 수 있다.

■■■■■■ 문학이 기계적 수단을 통해 재생되는 것은 출판기술의 발달뿐만이 아닌 다른 미디어에 의해 재매개(remediation)되면서이다. 맥루한은 “영화의 내용은 소설이고, 극이며 오페라이다”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예술 영역 내에 있던 작품들이 하나의 새로운 작품 내에서 합쳐지며 이를 통해 작품들 사이의 관계가 변화된다.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p.10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


예술작품의 진품성을 구성하는 것은 어떤 작품의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의 결합, “물질적 지속으로부터 역사적 증거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의 총괄”이다. 그런데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에 있어서는 사물의 역사적 증거도 위협받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함께하고 있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은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사실 기술적 복제는 어떤 작품을 훼손할 수 없고 그 작품 자체의 “물질적 지속성”에 어떤 영향을 줄 수도 없다. 이것은 복제가 원작(the original)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만드는, 훼손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원작 자체보다도 먼저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이 중요하고, 그것과 원작이 새롭게 관계를 맺음에 따라 원작 자체에서 일어나는 의미 변화가 중요하다.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은 수공적 복제품들이 처했던 상황과 비교할 때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술적 복제품의 고유성이란 수공적 복제품에서 발견되었던 특성에 대한 차별성이 듯 서로 다른 두시대의 복제품이 처한 상황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에 의해 벤야민이 복사물의 종류와 수까지도 예술작품의 역사에 포함된다고 말했던 시기와 “사물의 역사적 증거도 위협받게 된” 시기가 나누어진다. [사물의 역사적 증거도 위협받게 된에서 사물은 복제품이다. 벤야민은 원작을 상정하는 듯하지만 ... 나의 이해로는]

20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구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재현하는 것, 즉 복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위작이 따라붙는 것은 어쩌면 미술이라는 예술의 타고난 운명인지 모른다. 모든 미술은 모방에서 출발했다. 세계를 모방하는 것, 곧 베끼기가 미술의 한 본령이다 보니 위작이라는 모방이 그 본령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원작의 개념이 없었던 옛날에는 이런 베끼기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동양에서는 방작(倣作)이라 하여 옛 대가의 그림을 임모하는 게 존경의 표시이자 창작의 한 방식이었다. 서양에서도 거장과 선생의 그림을 모사하는 게 중요한 배움이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조각을 수도 없이 베꼈다. 오늘날 실제 그리스 조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에도 그리스 조각의 성격과 특징을 깊고 광범위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상당 부분 이 모작들 덕분이다. 로마인들은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조각가로 하여금 이를 베끼게 해 그걸로 자신들의 빌라를 꾸몄다. 동일한 작품이 워낙 많이 베껴지다 보니 원작이 망실되고 모작이 다수 파괴되어도 끝내 살아남은 게 있어 그리스 조각의 특징을 오늘날까지 전하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화가가 도제들에게 그림을 가르칠 때 자신의 그림을 베껴 스타일과 기법을 익히도록 했다. 잘 베낀 그림은 스승이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그렇게 해서 번 돈은 가르침의 대가, 그러니까 수업료로 갈음됐다. 문제는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이런 모작들이 화가의 진작으로 전승되어 본의 아니게 위작이 되어버리곤 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스승의 그림을 베끼는 전통이 뿌리내린 한편으로, 진품에 대한 존중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 또한 르네상스 무렵이다. 르네상스 들어 고전 부흥의 바람을 타고 로마시대의 조각이 열정적으로 발굴되자 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여 진품의 가치가 중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미켈란젤로가 몰래 가짜 로마 조각(<잠자는 큐피드>)을 만들어 팔았다는 일화는 당시 시장에 위작이 얼마나 많이 떠돌았는가 하는 사실과, 그에 반해 애호가들이 얼마나 진품에 목말라 했는가 하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특히 예술가를 공방의 장인이 아니라 천재로 보는 관념이 생겨남에 따라 작품의 고유성과 원작성은 갈수록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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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케란젤로(Michelangelo)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보이기 위해 스승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의 작품을 모방했다. <잠자는 큐피드(Cupid Asleep)>의 모조품은 1496년 훌륭한 조각품으로서 팔렸지만, 실제로 훌륭한 조각품인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있다  

