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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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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246건
  1. 2020/01/16 유튜브와 매스미디어 -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공감'에 대해
  2. 2020/01/10 우린 구름 속에 집을 짓기로 했다 - SBS.CO.KR Digital Transformation
  3. 2020/01/10 Beyond Platform, Contents is the platform! - Tpod
  4. 2019/12/06 차이와 반복 - 이지플러스 vs. 오케이캐쉬백(OK Cashbag), POOQ vs. WAVVE ...
  5. 2019/10/08 <스피노자 서간집, 아카넷, 이근세 옮김, 2018>을 읽으며
  6. 2019/08/29 레닌 : 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들뢰즈식) 주석
  7. 2019/08/27 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들뢰즈식) 주석
  8. 2019/07/17 사업/서비스를 위한 메모들
  9. 2019/07/15 기술지대, 테크놀로지와 문화 그리고 우리의 삶
  10. 2019/07/11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읽기 - 상상력과 스토리, 그리고 공감
  11. 2019/07/10 그리스 연극에 대한 관심 - 어떻게 공동체를 묶어낼 것인가? (또는 어떻게 사회를 보호할 것인가!)
  12. 2019/07/02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
  13. 2019/07/02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읽으며 - TV, 공화국을 위한 시민종교
  14. 2019/06/28 사적인 것의 사회적인 것으로의 변환 - 아이스테시스: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을 읽으며
  15. 2019/06/27 인터넷과 TV의 연결/배치에 관하여 (미디어의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16. 2019/06/25 스토리텔링과 '지옥문을 연' 인터넷
  17. 2019/06/19 뉴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 - 업의 본질에 대한 사유, 그리고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18. 2019/06/17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린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19. 2018/01/04 미디어 탐구, mass media vs. personal media
  20. 2017/11/20 인공지능과 데이터에 대해 - 2017 솔트룩스 컨퍼런스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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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튜브와 방송사가 다른 길을 가기를 원한다. 콘텐츠 내용에 있어서, 그리고 도달하려는 시청자(이용자)의 범위에 있어서 그렇다. 분산된 컴퓨터의 네트워크 환경에서 태어난 인터넷은 그 자체로 (파편화된) '조각보들'의 모임이다. 울긋불긋하고 자유롭다. 그 안에서 새로운 감성이 자란다.

새로운 감성, 자유, 다양성, 민주적 의견 등등. 이것은 다른 어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사람이 완전하지 않기에 나타나는 편향들이다. 쪼개진, 그러면서 강하게 연결된 확신에 찬 'SNS의 Peer Group'들, 카톡의 단톡방을 보라.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 인간적인 한계에 대한 이야기들, 드라마(원래 사건이란 뜻이다)가 필요하다. 그 인간적 한계에 대한 공감 위에서 다원성이, 다른 의견들이, 다른 감정/정동들의 집단들이 드러나기를 원한다. 그것이 안될 때, 이곳을 지옥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하자. 나는 무한을 믿지만, 그것이 유한한 나를 성숙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믿는다. 안셀무스(11세기 후반 캔터베리 대주교, Anselmus, 1033-1109)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해하기 위하여 믿는다(Neque enim quaero intelligere ut credam, sed credo ut intelligam)." 그 자체로 유한한 '인간의 산물'이 무한성을 주장할 때, 우린 어떻게 될까!

2012년 2월 월간 web에 나온 <유튜브 - 매스미디어 '공감'론 vs 유튜브 콘텐츠의 무한 가치>이다. (아랫쪽에 pdf 파일 있음) 인터넷으로 먹고 사는 내가 공감을 이야기하고, 방송을 하는 뮤지션인 남궁연씨가 '유튜브'를 이야기한다. TV도 웹도 함께 있기에 서로 외면하지 못하고 '공진화(co-evolution)'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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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 매스미디어 '공감'론


대중과 공감


방송사는 매스미디어다. '매스'의 핵심은 공감. 미디어는 공감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시대상을 반영한다. 중세 시대는 종교로 인해 공감의 매개가 사람이 아닌 신과의 관계로 이어졌고 근세로 넘어와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오랜 전쟁을 겪으며 16~17세기 유럽 철학자들은 공감, 감정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의 매스미디어도 대중적인 공감에 의존한다. 지상파의 경우 한 번에 100만 명을 상대하는데, 100만 가구는 시청률 10% 정도 해당한다. 근대적 매체가 중세 시대의 종교 역할을 대신하는 셈이다.

최근 공감에 대해 생각하다가 김수현 작가의 작가주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양성애자가 나오는데, 누군가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 당시 SBS 로비에는 이 때문에 시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인터넷 카페도 만들어질 정도 였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매스미디어가 숨어 있는 감정, 정서를 조장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시대의 감수성을 키워내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최근 '천일의 약속'이라는 드라마에는 전형적인 두 명의 여인이 나온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여자를 사랑하는 아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어머니와 자신의 딸과 파혼하게 돼 열 받은 어머니. 이들은 각각 이성적인 사람과 감성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고, 작가는 이성적인 사람 편을 들라고 계몽하는 듯하다.

예전에는 그런 정서를 그냥 받아들였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느끼는 것을 표현하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만큼 매스미디어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문제도 있다. 서로 다른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하나의 공감을 끌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네덜란드 철학자 스피노자는 인종을 나눌 때, 똑 같은 사물을 보고 똑 같이 느껴야 같은 종이리고 피력했다. 이는 네덜란드가 스페인과 80년 동안 독립 전쟁을 한 데 연유한다. 우리나라는 같은 사물, 사건을 보고 다양하게 느끼는 것이 다양성이고 민주적이며 창의적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양성의 저변에는 가장 기본적인 공감이 있어야 한다. 도덕적 잣대가 필요한데, 그 잣대를 만들어내는 것, '매스미디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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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와 방송국은 각기 다른 길을 갈 것

유튜브는 다양한 정보와 특정 사건, 오브젝트를 포괄한다. 파편화된 개인의 다양한 공감('정동')이 담겨 있다. 반면, 그것을 하나로 만들어내는 역할은 매스미디어가 한다.

(여기서 그것은 파편화된 상태로 존재하는 개인이 아닌, 사회/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개인/사람이다. 사람은 개인으로 존재할 수 없고, 사람이 되는 순간부터 사회적이다. 사회/공동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이런 질문이 깔려있다. '도덕적 잣대' 보다는 공감의 인간적 토대, 관용의 토대, 아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

현재는 공감과 사회 문제 면에서 특정한 정서가 너무 많다. 이는 사람들이 각각으로 쪼개짐을 의미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기존에 존재한 감정을 끄집어내는 것 뿐 아니라 전달할 때 그것을 존중하는 마음까지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은 있어야 하니까.

(마음을 전하는 것은 도덕책이 아니라 스토리이다. 구체적인 상황 속에 구체적인 인물들이 겪는 사건들의 연속에서 우린 '사회화된 어떤 것', 생물학적인 기반 위에 있지만 '인간적인 어떤 감정/정동 - 공감'을 느낀다. 생물학적 기반은 인간이라는 종적 기반, 인간에 있어서는 모두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어떤 것, 진화과정에서 만들어졌고 지금도 바뀌고 있지만.)

그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유튜브는 유튜브니 나름의 길이 있고 매스미디어는 그 나름의 길이 있다. 최근 유튜브는 프리미엄 콘텐츠를 시도하고 있다. 2005~2006년 UCC 열풍이 불면서 프리미엄 콘텐츠를 장악하고 방송사가 무너질 것이라고 얘기했는데, 지금도 그 얘기가 똑같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방향, 가치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현구조에서 방송사가 프리미엄 콘텐츠를 내주진 않을 것이다.

드라마를 제작하는 데 보통 50~60억의 제작비를 소요하고, SBS 사이트에서 동영상 광고로 50억 정도 수익을 낸다. 제작을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본다면 방송사업은 '퍼스트 윈도'(TV)에서 무조건 제작비 이상 적어도 같은 수익이 나와야한다. 만일 SBS가 유튜브에 방송물을 만들어 올리면 그 정도 매출이 있어야 하느데 그에 못 미친다. 개인적으로 유튜브는 프리미엄 콘텐츠의 보완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오픈 플랫폼이기 때문에 저작권 문제가 남아 있다.


(8년 정도 지난 지금은 얼마나 들까. 2배는 족히 되는 듯하다. 그 사이 방송사의 매출은 많이 떨어졌다. 이젠 이삭이라도 줍듯, 아니 그것이 다인듯 생각하면 유튜브에 기대하고 달려든다.)

어떤 제작자도 마찬가지겠지만, 자신의 콘텐츠를 조각내서 임으로 사용하거나 원래 의도를 비트는 행위를 좋아하지 않는다. 유튜브는 아직 그런 마인드가 부족하다. 콘텐츠 제공자에 대한 존중. 보편타당한 감성과 공감. 콘텐츠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수반해야 한다.

(제작 자체를 이런 목적으로 하려는 회사가 있다. 이를 위해 수천억 원을 모았단다.)





◀ 기사 (책상을 정리하다가 다른 메모더미 속에 끼어있는 것을 1.14일 찾았다.)


오늘(2020.1.16일) 이런 기사를 페북 친구가 공유해 놨다. <지상파도 콘텐츠 유튜브 몰아주기... 네이버・카카오의 생존법은?>. SMR을 만들고 네이버의 협상파트너로 나왔던 그분의 한마디. "지난 5년이 의미있는 변화를 낳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다시 5년이 흐른 후에 살펴보자. 변화의 의미는, 변화하는 순간 잡기 어려운 법이니. 우리가 발생해 작동중인 어떤 변화를 우리의 틀에 넣어 보지 못했을 수도 있으니. 그 변화가 우리 눈 앞에 있어도 우리가 어떻게 보겠는가! 우리가 (보고싶어 - 의지가 중요하다!) 떠낸 것만 보이니...

우리의 운명을 우리도 알지못한다. 또 그것을 알고 피하려할 때, 갑작스럽게 덮쳐 우린 꼼짝못하게 하는 것이 운명이다. 그것을 보며 주저하지않고 나아가기를, 니체의 짜라투스트라처럼! 운명을 사랑하며 ...
2020/01/16 11:15 2020/01/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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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구름 속에 집을 짓기로 했다(2016년). 멋모르고 시작해 4년이 지났다. 지난해 동아 비지니스 리뷰(DBR)에서 클라우드 특집을 준비했고, 그때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 내용과 AWS Summit Seoul 2016 발표내용이다. 클라우드 이전은 처음 2년정도 생각을 했다가, AWS 발표에서는 3년 목표로 제시했다. 작년 4년이 지났고, 올해 DB 이전 등 아직 좀 더 할 일이 남았다.

클라우드를 이용하는 몇 가지 방식 중에 우린 Plan A에 해당한다(아래 그림). 시간을 가지고 조직/문화, 일하는 방식을 함께 바꾸기로 한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에 하던 일, SBS.CO.KR 에이전시에서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클라우드 이전을 하면서 두 가지 새로운 사업기회를 잡았다.
  • 티팟(Tpod) : OVP(Online Video Platform)를 OAP(Online Audio Platform)로, mp4 파일을 mp3 파일로 바꾼 것이다.
  • OVP : 방송사들에게 우리가 구축한 방송사 홈페이지용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한는 것이다.
기회(virtuality, 잠재성)는 기회일뿐, 그것 자체로 현실(actuality)이 되지않는다.  사람들의 노력과 행동이라는 양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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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체득한 Plan A, B, C를 고상한 업계 용어로 바꾸면 이런 식으로 된다. 최근에 OVP 사업을 해보겠다며 정리한 자료다. Plan A는 Replatforming, Refactoring을 하는 것이고, Plan B는 Rehosting 정도이다.

여기에 내부 조직과 일하는 방식을 바꾸면서 할지, 아니면 아웃소싱으로 할지 정도의 방법(누가할 것인가) 상의 차이가 있다.

이제 우린 구름 빵/집을 팔아야한다. 우리가 (콘텐츠회사가 아닌) 기술회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SBSi의 미래: 3가지 길을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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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WS Summit Seoul 2016 발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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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R 280호(2019.9월)에 <데이터센터를 클라우드에 복제하면 끝? 넷플릭스는 준비하는데 7년 걸렸다>란 제목의 인터뷰 내용이다. 전체 기사는 DBR 사이트를 방문하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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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2016년 국내 방송사 최초로 클라우드 전환을 했는데 그 배경이 궁금하다.

SBS가 인터넷 사업을 시작한 게 1990년 말이다. 회사 인프라가 만들어진 지 20년이 넘었다. 말 그대로 ‘레거시(legacy)’가 된 시스템에서 10∼20년 된 장비들을 가지고 동영상 서비스를 해왔다. 너무 오랫동안 이사를 안 하면 집 구석구석에 어떤 짐이 박혀 있는지도 잘 모르고 필요할 때 찾기도 힘들지 않나. IT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인프라가 오래되다 보니 적재적소에 활용하기 힘들뿐더러 1년에 한두 번 대형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마다 SBS 웹이나 앱에 떼로 밀려드는 시청자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10시 황금 시간대에 시청률 20∼30%대 인기 드라마가 나오기라도 하면 11시 무렵 본방이 끝나자마자 VOD 다시 보기를 이용하겠다고 달려드는 접속자 때문에 페이지 장애가 생기기 일쑤였다. 특히 영상이 안 뜨거나 버퍼링이 심할 때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대부분 뜰 때까지 클릭을 무한 반복하기 때문에 시스템이 과부하되곤 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은 또 어떤가. 몇십만 인구가 동시 접속해 있다가 경기가 끝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또 다른 10만여 명이 하이라이트 영상을 돌려보겠다고 사이트를 찾는다. 경기 때문에 결방하는 인기 예능이나 드라마라도 있으면 “스포츠 싫다” “예정대로 방영해 달라”는 항의하려 시청자 게시판에 로그인한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이처럼 특정 기간에 정점으로 치솟는 트래픽을 감당하지 못했고, 1년에 서너 번은 사이트가 못 버티고 먹통이 됐다. SBS만의 문제도 아니었고, 이런 상황이 20년 가까이 반복됐기에 모두 사고를 당연하게 여겼다. 그러나 OTT(Over The Top) 서비스가 트렌드가 되고 유료 이용자가 예상보다 많아지면서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그래서 외부의 초고성능 시스템을 빌릴 수 있는 클라우드를 찾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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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클라우드 전환 이후 대규모 접속이나 대용량 비디오 처리가 수월해졌나. 

원래는 장비를 사서 자체 데이터센터에 넣어놓고 썼다면 이제는 클라우드에 있는 시스템을 ‘월세’ 내고 쓴다. 구독 모델로 바뀐 것이다. 그 결과 말 그대로 서버가 사라지는, ‘서버리스(Serverless)’ 환경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AWS가 그때그때 우리가 원하고, 필요로 하는 만큼 자동으로 서버를 늘려주기 때문이다. 2016년 이후 한 번도 새로 서버를 산 적이 없다. 이런 신축적인 환경의 이점은 리우올림픽, 평창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러시아월드컵 등 대형 이벤트가 열릴 때 빛을 발했다. 가령, 과거에는 서버가 50Gbps 정도의 트래픽을 수용할 수 있는데 대형 스포츠 이벤트에서 그 3배 용량인 150Gps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미리 몇십 대의 서버를 임대하거나 추가로 돈을 내고 구매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진짜 시청자가 그 정도로 몰릴 것이냐, 트래픽이 과연 3배까지 늘어날 것이냐를 입증해야만 예산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흥행 여부는 누구도 장담하기가 어렵지 않나. 불안하니까 머뭇대고 결정을 미루다가 실제 그 정도 예상 트래픽이 발생하면 시스템이 결국 죽었다. 이게 일상이었다. 지금도 클라우드 전환을 안 한 회사들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최소한 아마존의 인프라 한계까지는 무한히 서버를 늘릴 수 있다. 클라우드 전환으로 서비스 품질이 개선되고 고객 만족도도 높아졌지만 사실 직원 만족이 더 크다. 원래는 서버가 다운돼서 페이지가 안 뜨면 직원들이 밤늦게 회사로 뛰어나가서 문제를 파악하고 고쳐야 했다. POOQ 서비스를 운영할 때는 혹시나 문제 생길까 노심초사하며 2년간 매주 주말에 출근한 적도 있다. 안정적 서비스와 편리한 UI/UX를 기대하는 고객과 경영진에게 장비 탓, 환경 탓을 할 수는 없지 않나. 사용자가 외면하면 결국 시스템이 아닌 우리 책임이다. 클라우드는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인 선택지였다.


Q. 기존 시스템이 불안정하고 노후화한 것을 모두가 당연시해 왔는데, 변화를 결심한 계기는.

방송 서비스를 개선하려면 지난 20년간 썼던 장비들부터 우선 버려야 했는데 이를 위해 새 장비를 구매하는 것도 전부 돈이었다. ‘디지털은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이 만연한데 누가 이익도 못 내는 적자 사업에 선뜻 비용을 지급하겠나. 새로운 서버 2∼3개만 사려 해도 1000만∼2000만 원은 들고,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600개가 넘는 장비를 교체하는 작업은 10억 원이 넘게 드는 대공사였다. 결재받기부터 쉽지 않았다. 2014년 외부 컨설팅을 의뢰했던 IBM도 장비 노후화를 SBS의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지만 새 장비를 살 수가 없으니 꾸역꾸역 성능도 낮고 전기도 많이 먹는 기존 시스템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 SBS를 떠나 2012∼2016년 지상파와 종편 등의 동영상을 서비스하는 POOQ과 SMR에서 일했다. SMR에선 네이버TV 등에 지상파부터 종편, tvN 등 케이블 채널에 이르는 하이라이트 클립 영상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송출하는 게 주된 업무였다. 그런데 여기는 신생 회사다 보니 레거시 시스템이 없었고, 새로운 시스템을 힘들여 구축하는 대신 처음부터 클라우드를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AWS, KT 클라우드 등 다양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이 바탕이 돼 2016년 SBS에 돌아온 뒤 ‘새 장비가 필요 없는 클라우드로 가자’며 클라우드 이전을 추진하게 됐다. 서비스 개선은 해야겠고, 이게 장비 교체보다는 그나마 돈이 적게 드는 방법이라 판단하고 시작했다. 그리고는 개발자들이 마음껏 클라우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1년간 1억 원 한도의 신용카드를 만들어줬다.


