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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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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린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간다!>에 대한  update. 왜,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가느냐! 배치와 순서를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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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는 울덴부르크에게 이렇게 쓴다.

"청컨대 실체와 우유적 속성에 대해 제가 내린 정의에 주의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 정의로부터 저의 모든 증명이 도출됩니다. 실제로 저는 실체를 자신에 의해서, 그리고 자신 안에서 생각되는 것으로서, 즉 그것의 개념이 다른 어떤 것의 개념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서 이해하고, 변용(modificationem) 또는 우유적 속성(accidentia, 偶有的 屬性)은 다른 것 안에 존재하고 그 다른 것에 의해 생각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점은 명백합니다.

첫째, 실체는 본성상 자신의 우유적 속성에 앞섭니다. 우유적 속성들은 실체 없이는 현존할 수도 없고 생각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실체 안에, 즉 지성 밖에는 실체들의 우유적 속성들과 우유적 속성들 외에  아무것도 주어진 것이 없습니다. 주어진 모든 것은 자신에 의해서 생각되거나 아니면 다른 것에 의해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의 개념은 다른 것의 개념을 포함하거나 아니면 포함하지 않습니다.

셋째, 다른 속성들을 가진 사물들(실체들)은 서로 간에 아무 공통점도 없습니다. 실제로 저는 속성을 그 개념이 다른 것의 개념을 포함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했습니다. 

끝으로 넷째, 서로 간에 아무 공통점도 없는 두 사물 중 하나는 다른 것의 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결과는 원인과 공통된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는 무(無)에서 자기 존재의 모든 것을 도출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친애하는 선생님, 인간들은 창조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발생된다(generari)는 것, 그리고 그들의 육체는 비록 전에는 다른 형태였을지라도 이미 현존했었다는 점을 부디 고찰하시기 바랍니다." (pp. 25~27)

실체와 우유(우연?, 필연성이 결여된, 어떤 것의 본성이 아닌)적 속성의 관계

1. 실체의 우유적 속성에 대한 선차성
2. 세계는 실체와 그 실체의 표현(우유적 속성, 변용)만으로 현존한다.
3. 다른 속성을 가진 사물들 간의 배제성(?) - distinct : 

cf. 라이프니츠는 이런 원리(정의) 때문에 모든 (논리적) 사건들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는 모나드를 상정한다. 두 실체간의 인과성은 없고, 초월자인 신에 의한 예정조화된(충족이유율을 갖는?) 세계가 있다. 

4. 원인과 결과는 공통된 속성을 전제하는 것에서 무에서의 창조를 거부하고, 내재적 발생을 주장한다.

이것의 순서를 논리적으로 하면, 세계는 실체와 그 실체의 표현만으로 현존한다(2). 이건 다분히 직관적(경험적)이다. 그리고 실체의 선차성(1), 속성이 다르다는 것의 의미인 distinct(공통점의 부재, 상호 배제성)(3), 마지막으로 그 결과 내재적 발생(4)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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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관계와 상관관계

(사회과학은) 인과관계에 대한 집착, 절대 원인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내적인) 상관관계에 집중한다. 세계(실체)는 우유적 속성, 변용, 표현으로만 현존한다. 관계의 변화, 강도와 운동 속도의 변화 속에서 그것은 무한한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물(an object)이 다른 어떤 사물을 만날 때, 사건의 조합(combination)이 된다면, 만난 사물들이 바뀌었거나, 만나는 순서(permutation)가 바뀌면서 처음의 어떤 사물 속에 있던 성질이 드러난다."    출처: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 아마도 .. 

현대의 사회과학은 상관관계에 대한 파악, 확률적 또는 미분적 파악이다. 자연과학적 인과관
계는 (실험실에서) 정해진 사건의 조합이다. 하지만 자연(세계) 안에서는 우발성(contingency, eventuality)을 막을 수 없다. 심지어는 잘 통제된 실험실에서도 조차.

사물이 가진 능력의 발휘는 만나는 사람(회사,사물)들이 바뀌었거나, 만나는 순서가 바뀔 때이다. (경영학에서 어떤 성공) 법칙을 찾는다면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최적의 조합을 만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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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노자 존재론의 적용, 경제학의 경우

경제학(어떤 학이든)의 대상은 경제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어떤 경제적 현상을 설명하면서 예측하는 것이다.

주류경제학(미시/거시경제학)은 경제모형(이론적 이상형)을 만들어 설명을 시작한다.

1. 경제현상에서 나오는(표현되는) 다양한 변수들을 수집한다.
2. 많은 변수 중에 몇 개만을 골라 해당 변수들 간의 관계(상관관계)를 가정을 세워 분석하고, 이를 논리적(수학적모델)으로 증명한다. 주로 미분한다. 주류경제학에서는 이것을 많은 경우 '한계혁명'이라는 말로 표현한다/하는 것 같다.
3. 증명된 모델을 적용하여 예측/추론한다.

2번의 과정이 중요한데, 수 많은 변수들 중 (그 모형에서 중요시하는) 몇 개의 변수만 변화를 허용하고, 나머지는 고정된 것처럼 가정한다. 중요변수는 수요량과 가격(수요곡선), 공급량과 가격(공급곡선), 효용과 가격/소비량(한계효용), 가격변화와 두 재화의 소비량 변화의 관계(대체재, 보완재) 등 ... 

우리는 어떤 측면에서 경제현상을 [제한적이지만 - 전체 변수를 상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스피노자(들뢰즈)적인, 또는 엠페도클레스적인 강도/밀도적 관계로 보는 것일 수 있다. 강도/밀도는 미분식으로 나타난다.

(전체를 생각해야한다면 라이프니츠의 모나드처럼 생각해야할 것 같다. 모나드는 세계 전체의 내용을 그 안에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각 모나드는 특정한 부분(demension)에 빛을 받는, 그 부분의 강도와 밀도가 빛나기 때문에 다르게 나타난다. 하지만 모든 것은 모나드 안에 논리적 술어(?)로 내재한다. 그 무한을 측량할 수 있다면 우린 세계 전체를 계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라플라스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들뢰즈 - “라이프니츠는 각각의 모나드는 세계를 표현하고 모나드들 내에 내속하는 술어들의 계열로서 존재한다고 보았다.”)

(잘모르나 추측컨데) 경제학의 모든 법칙은 강도적 관계로 치환해 생각해볼 수 있다. 무수히 많은 차원 중 어떤 한 차원(dimension)에서 봤을 때의 관계이다. 모형상에 상정된 둘(두 개의 변수)을 봤을 때는 그럴듯 하지만 다른 변수들을 모두를 풀어놓으면 2007년 금융위기처럼 이상한(우발적인) 사건들이 일어난다.

세계는 무한하기에 ... 경제학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석학들도 위기를 예측할 수 없다. 우발성은 (장기적으로) 새로운 체재를 발생시킨다/시킬 수 있다. '경제법칙'이지만 그 법칙이 보여주는 것은 특정 변수들 간의 강도적 관계인 상관관계이지 인과적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등등 .... 

연구와 모델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그 한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한계는 나쁜(?) 것이 아니다. 다른 법칙의 출현 가능성, 다른 전략의 가능성, 물질적으로 결정되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한 비물질적, 또는 물질적 변환(trans-formation) 가능성 등의 근거가 된다. 이론(형이상학적인 존재론, 또는 철학)은 이런 변화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미분은 스피노자 시대, 17세기에 만들어졌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를 전통적인(종교적인) 관점에서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둘의 관계가 궁금하다면, 아래 책이 재미있다.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 10점
매튜 스튜어트 지음, 석기용 옮김/교양인
2019/10/08 10:05 2019/10/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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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사람들이 어떤 은혜를 베푸는 것보다 예절을 갖춤으로써 가난한 사람들과 친해질 수 있다. 생활상태의 차이를 드러내는 은혜는 받는 사람에게 어떤 보이지 않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만, 소박한 예절은 못 견딜 정도로 매혹적이 된다. 상냥함은 인간을 도취시키며 설사 세련이 덜 된 점도 반드시 불쾌하지만은 않다.  토크빌은 19세기 미국의 부유한 시민들은 예절을 알고 가난한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에게 말을 걸고 예의를 지킨다고 이야기 한다.(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II, 674)

이것은 19세기 이야기이고 지금의 미국은 그렇지않다. 박홍규 교수는 토크빌의 이야기를 분석하면서 이점을 계속 지적한다. (박홍규,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 242-256)


하지만 프랑스의 (구)귀족들은 19세기 미국의 부유한 사람들과 같지 못함을 지적한다. '그들(귀족들)과 평등해진 모든 사람을 억압자로 간주하게 되며, 그 억압자들의 운명은 아무런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들과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은 갖지 않는다.' (토크빌, 670)
 


토크빌은 (프랑스 혁명 이전의) 귀족사회에서는 조상 숭배와 자녀 사랑을 낳는 가족적 결합, 동향적 결합, 계급적 결합, 은혜-종속의 봉건적 결합으로 인해 '거의 언제나 자기 밖의 어떤 대상에 집착'하게 된다고 이야기 한다. 그리고 민주사회에서 이런 귀족제적 성격이 무너져내리고, 개인주의적으로 변하고, 평등의 추구는 '민주적 전제정'이 될 수 있다. (박홍규, 224)

민주적 전제정에서는 "국민의 동의 없이 국민의 이름으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권자가 전체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된다. "자기 자신에게만 집착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개인들에게 민주주의적 전제군주는 "물질적 향유를 만족시켜주고 그들의 운명을 지켜주는 거대하고 보호자적인 권력"으로 등장하게 된다. 민주주의적 전제정의 출현은 민주주의 시대에 개인들이 교육과 자유라는 습속에 적응하지 못한 상황에서 물질적 쾌락의 욕구가 먼저 성장했기 때문이다. 이 물질적 쾌락에 대한 강한 욕구는 각자의 사적인 재산과 공공의 번영과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한 결과다. (홍태영, 몽테스키외 & 토크빌 -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 살아가기, 138)

(계급, 계층으로 분열된 사회에서) 귀족, 지도자, 부자에 대한 존경은 매혹, 매력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우리의 부자들에겐 이런 매력(예절)도 없고 짐승같은 힘의 논리, 갑을 관계로 가득 차있다. 세월호 보상에 대한 정권과 고위층의 행태는 동정심도 예절도 없어보이고, 땅콩회항 사건 등도 그렇다.

노동개혁을 이야기하면서 '가족(부모세대와 자식세대)' 간의 상호분열성을 확대하며, 생계(경제)와 (북한으로부터의) 안전에만 집중하게 하는 정권을 볼 때, 토크빌이 우려했던 민주주의적 전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정권에 대한 지지율은 상승한다.

우리사회가 형식적으로 민주주의적 제도가 작동하고 있다면, 내용적으로는 '귀족정'이거나 '전제정'인 듯 하다.  그들에겐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도 없고, '어떤 사람에게도 빚진 것이 없으며 또 아무 것도 기대하는 바도 없다'(토크빌, 669)는 '한국적/자수성가형' 개인주의가 만연한 것은 아닌지! 역설적이게도 이런 것을 '천민적'이라고 하나보다!

'노동개혁'을 하면 법인세율을 낮추고, 기업/국민 돈으로 정부가 '실업급여'를 올려주겠다는 이상한 주장도, 아버지의 급여를 깍아 자식에게 주겠다는 조삼모사도, 2년 계약직을 4년으로 늘리면 노동시장이 안정화된다는 이야기까지. 노사정위원회를 보면 정부는 선량한 균형자를 넘어 국민들을 (경제적) 공포에 몰아넣고 시장 침탈적이다. 이들이 부자에게 기울어져 있도록 놔두는 것보다 차라리 시장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자유'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며 왜 우리는 이들에게만은 굴종적일까? 시장을 이야기하며 왜 국가의 개입에 너그러울까? 왜 자유를 주장하는 광범위한 결사를 만들어 이들을 견제하지 못할까?  왜 우파적 자유주의를 무기로 민주적 전제정에 대항하지 못하는가? 좌파적 국가 개입주의에 대한 믿음 때문일까? 우린 자유주의 내에 담겨있는 '진보성'을 다시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모두를 넘어서려면 '물질적 쾌락의 욕구'(경제 발전)를 앞세워 국민을 닦달(das Gestell)
하는 전제군주(국가, 관료,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제한하고 자유의 습속을 만들어야 한다.

미국의 민주주의 2-10점
A. 토크빌 지음, 박지동.임효선 옮김/한길사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8점
박홍규 지음/글항아리
박홍규 교수의 주장이 강해 다른 글들과 비교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주장이 강한만큼 힘이 있고, 논지 파악을 명확하게 해주는 잇점이 있다.

몽테스키외 & 토크빌 :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 살기-10점
홍태영 지음/김영사
100년의 격차가 있지만 몽테스키외(1689년 1월 18일 ~ 1755년 2월 10일)는 홉스(1588년 4월 5일 - 1679년 12월 4일)보다 경험적이다. 이 말은 홉스가 '합리적'이라는 말이다. 정치이론에서 몽테스키외, 토크빌로 이어지는 프랑스의 전통은 홉스, 로크 등으로 이어지는 사회계약론/자연권에 기반한 전통과 다른 길을 가는 듯 하다.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이란 공식이 적용되지않는다.

2015/09/13 22:34 2015/09/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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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12년 5월말에서 6월초에 썼다. 함께 동호회(?) 활동을 하는 분들끼리 모여 플랫폼 관련 책을 내자고하여 차일피일 미루다 쓰게되었다. 그런데 처음에는 '어투'(경어체)가 전체 쓰여진 글과 같지 않다고 퇴짜를 맞아고, 어투를 고친 후에는 원고가 너무 늦었다는 메일을 받았다. 그때 엮여서 나온 책이 <플랫폼을 말하다>이다. 나는 이책 제일 뒤에 운영위원의 한명으로 이름만 올렸다.
 
지금 살펴보니 아래 글과 그책의 편집방향이 많이 달라보인다. 우리 이야기는 최신의 것도, 또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내용도 아닌듯하다. 사람들의 눈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old'하게 보일 수 있지만, 우리도 '노구'를 이끌고 분투하고 있다는 것, 정말이지 어렵게 한걸음씩 앞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글을 쓸 때가  pooq 서비스(www.pooq.co.kr)를 만들고 있을 때니 10개월이 가까이 되었다. 우린 여전히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길을 가고 있다.

글의 제목과 달리 우린 빠른 기동력을 무기로 한 몽골의 기마병이 아닌듯 하다. 전쟁터에 내몰린 농사꾼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을 만난 우리는 말 잘타는 유목민이 되었으면하고 꿈을 꾼다.

어투를 바꾸며 추가된 내용들이 있다. 제일 마지막 <콘텐츠 연합 플랫폼>에서만 바뀐 내용 중 일부를 more/less 버튼으로 적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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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 - 플랫폼
제국들을 가로지르는 유목적 삶에 대한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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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2005년부터 진행된 SBS의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이 변화된 뉴미디어 환경에 대한 이해에서 나온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산물이었다면, 현재 진행 중인 “콘텐츠 연합 플랫폼”은 이를 실천하면서 얻은 경험적 교훈의 결과입니다.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저는 2005, 2006년 SBSi에서 뉴미디어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이하 ‘미디어2.0’이라고 함)이라는 아주 재미없는 책을 썼습니다. “SBS 디지털 콘텐츠 전략”에 관한 책이지만 지금의 주제인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책에서는 ‘플랫폼의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먼저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OSP, Online Service Provider)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뉴스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된 포털, 디지털 포획물들의 저장고인 블로그나 카페, 가장 일반화된 디지털 멀티미디어 콘텐츠 유통양식인 팟캐스팅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때는 동영상 플랫폼, 웹TV, 인터넷TV란 이름으로 곰 TV, 판도라TV, 엠엔캐스트(www.mncast.com), 다모임 (www.damoim.net) 등이 연일 화제였습니다. 2006. 12월 타임(Time)이 ‘올해 최고의 발명품’으로 유튜브를 선정했을 때, 저는 유튜브와 동영상 플랫폼들을 보며 ‘혼자 살아남기 어려운 최고의 발명품’으로 인수나 합병 이외에 ‘독자적 생존 모델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썼습니다. 왜냐하면 키치문화와 B급 콘텐츠로서 한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기술주의와 시장주의로 무장한 통신 사업자들, 구체적으로는 IPTV 사업자들이 미디어 세계에 들어와 일을 막 시작하고 있을 때이기도 했습니다. KT가 올리브나인, 싸이더스FNH의 지분을 인수하고 영화와 드라마 펀드를 만들고 영화배급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SKT도 IHQ, YTN미디어, 서울음반의 지분을 인수하고 음악과 영상펀드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저는 ‘통신사들은 미디어사로 변신을 하지 못하고 흉내를 내고 있다. 전통 미디어의 기반이 산업적이기 전에 문화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콘텐츠산업을 돈으로 어떻게 해보려는 이런 시도들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미키 마우스가 된 스티브 잡스와 팟캐스팅’이란 제목으로 가전사들의 ‘기기+콘텐츠’ 또는 ‘기기-미디어 되기’ 현상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디지털 기기와 관련된 전체적인 흐름의 배경에는 콘텐츠의 유통구조가 다양화되면서 이용자와 직접 접촉하는 기기를 장악하는 것이 미래에는 PC에서 OS(operating system)의 지배력을 확보하는 것보다 중요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유비쿼터스 컴퓨팅(Ubiquitous Computing), 또는 유틸리티 컴퓨팅(Utility Computing)에 의해 네트워크가 지능화되면 사람들은 디지털 장신구이거나 디지털 가구인 휴대폰이나 스마트TV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와 콘텐츠에 더욱 관심을 집중할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가 콘텐츠 유통에 있어서 전국적인 극장 체인, 방송사, 통신사, 월마트나 테스코 같은 대규모 유통점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기 때문에 콘텐츠가 스스로 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디지털 세계가 되면서 처음으로 콘텐츠가 방송, 통신, 웹, 기기 등의 다른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 플랫폼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고 이 영역이 디지털 콘텐츠 자체가 곧 바로 플랫폼이 될 수 있는 ‘Digital Content = Platform’ 영역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의 전제는 웹과 같이 개방된 플랫폼, 개방된 통신망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디지털 콘텐츠를 어떤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든, 통신사업자든, 가전 기기든 상관없이 무엇을 통해서도 볼 수 있어야만 이런 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콘텐츠가 스스로 플랫폼이 될 수 있는 것은 예전의 콘텐츠들이 가지고 있던 형식들, 물질적이고 장인적이며 연속적인 아날로그적 속성과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필요했던 하나의 틀에서 벗어나 콘텐츠가 디지털화되면서 하나의 ‘수학적 알고리즘 덩어리-흐름’으로 변형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었습니다.

