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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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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탐구'에 해당되는 글 1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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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이후 '기술지대'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술지대'에 관한 이해없이 '플랫폼(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기술지대'에 대한 논의가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이란 점을 고려하면 플랫폼사업과 연결은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Marx의 <자본> 전체가 그렇지만 지대이론도 고전경제학자인 D. Ricardo에서 왔다고 생각하면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지대이론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사는 <방송과 통신정책, IPTV 융합정책의 지대추구론적 분석 : 지대추구의 효율성 분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nvergence Policy of Broadcasting and Telecommunication in IPTV Convergence Service with Reference to Rent Seeking Theory> 때문이다. 이 논문의 저자는 이상호 교수/박사이다. 2007년, 나는 KT IPTV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고, 이박사는 KT에 근무하는 counter partner(차장)였다. 그가 지대이론에 근거해 플랫폼 사업자의 wining을 이야기했고, 우리가 추구했던(?) 'Digital Contents Platform'이란 허무맹랑한 주장(?)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때 나는 학교에 있는 친구에게 예전에 서점에서 서서 읽었던 만델의 <후기자본주의>를 제본해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 지금도 관심을 갖고 관련된 책과 논문들을 읽고 있고, 또 그 사이 기술지대와 플랫폼의 관계에 대한 몇가지 단상을 정리해 <문화경제학> 시간에 짧게 강의를 했다.


기술지대는 기술(기술과 기술적 장치들, 그리고 지적 재산권 등의 법률적 제도 등도 포함된 기술)을 기반으로 부(가치)의 전유를 위한 회로 중 하나이고, 부불노동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이 구체화된 형태가 플랫폼, 또는 FAN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알파벳)이란 것을 모른다면 그 '사업'의 경제적 핵심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자본>이 과학이거나 어떤 경제학적 진리를 담고있다면 객관적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적 회로/기계'에 대한 이론적 분석의 명확성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이 원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진리가 아닌 '인간적인 진실', 계급의 존재와 착취구조 그리고
그것의 철폐에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기술지대'에 대한 관심은 '양가적'이다. 한편이 새로운 착취구조에 관련된 것이 있다면, 반대편에는 '어떻게 하면 플랫폼 사업에 성공할 것인가'라는 측면이 있다. 우린 이런 모순 속에 살고 있다. 2007년부터 살펴보던 것들이지만 내 짧은 지식으로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지난 10년 사이 기술지대와 플랫폼에 관련된 논의들에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 문화과학의 <플랫폼 자본주의> 특집호를 읽으면 '왜 플랫폼 사업자가 돈을 버는지'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문화과학 92호 - 2017.겨울 - 10점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지음/문화과학사


이 글은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2008)와 <텔레비젼: 테크놀러지와 문화형식을 읽으며>(2013) 사이에 있던 글이다. 아래 글에는 정작 기술지대에 대한 내용은 없다. 기술지대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 '기술지대'로 검색하여 살펴보기 바란다. 2007년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한국정보처리학회지에 관련 내용을 발표했었다.

▸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 http://dckorea.co.kr/tc/28

또, 2009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나온 2009년 말 발간된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이란 책자를 읽다가 이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매클루언과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매클루언이 윌리엄스의 생각(비판)처럼 '기술결정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기술이 나온 사회, 경제적인 배경에 대한 관심보다 기술의 변화에 의해 변화된 미디어-인간의 '배치'와 그 '효과'에 관심이 켰다고 본다. 이런 그를 한국에서는 다시 호명해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과 같은 글들이 아전인수/침소봉대로 해석해, 뉴미디어를 위한 기술결정론자로 재탄생시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찌보면 윌리엄스 역시 그렇게 호명된 매클루언을 향해 당대에 기술결정론자라고 비판했기 때문에 불려나온 면이 있다.

정부(정책기관)에서 세금을 써서 연구를 한다면 '미리 답을 정해놓고' 보다는, 열린 형태의 연구를 후원하는 형태가 맞다고 생각한다. '철학과 비전'에는 기술에 대한 맹신과 (방송통신융합을 위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자기합리화만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미래 세대와 우리의 삶을 걱정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산업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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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지대


“싫어하는 것에 반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조절하기 위해 스위치를 끄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두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
마샬 매클루언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미래(1966)>, 스테파니 매클루언 ․ 데이비드 스테인즈 편저, 『매클루언의 이해: 그의 강연과 대담』, 커뮤니케이션북스, p.139

 


테크놀로지와 문화, 그리고 우리의 삶


기술 발전과 문화


우리시대의 총체적인 삶의 경험, 이에 따른 감정과 생각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변화의 근원에는 공통적으로 놓여 있는 것은 기술이다. 테크놀로지(technology)는 기술을 생성하는 첨단 공학들과 이에 기반을 둔 기술 산업의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고, 이미 우리 삶 속에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 공학, 컴퓨터 공학의 발전과 이에 따른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은 기술의 영향이 정치, 경제, 사회, 학문 등의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까지 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시대의 문화는 ‘기술적 문화(Technische Kultur)’라 할 수 있다. 기술은 이제 삶의 형식의 총체이자 인간이 역사적으로 이루어낸 모든 내적 ․ 외적 산물의 총체로서 이해되는 문화라는 개념에 비견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

* 문병호, 「테크놀로지 시대에서의 예술적 계몽력 - 전통적 표현 수단에 기초한 예술 작품들의 위기와 기회」, 『비판과 화해 - 아도르노의 철학과 미학』, pp.109 ~ 110을 참고함


최근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이 문화예술 ․ 인문사회등과 융합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문화 기술( Culture Technology)’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했다. 문화기술은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하여 방송 ․ 영화 ․ 음악 ․ 애니메이션 ․ 게임 등의 문화예술 산업을 첨단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

** http://100.naver.com/100.nhn?docid=794689(2009.9.14)의 ‘문화기술(文化技術, culture technology)항목을 참고함

하지만 문화기술의 비약적 발전 때문에 문학, 회화, 음악, 영화와 같은 전통적인 문화예술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화된 예술 작품들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즉 정보통신 수단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면서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수용 형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디지털 음원에 대한 기사를 추가 인용할 것) 또 생산방식도 이에 영향을 받아 전통적 표현 수단을 따르는 예술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디지털화된 예술작품들이 새로운 소통 양식인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감에 따라 전통적인 문화산업의 시장 질서역시 무너졌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생성 중에 있다. 이런 위기의 근저에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특징인 대량성・신속성∙복제성 등과 자본주의적 문화산업의 생존 논리인 상업성∙오락성∙소비성 등이 함께 놓여있다.


테크놀로지 발전의 효과(effect)


기술은 어떤 대상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이용하는 인간 행위의 방식이다. 사람들은 기술을 이용해 주어진 대상에서 무엇을 얻기도 하고, 대상을 자신의 필요나 욕구, 희망에 맞도록 변화시키기도 한다. 기술에는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와 소망이 깃들어있다. 이런 까닭에 기술은 인간이 손과 도구를 이용하고 지적 사고 능력을 갖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왔다. ***

*** 문병호, 같은 책, pp.110~111을 참고 함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경험과 삶을 총체적으로 바꾸고 있는 현실을 빗대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변화하는 것은 액자 속의 그림일 뿐만 아니라, 액자 자체” ****라고 한다. 그에게 동시적이고 즉각적인 정보의 이동이 이뤄지는 전자기술시대는 특정 중심지역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이 중심에 해당되며 경계선도 없는 영역이다. 이 공간은 세계 전역에서 동시에 도착하는 전자정보(모자이크)에 의해 만들어지며, 정해진 연결성이 없는 접촉이 이루어지는 곳(우발성)이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현대의 정보환경을 떠받치는 동시성을 가진 정보들은 시각이 아닌 촉각이나 후각 등 여러 가지 감각에 어울리는 청각에 의존한다.

****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p.253

▸ "전자기술시대는 특정 중심지역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이 중심에 해당되며 경계선도 없는 영역"이라는 표현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정말 그런가! 현실은 그 반대의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즉각적인 정보의 이동 가능성이 실제적인 정보의 이동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기술의 영역 밖에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구조가 온존한다. 기술적인 층위와 그것을 전달하는 언론-미디어의 층위가 만난 지점에서 '정보의 이동'이 결정된다. 물론 인터넷을 통한 publishing(공개) 가능성이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경로를 벗어나 우발적으로 '이슈들'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맞지만 하나의 층위, 기술적 가능성의 층위만을 볼 때 우리는 현존하는 강고한 힘들을 읽어낼 수 없다. (2019.7.15일 추가)


하지만 19세기 이래 서구인들이 생각한 자신이 사는 공간은 정규적이고, 자연 그대로의 합리성을 지닌 시각적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유클리드가 마련했던 기하학적 공간으로 연속적으로 균일하며 상호 연결적이고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공간이다. 이런  시각적 공간 개념을 가진 사람들은 전자기술시대의 동시성을 가진 정보환경에서 쉽게 자리를 잃고 당황하기 마련이다. 이런 변화와 혼란은 테크놀로지, 특히 전자기술의 총화인 텔레비전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낙관론자인 매클루언은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전자정보시대가 청각적인 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나면, 새로운 환경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예상되지 않는 일들이 발생할 위험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감각들은 불빛이나 열, 소리의 강도에 대한 변화에 즉시 적응하며, 그래서 20세기 전자기술시대의 정보서비스에 의해 형성된 환경구조상 일어나는 변화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원인을 알기도 전에 우리의 감각들은 이런 변화에 먼저 적응하게 되고, 적응의 결과가 먼저 드러나기조차 한다.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우리 삶의 총체적 경험을 바꾸는 것이다. *****

 ***** 마샬 매클루언, <직업윤리의 종말(1972)>, 같은 책, pp.266~268을 참고 함


▸ 매클루언은 "인간의 모든 감각들은 불빛이나 열, 소리의 강도에 대한 변화"에서 '강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양화하기 어려운 상대적 위치. 유클리드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있는 인간의 감각(더나아가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술에 의해 우리의 감각들이 '지각(의식적인 앎)보다 먼저' 적응한다고 이야기한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전개체적・전의식적인 신체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기술이 우리의 지각과 어떤 개념을 만들어낸, 자각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된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 이 때 불빛이나 열, 소리의 강도의 변화(환경의 변화)'는 우리 신체(몸)의 강도 변화를 수반한다. 다른 신체(불빛, 열, 소리)와 만난/접속한 인간 신체의 변화는 단순한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신체의 잠재성(역량, 힘)의 표현이다.

"역량은 하나의 양 이다. 그렇지만, 역량은 길이와 같은 양이 아니라 힘과 같은 양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반적이고 단순한 양, 곧 이른바 외연량(des quantités extensives)이 아니라 강도 단계(une échelle intensive) 를 갖는 강도량(des quantité intensives)이다. 그건 곧 이런 뜻이다. “실재들 은 다소간 강도를 갖는다. 그 자신인 실재의 강도, 그 본질을 채우는 실재의 강도, 그 실재를 그 자체로 정의하는 강도, 그것이 바로 그 실재의 강도이다.” " 김재인, <들뢰즈의 비인간주의 존재론>, 2013.2 (서울대학교 대학원), p.120 (2019.7.15일 추가)


따라서 매클루언은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간의 확장이 어떻게 인간의 지각 능력을 변화시키는가 하는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제기했던 문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내는 효과라는 문제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매클루언은 관심사는 이런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문제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기존 과정(旣存過程)의 진폭(振幅)을 증가시키거나, 속도를 빨리하는 방법, 혹은 그 표현 방법이 심리적 ․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미디어나 테크놀로지라도 그 ‘메시지’가 인간에게 관계하게 되면 그것에 의해 인간의 척도(尺度)가 달라지고 혹은 진도가 달라지며 혹은 기준이 달라진다. 철도는 달리는 일, 수송하는 일, 혹은 바퀴, 선로(線路)를 인간 사회에 도입해 온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종류의 도시와 일과 레저를 낳게 하여 종래의 인간의 기능을 촉진하고, 또 규모를 확대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철도가 지나가는 곳이 열대 지방이건 한대지방이건 마찬가지이며, 또한 철도라는 매체가 운반하는 물건이나 내용이 무엇이든 조금도 상관없다. 한편, 비행기도 그 사용 목적과는 전혀 관계없이 운송 속도가 빨라짐으로써 철도형의 도시 ․ 정치 ․ 인간관계를 해소하려 하고 있다.” ******

 ****** 마샬 맥루한, 같은 책, p.8에서 인용


▸ "어떤 미디어나 테크놀로지라도 그 ‘메시지’가 인간에게 관계하게 되면 그것에 의해 인간의 척도(尺度)가 달라지고 혹은 진도가 달라지며 혹은 기준이 달라진다"고 매클루언은 말한다. 왜 인간의 척도, 진도, 기준이 달라질까? 그것은 인간의 역량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재인박사는 "
유한 실존 양태는 그것을 규정하는 다른 유한 실존 양태와 외적으로, 연장적 부분에 의해 관련된다"고 하면서 아래 글을 주석으로 달았다. “같은 크기를 지니고 있거나 크기가 서로 다른 일정한 수의 몸들이 다른 몸들 에 의해 제약되어(coercentur) 서로 의지할 때, 또는 그것들이 같은 속도나 서로 다른 속도로 운동하고 있을 경우에는 일정하게 규정된 어떤 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운동을 서로 전달할 때, 우리는 이 몸들이 서로 연합되어 있으며, 이것들 모두가 단 하나의 몸 또는 개체를 합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개체는 몸들 사이의 이러한 연합에 의해 다른 모든 개체들과 구분된다.”(Spinoza E II P13 이 하 「자연학 소론」. 강조는 원문, 밑줄은 필자) 김재인, 같은 책, p.121

스피노자의 말에 기대어 살펴보면 인간의 몸이 '어떤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의 메시지'와 연합되어 다른 몸(개체)이 된 것이다. 이때 메시지는 '고양이의 웃음'이 고양이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의 전달형식(표현방식?, 기계적 배치?, 또는 인간 몸과의 접속방식/interface)이라고 생각해보자. (2019.7.15일 추가)


그런데 이런 접근 안에는 증기기관・철도・텔레비전, 그리고 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테크놀로지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일반적인 명제가 들어있다.



'빛나는' 효과에 눈이 멀어버린 기술결정론


‘테크놀로지가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의 현재적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1973년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가 텔레비전 분석을 위해 사용했던 틀을 그대로 현재의 인터넷에 적용한다 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1)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그후 뉴스와 오락을 제공하는 매체로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서 이전에 존재했던 뉴스와 오락 매체를 대체하게 되었다.

(2)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인터넷이 갖는 힘이 너무 커져서 제도와 사회적 관계의 틀을 상당 부분 변화시켰다.


(3)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정보통신매체로서 인터넷이 가진 고유한 성질은 실재에 관한 우리의 기본적인 인식을 변화시켰고, 이어 개인과 개인의 관계 및 개인과 세계에 대해 갖는 관계까지 변화시켰다.


(4)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커뮤니케이션과 오락의 강력한 매체로서 인터넷은 물리적 유동성의 증가 등 다른 테크놀로지의 발명으로 초래된 요인들과 함께 사회의 규모와 형태를 변화시키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5) 인터넷은 과학기술의 연구성과에 힘입어 발명되었으며 오락과 뉴스 매체로 발전했다. 이어 예기치 않은 결과로 텔레비전은 다른 뉴스와 오락 매체의 생명력과 중요도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가정, 문화, 사회생활의 핵심적인 과정에도 영향을 끼쳤다.


(6) 인터넷은 과학기술 연구에 힘입어 하나의 가능성으로 개발되었다. 이 가능성이 새로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것이라는 잠재력을 인정받아 투자와 개발의 대상으로 선택되었으며, 특히 분권적 의사 소통과 민주적 견해 형성 및 행동양식 형성에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7) 인터넷은 과학기술 연구에 힘입어 하나의 가능성으로 태어났으며, 새롭고 수익성 있는 전자적인 상거래, 콘텐츠 전달, 커뮤니케이션 및 커뮤니티 서비스의 면모를 인정받아 투자와 장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인터넷은 특징적인 디지털 가전 기기들과 결합되어 확산되었다.


(8)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특징과 사용이 발전함에 따라 능동적 참여성, 집단지성 등의 요소가 두드러지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람들에게 항상 잠재되어 있던 것인데, 인터넷이 보다 구체적으로 발현하게 만들었다.


(9)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의 고유한 특징과 사용에 따라서 새로운 종류의 사회, 곧 분산되어 있고 복합적이면서도 세분화되어 있는 사회의 요구를 야기했으며 동시에 충족시켰다. 새롭게 창출된 롱테일(long tail)경제가 그 예이다.


이런 견해들은 윌리엄스에게는 텔레비전, 우리에게는 인터넷과 같은 어떤 테크놀로지가 우리 세상을 바꾸었다는 익숙한 명제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 중 일부일 뿐이다. 많은 경우 여러 해석들이 동시에 혼합되고, 중복되어 나타난다.

윌리엄스는 (1)~(5)와 같은 형식으로 설명할 경우 테크놀로지를 순전히 우연적 사건으로 이해한 것이라 지적한다. 이런 입장은 어떤 기술적 발명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이유를 그 자체의 내적 발전에서 찾는다. 따라서 그 발명에 따르는 결과는 테크놀로지로부터 직접적으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우연적이다. 인터넷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그에 따르는 특정한 사회적 ․ 문화적 사건들도 생겨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을 기술결정론이라 부른다.


“이 관점은 현재 사회변화의 성질을 밝히는 정설로 자리잡을 만큼 그 기세가 매우 강하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본질적으로 내적인 연구개발의 과정에 따라 개발되며, 그에 따라 사회적 변화와 진보의 여건이 조성된다. 진보란 특히 이러한 발명의 역사이며, ‘근대세계를 창출해 낸’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예견된 것이든 예기치 못한 것이든, 테크놀로지의 효과는 역사적 산물이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텔레비전론』, pp.49~50


(6)~(9)의 입장도 인터넷을 테크놀로지의 우연적 산물로 본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인터넷의 사용을 그 중심에 두고, 그 사용이 다른 맥락에서 결정되는 어떤 사회적 질서나 인간 본성의 몇가지 특징에 대한 징후로 여길 뿐이다. 따라서 인터넷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특정한 어떤 매체에 의해 참여적 질서를 만들었거나 세분화되고 협업적인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현재보다는 좀 더 영향력이 적은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을 수 있다. 앞의 입장보다 덜 결정론적인 이런 입장을 윌리엄스는 징후적 기술론(symptomatic technology)라 한다.


“이 관점은 특정 테크놀로지 외에 사회적 변화의 동인이 되는 다른 조건들도 강조한다. 또한 특정 테크놀로지나 테크놀로지 집단이 다른 어떤 징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 테크놀로지는 그것과는 별개로 결정되는 사회과정의 부산물로 여겨진다. 이미 드러나 있는 사회과정의 목적들을 위해서 어떤 테크놀로지가 사용된다면, 그것은 단지 효과 차원의 위상만을 가질 뿐이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책, p.50


테크놀로지와 사회적 제관계


우리가 1970년대의 윌리엄스에 의지해 테크놀로지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살펴본 것은 이런 견해가 지금도 여전히 테크놀로지와 사회에 관한 우리의 사고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말 발간된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은 이런 사고를 대표한다. 이 책에서는 매클루언의 이론을 정리하며 “매체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을 넘어서 인간의 의식 패러다임과 의사소통의 구조, 그리고 사회구조 전반의 성격까지도 재편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방송통신 융합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기 적절한 이론가”라고 주장한다. 또  “그의 매체론은 커뮤니케이션의 물질성에 따라 문명의 성격까지도 바뀔 수 있다는 관점에서 ‘문명의 미디어론’으로까지 명명될 수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을 제시한다. *********

********* 황성주 외,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2008.12), p.59, p.110을 볼 것. 강조는 필자. 우리는 매클루언의 통찰을 기술이 만들어낸 사회적 효과라는 차원에서 이후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이렇듯 현재의 뉴미디어에 대한 입론들은 대부분 기술결정론에 서있다. 테크놀로지와 사회의 관계를 살필 때 “기술을 고립적인 요인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기술은 “자율적인 힘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하거나, 또는 자율적인 힘으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루는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책, p.51

 

그런데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은 기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조성하는 것, 담론과 대화, 방송과 통신의 균형과 조화 속에서의 융합, 공급자중심에서 이용자의 참여와 협력을 중심으로 한 융합을 방송통신융합의 추진방향으로, 자유, 참여, 다양성, 창의성을 그것의 가치로 제시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일반적 당위론과 보편적인 가치,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사회적 효과를 적당히 버무린 몇 가지 트렌드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뉴미디어의 철학과 가치를 대변할 수는 없다. ***********

*********** 황성주 외, 같은 책, pp.110~113을 볼 것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와 소망이 깃든 기술이라는 일반적 특성을 넘어선 기술,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작동하여 인간을 종속시키고 장악해버린 기술, 자본주의적 상황 아래에서 특수한 용법으로 사용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위험사회’ ************* 에 살고 있고, 테크놀로지 자체가 새로운 삶과 더 나은 문명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갖을 정도로 경험이 부족하지 않다.

윌리엄스의 통찰에 따르면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과 같은 입장이 갖는 강조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공동의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근대 이후 사회관에 깊이 뿌리박힌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다른 관점에 서서 테크놀로지, 구체적으로 텔레비전을 살펴 볼 것을 권유한다.

************   문병호, 같은 책, pp.111~113을 참고 함
*************
울리히 벡, 『위험사회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새물결을 볼 것, 이 책에서 울리히 벡은 기술에 의해 구조적으로 조작되고, 통제되는 산업사회는 더 이상 인간의 의지에 따라 조종될 수 없는 사회라고 주장한다.


“텔레비전의 역사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그것의 여러 가지 사용까지 살펴볼 수 있다. 텔레비전과 관련한 이 관점은 연구개발의 과정에 의도라는 요인을 되돌려 놓는다는 점에서 기술결정론과 다르다. 다시 말해서, 이미 상정된 어떤 목적이나 실천을 실현하기 위해 테크놀로지가 추구되고 발전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목적과 실천이 직접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징후적 기술론과도 다르다. 곧, 드러나 있는 사회적 요구, 목적, 실천 등에 대해 테크놀로지가 주변적인 요인이 아니라 중심적인 위상을 갖는다는 뜻이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책, p.51, 강조는 필자


따라서 우리시대의 총체적인 삶의 경험, 이에 따른 감정과 사고 양식의 급격한 변화 양상을 살피기 전,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이끄는 사회적 요구, 목적, 실천을 살펴보아야한다. 



비판적 기술사(技術史) ․ 기술학(技術學)


‘쟁기를 끄는 황소가 경제적 범주가 아니듯이 기계 ․ 기술도 경제적 범주가 아니다. 기계 ․ 기술의 현재와 같은 적용은 우리의 현재 경제체제의 제관계에 속한다. 기계 ․ 기술이 적용되는 방식은 기계 ․ 기술 자체와는 전혀 다르다. 화약을 사람들이 인간을 해치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든, 다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사용하든 언제나 화약인 것과 같다.’ + 사회적 제관계 속에서 기술 발전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은 일반적 당위론과 보편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자의적인 가정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테크놀로지의 실제적인 발전과 그 ‘철학적 가치’는 모순될 수밖에 없다.

+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자본론에 관한 서한집』, 중원문화, p.55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기술의 본질은 결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술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에만 급급하여 그것에 매몰되거나 그것을 회피하는 한, 기술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결코 경험할 수 없다.

기술에 대해 누구나 알고 있는 대답은 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과 기술은 인간의 행동의 하나라는 것이다. 기술에는 연장, 기구, 기계 등의 제작과 사용이 속하고, 이때 제작된 것과 사용된 것 자체도 기술에 속한다. 더 나아가 욕구와 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들도 기술에 속한다. 이러한 장치 전체가 곧 기술이고, 기술 자체 또한 장치이기도하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을 중립적인 것으로 고찰할 때가 최악의 경우라고 하이데거는 지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기술에 내맡겨지고, 이것이 옳다고 신봉하며 기술의 본질에 대해 맹목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볼 때 기술을 하나의 수단이며 인간 행동의 하나라고 보는 현대인의 통념은 기막힐 정도로 올바르다. 하지만 이 통념의 올바름이 현대 기술의 본질을 밝혀주는 것은 아니다. ++

++
  마르틴 하이데거, <기술에 대한 물음>, 『강연과 논문』, 이학사, pp.9~11을 볼 것


“따라서 현대 기술도 목적을 위한 도구라는 말은 올바르다.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념이 인간을 기술과 올바르게 관계 지으려는 모든 노력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것은 기술을 도구로서 적당한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듯이 기술을 “정신적으로 장악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려 한다. 이처럼 기술을 지배하려는 의지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커질수록 더욱 절박해질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에도 그것을 지배하려는 의지가 가능할까?” +++

+++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책, p.11에서 인용, 강조는 필자


현대의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버린 기술이다. 19세기 중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경제학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기계의 발명이 어떤 인간의 매일매일의 노고를 가볍게 했는가는 참으로 의문이다.” ++++

++++
칼 마르크스, 『자본론 I-2』, 이론과 실천, p.427에서 재인용, 원문 <Of the Stationary State - from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John Stuart Mill (1848)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왜냐하면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기계의 목적은 이러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적 조건하에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그 밖의 모든 노동생산력의 발전이 그러하듯이 상품을 저렴하게 하는 것이며,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단축하여 그가 자본가에게 무상으로 주고 있는 다른 부분을 연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 칼 마르크스, 같은 책, pp.427~443을 볼 것. 마르크스는 기계와 대공업을 논하면서, 자본주의적 조건하에서 ‘기계의 발달’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살펴볼 때 개념적 ․ 도구적 정의 ++++++ 에서 벗어나 그것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즉 ‘비판적인 기술사(技術史)’ 입장에 서야한다. 1735년 존 와이엇(John Wyatt)가 방적기계를 발명했고, 그것이 18세기의 산업혁명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불완전한 것이지만 방적기는 이미 그보다 먼저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영국과 같은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비판적인 기술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어떤 기술 발명의 사회적 맥락과 그 사용 방식을 살핀다. 이런 입장에서 18세기 산업혁명 시대를 보면 한 개인에 의해서 발명이 이루어진 경우가 얼마나 적은가를 알게 될 것이다.

++++++ 하이데거는 이를 “기술에 대한 도구적 ․ 인간학적 규정”이라고 부른다.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책, p.11을 볼 것

또한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연 및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이때 기술이 인간 노동 과정과 관련을 맺고 있다면, 기술학(技術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태도와 인간 생활의 직접적인 생산과정을 밝혀줄 수 있다. 인간 생활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온갖 사회적 생활관계와 거기서 생겨나는 정신적 관념들을 포함한다. +++++++

+++++++   칼 마르크스, 『자본론 I-2』, p.428~429를 볼 것

기술에 의한 사회적 효과, 즉 기술에 따른 경험과 지각을 포함한 삶의 총체적 변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기술의 사회적 성격을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술 자체가 아닌 기술의 사회적 이용방식에 따라 우리의 생활 방식과 경험들이 달라지고 거기서 정서와 지각, 정신적 관념들・가치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  메모들 ----------

하지만 이 모순은 우리가 미리 상정한 고정 관념과 실제적 운동 사이의 모순일 따름이다.


먼저 테크놀로지 발전의 원인을 살핀 후 이에 따라 문화산업, 방송통신융합의  내에서의 변화를 기술지대(技術地代)라는 개념을 통해 살펴 볼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예술 작품의 생산과 수용 형식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원인 :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논의를 살필 것

기계에 대한 프루동의 주장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자본론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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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자본주의와 자유노동의 보상 - 독점지대, 4차 산업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 이항우, 한울(2017.8) 정동자본주의는 감정노동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인지자본주의, 인지와 자본 등과도 공명한다. 그리고 좀 더 관심이 있다면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의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렙소디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2019.7.16일 추가)

2019/07/15 23:48 2019/07/1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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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도 2012~13년 사이에 썼을 것이다. '짐승같다'는 말이 있다. 잔악함이나 못된 정도가 '사람'의 도(선)를 넘어섰을 때 사용한다. 나쁜 쪽으로 '되기(becoming, 들뢰즈)가 된 것이라 말할 수 있을 수도 있다. 이런 방향이라면 '~되기'가 아니라 '~이기'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스피노자가 던졌던 질문. 왜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왜 같은 물건을 보고 서로 다른 정서(정동/감응)이 일어날까? 그런 상황이 지속될 때, 해부학이나 분류학의 기준으로 같은 종이라 할 수 있을까? 종을 구별하는 다른 차원, 강도적 차원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을 맹자도 했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가 종교전쟁(네덜란드의 내전같은 상황)을 배경으로 했다면, 맹자는 전국시대의 전쟁을 배경으로 했다. 다만 스피노자는 차이에, 역량/능력과 감응의 차이를 말했다면, 맹자는 그 와중에 감응/정서의 동일성(?)을 말했다. 그런데 맹자의 단(端, 실마리)을 동일성이라고 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사물이나 사람의 규정성인 정체성, 동일성을 의미할 정도로 본질처럼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람의 길과 짐승의 길이 나뉠 수 있다. 현대의 진화생물학적 설명에 따르면 유전자에 새겨진 사회성을 실마리라 할 수 있을까!

6월 19일 올린 뉴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서 <강한 정서적 연대감>부분은 아래 글을 써보려고 하면서 읽은 책/논문들에서 흄과 관련된 부분을 좀 정리한 것이다. 스미스와 흄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이 기억이 맞을 것이다).

이 글은 <상상력, 우리 자신을 초월하도록 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 같다. 스토리(이야기, 드라마, 특히 TV 드라마)의 사회적 기능에 빠져 있었고, 그 아래 있는 것으로 상상력을 살펴보았었다.

근대 초기 철학자들, 스피노자 등에게 상상력(imagnation)은 창의성(creation)과 관련성보다는 감각작용(이미지 작용 - 이미지가 감각기관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에 더 가깝다. 이런 감각작용-감응/정서(정신작용이라 할 수 있는 것) 등이 어떻게 사람을 행동하게 하는가, 그 결과/효과들에서 스토리/드라마까지 연결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싫어했던/비판했던' 흄을 읽기 시작했다. 또 스미스도 ....  어떤 기사(news)보다도 드라마(연극, 소설 등)이 사회를 묶어내는데 더 큰 역할을 한다는 이런 가설 위에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BBC의 전략 관련 기사를 읽으면서 "강한 정서적 연대감"이란 키워드를 보았다. 어떤 우연들이 만나 이런 저런 것들을 공부하게 만들었다.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읽기


연민과 동정심, 사람과 사람을 사이를 잇는 마음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연민(憐憫: pity)과 동정심(同情心: compassion) 역시 ‘타고난 성품(天性: principles)’이라고 말한다. 연민과 동정심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그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때 드는 감정이다. 또 이런 감정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 감정이다.
 성인(聖人)과 무도한 폭도(暴徒) 또는 냉혹한 범죄자의 차이는 이러한 감정을 얼마나 예민하게 느끼는가, 둔감하게 느끼는가에 있지 않을까?


