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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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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엽은 193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강서보고 2학년 때인 1948년 9월 소비에트 학제에 따라 평양미술학교에 입학해, 평양국립미술대학까지 진학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50년 12월 6.25전쟁에 따른 강제 징병을 피하려고 대동강을 건너 월남했다. 황용엽의 짓이겨지고, 꺽이고, 묶이고, 비틀려진 인간의 모습은 제국주의적 일본 치하, 사회주의 북한에서 보았던 기독교인에 대한 참혹한 학살과 그후 남한으로까지 이어지는 보복의 행로, 전장의 아수라장과 전쟁에 참여해 상이 군인으로 제대한, (갈 곳 없는 월남한 실향민인) 자신의 삶을 담고있다.



황용엽이 화가로서 이정표가 되는 그림은 1959년의 <여인, 위 그림>이다. 차가운 시선의 두 눈, 기형적이고 비틀어진 팔, 오랜 세월 버려져 두터운 먼지가 쌓은 집처럼 위태롭고 칼자욱 같이 날카롭게 뻗친 선들로 표현된 몸은 언제 흩터져 저 배경 속 물질세계로 딸려들어 갈지도 모르겠다. <마른 소년, 바로 아래 그림>에서 쇠처럼 녹이 슬어버린 듯한 소년과 세계는 서로 분리될 수 없어 보인다.(아래 '부분 확대' 그림을 볼 것) 밀려들어오는 쇠붙이로 된 세계의 흐름 속에 주체가 지워져버리는 듯 하다. 물질성 속에서 주체의 형상은 사라져버린다. 그가 마주한 세상은 그림처럼 두텁고 검붉다. 나이프로 짓이겨 쌓아올린 두터운 물감이 물질감을 강화시키고, 단순하고 두터운 색조는 (잭슨 폴락처럼 동적인 물질성과는) 다른 형태의 물질적 추상성을 끌어낸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운동이 아닌 침잠이거나 죽음이 아닐까!




<여인, 1959, 가장 위 그림>이나 <변질한 여인, 1960, 바로 아래 그림>에서 칙칙한 물감 더미 사이로 삐져나왔던 선명한 색채를 <마른 소년>에서는 찾을 수 없다. 생명 - 육체와 정신은 쇠붙이처럼 녹이 슬고, 고목처럼 말라버린 것일까! <변질한 여자,degenerated woman>에서 청동빛의 두터운 물감(물질) 위로 여인은 희미한 윤곽선과 함께 우중충한 삶을 뚫고 나올 듯한 원색의 빛을 내뿜고 있다. 하지만 녹슨 철/청동(금속)을 깨지못하고 <마른 소년>의 소년은 쇠처럼 굳어져 산화되어버린 걸까!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황용엽의 세상은 바뀐 듯하다. <인간, 1977, 바로 아래 그림>을 보면, 쇠붙이들 위로 나무들이, 잘 다듬어진 목재들이 자리를 잡는다. 짓이겨진 물감대신 선적인 붓터치가 모여 잘 정돈된 면을 만들어내고 그 위에 인간이 있다. 사람은 가부좌를 틀고 명상 중이고, 그 사람을 여러 가닥의 줄들이 동여매고 있다. 종교적 아우라(aura)를 형상화한 둥그런 원, 삼각형으로 단순화된 인간(의 얼굴)은 기하학적이고, 따라서 정신성을 부각한다. 하지만 이제 구도의 시작인 뿐 인간은 여전히 닫힌 공간 속에 갇혀 있다. 황용엽은 인간은 본성상 악마적이라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처럼,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하반신을 성스럽게 가렸지만 악마적인 눈빛을 내뿜고 있다. <인간, 1985, 아래 아래 그림>을 보라.