<미디어2.0>은 뉴미디어 환경에서 전략적 다양성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통신사, 가전사, 그리고 포털과 같은 온라인 서비스 사업자들 사이에서 전통 미디어 사업자, 즉 콘텐츠 제작자의 입장도 있음을 주장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 했던 대부분은 맞았지만 제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틀린 것 같습니다. 콘텐츠 사업자의 미래, SBS의 전략에 대한 부분입니다.

SBSi의 3가지 길

SBS,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의 성과와 한계


<SBSi의 미래: 3가지 길>은  책을 쓰기 바로 전 해인 2006. 11월 <대한민국 동영상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던 내용 중 일부입니다. 인터넷 기반 기술회사가 되려고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겨우 인터넷 기반 뉴미디어 회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책에서는 당연히 될 수 있다고 주장을 했겠죠.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SBSi는 2009. 9월 유통 계열사와 합쳐져 SBS콘텐츠허브가 되었고, 그때부터 기술회사라기보다는 더욱 콘텐츠 유통회사의 성격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이런 일 이전에 변화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지만 ‘우리 스스로 그런 선택을 안 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보면 핵심역량의 부족이 맞을 수도 있는데, 그것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변하려는 의지가 부족했고, 따라서 진화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베르그송(Henri -Louis Bergson)의 말에 따르자면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진화도 없습니다.

“통신-방송되기는 쉽게 통신사의 DNA 일부가 바뀌어 새로운 형질을 갖게 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통신사업자들이 스스로 방송과 콘텐츠 산업의 ‘신체나 행동의 코드를 읽어내고 그것을 이용해 그것과 섞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보다는 손쉽게 이미지를 사들이고 있는 현상을 흉내라고 부른다.” <미디어2.0>에서 통신사들을 보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딱 저희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하는 척’은 하면서 진짜 실행을 못했고, 변하지 못했으니까요. 저는 ‘하는 척’의 전위였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이것을 멋있게 ‘도상훈련’만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좀 더 그럴듯한 핑계거리를 찾았습니다. 책에서는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 모델>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

 
‘디지털 콘텐츠 유통시장이 커질수록 양질의 콘텐츠를 대량으로 제작해내는 기업의 경우 인터넷 플랫폼의 특성을 이용하여 이용자에게 직접 판매하거나 플랫폼 기업과 직접 거래가 시작되기 때문에 에이전트(agent)의 필요성이 낮아지고 스스로 콘텐츠 애그리게이터(content ag-gregator)가 된다. 애그리게이터 모델의 핵심은 이에 대한 대규모의 투자나 기술적 능력보다도 콘텐츠의 집적과 집중을 통해 단기간 내에 규모의 경제(economics of scale)의 달성이다. 따라서 방송 콘텐츠를 웹에서 서비스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SBSi와 같은 회사는 사업적 기반이 확장되면서 통신사와 같은 자본, 기술 중심의 회사나 국내 최고 규모의 영화제작사보다도 더 쉽고 자연스럽게 애그리게이터 모델로 경쟁력을 가지고 진화해 나갈 수 있다. 이런 효율성과 규모의 경제는 영화, 음악, 해외드라마, 케이블 방송 등 다른 콘텐츠까지 확대할 수 있는 서비스 구조, 즉 범위의 경제(economics of scope)를 만들어 낸다’

 하지만 항상 통제가 안 되는 변수가 있기 마련입니다. (콘텐츠연합플랫폼을 하는 지금도 그렇습니다. 통제안되는 것을 통제하려는 발버둥보다 실력을 올리는 것이 더 나아보입니다. 실력이 올라가는 것이 통제력을 강화하는 지름길이니까요. 하지만  항상 격정에 휩싸입니다. 이러저러한 것(타사와의 계약 등등)을 막아야 하는데! 최선을 다하고 그대로 안되어도 '아 우리의 실력이 이정도구나'가 타인을 미워하는 것보다 났습니다.)


2005, 2006년은 우리나라에서 웹하드와 IPTV가 막 시작될 때입니다. 이것은 콘텐츠의 집적과 집중이 단기간 내에 방송사의 사이트(www.sbs.co.kr)에서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 그 시점은 국내에서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고 한류의 확산으로 해외시장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굳이 전략이 없더라도 시장의 트랜드만을 따라가도 성장이 보장되는 시기를 만난 것입니다. 하지만 웹하드와 동영상 포털들에 의해 SBS사이트의 성장 가능성, 규모의 경제에 다다를 수 있는 잠재역량은 갉아먹히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기술회사로, 자체적인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회사로 가기 위해 필요한 내적 역량들이 비용(cost)으로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자기 방어적 망상일까요? 이렇게 피하고 싶어했던 길로 자기도 모르게 들어가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해적과 착시효과
 

 
통신사의 IPTV와 모바일 서비스(June이나 Fimm)에서 빠르게 콘텐츠가 집중, 집적되었고, PC 웹에서는 무섭게 번져나간 웹하드에서 모든 종류의 디지털 콘텐츠가 ‘근(종량제)’으로 팔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웹하드에 대한 법적 대응과 함께 합법적 유통을 시작하기 바로 전인2009. 8월에 지상파 및 관련사가 모여 콘팅(www.conting.co.kr)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콘팅은 한국판 훌루모델을 만들기 위해 시작했는데 용두사미가 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미국과 다른 한국 방송사들의 뉴미디어 경험과 역사가 있습니다. 콘팅의 성과는 지상파 콘텐츠 다운로드 판매 매출 비중이 가장 크다는 계량적 지표보다도 지상파 콘텐츠의 다운로드 서비스 가격 기준이 되었다는 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콘팅을 준비하면서 지상파 온라인 서비스를 표준화하여 API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웹하드를 합법화는 방안과 N스크린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이야기되었지만 아직 때가 이른 것이었습니다.
 
훌루 like한 서비스 - 콘팅?
 

통신사와 웹하드 등으로 콘텐츠가 집중되고, SBS 콘텐츠의 외부유통이 확대되었습니다. SBS 자체적으로 규모의 경제나 범위의 경제에 도달하고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좀 더 어렵게 되어갔습니다. SBS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여럿 중 하나(one of them)’일 뿐이었습니다. 서비스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투자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2009년부터 지상파 콘텐츠들을 상호 개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지상파 연합 컨넥티드-TV 플랫폼>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고, 2010년 SBS TV포털 전략을 수행하면서 지상파 공동으로 IPTV 표준 애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폐쇄적인 IPTV와 SBS 웹서비스 시스템을 결합시켜 반-개방 플랫폼(Semi-Open Platform)을 만들기 위해 방송협회 내에 "TV포털 분과"를 설치했습니다.
    <tv포털 분과="">
TV포털 모델


콘텐츠 연합 플랫폼


<미디어2.0>에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고 모든 콘텐츠에 대한 애그리게이터, 디스트리뷰터가 되겠다는 이야기는 ‘수사적’ 희망이었습니다. SBS 콘텐츠를 뉴미디어 환경에서 직접 서비스 하겠다는 생각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렇게 된 후라면 그런 희망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었겠지요.
 
지금 보면 통신사, 포털 등과의 관계에서 ‘플랫폼 인 플랫폼(Platform In Platform)’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타 플랫폼과 협력, 활용하여 그것과 SBS 사이트의 웹 자원을 통합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런 목표가 구체화된 것이 “SBS TV포털 전략”입니다. 이 전략의 특별한 점은 특정 회사에 서비스나 가전 기기에 한정되지 않고 사용자 입장에서 서비스를 합쳐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한번 결제로 모든 플랫폼에서 사용(One Pay, Multi Device & Platform)’하도록 하는데 그 중간의 환전소, 사용자에 대한 인증기관 역할을 해보겠다는 전략이었습니다. 아래 그림을 보면 “사업자와 플랫폼은 달라도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내용이 보입니다. 하지만 혼자서 통신사와 힘을 겨루는 것은 힘들었고, 그런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이 앞에서 이야기한 <지상파 TV포털 표준 애플리케이션>입니다.

플랫폼이 꼭 물리적인 시스템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용자든, 파트너든 우리가 만든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플랫폼의 힘은 전투의 규칙과 그곳에 주거하는 시민들이 따를 법을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이것을 저희는 콘텐츠 리더십(contents leader-ship)이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저희 입장에서는 콘텐츠가 여러 강력한 제국들로 이루어진 플랫폼을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사용자 환경에서 플랫폼들은 파편화되었고, 이런 것이 더욱 심화될 것 같습니다. 인터넷은 망 중립성 논의를 볼 때 더 이상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여러 플랫폼으로 파편화되고, 네트워크의 개방성이 제한되려는 상황에서 통신사나 포털, 가전사가 아닌 콘텐츠 사업자에게는 이것을 파편화와 폐쇄를 막으려는 단일한 전략적인 목표 하에서 체결된 계약들이 아주 중요한 플랫폼의 시작일 수도 있습니다. 전략은 콘텐츠 시장, 뉴미디어 서비스에서의 거버넌스(governance)를 가지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답변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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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N에서 N스토어를 준비하는 분을 만났습니다. N스토어는 PC, 스마트폰에서 네이버 (www.naver.com) 회원이 전자책, 음악, 동영상 등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그분이 저희 이야기를 듣더니 ‘제휴가 되면 (네이버에서 지상파 콘텐츠를 사용하던) 네이버 회원도 연합플랫폼의 사이트인 POOQ(www.pooq.co.kr)에 로그인하여 똑 같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겠군요. N스크린 서비스만이 아닌 N스크린의 모든 윈도우 통합까지 하려는 것이군요’라고 말씀했습니다. ‘윈도우 통합’이 무엇인지를 몰랐지만 이런 것이 콘텐츠 연합 플랫폼의 목표입니다. 또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의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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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들이 사용자들과 함께 플랫폼의 제국들을 가로지는 자유로운 상황을 만들 수 있다면 이것이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입니다. 하지만 저희 경험에 따르면 여러 제국들을 혼자 가로지르는 것은 위험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여행을 위해2010년 말부터 지상파 방송사들이 모여 콘텐츠 연합 플랫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최근 SBS는 MBC와 함께 <콘텐츠연합플랫폼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미 충분한 도상훈련을 했습니다. 시작은 작지만 생각은 크고 움직임은 빠르게(Start Small, Think Big, Move Fast)! “콘텐츠 연합 플랫폼”의 지침입니다. 저희는 타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 독자 플랫폼을 구축 것, 또 연합하는 것을 가리지 않습니다. 전략적 목표는 제국의 병사들이 쌓은 성를 가로질러 초원을 마음껏 달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SBS는 이 길을 함께 갈 MBC란 ‘좋은 친구’를 만난 것입니다. 여행 동안 더 많은 새로운 친구를 만날 꿈으로 벌써 마음이 설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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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을 말하다 V 1.5 - 10점
플랫폼전문가그룹 지음/클라우드북스
2013/02/24 02:55 2013/02/24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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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을 썼던 1998년 5월과 지금, 그 사이에 십년이 넘는 세월이 있다. 2008년 말 정리가 마지막이다. 몸에 붙어있다 떨어져나간 비늘처럼 끄적거리던 글들의 묶음이 있다. 메고 다니는 가방 한구석에도, 컴퓨터 옆 작은 상자 안에도 있다. 상자 안의 종이는 편견이 없다. 포스트잇에서, A4지, 신문 조가리, 회사노트까지 각양각색이다.

언제부턴가 소리로 녹음되어 몇몇은 컴퓨터 안에 찌부러져 집(zip)을 마련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씌어졌다 어떻게 기를 쓰고 지메일 노트에 안착한 것들도 있다. 종이의 물질성을 잃자 더 흩어져 버렸다. 또 더 정리도 안한다. 마음 뿐이다.

이십대 때, 언젠가부터 형이 더이상 글을 안쓰는 것을 보면서 의아해 했었다. 왜 안쓸까? 지금 그 답을 안걸까? 모른다는 편이 맞을까? 형은 다시 펜을 들고 쓰고 있는 눈치다. 부럽지도 않다. '언제나 쓸 수 있어!' 이런 생각도 있다. 하지만 못쓴다. 안쓰는 것이 아니다. 관심사가 변했을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을 읽고 있다. <나에게 던진 질문> 전문이다.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을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독한 역경 속에서
발맞춰 걷기를 단념한 이들도 있으련만.
벗이 저지른 과오 중에
나로 인한 잘못은 없는 걸까?
함께 탄식하고,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으련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메말라버렸을까?
천년만년 번영을 기약하며
공공의 의무를 강조하는 동안,
단 일 분이면 충분한 순간의 눈물을
지나쳐버리진 않았는지?
다른 이의 소중한 노력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끝과 시작 - 10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문학과지성사

한 때, 몇번인가 시론(詩論) 같은 것을 쓰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때 정의한 시론이다. "존재와 당위 사이의 괴리 속에서 솟아난 비명"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다 내린 결론이다. 시를 못쓰는 것은 괴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괴리감 자체가 존재 속에 쪼아리를 튼 것이 아니었다고 해야할까? 의식화의 결과물이었을까? 아니다.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다. 눈 뜬 장님이다. "단 일 분이면 충분한 순간"의 주의(注意)도 없다. 그래서 공감이 없고, 시도 없다. (이런 생각과 함께 다른 존재의 지평 위에 서있다라는, 공감을 하라니까 분석하고 종합하려는 ... 젠장!)

감정도 없이, 판단을 한다며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한 말이나 늘어놓는 재주만 늘은 것은 아닌지. 도구적 이성이다. "냉혹한 세상을 탓"하며, 이것을 "함께 만들어야 함"을 잊은 것은 아닌지.

"시적 감정은 도구적 합리성을 압도하는 합리적 이성의 뿌리" 1996년에 쓴 글 조각이다. 다시 감정의 문제로 돌아왔다. 참다운 우정을, 투명한 사회를 원하다고!

요즘 관심사가 시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들게된 이유는 요즘 관심사 때문이다.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너무 단순하고 명확한 것은 아닐지라도 <같은 것을 봐야, 같은 것을 느낀다>다. 대충 내려놓은 결론이다.

인쇄술 이후로 매스미디어가 만들어 낸 세계가 편협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한 세계만 보여줘다지만 이것이 <공감의 세계>를 만든 것은 아닌지, 그리고 대중민주주의를. 근대(16,17세기~) 이후 감정, 공감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이런 맥락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관심사다. 역할이라기 보다는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사회적 효과가 맞겠다.

매스미디어가 만든 공감 위에 근대적 윤리와 인권같은 제도들이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인터넷이 만든 '다양성의 세계'와 매스미디어의 '한 세계'와의 관계가 관심사다. 일하면서 나온 주제다. 최근 발표자료, 회사 보고서를 찾아보니 2005년부터 시작했나보다. 2007년 이후 본격적으로 이와 관련된 책들만 편식(?!)하고 있다. (장르는 다양한데 모두 이런 문제틀에서 읽고 있다.)

1996년 처음 회사에 들어가면서 세운 목표가 하나 있었다. 일주일에 시집 한권 읽기. 책장에 쌓여있는 시집이 몇백권이 될까? 그런데 미디어에 대해 알겠다고 몇년간 던져놨던 시집을 최근 다시 들었다. 신형철의 산문집인 『느낌의 공동체』때문이다. 제목에서 느낌이 올 것이다. "공감"! 우리 정서의 다양성에 대한, 그 정서(감정)를,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를 소중히 여기며 갈고 닦은 시인들에 대한 평론집이다. 하지만 평론이 아니다. 그는 유리컵 따위를 소중히 여기는, 순간의 눈물을 흘리는 시인보다 더 섬세한 눈길을 가진듯 하다. 시에 대한 절실한 애정이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모국어에 대한 애정으로 쓴 시집이다. 결국 이런 신형철씨에게 낚여 다시 시집을 들었다.

느낌의 공동체 - 10점
신형철 지음/문학동네

인터넷과 시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지? 내 생각엔 정서(감정)의 다양성이다. 결국 이 정서 위에서 세계에 대한 시선의 다양성이 나온다. 이들의 단점이 무엇인줄 아는지? 그 독특성에서 나오는 불편함! 인터넷의 악플처럼 코드가 안맞는 시에 대한 악평이나 무시(안읽기)아닐까. 아니면 상대방에 대한 노골적 공격성! (인터넷도 시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정의 노골적 표현이 시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보통사람들은 감정을 통념에 맞춰 통제한다면 시인은 그렇게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것은 정서의 계발이나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좋으나 소그룹으로 무리져 공감(일반성의 세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시끄러운 인터넷은 천편일률 매스미디어와 다르다.

관심은 "인터넷/민주주의/세계의 다양성"과 "매스미디어/공감/현 사회(공동체)에 대한 보호(유지)"이다.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이런 접근이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분명히 말하건데 공감은 인터넷의 것이 아니다. 매스미디어에 속한다. 공통경험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 이에 대해서는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런 관심도 사실은 존재와 당위의 괴리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공장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아래 글이 1998년 5월 시론이라고 썼던 것이다. 시간은 얼굴을 붉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자기가 썼던 글들을 볼 때 말이다. 그래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블로그에도 아래 이야기했던 몇편의 시들이 올라와 있다.