맹자(孟子, BC 372? ~ 289?)는 “타고난 바탕을 따른다면 선하게 될 수 있으니, 이것이 내가 말하는 본성이 선하다는 의미이다. 선하지 않게 되는 것은 타고난 재질의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인간의 본성이 바로 인∙의∙예∙지(仁∙義∙禮∙智)라고 말하지 않고, 이런 덕(德)들을 발생시킬 수 있는 실마리(端, 가능태) 정도가 본성에 있다고 한다.


“누구나 차마 남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에서이다.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에 빠지려는 것을 보게 된다면, 깜짝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친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마을 사람이나 친구들에게서 어린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싫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惻隱之心]이 없다면 사람이 ...... 아니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어짊(仁)의 단서이다. 이러한 인은 밖에서 나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내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을 뿐이라고 맹자는 지적한다.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은 남의 불행을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하는 연민의 마음이고, 그 불행을 내 일처럼 느끼는 마음, 즉 동정심이다. 우물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를 보았을 때의 예처럼 이해타산이 개입하기 전에 순간적으로 드는 마음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대로 행동으로 옮겨 어린아이를 구하지만 어떤 사람은 외면해 버릴 수도 있다. 맹자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잇는 마음을 동정심이라고 생각했다. 동정심을 갖고 있어 나는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공감하고, 나와 내 가족처럼 타인을 보살필 수 있다.


그런데 맹자가 볼 때 이 공감의 능력은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시작되어 세상 전체로 확대된다. 우물 속에 빠지려는 어린아이[남의 불행]를 가까이서 볼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공감의 가능성과 TV

익사한 세살배기 시리아 난민 시신이 터키 해변에서 발견(2015.9.3일) 같은 일이다. 신문, 인터넷 등 모든 매체가, 그리고 그 생생함에 있어 TV가 합심해 불러일으킨 것이 '어린아이의 불행에 대한 동정심이다. 거리감은 감각의 강도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매클루언은 TV가 만들어낸 효과를 보면서 '지구촌'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2019.7.11일 추가)

tele-vision, 원격 현전은 거리감을 줄이고(없애고) 장소성에 얽매인 관계를 풀어헤쳐 놓는다. 텔레비전의 해상도, 흑백 < 컬러 < SD < HD < UHD 등으로의 발전은 '생생함'에 대한 추구의 결과이다. 영상을 보여주면서 그곳에 있는 것처럼 또 그들과 만나고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 우리의 정서(신체와 정신)를 흔들어놓고 싶어한다. 상상력이 아닌 상 그 자체가 눈 앞에 펼쳐지고 우리의 몸이 그 안(화면 안)으로 침몰되길 원하는 것이다. 마크 로스코(Mark Rothko)가 커다란 원색의 그림을 그린 이유이기도 하다. 눈을 한 가득 채운 색면(추상) 속에서 우린 경이를 느끼고, 숭고미에 빠져들듯이 현재의 기술은 그런 효과/미학을 추구한다.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난 색채나 형태에는 관심이 없다. 대신 비극, 아이러니, 관능성, 운명같은 인간의 근본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만 훙미 있다. 내 그림 앞에서 우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와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린 텔레비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다. 로스코 채플(Rothko Chaple)에서 우린 벤야민이 '죽음을 선언'했던 '아우라 장치-제의효과'를 발견할 수 있다. (2019.7.12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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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크 로스코 그림 앞에서,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2015.5.15

따라서 가장 가까이 있는 자기 부모를 가장 ‘사랑[동정하고 공감]’할 것이고, 친척 어른은 그 보다 덜 절실한(切實: 느낌이 뼈저리게 강렬한 상태) 마음으로, 동네 어른은 그 보다 더 엷은 마음으로 사랑할 것이다. 사랑의 영역은 점점 엷어지긴 해도 감각의 강도적 차이(强度的 差異) 나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이런 사랑과 관심을 통해 내가 확대[확장]되는 것이라면 나는 이 세상 전체로 확대될 수 있다.

절실함, 영국 경험론의 전통에서 말한다면 강렬함과 생생함의 차이는 있지만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낄 수 있다. 맹자는 이런 과정을 “동정심을 느끼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 부분까지 이르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맹자는 이런 마음의 단서를 키워서 연민이 모든 행위를 지배하는 원칙이 되었을 때, 그 사람이 인(仁)하다고 말한다. 이제 사람들은 이 잠재적인 것을 길러내야 하고, 또 잘 길러내면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



감각의 강도적 차이, 신체에 부딪히는 물질의 힘


지금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에 빠지려 한다. 그것을 본 모든 사람이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며 동정심이 일어난다. 하지만 그 세기(强度)는 서로 다르다. 어떤 사람은 예민하게[강렬하게] 느끼고, 어떤 사람은 둔감하게[더 엷은 마음으로] 느낀다. 이런 감정을 마음으로 느끼는데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감정의 세기 차이는 감각의 세기 차이에서 온다.


사물로부터 오감(五感: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감각자료(sense data)들은 순식간에 다른 감각자료로 대체된다. 그에 맞춰 여러 감정들도 순간 순간 나타났다 사라지지만, 어떤 감정은 시간의 흐름 속에 점점 강화되기도 한다. 감각과 감정은 서로 다르지만 동시에, 우리 몸 속에서 평행하게 생기고 사라진다. 우리는 어떤 것을 봄[감각]과 그것에 대해 느낌[감정]을 따로 떼어 분석할 수 있지만 그것의 선후를 나눌 수 없다. 심신평행론


“모든 감각은 줄어질 수 있고 따라서 감각을 없애서 점차로 소멸케 할 수 있다. 그래서 현상에서의 실재성과 부정성 사이에는 많은 가능적인 중간적 감각들의 연속적 연관이 있다.”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순수이성비판』에서 한 말이다. 가능적인 중간적 감각들의 연속적 연관이란 말은 감각이 없음(無, 否定性)에서 감각이 어느 양에까지 점차로 올라갈(上昇) 수 있음을 말한다. 물아일체(物我一體)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우리는 사물 자체(실재성)에 더 가깝게 갈 수 있다.


“지각에 있어서 모든 실재는 도(度, degree)를 가지며, 도와 부정성(零, zero) 사이에는 점점 감소하는 「도」의 무한의 단계가 있다면, 그리고 또 모든 감관이 감각의 수용성(受容性)에 대한 일정한 도를 가져야 한다면, 현상 중에서 모든 실재적인 것이 없음을 증명하는 어떠한 지각도 불가능하고, 따라서 어떠한 경험도 불가능하다. 다시 말하면 경험으로부터는 공허한 공간 또는 공허한 시간에 관한 증명이 끌어내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감성적 직관에서 실재적인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은 첫째로 그 자신 지각될 수 없고 둘째로 그런 「없음」은 어떠한 유일한 현상으로부터도 결과될 수 없고, 「현상의 실재」의 도(度)의 구별로부터서도 결과될 수 없으며, 또한 현상의 설명을 위해서 가정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일정한 공간이나 시간의 전직관(全直觀)은 어디까지나 실재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의 어떤 부분도 공허하지 않다. 그러나 모든 실재는 현상의 불변적 외연량을 변경함 없이 무한한 단계를 거쳐서 없음(공허)에까지 줄어질 수 있는 도(度)를 가진다. 이 때문에 공간이나 시간을 메우는 무한히 서로 다른 도(度)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직관의 외연량은 동일하더라도, 서로 다른 현상들에 있어서의 내포량은 보다 적거나 보다 클 수가 있다.” 모든 경험 자체에 이미 실재적인 것[사물, 사건]에 대한 일정한 도를 내포한다. 사회적 실제 뒤르케임


감각이 없음과 물아일체[사물 자체를 앎] 사이에는 무한한 앎의 단계가 있다. 이 하나 하나의 단계가 도(度, degree)이다.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지려는 것을 보는 순간 예민하고 강렬하게 느끼거나, 둔감하고 엷게 느끼는 것을 사람들 사이에 「강도(强度)」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지나며 그런 일이 일어난 곳을 멀리서 아주 짧은 순간 지나쳤다 해도 강도가 영(零, zero)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어떤 것에 대한 감각과 감정[그 어떤 것에 대한 기쁨(좋음)과 슬픔(싫음)]이 평행하게 동시에 존재한다면, 둘 다 훈련이나 교육을 통해 그 보고 느끼는 강도를 강화, 또는 약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자기 일이면 기쁜 것을 원하고 슬픈 것을 피하려고 하는 반면 남의 일은 기쁜 것보다 슬픈 것에 더 관심[동정심]이 가는 것이 사람인 듯 하다.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살기 위해 그렇게 된 것이다.)


▸ "감각의 강도적 차이, 신체에 부딪히는 물질의 힘"에서 중요한 것은 외적인 자극, 물질의 힘도 있지만 이것을 느끼는, 신체의 능력이 더 중요하다. 이 신체의 능력에 의해 종이 구분될 수 있는 것이다. 불변하는 '종'이라기 보다는 개체군정도가. (2019.7.11일 추가)


상상력(想像力), 우리 자신을 초월하도록 하는 것


우리는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없고,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연민과 동정심을 갖고 공감할 수 있는가? 애담 스미스는 상상(想像)이라고 말한다. 상상을 통해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하는 것이다.


“상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타인이 처한 상황에 놓고 우리 자신이 타인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은 마치 우리가 타인의 몸 속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그와 동일인(同一人)이 되고, 그럼으로써 타인의 감각에 대한 어떤 관념을 형성하여, 비록 그 정도는 약하다 할지라도, 심지어는 타인의 것과 유사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

▸ 상상력을 스토리라고 읽자! (2019.7.11일 추가)


---- 단상들 ----


물아일체에 도달하는 힘은 상상력에 있다.
▸ 아우라, 장치 등과도 관련될 수 있다. (2019.7.11일 추가)

이것은 어린아이가 우물 속에 빠지려 할 때 느끼는 것의 무한

마음에는 예민함이나 둔감함에는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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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우물이라는 경험의 발생적 구성요소 (라이프니츠의 주름처럼 잠재적인 것) 파랑과 노랑


어린아이가 우물에 빠진다는 관계 – 요소들 사이에 성립하는 변별적 관계 파랑과 노랑이 섞인다


그것을 보는 나 … 관계로부터 강도적 크기로서의 경험 .. 특정성들 초록으로 보인다.

▸ 장소성을 만들어내는, 어떤 감응을 끌어내는 장치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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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세상을 하나로 묶은 전 세계인을 밥상머리에 올려놓는 TV가 나왔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 동정심의 폭발 … 상대적으로 강한 동족애)


가까이서 본다는 것 생생하다는 것 … 절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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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과 사랑을 통해 나의 존재가 확대되는 것 … 미디어 인간의 확장이란 매클루언의 말  인간의 확장 = 정서적 확장, 공감적 확장 = 애견에까지 확장되는 공감 능력 ..


“동정심을 느끼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 부분까지 이르도록 하는” 과정  이과정에서 미디어의 역할 그리스 축제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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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 .. 프레임에 의해 조작된, 편집된 동정심과 공감의 세계에 대한 야유
▸ 발터 벤야민의 사촌, 한나 아렌트의 첫 번째 남편 (2019.7.11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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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하게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한 동정심과 같은 감정을 예민하게 혹은 둔감하게 느끼는 것을 ‘강도적 차이(强度的 差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측은지심 인지단야


https://vimeo.com/262754814 (2019.7.12)

Rothko Chapel, 2018 from Catherine Edelman Gallery on Vimeo.

사용자 삽입 이미지

◆ 마크 로스코 전시회, 2015.3.28

2019/07/11 23:37 2019/07/11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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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3년 사이에 쓴 글인 듯하다. 6월 19일 올린 ⟪뉴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의 <고대 그리스의 연극, 공적 공간> 부분은 아래 글의 일부만을 떼다 놓은 것이다. ⟪뉴미디어 탐구⟫란 큰 제목으로 이리 저리을 끌쩍대면서 시간을 보내고, 이것 저것을 찾아보던 때이다. 따로 제목도 없다.

이 글을 쓰게된 직접적인 동기는 첫 세 단락에 있다. 세번째 단락은 '박홍규,⟪플라톤다시보기❯, 필맥, 2009년, pp.129~130'을 보면서 갖게된 의문을 써놓은 것이다.
 
플라톤 다시보기 - 10점
박홍규/필맥
 
시간이 되면 참고/인용된 책과 논문들에 대한 주석을 업데이트해 놓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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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관람 수당

30년 가까이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431~404년 B.C.)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하면서 끝이 났다. 8개월이 지난 다음 해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이 부활한다.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결성해 50년 간 지속된 페르시아전쟁(499 ~ 449년 B.C.)에서 승리했을 때와 비교하면 과거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을 때이다. 그런데 아테네에서는 우리 시대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민회에 출석하는 시민에게 수당이 지급됨으로써 참여자가 늘어나게 된 것도 민주정이 부활한 직후의 일이었다. 이와 동시에 연극관람 수당도 지급됐다. 그리스에서 연극이 성행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당시에 연극관람이 민주정에 참여하는 방식의 하나로 중시됐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 생각엔패전 해결할 다른 문제들도 많았을텐데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아테네 민주정은 연극관람 수당을 지급했을까? 그것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국가 재정에서 연극 관람료를 지불한 것은 페리클레스(Perikles, 495? ~ 429 B.C.) 시대부터이다. 농번기의 일손 부족 때문에 축제 참가가 어려운 농촌 시민들의 참가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에서 시민들의 입장권과 일비(日費) 지불하기도 했다. 페리클레스는 배심원, 500 평의회 의원, 추첨에 의해 임명된 공직자 등에게 국가가 수당을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민들이 협의회와 재판소에 나가도록 하기 위해 국가는 법으로 일당과 급식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가난한 시민들도 생업을 일시 중지하면서 공직에 나갈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테네인들은 연극관람을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시했다 것을 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장의 크기 보면 몇십 정도 들어가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우리의 경험을 압도한다. 5세기 후반 아티카(Attica, 아테네를 포함한 주변 지역)에는 20만명의 시민이 살았다. 이들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소유한 30 이상의 남성은 대략 2만에서 3만명 정도였다. 장소에서 10분의 1 정도의 시민이, 참정권자 대부분이 함께 공연을 있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석조 객석은 14,000명에서 17,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과장이었겠지만 플라톤(Plato, 429 ~ 347 B.C.) 향연에서 기원전 416 축제에 3만명의 관객이 참석했다고 전한다. 그들은 이런 거대한 극장에 모여 연극을 보았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연극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다시 묻게 된다.

아테네에서 모든 드라마 번만 공연되었다. 왜냐하면 디오니소스 신에게는 오직 최초의 수확물만을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연은 축구 경기처럼 일회적이었다. 극장은 축구 경기장처럼 한번에 수만 명의 관람자를 수용할 만큼 커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된 작품의 재공연이 허용되긴 했지만 장기 공연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재공연을 위해서는 민회의 결정이 필요했고, 아테네 아닌 주변 농촌지역에서 열린 다른 축제에서 상연되었다. 하지만 공연의 일회성도 거대한 극장의 필요성을 바로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함께 모여서 연극을 보아야 사회적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아테네인들이 “<박코스의 여신도들>, <페니키아의 여인들>, <오이디푸스> 메데아 혹은 엘렉트라의 불행을 공연하는데 제국을 유지하고 페르시아인들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드는 비용보다 많은 돈을 지불했다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이 크게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3 진행된 연극 경연인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를 위해서는 대략 노동자 100가구 정도가 4 생활할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테네가 일년 해군을 유지하는 비용의 10분의 1 달하는 돈이었다.

고대 아테네인들이 연극에 이렇게 사회적 비용을 투자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직접적인 연구는 없지만, 우리는 당시 연극이 가졌던 사회적 중요성을 추론해 수는 있다.


 폴리스

폴리스(polis) 공동체를 뜻한다. 폴리스는 정착지의 물적 구조(material structures) 아닌 정착지를 이루어 사는 사람들, 시민을 가리킨다. 이들은 종교적 일체감으로 묶여져 있었다. 농촌 공동체들, 촌락들의 기본 구성은 노예가 포함된 대가족인 오이코스(oikos, , 가족)였다. 오이코스들은 경작에 의존하는 자급 자족 생산단위였다. 따라서 오이코스가 생산하지 않는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는 농장의 잉여 생산물을 교환해야 했다. 이런 배경으로 교역이 고대 그리스 사회의 원동력으로 자리 잡았다.

폴리스는 몇몇 촌락들이 합병되는 촌락집주(村落集住, synoikismos) 과정을 거쳐 형성된 도시다. 처음에는 제단, 다음에는 신전으로 이어지는 장소, 공통의 예배소를 중심으로 뭉쳐 공동체의 결속을 다졌고, 이런 의례가 공동체 의식을 강화시켜주었다. 거주민들은 서로 만나 물물 교환을 하고, 공동체의 운영을 논의할 있도록 중심에 위치한 개발된 장소를 선택할 필요가 있었다. 장소가 아고라(agora, 광장)였다. 독립적인 가족들은 통일된 경배장소, 수호신을 모신 신전이라는 강력한 상징과 아고라에서의 모임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러한 물적 구조를 중심으로 방어벽이 처지면서 도시가 형성되었다. 방어벽은 동양에서는 수천 동안 있었지만 폴리스에는 처음 도입된 혁신적인 기술이었다.

아테네는 아테나 여신에 대한 경배의 중심지인 아크로폴리스와 회의와 행정의 중심지인 아고라를 중심으로 통일된 구조를 보여준다. 이후 아티카의 발전과 함께 각종 축제와 행사, 의식이 추가되었고 이런 것들은 시민들의 소속감과 유대감을 강화시켰다. 처음에는 왕이, 다음에는 정해진 기간 동안 법에 따라 봉직했던 최고 행정관인 집정관(執政官, archon) 행사했던 집행권을 통해 시민은 연맹(koinon, 코이논) 유지했다. 이런 점에서 폴리스는 서양 최초의 법치국가라 있다.


연극, 백과사전적 교육 매체

고대 그리스에 문자가 보급되고 폴리스가 확립되는 것은 기원전 8세기 전후에 일어난 일이다. 기원전 800~750년경 호메로스(Homeros)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썼고, 기원전 750~650년경 헤시오도스(Hesiodos) 신들의 계보, 일과 나날 썼다.

아테네의 시민들을 이어준 것도 종교였다. 하지만 종교는 지금처럼 공통의 신념을 바탕으로 했다기보다는 올림포스산에 살고 있는 여러 신들을 위한 의례(儀禮, ceremony) 함께 참여한다는 의미가 강했다. 서사시와 연극은 이런 공동체적 의례축제에서 발생했고, 초기 예술들은 그곳에서 가장 효과를 발휘했다.

더욱이 서사시와 연극은 아주 자연스러운 생활의 일부였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오디세이아 비극 시인들의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 시민의 삶과 사생활을 영위하는 필요한 정보나 지침을 담은 방대한 백과사전이었다. 극의 소재는 축제에 모인 시민들의 공동 경험과 지식이었다.

기원전 5세기까지도 그리스는 아직 (記錄)보다는 (口誦) 중심의 사회였고, 시나 연극에서 채용한 음악적 형식과 상투적 문구의 반복은 지식의 전달과 기억에 효과적이었다. 따라서 시와 연극은 공동체의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는 고대 그리스의 전통적인 교육 방식이되었다. 민회에서는 정치적 논쟁이, 법정에서는 변론이, 시장이나 레슬링학교에서는 철학적 대화가, 축제가 열리면 극장에서는 드라마가 상연되고 서사시가 낭송되었다. 현재는 책으로 읽는 문학(文學) () 드라마(drama) 당시에는 모두 사람의 목소리로 전달되었다. 학교에서의 교육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원전 423년경에 씌어진 구름에서 아리스토파네스는 수금 연주자가 교장을 맡은 소년학교의 수업 광경을 묘사한다.

그럼 그 옛날 내가 정의의 대변자로서 번창하고 절제가
존중되었을 때, 소년들의 교육방법이 어떠했는지 말하겠소.
첫째, 소년한테서는 절대로 투털거리는 소리가 들려서는 안되었소.
그 다음, 한 구역의 소년들은 함께 거리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음악교사의 집으로 걸어갔소. 함박눈이 내려도 외투를 입지않고.
그러면 음악교사는 먼저 양다리를 꼬지 않고 얌전히 앉아
“두려운 도시의 파괴자 팔라스여”, 또는 “멀리 울려퍼지는 뤼라 소리” 같은 노래를
부르도록 가르쳤소. 그들의 아버지들이 부르던 선율에 맞춰서.
그리고 그들 가운데 누군가가 돌출하거나 전조(轉調)를 시도하여
요즘 유행하는 프뤼니스 조(調)의 장식음을 달면
무사 여신들을 모독한 자로 몰매를 맞았소

구름에서 교사가 먼저 선창한 노래는 시인 람프로클레스(Lamprokles) 케데이데스(Kedeides) 디오니소스 찬가(디튀람보스: dithyrambos) 첫부분이다. 디오니소스 신을 위한 제사 사용되었던 이런 시의 내용은 공동의 경험과 지식들로 채워져 있었고, 운율에 맞춘 음악적 형식을 띠고 있었다. 아테네의 학교에서는 이런 시를 음악적인 방식으로 가르쳤다. 따라서 학교의 교사는 시인이자 수금 연주가였다.

페르시아 전쟁과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있었던 기원전 5세기의 60년간은()-읽고 쓰기 단계 구송에서 문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쓰기 능력은 상당히 부족해도 전체 주민들 사이로 점차 퍼져 나갔지만, 읽기 능력은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왜냐하면 독서를 가능케 해줄 책자나 두루마리 파피루스 따위를 손쉽게 구할 없었기 때문이다. 문자 사용의 증가라는 기술적 진보 속에서도 전통적인 구두 교육이 여전히 우세했다.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에 걸쳐 철학과 역사서가 출판되고 새로운 매체들이 이것을 대체할 때까지 시와 연극의 교육적 역할은 계속되었다.


정치 참여의 한 방식, 연극

축제에서 상연된 연극들은 매우 정치적이었다. 그리스 공동체의 경험이 응축된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비극보다 희극에서 이런 측면이 뚜렷히 나타난다. 희극은 주제와 소재, 장인물, 작가의 메시지 등에서 아테네가 직면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희극은 관객이자 민주적 의사결정의 주체인 시민들이 함께 공연을 보며 중요한 현안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했다. 공연에서 제시된 문제 해결 방식은 단선적이지 않고 열려있었다. 희극 시인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염원하며 뤼시스트라테 좋은 예이다.

기원전 411, 이십여 년째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르던 때이다. 남자들은 전쟁터를 떠돌았고 여인들은 하염없이 기다렸다. 싸움이 벌어지면 수많은 과부와 고아들이 생겨났다. 이때 희극의 주인공인 뤼시스트라테는 발칙한 생각을 한다. 섹스 파업! 여자들이 섹스를 거부하면 욕정을 견디다 못한 남자들이 전쟁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오리라. 뤼시스트라테와 아테네의 여인들이 섹스 파업을 맹세한다.

그 누구도, 애인이든 남편이든,
빳빳이 세우고 나에게 다가오지 못할 것이며,
난 집에선 황소처럼 씩씩대는 남정네와 몸 안 섞고 살면서도,
야사시한 빛깔 옷을 입고 요염하게 분칠하여,
남자가 나에게 후끈 달아오르게 할 것이며,
절대로 내 남자에게로 자발적으론 안 넘어갈 것이며,
만약 내가 싫다는 데도 힘으로 덤벼든다면,
정말 재미 하나도 없게 해주고 적극 호응하는 동작은 결코 취하지 않을 것이며,
천장을 향하여 다리를 들지도 않고,
강판에 새겨진 암사자처럼 엎드려서 엉덩이를 내밀지도 않을 것임을,
엄숙히 맹세하며, 이에 이 술잔을 비우는 바입니다.
만약 이것을 어긴다면, 맹물이 이 술잔을 가득 채우리라.

이성을 가졌다면, 분별력이 있다면, 선조들의 교육을 받았다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어리석은 짓이다. 둘은 같은 동족으로 올림피아의 제우스 축제, 퓌토(델포이의 옛이름) 아폴론 축제를 함께 치룬 종교적 공동체였다. 테르모필라이 근처에 있는 데메테르 여신의 신전에서 모였던 12부족 동맹의 일원이었고, ‘야만족 페르시아에 대항하여 함께 싸웠다. 하지만 지금은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공격하기 위해 페르시아의 도움을 받고 있다. 연극에서는 이전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얼마나 돈독한 관계였는지를 말하고, 각각의 잘잘못 따져 묻는다.

나는 한낱 여자지만 이성은 갖고 있어요.
나는 원래 분별력이 없지 않지만
아버지와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많이 듣고
나쁘지 않은 교육을 받았어요.
그래서 나는 그대들을 똑같이 꾸짖으려는 것이며,
그것은 당연한 일예요. 그대들은 동족(同族)으로서
하나의 그릇에서 제단에다 성수(聖水)를 뿌렸던 것이오.
올림피아에서, 테르모필라이에서, 퓌토에서.
(그 밖에 다른 많은 제단들은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대들은 야만족의 적군이 상존하고 있는데도
헬라스의 사람들과 도시들을 파괴하고 있어요.
여기까지 논리는 양쪽 모두에 해당돼요.

 뤼시스트라테 파업이 성공해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종전하면서 끝이 난다. 아리스토파네스는 연극을 통해 적과 자신을 돌아보도록 한다. 적을 물리치고 전쟁에서 승리하자는 일반적 결론에서 벗어나 다른 선택을 보여준다. 다만 여자들의 섹스 파업이란 기발한 상상 속에서 이런 것을 제시하기 때문에 희극적이다.

▸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고있는 일본(아베)과의 전쟁(무역전쟁) 속에서 불매운동으로 대응하는 애국주의 물결을 생각할 때, 이천여년이 지난 그리스의 연극은 얼마나 '이성적'인가! (2019.7.9 추가) 

이처럼 고대 그리스 희극은 비상식적 주제를 선택했고 여러 입장들을 드러냈다. 여러 사람들 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은 외설스런 농담들과 뒤섞여 정신적 자유공간을 만들고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축제에서 상연된 연극을 보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스스로 반성하고, 공동체와 자신의 관계를 곱씹었다. 공동체 안에 있던 현안들에 대한 독자적인 시각 등을 세울 있었다. 따라서 희극에서 반영된 규범의 확인과 해체는 전사회로 확산되어 시민들 사이의 직접적 토론거리가 되었다. 연극은 종교적 일체감을 바탕으로 공동체의 ,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등과 연결된 민주주의 구조의 일부였다.  

플라톤 국가政體에서 이상적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희극, 비극 작가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할 정도로 연극은 아테네 공동체에 종교, 교육, 정치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연극을 통해 공동체의 현안을 이야기하고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를 이끌어내려한 것은 고대 그리스만의 일은 아니다. 화가 고야(Francisco Goya, 1746 ~ 1828) 살았던 에스파니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1789) 일어났고, 그에 따른 프랑스 혁명 전쟁(1792 ~ 1802) 연이은 나폴레옹 전쟁(1803 ~ 1815)으로 유럽이 격랑에 휩싸였다.  


--- 에스파니아 이야기를 쓰려고 찾아놓은 글 ---
페르난도가
살아있는 시대에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 발발하였고, 그에 따른 프랑스 혁명 전쟁 연이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유럽을 거대한 격랑에 휩싸였다. 전란은 체제의 부패와 노화가 진행되고 있던 스페인에 비극을 초래했고, 오랫동안 국제무대에서 벗어나 있던 스페인을 유럽에서 가장 관심사로 만든다.
소년기에서 청년기까지 왕위계승자의 지위에 있었지만, 부왕과 그들이 총애하는 마누엘 고도이(모친의 애인)에게서 따돌림을 당하는 괴로운 입장에 내몰려, 원한을 가슴에 품고서도, 자중하고 있었다. 약화된 정부에 대한 전국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1805에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정정 불안이 계속된 1807 10, 페르난도는 〈에스코리알 음모 사건〉의 공범으로 체포되었다. 음모는 정부의 자유주의적인 개혁이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도움을 받아 카를로스 4 등을 추방하고 페르난드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려 것이다. 개혁파의 희망의 별이라는 입장에서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페르난도는 음모가 발각되자 그들을 재빨리 배신하고, 부모님의 지시에 따랐다.


천 개가 넘는 폴리스, 소피스트

그리스는 산이 많고 평야가 적어 일찍부터 해외무역에 종사하였다. 기원전 9세기 말부터 7세기까지 그리스 본토의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지중해 주변 지역인 이탈리아 남부와 시칠리아, 소아시아, 멀리 현대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 지역인 갈리아(Gallia) 남부 스페인 해안까지 이주하여 식민지를 세웠다.

그리스 주변지역의 식민지화는 쟁기가 도입되면서 이어진 전면적인 농업혁명에 따라 인구 성장했기 때문이다. 인구 성장과 함께 군주정은 귀족정으로 전환되었고 폴리스 내부의 정치적 긴장이 발생하였다. 이에 귀족 대가족들은 재산 분산을 막기 위해 장남에게 전재산을 물려주게 된다. 이제 나머지 형제는 다른 곳에서 재산을 일으킬 밖에 없었다. 척박한 그리스의 자연 환경 때문에 필요한 것을 교역을 통해 얻어야 했고, 이를 위해선 새로운 시장 개척이 필요했다. 이민 현상이 끝난 기원전 6세기 무렵 본토에 200개가 넘는 폴리스가 있었고 지중해 일대의 식민시까지를 합치면 1,000개가 넘었다.

▸   그리스에, 연극에 관심을 둔 이유 중의 하나가 200개가 넘는 폴리스, 아니 1,000개가 넘는 폴리스 문제였다. 이것을 어떻게 하나로, 즉 정치적 공통체로 묶어낼까! 이런 것이 당대의 문제의식이 아니었을까! 비슷한 일이 다시 근대로 들어서는 독일에서, 신구교 간에 종교전쟁을 치르는 독일에서 일어난다. 나는 다시 우리시대가, 내전에 빠져드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일(인쇄술, 책의 대량보급과 정보전달/범위 속도의 가속화)과 현재의 우리(인터넷)는 매체의 변화, 공동체를 묶던 제도의 변화 속에서 이런 상황에 빠져든 것인 아닌가! 이런 생각 속에서 분열된 공동체,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매체, 그것을 묶어내는 콘텐츠(연극, 소설, 신문, 드라마 등)와 그것의 전달형식 등등에 관심이 갔다. 2007년 이후 계속 이 문제를 붙들고 있다. (2019.7.9 추가)

그리고 모든 시민이 들어와 볼 수 있는 정도의 극장, 이것도 중요하다. 동시에 한장소에서 무엇인가를 보고 집단적인 정서적 공감, 전염병과 상태에 빠져야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 빠뜨리는 제도적/기술적 장치로서 우리 문명이 발명한 것은 텔레비전이다. 연극에 대한 관심은 텔레비전을 인터넷이 대체할 수 있을까하는 것에 있다. 기술적 가능성이 아닌, 텔레비전이 맡은 역할, 사회적 기능에 대한 질문이다. 개인의 수준까지 점점 파편화되는 인터넷이 이런 역할/기능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지역에 모여사는 개체(개인)를 공동체의 성원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런 질문 말이다. (7.10 추가)


그리스 세계인 식민시와의 접촉이 빈번해지면서 해상무역은 더욱 발전하였다. 기원전 6세기 아테네,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잇는 지협에 있었던 코린토스(Corinth; Korinthos) 주요한 해운 상업 강국으로 부상했다. 기원전 449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서 지중해 무역을 장악한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다. 기원전 461년부터 429년까지 지속된 페리클레스 치하에 귀족정치는 민주정치로 바뀌었다.