Q. 새 서버가 필요 없는 ‘서버리스(serverless)’ 환경이 가지는 이점은.

한 예로, 이전에는 옛날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 종영된 작품 홈페이지를 다 열어놓기가 어려웠다. 사이트 개편 한 번 할 때마다 예전 프로그램 다시보기 영상 등은 최신 1년 치만 남기고 다 닫아버렸다. 과거 프로그램 데이터에 새로운 데이터가 더해져 트래픽 용량이 늘어나면 서버를 추가로 구매해야 하니 항상 비용 문제가 걸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클라우드 전환을 하면서 이미 종영된 작품 홈페이지들을 다 복원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과거 영상 아카이브를 무료로 풀었더니 시청자 트래픽도 늘고 자연히 광고 매출도 증가했다. 이른바 ‘롱테일 현상(long tail theory)’ 이 나타난 셈이다. 2016년 클라우드 전환 이후 시스템 비용은 그대로인데 사이트 매출은 2배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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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016년부터 새로운 서버를 구입하지 않다 보니까 현금흐름이 매우 좋아졌다. 신규 장비 구매비가 2015년 11억6000만 원이었는데 2018년에는 1억 원 수준으로 줄었다. 원래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 사용료로 매년 약 5억 원가량을 썼는데 클라우드 이전이 완전히 끝나면 이 사용료는 100% 없어지게 된다. 클라우드는 유지보수 비용도 필요 없다. 신규 장비 구매와 데이터센터 운영비용을 최소화함으로써 투자 위험 없이 대규모 서비스 구성과 개발이 가능해졌다는 의미다. IT 인프라 감가상각 비용도 계속해서 떨어질 것이다. 차근차근 클라우드 이용 범위를 넓힌 결과 지난해 SBS의 TV 프로그램과 스포츠 빅 이벤트 서비스를 클라우드로 모두 옮겼고, 올해 초 라디오 프로그램까지 끝마쳤다. 연말이면 골프나 증권 등 케이블 채널의 클라우드 이전도 완료할 것 같다.


Q. 갑작스러운 업무 방식 변화에 따른 진통은 없었나.

어려우니까 4년째 아직 진행 중인 것이다. 넷플릭스의 경우 클라우드 이전에 꼬박 7년이 걸렸다. 클라우드로 전환한다는 게 단순히 AWS가 제공하는 서버나 스토리지 등 물리적인 인프라만 활용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사실상 모든 기술을 재구축하고 운영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고된 작업이다. 기존 시스템에 적응해 있던 사람들의 업무 방식과 조직문화를 바꿔야 한다. 원래 데이터를 클라우드로 그대로 옮기는 것은 기존 데이터센터가 지닌 한계점과 문제까지도 고스란히 답습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좋은 인프라가 있어도 그 이점인 ‘확장성’과 ‘유연성’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조직이 준비돼 있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

그래서 AWS는 우리에게 서비스를 빠른 속도로 혁신하기 위해 개발과 기획, 운영을 통합하는 ‘데브옵스(DevOps)’ 조직을 제안했고, 한꺼번에 다 바꿀 순 없으니 진취적인 ‘관종(관심종자)’ 몇 명과 함께 우리 상황에 맞는 새로운 조직을 실험해 보기로 했다. SBS콘텐츠허브만 해도 직원이 120∼130명은 됐기 때문에 그동안의 업무 방식을 다 뜯어고치자고 하면 실패 확률도 높고 내부 반발도 심할 것 같았다. 직원들도 낯설고 손에 잘 안 익는 업무를 굳이 시도하려 하진 않았다. 이에 따라 조직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기보다는 새로운 것을 먼저 하고 싶어 하는 개발자들을 선별했다. 자원자가 3명이면 일단 3명의 데브옵스 조직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이 적응하면 새로운 데브옵스 조직을 만들어 새끼를 치는 방식으로 참여 인원을 늘려나갔다. 일종의 ‘다단계’ 내부 학습 틀을 만든 셈이다.


Q. 조직문화는 어떻게 달라졌나.

이전까지는 고객이 불편을 느끼는 지점을 발견하는 기획자 따로, 실제 그 불편을 해소하는 개발자 따로,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운영자가 따로 있었다. 부서가 다르면 소통을 문서로 하니까 프로세스가 느려졌고, 성과평가지표(KPI)가 달라 업무 우선순위도 제각각이었다. 연말 인사에 따라 우선순위가 정해졌다. 그러다 보니 고객 요구나 콘텐츠 환경 변화에 맞춰 부서를 초월해 협업하고, 서비스를 빨리빨리 업그레이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포털이 정해준 고객 여정에 따라 콘텐츠가 소비되는 한국 상황에서 포털로 가는 트래픽을 일부라도 흡수하고, 우리 스스로 고객 여정을 만들어내려면 사이트가 편리해져야만 했다. 네이버 메인화면에 방송사와 메이저 신문사 콘텐츠가 다 있는데 왜 굳이 불편한 각각의 방송사, 신문사 사이트를 찾겠나. 불편을 파악하는 사람과 해결하는 사람 사이의 소통이 안 되고 장애가 일어나면 책임 소재를 떠넘기기 바쁜 기존 칸막이 구조로는 서비스 개선이 요원했다.

직원들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자리 배치부터 바꿨다. 기획팀, 개발팀, 운영팀끼리 나뉘어 있으면 같이 뭉치질 못하고 동상이몽이니까 직군별 구분 없이 데브옵스팀을 만들어 모두 한 공간에 모아두기로 한 것이다. 프로젝트마다 개발자, 운영자, 기획자를 각 1∼2명씩 붙이고 3개월마다 헤쳐 모이는 식으로 운영했다. 이렇게 3개월마다 자리 이동을 하다 보니 직원들도 짐 싸는 게 일이었다. 그래도 다 적응하더라. 프로젝트 단위로 사고하고 짐 싸는 데 익숙해진 게 가장 큰 변화다. 


Q. 클라우드 전환 이후 서비스 개선 속도가 빨라졌나.

그렇다. 단순해 보이는 홈페이지 개편 작업만 해도 사실 여러 선수의 협업을 요구한다. 방송이 끝나면 VOD 파일을 올리거나 짤막한 하이라이트 클립과 섬네일 이미지 등을 만들어 입력하는 운영자가 있어야 하고, 홈페이지의 전체 구조인 템플릿을 짜는 기획자, DB에서 데이터를 추출해서 뿌려주는 개발자, 페이지를 사용자 눈에 보이게 구현하는 코더까지 누구 하나 빠져서는 안 된다. 그런데 예전에는 기획자가 사이트를 편성한 뒤 개발자에게 맡기는 식으로 절차가 나뉘어 있었다면 이제는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속도가 훨씬 빨라졌다.

무엇보다 클라우드 환경에서 ‘마이크로 서비스 아키텍처(micro service architecture)’를 구현한 게 속도를 높인 비결인 것 같다. 마이크로 서비스란 매번 애플리케이션 전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영역별, 기능별로 최대한 쪼개놓고 개발하는 방식을 말한다. 모든 서비스를 레고블록처럼 조각조각 낸 뒤 비행기가 필요하면 비행기를 조립하고, 자동차가 필요하면 자동차를 조립하는 것이다. 이렇게 쪼개놓으면 개발을 담당하는 조직 크기도 작아지고, 의사결정이나 서비스 업데이트도 수월해진다. 이런 마이크로서비스의 성패는 결국 개발자들이 얼마나 많은 레고블록, 즉 API 4 들을 만들어놓느냐에 달렸다. 그런데 우리는 10대, 20대, 30대 등 연령대별 콘텐츠 추천 API, 남녀 성별에 따른 콘텐츠 추천 API, 드라마·예능 등 프로그램 유형별 콘텐츠 추천 API, 이런 식으로 블록을 아주 많이 만들어 놓았다. 코더들은 이 블록을 조립만 하면 되니 홈페이지를 개편하고 개인 맞춤형 추천 기능을 강화하는 작업이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Q. 지난 4년간 클라우드 이전 과정에서 느낀 점은?

SBS는 클라우드 전환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추진할 수 있었다. 통신비는 20∼30% 절감됐고, 시스템 인프라 비용도 40∼60% 줄었으며, 신규 서비스나 디지털 기술에 투자하던 비용도 20% 정도 아꼈다. 개발 결과물을 공동 사용하면서 SBS, SBS미디어넷, 골프닷컴, 스포츠 빅 이벤트 사이트 등이 함께 성장하는 등 규모의 경제도 누렸다.

그러나 이 과정이 절대 녹록지 않았고, 도중에 떠나간 인력들도 있었다. 사실 클라우드 전환 자체는 돈만 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마치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고, 더 큰 땅을 갖게 되는 것과 같다. 남이 이사를 대행해주면 옮겨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다. 그러나 새로운 집의 구조와 땅 주위의 환경을 익히지 않으면 막상 이사해도 자기 집에서 헤매고, 제대로 농사짓는 경작법도 모른 채 그 가치를 누리지 못한다. 가령, AWS에도 펀딩 프로그램이 있어서 얼마 이상 서비스를 이용하면 기존 데이터센터에 있던 데이터들을 그대로 클라우드에 옮겨주기도 한다. 이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방송사도 있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간의 업무 방식을 바꾸고, 구석에 처박혀 있던 장비와 데이터를 정리하고 버릴 건 버려가면서 해야 한다. 무조건 클라우드에 복제만 해놓는다고 갑자기 데이터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게 되고, 서비스 속도가 빨라지고, 비용이 절약되는 건 아니라는 점을 나도 경험을 통해 배웠다.


클라우드 이전 및 성과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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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10 16:28 2020/01/1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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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OD Launch Press Conference를 했다(2019년 9.26일). 티팟은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이다. 실시간 방송과 팟캐스트형 스트리밍을 제공한다. 준비과정을 거쳐 출시까지 1년 정도 걸렸다. 행사를 앞두고 페북에 포스팅한 내용이다.

Tpod Lunch Press Conference ~

지난해 말 시작해 올 5월 베타서비스를 시작한 티팟이 정식 런칭합니다!

15개 방송사, 30여개 라이브채널, 100여개 프로그램 에피소드를 담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방송사와 채널이 개설될 겁니다.

티팟서비스는 네이버 클로버, SKT 누구, 삼성전자 빅스비와 티팟앱, 참여 방송사 홈페이지/앱 등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사이 몇 개 방송사(채널)가 더 참여했고 SKT 누구(AI스피커)와 삼성전자 빅스비 캡슐로도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사용자도 느리지만 조금씩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티팟의 수익모델은 음성광고이다. 그 음성광고를 하는 플랫폼 이름은 "나는 미쳤다 - IM'AD". 회사이름인 SBS I&M에서 'IM"이 왔다. 티팟도 사이트명은 imtpod.com이다.

아래 글은 
컨퍼러스에서 내가 한 말이란다. 전달하려고 했던 내용을 잘정리했다고 생각되는 기사 일부를 따왔다. 

이들을 뭉치게 한 이유는 역시 ‘비용’이다. 티팟 사업을 총괄하는 SBS I&M 박종진 실장은 “라디오 서비스 ‘고릴라’를 10년 넘게 해오다 보니 오디오 플랫폼이 늘어나는 게 꼭 매출 증대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더라”라며 “오디오 시장이 커진다는 뉴스가 있지만, 실상은 플랫폼 증가가 구독자와 매출 증가라는 선순환이 아니라 오히려 비용 증가 속도가 더 빨랐다”라고 설명했다.

오디오 플랫폼 참여자가 늘어나면서 거의 완전 경쟁 시장으로 바뀌었고, 방송사도 이에 대응하려다 보니 비용이 증가만큼 수익이 늘지 않아 오히려 총수익은 하락하는 상태에 직면한 것이다.

박 실장은 “플랫폼을 만들어 같이 하자는 건 효율성을 확보하자는 것”이라며 “플랫폼 범위 확대에 버금가는 규모의 경제를 만들어 보자는 데까지 (파트너들과)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십시일반 해 비용을 크게 줄이는 것, 그게 단기적인 티팟의 목표라는 이야기다.

박 실장은 “티팟은 서비스를 확장하기 위한 베타 서비스의 실험실이라고 생각한다”며 “우선은 커넥티드 카에 서비스를 시작하려면 앱의 형태가 있어야 연동이 되기도 하고, 여러 새로운 서비스를 해보기 위해서는 누군가 한번은 (실험을) 해봐야 하는데, 이는 결국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송사가 해야 할 일이므로 그 역할을 하러 티팟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티팟은 방송사가 가진 모든 프로그램을 오디오화 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종국에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반 크리에이터도 합류하게 한다는 비전을 공개하기도 했다. 박 실장은 이를 “플랫폼 사이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이 저희 목표”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기사 전문은 <방송사의 오디오 실험은 성공할 수 있을까?>를 보면 된다.

우린 오랜 동안 '콘텐츠 플랫폼'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또 방송 동영상 콘텐츠에서 POOQ이나 SMR 같은 경험이 있다. 오디오 서비스에서 변주가 티팟이다.  그래서 새로울 것이 없다. 뭔가 차이가 있지만 우린 어떤 반복을 하고 있다.


또 언제든지 오디오가 비디오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플랫폼은 손님을 가리지않는다. 손님을 콘텐츠(형식/형태, 내용)라고 하자. 그리고 플랫폼(팟빵이든 네이버든, 스피커든)을 가리지않는다. 이런게 POOQ이나 SMR과의 차이가 되었으면 한다. 명예욕이나 '패권주의'가 없는, 하나의 기능을 수행하는 개방/기술-기계말이다. 물론 상대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꼭 필요한 기능(function = utility)가 된다면 ....

우린 이동이 용이한 '매끈한 공간'을 만들고, 하나의 옷(사업모델, 돈 버는 법 - 홈파인 공간)을 만들려는 것이다. 이렇게 하려면 사용장소(OOO플랫폼), 서비스 브랜드, 사용자, 디바이스 등이 부차적 문제로 내려와야 한다. 이런 것들은 하나의 (중요한, 이미 결정되어있는) 환경적 요소일 뿐이다. 그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매끈한 공간'이라고, 은유적으로 사용해 본다. 그런데 그 매끈함 속에는 '줄줄 홈파인 공간 - 사업모델'이란 것이 들어있다. 이렇게 이야기해볼까, 우린 전통적인 이름을 가진 서비스 "정체성 = 이름/브랜드"라는 것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다. 이런 의미에서면 'I'm mad'일 수도 있다. 분열적인 상황(플랫폼 환경)에 적응한 자아랄까! 정체성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한 순간이다.
  • (AI스피커든 포털이든) 티팟이란 브랜드를 쓸 생각이 없다. (브랜드/플랫폼이란 명예욕은 연합을 방해할 뿐이다. feat. 토마스 홉스)
  • 원하면 모든 방송사 온라인서비스에서 가져다 써라. (개방성)
  • 파트너(콘텐츠, 플랫폼 등) 간의 차별이 없다. (차별성이 아닌 차별, 형식적인 주제이다. 이미 내용적 차별은 존재한다. 그것이 없다면 둘이 아닌 하나일테니)
  • (콘텐츠사가) 나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가고, 여기든 저기든 가도 된다. (모두에게 적자를 감수하면서 그렇게 할 용기가 있다면 좋겠다. 환경의 변화는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용/감내해야 하는 것이지)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가 들뢰즈의 "매끈한 공간 vs. 홈파인 공간"이란 주제이다. 나는 ⟪천개의 고원⟫을 전략의, 실천에 대한 책으로 읽고 있다.

비디오가 티팟의 오디오가 된 것처럼 말이다. 관심사는 변화되는 환경에서 전략적 대안의 가지수를 늘리는 것이다. 수십, 수백 개의 공구가 든 상자를 가질 수 있다면(가진다면), 가성비로 볼 때 현재는 디지털/기술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다.

두 개의 파일을 올린다. 하나는 방송사들을 찾아다닐 때 쓴 참여 제안서이고, 다른 하나는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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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성은 개별적으로 보면 ROI가 안나오는 서비스를 해야한다는 것이고, 광고모델 운영은 원시적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이것을 넘어설까! 이런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제시한 안 중의 하나가 티팟이다. 공동으로 서비스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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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제안서



컨퍼런스 발표자료이다. 이때 한참 경제학(원론) 공부 중이어서 책 내용을 그대로 옮겨놨다. 완전경쟁시장 이야기(가설)를 하는데, 사실상 (발표문에서 잠깐 지나치듯 말하는) 경쟁적 독점시장이 맞을 거다. 하지만 현재 독점의 이득이 생길 정도로 큰 시장이 아니다. 그리고 미래도 녹녹치않다(불확실하다).


위험을 줄이면서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위험을 줄이는데는 너나가 없다. 우선 생존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진화의 터전을 만드는 것이 먼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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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컨퍼런스 발표자료




※ 티팟에 참여를 원하면 imtpod.com을 통해 연락. 티팟 참여 없이 오디오 서비스 플랫폼 이용(호스팅), 음성 광고플랫폼 이용 및 광고영업(대행) 등을 별개로 이용가능(지상파 2개사가 이런 방식으로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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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포스팅: 플랫폼 제국들을 가로지르는 유목적 삶에 대한 꿈

 “디지털 콘텐츠가 스스로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것은 예전의 콘텐츠들이 가지고 있던 형식들, 물질적이고 장인적이며 연속적인 아날로그적 속성과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했던 하나의 틀에서 벗어나 콘텐츠가 디지털화되면서 하나의 ‘수학적 알고리즘 덩어리-흐름’으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었습니다.


2020/01/10 09:44 2020/01/1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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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반복되는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고, 그런 까닭에 변화가 있지만. 그런 생각을 한다.

POOQ에서 WAVVE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면서 99년 말, 2000년 초가 떠올랐다. 20년이 좀 안됐다.  그때 EasyPlus Point Card라는 서비스를 만들었었고 OK Cashbag이란 이름이 되어 SK로 넘어갔다. 서류를 검색해 96.10월 회사를 다니기 시작해, 98년 만든 문서를 발견했다.

처음 사회 생활에 발을 내디뎠을 때, 그때도 '연합'을 좋아했던 것 같다. 이종사업자간의 회원 공유가 관심사였으니. 2002년 쓴 석사 논문도 이런 흐름에 있다.

우리회사(한국정보통신/KICC)가 계속했다면 지금처럼 알려져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서비스가 안되었을 것이다. 이지플러스 포인트 카드는 지금도 ASP서비스로 백화점이나 체인점 등 회원 관리용으로 제공되는 것 같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을 비교하면 시장에서 마케팅을 하는 규모 - 돈을 쓰는 규모가 다르고, 일을 하는 방식도 다르다. POOQ도 그렇지 ... !?

역량/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보이지않는 어떤 규칙(시장/자본의 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의지와 함께 역량이 필요하고, 그것은 '조직/회사 역량과 의지'이다. 믿음이 없는 ... 그래서 나는 많은 경우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도 잘 모른다고 생각한다. 겁에 질렸달까, 얼었달까! (한국적인) 겸손이라고 하는 게 났겠다.

우리가 다윗을 높이 사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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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10월 제대를 하고 바로 입사했다. 97.10월 결혼한 직후 IMF사태가 터졌다.

<국가부도> 상태로 국민 모두 생활이 어려워졌고, 많은 멤버십 할인카드가 서비스가 나왔다. 보통 카드를 보여주면 할인카드사와 약정한 만큼 구매금액에서 할인율만큼 빼주는 식이었다.