요즘하는 메모들은 모두 정서, 공감, 감정과 관련된 미디어이다.

개인적 감정/심상이 사회적 사실이 될 때

김광기, <뒤르케임 경구의 재해석 "사회적 사실을 사물처럼 취급하라">를 읽으면서 해놓은 메모이다. 인터넷은 개인적 감정, 심상을 사회적 사실(표상)로 만들어 내는 가장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사회적 사실이 되는가? 그 구조를 알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감정을 6가지로 나눴다.(맞나 다시 확인해야 한다.) 지금은 수백가지의 감정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천가지의 공감'이 가능하고, 그래서 999개의 반감이 있을 수 있다. 모든 감정들이 역 대합실처럼 웅성대니 시끄럽다. 뒤르케임의 시민종교(공통된 윤리적, 정서적 기반) 때문에 한참 괜찮은 책을 찾다가 2주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뒤르케임이 쓴 '사회적 사실'이란 개념, 그것이 만들어지는 구조에 대한 생각이 훌륭하다. 몇년간 뭐라고 부를까 고민하던 것인데.

그렇다면 잠정적으로 나에게 미디어란 무엇일까? 공동체를 만드는 공감! TV, 신문 등의 대중매체가 근대 이후로 했던 일. 너무 많아진 사회적 사실들에 이들이 난감해 하고 있지만 ...

뒤르케임을 다시 생각한다 - 10점
한국사회이론학회 엮음/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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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은 1993년부터 최근까지 5년간 쓴 詩들이다. 나는 정확히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습작형태의 시들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93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쓴 시들일 것이다. 그때의 시들은 “이론적인 성급함”과 “현실적 절망감”을 “신념”이라는 이름 아래 극복하고자 했던 때인 것 같다.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나는 전에 썼던 시들을 “감정의 군더더기”로 몰아 태워버렸었던(「문학일기 2 -대학」) 시를 졸업하자마자 허겁지겁 달려들어 정리되지 않은 감정으로 쓰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해 7월 군입대전까지 계속되었다. 그것은 아직 익지않은 주워들은 사상들의 잔해였고, 생경한 구호였다. 그때 쓴 시들을 모아 나는 『최종심급』이라는 이름으로 제본을 했고 그안에 들어있는 시들이 「서울풍경」,「무쇠똥」등이다.

  그리고 나는 93년 7월 군에 입대를 하였고 “下級武將”으로서 군대생활을 하였다. 군생활을 하면서 쓴 시들은 “현실과 의지의 괴리에, 모순에 가득찬/나에 대한 불만”이 가득찬 시들이었다. 나의 삶이 “용기없고” “현세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고 생각하면서(「“무장무장” 투명한 사회4」), 이상적 사회(“투명한 사회”)에 대한 열망과 처에 있던 환경(“나는 군인이다”) 사이의 “실존적 간극”(「혁명적」)에 대한 것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대한 반성을 시도하면서 지난 날들을 넘어서려는 노력들을 했다(「넘어서」).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해명도 없이 “흐르는 시간에 모두 변해가는 시절”(「봄맞이」)이었고, 전국적인 마녀사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중세의 여름-1994년 한국」) 있었다. 이때 쓴 시들을 정리한 것이 『넘어서 - 투명한 사회』이다.

  나는 군생활을 경기도 전곡의 남계리와 장탄리 부근에서 했다. 그곳은 임진강 근처로 밤이면 안개가 무척 많이 끼었다. “임진강 자락 무럭무럭/안개만 피어난 장탄리”(「더딘 봄2-장탄리에서」)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날들을 보냈다. “내 지금 바라는 세상은 어디에, 도대체/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희망의 거처」)하는 懷疑의 물결과 함께 “살 길 찾아 앞으로 달려가다가도/너라면 그 소리 듣고 꿈쩍도 안할테냐?”(「자살바위1」)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 그래서 “언젠가는 부푼 가슴도 세월이 좀” 먹는 것이(「존재2」), 무서웠다(“세상 무서운 건 시간이더라”, 「존재1」). 그래도 “몹 쓸 내 젊음 때문/봄은 희망이 없어도 지독”했고(「지독한 봄」), 그래서 “희망은 영원하고 내가 먼저 죽을”(「희망」, ‘95.7.19) 거라고 생각했다. 이 시들을 모은 것이 『더딘 봄 -장탄리 안개』이다.

  나는 언제나 시간이 흐르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언제나 나의 시들은 여기에 기반하는 것 같다. “이상적 사회”와 “현실”간의 괴리감이 나의 시의 근본적인 힘이다. 그 괴리감의 사이에는 언제나 어쩔 줄 몰라 하며 서서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바라보는 내가 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한다. “입에 발린 말들과 이젠 헤어”져야 하고(「불임의 세월-나의 시」), “온 힘으로 나를 힘껏 세상에 던”지고(「돌이 된다하여도 날을 수 있는」), “세상 밖으로 나가 세상 속에 있어야 한다”(「세상 속으로」, ‘96.11.29)고 말하는 것 이다. 하지만 이런 각오 속에서도 세상 속에서 “내가 먼저 흔들리며 주저하고 머뭇”대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겐 시는 언제나 “절망을 먹고 자라는 불안한 희망”(「불안한 희망-1997년 4월 30일」)이 된다. 불안해 하는 근원은 “이 절망의 벼랑에서/사랑을 저버릴까 두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람 자체-自身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시가 아닐까?  그래서 “시는 마지막 남은 투항하지 못한 존재의 찌꺼기다.”(「태생2」) 그것으로 나가는 과정이 들어있는 것이 『불안한 희망 -사람들』이다.


관련 글 : 스토리텔링과 '지옥문을 연' 인터넷 (2019.6.25)


2011/07/28 01:19 2011/07/28 01:19
From. 지하련 2011/09/05 17:56Delete / ModifyReply
오랜만에 들렸더니, 시 이야기가 올라와있군요! 저도 얼마 전에 꽤 오랜만에, 장석남의 시집을 꺼내 뒤적거렸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집 읽기가 곤혹스러운 일이 되었더군요. 한때 시인이 꿈이었던 이에게 시집 읽기마저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에 ... 신형철의 저 책을 사서 읽어야겠어요.
"인터넷은 개인적 감정, 심상을 사회적 사실(표상)로 만들어 내는 가장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사회적 사실이 되는가? 그 구조를 알고 싶다." 강력하게 공감을 표합니다.
오랜만에 블로그에서 긴 호흡으로 글을 읽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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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를 읽고 있다. "어떻게 해서 평등이 아메리카인에게 인간의 무한한 완전가능성이란 관념을 갖게 하는가"에 이런 귀절이 나온다.
공동체를 이루는 시민이 신분과 직업과 출생에 따라서 각 계급으로 나누어질 때, 그리고 모든 사람이 우연한 일로 자기에게 주어진 직업을 억지로 따라야 할 때는,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서 인간능력의 한계를 느끼게 됨으로써 아무도 더이상 자기 운명을 피할 수 없는 법칙에 저항하려 하지 않는다. 사실 귀족사회의 주민들이라고 해서 인간의 자기향상의 능력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고, 다만 그들은 그것을 무한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즉 그들은 '개선'은 구상할 수 있지만 '변화'는 구상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미래의 사회상태가 개선되리라고는 생각하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간성은 진보하며 또 앞으로도 진보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리 그 진보에는 어떤 극복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p.595)
미국의 민주주의 2 - 10점
A. 토크빌 지음, 박지동.임효선 옮김/한길사
기업도 마찮가지다. 구성원이 직급이나 직위,  직능(맡은 일), 나이(혈연,지연,학연이나 성별과 같은 자연적 요소 등)에 따라서 각 계급으로 나누어질 때 무력감을 느낀다. 무력감이 한계이다. 여기서 계급은 제도적으로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이고, 다분히 조직문화와 관련있다. 문화이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금기(taboo)이다.

(계급이 아닌 능력으로만 하자는 것에도 동의하지 않는다.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적 논리처럼 보인다. 능력 보다는 어떤 사람의 덕arete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사람에게나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덕이 있다고 믿는다. 윤리적 신념이다.)

회사에서 전략이나 실행계획을 짜 연초의 사업목표보다 10% 더 성과를 내면 '개선'이고, 20%를 넘으면 '혁신'이라고 말한다. '개선'은 있어도 '혁신'은 없다. 그리고 '혁신'이 있다해도 '변화'는 없다. 20% 초과라는 혁신은 운에 따르는 것에 가깝다고 다수가 생각한다. 운은 우연에 따르는 것, 운명 같은 것이다. 때 아닌 "복"타령을 하기도 한다.

개선, 혁신, 변화가 없다고 밑에 직원을 탓할 이유가 없다. 계급적이고 위계적인 구조가 문제이다. 민주주의는 신분, 직업, 출생과 상관 없이 1인 1표라는 형식적 평등에 기초한다. 토크빌의 말처럼 자기 능력의 무한성에 대한 긍정에서 변화가 온다는데 동의한다면 개선해라, 혁신해라, 변화해라 말하면서 아랫 사람을 쪼을 일이 아니다.

윗 사람 스스로가 온존하는 위계적 구조를 흔들어야 한다. 스스로 내려앉지 못하면서 누구에게 내려앉으라고 말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가공(架空)할 공력이다. 윗분들의 경험과 지혜를 존중하지만 변화가 어렵다면 그 길 가운데 그분들이 떡 버티고 말로만 변화를 부르짖기 때문이다. 변화는 말에서 오지않고 행동에서, 존중하고 들어주는 관용적 태도에서 온다. (이런 분의 또 다른 가공할 능력 중 하나는 바로 아래 문단에서 말한 '내 멋대로 꼴불견'을 높이 사면서 칭찬한다는 것이다. 여하튼 상상력이 풍부하다는 것이 '가공'의 뜻 속에 들어 있으니 새겨 들으시길!)
 
아랫사람에게도 자기절제와 절도가 필요하고, 자기연마와 숙고 과정도 필요하다. 부족한 줄 모르고 '내 멋대로'는 꼴불견이다. 이런 친구들 보면 '관용적 태도, 존중'이란 말을 물리고 싶다. 대놓고 뭐라고 안한다. 무섭기 때문이다. 담배 피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보고도 모르는 척 지나가는 것과 같다. (이런 면에서 비겁한다.)

이런 태도와 문화를 쉽게 만들 수 없다. 이럴 때 하는 극약처방이 있다. '어린 놈'을 아주 위에다 올려놓는 것이다. 아니면 '윗분'을 아주 아래 내려놓는 것이다. 문화적 충격요법이다. 귀족사회가 갑자기 평민들의 민주정체로 바뀌는 것 같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직 격어보지 못해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비인간적이지 않을까! 애에게는 어린시절이 필요하다를 평범한 말에 기대어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른은 그 반대다.)

이런 생각 거의 하지는 않지만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팀원들에게 걸림돌이 아닐까? 'another brick in the world'라 불릴 나이가 된 걸까? 120까지 산다면 아직 1/3밖에 못살았는데.

어째든 함께 있는 동료들(company)이 내가 보기에는 자기 능력의 무한성에 대한 확신이 없다. 공화국의 시민이 아닌 귀족사회의 농노나 평민이다.  확신이 없는 것이 모두 '외적 요인'과 관련있다면 나도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다. 내적 요인과도 관련있다면 나에겐 조금 다행이지만 그 친구들이 걱정이다. 못참을 정도로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이다. 입이 간지럽거나, 몸이 간지럽고, 머리가 간지럽지 않다.

하지만 '간지럽히지 못하는' 나에게 다시 책임을 묻는 밤이다. 결국 무능한 것이다. 귀족사회와 민주사회에 '낀' 중간관리자의 서러움이라고 애써 자위해보지만 이것 또한 허망한 빈말이다. 마음 속 한가득 욕이 나온다. 혼자 허둥대는 것은 아닌지 ...

그래도 포근한 바람 속에 책을 읽어서 좋고 행복하다.

2011/07/21 01:53 2011/07/21 01:53

위로
From. RSS로 들어온 이 2011/07/21 15:21Delete / ModifyReply
회사 발전에 대한 모티프를 공화정에서 가져오는 것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같긴 한데 근본적으로는 오류가 있겠네요.. 회사 법인의 발전은 사실 개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않는지요? 스톡을 받는다면 모르겠네요 ^^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게 아니라 주인이 되어야 잘 할겝니다..

멋진 글 잘 봤습니다.
jjpark 2011/07/21 16:09Delete / Modify
지적 맞습니다. 이글 쓰면서 유명무실화된 "우리사주조합" 같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연기금"에 투자된 주식에 대한 사회적 통제로 확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주식은 팔아버리기 때문에 공화정의 시민권처럼 양도불가능한데 그런 기능을 가진 제도가 필요합니다. 언듯 들었던 생각은 맞는지 모르지만 한겨레신문은 구성원들이 발행인(대표)를 투표 뽑지 않나요?

또 "공유지의 비극" 같은 것도 생각이 났었는데 ... 중요한 것은 상황에 맞게 행동하는 사려깊은 구성원이겠지요. 공화국 시민의 책무처럼. 밸런스가 중요하겠지요.

도편추방제와 반대로 도편추첨제로 같은 것도 ... 평등성에 대한 급진적 해결책으로 말입니다. 회사는 사회보다 더 적용이 쉬울 수도 있습니다. 어째는 생득적이 아닌 필터링과정을 거쳐 입사를 하니까요. (이런 기본 능력을 교양으로, 또는 '민주시민의 소양'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주인의식을 가져라가 아니라 주인이 되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옳은 듯합니다. 물질적 관계가 의식을 규정한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꼭 주식(스톡) 없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에 대한 자각은 모든(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양식아닌가요?

'회사 법인의 발전은 사실 개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에선 생각이 다르네요. 현재 제가 숨 쉬는 시간의 반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는데 관련 없다면 관련 있는 곳으로 가야 맞죠. 관련 있기 때문에 회사에 있고, 현재의 회사가 가정이나 국가를 지탱하는 축 중 하나입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낮엔 귀족정, 밤엔 공화정에 사는 것은 아닐테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독재정권을 몰아내려하는 것처럼 회사에서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방식은 다르더라도 정신을 갖지않을까요.

토크빌은 미국 민주주의의 핵심 중 하나를 분권화, 작은 결사/단체들에서 찾습니다. 회사가 민주적으로 된다면 사회도 바뀌고, 그 역도 성립하지않을까요.
RSS로 들어온 이 2011/07/21 16:50Delete / Modify
의문 해소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회사 조직문화에 대해서는 저도 개인적으로 한계를 체감하는지라.. 올려주신 내용 대부분에 동의하면서도 몇 글자에 집착해 기분을 상하게 해드렸네요. 앞으로도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jjpark 2011/07/24 20:29Delete / Modify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집착은 제가 더 심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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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모자이크 - 10점
스티븐 홀츠먼 지음, 이재현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학문적 관심이 없다면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나는 8장 디지털의 한계와 9장 모자이크를 재미있게 읽었다. "각기 동일한 것일지라도 다른 맥락에 있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의미하게 된다."(p.180)

어제 쓴 글에서 현장성/가시성을 이야기하면서 참조하라고 말했던 책이다. 책을 들쳐보니 이 책 내용이 아니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와 <The World As Phantom And As Matrix>(Gunther Anders) 올해 읽은 책들의 내용이 범벅이 되어 만들어낸 '착각'이다.

작년말부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생각/주제들이 있다. "매스미디어와 개인미디어의 결합/공생 관계", "현실/사건을 가지고 유령(Phantom)/가상을 만들어내는 미디어", "매스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 - 공감, 정서적 연대 등의 관점에서", "개인미디어의 진보적 성격",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입장" 등

지난해부터 관심을 가진 벤야민의 맥락(aura)에 대한 관심이 생각과 독서를 여기까지 진전시켰다. <팬텀과 매트릭스로서의 세계-귄터 안더스>에 대해서는 올초 강의를 하면서 진중권씨의 글을 참조했었고 최근 미국에 있는 선배에게 독일어의 영어 번역본을 받았다. 놀랍게도 11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에세이였다! 아마 진중권씨의 주석이 더 긴듯하다.

미디어가 어떻게 사실/맥락을 왜곡하는지에 대해서는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를 읽으면 좋을듯하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게 본 것 중 하나이다. 돈벌이만 좇는 미디어가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다른 한권은 박영욱의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라는 들뢰즈와 데리다에 관련된 책이다. '난해한'한 두 프랑스 철학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입문서로 훌륭하다. 들뢰즈 책만 책꽂이 한칸을 넘게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다. 그를 읽는다며 혼자 앉아 '오해/오독'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 10점
W. 랜스 베넷 지음, 유나영 옮김/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 사회적 책임 등에 관심있다면 꼭 읽어볼 책. 미국에서 뉴미디어을 포함한 미디어산업에 투기적 자본이 들어와 어떻게 망쳤나를 알고 싶어도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 10점
박영욱 지음/김영사

창의성/창조적 상상력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싶다면 세계/존재 자체가 다양체라는 것을 알면 된다. 쉽다고 말은 했지만 여전히 만만찮을 수 있다.

아래는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7.14일 적은 메모가 있다. (메모는 책 내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적은 것임)

7.24일 메모

"미디어는 노상강도이다. 맥락에서 특정 장면을 빼앗아 온다"
"노상강도가 강탈적으로 만든 세계는 모자이크이다"
"나는 노상강도처럼 책을 읽는다. 이책 저책 띄엄 띄엄"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텔레비전론>,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남수영의 <이미지 시대의 역사 기억>, <디지털 모자이크>,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등과 김종철의 <텔레비전과 민주주의>등의 신문기사를 함께 읽으면서 나온 메모이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는 그 뒤에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책 저책 읽다보니 아직도 읽고 있다. 매주 열댓장씩)

이즈음 메모들 사이에 "텔레비전은 상상력을 위축시키고, 아동의 정서적, 지적 능력의 정상적 발달을 가로막고,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김종철의 글(7.25일 한겨레신문)과  아마도 다른 란에서 백은하씨가 <찬란한 유산>을 평가하며 "허구적 매체는 ......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한다"고 이야기가 쓰여있다.