조르조 바사리(1511-1574)는 《예술가 열전》에서 이렇게 썼다. 미켈란젤로가 실물대의 〈잠자는 큐피드〉를 조각하였다. 이것을 본 한 친구가 말하길,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이 조각 작품을 한동안 땅에 파묻었다 파낸 후 고대 조각 작품이라며 로마에 보낸다면, 아마 자네가 이곳 피렌체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을 걸세.” 미켈란젤로는 친구가 말한 대로 그 조각상을 땅에 묻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친구가 이 조각상을 로마로 가지고 가, 그곳에서 다시 땅에 묻었다. 그리고 이후 그 친구는 산 조르조 추기경(라파엘로 리아리오)에게 이것을 200크라운을 받고 팔았는데`―`몇몇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만`―`이 친구는 미켈란젤로에게는 30크라운만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챙겼다. 그런데 추기경이 나중에 자기가 산 큐피드가 진짜 고대 그리스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돈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비웃음을 샀고, 심지어 조각 작품의 가치를 알아볼 줄 모른다고 비난받았다. 사실 그 조각상은 완벽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웃든 말든, 옛날에 만들어졌든 얼마 전에 만들어졌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략) 이런 일들로 인해 미켈란젤로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앞서 수공적 복제와 달리 기술적 복제품이 갖는 고유성에 대한 벤야민의 분석을 살펴보았다. 이곳에서는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을 조감하기 위하여 예술사 내에서 수공적 복제에 대한 접근을 살펴보겠다.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의 2가지 의미 == 기술적 복제를 통해 동일한 것이 반복적으로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보증받기 어려운 복제, 역사성이 사라진 복제  // 원작과 다른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받아 원작과 동떨어진 새로운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하는) 기술적 복제

대중매체의 특성이 역사로부터의 탈맥락화가 아닌가? 특정 부분을  딱 잘라 보여주기, 앞뒤 맥락 고려 없이 인용하기 등

---------------------------- (자기이해 부분: 논의의 핵심 단락) - 시작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은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술적 복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런데 물질적 지속성의 유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근거한 일회적 현존성의 가치는 떨어진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김상환은 아우라를 하나의 속성으로 본다. 속성은 어떤 존재 자체 내에 내재할 수도 있지만 외적인 관계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있는 어떤 것일까? 들뢰즈의 접속, 관계에 의해 어떤 사물의 양태의 변화 등등] [왜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 일회적 현존성의 가치가 떨어질까? 아우라의 상실 때문에 ... 등등 그런데 예술작품의 기술적인 복제에 의해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성이 약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여기와 지금”이라는 일회적 현존성 자체도 단순히 ‘예술작품의 존속’, ‘예술작품의 물리적 구조’, 그리고 ‘예술작품의 물질적 지속성’에만 근거한 것이 아닌 세계와 관계하기 때문에, 세계 내 존재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관계성을 아우라(aura)라고 표현한다.[아우라를 실체와 속성의 관계처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관계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아우라의 부활을 관계의 부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위 글에서 <관계성 중 하나를 아우라라고 표현한다>로 하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그리고 한동안 아우라를 정동/감응의 한 형식으로 이해했다. 교회-예술장치는 아우라(특정한 종교적 내용을 담은 정동)을 일으킨다. 지금도 이렇게 이해한다. 그 정동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어떤 경우 마음의 습관/습속(?)으로 체화된다.  최근 이야기되는 디지털 기기의 미학화 현상, 디자인의 중요성 등도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쉽게 와닿을 수 있다. 아이폰의 아우라! 스티브 잡스의 아우라! 폰(디자인)과 매체, 특정 인물의 인생 역정이 계열화된 '장치'가 심미적 차원에서 형성(코드화-언표적 배치)된 것이다. 2019.7.3일 추가)

---------------------------- (자기이해 부분: 논의의 핵심 단락) - 끝

“예술작품의 기술적인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는 것, 그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그 과정은 징후적인데, 그것의 의미는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 복제기술은, 그것을 일반적으로 표현할 때,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단절시킨다.”