민주정 신화적, 혈연적 신분 질서에서 맹목적 교조주의를 배격했고 귀족과 부자만이 아닌 전체 자유 시민들에게 지도력이 부과되었다. 모든 시민들이 참여한 정치적 토론을 통해 정책이 결정되었다. 개인의 독립적 의사 표시를 보장한 민주정의 출현과 함께 시정(市政) 대한 지식 전달 방식인 변론술이 급속히 요청되었다. 상호 설득을 통하여 견해의 일치를 구했으므로 설득술이 중요한 출세의 도구였다.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토론 참여를 장려하려고 민회에서 말을 사람에게는 면세의 특권까지도 부여되었다.

기원전 5세기부터 4세기까지 지중해의 중심지가 아테네에는떠돌이 교사 외교관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그리스 세계에서 지식인들이었다. 이들은 서로 관습이 다른 나라들에서 살았을 뿐만 아니라, 여행을 통해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관찰하면서 얻은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들을 소피스트(Sophist) 불렀다. 개개 문화에 대한 다양한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얻어진 지식은  소피스트에게 어떤 절대적 진리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였다. 따라서 소피스트들은 사회적 제도가 금기나 마술적인 것이 아닌 인간이 만든 것으로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관습적이라고 주장했다. 전통적인 종교적, 도덕적 규약들은 인간이 만든 규칙과 관습들일 뿐이다.  

이들 소피스트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481?~411 B.C.), 고르기아스(Gorgias, 483~375 B.C.), 트라시마쿠스(Thrasymachus, 459~400 B.C.) 등이 가장 유명하다. 프로타고라스는 현재 그리스, 불가리아, 터키에 걸쳐 있는 트라키아(Thrace)에서, 고르기아스는 이탈리아 시실리섬의 레온티니(Lentini)에서, 그리고 트라시마쿠스는 현재 터키 이스탄불 근처의 캘세돈(Chalcedon)에서 아테네로 왔다.

이런 소피스트들의 사상은 혈연에 기반했던 아테네의 귀족정치가 민주정치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힘을 발휘했다. 소피스트들의 명료한 표현과 설득력이 깃든 화술(話術), 호메로스적 운문에서 벗어난 산문과 문법 등에 대한 실용적 기술들, 새로운 사고 방식이 시대 상황에 들어맞았다. 이들은 민주적 아테네의 시민들을 교육시킬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시적 구송(口誦) 통해 전승된 신화적 지식과는 다른 형태의 지식 새로운 생활양식을 몸에 지니고 있었다.

소피스트들은 아테네에서 정치적 교양을 가르쳤다. 소피스트는 대부분 다른 도시국가 출신의 직업적 교사였으므로 당연히 돈을 받았다. 상공업활동을 통해 부를 쌓은 신흥중산계급에 속한 시민들은 이들에게 국가 지도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비싼 수업료 때문에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

이들(소피스트들)이 항상 말하고 있는 덕(Arete)은 덕(德)과는 상관이 없는 말이며, 말의 원래적인 뜻으로 새기자면 숙련(熟練)이라고 번역됨직한 말이다. 즉 이 때에 중요한 것은 정치적 숙련이다. 시대는 바로 페리클레스의 제국주의시대였다. 새로운 땅을 점령하고 이용하는 사람들과, 의지를 관철하고, 그 무엇인가를 실행하고, 또 그 무엇인가가 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였다. 소피스트들의 학문은 거듭 말해지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교양이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의 교양이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양성해내는 것이었다.


소피스트가 있기 전에는 전통적인 토지귀족의 자녀들만 수준 높은 교육을 받을 있었다. 하지만 귀족들의 교육 대부분은 선조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견해와 관습이라는 가계적 전통 위에서 이루어졌다. 교육 내용이 혈통에 따른 도그마와 신화, 전설, 인습 등의 신비주의 위에 있었다. 이런 교육이 새로운 민주주의의 요구를 만족시킬 없었다.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 미디어의 이해에서 문자의 출현과 함께 그리스에서 일어난 일을 교육 매체, 정치 참여의 방식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아마추어리즘

3만여명의 아티카 시민들은 모두 민회에 참가하여 의견을 말할 있었다. (말할 자격이 있었다가 맞을 것이다. 2019.7.9) 민회 광장(agora)에는 1 4 명이 동시에 앉을 있었고, 한달에 서너 정도, 일년에 40 모여 회의를 했다. 아테네의 민회에는 보통 번에 5 명에서 6 정도가 모였다. 민회에서는 법안 의결, 전쟁 선포, 조약 인준, 공직자에 대한 통제, 매년 10명의 군사령관 선출 국정에 대한 거의 모든 권한을 행사했다. 민회 이외에 아테네의 법에서 요구하는 시민들의 공적 참여는 아주 많았다. 해마다 1 2천에서 1 4 명의 아티카 시민들이 공직에 참여했다.
 
현재의 행정부격인 평의회는 시민 5 명을 추첨하여 구성되었고 임기는 1년이었다. 평의회의 의장은 매일 아침마다 다시 뽑았고 민회의 의장도 겸했다. 우리나라로 치면 국회의장과 대통령의 임기가 하루였던 셈이다. 법관은 시민 3 6 명에 이르렀다.  2년간은 군대에 복무해야 했고 60세까지 징집상태에 있었다. 공무원도 추첨으로 뽑혀 1년씩 근무했다. 공직은 일년 내내 디오니소스 축제의 코러스 공연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마을 행정 업무, 최고 공직자, 국경 수비대나 해상 동맹 부대에 배치된 군인, 아테네 법정의 배심원 다양했다.
 
디오니소스 축제의 코러스 노래 경연 클레이스테네스가 토지 귀족의 혈연 중심 지역경제 단위인 부족을 10개의 순수 행정 단위로 재조직하는 민주 개혁 이를 공고히 하기 위해 도입했다고 추측된다. 코러스 노래 경연(디튀람보스 경연)에는 아티카의 10 부족에서 각각 50인으로 구성된 성인 남자 코러스와 소년 코러스가 구성되어 디오니소스를 기리는 합창곡을 상연했다. 1,000명이 노래 경연에 부족을 대표해 참여했다. 부족 합창대들은 오로지 아티카의 순수 시민들로만 구성되었다.
 
어떤 기능은 종종 전문지식과 숙련도를 요구했지만 이것을 위한 교육도 직업 공무원 제도도 없었다. 노동자 임금 수준보다 낮은 약간의 손실 보정 이외에 어떤 보상금도 없었다. 따라서 국가 행정은 시민들의 손에 의해 집행되었고 아테네인들은 시민이었지 신민(臣民) 아니었다.
 
특수 기술과 관련 기술 요하는 군사령관(스트라테고이)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행정관들은 제비뽑기로 정해졌다. 제비뽑기는 당시 관습적으로 널리 쓰였던 공직자 선출 방식이었다. 오늘날의 총리나 대통령 또는 장관으로 있는 9명의 최상위 공무원인 집정관도 지원자 중에서 제비뽑기로 선출되었다. 집정관 선출 방식의 변화 (솔론, 페리클레스) 10명의 군사령관도 민회에서 선출되어 그들이 날마다 번갈아가며 지휘를 맡았다. 실제 페르시아와의 전쟁도 이런 방식으로 10명의 군사령관이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면서 승리를 이끌어냈다.

이렇듯 고대 아테네에서 공무원의 자격 요건 전문성이 아닌 시민으로서의 덕성(arete)였다. 덕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적 영역에서 자신의 탁월함을 드러낼 있는 정치적 숙련이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하나의 전문분야만 추구하는 장인의 작업하는 삶도 자유인이 해야 일이 아닌 노예적인 것으로 여겼다. 당시 그리스 사람들은 자유를지위, 인격적 불가침성, 경제활동의 자유, 제약받지 않은 이동의 권리로 구성되는 으로 이해했다. 장인은 작업 계약을 하면 자신의 자유로운 지위를 구성하는 요소 가지인 경제 활동의 자유와 제한받지 않는 이동의 권리를 일시적으로 포기하기 때문에제한적인 노예의 조건에서 살아간다 있다. 경제적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는 상인의 탐욕적인 삶도 부끄럽게 여겼다. 그것은충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이기 때문이다.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인간의 조건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하면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유인이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삶(bioi)의 방식을 구별하였다. 그것은 삶의 필연성과 이것으로부터 비롯된 관계들과는 전혀 상관없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었다. 이 선택의 필수적 전제조건인 ‘자유’는 자신의 생계에 기여하는 모든 생활방식을 배제한다. 여기에는 생존의 필연성과 주인의 지배라는 두 가지 강제에 예속된 노예적 삶의 방식인 노동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장인의 작업하는 삶과 상인의 탐욕적인 삶 모두가 배제된다. 간단히 말해서 자발적이든 비자발적이든, 평생동안이든 일시적이든 간에 자유롭게 움직이고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모든 사람은 제외된다. 이와 본질적으로 다른 나머지 세 가지 삶의 방식들은 ‘아름다운 것’, 다시 말해 필수적이지도 않고 또 단순히 실용적이지도 않은 사물에 관심을 가진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아름다운 것이 주어진 대로 소비되는 육체적 쾌락을 향유하는 삶, 폴리스의 국사에 관여하는 삶(폴리스에서는 탁월함이 아름다운 행위를 낳는다), 그리고 영원한 것의 탐구와 관조에 바쳐지는 철학자의 삶(영원한 것의 지속적인 아름다움은 인간의 개입에 의해 산출될 수도 없으며 그것들의 소비를 통해 변화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 아래 단락은 위에 동일한 것이 있다 ---
 
이들(소피스트들)이 항상 말하고 있는 덕(Arete)은 덕(德)과는 상관이 없는 말이며, 말의 원래적인 뜻으로 새기자면 숙련(熟練)이라고 번역됨직한 말이다. 즉 이 때에 중요한 것은 정치적 숙련이다. 시대는 바로 페리클레스의 제국주의시대였다. 새로운 땅을 점령하고 이용하는 사람들과, 의지를 관철하고, 그 무엇인가를 실행하고, 또 그 무엇인가가 되려고 하는 그런 사람들이 필요한 시대였다. 소피스트들의 학문은 거듭 말해지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교양이라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일반 민중들의 교양이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들을 양성해내는 것이었다.

 
--- 아래부터는 단상/인용문만 써놓고만 부분 ---
 
권력의 분산을 위한 극단적 아마추어리즘의 수용
인간은 본래 잠재적으로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다

▸   "제비뽑기는 당시 관습적으로 널리 쓰였던 공직자 선출 방식"을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우린 너무 전문가주의에 빠져있는 것이다. 아렌트는 어디선가 이런 말을 한다. 중요하기 때문에 정치가나 전문가(관료)에게 맡길 수 없는 일들이 있다. 군 부재자투표 부정을 양심선언한 이지문 중위는 <추첨 민주주의 이론과 실제: 직접 대의 민주주의를 보합하는 새로운 시민 정치 패러다임의 모색>이란 책을 썼다. 우린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을 제비뽑기로 뽑는다면 어떨까! 이렇게 하려면 이런 태도/전제가 필요하다. "인간은 본래 잠재적으로 모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그리고 어떤 조건이 주어지면 그것이 발현된다고. (2019.7.10)

페리클레스 마라톤 전투에서 죽은 병사들을 추모하며우리의 평범한 시민들은 비록 생업에 종사하기는 하지만 공무의 공정한 심판관들이다 주장하고 있다.
 
비록 소수의 사람만이 정책을 발의할 있다고 해도 우리 모두 그것을 비판할 있다. 우리는 논의를 정치적 행위에 대한 장애물로 보지 않고 현명한 행위를 위한 하나의 불가피한 예비행위로 본다. ... 요컨대 나는 아테네는 그리스 세계의 학교이며, 아테네의 모든 개인은 적절한 재능을 기르고 위기에 대처하며 자립적일 있도록 길러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적 학습기관의 역할을 것이 바로 연극이 아닐까?

 
연극, 공적 공간
아렌트

 
 

심지어 시민 내에서도 혈통과 부에따라구분 있었다.

아티카 지역의 30 정도의 인구 도시 거주자는 15만이 안되었다. 지금으로 보면 중소 도시인 아테네에는 1 명이 넘는 수용인원을 가진 극장이 있었다. 극장에서는 연간 백편의 연극공연이 있었고 대다수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에서 연극이 공동체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말해주는 사실들이다. 연극은 아테네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필요한 중심요소였다. 

연극은 가장 중요한 하나의 사회적 교육기관 이었다.

 

 

... 이정린 ...

양피지에서 파피루스의 출현에 따라 운문에서 산문으로의 변화가 가능했다. (플라톤서설 .. 뒷쪽 파피루스 나오는 )

 

정점에 페리클레스

공동체의 생활방식과 경험이 연극, 코러스의 노래, 등에 반영되어 전체 시민들에게 전달되었다.

   

앞서 살펴본 뤼시스트라테처럼 연극은 이럴 아티카 시민들이 정치적 ...

 

 

연극공연은 아테네의 공동체의 전통과 사회문화적 규범, 기원전 492년부터 시작된 오랜 전쟁상태의 지속 등을 반영한다.

 

민주정과 연극을 바로 이어붙이기 어렵다. 스파르타에서는 연극이 없었을까? 확인 필요 ... 없는 같은데 ...

 

사회적 비용부담을 했을까? 여기에 투자를 했을까?

구어문화의 특징 .. 맥클루언 .. 문자문화에서 구어문화로 


 

[... 희극공연] 페이지86 주석74 애국주의적

 

 

아테네에서는 기원전 594 솔론이, 80여년 후인 508~507년에는 클레이스테네스가 민주개혁을 실시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독재 위험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도자기 파편에 6,000 이상을 얻은 사람은 10 이상 아테네에서 추방하도록 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시민에게 완전히 평등한 참정권을 부여했다.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9 ~ 449) 고대 그리스는 경제적・문화적 발전을 거두었다. 중심지인 아테네에서는 노예제 기반의 민주주의적 공화제가 강화되었다. 페르시아 전쟁 수병으로 참가하게 아테네의 민중들은 자신들이 아테네가 전쟁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원전 461 페리클레스(기원전 495년경 ~ 429) 아테네 정계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그는 관리의 추첨제, 유급 관리제를 도입했다. 국가 제전에 참가하는 자들에게 수당을 지급해 가난한 사람도 관직에 오를 있도록 했고, 민중들이 국가의 정치 활동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아테네에서의 이러한 민주정의 발전이 아니다. ‘ 민회에 출석하는 시민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것을 넘어서 동시에 연극관람 수당도 지급했을까?’이다. 그리스에서 연극이 성행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당시에 연극관람이 민주정에 참여하는 방식의 하나로 중시됐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고대 그리스 문화 발전의 중심지는 아테네였다.

2019/07/10 00:39 2019/07/1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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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쓰던 글이다. 2007년 <미디어2.0> 서문에서 벤야민의 아우라의 부활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었다. 벤야민, 맥루한(매클루언), 플루서, 뒤르케임 등에 관련된 책을 읽었나보다. 지금도 벤야민 읽는 것을 계속하고 있고, '아우라의 부활'에 대해 심혜련교수가 쓴 책도 나왔다.

좀 되었지만 아감벤의 <장치란 무엇인가>를 읽고, 벤야민-푸코-들뢰즈를 이어붙여 볼 수 있는, 어딘가 연결되는 것 같은데 하는 지점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아우라를 '장치-배치'를 가지고 설명하는 것이다. 반종교개혁, 또는 카톨릭혁명을 통해 바티칸이 만들어내려고 했던 '성스러운 장소성'-제의적 효과, 정말 그것을 만들어낸 '종교적' 장치의 작동 결과/효과로 아우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장치란 무엇인가? 장치학을 위한 서론 - 10점
조르조 아감벤.양창렬 지음/난장

어떤 하나의 배치가 우리의 몸을 변양(옷 매무새를 바로하게 하는 등의 mode의 변화)시키고, 어떤 감응(성스러운 느낌, 신과 합일된 듯한 느낌 등)을 일으키게 만든 것이다. 르네상스의 예술과 건축술은 이렇게 종교와 결합된다/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전 글들에서 언표적 배치에 의한 '비물체적 변환 (또는 비물질적 변환)'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우린 당연하게도 기계적 배치에 의한 '비언표적 변환'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사물(물질, 관계, 구조 등)의 배치/질서(특히 장소적 위치)가 바뀌면서 '의미'가 바뀌는 것이다. 이론(의미) 없이 먼저 의미가 만들어져버렸다고 해야하나! 비물체적 변환에 대한 유비적인 표현이다. 물질운동의 표면효과/사건으로 의미가 드러난다고 하면 이론이 꼭 중요한 것은 아닐 수도 있기에. (하지만 인간 자체가 의식(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이론/전략은 여전히 중요하다.)

교회-성화(성서화)-예술 등으로 연결된 카톨릭적 배치가 기술적 복제물인 사진이 나오면서, 그 예술품(사진)의 위치가 바뀌면서 의미가 바뀌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효과가 제의적인 것에서 전시적인 것으로 바뀐다고 벤야민이 말했다고 생각한다.예술/종교의 층이 그것과 별개로 발전한 기술의 층과 만나면서 예술은 탈영토화되고 다른 것으로 재영토화 된다. 벤야민은 그것을 '비평적'으로 발견한 것이 아닐까!

이렇게 말해보자! 사진기의 발명에 의해 전통적인 예술품은 다양체가 되었다.  (사진-기술적 복제품인) 예술품은  다양한 장소에 위치해 그 숨겨진 의미나 효과가 (또는 역량/능력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보면 하나의 단일한 정체성으로 짓눌려있더 TV(방송 프로그램, 콘텐츠)가 기술의 발전에 의해 하나의 다양체가 되어가고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 결과 어떤 사건이, 의미나 효과가 나타날지 ...

아래 게재한 문서를 보면 검정색과 붉은 색 글씨로 되어있다. 먼저 쓴 것이 검정이고, 쓴 것을 보면서 다시 덧붙인 부분이 붉은 색이다. 아래 옮겨놓은 글에서는 붉은 색 대신 파랑색 글씨를 썼다. 그리고 가끔 나오는 붉은 색 글씨는 어떤 이유에선지 다시 덧붙인 것인데 본문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위의 붉은 색은 작은 글씨로 그때 그때 떠오른 생각이나, 다른 책에서 끌어왔으면 하는 부분에 대해 쓴 것이다.

이글 역시 쓰다가 말았다. 몇 권의 책을 들고 한달 이상을 궁싯거리며, 링크로 연결되 웹문서를 읽는 것처럼 어떤 책의 인용에서 그 인용된 책을 찾아읽고를 반복하면서 어떤 책을 찾아갔다가 그 책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
"나는 노상강도처럼 책을 읽는다. 이책 저책 띄엄 띄엄")  시작해야 할 외부적인 이유가 없는 것처럼 끝내야할 이유도 없었던 것이고, 아마 또 다른 것에 관심이 갔을게다.

어떤 의미에서 자기 이해가 끝났다고 생각했으니 더 이상 쓸 이유를 잃었을 수도 있다. 
 (아래 글에 '자기이해 부분: 논의의 핵심 단락의 시작-끝'을 찾기 쉽도록 녹색으로 표시해 둔다.)

관련글 -----------------------------------------------------------

발터 벤야민 - 아우라 (2007.10.5) 
요즘 관심사 - 독서 리스트 (2009.12.24)
2007년 이후 (201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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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 2008.12.17일

여기 지금, 그리고 역사적 유일성과 진품성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완벽한 복제에도 여전히 하나의 것이 결여되어 있다”• [가장 완벽한 복제도 원본을 대체할 수 없다. 결국은 원본을 대체할 수 없는 복제품이 스스로 하나의 위상을 가질 때 문제가 발행한다. 그리고 복제품이 원본과 아무런 관계를 맺지 않을 때 문제가 발생. 원본 자체의 존재론적 위상의 붕괴와 새롭게 나타난 복제품에 대한 존재론적 위상의 정립이 그것이다.]고 말한다. 그것은 예술작품이 놓여 있는 장소에서의 일회적 현존,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이다. 이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은 어떤 예술작품이 역사를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일회적 현존이 아닌 그 밖의 어디에서도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거니와, 예술작품은 그것이 존속하는 동안 그 역사에 종속되어 왔다.”

예술작품이 ‘그 역사에 종속되어 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예술작품을 다른 것이 아닌 바로 그 예술작품(the original)으로서 존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예술작품의 역사성 때문이라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다. 일회적 현존 안에서 예술작품의 역사가 이루어지며, 예술작품이 예술작품일 수 있게 되는 것은 그 일회적 현존의 역사에 의해서이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의 역사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발생하는 작품의 물리적 변화, 소유관계의 변화, 그리고 어떤 예술작품에 대해 역사적으로 만들어진 복사물의 종류와 수가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물리적 구조에서 겪은 변화의 흔적은 화학적 혹은 물리적 방식의 분석을 통해서만 추적될 수 있고, 복제에서는 수행될 수 없다.[수공업적 복제의 경우 이런 흔적을 추적할 수 있지만 이때는 이 작품이 복제가 아닌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될 때, 또 인정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소유관계의 변화의 흔적은 전통에 관한 문제이며, 그것의 추적은 원작에 입각해야 한다. 그런데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에서 역사가 현실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이런 것보다는 복사물로부터 원본을 보호하기 위한 것 때문인 듯 하다.

“물론 예술작품의 역사는 그[물리적 구조, 소유관계의 변화] 이상을 포함한다. 이를테면 모나리자의 역사는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 모나리자로부터 만들어진 복사물의 종류와 수를 포괄한다.”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항상 복제가 가능했고, 인간이 만든 것은 항상 인간에 의해 모방될 수 있었기 때문에 ‘변화의 흔적’들, 즉 어떤 예술작품의 역사는 추적되고 관리되어야만 했다. 배제의 역사, 복제를 원작과 구분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역사. 관리의 불가능성, 또는 관리의 불필요성, 역사의 끝 <<이중섭의 빨래터 사건>> [역사의 상실 = 기술복제의 의미] 법적 제도적 관계만 남아 ... 저작권 같은

그는 “원작의 여기와 지금이 그것의 진품성의 개념을 결정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다음과 같이 읽을 수 있다. 원작의 여기와 지금, 즉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이 그것의 진품성의 개념을 결정한다는 판단의 근거에는 역사가 있다. 즉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과 진품성을 관계 맺어주는 것은 역사성이다. 또는 동어반복처럼 보이지만 어떤 예술작품이 진품인 것은 그것이 역사적으로 진품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말한다.

“사물의 진품성은 그 기원으로부터 전승될 수 있는 것에 이르기까지의, 물질적 지속으로부터 역사적 증거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의 총괄이다.”

“물질적 지속”은 예술작품의 현존성, 즉 여기에 지금 있는 예술작품이며, “역사적 증거물”은 앞에서 살펴본 물리적 변화, 소유관계의 변화, 수공적 복제물의 종류와 수 및 그 이상의 것을 포괄한다. 하지만 진품성은 어떤 사물의 물질적 지속에 근거를 둠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으로 그것이 원작인지 모작(模作)인지의 여부는 역사적 증거물에 의해 보증 받아야 한다. 즉 진품성을 구성하는 것은 어떤 작품의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의 결합을 통해서이다.• [아우라, 탈맥락화, 역사 없음] {예술작품에서 역사로 향하는 발걸음과 역사에서 예술작품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원환을 이루면서 예술의 근거를 만들고 있다. 하이데거, 진중권의 현대미학 강의, p.66} 이렇게 성립된 진품성의 개념은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가 가능한 시대를 맞아 다음과 같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 [사물의 진품성을 구성하는] 후자〔역사적 증거〕는 전자〔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전자가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에 있어서는 후자, 사물의 역사적 증거도 위협받게 된다. 물론 위협받게 되는 것은 역사적 증거 뿐이지만, 그러나 이처럼 위협받게 되는 것은 또한 사물의 권위〔진품성〕이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적 복제 그 자체라기보다는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만드는 기술적 복제[이것에 대한 설명을 해야 한다.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인가? 벗어난 것을 왜 인간이 통제할 수 없을까? 두가지 차원에서 설명해야 한다.]이다. 벤야민도 기술적 복제가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다.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과 이에 근거한 예술작품의 역사, 그리고 일회적 현존과 역사의 총괄로서의 예술작품의 진품성이라는 개념까지 도달한 후 이번에는 반대의 순환이 시작된다.

기술적 복제는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만들어내며 이를 통해 역사적 증거를 위협한다. 역사적 증거에 대한 위협은 다시 사물의 권위, 즉 진품성을 위협하고 결과적으로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벤야민은 복제의 고유성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며 그것을 찾아 나선다. “진품성은 통상 모조로 낙인 찍힌 수공적 복제에 대해서는 자신의 완전한 권위를 유지” 하지만 “기술복제”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기술복제에는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사람 능력의 변화, 또는 사람의 인지구조와 다른 기계적 인지구조, 그에 따른 효과 ... 아우라의 상실, 맥루한의 인간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현대적 지각의 특징-진중권 p.44’]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작품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만드는 기술적 복제가 가지고 있는 특성은 무엇일까? 역사, 담론이 진품성을 위협하는 속에서 우리는 담론의 물질성이란 개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아우라의 상실은 복제품에서, 원작에서는 아우라가 상실되지 않는다. 결국 이렇게 생각해 보자! 원작에 대해 자립적인 복제품이 아우라 없이 존재한다. 예술작품의 새로운 존재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원작의 아우라가 상실되지 않는다. 원작의 지금, 여기의 가치가 더욱 올라간다. 왜냐 기술복제를 통해 사람들을 탈마법화(탈영토화) 시키면서 다시 영토화 한다. 예술의 장의 논리에 사람들이 끌려들어간다. 전시된 것을 보고 원작을 갈구한다. 등등


기술복제의 고유성, 사람의 능력을 벗어남


[역사적 유일성의 상실] 벤야민은 이것을 먼저 사진술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사진술은 사람의 자연적 시각, 즉 육안(肉眼)으로는 전혀 포착할 수 없는 다양한 시점(視點)의 선택이 가능하고 확대나 고속촬영 기법 등을 통해 자의적으로 시각(視角)을 변경할 수 있다. 이렇듯 기술적 복제는 수공적 복제와 달리 진품을 다양한 ‘봄(視)’의 방식을 통해 다시 세울 수 있다.[진열하는 것이 아닌 건립하다, 하이데거] 이런 방식을 통해서 기술적 복제는 수공적 복제보다 원본으로부터 자립적으로 될 수 있고, 자립적으로 된다.• [렘브란트전에서 LCD, 빔프로젝터 화면 앞에 모여있는 아이들] - 2008.12.27일 관람

수공적 복제에 대한 사진의 우월성, 하지만 탁월한 모작에 대한 르네상스인의 반응은 사뭇다르며, 모작이 하나의 예술작품, 즉 오리지널로 되기도 한다.

또 “기술적 복제는 원작의 모상을 원작 그 자체가 이를 수 없는 상황에 옮겨놓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기술적 복제는 … 수용자들이 원작의 모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한다.[원격현전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자]” “원작의 모상에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은 음반을 이용할 경우 수용자들이 음악당에서 들을 수 있었던 음악을 자기 집의 방안에서건 자동차를 타면서건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사진을 이용할 경우에는 대성당이나 외국에 있는 미술관을 떠나 미술 애호가의 집에서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기술적 복제는 복제된 작품을 통하여 원본이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 전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기술복제가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하는 것[인간의 확장, 맥루한]’은 원작의 모상에 더 가깝게 복제하면서도 원작에서 벗어나 자립성을 갖도록 하는 것, 또 이것을 대량으로 복제 가능하게 하여 여러 곳에 편재(遍在)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대중 시대에 널리 유포되는 한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상품화될 수 있다. 기술복제의 대중적 유포, 또 이를 통한 무한한 전시 가능성이 다시 원작 전시에 대한 수요를 창출한다. 전시가치가 실제 자본의 증식,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벤야민이 말한 전시가치가 전개되면서 나타나는 ‘다른’ 효과, 예기치 않은 효과, 김상환,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 pp.316~317의 내용에 대한 비평] 기술복제는 인터넷과 같이 시간, 장소의 극복을 위해여 존재했다. 처음 나왔을 때부터 ... 등등  기술/기계에 의한 창작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한 자립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사고하는 기계를 최초로 생각한 누구?

주석 -----------------------------------------

• 이 인용문은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 ‘가장 완벽한 복제도 원본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인용된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은 특별한 언급이 없을 경우 파시즘에 관한 문헌을 읽고 공부하는 CP Group(강유원, 김성열, 김재석, 박수민, 서민우, 신기철, 지주형)이 번역한 것을 사용하였다. 인용문 중 〔  〕 안의 말들은 역자들이 붙인 것이다. 필자가 추가하였을 경우에는 [  ]를 사용하였다. 이글에서 별도로 인용처를 밝히지 않고 “  ”로 표시했을 경우 모두 이글을 인용한 것이다.
   이 번역문은 http://allestelle.net/resources/2005/04/04/108 (2009.1.10)에서 볼 수 있다.  
   번역문은 


•• 어떤 예술작품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곳은 부르디외가 말하는 ‘예술의 장(場)’이다. 이곳에서 예술작품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전기 작가, 문헌학자, 예술사가, 문학사 등이 활동하면서 전통, 운영 법칙, 모집 규칙 등 그곳에 필요한 역사를 갖춘다.

••• 쉽게 말해 역사적으로 진품이었기 때문에 진품이다. 또는 ‘여기, 지금’ 있는 어떤 예술작품이 진품임을 역사적으로 보증하기 때문에 진품이다. 진품임을 역사적으로 보증하기 위해 물리적 변화에 대한 분석부터, 전문가의 평가까지를 포함한 제도적 기술들이 만들어진다. KBS 방송 프로그램인 <TV쇼 진품명품>은 ‘예술의 장(場)’의 구성원인 고미술 전문가들이 출연하여 작품의 역사를 고증하고, 진품임을 보증하는 일련의 제도적 과정을 보여준다. 그 과정 안에는 TV(방송)이 가지고 있는 권위가 깊숙이 개입된다.

•••• 그 이상의 것, 즉 ‘예술의 장(場)’에서 생산된 어떤 예술작품에 관해 만들어진 담론(談論) 및 그것들 간의 역사적 관계, 또 이런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들의 관계까지도 포괄한다.

•••••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은 다시 ‘역사적 일회성과 실체적 유일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김상환, pp317~318)

•••••• 벤야민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은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여기서 훼손은 물리적 변화를 의미한다. (강조는 필자)

••••••• 여기서 ‘다양한 봄의 방식’은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을 다양하게 보여줄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데 ‘봄(視)’은 단순히 보는 행위를 지칭하지 않는다. 한자에서 ‘視’는 어원상 똑똑히 보이다, 가만히 계속하여 보다, 자세히 보다 등의 뜻을 가진다.