2009.12.24. 17시 update --------------------------------------------------------

인용한 "문화적 대안"에 대한 이야기는 백은하의 글이 아니다. 백은하가 <찬란한 유산>을 칭찬하며 문화적 대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때 읽고 있던 <인권의 발명> 9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허구적 매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전부터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드라마, 공감, 정서적 연대"라는 측면에서 읽고 있었다. 보편적 인권 관념이 어떻게 형성/구성되는가 하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TV라는 매스미디어가 어떤 진보성을 갖을 수 있는가로 고민을 하고 있다. 사회적 통합 기능(이전 같으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부숴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을게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개인미디어가 어떤 시각에서보면 사회적 분열을 극심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매스미디어(객관적 관념론 경향을 갖음)과 개인미디어(주관적 관념론/유아론적 세계가 될 수 있음)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어떻게 만들까? 요즘 매달리는 화두 중 하나이다.)

"허구적 매체(TV)는 객관적 관념론을 만든다. 2가지 방향으로. 보도/뉴스는 현실을 관념화시켜 보수화하는대로, 드라마는 이상을 관념화시켜 급진화하는 대로. 역도 가능하다. 결국 TV는 보수화 또는 급진화될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할지 용법/선택의 문제이다. 선택은 사회적(또는 개인적) 선택이며 구조적인 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아래 메모를 볼 것)
 
8.2일 메모

인권의 발명 - 10점
린 헌트 지음, 전진성 옮김/돌베개

나는 책을 읽으면 얼토당토 않은 방향으로 읽어댄다. 인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미디어의 논리, "미디어의 효과-경험-정서"라는 것을 읽으려 했다. 세계는 다양체이고, 일원론적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반영한다는 믿음 속에

인터넷/뉴미디어 관련된 일을 하면서 솔직히 백은하의 말보다 김종철의 말에 더 공감이 간다. “싫어하는 것에 반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조절하기 위해 스위치를 끄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두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footnote]마샬 매클루언,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미래(1966)>, 스테파니 매클루언, 데이비드 스테인즈 편저, 『매클루언의 이해: 그의 강연과 대담』, 커뮤니케이션북스, p.139[/footnote]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매클루언의 이해 - 10점
스테파니 매클루언.데이비드 스테인즈 지음, 김정태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미디어 현상에 관심있다면 아래 책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보다 읽기 편하고, 내용주는 시사점도 더 많았다.

런 까닭에 무엇보다 "이념(스위치 끄는 곳)"의 문제에 천착하려했었다. 그런데 벌써 1년이 다갔다. (SBS콘텐츠허브 입사 이래 가장 바쁘고 힘든 한해였던 것 같다.)

2008년 말 잡았던 에세이의 순서이다. 벤야민을 통해 다른 미디어 철학/사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몇가지 현상을 분석하기로 했었다.

벤야민
벤야민과 아도르노
벤야민과 매클루언
벤아민과 군터 그라스?
벤야민과 브루디외
벤야민과 플루서
---------------------------------------------
산만함
미세지각
시민종교, 아우라
블로그, 신화적 사고
유동적 자아매몰
흐름, 체험
미디어와 정서
(개인 미디어가 만든) 유아론적 세계
(매스미디어가 만든) 객관적 관념론의 세계
모자이크와 퍼즐

연초에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100매 정도를 쓰다가 중단했다. 회사 일을 마치고 밤새 글을 쓸 열정도 식고, 머리에 든 것도 없고, 또 여러 핑계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8~9월에 다시 <테크놀로지와 문화, 그리고 우리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50매 정도를 쓰다가 중단했다. 앞에 썼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다. 이 글을 쓰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잉여가치학설사>의 지대 관련 장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미디어2.0>에서 이야기했던 기술지대 개념과 사례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비판적 미디어론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도 긁적댔다.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이라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나온 글을 보고 열을 받은 상태에서였다. 박사들도 미디어를 연구하면서 (앞뒤 자르고 말하는) 공력을 쌓았나 철학자들의 주장을 아전인수로 해석하며 '용비어천가'성 이야기를 유포하는듯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앞의 세이야기의 주제를 합쳐 <기술, 경험, 정서, 그리고 이념의 문제>라는 제목만 지어놓고 이 책 저 책 들척이면서 밤마다 놀고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올해 사 본 책들이다. 이것 저것 들고 띄엄 띄엄 웹서핑하듯이 읽었고, 또 읽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장 주관적인 매체라는 책"의 내용이 이리 저리 통접(연접+이접)되어 이상한 모습을 띄는듯하다. 한권의 책에서 주는 생각의 연속성이 깨지고 단절과 비약이 심해 비선형적인 웹서핑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11월 ----------------------------------------------
공간 속의 시간(도시사 연구 총서 1)(양장본) 외 3개
텔레비전과 동물원
미술사의 역사
기나긴 혁명 (문화사, 대중문화에 대해)
벤야민 & 아도르노(지식인마을30) 외 2개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데리다 들뢰즈)

10월 ----------------------------------------------
미디어는 어떻게 신화가 되었는가 외 2개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 (<디지털 모자이크>에서 말한 '모자이크'에 대해 역사/예술 내에서 알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기술지대의 발생 동력인 기술혁신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9월 ----------------------------------------------
공론장의 구조변동: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 외 3개 (부르조아 미디어/공론장의 생성과 발전에 대해 알기 위해)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비평정신1)
유혹하는 에디터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군림천하. 21

8월 ----------------------------------------------
참회록(성 어거스틴의)
인권의 발명
디지털 모자이크

7월 ----------------------------------------------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외 3개
비판과 화해(아도르노의 철하과 미학)
미술의 불복종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군림천하. 20
강연과 논문 - 마르틴 하이데거 (이학문선 03)(양장본) 외 1개
비트겐슈타인(하룻밤의 지식여행 51)

6월 ----------------------------------------------
군중심리(완역본) 외 4개 (인터넷에서의 군중심리를 어떻게 이해할까 생각해 보기 위해)
사회학의 문화적 전환 (시민종교로서의 미디어, 공감과 연대에 대한 접근법을 보기 위해)
이미지시대의 역사기억
텔레비전론
생각의 탄생 (몸으로 생각한다는 것, 미세지각에 대한 사례를 보기 위해)

5월 ----------------------------------------------
진중권의 이매진 외 2개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촛불에 길을 잃다: 쇠고기 수입협상에서 정권퇴진 운동까지 (촛불반대 논리를 살펴보기 위해 구입한 책, 진보적이라 생각한다면 사보지 말것)

4월 ----------------------------------------------
몸의 역사(살림지식총서 274) 외 1개
휴대폰이 말하다(아로리총서 4)

3월 ----------------------------------------------
서양 미술사. 1 외 1개
일방통행로

2월 ----------------------------------------------
매클루언의 이해: 그의 강연과 대담 외 3개 (맥루한에 관심이 있다면 이책을 볼 것, <미디어의 이해>보다 더 재미있다고 생각됨)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자본주의적 문화, 예술론의 시발점을 이해하기 위해)
발칙하고 기발한 사기와 위조 행진 (예술에서 모작, 원본이 없는 기술적 복제 등에 대한 이해를 위해)
아빠의 몰락

1월 ----------------------------------------------
문화예술경제학 (예술, 문화의 경제학적 함의를 살피기 위해, 기술지대 관련)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폭력에 대한 성찰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다시 사회구성체론으로(부커진 R2)

--------------------------------------------------
주석

2009/12/24 01:26 2009/12/24 01:26
From. Jeremy 2009/12/29 09:32Delete / ModifyReply
철학과 아니랄까바. ㅋㅋ 30일 소주나한잔하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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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부터 몇권을 책을 읽고 있다. 맨 먼저 읽기 시작한 책은 르네 그루쎄의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이다. 기원전부터 18세기까지 유라시아대륙에서 흥망성쇠한 유목민들이 세운 국가에 대한 역사 책이다. 이 책은 진지전, 기동전, 화력전, 그리고 유목민 이야기에서 <유목민 이야기>에서 잠깐 말한 것 처럼 이진경 교수의 <노마디즘>을 읽으면서 한번 읽겠다고 생각했었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 10점
르네 그루쎄/사계절출판사
  
상고시대에서 13세기까지 스키타이와 훈족에서 시작하여 돌궐, 위구르, 거란, 투르크와 이슬람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부를 차지하고 있다. 돌궐, 거란과 여진은 우리 역사에도 가끔 등장하고, 최근 사극 <대조영>에서 발해가 건국될 당시 중요한 세력으로 나왔었다.

중반부는 칭기스칸과 몽골제국에 대한 이야기 이고, 마지막은 티무르, 킵착 칸국(러시아 지역에 정착한 칭기스칸 후예 몽골인들), 샤바니조, 차가다이인, 그리고 몽골리아의 마지막 제국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찾아보기>까지 800여 페이지가 넘는 두터운 책인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읽었다. 중반 이후 계속 되는 몽골인들의 이야기가 생소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잘 알아 식상한 것도 아니기 때문인 듯하다. '적당한 관심, 사전 지식, 새롭운 사실들, 드라마틱한 제국의 흥망성쇠' 등이 긴 여정을 길지않게 만든듯 하다.


유목민, 유목민의 군대, 유목민의 전투기술

유목민의 군대는 기원전 750년경의 스키타이 시대부터 칭기스칸 그리고, 그의 후예들이 최후를 맞은 18세기까지 말과 활로 이루어진 '기마궁사'들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많은 경우 '도시 없이' 소위 '움직이는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것만을 지니고, 계절적 이동에 따른 마차 위에 여인들과 재산들을 실고 다녔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p.44

이들의 전술 또한 기원전 7세기에서 12세기 칭기스칸까지도 유사성을 지니고 있는데 앞에서 후퇴하면서 적들을 약올려 들판 깊숙한 곳까지 들어오게 만든 후 적들을 초원에서 몰이사냥을 하듯이 격파하는 것이다. 같은 책, p.47

유목민들은 전투에서 적을 급습할 때 놀랄 정도로 큰 소리를 지른다. 만약 적이 저항하면 흩어졌다가 다시 빠른 속도로 돌아오면서 도중에 있는 모든 것을 부수고 뒤엎어버린다. 그들은 요새나 진지를 어떻게 함락하는지 모른다. 그러나 놀랄 만큰 먼 거리에서 쇠같이 단단하고 날카로운 뼈로 촉을 만든 화살을 쏘는 기술에서 그들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같은 책, p.132를 볼 것

진지전, 기동전, 화력전, 그리고 유목민 이야기에서 이야기했던 톤유쿡은 투르크의 장점을 언제든지 기회가 되면 기습공격을 감행하고 또 상황이 나쁘면 피해서 도망칠 수 있는 유목민으로서의 기동성에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 톤유쿠크 : <유목민 이야기>의 톤유쿠크와 동일인물이다. 또 <유라시아 유목제국사> pp.178-180을 보면 <유목민 이야기>에 나오는 비문에 씌여있는 톤유쿡의 말의 배경을 알수 있다. 톤유쿡의 주군인 빌게 카간이 투르크인들을 획정된 지역에 정착시키고 오르콘 지역에 중국식의 성곽도시를 건설하고 불교 사원과 도관을 건설하려 했기 때문이다.


"돌궐은 그 수가 중국의 100분의 1에 불과하다. 그들은 물과 풀을 찾아 떠돌고 사냥을 한다. 그들은 정해진 주거가 없고 늘 전투하는 연습을 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강하다고 느끼면 나타나고, 약하다고 생각하면 물러나 숨는다. 이런 방식으로 그들보다 수가 많은 중국의 이점을 상쇄하고 그것을 쓸모없게 만들 수 있다. 만약 당신[빌게 카간]이 돌궐을 성곽이 있는 도시에 살게 하고 중국에게 공격을 받아 패배를 당한다면, 설사 그것이 단 한 번일지라도 당신은 그들의 포로가 되고 말 것이다. 부처와 노자는 사람들을 유약하게 만드니 그런 가르침은 전사에게 맞지 않는다." 같은 책, p.180
이런 유목민과 한민족과의 친연성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고구려의 주몽 설화, 말타는 고분벽화 등을 통해 알 수 있는 기마궁사의 모습과 순장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순장은 스키타이인, 투르크-몽골인, 그리고 삼국시대의 한반도에서도 찾아  수 있다. 이런 관습은 이미 서아시아나 중국에서는 오래 전에 사라진 장례의식이다. 같은 책, p.45

고구려 쌍영총 기마무인도
 ▲ 고구려 쌍영총에서 발견된 기마무인도의 모습. 그림출처: 아쉽다, <왕 의남자>의 옥에 티, 오마이뉴스, 2006.2.18


'야만인들'인 게르만족의 침입에 의해 서로마 제국이 멸망되면서 새로운 중세가 시작되는 것처럼 이 책을 읽다보면 유라시아 초원에서의 작은 폭풍이 전체 세계 역사에 얼마나 거대한 충격을 주고 연쇄 반응을 일으키는 지를 볼 수 있다. "초원의 한쪽 끝에서 발생한 작은 자극으로 인해 민족이동이 가능한 이 엄청나게 광대한 지역의 구석구석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련의 결과들이 초래"된다. 같은 책, p.81


야만과 문명, 그리고 국가라는 문제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빠져든 화두는 '야만'과 '문명' 그리고, 국가라는 문제이다. 칭기스칸의 몽골제국의 경우 씨족사회를 기반으로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러면서 몽골 일족들은 '문명화 과정'을 거쳐 초원이 강요했던 강인한 생명력(유목민의 전투력)을 잃어버리고 문명의 수호자가 된다. 또 달리 보면 국가 자체가 문명을 요구하거나, 문명이 국가를 요구한다고 할 수도 있다.

먼저 이들의 '야만성'은 어느 정도였을까? 또 어떻게 하여 문명의 수호자가 되었을까? "그[석륵]은 유목민적인 성향도 못지않게 강했고, 특히 그의 흉노인 후예들에게는 더욱 그랬다. 석륵의 계승자인 석호(334-349)는 자기를 암살하려고 기도했던 아들을 사형에 처할 정도로 방탕한 짐승이었다. 그 아들은 완전히 괴물로서 자신의 가장 예쁜 첩을 불에 구워서 탁자에 내오게 할 정도로 변태적인 타타르 냉혈한이었다. 석호는 가장 열렬한 불교의 보호자가 되었는데, 이것은 문명의 마력에 처음 접하면서 빠져버리는 야만인 사이에 흔히 나타날수 있는 이상현상이다." 같은 책, p.111, 문화적 보호에 대해서는 p.112도 볼 것

탁발도의 경우 "새로운 통치자의 어머니가 과부로서 가질 수 있는 야망, 탐욕, 또는 질투가 빚어낼 결과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황제 즉위 이전에 그녀를 죽이는 야만적인, 그러나 사려 깊은 투르크-몽골의 관습을 그대로 보존하였다"고 한다. 같은 책, p.118을 볼 것

아틸라 더 훈 (406년~453년)
3-5세기 훈족에 대한 서구(아마 로마시대) 역사서의 묘사를 보면 이렇다. 아이의 뺨에 수염이 자라지 않게 하기 위해서 깊은 상처를 냈다. 음식을 요리하거나 얌념을 치지 않고, 안장 밑에 놓아두어 부드럽게 된 들풀의 뿌리와 고기를 먹었다. 농기구를 사용하는 방법이나 고정된 거처가 없다. 늘 유목생활을 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추위, 배고픔, 갈증으로부터 단련되었다. 모임도, 장사도, 마시거나 먹는 일 심지어는 말을 탄 채 자기도 했다. 이런 생활과 함께 괴물같은 인상과 염소가죽으로 '대충' 만든 복장을 한 모습을 본 서구(로마와 게르만 세계)는 공포에 떨었다. 같은 책, pp.131-132를 볼 것. 블로그 훈족 이야기를 참고 할 것


581년 중국의 사가들이 돌궐에 대해 이렇게 묘사를 하고 있다. 그들은 노인을 존중하지 않고, 혈기가 왕성할 때 우대를 받는다. 염치와 예의를 모르고, 이런 점에서 옛 흉노와 비슷하다. 여기서의 흉노는 서양에서 말하는 훈이라는 학설이 존재한다. 또 사람이 죽으면 자손이나 친척들이 양이나 말을 잡아 그의 천막 앞에 그에게 제물을 바치듯이 놓아둔다. 그들은 말을 타고 애도하는 울음을 내면서 그 천막 주위를 일곱 바퀴 돈 다음에 그 천막 앞에 와서는 얼굴을 칼로 그어서 피가 눈물과 함께 흐르게 한다. 장례를 치르는 날 그와 가까웠던 친족이나 그와 가까왔던 다른 사람들이 제물을 바치고 말을 달리며, 죽었던 날과 마찬가지로 그의 얼굴을 칼로 긋는다. 장례 이후에 고인이 생전에 죽인 사람의 숫자만큼의 돌을 그의 무덤 주위에 둔다. 아버지나 백부나 숙부가 죽으면 그의 아들이나 어린 동생 혹은 조카가 미망인과 그녀의 자매와 결혼한다. 그들은 악령과 정령을 숭배하고 무당을 믿는다. 전투에서 죽는 것이 그들에게는 영광이고, 병에 걸려 죽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였다. 

・ 같은 책, p.148을 볼 것. 우리 표현에 '피눈물을 흘렸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이 먼 과거의 습속이 우리 말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우리나라에 있는 무당은 유라시아 유목민들에게서 흔하게 발견된다.