이런 부조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정신/눈빛(얼굴 또는 안면)의 악마성과 육체의 신성성은 왜 대립하고 있을까? 그 부조화와 대립을 생산해내는 것은 기억인 듯 하다. 물감이 만들어내는 붓터치와 질감, 색깔은 안정화되어가는 육체/물질의 세계를 보여준다면, 그 위에 있는, 또는 그런 물질과 함께하는 정신은 과거를, 기억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감은 자연(나무)를 향하고 정신은 추상을 향해 나아간다. 물질세계가 계속 새로운 물질로 바뀌어가는 것처럼,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어린 육체도 바뀌었을 터이다. 하지만 지속되는 기억 속의 인간(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명료해진다. 명료성은 기학학으로 분명한 선들로 드러난다. 선들은 어린시절 그가 평양, 양부모 집안의 큰형이 경영하던 서점에서 보았던 로트렉이거나 후앙 미로일 수 있다. 성화된 육체는 60년대 비틀어지고 왜곡된 탈성화된 육체의 극복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 1978, 위 그림>을 보면 정신도 육체를 따라 평화에 접어든 듯 하지만, 그 보다 후에 그린 <인간, 1985, 위 위 그림>에서의 인간은 여전히 악마적/갈등적이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황용엽의 1978년(1970년대)의 그림에서 마주보고 대화하는 인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내 이웃을 용서하라"는 말씀에 따라 다른 사람(타자)에 대한 용서이거나 소통을 시작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항상 들여다보고 있는 자기의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악마성(전쟁과 살육의 기억들과 같은)에 대해서는 용서/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1985년의 <인간>은 작가의 자화상이 된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표현은 철(금속)에서 나무로, 또 몸을 둘려싼 신화적(성스러운)인 천으로 감싸 안은 몸/육체로 변화한다. 자연은 바뀌어도 인간은 잘 바뀌지않는다. 아니 인간은 바뀔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연/물질은 모든 것을 잊지만(기억 자체가 없고 물질적/물리학적 운동뿐이겠지만), 인간은 물질 세계가 만들어낸 사건들을 만나 그것을 기억을 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 기억 속에서 변화하는 세계를 넘어서는 주체/자아/정체성(identity), 또는 개체성을 획득한다. 기억을 가진 인간은 누층적이고 과거와 미래가 현재 속에 함께 의미를 가지고 존재한다. 기억을 못할지라도 우리의 현재 속에는 과거가 꿈틀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기운을 느끼는 감수성이 남다른 사람들, 또 충격적 사건에 휩말려 감당못할 의미(회의)의 폭풍 속에 빠져든 사람들에게 그 기억의 존재는 어떤 것일까!



위에 있는 <인간, 1984>에서 작가의 새로운 변화를 볼 수 있다. 짓이기기(60년대)에서 섬세한 붓터치(70년대)로, 이번에는 붓을 뿌려 세계의 운동성을 표현한다. 그런데 그 운동은 구멍이 숭숭난 바위(현무암?)와 같다. 날까롭거나 모나지않고 둥글둥글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시멘트 같은 질감이다. 또 이 운동성은 바위 속에 새긴 정지된 운동성일 수도 있다. (부동의 동자인) 정신에 새겨진 영원한 운동말이다.
아래 1983년 그림에서 우린 나무도 갖게 된다. 갖는다기 보다 이 세계에 우리와 함께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떠난 곳을 언제나 가득 채우는 녹색의 생명(나무)조차도 쇠붙이에 눌려 인간처럼 일그러진 듯하다. 녹색의 산과 들, 대지와 바위 위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듯한 사람도 출현한다. 흰옷에 머리를 질끈 묶은 것으로 봐서 어린시절 보았던 고향의 농부일 수도 있다. 생명은 약동하고 세계와 인간이 함께 변한다. 그래도 앙상한 육체, 웃음이 얼굴에 깃들었어도, 마음이 즐거워도 과거는 우리 육체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육체와 정신 사이 어디에서!



그때 황용엽은 평화를 되찾으려는 그 육체와 정신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만났음에 틀림없다. (아래 그림을 보면) 그 만남은 엘 그레코의 그림처럼 보인다. 뻗어올라가 기둥과 높이 치켜든 두손, 회색빛 하늘에서! 아니면 프란시스 베이컨을 뒤틀린 육체, 척추가 없는 살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과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세계(다른 인간을 포함한)와의 불화를 넘어설 수는 없는 걸까! 억압된 것들의 회귀일까! 다시 한번 기억은 누층적이고, 기억은 물질로, 그림으로 물화된다. (힘든) 기억은 (억누르는, 또는 평화를 바라는) 정신을 뚫고 나와 이 세계 속에서 '즐거워하는' 황용엽의 육체를 통해 표현되고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기억은 과거 함께 현재, 그리고 미래와 맞닿아 있기에 항상 다른 얼굴일 수도 있다. 기억은 지속되면서도 항상 새로운 것이 된다.