벤야민이 “예술작품의 일회성은 예술작품이 전통의 맥락 안으로 편입되어 있는 것과 같다”(p.5)고 말했을 때 이미 일회적 현존성의 약화는 전통적 맥락 안에 서 있던 예술작품들이 이것을 비켜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지적한 전통의 영역은 “창조성 그리고 천재성, 영원한 가치 그리고 비의성(秘意), … 소유관계, … 전적으로 살아있는 어떤 것, 비범하게 변화 가능한 어떤 것, … 예배의식” 등과 관계있다. 이 전통의 영역은 부르디외가 “신앙의 세계, 즉 천분(天分)에 대한 신앙과, 창조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는 창작가의 유일성에 대한 신앙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계인 예술의 세계이다. 이 영역은 “공시적으로 파악할 때 입장들(또는 지위들)의 구조화된 공간”인 예술의 장(場)으로 “그 자체의 전통, 운영 법칙과 모집 규칙을, 결국 자체 역사를 갖추고 있는 예술 생산의 세계”이다.

그런데 기술적 복제 상황 속에서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위축된다는 벤야민의 주장 이전에 ‘복제기술에 의해 복제된 것은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단절된다’는 지적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벤야민의 논의를 정리하면 예술작품은 일회적 현존성을 가지며, 이 일회적 현존성 때문에 역사적 유일성을 가질 수 있다. 예술작품의 존재(창작) 이후, 이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은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의 근거가 되고 이 위에 다시 진품성이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기술복제가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 즉 예술작품의 존재 자체의 지속을 위협하면서 실체적 유일성과 역사적 일회성, 그리고 진품성도 위협받게 된다. 벤야민이 기술적 복제품에서 발견한 사물의 지속성에 대한 위협은 복제품 자체의 원작에 대한 강한 자립성과 복제를 통한 원작의 무한한 확대 가능성 속에서 원작이 가지고 있던 맥락(의미)의 상실 가능성이다. 이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복제된 것이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전통의 영역과 단절되는 까닭은 모든 것을 떠나 우선적으로 대량 복제 가능성 때문이다. 먼저 기술적 복제가 수공적 복제보다 더 많은 자립성을 가진다는 의미는 기술적 복제품이 ‘예술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기보다 더욱 예술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복제의 자립성은 서로 다른 수공적 복제와 달리 동일한 복제품의 양산으로 인해 그 실체적 유일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실체적 유일성을 잃는다고 말할 때, 기술적 복제품의 그 물리적 존재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 기술적 복제품에 대한 역사 없음을 의미한다. 즉, 예술작품의 진품성이 서 있던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의 해석학적 순환에서 한 고리인 역사성이 깨져나감으로써 다른 고리도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역사성이 무너져 내리는 이유는 대량 복제 때문인데, 대량 복제는 “원작의 모상을 원작 그 자체가 이를 수 없는 상황에 옮겨놓을 수 있다.” 원작 그 자체가 이를 수 없는 상황이란 모상들이 원작의 역사 속에서 원작과 더 이상 관계 맺을 수 없는 상황[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품들은 언제나 원작과 관계를 맺고 있다. 다만 원작이 이들과 관계 맺기를 거부할 뿐이다.]을 말하며, 관계 맺을 수 없는 이유는 “수 없는 상황”, 즉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전시가능성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기술적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맥락을 무슨 수로 정리하여 원작의 역사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또 예술의 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낄 수 있을까?


부르디외 - 예술의 장과 배제의 기술(푸코?)


부르디외는 벤야민이 추적되고 관리되어야 할 “흔적[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예술의 장을 구성하는 몇 가지 징표들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한 작품에는 과거 혹은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과 맺고 있는 객관적이고 때로는 의식적이기까지 한 “관계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이것은 벤야민이 “모나리자의 역사는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 모나리자로부터 만들어진 복사물의 종류와 수를 포괄한다”고 이야기한 것과 동일하다.

또 전기 작가처럼 생애를 보존하거나 초안과 밑그림, 필사본을 보관하고 그것을 수정하며 해독해나가는 문헌학자, 예술사가, 문학사가들과 같이 작품을 보존하는 데에 깊이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출현한다. 이들은 해당 장 안에서 생산되는 것을 보존하는 하고, 그러한 것을 보존하는 보존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 이익인 사람들이다.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출현은 예술작품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것이다. 그리고 벤야민도 이들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기술적 복제는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원작의 역사 속으로,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기계복제의 대량 생산 가능성에 따른 무한한 전시가능성, 또 무한한 전시가능성에서 발생한 상황적 의미의 무한성 때문이다. 이제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품이 갖는 사회적 가치는 비평가들, 화랑 관리인들, 문예 학술 옹호자들을 통해서 보다 자본주의적 상품 속에서나, 예술작품에 대한 교육적 사용 속에서 찾아야 한다.