이 정도면 야만이라는 표현이 가리키고 있는 유목민의 생활상을 어느 만큼 알 수 있다.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문명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문명화과정>을 볼 것)

문명의 마력이란 물리적 힘을 사용하지 않고도 권위를 부여하고 충성을 하도록 만들고,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즐거움을 주는 기술들인듯 하다. 종교가 지배자를 신이나 하늘의 대리인으로 만들고, 문명국의 궁정은 '움직이는 도시'에서 보여줄 수 없는 거대한 즐거움을 야만적 지배자들에게 선사한다. 많은 의례적인 절차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 같은 친족/씨족 내에서도 왕과 왕이 아닌 자에 대한 차별성을 만들어 낸다. 이런 의례들을 통해 친족 살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도 문명의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예를들면 과부인 어머니가 정치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를 만듬으로써.

하지만 문명화의 결과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유목적 생활에서 나온 전투력의 약화에 의한 문명으로부터 패퇴 또는 너무 문명화되어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는 형태로 나온다. "그들[타브가치(탁발)은 북중국의 다른 투르크-몽골계 국가들을 통일한 뒤 너무 한화(漢化)되어 부족이나 왕조 모두 중국인 대중 속으로 녹아들었다. 더욱이 불교를 위한 그들의 열의는 기독교에 대한 카롤링거와 메로빙거의 열정의 재판이었다. 마지막으로 프랑크 자신이 게르만의 침입이라는 새로운 물결에 대항에 로마 전통의 보호자가 되려고 했던 것처럼, 탁발도 그들이 원래 거주했던 초원 깊숙한 곳에서 미개인으로 남아 있었던 몽골계 부족들을 상대로 황하에서 '라인 강의 파수꾼'이 되었다." 같은 책, pp.113-114

・ 타브가치(탁박) : 탁발은 5세기 북중국을 지배한 유목민족이다.

유목제국들은 야만과 문명이 만나는 초기에는 아주 강한 힘을 갖게 된다. 탁발의 경우를 통해 보면 반쯤은 한화된 투르크-몽골계 부족인 탁발은 '중국에 대해서 모든 고유한 군사적인 우위를 점하면서도 여전히 북방의 야만적인 부족들에 비해 우월감을 갖게 해주는 조직력을 갖추고 있었다.'

429년 타브가치의 왕 탁발도[북위의 태무제]가 몽골의 유연을 상대하면서 이런 말을 한다. "중국인들은 보병이고 우리는 기병이다. 풋내나는 망아지와 송아지들이 호랑이와 늑대를 상대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유연 그들은 여름에 북쪽에서 방목하고, 가을이 되면 남쪽으로 내려왔다가 겨울에 우리의 변경을 약탈한다. 우리는 단지 여름에 방목장에 있는 그들을 공격하기만 하면 된다. 그때 그곳의 말은 쓸모가 없다. 왜냐하면 숫말들은 암말과 교미에 정신이 없고 어미말은 망아지와 지내기 바쁘다. 만약 우리가 그곳으로 가서 그들의 목초지와 물을 없애버리기만 한다면 며칠 이내로 그들을 잡든지 아니면 붕괴시켜버릴 것이다." 정확한 판단이다. 유목민의 조직은 여름이 되면 모두 흩어져(전투조직이 와해되어) 있다 겨울에 약탈을 위해 뭉치는 '국가'가 아닌 전투 연맹체 정도이다.

▸ 들뢰즈, 가타리의 전쟁기계 - 천개의 고원을 볼 것 (2019.7.17일 추가)

탁발도가 말한 이와 같은 이중의 우위는 이후 몽골 제국의 쿠빌라이(원의 황제)가 남송과 카이두 몽골부족을, 그리고 초기의 만주족(청)이 최후의 중국인 반란과 마지막 몽골의 호전성을 성공적으로 다룰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런 이중의 이점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탁발, 쿠빌라이조, 만주도 완전히 한화되는 때는 반드시 찾아왔다. 그러면 그들은 북방의 부족들에게 패배하였고, 중국에서 쫓겨나거나 아니면 그 속에 흡수되어버렸다. 이것이 (야만과 문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중국과 몽골 역사의 기본적인 리듬이다.  

・ 같은 책, p.117, 비슷한 이야기는 pp.120-121에서도 볼 수 있다.
http://ko.wikipedia.org 에서 북위(북조)를 검색하면 다음 내용을 볼 수 있다. "도무제중국 전통의 국가체제를 채용하여 탁발부 밑에 있던 여러 부족을 해산시키고, 족장이하 부족민은 모두 중국의 호적에 편입시켜 한족과 혼합시켰다. 더불어 한족 출신의 명족(名族) 인재을 등용하여 국정에 참여하게 하였다. 이로써 북조 귀족제의 기초를 형성하게 된다. 이후 명원제(明元帝)는 남조 송나라를 공격해 하남을 빼앗고, 이어 태무제(太武帝)는 하(夏), 북연(北燕), 북량(北凉)을 차례로 멸망시켜,439년 화북을 통일하였다. 서역에서 조공을 바쳐오는 나라만 해도 20여개국에 이르니 북위의 국세는 크게 울려퍼졌다. 이때부터 중국은 남북조 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태무제[탁발도]는 내정을 정비하면서 또한 남조 송에 대한 공격을 개시해 회남과 강북을 빼앗았고, 이때 도사 구겸지가 도교 교단을 확립하고, 한인 관료 최호와 손을 잡고, 태무제에게 진언하여 폐불을 단행하게 하였다.(삼무일종의 폐불 첫번째) 이 시기에 선비족의 한인 동화와 도시 귀족화가 진행되면서 서서히 북위 내부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용문석굴
탁발의 경우 황제였던 탁발홍은 471년 승려가 되기 위해 어린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주었고, 그의 아들인 탁발굉(효문제, 471-499)은 용문 석굴을 만들게한 장본인이다. 탁발은 중국의 문화와 불교의 신앙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투르크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강인하고 늠름한 기상을 잃어버릴 수 밖에 없게 된다. 한번 보살의 자비로운 손길에 스친 사나운 전사들은 승려의 인문주의적인 가르침에 너무나 감화되어 원초적인 호전성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방어마저 게을리하게 된다. 같은 책, pp.119-121


8세기 중앙아시아에서 주도적인 세력이었던 위구르 쿠르크 제국의 경우 "피냄새로 진동하는 야만인들의 습속이 유행하던 나라가 채소를 먹는 사람들의 땅으로 바뀌었다. 살인이 자행되는 나라가 선이 권장되는 나라로 바뀌었다"고 쓰고 있는데 마니교와 기독교의 영향이다. 같은 책, p.195. 이런 내용은 모든 유목민족의 역사에서 나오는 듯하다. 더 이상 이런 사례를 열거하지 않겠다.

유목민이 야만에서 문명으로 넘어오는 사이에 국가가 존재한다. 정주민의 땅을 차지한 유목민은 그들을 통치하기 위해 국가를 만들고, 그 국가에 그들이 '포획'되면서, 즉 야만성을 잃고 문명화되면서 다시 그 '국가-정주민의 땅'을 잃거나 '민족/부족' 자체가 정주민에게 동화되어버린다.


문명화 과정을 거친 유목민의 운명, 그리고 그람시적 진지와 기동

'중국화=문명화' 과정을 거친 유목민의 운명은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첫째, 유목부족 자체가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중국의 한족처럼 변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족이 유목민에 비교하여 절대적 다수라는 단순한 사실에 기인한다.


둘째, 문명화 과정은 '사람들을 유약하게 만드니 그런 가르침'이어서 유목민의 호전성을 사그라들게 만들어 전투력을 잃었을 때 수적으로 소수인 그들을 다시 초원으로 몰아내버리거나, 다른 초원의 호전적 유목민의 사냥감이 되도록 만든다. 문명세계의 발명품인 국가는 유목민에게 제국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하면서도 다시 스스로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원인이 된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를 읽은 목적은 국가의 형성, 체제의 변환 또는 이행, 진지와 기동이라는 그람시적 은유 등에 대해 해석을 위한 것이다. 이제 이런 내용에 빗대 그람시의 이야기를 해석해 보자.

첫번째의 경우를 가지고 진지전, 기동전, 화력전, 그리고 유목민 이야기에서 말했던 그람시의 진지전의 운명을 예감할 수 있다. 만일 '노동자가 절대적 다수'라면 그람시의 이야기가 맞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것은 노동계급의 존재론적 위치와 이데올로기적 허위의식이라는 문제 등과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존재론적 당위가 아닌, 사실을 보면 부르조아 사회에서 부르조아적 의식을 가진 사람들(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이 임금노동자라고 해도 노동계급이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 생각을 한다해도 존재론적 당위가 전제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아닌가? 결국 '문명화'된 사회에서 계급의식을 지닌 노동자계급은 다수가 아닌 정치적 소수인 것이다.

두번째 경우를 가지고는 반대로 어렵지만 하나의 가능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람시가 이야기하는 계급적 헤게모니를 구성하기 위한, 자본주의적 계급사회의 야만성을 '문명화'할 수 있는 조직의 역할이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그람시의 진지는 문명화 과정 속에서 '새로운 세계'의 가능성과 이것의 현실화쪽으로 '접합'시켜나가기 위한 장(場)을 만든다. 이속에서 '폭력에 대한 독점'으로 정의되는 '계급적' 국가를 '문명화' 시킬 수 있을까? 이 과정은 앞에서 살펴 본 수적(數的) 소수에서 다수로 되어가는 과정이다. 사람들의 경제적, 존재론적 위치가 아닌 '어떤 다른' 심급에서.

▸ 들뢰즈/가타리가 천개의 고원에서 이야기하는 소수자되기는 의미는 수적인 문제가 아니다.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탈주하는 다양체 되기. 하지만 어떤 조직에서는 지속적인 탈주가 아닌 그 안에서 어떤 정체성이, 개체가, 조직이 생성되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 ... (2019.7.17일 추가)

이런 관점에서 그람시는 마키아벨리적 군주에 빗대 현대적 군주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하며,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에서 많은 유목민의 군주들이 자신들의 민족을 문명화시키려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이에 대한 어렴풋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진지(성곽) 내에서 벌어지는 과정은 이데올로기적(문화적) 과정이다. 톤유쿡의 지적처럼 '전사에게 사람들을 유약하게 만드는 부처와 노자와 같은 가르침'을 전달하는 곳이다. 불교 사원과 도관이 있다. 도망가 숨을 곳이 없을 때, 즉 기동전이 불가능할 때 진지전이 필요하다면 이것의 전제조건은 아렌트가 말하는 '전체주의'가 아닌 민주주의다. 전체주의에서는 국가 안에서 전체의 일부가 될 수 없는 사람들에게서 시민권을 빼앗아 버린다.

▸ 칼 슈미트를 참고할 것 (2019.7.17일 추가)

전체주의의 기원 1 - 10점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 박미애 옮김/한길사
  
이런 생각은 <유라시아 유목제국사>와 함께 읽은 책들의 내용이 결합되어 나왔다.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를 읽고 있는데 이런 내용이 있다.

(다민족국가에서 소수민족의) 동화의 강력한 방해 요인은 이른바 주도 민족들이 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취약하다는 사실이다. 폴란드에 살고 있던 러시아나 유대계 주민들은 폴란드의 문화가 자신의 문화보다 더 우수하다고 느끼지 않았으며, 폴란드인이 전 주민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에도 특별한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 p.498 (한길사)
이글을 반대로 읽으면 수적, 문화적 우월성이 동화의 핵심 동력이다. 이런 아렌트의 지적이 맞다면 문명에 쉽게 젖어드는 유목민의 경우 정주문명의 우월성을 느끼고, 정주민들이 수적으로 월등히 많다면 어쩔 수 없는 필연인 것이다.


함께 읽은 책들

<유라시아 유목제국사>를 읽으면서 문명에 대한 이해를 위해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을 함께 읽기 시작하였다. 문명의 시작은 어쩌면 '차이; 피지배계급보다 자신들이 났다는 우위의 표현체계'일 수도 있다. 훈족을 보면서 놀랐던 중세 초의 유럽인들처럼 현재의 우리도 중세의 유럽인을 보면 '야만인'이라고 놀랄 것 같다. <문명화과정>에서는 궁정사회의 예절 등이 어떻게하여 일반화되어 '민족의식'이 되고, 다시 근대적 국가(nation, 민족국가)가 성립되는지를 추적한다. 현재 <전체주의의 기원>과 같이 읽고 있다.

문명화과정 1 - 10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한길사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Who Sings the Nation-state?>도 함께 읽었다. 주디스 버틀러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대담집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수행적 모순이라는 개념을 통해 자유란 무엇인가 되묻고, 스피박은 국가적 추상구조라는 개념을 통해 재분배와 사회복지기능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무거운 주제지만 가볍게 읽을 수 있다.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 10점
가야트리 스피박 외 지음, 주해연 옮김/산책자
 
<전체주의의 기원>을 읽기 시작한 것도 버틀러가 「국민국가의 몰락과 인권의 종말」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갔기 때문이다. 학교에 대닐 때 아렌트를 아주 멀리서 '소비에트'를 공격하는 우파 지식인 정도로 생각을 했었다. 또 이런 선입관 때문에 손이 가지 않았었다. 내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알뛰세르의 제자인 발리바르가 '인권'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는데 아렌트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인권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보통 학교에서 '천부인권설'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설(說)이 단순한 주의, 주장에서 사회적인 힘을 가지고 정치적 사실이 되는 과정, 신화가 현실이 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아렌트는 이렇게 만들어진 현실이 사실은 '신화적 현실'이었음을, 인간에게 사실상 인권이 없었음을 주장하는 듯하다. 신화가 현실이 되는 과정은 이데올로기가 사실/진리가 되는 과정으로도 읽을 수 있다.

또 문명과 차별성(차이)의 문제로 <유한계급론 - 문화, 소비, 진화의 경제학>을 사들었다. 베블린의 책을 해설해 놓은 것이다. 베블린의 책은 대학시절 일별했었는데, 마르크스 이외에는 이단시 되었던 풍토에서 공부한 관계로 선배한테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 기억뿐이다.
이번에 1997년 3월 3일 을지서적에서 산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문화와 취향의 사회학>을 함께 읽어야겠다. 10여년전 책 뒤에 써 놓은 글이 있다. 1996년 말 제대를 하면서 바로 취직을 한 후 6개월이 체 지나지 않았을 때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방황하면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인데, 지금도 ... 
"나에게 투쟁정신이 필요하다. 나는 절망하고 있다. 나 자신에게"
<구별짓기>도 사람간/계급간의 차별화 전략에 대한 분석이다. 과시적 소비와 과시적 여가에 대한 분석인 <유한계급>에서 시작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문명화과정> 역시 비슷한 내용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다.

구별짓기 -상 - 10점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새물결
이론적 정확도를 떠나 느낌이지만 문명을 습속으로, 탈주해서 피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의식적 좌파들이다. 하지만 문명을 떠나 정말 '밖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 자기가 서 있는 곳을 넘어설 수 있을까? 넘어선다면 어떤 개인이 넘어서는 것이 아닌 '문명' 자체가 넘어서는/넘어서고있는 것은 아닐까? 유목주의(노마디즘)은 결국 문명세계에 의해 사라져 갔다.
그러나 완전히 기병으로 구성된 금나라(여진족) 군대는 중국 남방으로 너무 깊이 들어갔다. 그곳에는 범람하는 땅, 서로 얽히는 강들, 논과 운하가 있었고, 조밀한 인구가 언제 그들을 기습하고 포위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르네 그루쎄, 같은 책, p.215
휴가가 끝났다.

미주 ------------------------------------------------------------------
2008/08/20 02:02 2008/08/20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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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빈 출생. 1920년대에는 오스트리아학파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무렵의 사상은 논리적 원자론(原子論)에 속하는 것이었으며, B.러셀과의 상호 영향에 따라 형성된 것이었다. 그후 점차 인공언어(人工言語)에 의한 철학적 분석방법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으며, 1939년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일상언어(日常言語) 분석에서 철학의 의의를 발견하게 되었다.

생존 중에 출판된 저작은 1921년에 간행된 《논리철학론(論理哲學論)》뿐이지만, 구두논의(口頭論議)로 영국의 분석 철학계(分析哲學界)에 끼친 영향이 크다. 최근에 《철학적 탐구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1953) 등 많은 유고(遺稿)가 출판되었다.

SBS 지식포털 내 <일일소사> 내용

오늘의 소사 - 비트겐슈타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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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사내 포털의 <일일소사>를 보다가 오늘이 비트겐슈타인이 사망한 날이라는 것을 알았다. 파란만장했던 삶도 '미디어'로 오면 푸르른 잎도 가지도 모두 잘려나가고 앙상한 몸통만 남는다. 상식적이란 말, 교과서적 지식의 실상이다.

최근 『확실성에 대하여』를 읽고 있는데 그곳을 보면 비트겐슈타인 대한 간략한 전기를 볼 수 있다. 그의 삶에 대하여 모르던 부분(아래 이야기를 포함해서)을 좀 더 알게 되었다.
 
이 책도 다른 책들처럼 여전히 '난해'하다. 다 읽는데 몇년이 걸릴까? 생각날 때 조금 읽고, 필요할 때 관련부분만 찾아 조금 읽고, 다른 책 읽다가 불현듯 생각이나 조금 읽고.. 그래서 항상 새롭다.

그런데 『확실성에 대하여』는 그가 죽기전에 마지막으로 쓴 글이다. 암으로 정신이 '왔다 갔다'하는 상황에서이다. 그런데도 여전히 사고의 엄밀성을 유지하고 있다.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을 떠나 이미 이 책의 존재 자체가 경이롭지 않은가!

확실성에 관하여 - 10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지음, 이영철 옮김/책세상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미디어2.0 - 비트겐슈타인
『사회사상의 대항해, 지식인들의 망명 1930~1965』, 개마고원, 2007 9월 29일부터 지식인들의 망명을 읽기 시작했다. 2차세계대전과 함께 유럽을 떠나 영미로 망명한 지식인들에 관련된 사회사상사이다. 비트게슈타인, 보..