•••••••• “수공적 복제”는 사람이 직접 보고 그린(또는 만든) 원작을 모사한 위조품을 말한다.

••••••••• ‘자립적으로 된다’는 것은 진품과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진품이 가지고 있던 다른 잠재성을 풀어내 보여준다는 것은 아닐까?

•••••••••• 디지털 기술과 통신(Internet)의 발전에 의해 이제 미술작품과 음악, 영화 등을 ‘장소나 시간에 관계없이’ 웹 서버(web server)에 접속하여 볼 수 있다. 벤야민의 논의가 디지털 환경에서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대량’이란 측면에서 이제 ‘복제’가 하나씩 진행되는 모사가 아닌 ‘생산’이 된다.




기술복제와 대중문화의 출현


기술적으로 복제된 작품이 이처럼 원본에 대하여 더 많은 자립도를 갖고, 더 원작에 가깝게 대량으로 제작되어 유포될 수 있게 됨에 따라 예술작품의 사회적 성격이 앞선 시기와 달라진다.■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기술복제 시대”와 그 이전의 시대를 비교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신앙과 관습에 기초한 집단적 사회”였던 르네상스 이전의 중세 기독교적 전통에서 보면 예술작품의 수용자들(公衆)은 전체적인 사회공동체로 확장되어 있었다. 예술이 존재했던 장소들에는 문화적 공동체의 대다수가 함께 모여들었고,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예술작품을 받아들이고 채택된 약호(code)에 따라 이야기했다. 또 그 장소가 공동체의 만남의 장소로서 모든 수용자들에게 개방적이었다는 점에서 예술작품은 공적인 성격을 띠었다. 공동체적인 성격의 근본적인 균열이 존재하지 않고 유지되는 전통적인 아프리카 사회에서의 예술작품들도 이런 형태로 사회적으로 수용된다. 이런 사회 속에서는 만들어진 작품들 안에 드러나는 상징들의 의미는 사회 문화적 삶을 통해서 형성된 사전지식(pre-knowledge)에 의해 유식한 사람들만이 아닌 공동체 성원이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중세 유럽의 경우 기독교적인 제도와 실천의 통합에 의해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사회적 환경과 대성당의 천정과 벽면을 차지했던 성화(聖畵)들 속에서 제시됐던 예술적 환경이 다르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예술사적으로 보면 로마네스크와 고딕시대가 이 시기에 해당된다.]

다음은 예술작품이 보다 제한된 방식으로 서로 다른 계급 또는 사회집단들에 의해 전유되는 시기로서, 균열되기 시작한 사회집단들, 또는 분화되기 시작한 계급들에 따라 다양한 예술형식들이 동시에 존재했다. 이때의 예술작품은 작가 개인의 천재성과 영감의 소산이라고 이해되면서 사회 전체를 위해 타당한 약호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었다. 그보다 사회가 계급과 집단으로 분화되어 그 분화된 정도에 따라 각각의 계급 또는 집단에 맞는 약호가 다양하게 존재했다. 루이 14세는 통치 말엽에 그의 저택들에 걸려있었던 화란풍의 회화들을 가리키며 ‘이 끔찍한 것들을 치워버리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평화로운 중산층의 집안 장면이 군주에게는 대역죄(lèse majesté)의 범죄처럼 보였던 것이다. 주권자인 군주의 취미, 궁정의 취미 그리고 중산계급(bourgeois)의 취미 간에는 상당한 거리가 존재했다. 균열된 사회 속에서 전달자들의 약호들과 수신자들의 약호들 사이에는 언제든지 과도한 거리가 존재할 수 있었고 이로부터 절대적이고 해소되지 못할 오해가 발생 수 있었다. 절대주의 국가의 성립과 자본주의적 발전을 거치면서 사회집단이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이전 중세시대 수용자들(公衆)의 통일성은 다양성에 의해 대체되기 시작했다. 벤야민이 그의 글에서 “전통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르네상스 이후의 시기가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은 문학, 미술 그리고 음악을 재생시키는 기계적 수단이 발전하는 시기로서, 작품들과 수용자들(公衆) 간의 관계, 작품들과 작품들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작품들과 수용자들 자체까지 변화가 시작된다. 기술적 방법들을 이용하면서 수용자들의 통일성이 다양성에 의해 대체되었던 이전 시기와 반대로 예술을 대중화함으로써 수용자들을 다시 통합한다. 예술은 대중문화로 대체된다. 대중매체는 예술을 기계적 방식을 이용해 대중적으로 생산하며 수용자들도 일정 정도의 교육을 받은 특별한 계층으로서의 교양인(敎養人)이 아닌 말 그대로의 대중이 그 주류가 된다. 대중매체를 통한 대중문화는 원본에 대하여 더 많은 자립도를 갖고, 더 원작에 가깝게 대량으로 제작되어 유포, 전시될 수 있다는 기술복제의 고유성에 위에서 성립한다. 벤야민은 아밸 강스(Abel Gance)를 인용하여 문학, 미술, 음악이 기계적 복제 수단인 영화를 통해 재생되는 것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셰익스피어, 렘브란트, 베토벤은 영화화 될 것이다 … 모든 전설, 모든 신화 그리고 모든 신화적 인물, 모든 종교 창시자, 아니 모든 종교가 … 카메라 빛에 의한 부활을 기다리며 영웅들은 〔영화의〕 문 앞에 몰려든다.”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벤야민과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의 논의 속에서 뒤에서 다시 살펴볼 것이다. <이성은 신화다, 계몽의 변증법> 권용선.. p.174를 볼 것

주석 -----------------------------------------

■ 여기서 언급하는 변화는 ‘예술작품의 사회적 기능’, ‘사회적 수용’ 방식의 변화이다.


■■ 최태만, 『미술과 도시, 예술가의 눈에 비친 도시와 삶』, 열화당, 1995, p.34

■■■ ‘상징들의 의미’는 앞에서 말한 ‘채택된 약호(code)’이다.

■■■■ 예술작품의 사회적 기능, 또는 사회적 수용방식의 세 시기 구분은 『美學의 理解』(김문환 編, 문예출판사, 1989) pp.379~388을 참고할 것.
기계적 복제, 그것을 이용한 기계적 재생산 방식의 이용을 통한 대중매체의 발달과 대중문화의 등장, 이에 따른 예술분야에서의 변화 및 대중문화의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 등에 대해서는 심혜련, 「매체에 대한 미학적 접근 - 대중매체에 대한 발터 벤야민의 고찰을 중심으로」(매체철학연구회 지음,『매체철학의 이해』, 인간사랑, 2005, pp.127~169)를 볼 것.

■■■■■ ‘영화를 통해 재생되는 것’은 ‘영화에 재매개(remediation) 되어 다시 살아나는 것'이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재매개를 통해 이른 예술 영역이 재조명되어 숨어 있던 의미가 더욱 부각될 수 있고, 영상을 이용함으로써 더욱 대중화될 수 있다.

■■■■■■ 문학이 기계적 수단을 통해 재생되는 것은 출판기술의 발달뿐만이 아닌 다른 미디어에 의해 재매개(remediation)되면서이다. 맥루한은 “영화의 내용은 소설이고, 극이며 오페라이다”라고 말한다. 서로 다른 예술 영역 내에 있던 작품들이 하나의 새로운 작품 내에서 합쳐지며 이를 통해 작품들 사이의 관계가 변화된다.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인간의 확장』,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p.10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


예술작품의 진품성을 구성하는 것은 어떤 작품의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의 결합, “물질적 지속으로부터 역사적 증거물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것의 총괄”이다. 그런데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에 있어서는 사물의 역사적 증거도 위협받게 된다’고 지적하면서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함께하고 있다.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은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사실 기술적 복제는 어떤 작품을 훼손할 수 없고 그 작품 자체의 “물질적 지속성”에 어떤 영향을 줄 수도 없다. 이것은 복제가 원작(the original)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도록 만드는, 훼손하는 직접적 원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원작 자체보다도 먼저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이 중요하고, 그것과 원작이 새롭게 관계를 맺음에 따라 원작 자체에서 일어나는 의미 변화가 중요하다.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은 수공적 복제품들이 처했던 상황과 비교할 때 더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술적 복제품의 고유성이란 수공적 복제품에서 발견되었던 특성에 대한 차별성이 듯 서로 다른 두시대의 복제품이 처한 상황 역시 그렇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에 의해 벤야민이 복사물의 종류와 수까지도 예술작품의 역사에 포함된다고 말했던 시기와 “사물의 역사적 증거도 위협받게 된” 시기가 나누어진다. [사물의 역사적 증거도 위협받게 된에서 사물은 복제품이다. 벤야민은 원작을 상정하는 듯하지만 ... 나의 이해로는]

20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구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재현하는 것, 즉 복제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위작이 따라붙는 것은 어쩌면 미술이라는 예술의 타고난 운명인지 모른다. 모든 미술은 모방에서 출발했다. 세계를 모방하는 것, 곧 베끼기가 미술의 한 본령이다 보니 위작이라는 모방이 그 본령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것이다. 원작의 개념이 없었던 옛날에는 이런 베끼기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동양에서는 방작(倣作)이라 하여 옛 대가의 그림을 임모하는 게 존경의 표시이자 창작의 한 방식이었다. 서양에서도 거장과 선생의 그림을 모사하는 게 중요한 배움이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그리스 조각을 수도 없이 베꼈다. 오늘날 실제 그리스 조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음에도 그리스 조각의 성격과 특징을 깊고 광범위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상당 부분 이 모작들 덕분이다. 로마인들은 아름다운 작품을 보면 조각가로 하여금 이를 베끼게 해 그걸로 자신들의 빌라를 꾸몄다. 동일한 작품이 워낙 많이 베껴지다 보니 원작이 망실되고 모작이 다수 파괴되어도 끝내 살아남은 게 있어 그리스 조각의 특징을 오늘날까지 전하게 된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화가가 도제들에게 그림을 가르칠 때 자신의 그림을 베껴 스타일과 기법을 익히도록 했다. 잘 베낀 그림은 스승이 시장에 내다 팔았는데, 그렇게 해서 번 돈은 가르침의 대가, 그러니까 수업료로 갈음됐다. 문제는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이런 모작들이 화가의 진작으로 전승되어 본의 아니게 위작이 되어버리곤 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스승의 그림을 베끼는 전통이 뿌리내린 한편으로, 진품에 대한 존중의식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 또한 르네상스 무렵이다. 르네상스 들어 고전 부흥의 바람을 타고 로마시대의 조각이 열정적으로 발굴되자 이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여 진품의 가치가 중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젊은 미켈란젤로가 몰래 가짜 로마 조각(<잠자는 큐피드>)을 만들어 팔았다는 일화는 당시 시장에 위작이 얼마나 많이 떠돌았는가 하는 사실과, 그에 반해 애호가들이 얼마나 진품에 목말라 했는가 하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라 하겠다. 특히 예술가를 공방의 장인이 아니라 천재로 보는 관념이 생겨남에 따라 작품의 고유성과 원작성은 갈수록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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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케란젤로(Michelangelo)는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보이기 위해 스승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jo)의 작품을 모방했다. <잠자는 큐피드(Cupid Asleep)>의 모조품은 1496년 훌륭한 조각품으로서 팔렸지만, 실제로 훌륭한 조각품인지에 대해선 의문의 여지가 있다  

조르조 바사리(1511-1574)는 《예술가 열전》에서 이렇게 썼다. 미켈란젤로가 실물대의 〈잠자는 큐피드〉를 조각하였다. 이것을 본 한 친구가 말하길, “내가 장담하는데, 자네가 이 조각 작품을 한동안 땅에 파묻었다 파낸 후 고대 조각 작품이라며 로마에 보낸다면, 아마 자네가 이곳 피렌체에서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을 걸세.” 미켈란젤로는 친구가 말한 대로 그 조각상을 땅에 묻었다. 그리고 나중에 그 친구가 이 조각상을 로마로 가지고 가, 그곳에서 다시 땅에 묻었다. 그리고 이후 그 친구는 산 조르조 추기경(라파엘로 리아리오)에게 이것을 200크라운을 받고 팔았는데`―`몇몇 사람들이 하는 말이지만`―`이 친구는 미켈란젤로에게는 30크라운만 주고 나머지는 자기가 챙겼다. 그런데 추기경이 나중에 자기가 산 큐피드가 진짜 고대 그리스의 작품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돈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그는 비웃음을 샀고, 심지어 조각 작품의 가치를 알아볼 줄 모른다고 비난받았다. 사실 그 조각상은 완벽하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웃든 말든, 옛날에 만들어졌든 얼마 전에 만들어졌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략) 이런 일들로 인해 미켈란젤로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앞서 수공적 복제와 달리 기술적 복제품이 갖는 고유성에 대한 벤야민의 분석을 살펴보았다. 이곳에서는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을 조감하기 위하여 예술사 내에서 수공적 복제에 대한 접근을 살펴보겠다.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의 2가지 의미 == 기술적 복제를 통해 동일한 것이 반복적으로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이 보증받기 어려운 복제, 역사성이 사라진 복제  // 원작과 다른 존재론적 지위를 부여받아 원작과 동떨어진 새로운 의미를 생성할 수 있는(하는) 기술적 복제

대중매체의 특성이 역사로부터의 탈맥락화가 아닌가? 특정 부분을  딱 잘라 보여주기, 앞뒤 맥락 고려 없이 인용하기 등

---------------------------- (자기이해 부분: 논의의 핵심 단락) - 시작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품이 처한 상황은 현존하는 예술작품을 훼손하지 않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기술적 복제는 어떠한 경우에도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그런데 물질적 지속성의 유지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근거한 일회적 현존성의 가치는 떨어진다면 어떤 이유에서일까? [김상환은 아우라를 하나의 속성으로 본다. 속성은 어떤 존재 자체 내에 내재할 수도 있지만 외적인 관계에 의해서도 규정될 수 있는 어떤 것일까? 들뢰즈의 접속, 관계에 의해 어떤 사물의 양태의 변화 등등] [왜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의 가치”, 일회적 현존성의 가치가 떨어질까? 아우라의 상실 때문에 ... 등등 그런데 예술작품의 기술적인 복제에 의해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성이 약화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여기와 지금”이라는 일회적 현존성 자체도 단순히 ‘예술작품의 존속’, ‘예술작품의 물리적 구조’, 그리고 ‘예술작품의 물질적 지속성’에만 근거한 것이 아닌 세계와 관계하기 때문에, 세계 내 존재이기 때문이다. 벤야민은 이러한 관계성을 아우라(aura)라고 표현한다.[아우라를 실체와 속성의 관계처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관계로 이해한다. 그렇다면 아우라의 부활을 관계의 부활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위 글에서 <관계성 중 하나를 아우라라고 표현한다>로 하는 것이 더 맞을 듯 하다.그리고 한동안 아우라를 정동/감응의 한 형식으로 이해했다. 교회-예술장치는 아우라(특정한 종교적 내용을 담은 정동)을 일으킨다. 지금도 이렇게 이해한다. 그 정동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어떤 경우 마음의 습관/습속(?)으로 체화된다.  최근 이야기되는 디지털 기기의 미학화 현상, 디자인의 중요성 등도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해 볼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쉽게 와닿을 수 있다. 아이폰의 아우라! 스티브 잡스의 아우라! 폰(디자인)과 매체, 특정 인물의 인생 역정이 계열화된 '장치'가 심미적 차원에서 형성(코드화-언표적 배치)된 것이다. 2019.7.3일 추가)

---------------------------- (자기이해 부분: 논의의 핵심 단락) - 끝

“예술작품의 기술적인 복제 가능성의 시대에서 위축되는 것, 그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이다. 그 과정은 징후적인데, 그것의 의미는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 복제기술은, 그것을 일반적으로 표현할 때,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단절시킨다.”

벤야민이 “예술작품의 일회성은 예술작품이 전통의 맥락 안으로 편입되어 있는 것과 같다”(p.5)고 말했을 때 이미 일회적 현존성의 약화는 전통적 맥락 안에 서 있던 예술작품들이 이것을 비켜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지적한 전통의 영역은 “창조성 그리고 천재성, 영원한 가치 그리고 비의성(秘意), … 소유관계, … 전적으로 살아있는 어떤 것, 비범하게 변화 가능한 어떤 것, … 예배의식” 등과 관계있다. 이 전통의 영역은 부르디외가 “신앙의 세계, 즉 천분(天分)에 대한 신앙과, 창조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존재하는 창작가의 유일성에 대한 신앙의 세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세계인 예술의 세계이다. 이 영역은 “공시적으로 파악할 때 입장들(또는 지위들)의 구조화된 공간”인 예술의 장(場)으로 “그 자체의 전통, 운영 법칙과 모집 규칙을, 결국 자체 역사를 갖추고 있는 예술 생산의 세계”이다.

그런데 기술적 복제 상황 속에서 예술작품의 아우라가 위축된다는 벤야민의 주장 이전에 ‘복제기술에 의해 복제된 것은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단절된다’는 지적에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벤야민의 논의를 정리하면 예술작품은 일회적 현존성을 가지며, 이 일회적 현존성 때문에 역사적 유일성을 가질 수 있다. 예술작품의 존재(창작) 이후, 이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은 해석학적 순환을 통해 서로의 근거가 되고 이 위에 다시 진품성이 자리를 잡는다. 그런데 기술복제가 사물의 물질적 지속성, 즉 예술작품의 존재 자체의 지속을 위협하면서 실체적 유일성과 역사적 일회성, 그리고 진품성도 위협받게 된다. 벤야민이 기술적 복제품에서 발견한 사물의 지속성에 대한 위협은 복제품 자체의 원작에 대한 강한 자립성과 복제를 통한 원작의 무한한 확대 가능성 속에서 원작이 가지고 있던 맥락(의미)의 상실 가능성이다. 이 속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복제된 것이 예술의 영역을 넘어서 전통의 영역과 단절되는 까닭은 모든 것을 떠나 우선적으로 대량 복제 가능성 때문이다. 먼저 기술적 복제가 수공적 복제보다 더 많은 자립성을 가진다는 의미는 기술적 복제품이 ‘예술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기보다 더욱 예술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적 복제의 자립성은 서로 다른 수공적 복제와 달리 동일한 복제품의 양산으로 인해 그 실체적 유일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실체적 유일성을 잃는다고 말할 때, 기술적 복제품의 그 물리적 존재가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그 기술적 복제품에 대한 역사 없음을 의미한다. 즉, 예술작품의 진품성이 서 있던 일회적 현존성과 역사적 유일성의 해석학적 순환에서 한 고리인 역사성이 깨져나감으로써 다른 고리도 위협받게 되는 것이다.

역사성이 무너져 내리는 이유는 대량 복제 때문인데, 대량 복제는 “원작의 모상을 원작 그 자체가 이를 수 없는 상황에 옮겨놓을 수 있다.” 원작 그 자체가 이를 수 없는 상황이란 모상들이 원작의 역사 속에서 원작과 더 이상 관계 맺을 수 없는 상황[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제품들은 언제나 원작과 관계를 맺고 있다. 다만 원작이 이들과 관계 맺기를 거부할 뿐이다.]을 말하며, 관계 맺을 수 없는 이유는 “수 없는 상황”, 즉 무한히 확장될 수 있는 전시가능성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기술적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는 무수히 많은 맥락을 무슨 수로 정리하여 원작의 역사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또 예술의 장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이런 작업을 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낄 수 있을까?


부르디외 - 예술의 장과 배제의 기술(푸코?)


부르디외는 벤야민이 추적되고 관리되어야 할 “흔적[역사]”에 대해 이야기했던 것처럼 예술의 장을 구성하는 몇 가지 징표들을 설명하고 있다. 먼저 한 작품에는 과거 혹은 동시대의 다른 작품들과 맺고 있는 객관적이고 때로는 의식적이기까지 한 “관계의 흔적들”이 나타난다. 이것은 벤야민이 “모나리자의 역사는 17세기, 18세기, 19세기에 모나리자로부터 만들어진 복사물의 종류와 수를 포괄한다”고 이야기한 것과 동일하다.

또 전기 작가처럼 생애를 보존하거나 초안과 밑그림, 필사본을 보관하고 그것을 수정하며 해독해나가는 문헌학자, 예술사가, 문학사가들과 같이 작품을 보존하는 데에 깊이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출현한다. 이들은 해당 장 안에서 생산되는 것을 보존하는 하고, 그러한 것을 보존하는 보존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것이 이익인 사람들이다.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출현은 예술작품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것이다. 그리고 벤야민도 이들 중 한명이었다.

하지만 기술적 복제는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원작의 역사 속으로,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데 이렇게 된 근본적인 이유는 기계복제의 대량 생산 가능성에 따른 무한한 전시가능성, 또 무한한 전시가능성에서 발생한 상황적 의미의 무한성 때문이다. 이제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품이 갖는 사회적 가치는 비평가들, 화랑 관리인들, 문예 학술 옹호자들을 통해서 보다 자본주의적 상품 속에서나, 예술작품에 대한 교육적 사용 속에서 찾아야 한다.

결국 우리는 기술적 복제가 수공업적 복제와 달리 예술의 장에서 배제되는 동기를 그 질(質)이 아닌 양(量)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벤야민이 말하고 있는 “사람의 능력을 벗어나게 되는 복제”란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또 추적되고 관리되어야할 어떤 예술작품이 그 양적 팽창에 의해 관리가 불가능해질 때, 즉 예술작품의 역사에 포함시킬 수 없을 때 배제의 논리가 장(場 ) 안에서 자라나는 것 아닐까?

어떤 예술작품이 자기 자신의 일부인 기계복제와의 관계성(역사성)을 부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할 때, 예술작품은 물질적 지속성을 보증하는 사회적 원천인 일회적 현존과 그것의 역사성의 위협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이런 상황에 직면한 예술이 다른 층위로 존재론적 이동을 시도하는 것은 아닐까? 팝아트는 반대다. 무수히 많은 상품을 탈맥락화해 다시 예술작품으로 바꿔놓는다. 무수히 많은 맥락 - 역사 구성의 불가능성을 의미, 기의 없는 기표들의 난립(뒤르케임주의 문화사회학)

이 관계의 흔적들에는 “한 예술가와 다른 예술가들 사이의 관계(객관적이며 교류의 형태로 실행되는) 전체, 그리고 이를 넘어서 작품 생산에 참여한 동인(動因) 전체 혹은 최소한 작품의 사회적 가치 전체(비평가들, 화랑 관리인들, 문예 학술 옹호자들 등)”가 포함된다.●●●●●●●●●●●

한 것과 동일한 의미

아우라의 위축=장이 깨짐, 역사의 없어짐, 장이 없어짐, 역사적 맥락이 사라지고 개별적인, 영겁회귀(?, 차이적 반복)이 일어남, 벤야민은 장을 인식하고 있었다. 관중의 비판적 정신을 높이 사는 것은 장의 참여자가 아닌 관중이 새로운 예술을 정의한다는 ... 정의할 수 있다는 ... 복제기술이 복제된 것을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단절시키기 때문에 이런 것이 가능하다. 더 이상 예술이 아닌 ... 자에서 빠져나간 예술?, 반예술?

그런데 복제기술은 예술작품이 이런 전통적 개념들과 맺고 있던 관계들을 위축시켜 “전통의 영역으로부터 단절”(p.3)시키거나, “전통의 동요”(p.3)를 불러오거나, “전통가치의 청산”(p.3)을 야기하거나, “전통적 내용(을) … 무가치하게”(p.3) 하는 효과를 창출한다.

기술적 복제품들은 역사적 유일성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원작의 역사적 유일성을 강화시켰다. 탈맥락화를 탈마법, 탈마술화로 읽자. 그러면 문자가 나오고 역사가 나온다. 빌렘 플루서로 이어져 나갈 수 있다. 처음 사진이 사용되던 방식은 무엇인가? 문자를 보완하는 용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사진이 다시 문자를 넘어선다고 플루서는 지적하기는 하지만 ...
[복제품을 전통의 영역에서 단절시킨다는 의미는? 우선 전통의 영역에서 단절된다는 것을 그 예술작품의 역사에서의 추방 정도로 이해하고, 벤야민이 말하는 것은 역사의 추방이 아닌 전통적 맥락 안에서의 단절, 아우라적인 존재방식, 즉 종교적인 제의의식과의 단절이다] 위축된 아우라에 대하여 살펴보자. 벤야민은 역사적 대상인 예술작품에서의 아우라 개념을 자연적 대상의 아우라 개념으로 설명한다.

우리는 자연적 대상의 아우라를 먼 것 - 그것이 아무리 가까이 있다 해도 - 의 일회적 현상으로 정의한다. 어느 여름날 오후에 휴식을 취하면서 지평선 너머의 산의 능선 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위로 그늘을 드리우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것 - 이것은 이 산의 아우라, 이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호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에서의 아우라를 자연적 대상을 통해 설명할 수 있는 까닭은 "자연적 대상은 … 손상받을 핵심을 가지고 있지 않"(p.3)기 때문이다. 손상받을 수 있는 핵심이 예술작품의 진품성인 한 벤야민은 자연은 기술적으로 복제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연의 일회성, 자연 그 자체를 복제하지 못함에서 오는

주석 -----------------------------------------

● 
강조는 필자

●● 원작 자체의 의미 변화’는 ‘원작 자체의 사회적 의미 변화’, ‘원작 자체의 사회적 수용방식의 변화’, 더 나아가 ‘원작 자체의 (존재론적) 위상의 변화’까지를 포함한다.

●●● 피에르 부르디외,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 솔, 1994, p.232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127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234

●●●●●● ‘예술작품의 존재(창작) 이후’라는 말에서 물리적 구조(예술작품이라 평가받는, 또는 평가받을 그림 자체)의 역사(또는 담론)에 대한 선차성(先次性)을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를 통해서만 그것이 예술작품이 되고, 또 그것의 진품성(예술작품 됨)을 인정받는다고 할 때 선차성이라는 개념은 점점 빛을 잃게 된다. 저자의 죽음 까지

●●●●●●● 벤야민이 예로 들었던 모나리자의 모상들도 그 시대를 지나 우리시대가 되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 수공업적 특성 때문에 모작들은 원작과 다른 특이성과 시간이 지나면서 자체의 역사(물리적 구조의 변화와 소유관계의 변화를 포함한)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131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131을 볼 것. ‘예술작품이 존재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것이다’는 다시 ‘예술작품이 존재하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이다’로 바꿔 말할 수 있다. 또 예술작품의 대신 부르디외는 ‘장(場)’을 놓고 있는데 이를 ‘예술작품’으로 바꾸었다. 예술작품은 예술의 장을 통해서만 예술작품이 되며, 어떤 문화적인 장의 존재는 특정 입장에 선 지식인의 존재를 전제한다. 푸코의 권력-지식(앎)의 도식이 이곳에도 마땅히 적용되어야 한다.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234

●●●●●●●●●●● ‘자기 자신의 일부인’을 ‘자기 자신의 일부를 나누어 가진’, 또는 플라톤식으로 ‘자기 자신을 분유(分有)한’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술복제된 사진은 원작과 적극적 관계를 맺을 수 있지만 원작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책, p.234

●●●●●●●●●●●●● 복제와 복사물(위조, 모사)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벤야민이 말하는 복제는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 상영되는 영화, 디지털 사진기로 찍혀 전송되는 사진에는 원본이 없다. 진품성이라는 개념은 위조 앞에서는 힘을 발휘해도 복제 앞에서는 무력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은 (기술적으로) 복제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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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부재 - 플루서, 문자문화에서 다시 영상문화로
기술적 복재 - 원본의 사람짐은 역사의 사람짐, 아우라의 부재를 역사의 부재로 읽으면 ...

아우라가 맥락적 독해라면 역사는 어떤 비평가, 소유자(관계)의 사라짐으로 인해 역사가 없어졌다는 것을 의미 .. 이때 우리는 다시 어떤 과거의 예술적 전통을 넘어 새로운 존재 관계 속에서의 아우라를 알게 된다. 일대일 관계가 아닌 일대다나 다대다(?)와 같은 관계 ...

아우라의 상실의 진보성은 결국 전통에 관한 문제를 흔들기 때문 ... 전통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아우라는 담론의 물질성처럼 만들어지는 것, 구조화 되는 것 아닌가?

인간이 아닌 기계가 만들 것 플루서...

그런데 이 역사성이 요구되는 현실적 근거는 예술작품의 일회적 현존보다는 이것을 방해하는 복사물들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변화의 흔적들로 구성된 역사는 특별한 문화적 장(場)인 예술계가 원작을 지키기 위해 만든 담론적 실천의 산물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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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단계적 유형들은 누진적이었다. 첫 유형에 이어 두 번째 유형이 나오더라도 첫 유형은 역사 속에서 고착화되어 그것을 유지했다. 하지만 세 번째 유형의 등장은 모든 것을 좀 더 급속하게 변화시킨다. 역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기계적 복제 이전의 예술을 전통적이라 할 수 있지만 기술적으로 복제된 예술작품의 경우 그렇지 않다. 존재론적 위상이 변한다.


복제에 의한 효과의 증폭


“하나의 미디어는 다른 미디어가 ‘내용’으로 주어짐으로써 그 효과를 높이고 강력해진다.” 아우라의 강화(원작에 대한). 복제에서 아우라는 없어도 전통적 의미에서 맥루한 p.20


이제 예술은 기술 복제에 의해 앞의 시기들과는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되었으며 이런 상황을 보면서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다.[미디어는 메시지이다. 내용이 아닌 형식의 변경에 따라, 기술에 따라 새로운 효과가 발생한다.]

주석 -----------------------------------------

■ 이것이 전통에 관한 문제와 이에 근거하여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사회적 실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2019/07/02 22:54 2019/07/0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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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까지 TV 역할 중의 하나가 사회적 통일과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시민종교(Civil Religion)였다 말한다면 루소(J. J. Rousseau) 동의할까? 1762 <사회계약론>*에서 루소는우리들 각자는 자기의 신체와 모든 힘을 공동의 것으로 하여 일반의지(一般意志) 최고 지도하에 맡기고, 우리 모두는 구성원을 전체 가운데 불가분한 부분으로 받아들인다. 결합 행위가 성립하는 즉시 계약자인 개인들 대신에 하나의 정신적이고도 집합적인 단체가 형성된다. 단체는 집회가 가지는 투표권과 같은 숫자의 구성원으로 조직되며, 결합 행위로부터 통일과 공동의 자아 그리고 생명과 의지를 받는다. 이처럼 모든 개인들의 결합에 의하여 형성된 공적 인격(公的 人格) 오늘날에는 공화국(共和國)이라고 부른다 쓰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국가는 신( )이외에 왕을 가지지 않았던, 왕이 신이었던 신정정치(神政政治) 국가와 같이 배타적인 국교(國敎) 가질 없다. 왜냐하면 배타적 국교가 이미 존재하지 않았고**, 교의(敎義) 시민의 의무에 배치되지 않으면 다른 종교를 허용하는 종교는 모두 허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공화국은 전통적 종교가 제공하던사회를 결합해 주는 강력한 유대 효과 사용하지 못한다.

이때 공화국의 ....

신이 정치사회의 통솔자였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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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J. J. 루소, 『사회계약론()(범우사, 1991), pp.27~28

 ** 1598 앙리4세가 발표한 낭트 칙령에 의해 개신교 신자들(Huguenots) 로마 가톨릭 교도와 동등한 권리를 갖게 되었고, 프랑스는 이를 통해 근대 유럽에서 처음으로 개인적인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 나라가 되었다.