 - 이창희할인카드
 - 신시야카드 (대학생이 만든)
 - 보람적립카드 (대구에 있던)

회사도 초년병이었고 결혼생활도 막 시작했을 때, 지금은 어떤 할인서비스나 대부분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통해 적립되는 포인트카드사업을 하자고 아마 97년 초에 회사에 제안을 했을 거다. 몇 개월 동안 아침마다 사장실에 불려가 QnA를 했고, 질문에 답하지 못한 것 - 어떤 실행상의 난점이 발견되면 밤새 해결책을 찾아 다시 아침에 사장실을 열고 들어갔다. 아침 신문을 들고 퇴근해 두세시간 자고 다시 8시쯤 임원들에 둘러쌓어 질문을 받고 대답을 했다.

그 질문들 중 CMS(자동계좌이체)로 적립된 포인트를 받는다고 했는데, 업주가 입금을 안하면 어떻게 할거냐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현재 (모든) 포인트 시스템에 있는 여러 개념이 나왔다.

 - 발생포인트
 - 누적포인트
 - 가용포인트
 - 사용포인트

가용포인트란 개념이 나온 이유다. 포인트에 해당하는 돈은 한달에 한번 CMS로 출금하는데, 그 사이 포인트 거래가 일어나면 먼저 "발생"으로 처리하고, 돈이 들어오면 "가용"이 된다. 안 들어오면 배치로 "취소"처리한다는 식이다. 몇 개월 동안 사업계획을 세우며 카드사(은행) 임원을 지내셨고, VAN 시스템을 만들고 처리하던 임원들에게 둘러싸여 많은 것을 배웠다. 지금보면 입사 1년이 좀 넘은 직원에게 과분했다. 지금도 일을 가르쳐주신 그분들이 고맙다.


질문을 하고, 그것에 답을 하고 ..

답을 못하면 그 해결책을 찾아 다음날 이야기해야 했다. 그다음은 시스템 설계를 하라고 해서 시스템/소프트웨어 개발과 동떨어져있던 나는 선배들에게 물어보고, 카드사 업무 매뉴얼을 구해보고 하면서 카드 발급시스템, 회원 원장, 가맹점 원장, 트랙잭션 전문 등을 만들었다. 워드로 DOS모드 같은 검은 화면에 prompt가 떠 깜박이는 입력화면을 그리고 각 항목별로 개발자를 위해 설명을 붙였다.

그 결과가 "적립식 할인카드 - 이지플러스 포인트업 카드"이다. 회사가 신용카드조회 사업자(VAN사, 지금으로 말하면 PG사)로 100만 여대의 터미널이 중앙시스템에 연결되어 있어 가맹점(할인을 제공하는 매장) 모집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회원은 한 명도 없었다. 그때 SK, LG, 현대 등의 정유사를 찾아가 회원제휴 제안을 했고, 여기저기 회원이 있는 곳과 체인형 가맹점 등을 찾아다녔다.


사회(회사 간의) 갑을관계를 모르던 철없던 시절,

SK를 찾아가 엔크린카드와 제휴제안을 했다. 그 팀이 Cyger LMC 프로젝트를 하던 <복합네트워크사업팀>이었다. 기억나는 것, 하나가 있다. "제휴가 안되면 어떻게 할 거냐?"는 SK분의 질문에 아마 "LG에 갈 거다!"라고 했을 거다. SK에 갔다 회사에 들어가 담당이사에 불려갔었다. 혼을 낸 건 아니고 웃으며 그렇게 말했냐고 하시며 그러지 마라는 말씀을 하셨다. SK주유소에서 일어나는 신용카드 조회 건수(매출)이 회사 트랜젝션의 10%가 넘는다는 사정이야 내가 아는 바가 아니었으니 ...

그 후 SK 엔크린카드와 제휴를 하고, 다음에는 SK에서 오캐이캐쉬백이란 서비스를 만들면서 내가 설계한 <이지플러스포인트시스템>을 사용했다. 그 다음 회사를 사겠다, 합작하자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다가 <포인트카드> 관련된 부분을 SK에 넘겼다. SK에서 입사하란 이야기가 있어지만 여전히 세상을 몰랐던 나는 2~3년 고생해 만든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에 화가 나있었다.

VAN사들 간의 Market Share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했고, 회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 SK의 제안 받아들였을 거다. 얼마지나지 않아 SK에서 VAN사를 만들었지만 말이다. 바로 위에 있던 선배에게 관련 사업을 모두 넘겼고 그분이 계약을 했다.


그런 상태에서 인터넷사업을 하는 팀으로 발령이 났다.

회사에서 회원을 아는 게 나 밖에 없으니 회원 관련된 정책과 기획을 하라는 것이었고, 또 삐져있던 나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그 덕에 지금까지 인터넷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캐쉬백 일을 같이 했던 분들이 오라고 했을 때, 팀을 바꿨어야 했는데 가끔 생각한다. 세상을 좀 더 알았다면 갔을 거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힘은 이성에 앞서 감성이라 지금도 생각하니 다행이다. 거기에서 또 다른 세상을 봤겠지만 이곳에서 보는 세상도 재미가 있다.

그때, 작성한 포인트사업 관련 마지막 보고서이다. 그래도 선배들이 인간적이었나! 최후 변론처럼 보고서를 쓰고 의견을 말할 기회는 주었으니 말이다. 조금 눈치를 본 것 같기도 하고.  그 후 나는 계속 SK/SKT를 넘어서고 싶어 했다. 왜냐고! 우리 팀이 게임에서 이기는 걸 보고 싶었으니 ...


언젠가 "우리" 팀이 한 번은 이겨보겠지!

회사 일을 게임이라 생각한다. 우리 팀이 이기면 기쁠 거다. 그걸 위해  팀과 함께 연습을 해야 한다. 스크럼데이(회사 내 DevOps팀 성과발표일) 때, 넣었던 그림이다. 우린 종을 바꿀 때까지 연습을 해야 한다고 ...


16년, 데이터사업을 하라며 츠타야모델(츠타야 서점 멤버쉽을 모태로 만들어진 이종사업자 간 제휴한 포인트카드 기반 마케팅 사업)을 보여줬을 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지금 다시 한다면 더 잘할 수 있겠다고. 3년이 좀 넘었는데 더디게 주춤되면서도 쉬지않고 나가는 동료들을 본다. 올려다 볼 수 있으니 행복하다.

작은 변화의 씨앗을 찾는 것이 기쁨의 원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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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플러스 매각 요구에 대한 보고서



이지플러스 가맹점 제안서 (초기 캐쉬백 가맹점들 중 많은 수가 우리 손을 거쳤다.)




보도자료 -----


IMF 겨냥 합리적 소비도구 

EasyPlus 멀티포인트 적립식할인서비스카드 

현금  및 카드 거래시 구매금액의 최고 30% 포인트로 적립 

SK엔크린, DACOM  제휴 이지플러스 서비스 제공중 

 

   현금과 카드 사용시 할인적립식 이지플러스(EasyPlus) 다기능 포인트서비스를 대표적 신용카드조회서비스 전문업체인 한국정보통신㈜(대표이사 _____) 본격적인 서비스에 돌입했다. 금년까지 1만여 가맹점을 계획으로 자체  제휴회원으로 구성된 400여만명의 이지플러스클럽회원 대상으로 상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맹점은 가입시 비용부담이 없으며 가맹점카드를 고객 대상으로 공급하여 최소 2% ~ 30% 후불 적립식할인서비스를 제공하며, 그에 따라 서비스 동기유인으로 매출증대와 고정고객을 확보할  있는 서비스 마케팅과 함께 인터넷, 가맹점안내책자, PC통신 등을 통한 광고 효과도 가질  있다. 

   회원은 동시에 기왕의 소비지출에 효과적 적립식 할인서비스를 제공받아 이지플러스클럽의 할인금액 수납  적립관리서비스 대행을 통해 저축의 효과도 가지며, 일정금액(200,000) 이상이면 환급요청을 하여 목돈으로 현금지급도 받을  있다. 또한 회원은 각각의 특별 제휴사의 기능(주유카드 기능등) 이용과 함께 20,000 이상 적립시 가용점수(적립금액) 이지플러스서비스가 가지는 다기능 부가서비스(전화, 홈쇼핑, 여행, 공연 티켓팅 ) 별도의 비용과 현금지출 없이 생활관련 서비스로 제공받을  있다. 

   회원의 가입비(20,000)  연회비(3,000) 사용시 초기의 적립금액으로 자동납부되어 발급시의 부담이 없다. 

   한국정보통신 관계자는 향후 항공 마일리지, 철도회원카드, 교통카드, 공연물 예약등으로 서비스 영역확대와 질적 향상을 기할 것이며 나아가 적립된 누적점수를 사용하여 전자상거래에서의 결제까지 가능하도록 서비스 기능을 추가하여 회원의 편익과 합리적 소비관행을 선도하고자 한다고 했다. 

   가맹점  회원 가입 문의안내 센터 

   전화 : 368  3111 

   http://easyplus.kicc.co.kr 

 

 





2019/12/06 06:42 2019/12/06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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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린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간다!>에 대한  update. 왜,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가느냐! 배치와 순서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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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울덴부르크에게 이렇게 쓴다.

"청컨대 실체와 우유적 속성에 대해 제가 내린 정의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 정의로부터 저의 모든 증명이 도출됩니다. 실제로 저는 실체를 자신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 안에서 생각되는 것으로서, 즉 그것의 개념이 다른 어떤 것의 개념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서 이해하고, 변용(modificationem) 또는 우유적 속성(accidentia, 偶有的 屬性)은 다른 것 안에 존재하고 그 다른 것에 의해 생각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점은 명백합니다.

첫째, 실체는 본성상 자신의 우유적 속성에 앞섭니다. 우유적 속성들은 실체 없이는 현존할 수도 없고 생각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실체 안에, 즉 지성 밖에는 실체들의 우유적 속성들과 우유적 속성들 외에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습니다. 주어진 모든 것은 자신에 의해서 생각되거나 아니면 다른 것에 의해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의 개념은 다른 것의 개념을 포함하거나 아니면 포함하지 않습니다.

셋째, 다른 속성들을 가진 사물들(실체들)은 서로 간에 아무 공통점도 없습니다. 실제로 저는 속성을 그 개념이 다른 것의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끝으로 넷째, 서로 간에 아무 공통점도 없는 두 사물 중 하나는 다른 것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결과는 원인과 공통된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무(無)에서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도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친애하는 선생님, 인간들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발생된다(generari)는 것, 그리고 그들의 육체는 비록 전에는 다른 형태였을지라도 이미 현존했었다는 점을 부디 고찰하시기 바랍니다." (pp. 25~27)

실체와 우유(우연?, 필연성이 결여된, 어떤 것의 본성이 아닌)적 속성의 관계

1. 실체의 우유적 속성에 대한 선차성
2. 세계는 실체와 그 실체의 표현(우유적 속성, 변용)만으로 현존한다.
3. 다른 속성을 가진 사물들 간의 배제성(?) - distinct : 

cf. 라이프니츠는 이런 원리(정의) 때문에 모든 (논리적) 사건들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모나드를 상정한다. 두 실체간의 인과성은 없고, 초월자인 신에 의한 예정조화된(충족이유율을 갖는?) 세계가 있다. 

4. 원인과 결과는 공통된 속성을 전제하는 것에서 무에서의 창조를 거부하고, 내재적 발생을 주장한다.

이것의 순서를 논리적으로 하면, 세계는 실체와 그 실체의 표현만으로 현존한다(2). 이건 다분히 직관적(경험적)이다. 그리고 실체의 선차성(1), 속성이 다르다는 것의 의미인 distinct(공통점의 부재, 상호 배제성)(3), 마지막으로 그 결과 내재적 발생(4)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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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와 상관관계

(사회과학은) 인과관계에 대한 집착, 절대 원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적인) 상관관계에 집중한다. 세계(실체)는 우유적 속성, 변용, 표현으로만 현존한다. 관계의 변화, 강도와 운동 속도의 변화 속에서 그것은 무한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물(an object)이 다른 어떤 사물을 만날 때, 사건의 조합(combination)이 된다면, 만난 사물들이 바뀌었거나, 만나는 순서(permutation)가 바뀌면서 처음의 어떤 사물 속에 있던 성질이 드러난다."    출처: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아마도 .. 

현대의 사회과학은 상관관계에 대한 파악, 확률적 또는 미분적 파악이다. 자연과학적 인과관
계는 (실험실에서) 정해진 사건의 조합이다. 하지만 자연(세계) 안에서는 우발성(contingency, eventuality)을 막을 수 없다. 심지어는 잘 통제된 실험실에서도 조차.

사물이 가진 능력의 발휘는 만나는 사람(회사,사물)들이 바뀌었거나, 만나는 순서가 바뀔 때이다. (경영학에서 어떤 성공) 법칙을 찾는다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최적의 조합을 만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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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존재론의 적용, 경제학의 경우

경제학(어떤 학이든)의 대상은 경제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어떤 경제적 현상을 설명하면서 예측하는 것이다.

주류경제학(미시/거시경제학)은 경제모형(이론적 이상형)을 만들어 설명을 시작한다.

1. 경제현상에서 나오는(표현되는) 다양한 변수들을 수집한다.
2. 많은 변수 중에 몇 개만을 골라 해당 변수들 간의 관계(상관관계)를 가정을 세워 분석하고, 이를 논리적(수학적모델)으로 증명한다. 주로 미분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이것을 많은 경우 '한계혁명'이라는 말로 표현한다/하는 것 같다.
3. 증명된 모델을 적용하여 예측/추론한다.

2번의 과정이 중요한데, 수 많은 변수들 중 (그 모형에서 중요시하는) 몇 개의 변수만 변화를 허용하고, 나머지는 고정된 것처럼 가정한다. 중요변수는 수요량과 가격(수요곡선), 공급량과 가격(공급곡선), 효용과 가격/소비량(한계효용), 가격변화와 두 재화의 소비량 변화의 관계(대체재, 보완재) 등 ... 

우리는 어떤 측면에서 경제현상을 [제한적이지만 - 전체 변수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피노자(들뢰즈)적인, 또는 엠페도클레스적인 강도/밀도적 관계로 보는 것일 수 있다. 강도/밀도는 미분식으로 나타난다.

(전체를 생각해야한다면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처럼 생각해야할 것 같다. 모나드는 세계 전체의 내용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각 모나드는 특정한 부분(demension)에 빛을 받는, 그 부분의 강도와 밀도가 빛나기 때문에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모나드 안에 논리적 술어(?)로 내재한다. 그 무한을 측량할 수 있다면 우린 세계 전체를 계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플라스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들뢰즈 - “라이프니츠는 각각의 모나드는 세계를 표현하고 모나드들 내에 내속하는 술어들의 계열로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잘모르나 추측컨데) 경제학의 모든 법칙은 강도적 관계로 치환해 생각해볼 수 있다. 무수히 많은 차원 중 어떤 한 차원(dimension)에서 봤을 때의 관계이다. 모형상에 상정된 둘(두 개의 변수)을 봤을 때는 그럴듯 하지만 다른 변수들을 모두를 풀어놓으면 2007년 금융위기처럼 이상한(우발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

세계는 무한하기에 ... 경제학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석학들도 위기를 예측할 수 없다. 우발성은 (장기적으로) 새로운 체재를 발생시킨다/시킬 수 있다. '경제법칙'이지만 그 법칙이 보여주는 것은 특정 변수들 간의 강도적 관계인 상관관계이지 인과적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등등 .... 

연구와 모델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한계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른 법칙의 출현 가능성, 다른 전략의 가능성, 물질적으로 결정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한 비물질적, 또는 물질적 변환(trans-formation) 가능성 등의 근거가 된다. 이론(형이상학적인 존재론, 또는 철학)은 이런 변화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미분은 스피노자 시대, 17세기에 만들어졌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전통적인(종교적인) 관점에서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둘의 관계가 궁금하다면, 아래 책이 재미있다.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 10점
매튜 스튜어트 지음, 석기용 옮김/교양인
2019/10/08 10:05 2019/10/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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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들뢰즈식) 주석에서 이야기한 레닌과 관련된 글들이다.




    서울역에서 종로까지

      - 서울풍경 1


일주일에 한번씩 기차에서 내려 서울역에

서면 현기증이 먼저 그 다음은

구역질이 났다 기차는 대전을 출발해

조치원, 천안, 평택, 수원, 영등포, 그 다음

한강을 건너 서울역에 오고 사람들이

참새 떼같이 떠들면서 몰려 내렸다 소리로

날카로운 바람을 만드는 버스는 뒤에 검은

연기를 달고 머리 위 고가 밑을 달리고 나는

종로 3가에 어느 건물 안에 앉아 밖을 보며

콜라에 햄버거를 먹는다 앰프에 노래 소리 들리고

피켓팅에 가두행진이 있어도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가슴은 뛰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짱돌이라도 날라와 커다란 유리를 깨고

내 머리통을 치기를 바라면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생각도 있으리라 하지만

과거는 과거로 놓자 시간은 항상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고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역사가 뒤걸음친다 해도 시간은 미래로만

흐르리라 그것을 아는 내가 무엇을 어쩌란

말이냐 나의 속에 과거가 살아 꿈틀거린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난 이미 현재 위에 서 있다

피켓팅이 있고 운동가도 있고 사람도 있지만

바리케이트가 없고 적들이 없고 구경꾼도

없다 지금은 침체기다 ‘핵심을 보존해 퇴각하라’

레닌도 생각을 못했으리라 핵심도 없다면 아니

모두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면

누가 퇴각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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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나이


오늘 시내에 나갔다 여기 저기

둘러보다 한 구석에 꽂혀있는

시집을 보았다 김남주가 있고 박노해가

있었다 백무산이 있고 김정환이 있었다 이 모두를

갖고 싶지만 돈이 오천원 밖에 없다 혁명,

동지, 노동자를 향한 외침은 돈에 팔려

나간다 그래도 경쟁에 직면한 조잡한

소비에트의 생필품처럼 이곳에서도 상품성이

떨어지나보다 음모하듯 음침한 구석에 이들만

몰려 있는 것을 보면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저것들을

굶주린 소비에트의 인민처럼 아귀처럼 먹던 때가

있었다 김정환의 「희망의 나이」를 샀다 목 매단

다섯명의 레닌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시집을 팔아

집이라도 장만하려나 목 매단 역사를 보면서

희망을 간직한 채 있는 그도 참 대단하다 그를

한번 흉내내 본다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는 패배했다 아니

지금이 시작인가 단돈 삼천원으로 혁명을 사려는

내가 우습다 그도 그렇다 단돈 삼천원에

희망을 팔지는 않을 것이다 내 나이는 그보다

젊다 나는 그보다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 ‘희망의 나이’ 김정환의 시집 (1992.11,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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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심급

 


• • • • • • 전략 • • • • • •


우리가 알았던 것은

온다던 약속된 시간

우리가 안 것은

기다림과 지루한 고독

우리가 알 것은

날개를 접기 시작하는 의지의 시간

몰랐던 것을 몰랐다 말하는

부끄러운 고백의 시간이 왔다

진린 누가 지고 나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 뚫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자


이성의 간지!