블로그 내 검색 : 비트겐슈타인
2008/04/29 20:35 2008/04/29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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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던지는 질문

지금 의사결정을 하는 중요한 직책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도 대학을 갓 졸업한 시기가 있었을 것이다. 그 시기 누가 그들을 보호하고 다시 가르치고, 창의력과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했을까? '똑똑한' 자신일까? 아니면 사회 전체가 가지고 있던 '사회초년병'에 대한 조직적 보호였을까? 그리고 그때 '당신도 어설프고 실수 많은 사람이 아니었는가?' 묻고 싶다. 마지막으로 '그런데도 기회를 줘서 현재의 당신과 (회사가 잘 나간다면) 현재의 회사가 되지 않았는가?'는 질문도 하고 싶다.

자본주의적 경제시스템의 가장 작은 조직적 원자라 할 수 있는 회사의 인사정책과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정책에도 이런 질문을 해야하지 않을까?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 BAD SAMARITANS - The Myth of Free Trade and the Secrete History of Capitalism>을 읽고 감상을 쓰면서 갖는 생각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 10점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부키

앞의 세대들은 젊은세대(나 역시 아직 젊지만, 더 젊은)의 창의력, 끼, 감성, (가끔은 오만방자하다고 느끼지만) 자유로운 행동을 칭찬하지만 이들이 정작 원할 때 쓰지않고 '비싼' 경력직을 채용하려고 할까? 그것은 그 친구들이 제대로 일을 할 때까지 보호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돈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보고,  당장 '열정적이거나 창의적'이지 않더라도, 좀 비싸더라도 경력직을 고용하는 것이 더 효율적(비용효과적)이고 났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듯하다.

 
(이런 비교를 기회비용이란 용어로 설명하며 그럴 듯하게 포장하기도 한다. 더 길게 보면 이런 결정이 기회비용을 더 들어가게 할 수도 있다. 시간과 이 시간의 경과에 따른 사람의 발전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회사가 아닌 사회 전체의 차원에서 보면 더욱 그렇다. 회사는 다른 회사가 '길러놓은' 사람을 계속 가로챌 수 있다면 현재의 판단이 맞을 수 있다. 현재 상대적일 지라도 잘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는 비교우위의 정태적 논리를 통해 봐도 이런 판단이 맞다.)

이때 우리는 개발도상국들의 국가정책에 대해 '반시장주의적' 훈수를 두는 장하준 교수의 이야기를 회사 내에도 대입해 볼 필요가 있다.


간단하지만 강력한 원칙,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개선하라!
능력을 기르는 데 투자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당연히 희생이 따른다. 하지만 그 희생이 무서워 투자를 안 할 수는 없다.  ... 실제로 우리는 장기적으로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단기적 희생을 감수하는 사람들을 흔희 본다. 그리고 이들을 진심으로 격려한다. (p.320)
장하준 교수는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개선하라'는 간단하지만 강력한 원칙"이 현재 잘사는 나라들이 취했던, 그리고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추앙받는 렉서스의 도요타와 핀란드의 노키아의 정책이었음을 보여준다.

최근 만들어진 한국의 인력시장에서의 일반적 관행 - 정규직은 대기업 경력자로 채우고, 신입은 정규사원보다는 파견직이나 계약직으로 채우는 이런 관행은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하는 것이다. 이런 회사가 도요타가 될 수 있을까? 또 사회 내에 있는 전체 회사가 다 이렇게 한다면 높은 생산능력의 원천인 새로운 '경력직'은 어디서, 어떻게, 언제까지 충원할 수 있을까? 장하준교수가 말하는 국가와 마찮가지로 우리는 스스로 '시장에 대항'하면서 생각하지 않고는 일반적인 회사는 될 수 있어도 '위대한 회사'는 될 수 없을 듯 하다.

특히 성공한 기업가들은 시장의 힘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회사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시장의 흐름을 거스를 필요가 있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진출하고자 하는 새로운 부문에 세운 자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본다. 기존 회사에서 나온 이익으로 그 손실을 메우는 등의 방법을 통해 말이다. 노키아는 벌목, 고무장화, 그리고 전선 사업에서 번 돈으로 17년에 걸쳐 전자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삼성은 직물과 제당사업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넘도록 전자 사업에 투자했다. (p.319)
우리가 정말 젊은 세대- 이들을 <88만원 세대>라고 부르는 현실이 슬프지만 -를 믿는다면 이들을 '돌봐야' 한다. 그럭 저럭 먹고사는 회사/국가가 아닌, '위대한 회사/국가'가 되고자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현재 이들이 "생산성이 낮은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 데에는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이들은 생산성이 높은 활동을 할 만한 능력이 없다."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에게는 아직까지 경력직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조직적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계속해서 이런 일을 하라고 해야 하는가? 더우기 사람 밖에 자원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나라에서!  "적어도 능력이 크게 변화할 수 없는 단기간에 국한시켜 본다면" 현재의 기업 관행들은 옳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영원히 그럴 것이라는 가정은 잘못된 것이다.


88만원 세대, 그리고 우리의 미래는 막는 조건들

1997년 이후 대학생들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걸맞는 노동자/회사원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실패(실업자, 파견직, 계약직, 시급 아르바이트)하고 있다. 이것이 회사에 '쓸모없는' 사람들을 양산해내는 학교 교육의 문제일까? 아니면 개인적인 자질과 노력의 부족이 문제일까?

나는 '감히'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는 기본적인 자질과 인성 등을 만들어내는 곳이어야하지 '실전/실무'에 투입할 노동자/회사원을 찍어내는 곳이어서는 안된다는 이상주의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대학을 다니며 '학교가 노동자/회사원을 찍어내는 곳'이라는 사회과학적 분석이 정확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은 법제도의 문제라고, 앞선 세대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스탠다드를 외치는 IMF, 세계은행, WTO 등을 앞세운 시장주의적 공세에 무참히 밀려버린 결과이다. 이런 현실이 지속된다면 이제 대한민국은 미래가 없다. 학교는 회사에서 일을 배울 수 있는 일반적 기반을 만들고, (적어도 10년전의) 회사에서는 '대졸 신입사원'에게 적어도 2~3년정도 동안은 투자를 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전사회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일 할만하면 나간다'해도 서로 맡바꾸기가 될 수 있어 큰 문제가 없었다.

지난 10년 고용이 유연화되고 이 체제가 무너지면서 <88만원 세대>가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학교 교육과 개인적 자질의 문제도 아니다. (그런데 바보처럼 자기의 개인적 능력에 달린 것이라 생각하며 도서관과 고시원에서 날을 새며 공부하는 세대가 이 세대는 아닐까?) 가끔 면접을 보면서 놀랄 때가 있다. In Seoul, 심지어는 SKY(서울대, 고대, 연대 졸업자)마저도 파견직으로 들어온다. 최근에는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100여만원이 조금 넘는 파견직에 이력을 제출한 친구가 있었다. 그러니 나머지 대학의 졸업생들은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고 10살 밖에 안된 아들의 미래를 걱정하기도 한다.

현재를 위해 미래를 희생시키는 시장주의적 요구, 대기업과 중소기업 /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으로 갈려진 노동시장 구조, 소수를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경쟁적 체계들이 삶을 각박하고 힘들게 만든다. 유연한 노동시장은 그것에 걸맞는 유연한 재교육과 복지, 지원체계를 요구한다. 그런 준비없이, 장하준교수의 말을 빌면 곳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도 없이' 세계표준을 받아들인 결과이다.

우리도 지난 10년 젊은세대가 올라가 행복한 삶, 적어도 걱정 없는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버린 사회, 회사를 만들었다. 국가간의 문제만이 아닌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우리 스스로가 나쁜 사마리아인일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정권보다 더 할 이명박 정권이기에 더 걱정이 된다.)



글로벌 표준이 아닌 차이의 인정과 미래로 오를 사다리의 필요성

나는 자주 내가 일을 너무 적게 하면서 돈을 너무 많이 받는 것은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 밤 늦게까지 일을 하면서 있는 <88만원 세대>인 동료를 볼 때 더욱 그렇다. 나는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많은 선배들로부터 업무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 보살핀 덕에 생산능력이 '아주 좋아(?)' 어떤 기획서이고 기획서 찍는 기계처럼 한두시간이면 다 끝내고 하루 종일 '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너무 일을 많이 한다는 소릴 듣는다. 

이렇게 보면 나는 능력에 비해 일을 너무 적게하고 있고, 그들은 능력에 비해 일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이 된다. 거기에다 나는 노동가치설의 가진, 적어도 그것이 '윤리적'인 진리치를 믿고, 회사의 많은 부/매출이 나보다 더 많은 시간 회사 일에 헌신하는 그들의 노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안한 감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노동가치설의 윤리적 진리치는 정운영 교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정운영 교수가 강의시간에 노동가치설을 해석하면서 적어도 맑스(Marx)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나 팔이나 다리가 불구인 사람이 같은 시간 노동을 하였다면, 그 생산량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는 동일하다고 말했다. 이런 점은 노동가치설이 맞냐, 틀리냐를 떠나 하나의 인간에 대한 윤리적 지침, 평등성에 대한 생각을 준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가 말했던 something, 촉촉/축축한 무엇, 인간을 이루는...)

나와 대학을 갓 졸업한 동료가 평평한 축구장에서 아무런 배려없이 경쟁한다면 문제가 있다. 이것처럼 우리가 현재 듣고 있는 글로벌 스탠다드, 평평한 축구경기장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가를 장하준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보여준다. 그것도 아주 역사적으로 접근하여 자신의 주장이 아닌 그들(신자유주의자들)의 선구자들, 그들 자신의 나라의 정책과 사례들을 통해 통렬하게 비판한다.

한미FTA를 체결하자고 말하는 시점에, 교육을 정상화한다면 시장자율에 맡기자는 시점에 이런 것들이 정말 '표준'인지 다시 생각해 본다. 그리고 표준이면 무조건 따라야하는지, 왜 표준을 만드는지, 또는 표준이 만들어지는지 생각해 본다. 이런 모든 것의 결정 기준은 '행복한 삶'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데올로기적 수사를 떠나 '불행'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말로 설득하기가 어려운 사람들은,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정책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볼 수 있어서가 아니라 이런 정책이 '옳다'고 확신하는 이데올로그들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독선주의가 이기주의보다 더 고치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희망은 있다. 존 메이나드 케인즈는 자신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다는 비난을 받자, "사실이 바뀌면 나는 생각을 바꿉니다. 당신들은 어떻게 하십니까?"하고 대꾸한 것으로 유명하다. (pp.333~334)
세계경제 질서 안에서 가난한 나라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우리 사회 안에서도 젊은세대가 경쟁력을 갖고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으려면 유연한 고용체계와 경쟁적 교육체계를 도입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런 정책으로 개인적인 이득을 볼 수 있는 세력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자신이 그렇지않은가? 암묵적으로라도 동조하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 볼 문제다.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글 내용 중 언급된 책들

88만원 세대 - 10점
우석훈.박권일 지음/레디앙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1 - 6점
토머스 프리드만/창해

이랜드. 비정규직법을 보는 관점: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그리고 IMF체제의 유산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읽은 적은 없다. 하지만 몇번이고 읽을 기회는 있었고 지금도 손을 뻗으면 닿을 곳에 책이 있다. 이 책에 손이 가지않는 것은 '편협'하게도 세계화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세계화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에 대한 반감은 말보다 그 결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이다.

1996년 취직을 한 후 1997년 결혼을 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IMF시대'를 만났다. 하지만 나는 지금 사회생활을 막 시작했거나 시작하려고 준비하는 젊은이 보다는 운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그때 '사오정, 오륙도' 소리를 들으면서 떠난 분들과 비교해도 그렇다. 감봉정도의 수준에서 사회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회사를 다니며 씁쓸할 때가 있다. 대학을 막 졸업한, 아니면 대학을 졸업하고 몇년이 지난, 또는 대학을 아직 졸업하지 못하고 '유연한 고용관계'를 맺고 돈을 벌고 있는 동료들을 볼 때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어느 특정회사의 문제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이지만 내가 몸 담고 있는 곳에서만이라도 이런 문제를 비켜갈 수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재작년에는 함께 일하는 이런 친구들 중에 한명만이라도 제대로 된 처우를 받도록 하겠다는 개인적인 연간목표를 세운적도 있다. 이런 동료들은 <88만원 세대>라고 불린다.

 많은 회사들(특히 현대판 노가다인 인터넷, IT기업에서는)이 젊은 세대의 창의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이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기보다는 이들을 싼 임금의 대상으로 본다. 그리고 '새로운 젊은 인재' 양성보다도 다른 회사의 경력직을 선호한다. 10여년의 사회생활 사이 <88만원 세대>와 함께 만들어진 다른 양상이 'Head Hunting/억대 연봉 회사원'인 듯 하다. (평평하지 않고 한쪽으로 화끈하게 치우친 임금구조, 노동계급 내에서의 양극화!)

첫단추를 잘 꿰어야 - 왜 학교도 직장도 재수, 삼수를 하는가?

20대 남성 ‘눈높이 낮추느니 차라리 백수’ - 한겨레신문 2007.4.21, 16면
어제(4월21일) 한겨레 신문에서 <20대 남성 '눈높이 낮추느니 차라리 백수'>라는 기사를 읽었다. 그 내용을 보면 비교적 고용의 질이 떨어지는 서비스업의 새 일자리는 기대수준을 낮춘 여성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제공하지만, 노동시장에 신규 진입하는 고학력 20대 남자들에게는 그다지 관심대상이 못된다.
 
왜냐하면 “남자가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가부장 문화가 건재한 상황에서 학력 수준이 높은 남자들은 질 나쁜 일자리를 택하느니 취업 준비를 계속한다”며 “처음부터 비정규직으로 시작하면 정규직으로 올라서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 공무원 시험을 비롯한 공공부문 취업에 매달리는 것을 두고 눈높이가 너무 높다고 비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정규직 일자리 수는 최근 7년간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했다. 20대 '백수'는 109만명이고, 취업자는 399만2천명으로 인구(665만3천명)의 60%를 차지했다. 자영업 부문 종사자가 29만8천명, 임금근로자가 369만4천명이었다. 임금근로자 가운데 정규직인 상용근로자 비율은 58.1%였다. 20대 전체의 고용률(생산가능 인구 가운데 취업자의 비율)은 최근 몇년 동안 뚜렷한 변화가 없었으나, 20대 남성만 놓고 보면 고용률이 급격히 추락한 것으로 드러났다. 2002년 65.2%에서 지난해 60.5%로 5년새 4.7%포인트나 떨어졌다.

어떻게 보면 '여성 상위'라 할 수 있는 시대적 분위기와 학업성취도나 커뮤니케이션 능력에서도 대졸 여성보다 그 다지 나아보이지않는 대졸남자들이 가부장적인 책임까지 뒤집어써야할까? 이 세대가 불행해 보인다. 그리고 '첫단추(첫직장)'를 잘못꿰어 계속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동료들을 볼 때 위에서 말한 '어려운 현실'의 강도가 실제보다 더 클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 세대를 행복하게 만들려면 적어도 이것들은 철폐해야 한다.

1. 여전히 가부장적인 문화(직장생활을 하는 잘나가는 여자에게도 이런 문화는 질곡이다), 2. 학력철폐를 부르짖듯이 비정규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할 때 갖는 선입관과 이를 강화하는 제도적 관행(학력철폐를 위한 블라인드 면접처럼 경력직도 이런 것이 필요하지않을까?), 3. 궁극적으로는 이런 질서를 유지, 강화하는 법제도의 개폐가 필요하다.

재수의 경험을 살려 말하면 재수하여 잘되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으면 문제이다. 나이는 먹어가고 심신은 '썩어' 간다. 그런데 학교와 달리 취업 재수에서는 놀지않고 성실히 준비했다는 자신의 알리바이까지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 '해외연수' 등에 돈을 박아야 한다. 돈까지 '썩어' 나가는 것이다.(2008년 4월 22일 추가)



2014.4.3일 장하준교수 내용과 렉서스 순서를 바꿈

facebook.com 짧은 글 추가 ---

'사기가 떨어진 근로자들은 본인이 하는 일보다는 일이 어떻게 조직되느냐는 문제로 고통을 겪는다. 바로 이 점이 작업장을 하나의 사회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며 포기하지 말아야할 이유다. 현재와 과거를 불문하고 작업장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결집하는 방식에는 세가지가 있다. 첫째, 작업자들은 차 한 잔을 나누든 도시를 가두행진하든 간에 일과 결합된 의례에 참여했다. 둘째, 수준 높은 사람이 그들을 가르치고 지도했다. 중세 마스터 장인의 공식적인 양아버지 역할이나 어느 일터에서든 수시로 오가는 비공식적인 조언들에서 이런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셋째, 직접 얼굴을 맞대는 친밀한 관계를 통해 정보가 공유되었다. 친밀한 일터인 작업장에 노동을 평가하는 새 가치관이 도입되어 작업장을 교란한다.' '일이 잘 돌아가는 작업장에서는 정당한 권위가 사람 자체에서 나오지, 서류 속의 권한과 의무 조항에서 나오지 않는다.' (장인, 리처드 세넷) 세가지 중 하나도 없는, 점점 적어지는 지금의 작업장은 공장이다. 공장은 하나의 사회적 공간인 작업장이 아니다. 현재의 나를 키운 선배들이 그립다. 나는 그들같지 못하다. 공장을 바꾸기 전에는 사람들이 찾는 멘토는 없을 것같다. 멋진 말들을 늘어놓는 이데올로기적 공갈빵, 멘토 말고 ... 오늘부터 옆사람에게 메일질하는 것부터 줄여야겠다.