1562년에서 1598년까지 벌어진 프랑스의 종교전쟁인 위그노 전쟁의 종결과 함께 프랑스 국가 통일의 출발점이 되었다.

낭트 칙령의 주용 내용은 ①로마 가톨릭 이외의 이단을 탄압한다는 기존 조항이 삭제, ②파리 시내를 제외하고 개신교 예배가 기정사실로 인정된 지역에서의 허용, ③개신교 신자의 재산상속, 대학교 입학, 관리취임의 허용, ④개신교 신자가 장악한 요새가 종교의 자유를 위한 안전지대로 인정, ⑤파리 고등법원 지방의 고등법원에서의 분쟁기구에 개신교 신도 참여의 제도적 보장 등이다.

하지만 1685 앙리 4세의 손자인 루이 14세는 퐁텐블로 칙령을 통해 낭트 칙령을 폐지하고 개신교를 불법화했다. 프랑스는 로마 가톨릭 중심 국가로 되돌아갔고 이에 따라 가까운 개신교 신도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국외로 떠나게 되었다.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시민종교 논하는 배경에는 프랑스 유럽에서 발생한 종교전쟁, 정치전쟁이 있다.

루소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국가가 교회가 아니고 통치자가 교주가 아닌 , ‘교회 밖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 말하는 자는 누구나 국가로부터 추방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의는 오직 신정정치에만 적합한 것으로, 외의 정치에는 극히 유해한 것이다. 앙리4세가 로마의 구교를 받아들이면서 주장하고 있는 이유란, 실상 모든 정직한 사람들은 종교를 버려야 하고 특히 합리적으로 생각할 아는 모든 군주도 종교를 버려야만 이유인 것이다.”

루소는 공공의 이익을 첫째로 생각해야 군주인 앙리4세가 1593 개신교에서 다른 종교를 이단 시하는 불관용의 가톨릭을 선택하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 
같은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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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 20일 쓰던 글이다. 이 글에 이어서 쓴 글이 어딘가에 있을텐데, 그 글을 찾으면 업데이트 예정이다.(2019.7.2)

루소의 이야기는 매클루언이 '케네디 대통령'이 사망했을 때, 미국에서 TV 중계와 함께 일어났던 '제의적'인 반응/효과들을 분석했던 글과 연결해서 써보려고 했었다. 그리고 뒤르케임의 문화사회학과도 연결하고 ... 
2019/07/02 09:07 2019/07/02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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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테시스 - 발터 벤야민과 사유하는 미학>
 
pp.252 ~ 255 


자본주의적 문화산업의 정신분산적 오락에 대적할 수 있는 수준까지 기술이 발전하였다. 벤야민(Balter Benjamin)은 자본주의적 문화산업의 정신분산적 오락의 길들임에 똑같은 정신분산의 태도로 맞서자고 주장했다. 벤야민에게 정신분산은 산만함과 기분 전환의 다른 말이다. 의식을 부단히 긴장시키는 가운데 이미지와 상호작용하는 운동상태이다.
 
뉴미디어 환경에서는 문화산업이, 매스 미디어가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들이 귀환한다. 미약하고 보잘것 없는 삶의 파편들, 극단들이 귀환하여 문화산업과 매스 미디어가 만든 모자이크 - 세계상에 끼어든다. 누군가가 쏟아낸 삶의 파편이 모자이크를 구성하는 한 조각 퍼즐이 된다. 그가 보고 느낀 것을 누군가도 보고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그 지각은 사회적 기관(Organ)이 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의 감각과 정신이 나의 고유한 소유가 되면 나는 이것을 말하고 확산시키려고 한다. 나의 고유한 소유가 된다는 것은 공감한다는 것이다. 

개인의 눈, 코, 귀와 같은 직접적 지각 기관(Organ)이 사회적 기관이 된다는 것은 이 감각과 정신에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 사회적 기관을 공유하는 집단으로 조직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매일 매일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다.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속에서, 블로그와 카페를 통해서 말이다.

미디어에 매개되면서 겪게되는 지각의 제한은 필연적이다. 세계 전체가 아닌 특정한 부분 - 몇개의 퍼즐 조각만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영상과 사진을 이용하여 세계를 복제할 때 취사선택과 과장, 축소가 일어난다. 어떤 지각-감정-판단은 강화되고 어떤 것은 축소된다. 세계는 잘게 쪼게지고 우리의 정신도 분산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집단의 상상력은 억압된다. 왜냐하면 상상력은 공감 능력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제공된 같은 것을 보고 같은 감정과 같은 생각을 갖게 된다. 따라서 집단의 상상력은 억압된다. 한 방향으로만 가는 것이다.

감각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예민한 개인이 세계의 다른 면, 퍼즐의 다른 조각을 보고 느낀다해도 이를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는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 확산시킬 수 없다. 소크라테스는 대화를 했고, 플라톤은 이 내용을 글로 기록했다. 이것은 필사와 인쇄의 과정을 거쳐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었다. 하지만 사회의 평균적인 의식수준에 맞춰진 라디오와 TV, 상업화된 신문을 통해서는 이 예민한 개인의 정신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이제는 어떤 책의 저자가 되지 않더라도 그 세계가 다면적 존재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손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또 사람들은 자신이 먼저 느끼고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손쉽게 그것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개인의 지각이 사회적 기관이 된다는 것은  그 사회가 도달한 기술적인 생산력, 즉 그 사회가 도달한 미디어의 기술적 형식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분산된 개인들은 문화산업이 강제한 길들임에 대해 정신 분산적 태도로 맞선다. 각자가 겪고 느낀 다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지각이 사회적 기관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아이스테시스 - 10점
강수미 지음/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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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8일, 그 전 년부터 있었던 신논현 사거리 근처 더봄 빌딩에서 나와 가로수길 근처로 이사를 했다. 이사짐을 싸고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사진 속의 사람들 중 POOQ에 남아있는 분들은 살펴보니 몇 분안되다. 함께 오래 갈 것으로 생각했던 것은 '현재를 지탱하는 믿음이나 기대, 또는 희망'이었을 게다. 그후로 벌써 딱 6년의 세월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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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조금 더 지난 오늘!
신논현 시기를 끝내고
짐을 싸 좀 더 큰 집으로 이사합니다. 
신사역과 압구정역 사이
어딘가 pooq의 새보금 자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태어나 자란 곳에서 
마지막 기념 촬영!

FACEBOOK POSTING 내용 (2013.6.28일 서울 근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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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연합플랫폼에서 근무할 때, 염창동에서 신논현까지 출퇴근하면서 지하철을 자주 탔다.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 속에서 책을 읽으며 행복해 했다.


2012년 6월 29일, 7년 전 푹 사무실에서 썼던 글을 찾았다. 책 한 장을 읽으면 그 내용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시절, 쓴 글이다. 어제 올렸던 글 중 <산만함>과 관련된 글이다.

삶의 파편들이 인터넷 매체를 통해 '사회적인 것(the social)'으로 변하고, 사회적인 것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을 마구잡이로 먹어치운다. 이런 면에서 사실상 현재의 상황은 아렌트가 말했던 시대와는 또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지옥문이 열린'다면 공적이기보다는 사회적인 것을 통해서 열리고, 그것을 통해 공적인 것처럼 포장(또는 배치)된다.

개인과 집단, 또는 국가와 세계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작은 기관들(집단들, 신체들, 조직들 ..)이 존재한다. 더 이상 이것들은 위계적이지않고, 특정 사건/상황 속에 자신을 드러내며 그 주위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힘들을 조직/배치한다.

2012년은 상상력에 대한, 공감 능력에 대한 이야기에 푹 빠져있던 때이다. 상상력은 17세기 철학적 용어로 보면 image를 이용한 구성력에 가깝다. 이미지를 조합해내거나, 콜라주를 많들어 내는 능력이다. 하지만 이것에 홈이 파여졌을 때, 짐 캐리의 <마스크, 1994>에서 처럼 고정된 형태의 상상력으로 드러난다. 마스크의 초자연적인 능력은 디즈니 만화 주인공의 능력 속으로 갖혀버린다. (영화니 그렇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어떤 책의 저자가 되지 않더라도 그 세계가 다면적 존재라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손쉽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또 사람들은 자신이 먼저 느끼고 이야기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손쉽게 그것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긍정적으로 쓰고 이지만, 사실 그렇지않다. 접속 가능성(또는 잠재성)이 바로 현실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그렇게 된다하더라도 다른 문제에 직접한다. 다른 잠재성들을 찾는 것, 이 모든 것을 다양체로 보고 새로운 배치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이런 노력들이 필요하다.

"분산된 개인들은 문화산업이 강제한 길들임에 대해 정신 분산적 태도로 맞선다. 각자가 겪고 느낀 다른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지각이 사회적 기관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런 분산된 개인들, 또 '분산된 소규모 집단들'을 애벌레 주체화나 '애벌레' 조직화의 틀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어떤 개념을 찾아내야/만들어야 하겠지만 잠정적으로 말이다.

12, 13, 19년 6월 말, 다행이다. 아직도 같은 일을 하며,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니 ...

2019/06/28 14:04 2019/06/28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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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뭔가를 써보려고 했었나보다. 발터 벤야민 책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책을 동시에 읽으며 얼기설기 뭔가를 쓰다 말았다. 한 버전이 아래 내용이다. 제목만은 그럴듯하다, <비판적 미디어론으로의 초대>. 그런데 정작 나는 초대를 받지 못한듯 하다.

벤야민의 경구를 몇 개 뽑아, 관심있던 아도르노, 매클루언, 귄터 그라스(가십성으로 말하면 아렌트의 첫 번째 남편이고, 벤야민의 사촌이다.), 브루디외, 플루서 등을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어떤 주제나 개념을 가지고 다른 것(개념, 사람)과 연결해 보는 걸 생각을 했었다.

레이먼드 윌리엄즈의 <텔레비전 – 테크놀러지와 문화형식>도 함께 읽고 있어나 보다. 살펴보니 <몸-경험’에서 매체로, 그리고 매체에서 ‘몸-효과’로>도 이때 쓴 거다.

매스미디어인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개인매체(블로그 등)가 어떻게 연결/배치될 때,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공진화할 수 있는지 이런 관심사를 가지고 쓰던 글이다. 그리고 주변에 만연된 '기술결정론'에 대한 자기방어를 위한 목적도 있었다. POOQ과 스마트미디어렙(SMR)을 만들 때, 바탕에 깐 이론적 배경(싸움의 도구)이기도 하다. 우린 비물체적 변환(incorporeal transformation)과 다른 배치, 곧 상황을 타개할 전략을 원했다.

글의 내용과 양이 유행하는 웹의 양식과 달라 자구책(?)으로 '달기어려운' 중간 제목을 억지스럽게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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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벤야민

벤야민
벤야민과 아도르노
벤야민과 매클루언
벤아민과 군터 그라스?
벤야민과 브루디외
벤야민과 플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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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만함
미세지각
시민종교, 아우라
블로그, 신화적 사고
유동적 자아매몰
흐름, 체험
미디어와 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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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테크놀러지와 문화형식』을 읽으며

Television : Technology and Cultural Form (Paperback, 3 New edition) - 10점
Williams, Raymond/Routledge
한글 번역본이 있는데 절판되었다.


대중인가, 다중인가

테크놀러지와 사회제도 및 문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현시대의 논의에 있어서 텔레비전은 단연 독보적인 사례 p.7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게 지적되는 바는 텔레비전의 수사법을 ‘흐름(flow)'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했다는 것이다. 이때 흐름이란 광고, TV 프로그램, 방송사 자체 홍보물 등 서로 연관성이 없는 텍스트들을 TV 시청이라는 총체적인 경험의 양식으로 한데 묶는 유동적인 전달방식을 말한다. p.10

나는 TV를 stock이라 하고 인터넷을 flow라고 했다. 이때 flow와 윌리엄스가 말한 flow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인터넷에서 flow은 TV의 중앙 집중화된 콘텐츠 제공방식에서 벗어난 다른 맥락, 다른 가지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윌리엄스가 지적한 flow는 계속해서 이어나 나오는 TV 콘텐츠에 대한 시청 경험 전체를 묶어내는 개념이다.

☞ 중앙 집중화된 콘텐츠 제공방식을 들뢰즈-가타리 용어로 하면 '홈 파인' 방식, '몰적' 방식 정도가 되겠다. 다른 맥락, 다른 가지로 벗어난 방식은 '매끄러운/미끄러운' 방식이나 '분자적' 방식, 리좀적 방식 정도로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19.6.27일 추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중앙 집중화된 콘텐츠의 제공방식에서 옆으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 같으면서도 다른 경험을 할 수 가능성에 대해 생각을 집중해보자. TV를 둘러싼 쌍방향 테크놀로지를 이용하면 집단의식을 지지하면서도 그 안에서의 다양성을 끌러낼 수 있지 않을까? 인터넷은 너무 많은 잡다함 때문에 집단의지와 사회에 필요한 정형화(?)된 문화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인터넷은 차이를 강화(개별화작용의 강화)하고 사람들을 더 작게 나눠 놀 수 있도록 하여 민주주의가 힘겨워하는 곳까지 간다. 즉 너무 많은 주의 주장으로 인해 사회가 분열된다.

시청 경험 전체에 대해서 생각하면 TV와 PC의 차이를 알 수 있다. TV를 켜놓고 아이를 돌보거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할 수 있다. 하지만 PC를 켜놓고는 할 수 없다. PC라는 매체 자체를 놓고 보면 전혀 flow가 아닌 stock이라할 수 있다. 작용을 가해 꺼내야한다. TV는 스위치를 끄지 않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방송이 흘러나오지만 PC는 인터랙션 없이 두면 검은 화면으로 변해버린다. 화면보호기로 가있거나 절전 모드로 전환된다. 서론의 끝부분으로 가면 이와 관련된 이야기(페미니즘과 관련하여)가 나온다.

문화양식과 경험의 정치학에 대한 탐구 p.11

그가 주로 다루었던 문제들은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사회구조와 사회변화에 대해 갖는 관계, 제도적 실제로서 매체가 발전하는 과정, 문화엘리트 특히 지식계층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평가절하,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수사적 형식과 텍스트적 양식, 또 그것이 일상생활에 끼치는 영향 등이었다. 특히 궁극적으로 윌리엄스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보다 나은 세계를 창출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p.11

윌리엄스는 지식계층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평가절하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그가 죽기 직전(1980년대가 되어) 그가 틀리고 지식계층의 이런 태도가 맞았다는 것이 현실로 들어났다. 서론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텔레비전을 통해 그가 원했던 것은) 우리가 텔레비전을 비롯한 새로운 기술문명을 사용하는데 있어서 풍부한 방식을 개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밝히는 것 pp.12-13

사회변화를 목표로 한 기획으로서, 전자매체를 통해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민중에게 보다 많이 그리고 보다 향상된 수준으로 제공되는 폭넓은 참여 민주주의의 창출을 꿈꾸고 있었다. p.13

이런 기획이 실패했다. 하지만 TV를 통해 어떻게 민중의 참여를 높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진짜 가능한 일이었다면 왜 현실화되지 못 했는가를 묻고 답해야 한다. 인터넷에서도 마찬가지의 일이 일어나고 있지는 않은가?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를 이용하여 긍정적인 사회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 p.13

‘매스(mass)’라는 말은 20세기의 ‘폭도/군중(mob)’이라는 말과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고 그는 해석한다. 그러므로 이 용어는 항상 영화, 라디오, 신문 등 널리 보급된 대중매체와 그에 호응하는 일반대중에 대해 반민주주의적인 문화적 선입견을 갖도록 만든다. p.13

대중매체의 등장과 함께 대중이 등장했다면, 대중이 먼저인가 매체가 먼저인가? 둘 사이의 선후보다는 둘의 처음부터 필연적(어떤 면에서 필연적인가?)으로 엮여있었다. 대중매체가 폭도/군중을 만들어 냈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런가? 매체를 통한 광범위한 정서의 전염이다.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사회에 모여 사는 익명의 대중들은 북소리(매클루언?)를 듣고 그것에 격렬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겉보기에 ‘저속한’ 대중문화로부터 이른바 계몽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해서 주로 ‘매스’라는 말을 사용한다는 데 아이러니가 있다. 이런 입장에 대해 윌리엄스는, “‘대중(mass)’이라는 개념은 사람들(대중)을 오합지졸의 무리로 표현하는 것이며, 동시에 매스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이러한 무리들의 기능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효과적이고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복합적인 전달매체의 존재를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 정작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p.13

비록 상당정도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이유로 매체가 통제된다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특정 시점에서 이런 통제가 약화되고 매체가 대중들의 정서가 소통되는 문화형식이 되기도 한다. 오합지졸의 무리처럼 보였던 대중이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가 되어 전 사회를 뒤덮는다. 저속한 대중문화가 계몽 민주주의의 가치를 엎고 대중 속에 잠재해있던 (정서적/감정적?) 야만성을 일깨운다.

‘매스’라는 용어의 부정적인 용도를 밝히면서 윌리엄스는 커뮤니케이션 매체가 지닌 민주적인 잠재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그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좀더 나은 방법을 찾고자 했다. … 고도로 분산되고 소외된 현대생활의 여건 속에서 ‘공동 관심사(common interest)’ 내지는 그가 지칭한 바 ‘공동 문화(common culture)’를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커뮤니케이션을 기초로 할 때 획득되며, 송출에 대해 다른 태도를 취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즉 송출의 출처는 실제로 다양하며 이 다양한 모든 출처가 공동 채널에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는 사고방식을 가질 때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pp.13-14

‘매스’라는 용어는 부정적으로 해석되서 안된다고 지적한다. 아도르노의 주장을 생각해보자. 현재의 대중매체가 옳다는 것보다는 ‘다른 용법’으로 현재의 매체(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를 사용할 수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하는 것이 맞다. 인터넷과 기존의 대중매체가 (참여적) 민주주의를 위한 상호보완적 관계가 될 수 있다. TV가 참여적 민주주의를 확산시킬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다.

분산된 인터넷 매체에서의 아젠다(agenda)가 특정 조건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확산된다. 그것의 직접적인 영향력보다도 다수(사회 전체)를 향해 아젠다를 제기할 수 있는 매체의 존재가 중요하다. 출처가 다양한 송출이 실제로 가능해진 역사적 상황 속에 서있다. 이 다양한 출처가 TV라는 공동 채널에 연결될 때, 참여적 민주주의가 확산될 수 있다. 또 사회는 분열되지 않고 ‘공동 관심사’와 ‘공동 문화’를 찾을 수 있다.

이를 위해 개인 미디어가 매스 미디어와 결합되는 특정 조건에 대해 탐색해야 한다. 그리고 매스 미디어의 어쩔 수 없는 특성인 ‘발췌/배제’(특정 사건을 전체 맥락에서 제거하여 일부만을 보여줌으로써 생기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한(막기 위한) 시도들을 해야 한다. 블로그 등은 생생함을 갖고 있지만 ‘주관적 관념론’에 빠지기 쉬우며, TV는 (군터 안더스의 주장대로) ‘객관적 관념론’을 확대 재생산 한다. 이제 우리는 세계의 다양함과 함께 참여적 민주주의의 확대라는 미디어의 목적성을 함께 담을 수 있는 형식을 마련해야 한다.


상황에 타개를 위한 언어적 개입 - 전략의 문제
 - 알뛰세르: 이론적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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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보편자들도 믿음의 대상이 되면서, 행위주체에 인과적 힘을 발휘하면서,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건을 발생시킨다." 하나의 이론, 전략이 기존의 기계적/언표적 배치를 뒤흔들며 탈주선을 만드는 것. 기계(적 배치)에 비물체적 변환을 만들어내는 것. 이정우 교수는 이렇게 해석한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언어학과 정치학을 결합해 독특한 언어론을 전개한다. 발화수반행위(illocutionary act): 모든 언어적 표현에는 일종의 주체화(subjectivation) 행위가 수반된다. 즉, 인간의 모든 언어는 객관적인 정보 전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태도, 감정, 상황 등 주체화를 함축한다. 이 주체화는 ‘기호 체제’ 안에서 성립한다. 언어는 사건과 맞물린다. 언어는 더 이상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언어를 통해 세계를 바꾸기 도 한다. 사건으로 인해 언어가 발생하는 것 뿐 아니라, 언어가 사건에 개입해 세계를 바꾸 는 것이다. 이때 사건은 ‘비물체적 변환’이며, 이는 언어만 가지고서는 안되고 기계적 배치와 언어적 배치의 교직이 이루어져야 한다. 들뢰즈-가타리가 이야기하는 사건과 남경희교수가 이야기하는 사건은 '행위 주체의 믿음/태도' 등과 연관지어 본다는데서 비슷하다 할 수 있겠다.  (그림 등은 2019.6.27일 추가)


윌리엄스가 추구한 대안적 미래, 그리고 TV와 인터넷

『텔레비전』을 쓸 무렵 윌리엄스는 더 이상 단일한 ‘공동 문화’나 ‘공동 관심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다양한 공동사회와 다양한 관심사들이라는 개념을 언급한다. p.14

그는 생애를 통해 계속해서 ‘매스’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꺼렸다. 그리고 매체생산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만 보다 민주적인 문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했다. 사람들이 쟁점을 논의하고 개념을 정립하고 창조적으로 그들의 삶을 조명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민주적인 문화환경 속에서 가능하다고 믿었다. 본질을 손상시키는 용어를 거부하고 매스 커뮤니케이션 모델이 제한된 상상력을 거부함으로써 윌리엄스는 매체와 대안적 미래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놓았다. p.14

벤야민과 아도르노를 비교해서 생각해 보자. 테크놀로지에 의해 벤야민이 꿈꾸었던 것들은 모두 실현되지 않았다. 아도르노의 ‘묵시론적(?)’인 미디어 이해가 맞았다. 그렇다고 벤야민의 상상/꿈이 잘못된 것인가? 우리는 틀리더라도 벤야민처럼 상상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맞기 때문이 아니라 현실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현실에서 매체생산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원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텔레비전』에서 부르디외가 이런 논거를 펼친 것 같다.) 발췌/선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체생산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증대하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다양한 쟁점을 제기하고 이것이 다시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확산되는 모델을 생각해 보자.

그의 희망의 밑바탕에는 문화형식이 역사적이며 물질적 실제라는 신념, 곧 남자와 여자가 살아가는 방식을 이루는 삶의 요소라는 구체적인 신념이 깔려 있었다. 따라서 모든 역사적인 실제와 마찬가지로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형식들도 변하기 마련이다. p.14

변화된 현대의 커뮤니케이션 형식과 비교해서 논의할 필요가 있다. ‘매스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난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문화형식이 물질적 실제라는 생각은 담론의 물질성, 이데올로기의 물질성이라는 개념과 닿는 것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종류의 사회적 생산과 과정의 ‘균등하지 않은’ 발달단계를 개념화하면서, 문화유물론이라는 개념의 강도를 낮추게 된다. 그에 따르면, “주어진 어떤 문화 속에서 지배적 경향, 잔여적 경향, 부상적 경향이라는 현재의 용어는 이런 역사적 불일치 현상을 정확하게 지적하기 위한 의도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p.16 (주6)

모순의 불균등 발전에 따른 중층결정이란 개념과 닿는다. 사람들은 그들의 삶 속에서 서로 다른 문화형식(매체)을 갖을 수 있다. 이것은 (특정) 매체에 대한 사람들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일 이렇다면 모두 ‘강도’의 문제로 이야기하여야 하나?

커뮤니케이션 제 형식이 “그 자체로 실재를 끊임없이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주된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p.16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형식이 나오면 새로운 실재가 형성되고 실재와 실재의 관계가 변화된다. 벤야민과 아도르노, 매클루언이 본 것이 이런 것 아닌가? 물질적 사회과정과 언어(커뮤니케이션)가 처음부터 결합되어 있다.

윌리엄스에게는 언어의 물질성이야말로 사회적 변화를 생각하는 매개물 이었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이 정치적, 경제적 세력 등 보다 기본적인 다른 세력들에 의해 단순히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총체적인 역사적 물질과정의 일부라고 믿었기 때문에, 매체가 실질적인 사회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런 사회변화의 실천은 전적으로 우리가 테크놀러지의 사용에 대해 어떤 식으로 상상하는지, 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제도가 어떻게 이런 사회적 상상력을 구체화시키는지에 달려 있다. 그 이유는 기본적인 수준에서 볼 때, 문화형식과 커뮤니케이션 매체의 기능을 규정하는 것은 특정 역사적 상황에 있는 특정 사회적 집단들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p.17

아도르노의 주장과 다르게 말을 하고 있다. 커뮤니케이션은 정치적, 경제적 세력들에 의해 단순히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아도르노는 테크놀러지 뒤에 있는 것은 경제적 지배라고 말을 했다. 상상을 용법으로 바꿔보자. 그러면 테크놀러지에 대한 새로운 용법과 이것을 구체화 시킬 제도의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이명박정권이 들어서면서 인터넷에서 불어 닥친 법, 제도의 문제와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어떤 새로운 기술이 발현하는 순간은 곧 선택의 순간이다.” p.17

매클루언의 기술결정론에 대한 비판 (“매체의 효과가 그것을 조종하거나 사용하는 자가 누구인지에 관계 없이 동일하다면, 또 어떤 식의 통제를 가하려고 하는지에 관계 없이 동일하다면, 우리는 더 이상 정치적, 문화적 논쟁에 대해 말할 필요가 없으며 단지 테크놀러지가 그 자체의 놀리대로 기능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다.”) pp.17-19

테크놀러지의 논리를 대변하는 웹2.0에 대한 논의에 대하여 윌리엄스의 주장을 적용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사람들이 새로운 테크놀러지에 대한 반감을 갖는 이유(는) 새로운 종류의 커뮤니케이션이 기존의 문화적 권위를 위협한다는데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p.20

문화적 권위에 대한 위협은 『미디어2.0』에서 다룬바 있다.

문화적 염세주의와 파멸을 예전하는 식의 기술결정론이 지식인계층에서 비롯된 것 ... 이런 식의 논리가 파생시키는 가장 나쁜 점은, 그것이 어떤 식의 대안도 상상할 수 없도록 만든다는 점 ...  그 이유는 새로운 테크놀러지를 통한 문화적 접근과 취향의 변화가 기존의 권위적 문화제도를 위협함으로써 지식인 계층과 소수문화를 구가하는 자들의 권력과 위신의 근거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p.20

그 거부감의 근원은 다름 아닌 특정 문화가 담고 있는 특정 이데올로기일 뿐 p.21

효과 연구를 기술결정론의 부산물로 보고 그 분야 전반을 공격으 대상으로 삼는다. 효과 연구에서 보여주는 과학적 진실이라는 근거가 어떤 식으로 그것의 이데올로기적 근거를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도 보여준다. ... “대체되고 추상화된 원인을 통해 전반적인 변화를 해석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취급어야 한다는 뜻이다.” ... “우리가 실제 사회의 행태를 보면 이런 식의 전형화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곧 알 수 있다.” p.21

(폭력적이다라는) 일탈을 판단하기에 앞서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의) 그 기준이 되는 ‘규준’을 먼저 정립해야 한다고 효과연구의 허점을 찌른다. p.22

규준이 문제이다. 이 규준에 따라 텔레비전에 나올 수 있는 것과 없는 것, 앵커의 어떤 말과 결합될 것인지 등이 결정된다.
 
☞ '결정된다'를 '결정되어 있다'로 읽자! 영토화, 층화되어 있는 것이다. 이미 '어떤 말과 결합된 것인지' 디아그램을, 프레임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다른 층화를 원할 때, 규준에서 탈주를 원할 때, 도덕(선악)이 아닌 스피노자적인 윤리(기쁨과 슬픔, 또는 좋음과 나쁨)의 문제가 발생한다. (2019.6.27일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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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정 언론에서(언론사별로) 믿음, 욕구, 가치가 프레임이 된다. 그 각자의 프레임들은 스스로 '보편자'임을 주장한다. '우리의 삶의 세계, 생활세계, 또는 일상세계의 존재자들, 또는 실재자들은 경험적 개별자라기 보다는 오히려 믿음들과 욕구들과 가치들이라 보아야 하지 않을까?' 들뢰즈-가타리가 기표화와 구분된 주체화의 층위를 둔 이유와 연걸된다. 탈기관체가 되려는 주체의 의지(욕망, desire)가 중요해진다. (2019.6.27일 추가)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를 포함한 모든 테크놀러지, 특히 텔레비전은 특정 사회질서의 의도이며 효과이다.” p.22

매클루언처럼 기술결정론적 효과만을 이야기하는 것인 의도를 지적한다. 의도가 제도의 구조, 제도의 기획자들과 설립자들에 의해서 만들어지며 이것이 효과와 관계를 맺는다.

☞ 의도는 푸코-들뢰즈적인 언표적 배치/코드화, 지적 투쟁과 전략 등등과 연결된다. 그리고 비물체적 변환이란 개념. 이런 방향에서 전략의 문제를 <미디어2.0>에서 다뤘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을 통해 통신사/포털 중심으로 전개되는 언표적 장에서의 투쟁(혹은 산업적 경쟁/게임)과 이론적 개입, 그것을 통한 현재의 강고한 구조의 변환. 그 실천의 결과물(기계적 배치물)이 www.pooq.co.kr(콘텐츠연합플랫폼주식회사)이고 스마트미디어렙이다. 이 연합체/회사/기계를 만들 때, 줄 곧 그들의 책을 읽고 있었다.
 
이정우교수의 말처럼 '언어만 가지고는 안되'기에 Corporation(회사라는 하나의 신체/body)를 만들었다. (2019년 6.27일 추가)

그런데 매클루언이 이야기하는 효과는 감각기관의 확장, 특정 지각의 강화를 지적하고 이에 따른 인간의 변화, 사회의 변화를 이야기한다. 이러한 것이 하나의 기술적 가능성이라고 한다면 이런 기술적 가능성과 함께 시장의 세계화를 추진하는 세력이, 이 세력의 의도가 지구촌을 만든다.