그래 우린 더러운 신앙의 시대에 살았다

가누지 못할만큼 무거운 짐들에

우리 다리는 휘청이면서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그런 신념의 교조의 뼈다귀를 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힘겹게 걷던

어둠의 나날들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필연의 세계에서도

우린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란 좌절의 자유일 뿐

아니면 우린 필연의 세계를

정말 알지 못했다

자유란 무지의 자유일 뿐

우린 가쁜 숨에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버리지 못하는

아쉬움과 주저하고 우물거리는

회의의 거리를  쏴다닌다

 


• • • • • • 중략 • • • • • •

우린 다시 귀를 막고 고함을 친다

이제 가난에 찌든 의진

서푼짜리 관직과 바꾸고

등 따습고 배 부른 자들의 침묵의 시간이 왔다

바로 그 시간이 왔다

우리의 신념이 우리의 의지가

이 땅엔 절대로 절대로 오지 않는다던

오지 못한다던 그 시간이 왔다

고립감에 모두가 고독에 잠기는 시간

고독을 잊기 위해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

술에 마약에 담배에

자위에 계집질에 사내질에

그리고 강요된 노동에

어쩔 수 없는 연구에 잠겨

허우적거릴 시간이 왔다

신한국의 건설과 선진조국 창조의 시간

모든 것의 초점이 그것에 집중하는 시간

헛눈 팔면 짖터지리라 위협하며

시작되는 생산의 정치의 시간

강요된 과학의 시간

최종심급에서 경제결정의 시간이 왔다

 


• • • • • • 후략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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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3월 졸업을 했다. 92년 말부터는 '백수'였다는 이야기다. 졸업 후 몇 달간 대전과 서울을 오갔다. 대학원엘 갈 요량으로 대학 1학년 교양영어 이후 한번도 안봤던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하며. 종로 3가, 하디스에 앉아 콜라와 햄버거를 먹으며 받침에 깔린 종이에 썼던 '넋두리'이다. 


희망의 나이를 서점은 대전 역전통에 있는 대훈서적이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인영이던가. 대훈서적 2층인가 시집 코너, 전시 좌판 아래 책꽂이에서 출판된지 얼마안된 김정환의 시집을 샀다. 서울로 오가는 시간은 길었고, 그 시간마다 시집을 잃은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대학에, 철학과에 가도록 했던 그 글들. 그해 7월인가, 군에 입대했다. 입대하기 전 삼사개월 간 썼던 글들을 묶어 〖최종심급〗이란 제목을 달아 몇몇 친구와 선배들에게 보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가 비에라 선생을 떠올리듯이, 나는 어떤 순간마다 대학 때 읽어던 레닌의 글을 떠올리고, 되뇌인다. 비에라는 꿈일 뿐이고 슈트레제만보다 못할 수 있지만 말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레닌은 핵심역량을 보존하며 퇴각을 고민하고 실행했다." 이런 내용을 쓰며, 다시 레닌을 생각한다. '내 나이는 그보다 젊다 나는 그보다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젠 죽음을 맞이했던 1924.1월의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고 말았다. 이젠 그 보다 오래 살 것이란 것에 걸어보자! 살아있는 한 여전히 희망은 유효한 것이다라고 .... 


오늘 아침 아이는 2학년을 시작하기 위해 홍콩으로 갔다. 우리의 대학시절처럼 홍콩은 울렁대고. 아내와 나는 아이를 걱정한다. 아내에게 우리도 그런 대학시절을 보냈지만 이렇게 살고있으니 걱정말라 이야기를 했다. 그 시절과 함께 한 '어떤' 친구들, '최악의 상황'이 마음 한구석에 있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희망은 불안의 쌍둥이 형제이다.


 ㅇ http://dckorea.co.kr/tc/search/상경기


 

2019/08/29 08:33 2019/08/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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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에 페이스북에 남겨놨던 메모들이다. 2년 지난 오늘 다시 보고 글을 추가한다.


2019.8.29 전략 - 평가와 전망

벤야민의 비평과 들뢰즈를 연결해, 우린 하나의 전략적 테제를 도출했다/도출할 수 있다. 우리와 서로 다른 입장에 서있는 분들은 다른 전략을, 배치를 만들려 할 수도 있겠다.

우리의 '미디어 전략'은 벤야민이 보았던 뉴미디어(사진, 영화)에 의한 전통적인 예술의 변화에 기반한다. 남이야 뭐라든! 비물체적 변환을 일으키기 위한, '새로운' 영토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노력들, 각 세력들(입장들), 현실적인 경제적 제도/구조/회사 등등이 전략의 승패를 가른다.

혼자 목표에 다다르기 어려울 때, 둘 또는 셋이 되는 방법으로, 친구를 찾을 수 밖에 없다. 스스로 Contents Aggregator가 되기 위해 푹, SMR을, 하나의 형식을 만들었는데, 형식 자체가 내용이 되려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는 뻔한 이야기를 간과했다.

미디어2.0 &ndash;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 2.컨버전스 시대의 미디어 전략>


전략의 차원에서 '비물체적 변환'을 이루려면 내적 역량에 대한 확신(레닌식 주의주의)이 중요한데, 우린 여기(자기의심, 타자에 대한 부러움?!)에서부터, 자기확신의 결여로 패배의 길로 들어선 것 같다. 그 최종판은  흉내내기 - 자기의 핵심역량 버리기이다. (돈키호테식 용기와 근거없는 희망으로) 다른 곳에서 벌여놓은 전장에 뛰어드는 것 - 자기가 유리한 위치로 적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또 '개인적인' 투항이 이어진다. 자연의 섭리를 거역하지 못한, 애석한 죽음과! 우연들이 겹쳐, 누층적으로 쌓여,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게 되면 무너져내리는 '필연의 법칙'이 들어서는 것이다.


알뛰세르의 말이 '경험적'으로 맞다. 너무 성급하게 개입하는 사람은 정확한 지점을 발견하지 못할 위험성, 너무 많이 구부리거나 너무 적게 구부릴 위험을 무릅쓰게 되며 과실을 처할 위험에 처함게 된다. '너무 많이 구부렸다'고 생각한다. 그 위험은 ....

미디어2.0 &ndash;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 2.컨버전스 시대의 미디어 전략>

어려움이 닥쳤을 때, 레닌은 핵심역량을 보존하며 퇴각을 고민하고 실행했다.

   ㅇ 관련글 : http://www.dckorea.co.kr/tc/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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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cebook. 2016.8.27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 대한 메모


J.J. Park님이 상태를 업데이트했습니다.
2016년 8월 27일 오후 6:03 

1900년경에는 기술적 복제는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 전래의 예술 작품 전체를 자신의 대상으로 삼았고, 전래의 예술작품의 영향력에 깊은 변화를 끼치기 시작

#벤야민 #기술복제


2019.8.27
ㅇ 복제방식에 따른 물성의 변화 (그림을 찍은 사진, 연주를 녹음한 음악, 사진과 녹음은 원본과 다른 물성을 가진다.) - 기계적 배치의 변화

ㅇ 복제의 양적 증가에 따른 역사성의 변화 (더 이상 원본의 목록에 기입될 수 없는 복제물) - 언표적 배치의 변화

ㅇ 기계적 배치와 언표적 배치가 결합된 추상기계인 '예술'의 변화가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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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Park
2016년 8월 27일 오후 6:08 · 

기술복제 수준의 두가지 서로 다른 표현 — 예술 작품의 복제와 영화 예술 — 이 어떻게 전래적 형태의 예술에 거꾸로 영향을 미쳤는가 보다 더 풍부한 단서를 제공하 는 것이 없다.

#벤야민 #기술복제

2019.8.27 / 30
ㅇ 거꾸로 영향 - 예를 들면 아들이 아버지에게

ㅇ 복제물(사진, 영화)에 의해 원본은 아무런 물질적 변화가 없었는데 변화가 발생했다는 것 - 비물체적 변환(들뢰즈) / 기계적 배치, 언표적 배치가 바뀌면서 기존의 예술영역에서 탈영토화된 후 '다른 의미'의 예술(추상기계)로 재영토화된 예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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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Park님이 상태를 업데이트했습니다.
2016년 8월 27일 오후 6:14 

두번째로 기술적 복제는 원작의 모상을 원작 그 자체가 이룰 수 없는 상황에 옮겨놓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 술적 복제는, 사진이라는 형태가 되었건 음반의 형태가 되었건 수용자들이 원작의 모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 게 한다. 대성당은 그 자리를 떠나 예술 애호가의 작업실에서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음악당이나 노천에서 연 주된 합창곡은 방안에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원작의 모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만 여기와 지금에서는 더 멀어진다. 이에 따라 다른 배치, 탈맥락성이 이루어진다.

대성당, 음악당, 노천적 배치 vs. 작업실, 방안적 배치

#벤야민 #기술복제

 
2019.8.27
ㅇ 비물체적 변환이 일어나는 매커니즘 - 말 그대로 탈영토화, 모상들이 (원작 자체를) 벗어나 다른 상황에 놓어진는 것. 이에 따라 모상이 가지고 있던 의미가 변화(모상의 위치 때문에 원작에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지고, 모상은 원작이 가지고 있던 의미를 탈각? 시킨다)
ㅇ 탈영토성은 아우라(여기와 지금)에서 더 멀어지게 만든다. 하나의 아우라 발생장치가 해체되고, 다른 형이상학적 표면이 만들어지면서 '다른' 사건/의미가 발생/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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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Park님이 상태를 업데이트했습니다.
2016년 8월 27일 오후 6:45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은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술적 복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물리적 훼손은 없지만 여기와 지금의 가치는 떨어지데, 그것(여기와 지금의 가치)은 무엇인가?

#벤야민 #기술복제

2019.8.27
ㅇ 비물체적 변화의 의미 -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는다.' 그런데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 의미가 바뀐다.


ㅇ 그것(여기와 지금의 가치)를 의미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수동적 종합'에 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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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Park
2016년 8월 27일 오후 6:51 

이것이 결코 예술작품에 만 해당하지 않고, 또한 예를 들면 영화에서 관객 앞을 지나가는 풍경에도 해당한다

여기와 지금이 만든 가치인 풍경성, 얼굴성이 바뀌는 것이다. 의미작용과 주체화가 바뀐다. 탈영토화되고 탈코드화된다. 물화된 장치/기계가 만든들어내는 효과가 가치이다.

#벤야민 #기계복제 #들뢰즈 #얼굴성

2019.8.27
o 탈영토화(탈맥락화)는 이제 예술작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영화의 대상이 되는) 모든 가시적인 존재(자연, 풍경)에도 해당된다. 풍경은 영화 속에서 다른 의미를 담는다/갖는다.

ㅇ 그런데 이런 배치의 변경은 단순히 예술작품, 풍경만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그 환경(umwelt) 내에 있는 사람(주체, 유기체)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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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Park
2016년 8월 27일 오후 6:59 

이러한 과정[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기술적 복제 과정]을 통해 예술의 대상에서 가장 민감한 핵심이 건드려 지지만, 자연적 대상은 그렇게 손상받을 핵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

예술대상의 가장 민감한 핵심이 여기와 지금의 가치라면 예술이 발견하는 지각에는 (이데올로기적인) 골/홈 파기가 존재한다. 긍정만이 아닌 부정적인 것도 있는 것이다. 기술복제가 골/홈을 매끈하게 만드는 것, 탈영토화하고 탈코드화 한다. 

#벤야민 #기술복제  #들뢰즈

2019.8.27
ㅇ 자연(풍경)과 예술의 차이 - 핵심이 있는 예술, 핵심이 없는 풍경(자연)
  - 예술은 문화적인 것이다. 인간적인 구성체/의미체이다. 그 (사회적) 의미가 핵심이다.

ㅇ 풍경이 영화가 될 때, 어떤 '의미'가 부여된다면 문화적 차원에서 하나의 '핵심'이 구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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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Park님이 상태를 업데이트했습니다.
2016년 8월 27일 오후 7:21 

사물의 진품성은 그 기원으로부터 전승될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물질적 지속으로부터 역사적 증거물에 이르기까 지의 모든 것의 총괄이다. 후자[역사적 증거]는 전자[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전자가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에 있어서는 후자, 즉 사물의 역사적 증거도 위협받게 된다. 물론 위협받 게 되는 것은 역사적 증거 뿐이지만, 그러나 이처럼 위협받게 되는 것은 또한 사물의 권위[진품성]이다.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로 사물의 역사적 증거가 위협 받고, 사물의 권위(진품성)도 위협 받는다. 이데올로기적인 탈구가 발생하는 것이다. 재배치로 인해

#벤야민 #기술복제 #이데올로기적탈구

2019.8.27
ㅇ 전시효과 - (복제에 의한 예술작품/원본의) 비물체적 변환의 중요성
  - 전승된 가치, 사물의 권위, 진품성 등이 부서져내리는 것이다. <-- 제의효과
  -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서져내린다는 것보다, 이제 재구성(새로운 의미의 탄생)된다는 것
  - (물질적 배치의 변화에 의해) 의미가 생성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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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Park
2016년 8월 27일 오후 11:22 · 

사물의 진품성은 그 기원으로부터 전승될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물질적 지속으로부터 역사적 증거물에 이르기까 지의 모든 것의 총괄이다.

기계적 배치=물질적 지속
언표적 배치=역사적 증거물

이질적인 두계열의 교직으로 만들어지는 게 진품성이다. 푸코의 접근 <말과 사물>에서인가?

#벤야민 #기계복제 #푸코 #들뢰즈

2019.8.27
ㅇ '사물의 진품성'(을 갖은 예술작품)은 계속되는 기술적 복제물(의 양산/양적 확대?)과 그것의 재배치(장소변환, 여기 저기 출몰)에 의해 계열화의 논리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새로운/다른 의미가 지속적으로 생산될 가능성이 열린다.

  - 계열화의 논리에서 벗어날 - 무수히 많은 계열들이 생성될, 특정하게 계열화된 것에 벗어나 있는 다른 계열들의 존재, 계속해서 차이가 생성되는

  - 하지만 이렇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 - 계열들은 제도/장치에 의해 그 물질성을 담보하고 어떤 하나의 계열이 우점종이 될 게다. 그렇지않다면 '예술의 장'에서 벗어난/쫓겨난 것이거나 등등 ..


ㅇ 진품이 가지고 있던 '무한한 잠재성'이 솟아오르며 차이의 생성하게 할 수 있는 터(기반)가 만들어졌다.


ㅇ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지 진품의 의미가 사라진다/사라졌다는 아니다. 새로운 색, 무늬, 촉감 등을 지닌 다른 직물(text)가 짜여지는 것이고, 그 아래에는 여전히 참조되는 '진품'이 존재한다/존재할수밖에 없다. - 예술에서 '장(field)'의 역할

 

2016.8.27 페이스북

페이스북, 날짜 옆에 Amazon이라 뜨는 건 뭐가! amazon.com 링크가 걸려있는데..

2019/08/27 22:34 2019/08/2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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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2016년 어느날 ~

들뢰즈의 기계적 배치, 언표적 배치, 사건 개념을 연결
  • 기계적 배치 - machine / 제작. 내적 맥락
  • 언표적 배치 - 해석. 계열화 / Social. 서비스-소비적 맥락
  • 사건 - contents. story적 맥락
사건이 이렇게 따로 있을 수는 없다. 기계-언표-콘텐츠가 함께 교직되면서 어떤 사건/의미가 생겨난다. 기계-언표도 과도할 수 있다. 어떤 것(사업/전략)을 구조화할 때, 사용해보는 도구/개념 정도로 생각해보자. (2019.7.18)

콘텐츠나 사건을 어떻게 놓을까! 콘텐츠를 사건에 놓는 것은 category mistake이다. 콘텐츠는 기계적 배치 내에 내용이나 성질로 보는 게 나을 것 같다. 그것이 놓여있는 미디어기계와 사람이 접속할 때, 어떤 의미와 사건이 일어난다.

그 내용(콘텐츠)에서 다른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이나 그 콘텐츠의 제작자(감독,작가, 편성/투자자 등)의 의도에 따라 가는 사람들 .. 의미가 갈리는 방식) - 성상을 파괴하는 신교도와 그것을 만들고 신성시 하는 가톨릭교도

어떤 특정 의미나 사건을 지속하도록 만든 게, 가톨릭 종교개혁의 '아우라(벤야민)' 장치라고 한다면 우리 옆에는 그 보다 유연한 '페북/facebook 기계'가 있고, 그 안에서는 아주 다양한 형태의 '아우라' 장치들이 존재한다. 자신의 페북을 어떻게 쓰는지, 그 안에 어떤 peer들, 어떤 contents, context ... 기(氣)들이 우글대다 어떤 정향(개체화, 몰적 형태)이 발생하고/되고 고착될 것이다. (2019.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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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2019.7.23일 업데이트 --------------------

2014.5.22일, 2015.3.12일 메모 - 메타데이터, TMI


meta-data에서 meta는 변하지않는, 근원적인 것이다. 그래서 형이상학, meta-physica의 meta. meta를 뺀 data는 현상적인 것, 경험적인,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user-experience에 가깝다. 많은 철학자들이 data를 허상이나 환상에 가깝다고들 생각을 했다.

user의 입장에서 보면 search(function, thchnic)이라기 보다는 find다.
다른 곳이 검색으로 돈을 벌었으니 우리도 검색을 하자, 그것을 위해 데이터를 넣자가 아닌.

"meta-data가 아닌 사용법/범례"에서 사용법/용례는 잘못썼다. 사용과 용례가 맞다. 사용법은 meta-data에 가깝다. 말그대로 law(법/칙)이니.

data는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변하는 콘텐츠의 맥락성, 의미, 사건과 관련된 우리의 판단과 관련된, 구체적인 글(클립에서 제목을 뽑거나, 댓글을 달거나, S짤방 같은데서 드립(!)치는 것이 된다. meta가 될 수 없는 일시적인 정감들/분위기와 관련된 정보(information)


meta-data는 칸트의 범례에 가깝다. 아래 메모에서 "meta-data가 아닌 사용/용례"에서 용례는 실제는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발화의 실행과 관련된 측면을 파롤(Parole)'이다.