장인 - 10점
리차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21세기북스(북이십일)
2008/04/19 14:29 2008/04/19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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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도구적 이성 비판 - 이성의 상실>을 집어 들어 "실용주의와 그에 대한 비판"을 읽었다. '실용주의 정권'이 출범한 기념으로 실용주의에 대해 정확한 정의를 알기 위해서이다. 막스 호르크하이머가 존 듀이(John Dewey)와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를 살피면서 내린 실용주의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실용주의는 우리의 이념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광범위한 실용주의적 정신의 확대는 진리의 논리학(특정 이념 자체의 절대적 타당성)을 개연성의 논리학으로 대체한다. 이명박씨가 시장 시절에 불도저처럼 밀어붙여 성공적으로 청계천을 복원하여으니 대통령이 되어서도 잘 할 것이라는 식의 논리말이다. 여기서 모든 대통령 후보자 중에서 통계적 개연성/가능성을 많이 보여준 사람이 누구냐는 판단으로 넘어간다.

도구적 이성 비판 - 10점
M.호르크하이머 지음, 박구용 옮김/문예출판사
실용주의는 모든 이념들의 의미(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선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활성화, 소득격차의 해소 등의 국가적 아젠다)를 747계획, 대운하계획과 같은 스케치나 계획의 의미로 환원시킨다. 이젠 어떤 숭고한 목적은 존재하지 않으며 수단적 가치의 효용성에 따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진리가 결정되는 시대가 왔다.

"실용주의는 회상이나 숙고를 위한 시간이 없는 사회를 반영한다."

이 말에 의지하여 살펴보면 국보위에서 활동한 분과 논문 표절 의혹이 있고,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는 분들, 냉전적 통일관과 친미적인 활동을 한 분들이 정권의 핵심을 구성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 같다. 실용주의를 앞세우는 정권에 표를 던진 것은 적어도 우리들 중 다수이니 말이다.

다만 스스로 실용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표를 던졌다면 모르지만, 이런 '회상이나 숙고를 위한 시간이 없는', 따라서 반성이 없는 사회가 될 것이이라는 것을 모르고 표를 던졌다면 스스로의 무지를 반성하고 최근 누군가 했던 말처럼 "일말의 책임"을 느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전사회적으로 우리의 희망을 확정하는데에 '시장 조사와 갤럽의 설문 조사'가 철학이나 이념보다 우선시 될 때 이미 우리 미래의 다양성(질적인 성장 가능성)은 상실한 것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면 선거 때마다 당의 강령과 목표에 따라 후보가 뽑혀지고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하는 것이 아니라 갤럽 설문 조사와 모바일 투표를 할 때, 또 흥행의 성공 운운하는 그것의 당리 당략적 효용성에 열광하고 있을 때, 그 때부터 소리 소문없이 실용주의란 값 싼 선택지만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정당정치를 통한 다양성의 확보와 절차(rule)를 통한 서로 다른 이익집단/계급간의 타협이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에는 이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없는 포퓰리즘에 공공선에 대한 부정, 소유권의 절대화, 국가의 개입금지 등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만이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 때문에 최장집교수가 "사회적 갈등 균열에 대응하는 정당체제" 구축을 통한 민주주의의 심화를 주장하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것이 지난 10년, 아니면 1980년 이후의 이념의 과잉이 초래한 결과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우린 실용주의란 선택지 이외의 선택을 할 수 없는 절름발이 사회에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세계가 과거에 지쳐 있으니,
오, 세계가 죽음을 맞이하거나, 최후의 휴식을 가질 수도 있겠다.

이념이 죽은 시대라는 말은 벌써 몇 십년전에 들었다. 흑묘 백묘 상관없이 쥐를 잘 잡아야 하는데 귀납법의 약점은 항상 사후적 판단에 의존한다는, 즉 흑묘가 잘 잡는지 백묘가 잘 잡는지, 아니면 둘 다 그런지 지금 당장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쥐를 잘 잡는 실용주의 고양이인지, 아니면 쥐보다 국민을 잘 잡는 정치가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가혹한 정치는 백성들에게 있어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고통보다 더 무섭다 (苛政猛於虎 가정맹어호)"고 했다. 모든 것이 뜻대로 잘 되어 모두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다.

more..

2008.3.29 http://www.aladdin.co.kr 메인

알라딘 TTB 리뷰 선정

     ▲ 한 주동안 작성된 TTB리뷰 가운데 좋은 리뷰로 선정(2008년 3월 3주)


관련글 : 이성적인 사회를 향하여
저자 :허버마스, 출판사: 종로서적

허버마스( Jurgen Habermas )는 베버의 합리성의 개념을 근거로 하여 현대 사회에 있어서의 비판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즉 그는 서양에 있어서 근대성 또는 현대성을 어떻게 이해 할 것이며, 오늘날 심각한 난점을 드러내고 있는 근대성의 테제를 어떻게 극복 발전시킬수 있겠는가 하는 철학적 문제의식을 가지고 사회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한편 허버마스의 근대성과 합리성의 주제를 서양의 지성사적인 맥락에서 생각을 하여 보면 그의 관심을 가까이에서 살펴 볼수 있다. ...

... 전문지식과 정치의 관계에 대하여 세가지 모델을 설명하였다. 또한 실용주의 모델만이 민주주의에 관계된다고 허버마스는 주장한다. 이는 정책 결정에 있어 전문가와 지도자 사이에 책임과 권력의 분립이 행해 진다면, 일반 시민은 여론을 통하여 정당화하는 역활을 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산업 사회의 기술 관료적인 통제는 어떠한 민주적인 정책 결정의 과정이라도 목적이 없는 것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2008/03/02 14:39 2008/03/02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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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바슐라르에 관련된 다른 책들을 집어들어 읽다가 상상력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살펴 볼 필요성이 있구나 생각되었다. 단순 문학비평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슐라르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에 문학비평이 아닌, 다른 형태로 심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바슐라르의 상상력 연구는 객관적 인식의 정신 분석을 통해서도 쉽게 제거되지 않는 인식론적 방해물들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객관적 앎/지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바로 상상력이다. 그런데 바슐라르에 의하면 상상력은 그 자체의 고유한 법칙을 갖고 있다. 그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보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원형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는데, 상상력이 이 원형을 향해가는 정신의 자체적인 힘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원형과 외계의 사물 사이에 놓인 상상력은 끊임없이 사물을 원형에 가깝게 변형시키려는 관성을 갖게 된다.

바슐라르 이전의 상상력은 이미지를 기억하는 정신 기능이었다. 하지만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은 대상의 형태가 아니라 그것의 물질성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물은 일정한 형태가 없지만 물의 이미지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바슐라르는 물, 불, 공기, 대지의  물질성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이 유형화된다는 사원소론을 정초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이미지를 기억할 뿐 아니라 변형하고 극단적으로는 이미지를 지워버림으로써 <이미지 없는 상상력>의 단계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물 위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취한 나르시스의 신화는 상상력의 작용을 잘 보여준다. 거울에 뚜렷하게 비친 얼굴보다 물 위에 흐릿하게 비친 얼굴이 더 아름답다. 또 물 위에 핀 연꽃을 찍은 사진보다 그것을 그린 모네의 회화가 더 아름답다. 이러한 이유는 물위의 영상이나 회회의 영상은 흐릿하지만 그것 들여다보는 인간의 상상력은 수면의 파동을 따라, 또 그림을 따라 끊어진 부분을 이어가면서 하나의 영상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르시스의 경우 물 위의 영상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모네의 그림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상상력의 밑바닥에 대상에 대한 사랑이 들어있기 때문이고 바슐라르는 말한다.

바슐라르는 상상력을 심리적, 사회적 요인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그 자체에 존재론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상상력은 과학에 있어서는 인식론적 장애물이지만 문학/예술에 있어서는 미적 체험과 존재의 전환을 경험할 수도 있도록 한다.

이러한 상상력에 대한 인식이 프랑스 철학적 사유에 강한 영향을 준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인식론적 장애물에 대한 인식이 그것이다.

바슐라르의 철학체계와 영향

한참 고심하여 바슐라르의 체계를 도식화한 것이다. 상상력은 각 개인들마다 서로 다른 주관적인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보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원형으로 객관적인 것이다. 개개인들이 아닌 인류 전체에게 있는 상상력의 존재는 바슐라르 이후의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세계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된다.

위 도식은 너무 도식적이므로 참고용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도식을 그리면서 몇가지 자신없는 부분도 있다. 사유 다음에 문학적 산출물을 놓을 수 있는가, 또 상상력을 아비투스와 비슷한 것으로 유추해서 이해할 수 있는가 등이다. 그림을 그린 것은 상상력의 위치와 이것과 알뛰세르, 푸코 등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니 그 정도의 수준에서만 의미를 찾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이런 책을 더 찾아 관련된 부분을 같이 읽었다.
새로운 철학강의 제1부 - 논리학 및 인식론 - 8점
D.위스망, 앙드레 베르제즈 지음/인간사랑
제6장 물질의 과학 - 이론과 경험
이장에서 바슐라르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것은 아니다. 아주 조금 다루는데 하지만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을 준다.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1991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1960~1985)
크리스티앙 데캉 지음/책세상
제9장 인식론과 그 모델들

첫번째 책의 해당 장에서는 전반적인 인식론적 사유에 대해 알 수 있고, 두번째 책은 프랑스 철학 안에서 현대의 인식론적 논의를 다루고 있다. 두번째 책은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첫번째 책은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만 철학 입문서로도 괜찮은 듯 싶다.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오류 위에 과학의 도시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 바슐라르, 알뛰세르
요즘 <프랑스 비평사 - 현대편 (1983)>을 읽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 '오해도 하나의 이해'라는 말을 듣고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지금도 가끔씩 이 말을 되뇌이곤 한다..
2008/02/03 23:18 2008/02/03 23:18
From. 비밀방문자 2013/07/02 17:53Delete / Modify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jjpark 2012/09/10 13:22Delete / Modify
맞습니다. 그때 인용은 안한 것 같은데 "상상력과 공감, 그리고 스토리"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나옵니다. 그리고 아렌트 책에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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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de Gaston Bachelard

요즘 <프랑스 비평사 - 현대편 (1983)>을 읽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 '오해도 하나의 이해'라는 말을 듣고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지금도 가끔씩 이 말을 되뇌이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시작을 이 책에서 찾은 듯하다.

프랑스 비평사 (근대/현대편) - 8점
김현 지음/문학과지성사

이 책의 서문에서 김현은 이렇게 말한다. "바슐라르의 스승이었던 아벨 레이는 사람은 오류를 통해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 오류를 완전히 고칠 수는 없겠지만, 그 오류를 객관적으로 정신분석해 나가면, 그 오류를 가능케 한 내 욕망의 뿌리를 얼핏 엿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욕망을 객관화시킬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숙할 수 있을까?"

많은 경우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않는다. 관심 갖는 부분만을 읽고, 또 다른 책에서 관련된 부분을 책아 읽고 그러다보면 네다섯권의 책이 며칠간 옆에서 뒹군다. 이런 버릇대로 제3장 <바슐라르의 문학비평>만 읽었다.

바슐라르는 과학철학자로 시작해서 문학이론가로 사고를 전개해 나갔다. 과학철학자로서의 바슐라르의 이야기는 알뛰세르로 이어진다. 막연하게 그렇겠지 생각하긴 했다. 오래된 책을 꺼내들고 그때 몰랐던 사실을 확인한다. 예전 이 책을 읽을 땐 알뛰세르도 푸코도 보기 전일게다. 아마 그 땐 책의 내용도 이해를 못하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오해'라는 방식으로 이해했을 게다.

그렇다고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바슐라르를 바슐라르 그 자체로 다시 읽으며 이해했을까? 이번엔 알뛰세르식으로 아니면 푸코식으로. 아니다.  실제는 현재의 내 수준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해의 강도를 말 그대로 '털 끝만큼도 틀리지않고 똑같이'라는 기준, 즉 '사고의 동일성'이라는 기준으로 적용한다면 아마도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완벽한 이해란 스스로가 이해할 대상 자체가 '되어야' 가능하다.

이렇게 말하면 자각만이 이해했다고 말할 권리를 갖게된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인식의 근거를 찾았다. 또 칸트는 이런 맥락에서 선험적 인식주체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따분한 이야기 전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부딪히는 것이 '왜 저 사람은 저래!', '이해를 못하겠네!' 등의 생각과 함께 의사가 통하지않는 사실에 좌절하곤 한다. 대화의 어려움이 여기서 생긴다.

초기 바슐라르는 '객관적 인식으로서의 과학적 인식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과학적 인식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여 갖게 되는 감각적 인식 혹은 공통적 인식 사이에는 커다란 단절,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말한다. 알뛰세르에게서도 중요한 개념인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 바슐라르는 객관적 인식은 가능한가, 만일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객관적 인식이라고 알려져 온 수많은 잘못된 인식들이란 무슨 의미를 갖는가라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답하려 한다.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의 책과 생각에 나온 <시선은 권력이다>에 대한 소개 기사를 읽었다. "나와 타자 사이의 동시적 상호인정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사르트르의 생각이 더 옳아 보인다. 남이 자기를 보듯이 나를 보고, 또 나도 나를 보듯이 남을 본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는게 그 이유다." 박정자 교수의 말이다. 어제 밤에 썼던 완벽한 이해란 불가능하다는 대목과 이어졌다. 이렇듯 생각은 사나운 가시덩쿨처럼 여기 저기로 가서 붙어 얽혀버린다.

그런데 이런 상호 이해 불가능성, 오해로 점철된 인간 인식의 객관성을 주장하고 그 기반을 세우려는 노력이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이다. 바슐라르의 몇개의 명제를 살펴보자.

  1. 과학적 지식은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즉 사실에 있어서는 과학적 지식이 객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객관성은 그때 하나의 한계로 제시된다. 객관적인 것은 경험의 합리적 한계이다.(p.88)
  2. 사실-하나의 대상에 대한 원초적인 경험은 과학적인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실/경험은 계속적인 합리화에 의해서 객관적인 것을 가능케 한다. 즉, 끊임없는 합리화에 의해 원초적인 경험은 과학적인 경험이 되어 간다.
  3. 따라서 과학적 인식은 끊임없는 합리화 움직임 속에 있는 인식이며, 계속 검증되는 인식이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합리화/객관화 방법은 대상을 관계 밑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대상이란, 지각할 수 있는 사실의 그룹이다. 그것은 정돈할 수 있는 일련의 지각이며, 더 나아가서는 정돈 그 자체이다.> 정돈은 하나의 관계 개념이다. 왜냐하면 관계를 짓지 않는 것은 정돈될 수 없기 때문이다.
  4. 그런데 현대과학을 돌아볼 때 객관화의 방법은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여러개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방법이 대상보다 선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법이 대상 기술/과학적 인식을 결정한다. 방법 자체가 대상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앞의 명제들에 따라 이런 추론을 끌어낼 수 있다.
  1.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보편성/일반성이 반드시 객관성은 아니다. 보편적/일반적인 것은 경험의 동질성(同質性)을 전제로 하고 있지, 어떤 경험의 검증과정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 객관화의 방법이 없는 한 객관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관계에 의거한 객관성은 그것에 따라 관계를 결정하는 유동성과 관련을 맺고 있다. 사실상 대상이 관계의 복합체로 제시될 때부터, 그것을 여러 방법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객관성은 입증의 사회적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객관성에는 변증론적이며 자세한 방법으로 객관화의 방법을 제시하여야만 다다를 수 있다. 명증의 표적은 대상이 아니라 방법이다.
  3. 하나의 사고의 객관성은 그것이 오류의 교정과 관련을 맺고 있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어떤  생각의 객관성은 그것이 오류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그만큼 더 명백하고 분명하게 될 것이다. 도달하려면 방황해야 한다.>

상호 이해 불가능성, 오해/오류의 기반을 이런 테제를 받아들인다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객관적이지 않은 보편성/일반성이 실재한다는 것, 보는 각도/방법에 따라 대상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경험/사실 자체가 객관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클라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의 천동설, 자본주의에 대한 애덤 스미스 이후의 주류경제학자과 마르크스의 대립, 경험주의에서 나타나는 귀납적 비약 따위가 이런 예들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방법에 따라 대상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의 측면에서 볼 때, 그리고 그것을 자연과학의 영역이 아닌 사회과학에 대입한다고 할 때 문제는 더욱 커진다. 사회는 보는 사람들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 즉 당파성에 따라 보는 방법/각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고 그것의 진위를 가릴 기준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바슐라르의 논의와 실재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오류(또는 오류로 점철된 현실 사회주의의 위기), 여기에서 알뛰세르가 나온다. 객관적이지 않은 보편성/일반성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가 알뛰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한축을 이끌고, 마르크스주의가 왜 과학인가/맞는가가 다른 한축을 이룬다. 전자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이론 등이 전개된다면 후자에서 사회운동/검증 속에서 오류의 정정을 통한 '전화' 등의 이론을 전개한다. '위기를 산출케한 모체 자체를 부인'하지 않고 '그 내부에서 생겨난 위기를 극복'/돌파할려고 한다.

김현이 말하듯이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가 오류 위에 과학의 도시를 건설하려 한 것에 있다. 그가 오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금세기초의 과학적 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p.91) 바슐라르가 처했던 상황과 동일한 상황에 알뛰세르가 있었다.

철학,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사상, 역사적 사실의 내용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위치를 확인하고 이것(시대의 위기)을 돌파하기 위해서이다.

오류 위에 과학의 도시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방법을 바꾸면서이다. 그런데 방법을 바꾼다는 것은 과거의 방법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은 과거의 방법을 새로운 방법으로 감싸면서 더욱 방법적으로 되어간다. 과거의 방법을 버리지 않고 감싼다는 것은 낡고 쓸모 없게 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밝힌 과학적 지식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히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밝혀지고, 오류는 부정적인 성격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가능케 한 긍정적인 성격으로 '전화'한다.