☞ 감각기관의 확장은 미세지각과 연결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지각을 강화시키는 AR, VR 등과도, 그런데 매클루언의 지적처럼 특정 감각의 확장은 다른 감각의 축소를 가져온다. 그리고 미디어의 파편화와 결합된 감각의 파편화는 생활세계와 정치세계의 파편화를 불러낸다. (2019.6.27일 추가)

(부권주의, 권위주의, 상업주의, 민주주의 등) 이런 다양한 제도적 모델들은 서로 다른 국가적 매체 시스템에서 각기 독자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융합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 (미국과 영국의 시스템) 양쪽의 경우 모두 정치적, 경제적 목적이 방송기술의 발달을 좌우해왔다. ... 우리의 방송 시스템이 갖춘 모양새는, 매체 고유의 성질이나 보다 전반적인 사회적 필요성의 ‘징후적’ 성격뿐 아니라, 보다 본질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선택들에 따라 결정된 것이다. p.23

‘유동적인 자아매몰(mobile privatization)’ p.25

☞ 자아매몰의 현재적 형태로서의 인터넷 동호회/카페, SNS 등에서의 친구맺기 등과 preer pressure. 이런 현상을 가브리엘 타르드(1843~1904)의 논의와 연결지어 볼 수 있다. (2019.6.27일 추가)

방송이란 서로 모순되지만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현대 사회생활의 두 가지 양상인 지리적 유동성(교통과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러지의 발달로 실현되었다)과 자아매몰(가정 구조와 지역사회의 구축으로 말미암아 강조된 가치)의 역설적 관계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다. ... 거대한 도시를 중심으로 조직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작은 생산집단에서처럼 한 곳에 뿌리박고 사는 존재방식을 경험하지 않게 되었다. 교통수단과 커뮤니케이션 체계의 발달로 여러 지역사회가 서로 연결되고, 사람들은 고도로 유동적인 세계에서 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산업화 이래, 핵가족화를 통해서 개인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점차 강조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적 가정은 항상 보다 큰 사회적 맥락에 의존하여 자금, 생활유지, 세계에 대한 정보 등을 얻을 수 있었다. ... 방송이란 바깥세상의 모습을 개별적인 가정으로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방송은 사람들에게 개별적인 가정의 테두리 내에서도 먼 곳으로 여행하는 것과 유사한 감각을 제공해 주었을 뿐 아니라 대중사회의 정보와 연예를 접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pp.25-26

‘개인성이라는 이데올로기가 강조되는 이유’에 대한 분석을 최근 어디선가 읽었는데 ... 짐멜의 책인듯하다. 왜 차별화하려고 하는가?

‘방송이란 바깥세상의 모습을 개별적인 가정으로 제공해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 모습을 발췌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보여주면서 팬텀(환영)을 만들고 객관적 관념론의 세계에 빠지게 한다. ‘먼 곳으로 여행하는 것과 유사한 감각’을 제공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 여행 자체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여행의 맥락(context)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객관적 관념론은 사회를 묶어낸다. 말 그대로 ‘유사한 감각’, 정서/느낌과 생각을 갖도록 하여 유동적인 사회를 (가정 내에서?) 고착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이데올로기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사회를 보호, 유지하는 하나의 역능(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 힘을 긍정할 수도 있다. 귄터 안더스의 책을 읽을 것

인터넷은 객관적 관념론의 세계를 분산시켜 주관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롤플레잉 게임은 아주 주관적 관념론의 세계를 보여준다. 외부세계를 발췌하여 보여주는 것이 아닌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시뮬레이션(시뮬라르크와 연관성은?)하여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인터넷은 분산시키고 참여시킨다. 그래서 사회의 갈등을 더욱 확산할 수 있다. 방송, 신문에서 삭제(괄호 친)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낸다/살핀다. 하지만 여전히 이 세계는 주관적 세계에 가까우며 객관적 관념론의 세계로 나아가려면 방송, 신문 등을 매개하여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방송, 신문을 참여적으로 민주주의적으로 만들 수 있는 개연성을 볼 수 있다. 주관이 단순한 주관이 아닌 개인들이 겪은 삶이란 맥락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라면 이런 활동은 발췌(배제)의 논리를 무력화시키고 개인적 삶의 층위까지 내려갈 수 있게 만든다. 개인적 삶이 좀 더 큰 집합적인 지지자, 또는 반대자를 만나고 이것이 솟아오르며 매스 미디어에 잡히고(포획되고?) 전체로 확산된다.

분산된/분열적 자아는 매스 미디어를 만나 추상화되어(객관적 관념으로 전화되어) 하나로 결합된다. 구체와 추상! 잡다한 것들로 이루어진 인터넷의 중요성. 노무현씨의 지적을 보자. 인터넷은 쓰레기로 가득 찼다는 취지의 지적.

인터넷과 매스미디어가 모순적으로 결합되어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비관적인 것이 아닌, 하나의 가능성, 용법을 달리하자는 제안을 하는 것이다.
 
인터넷 환경에서의 유동적 자아매몰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변할까? 가정 자체까지 점차 유동화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지적. 사회가 붕괴될 것인가? 아니면 어떤 새로운 밸런스를 찾을 것인가?

주관적 관념론에 대하여 논하기 위해서 게임중독 현상에 대한 사례/논문을 찾아 읽어야 한다.
2019/06/27 09:15 2019/06/27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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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일 정리하던 글이다. 2007년 <미디어2.0> 이후 나의 관심사는 이렇다.
  1. 뉴미디어(인터넷)으로 인해 사적 영역이 공적으로 변할 때, 일어나는 사회적 현상들과 그 결과(효과)
  2. 이런 상황에서 스토리, 스토리텔링을 하는 매체로서 매스미디어(TV 등)의 사회적 기능 (스토리는 짧은 글이 아닌 비교적 긴 글/소설이나 구체적인 사람의 일생 등을 말한다. Drama는 어떤 사람과 관련된 다른 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Event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다양성)
  3. 그리고 이때, 뉴미디어와 전통미디어의 관계와 역할 등등
아래 글은 이런 관점에서 읽던 <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의 일부 메모글이다. 이런 문제의식으로 쓴 글이 최근 포스팅한 <뉴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다양성에 여러 종류가 있다. 사적 영역의 이야기를 공적(공개)으로 한다는 것이 곧바로 다양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다양성을 만들 것인가!  최근 읽던 한나 아렌트 전기 만화에서 '내가 걱정하던 세계'에 대한 발터 벤야민과 아렌트의  생각을 찾았다. (원문을 찾아 봐야하는데 ...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인 것 같다.)

스토리텔링 한나 아렌트 - 10점
사이먼 스위프트 지음, 이부순 옮김/앨피

스토리텔링

 

이론보다 이야기는 사건들을 개별적으로 주의깊게 다룰 수 있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은 그 자체로 새롭고 독특하다. 또 스토리텔링은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의 세계관에 따라 결말이 바뀌고 달리 해석될 수 있다. (p.17)

 다른 세계관과 다른 지각 능력에 의해서

 Alberto Manguel은 <책을 읽는 사람들>에서 독자의 상상력에 따라 다른 이해와 해석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계속한다.

행위는 오직 스토리텔러에게만, 즉 역사가의 회고적인 눈에만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다. (p.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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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사건들은 특정 서사형식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사건들은 이야기를 통해 광범위한 청중과 소통하고 공동체에서 기억하게 된다.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화자와 그 이야기 뒤에서 판단하고 반응하는 청자 혹은 독자를 포함한다. 따라서 이야기는 공동체 개념을 전제한다. 스토리텔링은 타자의 현존과 공동체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행위이다. (p.21)

‘판단하고 반응하는’ 독자라기 보다는 ‘반응하고 판단하는’ 독자이다. 반응은 정서적 반응이다. 긍정적으로 판단한다면 그 이전에 공감이 있다. 맹자의 “도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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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탁자가 없는 세계

 

사물의 세계는 탁자가 그 주위를 둘러앉은 사람들 사이에 놓여있는 것처럼 존재한다. 세계 속에 함께 산다는 것은 탁자와 같은 사물의 세계도 그것을 공동으로 소유한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물의 세계는 각 개인들이 문화적 행위를 통해 생산한 것이다. 탁자와 같은 사물의 세계는 사람들을 관련시키고 동시에 분리시켜서 공동체를 만든다. 사람들은 탁자에 앉아서 함께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하며, 또 그 탁자의 거리만큼 떨어져있게 된다. (p.41)

 인터넷에 의한 물리적인 탁자의 상실이 사물의 세계의 상실을 수반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인터넷은 공간과 거리를 없앤다. 거리가 없는 관계가 나타난 것이다. 사적 세계가 공적 세계로 침입해 들어올 때, 세상은 지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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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열정은 실재하지. 하지만 연인과 가족, 진정한 친구 사이라는 사적 영역, 사적 공간에 한정돼 있어. 그런데 사람들이 열정이라는 사적 언어를 공적 공간에서 만인이 만인에게 이야기하는 공적 언어와 혼동하면, 전문 용어로 말해 지옥문이 열리는 거지." (p.191, 지난 주 읽은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 10점
켄 크림슈타인 지음, 최지원 옮김, 김선욱 감수/더숲


왜 지옥이 되는가? 우리가 겪고 있는 세계를 보라! 사적으로만 하던 중얼거림(혼자말, 생각)과 가까운 사이에서 이야기하던 것들이 공적으로 드러날 때(Internet에서 publishing되고, 그것이 온오프 매체에 의해 인용될 때) 어떤 문제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정치적 항의를 위해 단식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폭식 투쟁'을 하는 사람들의 출현, 그리고 이런 행위가 '모욕죄' 가 적용되고, 또 '상식'이 되려면... )

인터넷이 거리와 공간의 파괴한다면 탁자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을 일체화시키는가? 아니면 소수의 인원에서 전인류를 대상으로 관계를 확대하는가? 거리와 공간의 파괴는 우리를 전체주의화하는 경향이 있는가?

거리가 없어지면서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과거에는 절대 이야기하지 못했던 그런 이야기이다. 이런 사적인 이야기가 사회적으로 누출되거나, 노출될 때 갈등이 일어난다. 또 이런 이야기가 정치적인 성격을 띨 때도 문제가 발생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세계는 사람들이 각자의 공통된 관심사에 대하여 토론할 수 있는 공적이고 공유되며 정치적으로 규정된 공간이다.(p.55)

지금 인터넷에 의해 거리와 공간의 파괴되면서 사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테크놀로지에 의한 사물 세계의 변화로 사적인 관계가 사회적인 관계 속으로 휘말려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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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성 


사적인 것은 친밀성의 영역이다. 친밀성의 영역은 고유한 다면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조건, p.90)

그런데 이 영역이 사적인 것에서 좀 더 사회적인 것으로 밀려나오고 있다. 내밀한 말과 행위가 아닌 앙상한 개념어인 문자를 통해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올라온다. 이 글은 모두에게 공개될 수 있고, 또 공개된다. 

더 이상 ‘사적 언어’(비트겐슈타인 ?)의 공간이 아닌 ‘사회적 언어’의 공간이 된다. 공개되는 순간 다면성과 다양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사적 영역과 사회적 영역의 경계를 세우기 더욱 어렵게 된다. 

친밀한 사람들의 보호처로서 가장 적절한 기능을 하는 근대의 사생활의 경우 정치적 영역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영역과 대립한다. (인간의 조건, p.91)


동굴 비유

 
플라톤은 공적 세계를 환영과 기만적 현상의 세계로 규정하고, 진정한 의미의 원천으로서 철학자들에게만 유효한 순수 이념의 초세속적 세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최초의 철학자다.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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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아직 이 심연을, 공포가 왜 생겨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적인 감정이 공적 영역에 들어설 때 발생한다." (p.218,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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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적인 거예요. 난 유대 민족을 사랑할 수 없어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건 가족과 친구들 정도죠. 그런 열정을 공정 영역으로 가지고 나가면 오히려 더 많은 아이히만이 탄생하게 돼요." (p.230, 한나 아렌트, 세 번의 탈출)

아렌트는 '유대인'이다. 아렌트가 두려워하는 것은 공적 영역에 의한 사적 영역(생활세계)의 식민화인지도 모르겠다. 히틀러-괴벨스, 그리고 행동대장 중 하나인 아이히만을 최신 미디어 기술을 이용해 독일 전체를 하나로 만들어버렸다. 단독자(개인)가 사라진 전체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그 사회 안에서의 나치적인 삶의 양식은 당연한 것이었고, 따라서 아이히만은 열심히 산 사람이고, 또 이렇게 보면 '악은 평범한 것'이 된다. 우리가 인터넷의 어떤 그룹 안에서 어떤 표현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전사회로 확장되었을 때 ... 무사유로 일관한 삶, 당연한 삶이 시작된다. 인터넷에서의, 단톡방에서의  동조 압력(peer pressure) ... 

인터넷이 매개되어 만들어지는 박사모, 노사모 등 사랑이 들어가는 단체들. 진보나 보수를 떠나 어떤 식으로든 공적 영역에서의 정당정치를 침식해 들어온다.

“히틀러 정권은 현대 과학기술 위에 세워진 산업국가 최초의 독재정권이었다. 그 정권은 완벽한 수준으로 기술적인 도구를 이용하여 국민을 지배했다. 라디오와 대중 연설을 포함하는 기술적 도구에 의해 8000만에 달하는 독일국민들이 한 개인의 의도에 복속된 것이다. 전화와 텔레타이프,무선 통신은 최고 지도자의 명령이 하부 기관에 직통으로 전달되는 것이 가능하게 했고, 하부 기관들은 그 권위에 복종해 비판 없이 명령을 수행했다. 이리하여 많은 정부기관들과 군사조직은 사악한 명령을 직접적으로 전달받았다. 과학기술의 도구는 시민의 근황을 밀착해 살피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범죄 조직의 운용이 극비리에 진행되는 것 역시 도왔다. 외부에서 보면, 국가 조직이 전화선의 케이블 속에 어지러이 뒤얽혀 있는 듯 하지만, 바로 그 전화선을 통해 독재자의 의지가 직접적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과거의 독재자는 그를 둘러싼 지도부 인사들의 지혜로운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따라서, 정치인들에게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대의 독재정권은 조력자 없이도 유지될 수 있다. 통신 기술 하나로 하급 지도부들을 기계처럼 부릴 수 있다. 이리하여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계층이 생겨난 것입니다.” (- 알베르트 슈페어 – 히틀러의 건축가이자 전시 나치독일 군수장관)

우린 양극단에서 위험스럽게 줄타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편에서도 서기불편한 세계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을 썼을까!

2019/06/25 18:25 2019/06/25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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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12년 여름에서 가을 쯤 썼다. 누군가 '업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이기도 하다. 나는 본질이나 기원, 실체에 대해, '그런 것(존재자)'이 영원성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떤 사회(공동체)가 존재할 때, 그것이 존재하는 동안 미디어에 요구하는 기능(function)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정해진(judgement) 그 기능에서 벗어날 때, 그 이탈의 결과로 삶이 더 풍요로와질 때, 우린 그런 과정에 있는 어떤 것을 '충만한 탈기관체(body without organ - 기관없는 신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왜 일을 하는지, 그리고 이 일을 하면서 이루고자하는 어떤 목적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그냥 쉽게 일을 하면서 무엇을 바라는지를 생각하면 쓴 글이다. 지금도 이렇게(이런 방식으로) 생각한다. 글을 쓸 때, 그리고 지금도 제목을 '미디어에 대한 역사-철학적 탐구'라고 하고 싶었다. 그리고 아침, 저녁 몸을 씻을 때마다 수백 번 이상 제목을 바꾸었다.

이 글의 마지막을 인용한다.  "자신은 바뀌지 않고 주어진 조건,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이것도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구글(www.google.com)이 전통 미디어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TV를 인터넷으로 끌어들여 채널이 없는, 흠이 없이 미끄러져갈 수 있는 공터로 만들려는 것이 여기에 해당될 듯하다. 하지만 이때도 TV 속의 구글은 더 이상 현재의 구글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떤 사물/기업/사람도 다른 것과 만나면서, 관계를 맺으면서 바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만남관계의 지속성이 중요하지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역량 역시 객관적 조건 중의 하나이다. 역량을 판단하지 않고 의지만 있다면 과대망상에 빠진 환자가 된다." 이제 고백컨데 나는 '과대망상에 빠진 환자'이다, 신념과 의지를 가진. 그리고 '환자'임을 행복하게 받아들이기에 친구들이 떠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길을 나설 수 밖에 없다. 몇년간 계속 되뇌이던 말이 이 글 마지막 부분에 있다. 진화와 의지, 과학과 비과학의 접점에서 ....  

PC안에 6~7년 잠자고 있던 글이다.

긴 글이기에 업의 본질과 왜 일을 하는가에 대한 답을 먼저 찾는다면 이렇다. 어떻게 공동체적인, 인간적인 공감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 또는 어떻게 창출해 왔는가!

"필자는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미디어의 사회적 사명(mission)에 대한 확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의 사회적 사명에 대한 자각은 인간 본성과 미디어의 역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결과일 것이다. 이것은 모든 미디어가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미디어는 언제나 가능한한 많은 사람에게 동일한 사물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동일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매체, 집단적 공감을 만들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부터 우리시대의 미디어 회사들에게까지 이 사명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한 활동체계가 전략이 될 것이다. 사명을 모른다면 전략이 나올 수 없고, 전략이 나온다고 해도 한갖 IT 트렌드에 대한 읇조림 뿐일 듯 하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기 위하여 크로스 플랫폼을 하고, 이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과 단순히 IT의 마켓팅 유행어에 따라서 멀티 플랫폼과 클라우드(cloud) 서비스를 준비하는 것은 다르다. 이것은 또 유튜브와 미디어 회사인 BBC의 차별성을 만든다. 차별성은 기술 중심이 아닌 여전히 ‘Putting Quality First’로 표현되는 콘텐츠 중심의 사고이다.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동일한 사물의 이미지’, 즉 콘텐츠를 보여주고 동일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이미 해왔고, 계속 해야 할 일이다."  '최근 한국에서 시작된 콘텐츠연합플랫폼의 서비스(www.pooq.co.kr)  등이 이런 사명에 대한 실천의 결과가 될 것이다.'


 

뉴미디어에 대한 철학적 탐구
 

박종진

 

BBC*의 전략

 

 2006년 4월 25일 BBC 집행위원회(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Executive Board)는 ‘더 작은 BBC로(a smaller BBC)’, ‘양질의 콘텐츠에 역량 집중(focused on quality)’, ‘디지털 시대의 대비(ready for digital)’를 근간으로 하는 향후 6개년 계획인 ‘창조적 미래(Delivering Creative Future)’ 전략을 발표했다. 전략에서는 디지털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저널리즘, 스포츠, 음악, 키즈 앤 틴( Kids and Teen),  코메디, 드라마, 연예(Entertainment), 교양(Knowledge Building)과 같은 장르별로 핵심적인 권고 사항들(recommendations)을 제시한다. 또 서로 다른 조직들에게 주어진 권고 사항들에는 5가지의 일관된 전략적 주제가 포함되어 있다. 첫 번째는 크로스 플랫폼 콘텐츠(cross-platform content)를 제작하는(commissioning) 것이다. BBC는 TV나 라디오 같은 선형적(linear) 채널 뿐만 아니라 휴대폰, PC를 이용한 온디멘드(on-demand) 서비스까지 생각하면서 제작하여야 한다. 두 번째는 강한 정서적 연대감(emotional connections)이다. 수용자들(audiences)**은 사실 이상의 감동과 정서적으로 연결된 감정을 느끼길 원한다. 세 번째는 검색가능성(findability)이다. 검색(search)을 해 콘텐츠를 찾아(find) 사용하는 온디멘드 서비스를 위해 콘텐츠에는 적당한 꼬리표(labeling, metadata)가 붙어야 한다. 네 번째는 젊은 세대(the young)에 대한 관심이다. 젊은이들을 주의를 사로잡고 그들의 삶을 더 잘 반영할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원할 때 보고 들을 것을 선택하기 원하고, 상호작용을 하면서 UCC 콘텐츠를 만들려고 하는 능동적인 수용자(active audiences)에 대응이다. 이 전략적 주제들은 BBC의 모든 작업흐름(workstreams)에 관통해야 한다. 전략적 주제들의 밑바탕에 깔린 상황 인식은 PC에 의한 사무혁명에 이어 인터넷으로 일어난 두번째 디지털 물결(the second wave of digital)이다.***

 * 1927년 1월 영국 국왕의 칙허장에 근거해 공공방송인 영국방송협회(BBC)가 되었다. 최초의 칙허장은 1927년 1월부터 1936년 12월까지 유효했고, 현재 칙허장은 8번째로 2007년 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유효하다. 2007년 발효된 현 칙허장에서는 BBC 이사회(혹은 경영위원회) 대신 BBC 트러스트를 구성해 독립성을 강화하도록 했다. BBC 트러스트는 사장을 임명하고 BBC의 전략과 정책, 예산을 승인감독평가하는 기구로 발족되었다.

 ** 수용자(audience)는 TV와 라디오 같은 선형적 매체를 ‘수동적’으로 시청청취하는 사람의 의미가 강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시청자(viewer), 청취자(listener)이면서 전통적 매체를 포함하여  PC나 휴대폰 같은 인터넷 매체의 사용자(user)를 포괄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 BBC의 ‘창조적 미래’ 전략에 대한 요약은 “Creative Future - BBC addresses creative challenges of on-demand”(http://www.bbc.co.uk/pressoffice/pressreleases/stories/2006/0http://www.bbc.co.uk/pressoffice/pressreleases/stories/2006/04_april/25/creative.shtml4_april/25/creative.shtml) 및 “Creative Future - detailed press briefing” (http://www.bbc.co.uk/pressoffice/pressreleases/stories/2006/04_april/25/creative_detail.shtml)과 윤현선, “BBC의 미래 전략 - ‘창조적 미래’ 전략과 중간점검을 중심으로”, 방송과 커뮤니케이션 제12권 1호(2011)을 참고했다. 윤현선의 글에서는 BBC 트러스트의 ‘창조적 미래’ 전략 중간 점검을 정리하고 BBC가 제시한 미래 생존 전략의 현주소와 성과, 당면 과제와 시사점을 검토하고 있다.

 

BBC 전략의 평범성

방송 영역 너머의 세상에서 우리가 해오던 것을 하는 것

 

 마크 톰슨(Mark Thompson)  BBC 사장은 6년 전 왕립텔레비전협회 플레밍 추모 연설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커다란 충격이 엄습해 오고 있습니다. 디지털의 두 번째 물결은 이전보다 훨씬 더 파괴적이어서 전통 미디어의 기반을 완전히 허물어 버린 채, 우리를 방송 영역 너머의 세상으로(beyond broadcast) 데려다 줄 것입니다. BBC는 이와 같이 놀랍고 혼란스러우면서도 흥미롭고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새로운 기술과 기대의 변화에 창조적인 대응(creative response)을 해야 합니다. 온디멘드(on-demand) 서비스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콘텐츠를 기획하고, 의뢰하고, 제작하고, 포장하고, 유통시키는 방법을 이전과는 달리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새로운 서비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해 오던 것을 어떻게 달리 하는가에 관한 것입니다. BBC는 더 이상 TV와 라디오를 중심으로 몇몇 뉴미디어를 곁가지로 제공하면서 방송사임을 자처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공공 서비스 콘텐츠(public service content)를 수용자들에게 그들이 집에 있든 이동 중이든, 어떤 미디어 방식이든 어떤 디바이스 유형이든 그들이 필요로 하는 방식으로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플랫폼에 구애 받지 않고 생각할 때, 그리고 어떻게 수용자들이 우리의 가장 양질의 콘텐츠를, 다시 말해, 그들에게 더 유의미하고 더 도움이 되면서 더욱 가치있는 콘텐츠를 찾아낼 수 있을까를 생각할 때, 훨씬 더 나은 공적 가치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특별한 창조적 기회가 앞에 놓여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새로운 디지털 세상은 공공 서비스 콘텐츠(public service content)에 있어서는 이전의 어떤 환경보다 더 나은 세상임에는 틀림없습니다”*(강조는 필자) 

 

 마크 톰슨 사장의 말을 정리하면 ‘기존 방송 개념의 초월(beyond broadcast)‘이라는 개념은 BBC의 의식적 노력의 산물이라기 보다는 인터넷과 전통 미디어(old media)가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전개되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그는 ‘디지털의 두번째 물결은 우리를 방송 영역  너머의 세상으로 데려다 줄 것(The Second wave of digital will be ... taking us beyond broadcasting)‘이라고 말한다. 뉴미디어 영역에서 어떤 방송사가 잘할 수도 잘못할 수도 있다. 또 아주 빨리 변하거나 아주 늦게 변할 수도 있지만 ‘기존 방송 개념의 초월’은 BBC 전략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본질적이지 않아 보인다. ‘이는 새로운 서비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해 오던 것을 어떻게 달리 하는가에 관한 것(This isn’t about new services it’s about doing what we already do differently)’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우리가 해 오던 것’을 변화된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해야한다는 것이 더 본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BBC의 전략적 주제들 중에서 크로스 플랫폼 콘텐츠, 검색과 발견을 통한 롱테일 콘텐츠(long tail content) 필요성, 젊은 디지털 세대에 대한 관심, 상호작용적 참여적 수용자에 대한 고려등은 사람들의 생각만큼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요소들은 ‘디지털의 두 번째 물결’인 인터넷의 매체적 특성에서 나온 것이고, 어떤 기업이든 만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개념들은 전통 미디어 회사들 뿐만 아니라 모든 인터넷 회사들, 심지어는 굴뚝 기업의 전략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개념들이다.

   * BBC Press Release, “Creative Future - BBC addresses creative challenges of on-demand”(2006.4.25)


BBC 전략의 특이성*

 

 필자는 BBC의 전략의 특이성(thisness)차별성이 전략에 대한 5가지의 키워드 중 ‘강한 정서적 연대감(stronger emotional connections)’이란 개념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의 생각과 달리 이 개념은 BBC의 전략을 정리하고 논하는 국내외 대부분의 글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의 파고를 이끄는 기술 주도(technology-driven) 경향과 이에 의한 기술결정론(technological determinism)의 만연 때문일까, 왜 쓰여진 글조차 제대로 못읽는 ‘인식론적 장애’가 생겼을까를 자문해 본다.**

 

 장애의 원인은 ‘어떤 산업에서건 특정 산업에 속하는 모든 기업들은, 심지어 가장 특이한 기업까지도 동일한 믿음과 가정을 공유한다. 한 산업에 속하는 여러 기업들은 다수의 동일한 고객을 상대하며 똑같은 매체에서 쏟아내는 뉴스를 흡수하고 동일한 컨설턴트와 상호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통찰은 사회적 맥락을 경제적 자본, 문화적 자본, 상징적 자본과 같은 상이한 자본 형식들의 소유를 통해 행위자가 차지하는 객관적인 위치들의 네트워크, 즉 장(, field)들로 분화된 다차원적 공간으로 정의하는 브로디외(Pierre Bourdieu)의 ‘장 이론(field theory)’을 통해서도 설명할 수 있다. 장 이론에 따르면 특정 산업을 하나의 장으로 볼 수 있고 그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 관련 매체와 컨설턴트들은 행위자에 해당한다. 그런데 어떤 장에 속한 행위자들은 그 장의 요구에 따라 미리 조정된 아비투스(habitus)를 갖는다. 아비투스는 ‘사회화된 주관성(socialisted subjectivity)’에 가까운 개념으로 습관(habitude, 아비튀드)이 아닌 영구적인 성향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신체에 구현되어 행위자가 그 장을 이해해석하고 그 속에서 행동할 수 있게 해준다. 

 

 필자는 어떤 장의 아비투스를 ‘특정 산업이 가진 동일한 믿음과 가정의 공유’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산업 간의 융합적 상황에서는 어떤 장에서 형성된 아비투스는 다른 장을 이해하는데 장애물로 등장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방송 산업과 통신 산업이 융합되는 뉴미디어 산업에서 이런 장애들을 관찰할 수 있다.***** BBC의 전략을 살펴보면서 ‘강한 정서적 연대감’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 것은 뉴미디어에서 헤게모니를 차지하고 있는 기술적 담론의 양적 우위 속에서 보면 이런 개념은 ‘보편적 상식’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모두가 가지고 있는 상식은 참된 인식의 방해물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기술 주도의 뉴미디어 산업에서 BBC의 ‘강한 정서적 연대’의 강조는 인터넷IT산업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이해하기 어렵다기 보다는 한 귀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중요하지 않은 말이다. 그런 까닭에 BBC 전략을 살피는 거의 모든 글들에서 그 개념을 이야기하지 않고, 이 ‘보편적이지 않은 BBC만의 상식’******이 BBC 실천의 특이성차별성을 만들고 있지 않을까 가정해 본다.

  ‘특이성’은 아주 영국적인 개념이다. 특이성(haecceitas, thisness)는 영국의 철학자인 요한네스 둔스 스코투스(Johannes Duns Scotus, 1226~1308)가 처음 사용한 개념이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토마스 아퀴나스가 보편자를 존중하는 것과 반대로 스코투스는 개별자도 일종의 적극적인 존재 양식이라고 말한다. 개별자는 그 자체로서 haecceitas(이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BBC 전략을 그 자체로 BBC 전략이게 하는 것이란 의미로 사용한다. 기술환경의 변화에 따라 대부분의 미디어 기업이 따라야할 전략적 키워드를 ‘보편적일반적’인 것이라고 본다면 아래서 살펴볼 ‘정서적 연대감’은 BBC의 역사가 깃들어있는 ‘개별적차별적’인 것이다.

 ** BBC의 전략을 논하는 대부분의 국내 논문들에서 ‘정서적 연대감’에 대해 살펴보지 않는 것 이외에도 검색을 통해 살펴보면 마크 톰슨 BBC 사장의 연설문도 번역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잘못 번역되어 인용되고 있다. ‘이미 우리가 해오던 것’을 변화된 기술환경에 맞춘다는 의미보다 현재의 방송을 ‘초월’하는 문제로 생각한다.

 *** 줄 고다드줄리언 버킨쇼토니 에클스, “특별한 기업은 ‘특벽한 상식’을 실천한다”, Dong-A Business Review No.108 (2012.7)

 ****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는 객관적 관계와 개인의 행위 사이의 매개물이다. 따라서 아비투스는 외재성(외적 세계, 구조)의 내면화와 주관성의 외재화로 ‘동일한 믿음과 가정의 공유’가 일어나게된 사회적인 맥락과 역사성(변화변동)에 대한 강조가 뒤따른다는 점에서 줄 고다드의 논의를 넘어선다. 피에르 부르디외,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 솔(서울, 1994) 중 “장()들의 몇 가지 특성” 및 “언어 시장”을 참고할 것

***** 박종진,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서울, 2007)에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특히 pp.43~53을 참고할 것

****** 줄 고다드줄리언 버킨쇼토니 에클스, 같은 책

 

강한 정서적 연대감

 

 제이 데이비드 볼터(Jay David Bolter)와 리처드 그루신(Richard Grusin)은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이란 책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매 순간 대규모의 대중 수용자로부터 인정을 얻고, 빠르고 예측 가능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짧은 글 안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 대규모 대중 수용자를 가진 매스 미디어로서의 텔레비전, 수용자의 인정을 받기 위한 시청률 경쟁, 수용자에게 빠르고 예측 가능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서의 프로그램 등등. 또 ‘매 순간’은 지금 여기(here and now)라는 현재성을, ‘정서적 반응’은 텔레비전이 불러일으키는 개인적 효과와 함께 대규모의 대중 수용자가 동시에 시청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사회적 효과를 가르키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가 볼터와 그루신의 이야기, 특히 이 구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BBC의 ‘창조적 미래’전략 내의 ‘강한 정서적 연대감(stronger emotional connections)’이란 개념 때문이다. BBC의 전략은 아이플레이어(iPlayer)에 대한 글을 찾다가 <젊은 BBC로 거듭나기 총력 - BBC ‘Creative Future’ 발표>란 기사를 통해 처음 접했다.** 그후 피상적이지만 BBC와 SBS의 뉴미디어 전략의 유사성을 비교했다.*** 6년 전 ‘정서적 유대감’이란 개념을 처음 보았을 때 먼저 영국의 경험적 철학 전통이, 그 다음에는 공동체나 연대감이란 개념이 떠올랐고 뉴미디어의 철학적 기반과 전략이란 생각으로까지 이어졌다. 그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정서(emotion)’와 미디어를 관계를 살피기 위해 노력했다.  이에 대한 필자의 탐험을 보고하고자 한다.