〈 칸트는 취미 판단에서 "우리가 명시할 수는 없는 어떤 보편적 법칙의 한 실례처럼 여겨지는 판단에 모두가 동의한다는 필연성" 즉 범례적 필연성을 발견했다. 이 필연성이 도출되는 규칙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근거가 상호 주관적으로 보편적인 까닭에 (즉 그 근거는 자유로운 유희와 합목적성의 선험적인 원리이므로), 우리에게는 마치 그러한 규칙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지점에서 칸트는 공통적인 느낌의 이념으로서의 공통감을 도입한다. (인용 사이트) 〉 이 인용문처럼 생각하면 칸트의 범례는 쿤의 패러다임이 범례와 가깝다. 둘이 다르다면 칸트는 범례의 '필연성(?)'을 이야기했다면, 쿤은 그 패러다임 마저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는 것 정도일 듯 하다.


"환경을 만들다가 아닌 환경에 들어가 하나의 용례가 된다." 이게 '실제' 서비스에 가까운 것이라 생각한 메모다. 전략의 남발처럼 메타데이터의 남발 ... 어떤 존재론적 층위 없이 모두 넣고, 쌓아두자는 '실증주의적' 접근. 아니, 실증주의도 아닌 듯 하다. 실증주의는 현상을 가장 단순하게 description하는 것이니. 범례나 법칙성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naver 검색은 메타데이터가 아니라 용례이다." 용례=자연어 검색에 가깝다. 그런데 우리 콘텐츠'쟁이'들은 모두가 메타데이터라 생각한다. 빠르게 용례를 찾을 수 있도록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검색.

결론. 내가 아는 메타데이터는 칸트적인 범례에 가깝다. 그런데 많은(대부분의) 경우 서비스를 위한 데이터를 메타데이터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용자의 용례, 웹 활동보다 자신이 '쓰레기(현재의 상황에서만 의미있는 것)'까지 넣는 것을 좋아한다. 위에서 '환경을 만들다'가 아닌 '환경에 들어가다'를 이야기한 것은 이런 이유이다. 콘텐츠를 둘둘 감아 (저작권을) 지켜서는 서비스를 만들기 힘든 이유다. user들이 기억 속에 있는 콘텐츠를 찾아, 자기 맥락에 맞춰 놀 수 있어야 하는데,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

맥락에 따라 특이하게 쓰기 --> 소셜화 되기 



이런 것을 자신이 모두 직접 만들려고 하는 무모한 접근. walled-garden 증후군
자신은 모든 사람의 감정을 다알고 있다는 (제작자의) 당찬 자신감 .... 


이 메모는 지금은 다른 회사로 간 분이 메타데이터, 메터데이터 이야기를 해, POOQ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을 때, 쓴 메모이다. 그러다 장대익교수의 <빅 퀘스천>을 읽으면서 칸트 메모를 해 덧붙여놨다.


이 소셜화 되기는 플랫폼 되기, 부불노동자 고용하기와 연결된다. user에게 일을 시키는 것이 플랫폼 사업의 진수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5년이 더 지난 메모를 자리 뒷편 기둥에서 떼내 버리며 ....
2019/07/17 18:27 2019/07/1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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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후 '기술지대'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술지대'에 관한 이해없이 '플랫폼(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기술지대'에 대한 논의가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이란 점을 고려하면 플랫폼사업과 연결은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Marx의 <자본> 전체가 그렇지만 지대이론도 고전경제학자인 D. Ricardo에서 왔다고 생각하면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지대이론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사는 <방송과 통신정책, IPTV 융합정책의 지대추구론적 분석 : 지대추구의 효율성 분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nvergence Policy of Broadcasting and Telecommunication in IPTV Convergence Service with Reference to Rent Seeking Theory> 때문이다. 이 논문의 저자는 이상호 교수/박사이다. 2007년, 나는 KT IPTV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고, 이박사는 KT에 근무하는 counter partner(차장)였다. 그가 지대이론에 근거해 플랫폼 사업자의 wining을 이야기했고, 우리가 추구했던(?) 'Digital Contents Platform'이란 허무맹랑한 주장(?)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때 나는 학교에 있는 친구에게 예전에 서점에서 서서 읽었던 만델의 <후기자본주의>를 제본해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 지금도 관심을 갖고 관련된 책과 논문들을 읽고 있고, 또 그 사이 기술지대와 플랫폼의 관계에 대한 몇가지 단상을 정리해 <문화경제학> 시간에 짧게 강의를 했다.


기술지대는 기술(기술과 기술적 장치들, 그리고 지적 재산권 등의 법률적 제도 등도 포함된 기술)을 기반으로 부(가치)의 전유를 위한 회로 중 하나이고, 부불노동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이 구체화된 형태가 플랫폼, 또는 FAN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알파벳)이란 것을 모른다면 그 '사업'의 경제적 핵심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자본>이 과학이거나 어떤 경제학적 진리를 담고있다면 객관적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적 회로/기계'에 대한 이론적 분석의 명확성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이 원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진리가 아닌 '인간적인 진실', 계급의 존재와 착취구조 그리고
그것의 철폐에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기술지대'에 대한 관심은 '양가적'이다. 한편이 새로운 착취구조에 관련된 것이 있다면, 반대편에는 '어떻게 하면 플랫폼 사업에 성공할 것인가'라는 측면이 있다. 우린 이런 모순 속에 살고 있다. 2007년부터 살펴보던 것들이지만 내 짧은 지식으로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지난 10년 사이 기술지대와 플랫폼에 관련된 논의들에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 문화과학의 <플랫폼 자본주의> 특집호를 읽으면 '왜 플랫폼 사업자가 돈을 버는지'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문화과학 92호 - 2017.겨울 - 10점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지음/문화과학사


이 글은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2008)와 <텔레비젼: 테크놀러지와 문화형식을 읽으며>(2013) 사이에 있던 글이다. 아래 글에는 정작 기술지대에 대한 내용은 없다. 기술지대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 '기술지대'로 검색하여 살펴보기 바란다. 2007년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한국정보처리학회지에 관련 내용을 발표했었다.

▸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 http://dckorea.co.kr/tc/28

또, 2009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나온 2009년 말 발간된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이란 책자를 읽다가 이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매클루언과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매클루언이 윌리엄스의 생각(비판)처럼 '기술결정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기술이 나온 사회, 경제적인 배경에 대한 관심보다 기술의 변화에 의해 변화된 미디어-인간의 '배치'와 그 '효과'에 관심이 켰다고 본다. 이런 그를 한국에서는 다시 호명해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과 같은 글들이 아전인수/침소봉대로 해석해, 뉴미디어를 위한 기술결정론자로 재탄생시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찌보면 윌리엄스 역시 그렇게 호명된 매클루언을 향해 당대에 기술결정론자라고 비판했기 때문에 불려나온 면이 있다.

정부(정책기관)에서 세금을 써서 연구를 한다면 '미리 답을 정해놓고' 보다는, 열린 형태의 연구를 후원하는 형태가 맞다고 생각한다. '철학과 비전'에는 기술에 대한 맹신과 (방송통신융합을 위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자기합리화만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미래 세대와 우리의 삶을 걱정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산업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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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지대


“싫어하는 것에 반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조절하기 위해 스위치를 끄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두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
마샬 매클루언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미래(1966)>, 스테파니 매클루언 ․ 데이비드 스테인즈 편저, 『매클루언의 이해: 그의 강연과 대담』, 커뮤니케이션북스, p.139

 


테크놀로지와 문화, 그리고 우리의 삶


기술 발전과 문화


우리시대의 총체적인 삶의 경험, 이에 따른 감정과 생각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변화의 근원에는 공통적으로 놓여 있는 것은 기술이다. 테크놀로지(technology)는 기술을 생성하는 첨단 공학들과 이에 기반을 둔 기술 산업의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고, 이미 우리 삶 속에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 공학, 컴퓨터 공학의 발전과 이에 따른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은 기술의 영향이 정치, 경제, 사회, 학문 등의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까지 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시대의 문화는 ‘기술적 문화(Technische Kultur)’라 할 수 있다. 기술은 이제 삶의 형식의 총체이자 인간이 역사적으로 이루어낸 모든 내적 ․ 외적 산물의 총체로서 이해되는 문화라는 개념에 비견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

* 문병호, 「테크놀로지 시대에서의 예술적 계몽력 - 전통적 표현 수단에 기초한 예술 작품들의 위기와 기회」, 『비판과 화해 - 아도르노의 철학과 미학』, pp.109 ~ 110을 참고함


최근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이 문화예술 ․ 인문사회등과 융합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문화 기술( Culture Technology)’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했다. 문화기술은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하여 방송 ․ 영화 ․ 음악 ․ 애니메이션 ․ 게임 등의 문화예술 산업을 첨단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

** http://100.naver.com/100.nhn?docid=794689(2009.9.14)의 ‘문화기술(文化技術, culture technology)항목을 참고함

하지만 문화기술의 비약적 발전 때문에 문학, 회화, 음악, 영화와 같은 전통적인 문화예술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화된 예술 작품들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즉 정보통신 수단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면서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수용 형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디지털 음원에 대한 기사를 추가 인용할 것) 또 생산방식도 이에 영향을 받아 전통적 표현 수단을 따르는 예술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디지털화된 예술작품들이 새로운 소통 양식인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감에 따라 전통적인 문화산업의 시장 질서역시 무너졌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생성 중에 있다. 이런 위기의 근저에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특징인 대량성・신속성∙복제성 등과 자본주의적 문화산업의 생존 논리인 상업성∙오락성∙소비성 등이 함께 놓여있다.


테크놀로지 발전의 효과(effect)


기술은 어떤 대상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이용하는 인간 행위의 방식이다. 사람들은 기술을 이용해 주어진 대상에서 무엇을 얻기도 하고, 대상을 자신의 필요나 욕구, 희망에 맞도록 변화시키기도 한다. 기술에는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와 소망이 깃들어있다. 이런 까닭에 기술은 인간이 손과 도구를 이용하고 지적 사고 능력을 갖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왔다. ***

*** 문병호, 같은 책, pp.110~111을 참고 함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경험과 삶을 총체적으로 바꾸고 있는 현실을 빗대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변화하는 것은 액자 속의 그림일 뿐만 아니라, 액자 자체” ****라고 한다. 그에게 동시적이고 즉각적인 정보의 이동이 이뤄지는 전자기술시대는 특정 중심지역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이 중심에 해당되며 경계선도 없는 영역이다. 이 공간은 세계 전역에서 동시에 도착하는 전자정보(모자이크)에 의해 만들어지며, 정해진 연결성이 없는 접촉이 이루어지는 곳(우발성)이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현대의 정보환경을 떠받치는 동시성을 가진 정보들은 시각이 아닌 촉각이나 후각 등 여러 가지 감각에 어울리는 청각에 의존한다.

****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p.253

▸ "전자기술시대는 특정 중심지역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이 중심에 해당되며 경계선도 없는 영역"이라는 표현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정말 그런가! 현실은 그 반대의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즉각적인 정보의 이동 가능성이 실제적인 정보의 이동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기술의 영역 밖에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구조가 온존한다. 기술적인 층위와 그것을 전달하는 언론-미디어의 층위가 만난 지점에서 '정보의 이동'이 결정된다. 물론 인터넷을 통한 publishing(공개) 가능성이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경로를 벗어나 우발적으로 '이슈들'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맞지만 하나의 층위, 기술적 가능성의 층위만을 볼 때 우리는 현존하는 강고한 힘들을 읽어낼 수 없다. (2019.7.15일 추가)


하지만 19세기 이래 서구인들이 생각한 자신이 사는 공간은 정규적이고, 자연 그대로의 합리성을 지닌 시각적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유클리드가 마련했던 기하학적 공간으로 연속적으로 균일하며 상호 연결적이고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공간이다. 이런  시각적 공간 개념을 가진 사람들은 전자기술시대의 동시성을 가진 정보환경에서 쉽게 자리를 잃고 당황하기 마련이다. 이런 변화와 혼란은 테크놀로지, 특히 전자기술의 총화인 텔레비전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낙관론자인 매클루언은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전자정보시대가 청각적인 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나면, 새로운 환경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예상되지 않는 일들이 발생할 위험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감각들은 불빛이나 열, 소리의 강도에 대한 변화에 즉시 적응하며, 그래서 20세기 전자기술시대의 정보서비스에 의해 형성된 환경구조상 일어나는 변화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원인을 알기도 전에 우리의 감각들은 이런 변화에 먼저 적응하게 되고, 적응의 결과가 먼저 드러나기조차 한다.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우리 삶의 총체적 경험을 바꾸는 것이다. *****

 ***** 마샬 매클루언, <직업윤리의 종말(1972)>, 같은 책, pp.266~268을 참고 함


▸ 매클루언은 "인간의 모든 감각들은 불빛이나 열, 소리의 강도에 대한 변화"에서 '강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양화하기 어려운 상대적 위치. 유클리드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있는 인간의 감각(더나아가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술에 의해 우리의 감각들이 '지각(의식적인 앎)보다 먼저' 적응한다고 이야기한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전개체적・전의식적인 신체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기술이 우리의 지각과 어떤 개념을 만들어낸, 자각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된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 이 때 불빛이나 열, 소리의 강도의 변화(환경의 변화)'는 우리 신체(몸)의 강도 변화를 수반한다. 다른 신체(불빛, 열, 소리)와 만난/접속한 인간 신체의 변화는 단순한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신체의 잠재성(역량, 힘)의 표현이다.

"역량은 하나의 양 이다. 그렇지만, 역량은 길이와 같은 양이 아니라 힘과 같은 양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반적이고 단순한 양, 곧 이른바 외연량(des quantités extensives)이 아니라 강도 단계(une échelle intensive) 를 갖는 강도량(des quantité intensives)이다. 그건 곧 이런 뜻이다. “실재들 은 다소간 강도를 갖는다. 그 자신인 실재의 강도, 그 본질을 채우는 실재의 강도, 그 실재를 그 자체로 정의하는 강도, 그것이 바로 그 실재의 강도이다.” " 김재인, <들뢰즈의 비인간주의 존재론>, 2013.2 (서울대학교 대학원), p.120 (2019.7.15일 추가)


따라서 매클루언은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간의 확장이 어떻게 인간의 지각 능력을 변화시키는가 하는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제기했던 문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내는 효과라는 문제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매클루언은 관심사는 이런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문제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기존 과정(旣存過程)의 진폭(振幅)을 증가시키거나, 속도를 빨리하는 방법, 혹은 그 표현 방법이 심리적 ․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미디어나 테크놀로지라도 그 ‘메시지’가 인간에게 관계하게 되면 그것에 의해 인간의 척도(尺度)가 달라지고 혹은 진도가 달라지며 혹은 기준이 달라진다. 철도는 달리는 일, 수송하는 일, 혹은 바퀴, 선로(線路)를 인간 사회에 도입해 온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종류의 도시와 일과 레저를 낳게 하여 종래의 인간의 기능을 촉진하고, 또 규모를 확대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철도가 지나가는 곳이 열대 지방이건 한대지방이건 마찬가지이며, 또한 철도라는 매체가 운반하는 물건이나 내용이 무엇이든 조금도 상관없다. 한편, 비행기도 그 사용 목적과는 전혀 관계없이 운송 속도가 빨라짐으로써 철도형의 도시 ․ 정치 ․ 인간관계를 해소하려 하고 있다.” ******

 ****** 마샬 맥루한, 같은 책, p.8에서 인용


▸ "어떤 미디어나 테크놀로지라도 그 ‘메시지’가 인간에게 관계하게 되면 그것에 의해 인간의 척도(尺度)가 달라지고 혹은 진도가 달라지며 혹은 기준이 달라진다"고 매클루언은 말한다. 왜 인간의 척도, 진도, 기준이 달라질까? 그것은 인간의 역량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재인박사는 "
유한 실존 양태는 그것을 규정하는 다른 유한 실존 양태와 외적으로, 연장적 부분에 의해 관련된다"고 하면서 아래 글을 주석으로 달았다. “같은 크기를 지니고 있거나 크기가 서로 다른 일정한 수의 몸들이 다른 몸들 에 의해 제약되어(coercentur) 서로 의지할 때, 또는 그것들이 같은 속도나 서로 다른 속도로 운동하고 있을 경우에는 일정하게 규정된 어떤 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운동을 서로 전달할 때, 우리는 이 몸들이 서로 연합되어 있으며, 이것들 모두가 단 하나의 몸 또는 개체를 합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개체는 몸들 사이의 이러한 연합에 의해 다른 모든 개체들과 구분된다.”(Spinoza E II P13 이 하 「자연학 소론」. 강조는 원문, 밑줄은 필자) 김재인, 같은 책, p.121

스피노자의 말에 기대어 살펴보면 인간의 몸이 '어떤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의 메시지'와 연합되어 다른 몸(개체)이 된 것이다. 이때 메시지는 '고양이의 웃음'이 고양이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의 전달형식(표현방식?, 기계적 배치?, 또는 인간 몸과의 접속방식/interface)이라고 생각해보자. (2019.7.15일 추가)


그런데 이런 접근 안에는 증기기관・철도・텔레비전, 그리고 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테크놀로지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일반적인 명제가 들어있다.



'빛나는' 효과에 눈이 멀어버린 기술결정론


‘테크놀로지가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의 현재적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1973년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가 텔레비전 분석을 위해 사용했던 틀을 그대로 현재의 인터넷에 적용한다 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1)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그후 뉴스와 오락을 제공하는 매체로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서 이전에 존재했던 뉴스와 오락 매체를 대체하게 되었다.

(2)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인터넷이 갖는 힘이 너무 커져서 제도와 사회적 관계의 틀을 상당 부분 변화시켰다.


(3)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정보통신매체로서 인터넷이 가진 고유한 성질은 실재에 관한 우리의 기본적인 인식을 변화시켰고, 이어 개인과 개인의 관계 및 개인과 세계에 대해 갖는 관계까지 변화시켰다.


(4)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커뮤니케이션과 오락의 강력한 매체로서 인터넷은 물리적 유동성의 증가 등 다른 테크놀로지의 발명으로 초래된 요인들과 함께 사회의 규모와 형태를 변화시키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5) 인터넷은 과학기술의 연구성과에 힘입어 발명되었으며 오락과 뉴스 매체로 발전했다. 이어 예기치 않은 결과로 텔레비전은 다른 뉴스와 오락 매체의 생명력과 중요도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가정, 문화, 사회생활의 핵심적인 과정에도 영향을 끼쳤다.


(6) 인터넷은 과학기술 연구에 힘입어 하나의 가능성으로 개발되었다. 이 가능성이 새로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것이라는 잠재력을 인정받아 투자와 개발의 대상으로 선택되었으며, 특히 분권적 의사 소통과 민주적 견해 형성 및 행동양식 형성에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7) 인터넷은 과학기술 연구에 힘입어 하나의 가능성으로 태어났으며, 새롭고 수익성 있는 전자적인 상거래, 콘텐츠 전달, 커뮤니케이션 및 커뮤니티 서비스의 면모를 인정받아 투자와 장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인터넷은 특징적인 디지털 가전 기기들과 결합되어 확산되었다.