결국 우리는 기술적 복제가 수공업적 복제와 달리 예술의 장에서 배제되는 동기를 그 질(質)이 아닌 양(量)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벤야민이 말하고 있는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란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또 추적되고 관리되어야할 어떤 예술작품이 그 양적 팽창에 의해 관리가 불가능해질 때, 즉 예술작품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없을 때 배제의 논리가 장(場 ) 안에서 자라나는 것 아닐까?

어떤 예술작품이 자기 자신의 일부인 기계복제와의 관계성(역사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 예술작품은 물질적 지속성을 보증하는 사회적 원천인 일회적 현존과 그것의 역사성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이런 상황에 직면한 예술이 다른 층위로 존재론적 이동을 시도하는 것은 아닐까? 팝아트는 반대다. 무수히 많은 상품을 탈맥락화해 다시 예술작품으로 바꿔놓는다. 무수히 많은 맥락 - 역사 구성의 불가능성을 의미, 기의 없는 기표들의 난립(뒤르케임주의 문화사회학)

이 관계의 흔적들에는 “한 예술가와 다른 예술가들 사이의 관계(객관적이며 교류의 형태로 실행되는) 전체, 그리고 이를 넘어서 작품 생산에 참여한 동인(動因) 전체 혹은 최소한 작품의 사회적 가치 전체(비평가들, 화랑 관리인들, 문예 학술 옹호자들 등)”가 포함된다.●●●●●●●●●●●

한 것과 동일한 의미

아우라의 위축=장이 깨짐, 역사의 없어짐, 장이 없어짐, 역사적 맥락이 사라지고 개별적인, 영겁회귀(?, 차이적 반복)이 일어남, 벤야민은 장을 인식하고 있었다. 관중의 비판적 정신을 높이 사는 것은 장의 참여자가 아닌 관중이 새로운 예술을 정의한다는 ... 정의할 수 있다는 ... 복제기술이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단절시키기 때문에 이런 것이 가능하다. 더 이상 예술이 아닌 ... 자에서 빠져나간 예술?, 반예술?

그런데 복제기술은 예술작품이 이런 전통적 개념들과 맺고 있던 관계들을 위축시켜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단절”(p.3)시키거나, “전통의 동요”(p.3)를 불러오거나, “전통가치의 청산”(p.3)을 야기하거나, “전통적 내용(을) … 무가치하게”(p.3) 하는 효과를 창출한다.

기술적 복제품들은 역사적 유일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원작의 역사적 유일성을 강화시켰다. 탈맥락화를 탈마법, 탈마술화로 읽자. 그러면 문자가 나오고 역사가 나온다. 빌렘 플루서로 이어져 나갈 수 있다. 처음 사진이 사용되던 방식은 무엇인가? 문자를 보완하는 용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사진이 다시 문자를 넘어선다고 플루서는 지적하기는 하지만 ...
[복제품을 전통의 영역에서 단절시킨다는 의미는? 우선 전통의 영역에서 단절된다는 것을 그 예술작품의 역사에서의 추방 정도로 이해하고, 벤야민이 말하는 것은 역사의 추방이 아닌 전통적 맥락 안에서의 단절, 아우라적인 존재방식, 즉 종교적인 제의의식과의 단절이다] 위축된 아우라에 대하여 살펴보자. 벤야민은 역사적 대상인 예술작품에서의 아우라 개념을 자연적 대상의 아우라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자연적 대상의 아우라를 먼 것 - 그것이 아무리 가까이 있다 해도 - 의 일회적 현상으로 정의한다. 어느 여름날 오후에 휴식을 취하면서 지평선 너머의 산의 능선 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위로 그늘을 드리우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것 - 이것은 이 산의 아우라, 이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호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에서의 아우라를 자연적 대상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까닭은 "자연적 대상은 … 손상받을 핵심을 가지고 있지 않"(p.3)기 때문이다. 손상받을 수 있는 핵심이 예술작품의 진품성인 한 벤야민은 자연은 기술적으로 복제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연의 일회성, 자연 그 자체를 복제하지 못함에서 오는

주석 -----------------------------------------

● 
강조는 필자

●● 원작 자체의 의미 변화’는 ‘원작 자체의 사회적 의미 변화’, ‘원작 자체의 사회적 수용방식의 변화’, 더 나아가 ‘원작 자체의 (존재론적) 위상의 변화’까지를 포함한다.