 

 서양의 근대는 일반적으로 이성에 대한 자각의 시기로 알려져 있다. 인류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년)로부터 인간 이성의 능력을 깨닫고, 이것의 계몽(enlightenment)을 통해 인류의 지적, 도덕적 발전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취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718세기 유럽과 영국의 철학은 이성 이외에도 감성에 관한 풍성한 논의들을 담고 있다. 근대 초기에 서양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된 단어가 ‘정서(emotion)’이다. 당시 이 단어의 의미는 오늘날 처럼 여러 느낌을 통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17세기 정서를 지칭하는 가장 일반적대표적 용어는 ‘정념(passion)’****이었다. 또 정서를 수용적이고, 수동적인 상태로 보았다. 정서에 대한 이런 이해가 현대에 와서 정서적 매체인 TV의 ‘수동성’에 대한 논의에 영향을 미친듯 하다.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영국에서 ‘감성(sentiment)’라는 단어가 널리 쓰였다. 감성은 정념과 구별 없이 사용되기도, 때로는 대비되어 사용되었다. 이때 감성은 ‘차분한 정서(calm emotion)’로 서 반성에 의해 다듬어지고 조절된 정서, 다른 방식으로 정제된 정서를 의미했고, 정념은 교정되지 않은 정서로서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거나 이성에 대해 반응하지 않는 ‘사나운 정서(violent emotion)’을 뜻했다. 

 

 BBC의 전략적 키워드 중 하나였던 ‘정서(emotion)’, 17세기 상당히 부정적인 의미를 지녔던 ‘정념(passion)’을 영국 철학적문화적 최전선으로 끌어온 사람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흄(David Hume, 1711~1776년)이다. 흄은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에서 ‘이성에 대한 정념의 우위’를 주장한다. 흄은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또한 오직 그래야만 한다”고 말한다. 이 말은 흄이 사람들에게 격한 감정과 강한 욕정이 지배하는 삶을 살으라고 권하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18세기에 쓰인 정념(passion)이란 단어는 오늘날 이해하듯이 격한 감정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일반적인 정서(emotion)을 의미하고, 흄에게 이 단어를 지칭하는 다른 용어가 감성(sentiment)이었다. 흄이 중요하게 생각한 정념이 자애심(benevolence), 자기애(self-love), 덕에 대한 사랑(love of virtue)과 같은 온화한 정념(calm passions) 또는 감성이라는 것을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흄은 인간 본성의 아주 특징적인 두 원리는 공감 원리와 비교 원리라고 말한다. 공감의 원리는 소감과 정서를 전달하는 것이고, 비교 원리는 대상들에 대한 우리 판단들의 변이이다. 그런데 이 원리들은 정념과 이성처럼 서로 상반되는 관계를 갖고 있고, 두 원리 중 지배적인 원리에 대하여 어떤 일반 규칙이 형성될 수 있다. 이에 대한 흄의 사고 실험을 쫓아가면 소감과 정서의 전달, 즉 인간 본성의 아주 특징적 특징인 공감은 어떤 사물들에 대한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 

 

 흄은 나는 지금 안전한 땅 위에 있고 이런 나의 행복을 또렷이 감지하기 위해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다에 있는 사람들의 불행한 처지를 상상해 볼 것을 제안한다. 다른 사람의 고통은 그 자체로는 고통스럽지만, 그 대상과 나의 상태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나의 쾌락행복을 증대시킴으로써 쾌락을 얻을 수 있다. 또 더 큰 쾌락, 즉 안도감을 얻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강하고 생생한 관념을 갖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애쓴다 한들, 이러한 관념들을 비교하는 것은 내가 실제로 바닷가에 있으면서, 폭풍우에 휩쓸려 암초와 모래톱에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위험한 배를 얼마간 거래를 두고 멀리 바라보는 경우와 똑같은 효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관념이 더욱 생생하게 되었다고 가정해, “이 배가 내 가까이로 밀려와서, 내가 선원과 승객의 얼굴에서 공포를 뚜렷이 읽을 수 있고, 또 그들의 비탄에 잠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그리고 마지막 작별을 고하거나 죽기로 결의하고 서로 얼싸안은 가장 친한 친구들을 볼 수 있다”면 이런 광경과 현재 내가 안전하다는 사실 때문에 “쾌락을 느끼고, 다정한 연민과 동정의 심적 동요가 꿈틀거리는 것을 억누를 만큼 잔혹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공감은 관념을 인상으로 전환하므로, 관념의 힘과 생동성을 비교에 필요한 것보다 더 요구한다.” 다시 말해 현장성(now and here)의 생생함이 이성적 비교를 위한 관념을 압도하여 쾌락보다는 심적 파란을 일으키고 공감하게  한다.******

 

 흄의 관점에서 보면 텔레비전( television)은 이성을 이용한 비교판단보다 더 강한 생동성을 통해 시청자에게 소감과 정서를 전달하여 공감하도록 하는 매체이다. 흄이 사고 실험에서 제시했던 것 중의 하나를 가능하게 한다. ‘내가 실제 바닷가에 있지’는 않지만 폭풍우가 몰아치는 ‘실제 바닷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필자의 생각에는 흄처럼 인간의 감성적 본성을 강조한 철학적문화적 배경 위에 BBC의 차별적 전략이 뿌리내리고 있다. 

 

 그리고 현재 텔레비전을 둘러싼 가전사 간의 경쟁의 가장 밑에는 이미지의 ‘생생함’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본성, 즉 공감이 존재한다. 인터넷 TV(connected-TV)와 함께 시작된 소셜TV(Social TV) 등에 대한 논의들도 이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인터넷에 연결된 사회적인 텔레비전 콘텐츠의 소비는 공감의 결과물이지 원인이 아닌 것이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앞에 chapter를 추가해야 한다. 아래 내용을 쓰는 이유를 사례와 함께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인터넷 공간에서 개인 미디어의 확산, 개인적 정서의 폭발과 이에 대한 (소규모) 조직화가 사물과 세계, 사회, 인간을 보는 방식의 민주화를 이룸과 동시에 공동체의 가장 밑에 깔려있는 (under-standing의 ‘under’) 인간적 지반을 허물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일들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어났고, 이에 대한 대응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지금-여기서” 우리가 어떻게 할지를 찾으려는 것이다라는 문제 의식이 너무 숨겨져 있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이후 이야기하는 역사 속의 미디어, 미디어의 기능에 대해 논하는 이유가 분명하지 않다. 개인화된 미디어의 장단점과 매스미디어의 장단점, 그리고 두 미디어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 공동체에서 역할을 해야 하는지 ...

 * 제이 데이비드 볼터리처드 그루신, 재매개: 뉴미디어의 계보학, 커뮤니케이션북스(서울, 2006), p.226

** PD저널, “젊은 BBC로 거듭나기 총력 - BBC ‘Creative Future’ 발표”(2006.7.5)  http://www.p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553

  *** 박종진, “자기이해를 위하여 - BBC의 뉴미디어 전략” (2007.10.21) http://dckore.co.kr/tc/64

 **** 르네 데카르트, 영혼의 정념들(Passions of the Soul) (1649)의 영향 때문이다. 오늘날 영어권에서 정념(passion)은 열정이나 격정을 의미한다. 사납고, 요동치며, 나를 엄습하거나 압도하는 그런 종류의 감정이고, 자주 성()적인 감정과 결부된다. 이런 의미는 빨라야 18세기 중반부터 생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년)는 ‘경쟁심’, ‘명예심’, ‘경이감(wonder)’, ‘진리에 대한 사랑’까지도 정념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최희봉, “철학적 시각에서 바라본 감성 - 흄의 사례를 중심으로” ,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인문한국사업단 제2호 감성연구 국내학술대회 발표논문(2010.8.15) http://www.gamsung.org/hk/sboard3/read.php?db=academy_kor&page=2&uid=23 최희봉의 글에서 1718세기 서양철학의 전반적 경향, 정념정서 등이 개념사 및 흄의 ‘정서’에 대한 논의를 참고함  

 ****** 데이비드 흄, 인간이란 무엇인가 - 오성정념도덕 本性論, 동서문화사(서울, 2009), pp.639~650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는 1517년 비텐베르크 성문에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게재하고, 정치적신학적 논쟁 속에서 1522년에는 독일어로 번역한 성서를 출판한다. 1524년에는 루터가 주도하는 종교개혁에 영향을 받은 독일 농민들이 영주들의 착취에 맞서 ‘독일 농민 전쟁’이 일어났다. 스위스의 제네바에서는 1537년부터 장 칼뱅(Jean Calvin, 1509~1564)의 영향 하에 좀 더 급진적인 종교개혁 운동이 벌어졌고, 프랑스에서는 칼뱅파 프로테스탄트들과 구교도 사이에 종교 내란인 위그노 전쟁(Huguenots Wars, 1562~1598년)이 일어났다. 스페인에 살던 유대인들과 많은 프랑스의 위그노들이 망명해 있던 네덜란드에서는 구교도의 아성인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전쟁(1568~1648년)을 벌여 네덜란드 공화국이 성립된다. 영국에서는 국교회 내에서 로마 가톨릭적인 제도와 의식을 없애고 칼뱅주의에 입각한 투철한 개혁을 요구하는 청교도 혁명(Puritan Revolution, 1640~1660년)에 의해 찰스1세가 처형되고 영국 공화국이 성립된다. 161718세기 유럽의 철학은 몇십년씩 지속되는 국간 간, 동족 간의 전쟁의 원인과 앞으로 만들어진 사회의 구성원리를 밝혀야할 과제가 제기된다.

 

르네상스 이후 발전된 161718세기 유럽의 철학을 ‘인간학(anthropology)‘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인간학은 근세 초엽인 16세기에 사용되었다. 인간의 신체나 영혼에 관한 학문을 의미했고,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관한 과학으로서 전개되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년)는 자신의 철학 전체를 인간학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인간을 오성이성적 존재로보는지, 아니면 감성적 존재로 보는지에 따라 논의의 전개가 달라진다. 이런 인간학의 배경에는 중세의 신학적 세계관이 무너지는 상황에서 인간 중심의 세계를 어떻게 구성구축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시대적 질문이 녹아 있다.

 

 이런 배경 위에서 볼 때만 왜 흄이 “이성은 정념의 노예이며 또한 오직 그래야만 한다”라고 이야기하는지를 밝힐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스피노자(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년) 때문이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년)는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해 논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무엇이 원숭이와 개구리를 구별해 줍니까? 스피노자의 말에 따르면, 그것은 종 특유의 혹은 종적인 특징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그것들이 동일한 정서(affectio, affection)들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각각의 동물에 대한, 정동(affectus, affect, sentiment)들의 참된 차트들, 즉 어떤 동물이 할 수 있는 정동들의 차트들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정동들을 만들어야 하겠지요.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점, 즉 문화에 의존해서는, 사회에 의존해서는 그와 동일한 정동들을 결코 소유할 수 없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 경주마와 짐수레 말이 동일한 종임은, 동일한 종의 두가지 품종임은 분명하지만, 그동의 정동들은 매우 다르고, 그들이 겪는 질병들도 완전히 다르며, 정동되는 역량들도 매우 다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짐수레 말이 경주마보다도 거세한 소(ox)에 더 가깝다고 말해야 합니다. 따라서 정동들의 생태학적 차트는 동물들의 유적 혹은 종적 결정과는 매우 다릅니다.”*

 

 스피노자는 어떤 사물사건사람 등과 마주쳤을 때 일어나는 감정, 즉 정서적 반응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종(, species)이 구별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주장에 서면 자연에서는 찾기 어려운 일, 다시 말하면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인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고, 종교가 없는 세계에서 다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전자는 사람들이 서로 간의 정서적 반응에 따라 본성적으로 서로를 좋아하거나 싫어할 수 있기 때문이고, 후자는 인간 본성 속에서 서로 좋아하거나, 또는 상대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을 찾을 때 가능하게 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런 맥락에서 ‘어떤 것을 보고 슬퍼할, 또는 기뻐할 정동들의 목록으로 어떤 사회를 정의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런 목록을 만드는 작업을 16세기에서 18세기 유럽의 많은 철학자들이 해왔으며, 그 중 하나가 영국에서 전개된 경험론적 전통이라고 생각한다. 

 * 질 들뢰즈, “정동이란 무엇인가?”, 비물질노동과 다중, 갈무리(서울, 2005), pp.47~48

 

정서적 연대감, 공감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고전경제학의 대표적인 이론가이며 국부론의 저자인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년)은 1759년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를 출판했다. 그는 14살에 글래스고 대학교(University of Glasgow)에 입학해 흄의 친구인 프란시스 허치슨에게 윤리철학을 배웠다. 1750년경에는 흄을 만나 평생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스미스는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연민(pity)과 동정심(compassion) 역시 ‘타고난 천성(principles)‘이라고 말한다. 연민과 동정심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고 그 고통을 생생하게 느낄 때 드는 감정이다. 또 이런 감정은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 감정이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없고, 그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연민과 동정심을 갖고 공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상상(想像) 때문이라고 말한다. 상상을 통해 역지사지(易地思之: 상대편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함)하는 것이다. “상상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타인이 처한 상황에 놓고 우리 자신이 타인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은 마치 우리가 타인의 몸 속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그와 동일인(同一人)이 되고, 그럼으로써 타인의 감각에 대한 어떤 관념을 형성하여, 비록 그 정도는 약하다 할지라도, 심지어는 타인의 것과 유사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  이 공감 위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넘어선 사회공동체가 구성될 수 있다. BBC가 이야기하는 ‘강한 정서적 연대감’을 다른 말로 하면 애담 스미스의 ‘공감’이 될 것이다. 

 

 ‘정서는 나에게 가해지는 어떤 사물의 이미지의 순간적인 효과이다. 예를 들어 지각들(perceptions)은 정서들이다. 나의 행위와 연결되어 있는 사물들의 이미지가 정서이다’.** 이것을 앞서 인용한 볼터와 그루신의 TV, 스피노자의 종, 흄과 애담 스미스의 공감에 대한 이해를 함께 연결하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매 순간 대규모의 대중에게 동일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동일한 정서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매체, 즉 집단적인 공감의 매체인 것이다. 따라서 BBC의 전략의 핵심은 새로운 환경에서도 이것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 따라서 ‘방송 영역 너머의 세상에서 우리가 해오던 것을 하는 것’이 된다.

 

 ‘매 순간 대규모의 대중에게 동일한 사물들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일’은 텔레비전을 통해서 처음으로 가능해졌다. 또 이를 통해 우리시대는 ‘시청자’에게 하나의 이야기(story)를 들려주면서 ‘동일한 정서’나 ‘상상을 통한 공감’을 일으켜 공동체의 구성하고 유지하는 기반을 만들었다고 필자는 주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런 역할은 텔레비전에게만 고유한 것은 아니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미디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사회적 효과이다.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비봉출판사(서울, 2010), pp.3~4

 ** 질 들뢰즈, 같은 책, p.85

 

근대 소설과 신문 그리고 공감의 공동체

 

 매클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년)은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년)이 프랑스 혁명에 관한 초기 저작 중에서 18세기에 문화적 포화점(飽和點)에 달한 인쇄된 언어가 어떻게 프랑스 국민을 동질화(同質化) 했는지를 설명했다고 지적한다.  “프랑스인은 북쪽에서 남쪽까지 같은 종류의 국민이었다. 획일성(劃一性)연속성(連續性)선형(線形)이라고 하는 인쇄의 원리가 구술(口述)을 주로 삼는 고대 봉건사회의 복잡성을 압도한 혁명, 새문학가와 법률가들은 그것을 실현하였던 것이다.” 따라서 ‘인쇄는 16세기에 개인주의와 내셔널리즘(nationalism)을 만들어냈고, 종교 전쟁의 동력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매클루언이 이야기하는 프랑스 혁명, 개인주의, 내셔널리즘, 법률가 등의 단어는 1762년 출판된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1789년 프랑스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등을 염두 두고 있는 듯 하다. 이것은 이성에 기반한 개인적 사유의 산물들이고, 이 사상의 확산은 인쇄술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런데 최근의 연구들은 프랑스 혁명과 근대적 국민국가의 형성에는 엘리트 계층에 파급된 이성적 사유를 넘어 이 사상을 사회 전계층에 확산시킨 새로운 공감의 방식을 주목한다.

 

 린 헌트는 인권의 발명에서 인류문명과 함께 인권이 존재한 것이 아니고, 인권은 18세기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권은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과 1789년 프랑스의  ‘인권선언’에서 비롯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기원은 계몽주의 철학가들의 변설이나 정치투쟁이 아니라고 한다.  헌트는 양 대륙에서 혁명이 일어나기 직전에 영국과 프랑스에서 유행한 대중소설이 서구 인권의 기원이라고 이야기한다. 그 당시 사람들은 루소, 새뮤엘 리처드슨, 헨리 필딩, 대니얼 디포 등의 소설을 읽으면서 주인공의 자율성을 본받고자 했다. 또 소설의 주인공들이 겪는 곤경에 동참함으로써 공감 능력을 길렀다. 소설이 대중들에게 자율적 감각과 공감 능력을 길러주는 감정교육의 온실이었다는 것이다. 소설의 전성시대와 인권의 탄생 시기가 일치하고, 소설을 통해 고양된 타인(주인공)에 대한 공감과 연민이 모든 사람이 근본적으로 같다는 인권 감각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나는 공공 전시장의 그림 감상부터 사랑과 결혼에 관한 대중 보급판 서한소설 읽기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경험의 영향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한 경험들은 자율과 공감을 파급시키는데 기여했다. 정치할자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의 주장에 따르면, 신문과 소설은 민족주의 번성에 필요한 ‘상상의 공동체’를 창조했다. 민족주의 보다 인권의 토대를 논하려는 이 책에는 대신 ‘상상된 공감’이라는 용어가 적합할 듯 싶다. 공감은 찰나의 믿음, 타인이 자신과 같다는 상상이 필요한 만큼, 만들어졌다기보다는 상상되었다. 고문에 대한 평가가 고통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고 이는 상상된 공감을 창출했다. 소설은 내적 자아에 관한 새로운 감각을 낳음으로써 그것을 창출했다. 각각의 것들이 이 같은 방식으로, 자율적이고 공감하는 개체들에 토대를 둔 공동체라는 관념을 강화했다. ∙∙∙∙∙∙ 새로운 독서(그리고 관람과 청취)는 새로운 개인적 경험(공감)을 창출했고 그것은 다시 새로운 사회적정치적 관념(인권)을 낳았다. ∙∙∙∙∙∙ 나는 사회적정치적 변화가 많은 개인들이 유사한 경험을 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동일한 사회적 맥락에 놓여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그리고 독서 및 감상과 더불어 실제로 새로운 사회적 맥락을 창출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매시간 많은 개인들에게 유사한 경험을 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의 텔레비전이고, 좀 더 확장하면 모든 미디어가 이런 효과를 만들어낸다. 

 

 18세기 서한소설의 주인공들은 대개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결심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려움을 겪는 소녀들이었다. 서한소설은 독자들이 자신을 주인공과 동일시하도록 만들었다.  독자들은 서한소설의 주인공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고, 이 관계는 오늘날 텔레비전 시청자와 영화 관람객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에 등장하는 남녀 스타들을 추종하는 방식과 같았다.** 

 

 1761년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년)가 쓴 서한소설인 신() 엘로이즈는 18세기 최대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800년까지 해적판을 제외하고도 최소한 70쇄를 거듭하면서 당시 독자들의 열광적 호응을 받았다. “독자들은 밤새워 통독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한 독자가 ‘너무나도 격렬하게 울어서 감기가 떨어졌다’고 고백할 정도로 등장인물의 운명에 한숨과 고통, 황홀경이 혼합된 열광을 표출했다. 감동적인 소설의 저자인 루소를 향한 독자들의 조건 없는 구애와 육탄 공격은 현대판 슈퍼스타를 향한 열성 팬과 ‘마니아’들의 그것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렇듯 인쇄술의 발달과 책 출판의 양적 증가, 새로운 기술에 맞는 대중소설의 등장은 ‘상상된 공감’을 만들고 공감하는 개인들에 기반한 공동체를 만들었다. 이 위에 ‘인권’이라는 도덕적 판단과 이와 관련된 제도들이 형성되었다.

 

 19세기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가브리엘 타르드(Jean Gabriel Tarde, 1843~1904년)는 개체들이 일정한 시간 이상 멀어져 서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 있어 육체적 접촉이 없다면 동물적인 군집(群集)도 군중(群衆)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서로 접촉하지도 않고 서로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각자 자기 집에 앉아서 똑같은 신문을 읽고 있으면 방대한 영토에 흩어져 있다면 정신에서 정신으로의, 혼에서 혼으로의 커뮤니케이션이 생겨 여론을 만들고 이들은 공중(公衆)이 된다고 지적한다. 신문은 ‘상상의 공동체’인 공중여론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타르드는 어떤 신문의 독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다수의 독자들이 자신에게 영향을 주지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통해 이를 논증한다. “나는 오늘 것이라고 믿는 신문을 펼쳐서 몇몇 뉴스를 열심히 읽는다. 그리고 나서는 그 신문이 한 달 전 것이나 어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곧 흥미를 잃어버린다. 이 갑작스런 흥미상실은 어디에서 오는가? 신문에 보도된 사실들이 내재적인(실질적인) 중요성을 완전히 잃어버렸는가? 그렇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읽는 사람이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의 생생한 호기심이 우리가 수많은 사람들과 공통된 감정을 갖고 있다는 무의식적 환상에 기인하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는 이런 감정을 ‘시사성이라는 느낌’이라고 표현하는데 , 이에 대한 집착은 사회성과 함께 증대되고 사회성의 가장 두드러진 표출이라고 지적한다. 당대의 관심사에 대한 공통된 감정이 공동체의 기반인 것이다.****

 

 타르드에 의지해 우리시대 포털의 실시간 급등 검색어, 즉 이슈(issue)에 대한 우리의 무의식적 집착클릭(click)을 설명할 수 있다. 인터넷에서 대부분의 실시간 급등 검색어들은 공통된 감정을 만들어내는 텔레비전의 프로그램과 지금 막 신문에 보도된 뉴스사건들로 이루어져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검색 순위는 ‘상상의 공동체’의 구성원에게 그 공동체의 가시적 존재감을 계량화해 보여준다. 또 블로그와 카페,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표현된 어떤 것에 대한 사람들의 감정의 흔적들은 검색 결과 페이지에 숫자로 집합화되어 실체를 드러낸다. 인터넷의 이용자는 실시간 급등 검색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지만 같은 시간에 같은 것을 보는 서로에게 ‘가시적 존재’로, 집단으로 나타난다. 이것을 텔레비전이나 신문 등과 비교하면 강도 깊은 ‘육체적 접촉’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흩어져 있던 사람들은 이 전기적인 ‘육체적 접촉’을 통해 군중처럼, 폭도(mob)처럼 변하기도 한다. 

 

 BBC와 같은 전통 미디어가 뉴미디어를 통해 얻은 것은 공감에 따른 ‘상상의 공동체’를 ‘가시적 존재’로 들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 존재는 BBC가 아닌 다른 매체, 즉 인터넷의 포털이나 트위터, 페이스북 등을 통해 드러난다. 전통 미디어의 고민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 마샬 맥루한,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서울, 2001),  p.15, p.22, p.26을 볼 것

 ** 린 헌트, 인권의 발명, 돌베개(2009, 파주)를 볼 것, 인용문은 같은 책 pp.39~41

 *** 육영수, 책과 독서의 문화사 - 활자 인간의 탄생과 근대의 재발견, 책세상(서울, 2010), pp.42~43

**** 가브리엘 타르드, 여론과 군중, 지도리(서울, 2012), pp.15~73을 볼 것, 타르드의 이야기와 앞서 인용했던 흄의 ‘생생함’을 비교하여 읽으면 우리에게 미디어가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고대 그리스의 연극, 공적 공간

 

 ‘동일한 정서(emotion)’를 만들기 위해 공동사회에서 수행한 미디어의 역할과 중요성은 고대 그리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30년 가까이 지속된 펠로폰네소스 전쟁(431~404년 B.C.)은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항복하면서 끝이 났다. 8개월이 지난 다음 해 아테네에서는 민주정이 부활한다.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결성해 50년 간 지속된 페르시아전쟁(499 ~ 449년 B.C.)에서 승리했을 때와 비교하면 과거의 힘을 회복하지 못했을 때이다. 그런데 아테네에서는 우리시대 기준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민회에 출석하는 시민에게 수당이 지급됨으로써 참여자가 늘어나게 된 것도 민주정이 부활한 직후의 일이었다. 이와 동시에 연극관람 수당도 지급됐다. 그리스에서 연극이 성행했음은 널리 알려져 있으나, 당시에 연극관람이 민주정에 참여하는 방식의 하나로 중시됐다는 사실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패전 후 해결할 다른 문제들도 많았을텐데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아테네 민주정은 왜 연극관람 수당을 지급했을까? 그것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국가 재정에서 연극 관람료를 지불한 것은 페리클레스(Perikles, 495? ~ 429년 B.C.) 시대부터이다. 농번기의 일손 부족 때문에 축제 참가가 어려운 농촌 시민들의 참가를 보장하기 위해 국가에서 시민들의 입장권과 일비(日費)를 지불하기도 했다. 페리클레스는 배심원, 500인 평의회 의원, 추첨에 의해 임명된 공직자 등에게 국가가 수당을 제공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민들이 협의회와 재판소에 나가도록 하기 위해 국가는 법으로 일당과 급식을 마련했다. 이에 따라 가난한 시민들도 생업을 일시 중지하면서 공직에 나갈 수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아테네인들은 연극관람을 공동체를 위해 일하는 것만큼이나 중요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고대 그리스의 극장의 크기를 보면 몇십 명 정도 들어가는 소극장에서 연극을 본 우리의 경험을 압도한다. 5세기 후반 아티카(Attica, 아테네를 포함한 주변 지역)에는 약 20만명의 시민이 살았다. 이들 중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소유한 30세 이상의 남성은 대략 2만에서 3만명 정도였다.** 한 장소에서 10분의 1 정도의 시민이, 참정권자 대부분이 함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디오니소스 극장의 석조 객석은 14,000명에서 17,000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과장이었겠지만 플라톤(Plato, 429 ~ 347년 B.C.)은 향연에서 기원전 416년 한 축제에 3만명의 관객이 참석했다고 전한다.*** 그들은 왜 이런 거대한 극장에 모여 연극을 보았을까?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연극은 어떤 것이었을까를 다시 묻게 된다.

 

 아테네에서 모든 드라마는 단 한 번만 공연되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디오니소스 신에게는 오직 최초의 수확물만을 바쳐야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연은 축구 경기처럼 일회적이었다. 극장은 축구 경기장처럼 한번에 수만 명의 관람자를 수용할 만큼 커야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연된 작품의 재공연이 허용되긴 했지만 장기 공연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재공연을 위해서는 민회의 결정이 필요했고, 또 아테네 가 아닌 주변 농촌지역에서 열린 다른 축제에서 상연되었다. 하지만 공연의 일회성도 거대한 극장의 필요성을 곧 바로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함께 모여서 연극을 보아야 할 사회적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아테네인들이 “박코스의 여신도들, 페니키아의 여인들, 오이디푸스와 메데아 혹은 엘렉트라의 불행을 공연하는데 제국을 유지하고 페르시아인들에 맞서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많은 돈을 지불했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주장이 크게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3일 간 진행된 연극 경연인 도시 디오니소스 축제를 위해서는 대략 노동자 100가구 정도가 약 4년 간 생활할 비용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아테네가 일년 간 해군을 유지하는 비용의 10분의 1에 달하는 돈이었다.**** 고대 아테네인들이 연극에 왜 이렇게 큰 사회적 비용을 투자했을까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직접적인 연구는 없지만,***** 우리는 당시 연극이 가졌던 사회적 중요성을 추론해 볼 수는 있다.

 

 고대 그리스 희극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남편과의 섹스파업을 소재로 한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의 뤼시스트라테처럼 비상식적 주제를 선택했고 여러 입장들을 드러냈다. 여러 사람들 간의 이데올로기 투쟁은 외설스런 농담들과 뒤섞여 정신적 자유공간을 만들고 정치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축제에서 상연된 연극을 보면서 아테네 시민들은 스스로 반성하고, 공동체와 자신의 관계를 곱씹었다. 또 공동체 안에 있던 현안들에 대한 독자적인 시각 등을 세울 수 있었다. 따라서 희극에서 반영된 규범의 확인과 해체는 전사회로 확산되어 시민들 사이의 직접적 토론거리가 되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년)는 피타고라스(Pythagoras, 580?~490?년 B.C.)의 것이라고 알려진 우화를 인용하면서 “관객이 가진 이점은, 그가 연극을 전체로서 본다는 것이다. 반면 배우들 각자는 오직 자신만의 역할을 알고 있거나, 만일 자신의 행위의 시각으로 판단해야 한다면 오직 그와 관련된 전체의 일부분만 알고 있다. 배우는 정의상 편파적이다”라고 말한다. 연극을 통해 우리는 ‘사적’ 자아와 성향을 배제하고 전체의 의미를 봄으로써 더 객관적 입장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희극은 이성적이고 교육적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고대 그리스 작가인 아이스킬로스(Aeschylus, 525/524?~456/455년 B.C.), 소포클레스(Sophokles, 497~406년 B.C.), 에우리피데스(Euripides, 480?~406년 B.C.)의 비극은 관객이 상상력을 통해 배우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게 만들었다. 고대 그리스 시민들은 연극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감정적 삶과 다른 누군가 겪는 고통에 반응했다. 시민들은 늘 많은 관객 중의 한 명이었지만 다른 청중과 함께 광경(spectacle)에 대한 반응을 공유했다. 그 광경에 대한 서로 다른 반응들 중에 공통된 것이 있다는 것을 앎으로써 고대 그리스의 시민들은 세계를 경험하는 공통의 방식을 공유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주기적인 모임, 즉 연극 공연은 ‘육체적 접촉’과 함께 ‘공통감각(common sense)’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칸트에게 ‘공통감각은 다른 감각들과 같은 감각, 즉 모든 사람에게 아주 사적인 가운데에서 동일한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보통 이야기하는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당연한 것을 보는 능력이 아니다. ‘공통감각’은 연극을 보는 시민들마다 연극에 대한 개별적 해석이 다르다고 해도 다른 시민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좋음과 아름다움에 대한 감각이다. 아렌트는 칸트가 이 용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에 걸맞게 하는 별개의 감각—별개의 정신능력과 같은 것(독일어로 Menschenverstand인간의 오성)을 의도한다”고 설명한다. “인간의 공동의 오성은 ∙∙∙∙∙∙ 어떤 사람에게 인간의 이름으로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이다. 그것은 인간을 동물이나 신으로부터 구별되게 해주는 능력이다. 이러한 감각 가운데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인간의 인간다움(humanity of man)이다.” ‘인간을 동물이나 신으로부터 구별되게 해주는 능력’을 스피노자의 이론에 따른다면 ‘원숭이와 개구리, 그리고 사람을 구별해 주는 것은 동일한 정서들을 갖는다는 것’으로 번역된다.********

 

 소설, 신문, 텔레비전 등과 같은 기술적 방식에 의해 매개되어 확인된 ‘공통감각’‘동일한 정서적 반응’에 의해 만들어진 관계를 ‘상상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극을 한자리에 모여 함께 관람함으로써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공동체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은 종교적 일체감을 바탕으로 한 공동체의 삶, 정치적 커뮤니케이션 등과 함께 공감에 기반한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민주주의 구조의 일부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연극은 현대의 소설, 신문, 텔레비전과 같은 역할을 했던 것 같다.  