(8)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특징과 사용이 발전함에 따라 능동적 참여성, 집단지성 등의 요소가 두드러지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람들에게 항상 잠재되어 있던 것인데, 인터넷이 보다 구체적으로 발현하게 만들었다.


(9)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의 고유한 특징과 사용에 따라서 새로운 종류의 사회, 곧 분산되어 있고 복합적이면서도 세분화되어 있는 사회의 요구를 야기했으며 동시에 충족시켰다. 새롭게 창출된 롱테일(long tail)경제가 그 예이다.


이런 견해들은 윌리엄스에게는 텔레비전, 우리에게는 인터넷과 같은 어떤 테크놀로지가 우리 세상을 바꾸었다는 익숙한 명제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 중 일부일 뿐이다. 많은 경우 여러 해석들이 동시에 혼합되고, 중복되어 나타난다.

윌리엄스는 (1)~(5)와 같은 형식으로 설명할 경우 테크놀로지를 순전히 우연적 사건으로 이해한 것이라 지적한다. 이런 입장은 어떤 기술적 발명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이유를 그 자체의 내적 발전에서 찾는다. 따라서 그 발명에 따르는 결과는 테크놀로지로부터 직접적으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우연적이다. 인터넷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그에 따르는 특정한 사회적 ․ 문화적 사건들도 생겨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을 기술결정론이라 부른다.


“이 관점은 현재 사회변화의 성질을 밝히는 정설로 자리잡을 만큼 그 기세가 매우 강하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본질적으로 내적인 연구개발의 과정에 따라 개발되며, 그에 따라 사회적 변화와 진보의 여건이 조성된다. 진보란 특히 이러한 발명의 역사이며, ‘근대세계를 창출해 낸’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예견된 것이든 예기치 못한 것이든, 테크놀로지의 효과는 역사적 산물이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텔레비전론』, pp.49~50


(6)~(9)의 입장도 인터넷을 테크놀로지의 우연적 산물로 본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인터넷의 사용을 그 중심에 두고, 그 사용이 다른 맥락에서 결정되는 어떤 사회적 질서나 인간 본성의 몇가지 특징에 대한 징후로 여길 뿐이다. 따라서 인터넷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특정한 어떤 매체에 의해 참여적 질서를 만들었거나 세분화되고 협업적인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현재보다는 좀 더 영향력이 적은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을 수 있다. 앞의 입장보다 덜 결정론적인 이런 입장을 윌리엄스는 징후적 기술론(symptomatic technology)라 한다.


“이 관점은 특정 테크놀로지 외에 사회적 변화의 동인이 되는 다른 조건들도 강조한다. 또한 특정 테크놀로지나 테크놀로지 집단이 다른 어떤 징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 테크놀로지는 그것과는 별개로 결정되는 사회과정의 부산물로 여겨진다. 이미 드러나 있는 사회과정의 목적들을 위해서 어떤 테크놀로지가 사용된다면, 그것은 단지 효과 차원의 위상만을 가질 뿐이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책, p.50


테크놀로지와 사회적 제관계


우리가 1970년대의 윌리엄스에 의지해 테크놀로지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살펴본 것은 이런 견해가 지금도 여전히 테크놀로지와 사회에 관한 우리의 사고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말 발간된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은 이런 사고를 대표한다. 이 책에서는 매클루언의 이론을 정리하며 “매체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을 넘어서 인간의 의식 패러다임과 의사소통의 구조, 그리고 사회구조 전반의 성격까지도 재편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방송통신 융합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기 적절한 이론가”라고 주장한다. 또  “그의 매체론은 커뮤니케이션의 물질성에 따라 문명의 성격까지도 바뀔 수 있다는 관점에서 ‘문명의 미디어론’으로까지 명명될 수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을 제시한다. *********

********* 황성주 외,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2008.12), p.59, p.110을 볼 것. 강조는 필자. 우리는 매클루언의 통찰을 기술이 만들어낸 사회적 효과라는 차원에서 이후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이렇듯 현재의 뉴미디어에 대한 입론들은 대부분 기술결정론에 서있다. 테크놀로지와 사회의 관계를 살필 때 “기술을 고립적인 요인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기술은 “자율적인 힘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하거나, 또는 자율적인 힘으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루는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책, p.51

 

그런데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은 기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조성하는 것, 담론과 대화, 방송과 통신의 균형과 조화 속에서의 융합, 공급자중심에서 이용자의 참여와 협력을 중심으로 한 융합을 방송통신융합의 추진방향으로, 자유, 참여, 다양성, 창의성을 그것의 가치로 제시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일반적 당위론과 보편적인 가치,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사회적 효과를 적당히 버무린 몇 가지 트렌드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뉴미디어의 철학과 가치를 대변할 수는 없다. ***********

*********** 황성주 외, 같은 책, pp.110~113을 볼 것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와 소망이 깃든 기술이라는 일반적 특성을 넘어선 기술,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작동하여 인간을 종속시키고 장악해버린 기술, 자본주의적 상황 아래에서 특수한 용법으로 사용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위험사회’ ************* 에 살고 있고, 테크놀로지 자체가 새로운 삶과 더 나은 문명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갖을 정도로 경험이 부족하지 않다.

윌리엄스의 통찰에 따르면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과 같은 입장이 갖는 강조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공동의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근대 이후 사회관에 깊이 뿌리박힌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다른 관점에 서서 테크놀로지, 구체적으로 텔레비전을 살펴 볼 것을 권유한다.

************   문병호, 같은 책, pp.111~113을 참고 함
*************
울리히 벡, 『위험사회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새물결을 볼 것, 이 책에서 울리히 벡은 기술에 의해 구조적으로 조작되고, 통제되는 산업사회는 더 이상 인간의 의지에 따라 조종될 수 없는 사회라고 주장한다.


“텔레비전의 역사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그것의 여러 가지 사용까지 살펴볼 수 있다. 텔레비전과 관련한 이 관점은 연구개발의 과정에 의도라는 요인을 되돌려 놓는다는 점에서 기술결정론과 다르다. 다시 말해서, 이미 상정된 어떤 목적이나 실천을 실현하기 위해 테크놀로지가 추구되고 발전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목적과 실천이 직접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징후적 기술론과도 다르다. 곧, 드러나 있는 사회적 요구, 목적, 실천 등에 대해 테크놀로지가 주변적인 요인이 아니라 중심적인 위상을 갖는다는 뜻이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책, p.51, 강조는 필자


따라서 우리시대의 총체적인 삶의 경험, 이에 따른 감정과 사고 양식의 급격한 변화 양상을 살피기 전,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이끄는 사회적 요구, 목적, 실천을 살펴보아야한다. 



비판적 기술사(技術史) ․ 기술학(技術學)


‘쟁기를 끄는 황소가 경제적 범주가 아니듯이 기계 ․ 기술도 경제적 범주가 아니다. 기계 ․ 기술의 현재와 같은 적용은 우리의 현재 경제체제의 제관계에 속한다. 기계 ․ 기술이 적용되는 방식은 기계 ․ 기술 자체와는 전혀 다르다. 화약을 사람들이 인간을 해치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든, 다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사용하든 언제나 화약인 것과 같다.’ + 사회적 제관계 속에서 기술 발전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은 일반적 당위론과 보편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자의적인 가정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테크놀로지의 실제적인 발전과 그 ‘철학적 가치’는 모순될 수밖에 없다.

+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자본론에 관한 서한집』, 중원문화, p.55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기술의 본질은 결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술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에만 급급하여 그것에 매몰되거나 그것을 회피하는 한, 기술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결코 경험할 수 없다.

기술에 대해 누구나 알고 있는 대답은 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과 기술은 인간의 행동의 하나라는 것이다. 기술에는 연장, 기구, 기계 등의 제작과 사용이 속하고, 이때 제작된 것과 사용된 것 자체도 기술에 속한다. 더 나아가 욕구와 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들도 기술에 속한다. 이러한 장치 전체가 곧 기술이고, 기술 자체 또한 장치이기도하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을 중립적인 것으로 고찰할 때가 최악의 경우라고 하이데거는 지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기술에 내맡겨지고, 이것이 옳다고 신봉하며 기술의 본질에 대해 맹목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볼 때 기술을 하나의 수단이며 인간 행동의 하나라고 보는 현대인의 통념은 기막힐 정도로 올바르다. 하지만 이 통념의 올바름이 현대 기술의 본질을 밝혀주는 것은 아니다. ++

++
  마르틴 하이데거, <기술에 대한 물음>, 『강연과 논문』, 이학사, pp.9~11을 볼 것


“따라서 현대 기술도 목적을 위한 도구라는 말은 올바르다.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념이 인간을 기술과 올바르게 관계 지으려는 모든 노력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것은 기술을 도구로서 적당한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듯이 기술을 “정신적으로 장악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려 한다. 이처럼 기술을 지배하려는 의지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커질수록 더욱 절박해질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에도 그것을 지배하려는 의지가 가능할까?” +++

+++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책, p.11에서 인용, 강조는 필자


현대의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버린 기술이다. 19세기 중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경제학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기계의 발명이 어떤 인간의 매일매일의 노고를 가볍게 했는가는 참으로 의문이다.” ++++

++++
칼 마르크스, 『자본론 I-2』, 이론과 실천, p.427에서 재인용, 원문 <Of the Stationary State - from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John Stuart Mill (1848)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왜냐하면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기계의 목적은 이러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적 조건하에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그 밖의 모든 노동생산력의 발전이 그러하듯이 상품을 저렴하게 하는 것이며,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단축하여 그가 자본가에게 무상으로 주고 있는 다른 부분을 연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 칼 마르크스, 같은 책, pp.427~443을 볼 것. 마르크스는 기계와 대공업을 논하면서, 자본주의적 조건하에서 ‘기계의 발달’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살펴볼 때 개념적 ․ 도구적 정의 ++++++ 에서 벗어나 그것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즉 ‘비판적인 기술사(技術史)’ 입장에 서야한다. 1735년 존 와이엇(John Wyatt)가 방적기계를 발명했고, 그것이 18세기의 산업혁명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불완전한 것이지만 방적기는 이미 그보다 먼저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영국과 같은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비판적인 기술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어떤 기술 발명의 사회적 맥락과 그 사용 방식을 살핀다. 이런 입장에서 18세기 산업혁명 시대를 보면 한 개인에 의해서 발명이 이루어진 경우가 얼마나 적은가를 알게 될 것이다.

++++++ 하이데거는 이를 “기술에 대한 도구적 ․ 인간학적 규정”이라고 부른다.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책, p.11을 볼 것

또한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연 및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이때 기술이 인간 노동 과정과 관련을 맺고 있다면, 기술학(技術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태도와 인간 생활의 직접적인 생산과정을 밝혀줄 수 있다. 인간 생활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온갖 사회적 생활관계와 거기서 생겨나는 정신적 관념들을 포함한다. +++++++

+++++++   칼 마르크스, 『자본론 I-2』, p.428~429를 볼 것

기술에 의한 사회적 효과, 즉 기술에 따른 경험과 지각을 포함한 삶의 총체적 변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기술의 사회적 성격을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술 자체가 아닌 기술의 사회적 이용방식에 따라 우리의 생활 방식과 경험들이 달라지고 거기서 정서와 지각, 정신적 관념들・가치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  메모들 ----------

하지만 이 모순은 우리가 미리 상정한 고정 관념과 실제적 운동 사이의 모순일 따름이다.


먼저 테크놀로지 발전의 원인을 살핀 후 이에 따라 문화산업, 방송통신융합의  내에서의 변화를 기술지대(技術地代)라는 개념을 통해 살펴 볼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예술 작품의 생산과 수용 형식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원인 :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논의를 살필 것

기계에 대한 프루동의 주장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자본론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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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자본주의와 자유노동의 보상 - 독점지대, 4차 산업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 이항우, 한울(2017.8) 정동자본주의는 감정노동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인지자본주의, 인지와 자본 등과도 공명한다. 그리고 좀 더 관심이 있다면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의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렙소디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2019.7.16일 추가)

2019/07/15 23:48 2019/07/1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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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2012~13년 사이에 썼을 것이다. '짐승같다'는 말이 있다. 잔악함이나 못된 정도가 '사람'의 도(선)를 넘어섰을 때 사용한다. 나쁜 쪽으로 '되기(becoming, 들뢰즈)가 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방향이라면 '~되기'가 아니라 '~이기'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스피노자가 던졌던 질문. 왜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왜 같은 물건을 보고 서로 다른 정서(정동/감응)이 일어날까? 그런 상황이 지속될 때, 해부학이나 분류학의 기준으로 같은 종이라 할 수 있을까? 종을 구별하는 다른 차원, 강도적 차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맹자도 했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가 종교전쟁(네덜란드의 내전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면, 맹자는 전국시대의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 다만 스피노자는 차이에, 역량/능력과 감응의 차이를 말했다면, 맹자는 그 와중에 감응/정서의 동일성(?)을 말했다. 그런데 맹자의 단(端, 실마리)을 동일성이라고 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사물이나 사람의 규정성인 정체성, 동일성을 의미할 정도로 본질처럼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의 길과 짐승의 길이 나뉠 수 있다. 현대의 진화생물학적 설명에 따르면 유전자에 새겨진 사회성을 실마리라 할 수 있을까!

6월 19일 올린 뉴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강한 정서적 연대감>부분은 아래 글을 써보려고 하면서 읽은 책/논문들에서 흄과 관련된 부분을 좀 정리한 것이다. 스미스와 흄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이 기억이 맞을 것이다).

이 글은 <상상력, 우리 자신을 초월하도록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 같다. 스토리(이야기, 드라마, 특히 TV 드라마)의 사회적 기능에 빠져 있었고, 그 아래 있는 것으로 상상력을 살펴보았었다.

근대 초기 철학자들, 스피노자 등에게 상상력(imagnation)은 창의성(creation)과 관련성보다는 감각작용(이미지 작용 - 이미지가 감각기관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에 더 가깝다. 이런 감각작용-감응/정서(정신작용이라 할 수 있는 것) 등이 어떻게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가, 그 결과/효과들에서 스토리/드라마까지 연결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싫어했던/비판했던' 흄을 읽기 시작했다. 또 스미스도 ....  어떤 기사(news)보다도 드라마(연극, 소설 등)이 사회를 묶어내는데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이런 가설 위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BBC의 전략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강한 정서적 연대감"이란 키워드를 보았다. 어떤 우연들이 만나 이런 저런 것들을 공부하게 만들었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읽기


연민과 동정심, 사람과 사람을 사이를 잇는 마음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연민(憐憫: pity)과 동정심(同情心: compassion) 역시 ‘타고난 성품(天性: principles)’이라고 말한다. 연민과 동정심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그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때 드는 감정이다. 또 이런 감정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 감정이다.
 성인(聖人)과 무도한 폭도(暴徒) 또는 냉혹한 범죄자의 차이는 이러한 감정을 얼마나 예민하게 느끼는가, 둔감하게 느끼는가에 있지 않을까?


맹자(孟子, BC 372? ~ 289?)는 “타고난 바탕을 따른다면 선하게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본성이 선하다는 의미이다. 선하지 않게 되는 것은 타고난 재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인간의 본성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말하지 않고, 이런 덕(德)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실마리(端, 가능태) 정도가 본성에 있다고 한다.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이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에 빠지려는 것을 보게 된다면, 깜짝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에게서 어린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어짊(仁)의 단서이다. 이러한 인은 밖에서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라고 맹자는 지적한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남의 불행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연민의 마음이고, 그 불행을 내 일처럼 느끼는 마음, 즉 동정심이다.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의 예처럼 이해타산이 개입하기 전에 순간적으로 드는 마음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 어린아이를 구하지만 어떤 사람은 외면해 버릴 수도 있다. 맹자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잇는 마음을 동정심이라고 생각했다. 동정심을 갖고 있어 나는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공감하고, 나와 내 가족처럼 타인을 보살필 수 있다.


그런데 맹자가 볼 때 이 공감의 능력은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어 세상 전체로 확대된다. 우물 속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남의 불행]를 가까이서 볼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공감의 가능성과 TV

익사한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시신이 터키 해변에서 발견(2015.9.3일) 같은 일이다. 신문, 인터넷 등 모든 매체가, 그리고 그 생생함에 있어 TV가 합심해 불러일으킨 것이 '어린아이의 불행에 대한 동정심이다. 거리감은 감각의 강도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매클루언은 TV가 만들어낸 효과를 보면서 '지구촌'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2019.7.11일 추가)

tele-vision, 원격 현전은 거리감을 줄이고(없애고) 장소성에 얽매인 관계를 풀어헤쳐 놓는다. 텔레비전의 해상도, 흑백 < 컬러 < SD < HD < UHD 등으로의 발전은 '생생함'에 대한 추구의 결과이다. 영상을 보여주면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또 그들과 만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우리의 정서(신체와 정신)를 흔들어놓고 싶어한다. 상상력이 아닌 상 그 자체가 눈 앞에 펼쳐지고 우리의 몸이 그 안(화면 안)으로 침몰되길 원하는 것이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가 커다란 원색의 그림을 그린 이유이기도 하다. 눈을 한 가득 채운 색면(추상) 속에서 우린 경이를 느끼고, 숭고미에 빠져들듯이 현재의 기술은 그런 효과/미학을 추구한다.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난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비극, 아이러니, 관능성, 운명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만 훙미 있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와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린 텔레비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로스코 채플(Rothko Chaple)에서 우린 벤야민이 '죽음을 선언'했던 '아우라 장치-제의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2019.7.12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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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크 로스코 그림 앞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15.5.15

따라서 가장 가까이 있는 자기 부모를 가장 ‘사랑[동정하고 공감]’할 것이고, 친척 어른은 그 보다 덜 절실한(切實: 느낌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 마음으로, 동네 어른은 그 보다 더 엷은 마음으로 사랑할 것이다. 사랑의 영역은 점점 엷어지긴 해도 감각의 강도적 차이(强度的 差異) 나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사랑과 관심을 통해 내가 확대[확장]되는 것이라면 나는 이 세상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절실함, 영국 경험론의 전통에서 말한다면 강렬함과 생생함의 차이는 있지만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맹자는 이런 과정을 “동정심을 느끼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 부분까지 이르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맹자는 이런 마음의 단서를 키워서 연민이 모든 행위를 지배하는 원칙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인(仁)하다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 잠재적인 것을 길러내야 하고, 또 잘 길러내면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



감각의 강도적 차이, 신체에 부딪히는 물질의 힘


지금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에 빠지려 한다. 그것을 본 모든 사람이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며 동정심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세기(强度)는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예민하게[강렬하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둔감하게[더 엷은 마음으로] 느낀다. 이런 감정을 마음으로 느끼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감정의 세기 차이는 감각의 세기 차이에서 온다.