●●● 피에르 부르디외,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 솔, 1994, p.232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127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234

●●●●●● ‘예술작품의 존재(창작) 이후’라는 말에서 물리적 구조(예술작품이라 평가받는, 또는 평가받을 그림 자체)의 역사(또는 담론)에 대한 선차성(先次性)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만 그것이 예술작품이 되고, 또 그것의 진품성(예술작품 됨)을 인정받는다고 할 때 선차성이라는 개념은 점점 빛을 잃게 된다. 저자의 죽음 까지

●●●●●●● 벤야민이 예로 들었던 모나리자의 모상들도 그 시대를 지나 우리시대가 되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 수공업적 특성 때문에 모작들은 원작과 다른 특이성과 시간이 지나면서 자체의 역사(물리적 구조의 변화와 소유관계의 변화를 포함한)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131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131을 볼 것. ‘예술작품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것이다’는 다시 ‘예술작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이다’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또 예술작품의 대신 부르디외는 ‘장(場)’을 놓고 있는데 이를 ‘예술작품’으로 바꾸었다. 예술작품은 예술의 장을 통해서만 예술작품이 되며, 어떤 문화적인 장의 존재는 특정 입장에 선 지식인의 존재를 전제한다. 푸코의 권력-지식(앎)의 도식이 이곳에도 마땅히 적용되어야 한다.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234

●●●●●●●●●●● ‘자기 자신의 일부인’을 ‘자기 자신의 일부를 나누어 가진’, 또는 플라톤식으로 ‘자기 자신을 분유(分有)한’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술복제된 사진은 원작과 적극적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원작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234

●●●●●●●●●●●●● 복제와 복사물(위조, 모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벤야민이 말하는 복제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 상영되는 영화, 디지털 사진기로 찍혀 전송되는 사진에는 원본이 없다. 진품성이라는 개념은 위조 앞에서는 힘을 발휘해도 복제 앞에서는 무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은 (기술적으로) 복제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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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부재 - 플루서, 문자문화에서 다시 영상문화로
기술적 복재 - 원본의 사람짐은 역사의 사람짐, 아우라의 부재를 역사의 부재로 읽으면 ...

아우라가 맥락적 독해라면 역사는 어떤 비평가, 소유자(관계)의 사라짐으로 인해 역사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 .. 이때 우리는 다시 어떤 과거의 예술적 전통을 넘어 새로운 존재 관계 속에서의 아우라를 알게 된다. 일대일 관계가 아닌 일대다나 다대다(?)와 같은 관계 ...

아우라의 상실의 진보성은 결국 전통에 관한 문제를 흔들기 때문 ... 전통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아우라는 담론의 물질성처럼 만들어지는 것, 구조화 되는 것 아닌가?

인간이 아닌 기계가 만들 것 플루서...

그런데 이 역사성이 요구되는 현실적 근거는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보다는 이것을 방해하는 복사물들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변화의 흔적들로 구성된 역사는 특별한 문화적 장(場)인 예술계가 원작을 지키기 위해 만든 담론적 실천의 산물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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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단계적 유형들은 누진적이었다. 첫 유형에 이어 두 번째 유형이 나오더라도 첫 유형은 역사 속에서 고착화되어 그것을 유지했다. 하지만 세 번째 유형의 등장은 모든 것을 좀 더 급속하게 변화시킨다.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계적 복제 이전의 예술을 전통적이라 할 수 있지만 기술적으로 복제된 예술작품의 경우 그렇지 않다. 존재론적 위상이 변한다.


복제에 의한 효과의 증폭


“하나의 미디어는 다른 미디어가 ‘내용’으로 주어짐으로써 그 효과를 높이고 강력해진다.” 아우라의 강화(원작에 대한). 복제에서 아우라는 없어도 전통적 의미에서 맥루한 p.20


이제 예술은 기술 복제에 의해 앞의 시기들과는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이런 상황을 보면서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미디어는 메시지이다. 내용이 아닌 형식의 변경에 따라, 기술에 따라 새로운 효과가 발생한다.]

주석 -----------------------------------------

■ 이것이 전통에 관한 문제와 이에 근거하여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사회적 실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2019/07/02 22:54 2019/07/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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