 

 플라톤은 국가政體에서 연극 관람객의 경험 전체를 한 편의 꿈과 같이 평가한다. 그것은 일체감을 느끼는 행위에 꼭 필요한 리듬과 정서적 매혹 같은 것이다. 그런데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정신이 혼란스러워 동일한 것에 대해 어떤 때는 가벼움으로, 또 어떤 때는 무거움으로 모순된 판단을 내리고, 보고 듣는 것의 균형이나 성격이 바뀌는 것처럼 그 도덕적인 내용도 바뀐다고 말한다. 도덕적인 판단이나 그 밖의 판단을 처리할 다중(多衆)의 많은 관습들은 언제나 있는 것과 있지 않은 것 사이를 오간다. 그들은 지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philosophoi)가 아닌 억견을 좋아하는 사람들(philodoxai)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Socrates, 469~399년 B.C.)의 입을 빌어 “아마도 듣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소리나 빛깔 및 모양을 그리고 이와 같은 것들로 만들어진 온갖 걸 반길 뿐, 이들의 사고(思考, 마음 상태)는 ‘아름다움(아름다운 것) 자체’의 본성을 볼 수도 반길 수도 없을 걸세. ∙∙∙∙∙∙ 아름다운 사물들을 믿으면서 아름다움 자체는 믿지도 않고, 누군가가 그것의 인식(앎)에 이르도록 그를 인도할지라도, 따라갈 수도 없는 사람이 자네에겐 꿈꾸는 상태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가, 아니면 깨어 있는 상태로 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가? 생각해 보게. 그러니까 꿈을 꾸고 있다는 건 바로 이런 게 아니겠가?”라고 말을 한다.********* 더 나아가 고대 그리스의 연극이 현대의 미디어 매체와 다른 점은 대부분의 시민이 모이는 극장에서의 ‘육체적 접촉’과 공감에 의한 ‘공동체의 실존’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연극을 관람하는 시민들은 로마 원형경기장의 구경이나 현대 축구 경기장의 난폭한 팬(hooligan)처럼 군중이나 폭도처럼 변하기도 했을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그리스 시민민중(民衆)과의 정서적  연대를 맺고 있는 민주주의와의 관계를 끊고 이상적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희극, 비극 작가들을 나라 밖으로 추방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연극은 아테네 공동체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플라톤의 주장은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1969년)가 계몽의 변증법에서 방송을 포함한 문화산업을 분석하면서 ‘매체들이 지닌 의식 조작적 기능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비판’의 선구적인 모습으로도 볼 수 있다. 아도르노는 미디어(媒體)가 미디어 소비자들의 욕구를 생산, 조정, 훈련시키고, 이것을 다시 복제, 고착, 강화해서 획일화된 욕구, 기호, 소비패턴, 사고, 문화를 만든다고 주장한다. 플라톤이 연극을 통해서는 ‘아름다움 자체(idea)’를 볼 수 없도록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아도르노의 입장에 서면 텔레비전은 사이비 공동체를 만들어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며 사람과 사람뿐 아니라 사물과 사물 사이에 실제로 존재하는 소외를 의식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에 대한 이런 비판적 입장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미디어가 만들어낸 사회적 효과, 즉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내는 공감의 힘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필자는 고대부터 우리시대까지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정서적 연대감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 박홍규, 플라톤 다시보기, 필맥 2009, pp.129~130

 ** 200,000명의 시민 이외에 110,000명의 노예와 28,500명의 외국인이 있었다. 따라서 아테네는 35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었다. 시민 18 이상의 성인 남성은 대략 3~5만이었다. 이중 30 이상으로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소유한 사람은 3분의 2 정도 였다.  오스카 G. 브로켓프랭클린 J. 힐디연극의 역사 I연극과 인간 2005, p.72, 이정린아리스토파네스와 고대그리스 희극공연한국학술정보() 2006, p.47, 백경남민주주의론법지사 1989, p.73 참고하여 정리함

 ***기원전 416 그리스 아테네의 비극시인 아가톤은 비극경연대회에서 우승을 , 기쁨을 나누기 위해 향연(symposion) 연다. 그와 가깝게 지내던 이들이 초대되었는데 파이드로스, 파우사니아스, 에릭시마코스, 아리스토데모스 당대 최고의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와 철학자 소크라테스 였다. 모두 당대의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전날 우승의 기쁨과 축제의 피날레를 즐기며 술이 깼다고 너스레를 떨며, 오늘은 술을 조금만 마시자고 입을 맞춘다. 술을 강권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주량껏 마시면서 대신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향연을 즐기기로 한다. 향연에서 이야기된 주제는 에로스(Eros), 사랑이다.   아가톤의 집에 도착한 소크라테스는 아가톤의 지혜를 칭찬하며 이렇게 말한다. “∙∙∙ 자네의 지혜는 찬란하고  급속히 자라고 있어얼마나 환하게 그것이 아직 젊은 자네한테서 튕겨 나왔고  그저께(비극경연대회 우승일) 3만명 이상의 헬라스 사람 앞에서 과시되었던가!” 이때 소크라테스의 나이는 54 쯤이었고아가톤은 31 쯤이었다 최명관 옮김플라톤의 대화  <향연>, 종로서적 1992, p.227

 **** 플루타크(Plutarch), On the Glory of Athens, CAD 148f. 이정린, 같은 , pp.88~89에서 재인용. <박코스의 여신도들>, <페니키아의 여인들>, <메데아> 유리피데스의, <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소포클레스(497 ~ 406 B.C.) 작품이다.

 ***** 이정린, 같은 , p.9

 ****** 이정린, 같은 책, pp.22~28

 ******* 사이먼 스위프트, 스토리텔링 - 한나 아렌트, 앨피(서울, 2011), pp.134~135, 한나 아렌트, 칸트 정치철학 강의, 푸른숲(파주, 2011),  pp.112~113

 ******** 한나 아렌트, 같은 책, pp.136~139, 사이먼 스위프트, 같은 책, pp.135~136

 ********* 에릭 A. 해블록, 플라톤 서설 - 구송에서 기록으로, 고대 그리스의 미디어 혁명, 글항아리(파주, 2011),   p.294 및 pp.288~289를 볼 것, 해블록이 정리한 내용은 플라톤(박종현 역주), 국가政體, 서광사(파주,1997), pp.315~384에서 볼 수 있다. 인용문은 국가政體의 pp.371~372를 볼 것

 ********** 이종학, 아도르노 - 고통의 해석학, 살림(파주, 2007), pp.46~48


▸ 고대 그리스의 연극, 공적 공간은 다음 글의 내용 중 일부를 가져온 것이다. 〈그리스 연극에 대한 관심 - 어떻게 공동체를 묶어낼 것인가? (쪼는 어떻게 사회를 보호할 것인가!). 2019.7.9일 포스팅

 

BBC의 사명과 콘텐츠의 힘

 

2006년 BBC는 앞으로 6년간 시청자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전달하기 위해 ‘창조적 미래 전략(Creative Future Plan)‘을 발표했고, 올해가 6년째 되는 해이다. 필자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미디어와 ‘정서’의 관계를 살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국내의 미디어 업계의 어수선함, 하루 아침에 바뀌는 인터넷 산업의 전략트렌드로 볼 때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일관되게 추진하는 BBC 전략과 실천의 힘이 ‘정서’에 대한 문화적철학적 통찰 위에 있지않은가 생각하게 되었다.

 

 마크 톰슨 BBC 사장의 말처럼 ‘창조적 미래’ 전략이 ‘이는 새로운 서비스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미 BBC가 해 오던 것을 어떻게 달리 하는가에 관한 것’이라면, 이미 해오던 것은 ‘강한 정서적 연대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 이것을 ‘어떻게 달리 하는가에 관한 것’은 크로스 플랫폼 콘텐츠를 제작하고 이 환경에 맞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용어로 바꾸면 N스크린 서비스(N-Screen Service)의 제공 정도가 될 것이다. 

 

 BBC는 2010년 3월, ‘Putting Quality First’라는 세부계획을 통해 디지털과 온디맨드 시대에 ‘양질의 콘텐츠 제공’, ‘선택과 역량 집중(‘do fewer things better’)의 비전을 제시했다. 뉴미디어와 관련된 필자의 실무 경험에 비춰 해석하면, 이것은 쌍방향성(interactive), 원소스멀티유즈(one source multi use), 공영방송인 BBC에서 말하는 바는 아니지만 T-커머스(T-Commerce) 등의 부가서비스가 아닌 전통적인 콘텐츠의 힘, 즉 스토리(story)에 대한 재강조이다. 6년 전 마크 톰슨의 예측처럼 ‘디지털의 두 번째 물결’이 이미 모든 전통 미디어를 무수히 많은 플랫폼, 즉 N스크린에서 접근 가능한 콘텐츠,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기존의 방송 개념을 뛰어 넘는 것, 시청자들의 상호작용 욕구의 충족 등의 장까지 밀어보낸 것이다. 훌루(www.hulu.com)와 넷플릭스(www.netflix.com), 그리고 최근 한국에서 시작된 콘텐츠연합플랫폼의 서비스(www.pooq.co.kr)  등이 이에 대한 결과가 될 것이다.

 

 필자는 BBC가 전략을 세우기에 앞서 미디어의 사회적 사명(mission)에 대한 확인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미디어의 사회적 사명에 대한 자각은 인간 본성과 미디어의 역사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결과일 것이다. 이것은 BBC가 공영방송이기 때문이 아닌, 모든 미디어가 확인해야 할 부분이다. 미디어는 언제나 가능한한 많은 사람에게 동일한 사물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동일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매체, 집단적 공감을 만들고 공동체를 구성하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코러스부터 우리시대의 미디어 회사들에게까지 이 사명을 효과적으로 이루기 위한 활동체계가 전략이 될 것이다. 사명을 모른다면 전략이 나올 수 없고, 전략이 나온다고 해도 한갖 IT 트렌드에 대한 읇조림 뿐일 듯 하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동일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기 위하여 크로스 플랫폼을 하고, 이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과 단순히 IT의 마켓팅 유행어에 따라서 멀티 플랫폼과 클라우드(cloud) 서비스를 준비하는 것은 다르다. 이것은 또 유튜브와 미디어 회사인 BBC의 차별성을 만든다. 차별성은 기술 중심이 아닌 여전히 ‘Putting Quality First’로 표현되는 콘텐츠 중심의 사고이다. 어떤 방식을 통해서든 ‘동일한 사물의 이미지’, 즉 콘텐츠를 보여주고 동일한 정서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이미 해왔고, 계속 해야 할 일이다.

 

 필자는 방송기술의 발달로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사라지면서 편성의 의미에 대해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왜냐하면 ‘친구 등 다양한 경로로 이루어진 추천에 의한 시청이 편성 주도의 시청과 공존’한다기 보다는 여전히 편성이라는 달이 비친 몇 천개의 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편성 책임자가 없는 유튜브나 트위터를 통해 소개받은 프로그램을 BBC의 아이플레이어에서 본다고 친구와 트위터버스(Twitterverse:트위터의 세계)가 취향을 만들고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에는 아직 어렵다.*

 

 그리고 필자가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미디어는 지금 여기(now and here)에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이 참여하게 하는 방향으로, 즉 같은 이미지를 봄으로써 함께 갖게되는 ‘공통감각-동일한 정서-공감’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면 인터넷에서 친구 간의 추천이 편성을 대체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왜냐하면 어떤 콘텐츠에 모든 사람이 접속 가능하다는 차원과 모든 사람이 접속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미디어를 통해 공동체는 확장되고, 또 유지된다. 매클루언이 지구촌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친구와 트위터버스, 또는 블로그나 포털의 카페가 추천하는 세계는 앞서 살펴 본 포털의 실시간 급등 검색어처럼 대부분이 전통 미디어에 대한 재매개재확산, 따라서 공감의 재매개재확산이다. 또 설혹 그것들이 새로운 사실진실을 추천이 아닌, 제기할 때는 전통 미디어를 통해서 전사회 구성원에게로 확산된다. 따라서 이들은 사회적 이슈에 따라 성장하기도 축소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인터넷 상의 각각의 집단들은 이전 시대보다는 훨씬 크겠지만 대부분 조그마한 취향의 공동체동호회로 존속하게 된다. 왜냐하면 시간을 초월한다는 의미의 다른 면은 대규모의 동시성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것이고, 사람들의 취향은 세계존재의 무한성 만큼이나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고, 또 타르드가 신문에서 발견한 공중처럼 인터넷을 통해서도 쉽게 집단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존재 자체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다양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자양분이다. 왜냐하면 다중(多衆)의 지혜로 ‘잘못된’ 공통감각이 만드는 위험성을 견제할 수 있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최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위 뉴미디어 부분에 대한 좀 더 상세한 분석, 라이프니츠의 미세지각 차원, 그리고 기술이 어떻게 새로운 지각을 만들어내는가에 대한 분석. <감정/affectus>를 잡아 공통지각으로 만들어내는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와 그 감정의 일시성이 문자화(서비스화) 되었을 때 나타나는 문제점들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기존의 방송 개념을 뛰어 넘는 것의 대표적인 예가 특정 프로그램을 주 시청 시간에 배치함으로써 시청 욕구를 만드는 동시에 충족시키는 ‘편성’ 없이, 시청자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이다. 더 이상 시청자들은 선형 혹은 단선적 시청(linear viewing) 패턴을 보이지 않는다며 편성의 무용론까지 제기한다. 윤현선, 같은 책, p.82, p.95~96을 볼 것

 

 창조적 진화, 의지 

 

 ‘강한 정서적 연대감’과 ‘양질의 콘텐츠에 역량 집중’을 빼면 BBC의 전략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환경을 맞은 어떤 미디어 기업도, 또 미디어 기업이 되려고 하는 통신영역이나 IT영역에 있는 포털들도 알고 있었고, 갈 수 밖에 없는 길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미디어 기업 중 BBC가 돋보이는 것은 아무런 준비 없이 떠밀려가지 않고 스스로 흐름을 타고 넘겠다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표류하지 않을 내적 역량을 갖추겠다는 의지를 밝힌 점이다. 이것은 많은 미디어 기업들이 기술 발전의 결과에 강요 받고, 알면서도 떠밀려가는 것과는 다른 태도이다. 이 의지가 말만이 아닌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환경, 즉 기술적 발전과 그에 따른 변화는 사람들의 활동에 의해서 생겨난 결과물이지만 사람들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산업 내의 모두가 함께 서있는 객관적 조건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것이 객관적인 만큼 누구나 알고 경험한다. 그런데 서로 다른 결과가 나온다. 그 기술이 속해 있는 사회(또는 산업)의 역사, 문화, 법, 제도 등 다양한 요소가 복잡하게 얽혀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복잡한 요소를 잠깐 옆으로 젖혀 놓고 기술로 인해 변한 환경에 대응하는 사람들에게만 속하는 조건을 찾는다면 의지, 능력, 준비태세나 각오, 열의 등이 남을 것이다. 이 사람들의 의지와 능력, 그리고 준비태세는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된다. 또 그 행동은 기술적 환경 위에서 사람들의 의지가 구체화된 특정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이 결과는 다시 사람들의 진전된 활동을 위한 객관적 조건이 된다. BBC는 이런 선순환을 만들고 있는 것같다.

 

 “풀은 위대한 미경작지에서만 존재한다. 풀은 공터를 채운다. 풀은 다른 것들의 사이에서 자란다. 꽃은 아름답고 배추는 유용하고 양귀비는 당신을 미치게 하지만 풀은 넘쳐흐른다.”* 헨리 밀러의 햄릿에 나오는 구절이다. BBC가 하려고 한 것, 지금 하고 있는 것은 인터넷이라는 ‘미경작지’에서 월드 가든(walled garden)의 꽃이나, 배추, 양귀비가 아닌 풀이 되기로 한 것처럼 보인다. ‘방송을 넘어선다’는 것은 방송이 만들어 놓은 경계를 건너 뛰는 것이다. 스스로 ‘꽃, 배추, 양귀비’가 아닌 풀이 되려고 생각하고, 풀이 되어 공터에 넘쳐흐르려면 어떻게 할까라고 질문하고 답한 것이다. 그들은 ‘꽃, 배추, 양귀비’를 지키기 위해 풀을 뽑아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른 어떤 것보다 더 빠르게 풀이 되어 정주민의 텃밭을 박차고 경계를 뛰어넘어 뚫고 지나가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다른 미디어 기업들이 인터넷에서 자라난 웹하드, UGC(User Generated Content), 유튜브(www.youtube.com)와 같은 동영상 포털들의 잡초들 사이에서 자신들을 지키려고 할 때, BBC는 방송을 넘어선 다른 형식의 방송으로 ‘창조적으로 진화’**하려고 한다. 

 

  사회적 사명에 대한 자각 이외에 필자가 이해하는 BBC의 전략의 또 다른 핵심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다른 무엇이 되겠다는 것이다. (실제는 이미 BBC가 해오던 것을 달리 해보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물, 신체, 기술산업을 만나 자신이 바뀌고 다른 것도 바뀌어 무엇이 되는 것이다. 

 

 자신은 바뀌지 않고 주어진 조건, 환경을 바꿀 수 있다면 이것도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구글(www.google.com)이 전통 미디어의 텃밭이라 할 수 있는 TV를 인터넷으로 끌어들여 채널이 없는, 흠이 없이 미끄러져갈 수 있는 공터로 만들려는 것이 여기에 해당될 듯하다. 하지만 이때도 TV 속의 구글은 더 이상 현재의 구글이 아닐 것이라고 확신한다. 어떤 사물/기업/사람도 다른 것과 만나면서, 관계를 맺으면서 바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만남관계의 지속성이 중요하지겠지만 말이다. 자신의 역량 역시 객관적 조건 중의 하나이다. 역량을 판단하지 않고 의지만 있다면 과대망상에 빠진 환자가 된다.

 * 질 들뢰즈클레르 파르네, 디알로그, 동문선(서울, 2005), p.60에서 재인용

** 
 앙리 베르그송, 창조적 진화, 아카넷 (서울, 2005)을 볼 것. 베르그송에 따르면 환경 변화는 종의 변형을 위한 조건일 뿐이다. 기관의 사용에 의한 복잡성의 증가 과정은 환경에 적응하려는 의지에 기인한다.

*** 
 질 들뢰즈,  같은 책은 참고할 것

 

기술이 지각방식을 만들어내는 시대, 철학의 역할


 
필자는 2007년 SBS의 뉴미디어 전략을 수립을 하는 과정에서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을 쓴 후 지금까지 BBC의 뉴미디어 전략을 이해하기 위해, 아니 미디어를 철학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필자의 탐험을 위에서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함께 읽었지만 소개에서 언급되지 않은 저작들의 저자들은 발터 벤야민(Walter Bendix Schönflies Benjamin, 1892~1940년), 에밀 뒤르케임(Émile Durkheim, 1858~1917년),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Henry Williams, 1921~1988년), 로버트 단턴(Robert Darnton, 1939~ ),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 1889~1951년),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년),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년) ,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년), 귄터 안더스(Günther Anders, 1902~1992년) 등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언급되었거나 지금 거명한 이들은 인간 감각과 미디어기술, 미디어기술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효과’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이야기 했다고 생각한다. 들뢰즈는 “무엇보다도 철학자들은 개념들을 발명하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또한 어쩌면 지각의 방식들을 발명하기도 합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적어도 우리시대는 기술이 지각의 방식들을 만들어내는 듯 하다. 미디어기술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필요한 이유다. 

 *질 들뢰즈, 같은 책, p.22


관련된 글 : ‘몸-경험’에서 매체로, 그리고 매체에서 ‘몸-효과’로 (2013.4월에 쓴 이 글에서는 위에서 소개한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논의를 바탕에 깔고 이야기하고 있다.)

2019/06/19 09:30 2019/06/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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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 때, 페북에 쓰고 자물쇠로 잠가놓은 글이다. 1년이 지나 다시 올라와 얼굴을 내밀었다. 

"어떤 사물(an object)이 다른 어떤 사물을 만날 때, 사건의 조합(combination)이 된다면, 만난 사물들이 바뀌었거나, 만나는 순서(permutation)가 바뀌면서 처음의 어떤 사물 속에 있던 성질이 드러난다." 
    
"사물 속에 있던 성질"이라고 하면 하나의 속성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사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 아니다. 그 사물이 '다른 사물'을 만났을 때 드러나는 역량은 속성으로 환원할 수 없다. '다른 사물'을 만나지않았다면 '그 사물'은 그 속성을 가지지않았을/가졌다고생각되지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능력은 우발적으로 드러난다. - 스피노자 & 들뢰즈

이런 까닭에 아무리 많은 성공 사례조사를 한다고 해서 그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식과 진리(어떤 능력의 드러남)은 다르기 때문이다. 사례조사로 무엇을 흉내는 낼 수 있디지만 무엇이 될 수는 없다. 어떤 존재 자체의 능력은 그 존재 안에서만 찾을 수 없다. 관계, 외재적인 관계 속에서, 만남/부딪힘 속에서 들어난다. 그래서 "그냥 일어나서 일하러 가는 것"이다. 부딪히고 만나러 ... 사고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이다.

그러니 배우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기 한계를 알아야 넘어설 수 있다는 원론이다. 한계는 자기가 만들 세계의 끝은 볼 때, 그것을 넘어서려 할 때만 드러나는 보이지않는 경계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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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 Park

아침 책을 읽다 신문을 읽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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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일 여름의 시작이다. 
가을의 풍요함을 위해 열심히 일하자!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4736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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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 동료들이 생각과 고민을 해야한다고 할 때,
며칠째, 필립 로스의 ‘에브리맨’의 한구절을 말 해준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린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

의미는 행위(doing)에서 나오지 영감(thinking)에서 나오는 것 같지는않다. 행위를 할때 영감이, 행위하는 사람의 육체 속에서 떠올라 표현된다. 육체가 표현한다. 등등 ...

뭘 모를 때, 미래가 불투명할 때,
어떻게 될지 모를 때, 우리가 그 잠재성/가능성을 확인해 봐야할 때, 일어나서 해봐야 ‘한다/안다’. 

——

읽고 있는 책이다. 어려울 때 항상 돌아가는 곳. 
<언어의 한계는 세계의 한계다> : 비트겐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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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할 수 있는 세계가 한계를 만났을 때, 일어나 일을, 행동을 한다. 
한계는 예측, 지금까지의 인과론(관습)에서 벗어난 사례쯤이라 해놓는다면, 행위는 삶, 있으니 그냥 하는, ‘무위자연’쯤일까? 진화된 인간육체의 알고리즘일까, 그 일탈일까 ... 

“만약 어떤 사물이 사태 속에서 발생할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은 애초부터 있었다.” 우연적으로 보인다고 해도 그건 아니다. 사건/사실로 확인해보기전 알 수 없는 것이 너무 많다. 

어떤 사물(an object)이 다른 어떤 사물을 만날 때, 사건의 조합(combination)이 된다면, 만난 사물들이 바뀌었거나, 만나는 순서(permutation)가 바뀌면서 처음의 어떤 사물 속에 있던 성질이 드러난다. 사상 초유의 사태, 이런 것들... 사물(thing)은 사람, 국가, 회사, 집단 등을 대신한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적어도 인간을 대상으로하는 추천, 예측 등을 하겠다는 기계학습은 보수주의의 음모일 수 있다. 보수주의는 새로운 관계보다 관계의 고정과 유지를 원한다고 보면, (보수주의자가) AI를 싫어하는 정서적인 것과 별개로. )

달리 적극적으로 단기가 아닌 장기적 극한까지 밀어 붙일 때, 기계가 유기체를 넘어설 가능성은 낮다/어렵다. 인간의 탄생/진화는 우주적 시간 안에서 우연적 사건이므로. 기계가 변화, 차이생성 자체를 그 기저에 깔고 있어야하므로, 즉 유기체로 전환=생명이어야 함으로. 생명은 꽃처럼 피어나누것이지 조립된 것은 아니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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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한의 존재를 전제하면 안되고, 침묵하며 믿어야 된다. 믿음은 이유없는 행위이다. 그리고 유한한 논리세계/인간에게 무한은 말할 수 없는거니까. 몇몇 진보적 석학/운동가들이 윤리와 종교에 대한 긍정적 이야기를 하는건 이런 존재론적 깨달음에 닿아있는 건 아닐까! 무한자 앞에서 한낱 유한자로서의, 그 한 양태로서의 ... 등등)

모르는 것에 침묵하고, ‘영리함이라는 불모의 고원에 머물지 말고, 어리석음이라는 녹색의 계곡으로 나려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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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이 못한걸 ‘어리석은’트럼프가 한다면 그가 비트겐슈타인의 금언처럼 행동했기 때문일거다. 부지런히 일하고, 트윗도 치고 ...

[양상훈 칼럼] 역사에 한국민은 '전략적 바보'로 기록될까 - https://goo.gl/oYc4e4 
https://goo.gl/idzGHg 

그렇다면 우리도 ...
지겨운 위협과 공포, 전략과 전술 또는 방향과 역할이라 치장된 잔머리/영리함/정치적임(정치공학적)에서 벗어나 결과를 보기위해 일을 해야할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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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런_몬탁 <신체, 대중들 , 역량 - 스피노자와 그의 동시대인들>
2019년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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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능력의 발견은 배치를 바꿀 때, 다른 것과 새로운 마주침을 할 때, 새롭게 접속할 때이다. "언어가 신체들을 움직이게 하는 능력" - 비물체적 변환, 전략은 이런 것이다. 힘의 관계를 바꿔 사물의 속성(능력)을 바꾸는/드러내는 ...

2019/06/17 08:44 2019/06/17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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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코너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몇개 코너 중 두 곳의 필자가 역사학자이다.

http://m.hani.co.kr/arti/opinion/column/826178.html

“새로 보거나 들은 바를 많은 사람에게, 큰 시차 없이, 균일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순식간에 다량의 문서를 찍어낼 수 있는 인쇄술”이 “국가를 동시적 정보 공동체로 만들었다.”

이 공동체는 자칫 나치독일과 같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인터넷이 나온 후 많은 사람이 우려보다는 기대를 가지고 환호작약한 듯하다. 개인 매체(미디어)와 독립언론사에 대한 기대이다. 

10여년 전부터 신문(매스미디어)이 인터넷을 견제할 필요성이 조금씩 커지고 있다 생각한다. 사업적인 견제를 넘어 저널리즘(계몽)이란 역사적 형성물 차원에서.

인터넷에서 동시적 정보 공동체인 국가는 난망이다. 디지털격차란 말을 봐도 그렇다. SNS, 그 이전의 카페 등은 (특정한) 정서적 결사체인 Peer 공동체 수준까지 내려가고, 중세의 지역대신, 감각(감정, 지각)의 공동체를 만들고 (국민) 국가라는 허약한 근대적 공동체는 쪼개질 수 있다고, 그래서 다른 종이 될 수 있다고 -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정치가 아닌 다른 차원에서) 민주화일 수 있다. 

거름종이가 없는 인터넷은 미세한 차이들을 부각하고, 더 선정적으로(선명하게) 해야 사람을 끌어모을 수 있다. 개인차원, 그것을 밥벌이로 하는 이는 더 그런 유혹에 빠지기 쉬울 게다. 가짜뉴스는 누구나(언론사도)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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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언젠가 국가는 민주성도 잃고, 공동체도 잃을 수 있다. 민주적 정보공동체가 되기 위해선 두 ‘포스의 밸런스’가 필요하다. 각자의 갈 길을 갔으면 좋겠다. 이 둘의 역할이 다른 것 아닐까 생각한다. 

신문, TV가를 인터넷화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다. 지금까지 저널리즘이 해왔던, 그 역사성 위에서 현재의 기술을 사용하길 바란다. TV의 드라마, 예능, 모두 그렇다. 밥벌이, 돈벌이가 주도하는 선정적인 ‘겁쟁이 게임’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새벽에 일어나 신문의 두 기사를 보며 든 생각이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merica/8260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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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세분화는 세상을 민주화시킬 수 있지만, 그 아래 돈벌이만 있고 윤리적 기준(규범)이 없다면 세상은 다른 종간의 전쟁에 빠진다. 영국 내전 속에 살았던 홉스가 발견한 진실이다. 

저널리즘=계몽=규범과 인터넷=감각=민주화의 역할분담이 필요한 이유다. 규범은 도덕책에 있지않고 이야기로, 느낌으로 전달된다. 짤방이 아닌 긴 서사로. 계몽보다 측은지심의 강화가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인터넷 시대, 저널리즘(매스미디어, 텔레비전)의 가장 큰 도전은 뉴스가 아닌, 드라마(이야기)라 생각한다. 정보의 공동체가 아닌 정서의 공동체가 기본이다. 

드라마를 그렇게 좋아했다던 분의 일탈은 뭘까는 뒤로하고. 그 일탈을 모르는체 눈 감았던 저널리즘도 뒤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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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슈페어의 최후진술…

“히틀러 정권은 현대 과학기술 위에 세워진 산업국가 최초의 독재정권이었다. 그 정권은 완벽한 수준으로 기술적인 도구를 이용하여 국민을 지배했다. 라디오와 대중 연설을 포함하는 기술적 도구에 의해 8000만에 달하는 독일국민들이 한 개인의 의도에 복속된 것이다. 전화와 텔레타이프,무선 통신은 최고 지도자의 명령이 하부 기관에 직통으로 전달되는 것이 가능하게 했고, 하부 기관들은 그 권위에 복종해 비판 없이 명령을 수행했다. 이리하여 많은 정부기관들과 군사조직은 사악한 명령을 직접적으로 전달받았다. 과학기술의 도구는 시민의 근황을 밀착해 살피는 것을 가능하게 했고, 범죄 조직의 운용이 극비리에 진행되는 것 역시 도왔다. 외부에서 보면, 국가 조직이 전화선의 케이블 속에 어지러이 뒤얽혀 있는 듯 하지만, 바로 그 전화선을 통해 독재자의 의지가 직접적으로 전해졌던 것이다. 과거의 독재자는 그를 둘러싼 지도부 인사들의 지혜로운 도움을 필요로 했습니다. 따라서, 정치인들에게 독립적인 사고와 행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현대의 독재정권은 조력자 없이도 유지될 수 있다. 통신 기술 하나로 하급 지도부들을 기계처럼 부릴 수 있다. 이리하여 명령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계층이 생겨난 것입니다.”



- 알베르트 슈페어 – 히틀러의 건축가이자 전시 나치독일 군수장관…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 10점
알베르트 슈페어 지음, 김기영 옮김/마티


2018/01/04 08:00 2018/01/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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