사물로부터 오감(五感: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감각자료(sense data)들은 순식간에 다른 감각자료로 대체된다. 그에 맞춰 여러 감정들도 순간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어떤 감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 점점 강화되기도 한다. 감각과 감정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우리 몸 속에서 평행하게 생기고 사라진다. 우리는 어떤 것을 봄[감각]과 그것에 대해 느낌[감정]을 따로 떼어 분석할 수 있지만 그것의 선후를 나눌 수 없다. 심신평행론


“모든 감각은 줄어질 수 있고 따라서 감각을 없애서 점차로 소멸케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상에서의 실재성과 부정성 사이에는 많은 가능적인 중간적 감각들의 연속적 연관이 있다.”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순수이성비판』에서 한 말이다. 가능적인 중간적 감각들의 연속적 연관이란 말은 감각이 없음(無, 否定性)에서 감각이 어느 양에까지 점차로 올라갈(上昇) 수 있음을 말한다. 물아일체(物我一體)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우리는 사물 자체(실재성)에 더 가깝게 갈 수 있다.


“지각에 있어서 모든 실재는 도(度, degree)를 가지며, 도와 부정성(零, zero) 사이에는 점점 감소하는 「도」의 무한의 단계가 있다면, 그리고 또 모든 감관이 감각의 수용성(受容性)에 대한 일정한 도를 가져야 한다면, 현상 중에서 모든 실재적인 것이 없음을 증명하는 어떠한 지각도 불가능하고, 따라서 어떠한 경험도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경험으로부터는 공허한 공간 또는 공허한 시간에 관한 증명이 끌어내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감성적 직관에서 실재적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은 첫째로 그 자신 지각될 수 없고 둘째로 그런 「없음」은 어떠한 유일한 현상으로부터도 결과될 수 없고, 「현상의 실재」의 도(度)의 구별로부터서도 결과될 수 없으며, 또한 현상의 설명을 위해서 가정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공간이나 시간의 전직관(全直觀)은 어디까지나 실재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의 어떤 부분도 공허하지 않다. 그러나 모든 실재는 현상의 불변적 외연량을 변경함 없이 무한한 단계를 거쳐서 없음(공허)에까지 줄어질 수 있는 도(度)를 가진다. 이 때문에 공간이나 시간을 메우는 무한히 서로 다른 도(度)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직관의 외연량은 동일하더라도, 서로 다른 현상들에 있어서의 내포량은 보다 적거나 보다 클 수가 있다.” 모든 경험 자체에 이미 실재적인 것[사물, 사건]에 대한 일정한 도를 내포한다. 사회적 실제 뒤르케임


감각이 없음과 물아일체[사물 자체를 앎] 사이에는 무한한 앎의 단계가 있다. 이 하나 하나의 단계가 도(度, degree)이다.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는 순간 예민하고 강렬하게 느끼거나, 둔감하고 엷게 느끼는 것을 사람들 사이에 「강도(强度)」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지나며 그런 일이 일어난 곳을 멀리서 아주 짧은 순간 지나쳤다 해도 강도가 영(零, zero)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어떤 것에 대한 감각과 감정[그 어떤 것에 대한 기쁨(좋음)과 슬픔(싫음)]이 평행하게 동시에 존재한다면, 둘 다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그 보고 느끼는 강도를 강화, 또는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자기 일이면 기쁜 것을 원하고 슬픈 것을 피하려고 하는 반면 남의 일은 기쁜 것보다 슬픈 것에 더 관심[동정심]이 가는 것이 사람인 듯 하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살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이다.)


▸ "감각의 강도적 차이, 신체에 부딪히는 물질의 힘"에서 중요한 것은 외적인 자극, 물질의 힘도 있지만 이것을 느끼는, 신체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 신체의 능력에 의해 종이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불변하는 '종'이라기 보다는 개체군정도가. (2019.7.11일 추가)


상상력(想像力), 우리 자신을 초월하도록 하는 것


우리는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없고,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연민과 동정심을 갖고 공감할 수 있는가? 애담 스미스는 상상(想像)이라고 말한다. 상상을 통해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하는 것이다.


“상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타인이 처한 상황에 놓고 우리 자신이 타인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은 마치 우리가 타인의 몸 속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그와 동일인(同一人)이 되고, 그럼으로써 타인의 감각에 대한 어떤 관념을 형성하여, 비록 그 정도는 약하다 할지라도, 심지어는 타인의 것과 유사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

▸ 상상력을 스토리라고 읽자! (2019.7.11일 추가)


---- 단상들 ----


물아일체에 도달하는 힘은 상상력에 있다.
▸ 아우라, 장치 등과도 관련될 수 있다. (2019.7.11일 추가)

이것은 어린아이가 우물 속에 빠지려 할 때 느끼는 것의 무한

마음에는 예민함이나 둔감함에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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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우물이라는 경험의 발생적 구성요소 (라이프니츠의 주름처럼 잠재적인 것) 파랑과 노랑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다는 관계 – 요소들 사이에 성립하는 변별적 관계 파랑과 노랑이 섞인다


그것을 보는 나 … 관계로부터 강도적 크기로서의 경험 .. 특정성들 초록으로 보인다.

▸ 장소성을 만들어내는, 어떤 감응을 끌어내는 장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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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상을 하나로 묶은 전 세계인을 밥상머리에 올려놓는 TV가 나왔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동정심의 폭발 … 상대적으로 강한 동족애)


가까이서 본다는 것 생생하다는 것 … 절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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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사랑을 통해 나의 존재가 확대되는 것 … 미디어 인간의 확장이란 매클루언의 말  인간의 확장 = 정서적 확장, 공감적 확장 = 애견에까지 확장되는 공감 능력 ..


“동정심을 느끼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 부분까지 이르도록 하는” 과정  이과정에서 미디어의 역할 그리스 축제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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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 .. 프레임에 의해 조작된, 편집된 동정심과 공감의 세계에 대한 야유
▸ 발터 벤야민의 사촌, 한나 아렌트의 첫 번째 남편 (2019.7.11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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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하게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한 동정심과 같은 감정을 예민하게 혹은 둔감하게 느끼는 것을 ‘강도적 차이(强度的 差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측은지심 인지단야


https://vimeo.com/262754814 (2019.7.12)

Rothko Chapel, 2018 from Catherine Edelman Gallery on Vimeo.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마크 로스코 전시회, 2015.3.28

2019/07/11 23:37 2019/07/1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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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3년 사이에 쓴 글인 듯하다. 6월 19일 올린 ⟪뉴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의 <고대 그리스의 연극, 공적 공간> 부분은 아래 글의 일부만을 떼다 놓은 것이다. ⟪뉴미디어 탐구⟫란 큰 제목으로 이리 저리을 끌쩍대면서 시간을 보내고, 이것 저것을 찾아보던 때이다. 따로 제목도 없다.

이 글을 쓰게된 직접적인 동기는 첫 세 단락에 있다. 세번째 단락은 '박홍규,⟪플라톤다시보기❯, 필맥, 2009년, pp.129~130'을 보면서 갖게된 의문을 써놓은 것이다.
 
플라톤 다시보기 - 10점
박홍규/필맥
 
시간이 되면 참고/인용된 책과 논문들에 대한 주석을 업데이트해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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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관람 수당

30년 가까이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431~404년 B.C.)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하면서 끝이 났다. 8개월이 지난 다음 해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이 부활한다.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결성해 50년 간 지속된 페르시아전쟁(499 ~ 449년 B.C.)에서 승리했을 때와 비교하면 과거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을 때이다. 그런데 아테네에서는 우리 시대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민회에 출석하는 시민에게 수당이 지급됨으로써 참여자가 늘어나게 된 것도 민주정이 부활한 직후의 일이었다. 이와 동시에 연극관람 수당도 지급됐다. 그리스에서 연극이 성행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당시에 연극관람이 민주정에 참여하는 방식의 하나로 중시됐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생각엔패전 해결할 다른 문제들도 많았을텐데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아테네 민주정은 연극관람 수당을 지급했을까? 그것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국가 재정에서 연극 관람료를 지불한 것은 페리클레스(Perikles, 495? ~ 429 B.C.) 시대부터이다. 농번기의 일손 부족 때문에 축제 참가가 어려운 농촌 시민들의 참가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에서 시민들의 입장권과 일비(日費) 지불하기도 했다. 페리클레스는 배심원, 500 평의회 의원, 추첨에 의해 임명된 공직자 등에게 국가가 수당을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민들이 협의회와 재판소에 나가도록 하기 위해 국가는 법으로 일당과 급식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가난한 시민들도 생업을 일시 중지하면서 공직에 나갈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테네인들은 연극관람을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시했다 것을 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장의 크기 보면 몇십 정도 들어가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우리의 경험을 압도한다. 5세기 후반 아티카(Attica, 아테네를 포함한 주변 지역)에는 20만명의 시민이 살았다. 이들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소유한 30 이상의 남성은 대략 2만에서 3만명 정도였다. 장소에서 10분의 1 정도의 시민이, 참정권자 대부분이 함께 공연을 있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석조 객석은 14,000명에서 17,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과장이었겠지만 플라톤(Plato, 429 ~ 347 B.C.) 향연에서 기원전 416 축제에 3만명의 관객이 참석했다고 전한다. 그들은 이런 거대한 극장에 모여 연극을 보았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연극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다시 묻게 된다.

아테네에서 모든 드라마 번만 공연되었다. 왜냐하면 디오니소스 신에게는 오직 최초의 수확물만을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연은 축구 경기처럼 일회적이었다. 극장은 축구 경기장처럼 한번에 수만 명의 관람자를 수용할 만큼 커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된 작품의 재공연이 허용되긴 했지만 장기 공연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재공연을 위해서는 민회의 결정이 필요했고, 아테네 아닌 주변 농촌지역에서 열린 다른 축제에서 상연되었다. 하지만 공연의 일회성도 거대한 극장의 필요성을 바로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함께 모여서 연극을 보아야 사회적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아테네인들이 “<박코스의 여신도들>, <페니키아의 여인들>, <오이디푸스> 메데아 혹은 엘렉트라의 불행을 공연하는데 제국을 유지하고 페르시아인들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드는 비용보다 많은 돈을 지불했다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이 크게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3 진행된 연극 경연인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를 위해서는 대략 노동자 100가구 정도가 4 생활할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테네가 일년 해군을 유지하는 비용의 10분의 1 달하는 돈이었다.

고대 아테네인들이 연극에 이렇게 사회적 비용을 투자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직접적인 연구는 없지만, 우리는 당시 연극이 가졌던 사회적 중요성을 추론해 수는 있다.


 폴리스

폴리스(polis) 공동체를 뜻한다. 폴리스는 정착지의 물적 구조(material structures) 아닌 정착지를 이루어 사는 사람들, 시민을 가리킨다. 이들은 종교적 일체감으로 묶여져 있었다. 농촌 공동체들, 촌락들의 기본 구성은 노예가 포함된 대가족인 오이코스(oikos, , 가족)였다. 오이코스들은 경작에 의존하는 자급 자족 생산단위였다. 따라서 오이코스가 생산하지 않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는 농장의 잉여 생산물을 교환해야 했다. 이런 배경으로 교역이 고대 그리스 사회의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폴리스는 몇몇 촌락들이 합병되는 촌락집주(村落集住, synoikismos) 과정을 거쳐 형성된 도시다. 처음에는 제단, 다음에는 신전으로 이어지는 장소, 공통의 예배소를 중심으로 뭉쳐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고, 이런 의례가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켜주었다. 거주민들은 서로 만나 물물 교환을 하고, 공동체의 운영을 논의할 있도록 중심에 위치한 개발된 장소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장소가 아고라(agora, 광장)였다. 독립적인 가족들은 통일된 경배장소, 수호신을 모신 신전이라는 강력한 상징과 아고라에서의 모임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러한 물적 구조를 중심으로 방어벽이 처지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 방어벽은 동양에서는 수천 동안 있었지만 폴리스에는 처음 도입된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아테네는 아테나 여신에 대한 경배의 중심지인 아크로폴리스와 회의와 행정의 중심지인 아고라를 중심으로 통일된 구조를 보여준다. 이후 아티카의 발전과 함께 각종 축제와 행사, 의식이 추가되었고 이런 것들은 시민들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시켰다. 처음에는 왕이, 다음에는 정해진 기간 동안 법에 따라 봉직했던 최고 행정관인 집정관(執政官, archon) 행사했던 집행권을 통해 시민은 연맹(koinon, 코이논) 유지했다. 이런 점에서 폴리스는 서양 최초의 법치국가라 있다.


연극, 백과사전적 교육 매체

고대 그리스에 문자가 보급되고 폴리스가 확립되는 것은 기원전 8세기 전후에 일어난 일이다. 기원전 800~750년경 호메로스(Homeros)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썼고, 기원전 750~650년경 헤시오도스(Hesiodos) 신들의 계보, 일과 나날 썼다.

아테네의 시민들을 이어준 것도 종교였다. 하지만 종교는 지금처럼 공통의 신념을 바탕으로 했다기보다는 올림포스산에 살고 있는 여러 신들을 위한 의례(儀禮, ceremony)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가 강했다. 서사시와 연극은 이런 공동체적 의례축제에서 발생했고, 초기 예술들은 그곳에서 가장 효과를 발휘했다.

더욱이 서사시와 연극은 아주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비극 시인들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 시민의 삶과 사생활을 영위하는 필요한 정보나 지침을 담은 방대한 백과사전이었다. 극의 소재는 축제에 모인 시민들의 공동 경험과 지식이었다.

기원전 5세기까지도 그리스는 아직 (記錄)보다는 (口誦) 중심의 사회였고, 시나 연극에서 채용한 음악적 형식과 상투적 문구의 반복은 지식의 전달과 기억에 효과적이었다. 따라서 시와 연극은 공동체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되었다. 민회에서는 정치적 논쟁이, 법정에서는 변론이, 시장이나 레슬링학교에서는 철학적 대화가, 축제가 열리면 극장에서는 드라마가 상연되고 서사시가 낭송되었다. 현재는 책으로 읽는 문학(文學) () 드라마(drama) 당시에는 모두 사람의 목소리로 전달되었다. 학교에서의 교육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423년경에 씌어진 구름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수금 연주자가 교장을 맡은 소년학교의 수업 광경을 묘사한다.

그럼 그 옛날 내가 정의의 대변자로서 번창하고 절제가
존중되었을 때, 소년들의 교육방법이 어떠했는지 말하겠소.
첫째, 소년한테서는 절대로 투털거리는 소리가 들려서는 안되었소.
그 다음, 한 구역의 소년들은 함께 거리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음악교사의 집으로 걸어갔소. 함박눈이 내려도 외투를 입지않고.
그러면 음악교사는 먼저 양다리를 꼬지 않고 얌전히 앉아
“두려운 도시의 파괴자 팔라스여”, 또는 “멀리 울려퍼지는 뤼라 소리” 같은 노래를
부르도록 가르쳤소. 그들의 아버지들이 부르던 선율에 맞춰서.
그리고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돌출하거나 전조(轉調)를 시도하여
요즘 유행하는 프뤼니스 조(調)의 장식음을 달면
무사 여신들을 모독한 자로 몰매를 맞았소

구름에서 교사가 먼저 선창한 노래는 시인 람프로클레스(Lamprokles) 케데이데스(Kedeides) 디오니소스 찬가(디튀람보스: dithyrambos) 첫부분이다.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제사 사용되었던 이런 시의 내용은 공동의 경험과 지식들로 채워져 있었고, 운율에 맞춘 음악적 형식을 띠고 있었다. 아테네의 학교에서는 이런 시를 음악적인 방식으로 가르쳤다. 따라서 학교의 교사는 시인이자 수금 연주가였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있었던 기원전 5세기의 60년간은()-읽고 쓰기 단계 구송에서 문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쓰기 능력은 상당히 부족해도 전체 주민들 사이로 점차 퍼져 나갔지만, 읽기 능력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왜냐하면 독서를 가능케 해줄 책자나 두루마리 파피루스 따위를 손쉽게 구할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 사용의 증가라는 기술적 진보 속에서도 전통적인 구두 교육이 여전히 우세했다.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에 걸쳐 철학과 역사서가 출판되고 새로운 매체들이 이것을 대체할 때까지 시와 연극의 교육적 역할은 계속되었다.


정치 참여의 한 방식, 연극

축제에서 상연된 연극들은 매우 정치적이었다. 그리스 공동체의 경험이 응축된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비극보다 희극에서 이런 측면이 뚜렷히 나타난다. 희극은 주제와 소재, 장인물, 작가의 메시지 등에서 아테네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희극은 관객이자 민주적 의사결정의 주체인 시민들이 함께 공연을 보며 중요한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했다. 공연에서 제시된 문제 해결 방식은 단선적이지 않고 열려있었다. 희극 시인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며 뤼시스트라테 좋은 예이다.

기원전 411, 이십여 년째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던 때이다. 남자들은 전쟁터를 떠돌았고 여인들은 하염없이 기다렸다. 싸움이 벌어지면 수많은 과부와 고아들이 생겨났다. 이때 희극의 주인공인 뤼시스트라테는 발칙한 생각을 한다. 섹스 파업! 여자들이 섹스를 거부하면 욕정을 견디다 못한 남자들이 전쟁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오리라. 뤼시스트라테와 아테네의 여인들이 섹스 파업을 맹세한다.

그 누구도, 애인이든 남편이든,
빳빳이 세우고 나에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며,
난 집에선 황소처럼 씩씩대는 남정네와 몸 안 섞고 살면서도,
야사시한 빛깔 옷을 입고 요염하게 분칠하여,
남자가 나에게 후끈 달아오르게 할 것이며,
절대로 내 남자에게로 자발적으론 안 넘어갈 것이며,
만약 내가 싫다는 데도 힘으로 덤벼든다면,
정말 재미 하나도 없게 해주고 적극 호응하는 동작은 결코 취하지 않을 것이며,
천장을 향하여 다리를 들지도 않고,
강판에 새겨진 암사자처럼 엎드려서 엉덩이를 내밀지도 않을 것임을,
엄숙히 맹세하며, 이에 이 술잔을 비우는 바입니다.
만약 이것을 어긴다면, 맹물이 이 술잔을 가득 채우리라.

이성을 가졌다면, 분별력이 있다면, 선조들의 교육을 받았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어리석은 짓이다. 둘은 같은 동족으로 올림피아의 제우스 축제, 퓌토(델포이의 옛이름) 아폴론 축제를 함께 치룬 종교적 공동체였다. 테르모필라이 근처에 있는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에서 모였던 12부족 동맹의 일원이었고, ‘야만족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공격하기 위해 페르시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연극에서는 이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얼마나 돈독한 관계였는지를 말하고, 각각의 잘잘못 따져 묻는다.