위에 있는 <옛이야기, 1995>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화면 제일 위로 산과 같은 곡선이 어어진다. 십장생에 나오는 산 모양, 위 아래로 3개씩 있는 모로 서있는 사각형과 그 안의 무늬들, 그 사각형을 있고 있는 밤색의 선들은 좀 더 안정적이고, 한국적이다. 또 기형적이지만 나무들도 좀 더 자랐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뛰어간다. 누적된 기억 안에는 항상 고달프고 피하고 싶은 것들만 있는 것는 아니다. 그 기억의 더 아래쪽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쌓인(체험한) 즐거운 것도 있었을 것이다. 누적된 기억과 변화된 세계/현재가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고, 기억은 새롭게 배치된다. 황용엽의 인생 여정을 볼 때, 인간에게 구원의 힌트는 과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날>에서는 좀 더 민화적이고 한국적인 산, 개나리꽃이 가득 핀듯한 들과 나무가 등장한다. <옛이야기, Old Story, 1995>에는 붉은 꽃이 피고 그 나무 위에서 새가 울고 있다. 옷감에 놓인 수처럼 꽃과 나무, 새는 좀 더 장식적이다. 대지는 푸르르고 원색의 생명들이 넘실댄다. 황용엽은 나이가 들면서 아련한 기억의 저편에 자리한 '옛 이야기' 속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고향은 기억 속에만 있으며 지금도 갈 수 없는 곳이다. 아래 <고향 가는 길, On the way to hometown, 1995>은 기억 속에서 신화화된 물질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불로초와 닭 등으로 표현되는 영험성 또는 문화적 기억으로서의 역사성, 작은 흰색 천조각을 걸친 신화화된 육체, 슬픔게 쳐다보는 커다란 외눈(왼쪽)의 사람은 지친듯 엉덩이를 대지 위에 두고 쉬고 있고, 다른 두 사람은 나무를 둘러싸고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간절히 갈구한다. 휴식과 갈망, 두 그림이 하나의 액자 안에 그려져 있다.

항상 흘러가버리는, 변화하는 물질 세계 속에서 변화지않는 것, 무엇인 인간을 담으려고 하면서 황용엽의 그림은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흐르고, 인간을 포함한 사물들은 부자연스럽고 기형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동적인 세계를 정적인 그림 안으로 끌고들어오려는 시도는 언제나 기형적인 것은 아닌까! 현재의 재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형화되기 마련 아닐까! 기억이 그런 역할을 한다면, 또 그 기억이 만든 정체성들이 그렇다면 ...... 우린 기억과 물질세계 사이 어디쯤에 서있어야 할까!



황용엽 인터뷰 - TV미술관, 1992.4.10 (KBS)
"사실은 이런 것이 하나의 괴로운 기록이죠. 그리고 일기라고 해서 그날그날의 사건을 말하는 일기가 아니고, 전체적인 묶음 말하자면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주기적으로 변화해오는 크게 봤을 때의 일기지. 그저 남과 같이 일상생활에 대해서 평범한 이런 것만 가지고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건 아닌가?"

황용엽 인터뷰 - EBS미술관, 1993.9.19
"너무 어둡고 너무 처절하고 이런 것들이 지속하여 왔는데 최근에는 그런 것을 좀 멈추고 좀 더 새로운 좀 더 긍정적인 무언가 이제까지 살아온 것보다는 앞으로 사는 것이 짧지마는 어떤 환희 또는 내가 고향에 갈 수 있는 또는 고향에 가서 가족 혈족을 만날수 있는 이러한 것들을 ... 여러번 죽음 앞에 부딪히는 일이 있었고 또 상대를 제가 죽이지 않으면 제가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죽음의 고비랄까 극한상황 이런 것을 여러번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적 기억은 지속의 한 형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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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23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_황용엽, 인간의 길을 본 후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읽으면서 느낀, 그런 풍으로 스케치를 시도했다. 23일 시작해 30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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