나는 한낱 여자지만 이성은 갖고 있어요.
나는 원래 분별력이 없지 않지만
아버지와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많이 듣고
나쁘지 않은 교육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는 그대들을 똑같이 꾸짖으려는 것이며,
그것은 당연한 일예요. 그대들은 동족(同族)으로서
하나의 그릇에서 제단에다 성수(聖水)를 뿌렸던 것이오.
올림피아에서, 테르모필라이에서, 퓌토에서.
(그 밖에 다른 많은 제단들은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대들은 야만족의 적군이 상존하고 있는데도
헬라스의 사람들과 도시들을 파괴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논리는 양쪽 모두에 해당돼요.

 뤼시스트라테 파업이 성공해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종전하면서 끝이 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연극을 통해 적과 자신을 돌아보도록 한다. 적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자는 일반적 결론에서 벗어나 다른 선택을 보여준다. 다만 여자들의 섹스 파업이란 기발한 상상 속에서 이런 것을 제시하기 때문에 희극적이다.

▸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고있는 일본(아베)과의 전쟁(무역전쟁) 속에서 불매운동으로 대응하는 애국주의 물결을 생각할 때, 이천여년이 지난 그리스의 연극은 얼마나 '이성적'인가! (2019.7.9 추가) 

이처럼 고대 그리스 희극은 비상식적 주제를 선택했고 여러 입장들을 드러냈다. 여러 사람들 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은 외설스런 농담들과 뒤섞여 정신적 자유공간을 만들고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축제에서 상연된 연극을 보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스스로 반성하고, 공동체와 자신의 관계를 곱씹었다. 공동체 안에 있던 현안들에 대한 독자적인 시각 등을 세울 있었다. 따라서 희극에서 반영된 규범의 확인과 해체는 전사회로 확산되어 시민들 사이의 직접적 토론거리가 되었다. 연극은 종교적 일체감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등과 연결된 민주주의 구조의 일부였다.  

플라톤 국가政體에서 이상적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희극, 비극 작가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연극은 아테네 공동체에 종교, 교육, 정치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연극을 통해 공동체의 현안을 이야기하고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이끌어내려한 것은 고대 그리스만의 일은 아니다. 화가 고야(Francisco Goya, 1746 ~ 1828) 살았던 에스파니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1789) 일어났고, 그에 따른 프랑스 혁명 전쟁(1792 ~ 1802) 연이은 나폴레옹 전쟁(1803 ~ 1815)으로 유럽이 격랑에 휩싸였다.  


--- 에스파니아 이야기를 쓰려고 찾아놓은 글 ---
페르난도가
살아있는 시대에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 발발하였고, 그에 따른 프랑스 혁명 전쟁 연이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을 거대한 격랑에 휩싸였다. 전란은 체제의 부패와 노화가 진행되고 있던 스페인에 비극을 초래했고, 오랫동안 국제무대에서 벗어나 있던 스페인을 유럽에서 가장 관심사로 만든다.
소년기에서 청년기까지 왕위계승자의 지위에 있었지만, 부왕과 그들이 총애하는 마누엘 고도이(모친의 애인)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 괴로운 입장에 내몰려, 원한을 가슴에 품고서도, 자중하고 있었다. 약화된 정부에 대한 전국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1805에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정정 불안이 계속된 1807 10, 페르난도는 〈에스코리알 음모 사건〉의 공범으로 체포되었다. 음모는 정부의 자유주의적인 개혁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도움을 받아 카를로스 4 등을 추방하고 페르난드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려 것이다. 개혁파의 희망의 별이라는 입장에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페르난도는 음모가 발각되자 그들을 재빨리 배신하고, 부모님의 지시에 따랐다.


천 개가 넘는 폴리스, 소피스트

그리스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어 일찍부터 해외무역에 종사하였다. 기원전 9세기 말부터 7세기까지 그리스 본토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지중해 주변 지역인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소아시아, 멀리 현대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 지역인 갈리아(Gallia) 남부 스페인 해안까지 이주하여 식민지를 세웠다.

그리스 주변지역의 식민지화는 쟁기가 도입되면서 이어진 전면적인 농업혁명에 따라 인구 성장했기 때문이다. 인구 성장과 함께 군주정은 귀족정으로 전환되었고 폴리스 내부의 정치적 긴장이 발생하였다. 이에 귀족 대가족들은 재산 분산을 막기 위해 장남에게 전재산을 물려주게 된다. 이제 나머지 형제는 다른 곳에서 재산을 일으킬 밖에 없었다. 척박한 그리스의 자연 환경 때문에 필요한 것을 교역을 통해 얻어야 했고, 이를 위해선 새로운 시장 개척이 필요했다. 이민 현상이 끝난 기원전 6세기 무렵 본토에 200개가 넘는 폴리스가 있었고 지중해 일대의 식민시까지를 합치면 1,000개가 넘었다.

▸   그리스에, 연극에 관심을 둔 이유 중의 하나가 200개가 넘는 폴리스, 아니 1,000개가 넘는 폴리스 문제였다. 이것을 어떻게 하나로, 즉 정치적 공통체로 묶어낼까! 이런 것이 당대의 문제의식이 아니었을까! 비슷한 일이 다시 근대로 들어서는 독일에서, 신구교 간에 종교전쟁을 치르는 독일에서 일어난다. 나는 다시 우리시대가, 내전에 빠져드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일(인쇄술, 책의 대량보급과 정보전달/범위 속도의 가속화)과 현재의 우리(인터넷)는 매체의 변화, 공동체를 묶던 제도의 변화 속에서 이런 상황에 빠져든 것인 아닌가! 이런 생각 속에서 분열된 공동체,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매체, 그것을 묶어내는 콘텐츠(연극, 소설, 신문, 드라마 등)와 그것의 전달형식 등등에 관심이 갔다. 2007년 이후 계속 이 문제를 붙들고 있다. (2019.7.9 추가)

그리고 모든 시민이 들어와 볼 수 있는 정도의 극장, 이것도 중요하다. 동시에 한장소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집단적인 정서적 공감, 전염병과 상태에 빠져야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빠뜨리는 제도적/기술적 장치로서 우리 문명이 발명한 것은 텔레비전이다. 연극에 대한 관심은 텔레비전을 인터넷이 대체할 수 있을까하는 것에 있다. 기술적 가능성이 아닌, 텔레비전이 맡은 역할, 사회적 기능에 대한 질문이다. 개인의 수준까지 점점 파편화되는 인터넷이 이런 역할/기능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지역에 모여사는 개체(개인)를 공동체의 성원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 말이다. (7.10 추가)


그리스 세계인 식민시와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해상무역은 더욱 발전하였다. 기원전 6세기 아테네,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잇는 지협에 있었던 코린토스(Corinth; Korinthos) 주요한 해운 상업 강국으로 부상했다. 기원전 449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기원전 461년부터 429년까지 지속된 페리클레스 치하에 귀족정치는 민주정치로 바뀌었다.

민주정 신화적, 혈연적 신분 질서에서 맹목적 교조주의를 배격했고 귀족과 부자만이 아닌 전체 자유 시민들에게 지도력이 부과되었다. 모든 시민들이 참여한 정치적 토론을 통해 정책이 결정되었다. 개인의 독립적 의사 표시를 보장한 민주정의 출현과 함께 시정(市政) 대한 지식 전달 방식인 변론술이 급속히 요청되었다. 상호 설득을 통하여 견해의 일치를 구했으므로 설득술이 중요한 출세의 도구였다.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토론 참여를 장려하려고 민회에서 말을 사람에게는 면세의 특권까지도 부여되었다.

기원전 5세기부터 4세기까지 지중해의 중심지가 아테네에는떠돌이 교사 외교관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그리스 세계에서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서로 관습이 다른 나라들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관찰하면서 얻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을 소피스트(Sophist) 불렀다. 개개 문화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얻어진 지식은  소피스트에게 어떤 절대적 진리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였다. 따라서 소피스트들은 사회적 제도가 금기나 마술적인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것으로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관습적이라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종교적, 도덕적 규약들은 인간이 만든 규칙과 관습들일 뿐이다.  

이들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481?~411 B.C.), 고르기아스(Gorgias, 483~375 B.C.), 트라시마쿠스(Thrasymachus, 459~400 B.C.) 등이 가장 유명하다. 프로타고라스는 현재 그리스, 불가리아, 터키에 걸쳐 있는 트라키아(Thrace)에서, 고르기아스는 이탈리아 시실리섬의 레온티니(Lentini)에서, 그리고 트라시마쿠스는 현재 터키 이스탄불 근처의 캘세돈(Chalcedon)에서 아테네로 왔다.

이런 소피스트들의 사상은 혈연에 기반했던 아테네의 귀족정치가 민주정치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힘을 발휘했다. 소피스트들의 명료한 표현과 설득력이 깃든 화술(話術), 호메로스적 운문에서 벗어난 산문과 문법 등에 대한 실용적 기술들, 새로운 사고 방식이 시대 상황에 들어맞았다. 이들은 민주적 아테네의 시민들을 교육시킬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시적 구송(口誦) 통해 전승된 신화적 지식과는 다른 형태의 지식 새로운 생활양식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소피스트들은 아테네에서 정치적 교양을 가르쳤다. 소피스트는 대부분 다른 도시국가 출신의 직업적 교사였으므로 당연히 돈을 받았다. 상공업활동을 통해 부를 쌓은 신흥중산계급에 속한 시민들은 이들에게 국가 지도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비싼 수업료 때문에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들(소피스트들)이 항상 말하고 있는 덕(Arete)은 덕(德)과는 상관이 없는 말이며, 말의 원래적인 뜻으로 새기자면 숙련(熟練)이라고 번역됨직한 말이다. 즉 이 때에 중요한 것은 정치적 숙련이다. 시대는 바로 페리클레스의 제국주의시대였다. 새로운 땅을 점령하고 이용하는 사람들과, 의지를 관철하고, 그 무엇인가를 실행하고, 또 그 무엇인가가 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였다. 소피스트들의 학문은 거듭 말해지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교양이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의 교양이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양성해내는 것이었다.


소피스트가 있기 전에는 전통적인 토지귀족의 자녀들만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있었다. 하지만 귀족들의 교육 대부분은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견해와 관습이라는 가계적 전통 위에서 이루어졌다. 교육 내용이 혈통에 따른 도그마와 신화, 전설, 인습 등의 신비주의 위에 있었다. 이런 교육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요구를 만족시킬 없었다.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 미디어의 이해에서 문자의 출현과 함께 그리스에서 일어난 일을 교육 매체, 정치 참여의 방식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추어리즘

3만여명의 아티카 시민들은 모두 민회에 참가하여 의견을 말할 있었다. (말할 자격이 있었다가 맞을 것이다. 2019.7.9) 민회 광장(agora)에는 1 4 명이 동시에 앉을 있었고, 한달에 서너 정도, 일년에 40 모여 회의를 했다. 아테네의 민회에는 보통 번에 5 명에서 6 정도가 모였다. 민회에서는 법안 의결, 전쟁 선포, 조약 인준, 공직자에 대한 통제, 매년 10명의 군사령관 선출 국정에 대한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 민회 이외에 아테네의 법에서 요구하는 시민들의 공적 참여는 아주 많았다. 해마다 1 2천에서 1 4 명의 아티카 시민들이 공직에 참여했다.
 
현재의 행정부격인 평의회는 시민 5 명을 추첨하여 구성되었고 임기는 1년이었다. 평의회의 의장은 매일 아침마다 다시 뽑았고 민회의 의장도 겸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장과 대통령의 임기가 하루였던 셈이다. 법관은 시민 3 6 명에 이르렀다.  2년간은 군대에 복무해야 했고 60세까지 징집상태에 있었다. 공무원도 추첨으로 뽑혀 1년씩 근무했다. 공직은 일년 내내 디오니소스 축제의 코러스 공연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마을 행정 업무, 최고 공직자, 국경 수비대나 해상 동맹 부대에 배치된 군인, 아테네 법정의 배심원 다양했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코러스 노래 경연 클레이스테네스가 토지 귀족의 혈연 중심 지역경제 단위인 부족을 10개의 순수 행정 단위로 재조직하는 민주 개혁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 도입했다고 추측된다. 코러스 노래 경연(디튀람보스 경연)에는 아티카의 10 부족에서 각각 50인으로 구성된 성인 남자 코러스와 소년 코러스가 구성되어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합창곡을 상연했다. 1,000명이 노래 경연에 부족을 대표해 참여했다. 부족 합창대들은 오로지 아티카의 순수 시민들로만 구성되었다.
 
어떤 기능은 종종 전문지식과 숙련도를 요구했지만 이것을 위한 교육도 직업 공무원 제도도 없었다. 노동자 임금 수준보다 낮은 약간의 손실 보정 이외에 어떤 보상금도 없었다. 따라서 국가 행정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집행되었고 아테네인들은 시민이었지 신민(臣民) 아니었다.
 
특수 기술과 관련 기술 요하는 군사령관(스트라테고이)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행정관들은 제비뽑기로 정해졌다. 제비뽑기는 당시 관습적으로 널리 쓰였던 공직자 선출 방식이었다. 오늘날의 총리나 대통령 또는 장관으로 있는 9명의 최상위 공무원인 집정관도 지원자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출되었다. 집정관 선출 방식의 변화 (솔론, 페리클레스) 10명의 군사령관도 민회에서 선출되어 그들이 날마다 번갈아가며 지휘를 맡았다. 실제 페르시아와의 전쟁도 이런 방식으로 10명의 군사령관이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면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렇듯 고대 아테네에서 공무원의 자격 요건 전문성이 아닌 시민으로서의 덕성(arete)였다. 덕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낼 있는 정치적 숙련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나의 전문분야만 추구하는 장인의 작업하는 삶도 자유인이 해야 일이 아닌 노예적인 것으로 여겼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자유를지위, 인격적 불가침성, 경제활동의 자유, 제약받지 않은 이동의 권리로 구성되는 으로 이해했다. 장인은 작업 계약을 하면 자신의 자유로운 지위를 구성하는 요소 가지인 경제 활동의 자유와 제한받지 않는 이동의 권리를 일시적으로 포기하기 때문에제한적인 노예의 조건에서 살아간다 있다. 경제적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의 탐욕적인 삶도 부끄럽게 여겼다. 그것은충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이기 때문이다.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인간의 조건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삶(bioi)의 방식을 구별하였다. 그것은 삶의 필연성과 이것으로부터 비롯된 관계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 선택의 필수적 전제조건인 ‘자유’는 자신의 생계에 기여하는 모든 생활방식을 배제한다. 여기에는 생존의 필연성과 주인의 지배라는 두 가지 강제에 예속된 노예적 삶의 방식인 노동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장인의 작업하는 삶과 상인의 탐욕적인 삶 모두가 배제된다. 간단히 말해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평생동안이든 일시적이든 간에 자유롭게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모든 사람은 제외된다. 이와 본질적으로 다른 나머지 세 가지 삶의 방식들은 ‘아름다운 것’, 다시 말해 필수적이지도 않고 또 단순히 실용적이지도 않은 사물에 관심을 가진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아름다운 것이 주어진 대로 소비되는 육체적 쾌락을 향유하는 삶, 폴리스의 국사에 관여하는 삶(폴리스에서는 탁월함이 아름다운 행위를 낳는다), 그리고 영원한 것의 탐구와 관조에 바쳐지는 철학자의 삶(영원한 것의 지속적인 아름다움은 인간의 개입에 의해 산출될 수도 없으며 그것들의 소비를 통해 변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아래 단락은 위에 동일한 것이 있다 ---
 
이들(소피스트들)이 항상 말하고 있는 덕(Arete)은 덕(德)과는 상관이 없는 말이며, 말의 원래적인 뜻으로 새기자면 숙련(熟練)이라고 번역됨직한 말이다. 즉 이 때에 중요한 것은 정치적 숙련이다. 시대는 바로 페리클레스의 제국주의시대였다. 새로운 땅을 점령하고 이용하는 사람들과, 의지를 관철하고, 그 무엇인가를 실행하고, 또 그 무엇인가가 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였다. 소피스트들의 학문은 거듭 말해지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교양이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의 교양이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양성해내는 것이었다.

 
--- 아래부터는 단상/인용문만 써놓고만 부분 ---
 
권력의 분산을 위한 극단적 아마추어리즘의 수용
인간은 본래 잠재적으로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다

▸   "제비뽑기는 당시 관습적으로 널리 쓰였던 공직자 선출 방식"을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린 너무 전문가주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아렌트는 어디선가 이런 말을 한다.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가나 전문가(관료)에게 맡길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양심선언한 이지문 중위는 <추첨 민주주의 이론과 실제: 직접 대의 민주주의를 보합하는 새로운 시민 정치 패러다임의 모색>이란 책을 썼다. 우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을 제비뽑기로 뽑는다면 어떨까! 이렇게 하려면 이런 태도/전제가 필요하다. "인간은 본래 잠재적으로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그리고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그것이 발현된다고. (2019.7.10)

페리클레스 마라톤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을 추모하며우리의 평범한 시민들은 비록 생업에 종사하기는 하지만 공무의 공정한 심판관들이다 주장하고 있다.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있다고 해도 우리 모두 그것을 비판할 있다. 우리는 논의를 정치적 행위에 대한 장애물로 보지 않고 현명한 행위를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예비행위로 본다. ... 요컨대 나는 아테네는 그리스 세계의 학교이며, 아테네의 모든 개인은 적절한 재능을 기르고 위기에 대처하며 자립적일 있도록 길러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적 학습기관의 역할을 것이 바로 연극이 아닐까?

 
연극, 공적 공간
아렌트

 
 

심지어 시민 내에서도 혈통과 부에따라구분 있었다.

아티카 지역의 30 정도의 인구 도시 거주자는 15만이 안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중소 도시인 아테네에는 1 명이 넘는 수용인원을 가진 극장이 있었다. 극장에서는 연간 백편의 연극공연이 있었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연극이 공동체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말해주는 사실들이다. 연극은 아테네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중심요소였다. 

연극은 가장 중요한 하나의 사회적 교육기관 이었다.

 

 

... 이정린 ...

양피지에서 파피루스의 출현에 따라 운문에서 산문으로의 변화가 가능했다. (플라톤서설 .. 뒷쪽 파피루스 나오는 )

 

정점에 페리클레스

공동체의 생활방식과 경험이 연극, 코러스의 노래, 등에 반영되어 전체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앞서 살펴본 뤼시스트라테처럼 연극은 이럴 아티카 시민들이 정치적 ...

 

 

연극공연은 아테네의 공동체의 전통과 사회문화적 규범, 기원전 492년부터 시작된 오랜 전쟁상태의 지속 등을 반영한다.

 

민주정과 연극을 바로 이어붙이기 어렵다. 스파르타에서는 연극이 없었을까? 확인 필요 ... 없는 같은데 ...

 

사회적 비용부담을 했을까? 여기에 투자를 했을까?

구어문화의 특징 .. 맥클루언 .. 문자문화에서 구어문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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