하지만 전화된 방법은 과거의 방법이 아닌, 과거의 것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인식론적 국경이 있다. 알뛰세르가 말하는 '인식론적 단절'과 같은!

캉기옘은 바슐라르가 죽은 후 파리대학 추도 논문집에서 그의 인식론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첫번째 공리는 오류의 이론적 우위에 관련되어 있다. <진실은 논쟁의 끝에서만 그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최초의 진리란 있을 수 없다. 최초의 오류들만이 있다.> ... 최초의 진리는 단수이며, 최초의 오류는 복수이다. 보다 간결하게 같은 공식은 다음처럼 진술된다. 오류에 기초한 진실이야 말로 과학적 사고의 형태이다.

대학에 다닐 때 함께 공부하던 선배가 진리를 알려주겠다며 귀에 속닥였던 말이 생각난다. "맑스주의는 위대하다. 왜냐하면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 땐 몰랐지만 이 말은 아마도 레닌의 말일 것다. 지금 생각하면 진리성은 이런 경구/신조로 존재하지 않는다. 레닌으로부터 시작한 이런 경구들, 진리를 담보하고 있는 전위조직, 이 조직의 일괴암(一塊巖 monolith)성 등이 이데올로기(검증되지 않은 보편적 진리)로 굳어질 때 '마침내 위기'가 온다.

이런 정치조직뿐만 아니라 기업도, 개인도 살아가며 어디서도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며 오류 위에 진실의 돌을 쌓을 때 전진이 가능하다. 요즘 자기 전에 몇 페이지씩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를 읽는다. 여기에서도 위대해지려면 바슐라르가 과학의 위기에 대응하던 것과 비슷한 태도를 갖을 것을 권유한다.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이끄는 핵심 심리는 스톡데일 패러독스이다. 결국에는 성공할 수 있고 성공할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p.140) - 짐 콜린스

과학자로서 여러분들은 과학은 파괴되지 않으며, 어떤 내적 위기도 그것의 비약을 멈추게 할 수 없으며, 그 통합력이 거기에 반대하는 것까지를 이용하는 걸 그것이 허용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과학의 기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정상으로의 성장을 이끌어냅니다. 과학을 파들어 가면 갈수록 과학은 솟아오릅니다. - 바슐라르, <과학적 방법의 철학적 문제>

바슐라르가 말하는 '과학의 기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20세기초의 과학적 위기를 말한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미군 장군의 이야기다. 알뛰세르에 의하면 위기의 시대에는 그 위기를 산출케한 모체 자체를 부인하려는 경향이 생겨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위기 자체에서도 벗어나려 한다. 기업들도 그렇고 그런 기업들은 '위대해'질 수 없다.

하지만 왕왕 위기를 인식하지만 모체 자체를 부인하면서 성공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지난번 살펴본 박형준씨의 경우가 그렇다. 이때 그것을 성공이라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인 문제, 가치의 문제가 제기된다. 위기의 장에 있는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아니면 그는 모체를 벗어났기 때문에 동일한 장, 또는 회사에 있지 않으므로 위기를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입장에서 위기는 청산/해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위기를 바라보는 데도 수준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따라서 세계적, 사회적, 역사적, 국가적, 조직적, 개인적 등의 수식이 붙게 된다. 박형준씨의 경우 당시 제기되었던 문제를 청산하고 다른 '세속적인' 차원에서 성공한 것이다.

왜 오류에 빠질까? 바슐라르는 주체의 정신적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틀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틀림은 그의 경험을 보다 더 풍부하게 해 준다. 자기는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틀린다.
 
바슐라르의 주체의 정신적 활동의 가장 기본인 오류라는 개념은 인식론적 방해물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낸다. 인식론적 방해물은 과학적 인식의 방해물, 교정되어야할 오류와 동일어이다.

인식론적 방해물이 생기는 것은 과학적 인식에서는 자명한 것,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구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자명한 것, 주어진 것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과학에 있어서 객관적 인식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서 주어진 것은 위에서 말했던 사실, 원초적인 경험들이다.
 
그런데 <그 주어진 것이 결국 사고에 방해물이 될 때, 다시 말해 사고가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거나 오히려 경험을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그것을 만나는 곳에 그것을 위치시켜야 한다>

객관적 인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인식론적 방해물의 제거라는 뜻에서 정신 분석이라는 용어를 들여온다. 본능의 개입을 과학적 지식에서 제거하는 것이 객관적 인식의 정신 분석의 목적이다. 그리고 바슐라르의 정신 분석이라는 용어는 교정되어야 할 일반적 인식의 '세척', 토론과 규제를 벗어나려는 심리상태의 교정, '모든 무의식적 가치 부여-문화'로부터 과학적을로 객관화된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이 글의 첫부분에서 이야기했던 오해도 하나의 이해라고 이야기했던, 그 뒤 "창조적 오해"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던 부분은 정신분석에 대한 바슐라르의 이해 대한 평가이다. 바슐라르는 정신 분석에서 하나의 방법론을 찾았지, 위에서 본 그 자신의 사고의 방향을 그것 때문에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니다. 또 바슐라르는 정신 분석에서도 인간은 치유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 태도를 견지한다. 이런 바슐라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다.

그(바슐라르)는 정신 분석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오해 자체가 그에게 그의 멋진 책, 내가 찬탄한 책을 만들게 한 것이다. - 마리즈 쉬와지 (프지케, 1963년 2)

사람들 간의 오해는 불화를 만들지만 이론/사상에 대한 오해는 새로운 방법/접근법을 만들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도 한다. 그때는 더 이상 이것을 누구의 이론을 오해했다라고 부르지 못하게 된다. 오해를 통해서 그는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열어젖힌다. 바슐라르의 문학이론으로 알려진 4원소론에 의한 상상력 연구이다. 상상력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존재한다. 이 상상력이 앞에서 본 장애물이면서 문학적 세계, 미적 세계의 기반이다.

지난 목요일 회사의 전직원 모임에서 이런 '덕담'을 들었다. 5-3=2인 이유는 오해를 3번만 더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2+2=4인 이유는 이해하고 이해하면 사랑이 되니.. 노스님이이 동자승에게 문제를 내고 해석을 해준 거란다. 우리의 오해도 세번 더 생각하여 창조적 오해가 되거나, 아니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해 위에 위대한 기업을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불화만 있을 뿐이다.

'스스로의 오류를 자각하고, 그것을 가능케 한 내 욕망의 뿌리를 얼핏 엿볼 수 있다면. 언제 내 욕망을 객관화시킬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숙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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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프랑스 현대철학에서 바슐라르 상상력의 위치
어제에 이어 바슐라르에 관련된 다른 책들을 집어들어 읽다가 상상력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살펴 볼 필요성이 있구나 생각되었다. 단순 문학비평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슐라르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에 문학비평이 아닌, 다른 형태로..
2008/02/01 22:46 2008/02/0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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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에 걸쳐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고현범, 책세상, 2007)을 읽고 있다. 책은 얇지만 잘 읽혀지지 않는다. 이 책은 뉴미디어(디지털기술)가 만들어낸 융합적 매체인 휴대전화를 통해 뉴미디어 시대의 쟁점들 - 뉴미디어가 공간과 시간에 미치는 영향, 이로 인한 의사소통 형태의 변화 등을 분석한다고 한다.

휴대전화, 철학과 통화하다 - 6점
고현범 지음/책세상

장치 정신
1장과 2장은 매체철학은 무엇인지, 그리고 매체철학을 구성하는 담론들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를 통해 필자가 길어올리는 개념은 미국의 사회학자 카츠(J. E. Katz)의 "장치정신"이다. 이 개념은 기술결정론적인 편향을 갖지않고 기술 공학 시대 혹은 기술 복제 시대에 의사소통 기술 매체의 논리를 반영한다고 한다.(p.54)
 
여기서의 장치는 특정한 작업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물질들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 장치에 작업을 완수하는 능력 그리고 사회적인 작용 또는 어떤 목적을 대체로 효율적인 방식으로 그리고 때로는 정치적인 대상을 갖고, 달성할 수 있는 조직화된 그룹이라는 의미가 덧붙여진 장치이다. 그런데 이 장치는 구별된 것을 종합하고 상호관계를 맺게 하는 것, 매개의 의미를 갖는다. 또 우리가 의도하고 목적한 것을 성취하기 위한 '매개'라는 의미에서 수단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기계적인 의미에서는 도구나 인공물을 말하며, 포괄적으로 장치를 뜻하기도 하는 바로 매체개념의 연장선에 서있다. (p.19, p.54)

정신은 피히테, 셀링, 헤겔 등의 독일 철학자들이 완성한 관념론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헤겔의 정신 개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제도와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확인하는 과정을 함축한다. 또 헤겔은 역사의 운동(변화)을 한 시대의 고유한 동력(시대정신)에 따라 파악하는데, 이것은 개별 인간의 행위 조건을 이룬다. 한 시대의 고유한 동력은 변화하고 이 변화가 역동적인 역사의 전개를 추진한다. 이 한 시대의 고유한 동력은 역사 속에서 활동하느 개인의 의도와는 무관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정신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위 방식을 지시하는 문화를 의미 한다.(pp.54~55)

결국 카츠의 장치 정신의 강점은 한 시대의 기술과 문화의 상호 작용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데 있다. 그러면 이 '장치 정신'이란 개념을 이런 말로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매체 정신, 또는 매체 문화와 같이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내는 이유는 개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역사적으로 개념에 새겨져 있는 '의미'의 무늬들이 만들어 내는 '간섭효과'때문이다. 매체 정신, 매체 문화라는 개념을 가지고는 디지털 기술 기반의 뉴미디어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 기술 자체가 가지고 있는 장치(device) 의존성은 '매체 정신'과 다른 의미론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디지털 기기들, 장치들의 정신이라는 뉘앙스 말이다.

새로운 개념 만들기 
하지만 헤겔의 철학에 기댄 정신이란 말 자체가 '장치'라는 개념의 선택처럼 잘된 것 같지는 않다. 다만 '정신'이라는 개념이 지니고 있는 (독일관념론적인) 역사성을 넘어 장치 정신에서의 정신이 "어떤 기술이 형성하는 문화적 맥락(상황과 한계)은 개별 행위를 집단적으로 규정한다"고 할 때의 '문화적 맥락'으로 이해해야 한다. 내가 정신이란 개념의 선택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엄밀한 학문적 논의, 특정한 글 안에서의 자기 정의를 포함하는 논의를 제외하고는) 많은 사람이 정신과 문화적 맥락을 곧 바로 이어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헤겔적인 의미에서의 문화적 맥락이 지닌 관념성(절대정신의 자기구현과정)은 우리가 맑스나, 푸코, 들뢰즈를 통해 보는 (유물론적인) 문화적 맥락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장치 정신이 "확인할 수 있고 일관되며, 일반화된, 역사를 통한 기술적 진보의 패턴에서 명백한, 기술에 관한 추론의 원칙이나 공통적인 전략의 집합을 의미"한다면 추론의 원칙이나 공통적인 전략의 집합인 정신을 에피스테메, 계열화(의미)의 논리 등으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공통적인 전략의 집합은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뉴미디어 기기로 한정한다면 "디지털 기계"는 어떨까? 여기서 기계(machine)은 들뢰즈가 말한 그 '기계'로 접속/계열화(문화적 맥락)을 통하여 의미를 만들어 내는 디지털 기기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런 정의들도 썩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장치 정신에서 보여주는 '정신적' 문화라는 느낌이 '기계'에서는 사라지기 때문이다. 매체, 미디어라는 개념이 만들어 내는 다분히 문화적, 정신적인 느낌이 장치 정신보다 못하다. 그렇다면 장치 에피스테메, 장치 계열은 ...

새로운 개념을 만드는 것을 어렵다. 과거의 개념에 빚지는 순간 과거에 쌓여 있던 의미들이 몰려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완전히 새로운 개념 - 차라리 세상에 처음 존재하는 단어를 만들면 그 내용을 채우고 기존에 존재하던 것들과 관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작업이 만만치않기 때문이다.

사업계획을 짜고 새로운 전략을 세울 때, 특히 과거의 개념으로 새로운 것을 설명할 때도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오해하기 일쑤이다. 비난하거나 추종한다. 또는 아무 것도 변한게 없네. 포장이라도 바꾸지하고 떠난다. 그래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은데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으니 보여 줄 수 없다. 그래서 컨설팅회사가 생기나 보다. 내부 요구를 듣고 정리한 후 해외사례를 하나 더 붙어 보여준다. 권위와 쓴 돈 때문인지 많은 경우 이들의 말을 듣는다. 씁쓸하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세계라 하더라도. 이 책의 필자가 새로운 개념을 하나 만드는 것이 났지않았을까?

계속... 디지털화와 샘플링, 축약   ..... 미세지각...
2007/12/02 22:41 2007/12/02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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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휴가이다. 휴가 중에 그동안 게으르게 뒤로 밀어뒀던 자동차의 고장난 부분을 고치고, 아내의 신발을 함께 사러가고 한의원에 들렸다.

그래도 나에게 휴가의 백미는 누워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읽다가 지치면 자고, 자다가 깨면 다시 책을 읽는 것이다. 이번달 8일에 샀는데 제목만 보고 던져놨던 이정우의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을 읽었다.이정우라는 '유목적 사유자'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에 대하여 쓴 글이다. 책을 읽으며 나보다 10년을 더 산 이정우와의 차이보다 동질감을 느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말이다. 그와 내가 걸어온 길이 다른데도 말이다.

탐독 - 6점
이정우 지음/아고라

이정우가 교사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에 파묻히기 시작했다면 우리집에는 서재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은 한달에 한번씩 교당과 봉황대를 오르내리며 먼지 쌓인 마루를 청소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이후로 '동학쟁이'였던 까닭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가 '동학쟁이'였던 까닭에 나와 형들은 한달에 한번 청소를 하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동네 한가운데 있던 낮으막한 동산의 꼭대기에 있던 텅빈 봉황대에 촛불을 켜고 앉아 주문을 외웠다. 그 어둑함과 좁은 산길을 오르내릴 때의 차가운 공기와 나무 냄새들, 저쪽 어둠 속에서 울던 밤새 소리들. 이런 경험이 아직도 내 도덕적 사유의 한 끝을 잡고 있다. 스스로 몸을 닦아 윤리적으로 고양되는 삶! 모든 사람이 하늘이라는 생각!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소위 말하는 교양서보다는 셋째 형을 따라 무협지를 더 많이 보았다. 이정우가 삼국지를 읽을 때 와룡생, 사마달, 검궁인, 냉하상 등의 책을 읽은 것이다. 다만 문학도였던 둘째 형이 밤새 쓴 시를 두 동생을 앉혀놓고 읽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생활은 몇 년동안 지속되었는데 이때가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동서양의 고전과 같은 이론(또는 교양)의 세계보다는 '생활세계'에서 주어진 어떤 느낌들의 중첩이 현재의 나를 결정한(영향을 준) 것같다.

철학과를 선택하게 된 동기도 그렇다.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못했으나 스스로 '민족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철학이, 막연한 철학적 무게가 필요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땐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민족적(동학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고 대학에 들어가 처음에는 동양철학 (사서삼경과 같은) 원전 강독을 꽤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을 더 많이 공부했다.

이정우가 자연과학(공학)을 공부하고 철학으로, 그리고 현재의 '유목적 사유'를 즐기는 이정우가 되었다면, 나는 철학에서 사회과학(특히, 정치학)을 왔다 갔다 하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석사, 박사, 그리고 교수까지 갔던 그의 학문적 이력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그리고 이젠 미디어의 세계를 이리저리 맴돌고 있는 나의 삶과 비교하기 그렇지만.

80년대의 상황이 이정우에게 생각하기를 강제했던 것처럼, 80년 막바지의 상황이 나에게 생각하기를 강제했다. 이때 나의 꿈은 죽기 전에 국가론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나는 알뛰세르에서 그람시로, 푸코로, 그리고 브르디외, 들뢰즈로 움직여 갔다. 나의 화두는 국가였고, 폭력적 국가장치들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였다. 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추상화된 개념이 구현되는 형태를 장(場, camp), 담론, 계열화 등의 개념에서, 이정우가 <탐독>에서 이야기하는 바로는 사건의 철학 속에서 찾았다.
 
나는 가끔 동시대에 산다는 것, 시대정신을 함께 나누어가진다는 것을 알고 온몸이 짜르르 진동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을 어떤 사람의 글 속에서 읽을 때가 그렇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이정우보다는 이진경의 글에서 많이 느끼곤하느데, 내가 군대에 가서 (운동권에서 말하는) 원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못읽게 되면서 푸코에 빠져들게 되 것과 이것을 맑스적으로 해석하고, 맑스에게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려고 하면서 가게된 경로가 이들이 가고있던 경로와 비슷했기 때문일까? 푸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푸코를 읽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영천 3사관학교와 광주 상무대에 있으면서 푸코의 <성의 역사>, <말과 사물> 이런 것들이 보안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의 역사>를 보면서 야릇하게 웃던 훈육관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동시대를 산다는 생각은 책 속에서 뿐만이 아니라 회사를 다니면서도 느끼는데, 서로 다른 처지, 회사에 있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려는 것을 직접 듣거나, 어딘가에서 전해들을 때이다. 그럴때면 혼자 있는 것이 아닌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떤 자신감 같이 것이 모락모락 마음 속에 피어오르기도 한다.

<탐독>은 3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소년/청년시절 읽었던 문학작품에 대한 가벼운 평을 쓴 부분, 대학시절 공학도로서 만난 과학적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원에서 철학을 배우고 다시 사유하면서 읽은 책들.

사실 나는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다. 아니 애써 관심없는 척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한번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을 읽다가 어떤 영감을 얻으면 몇날 며칠을 잠을 못자기 때문이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리장성도 쌓았다 부셨다 하면서 지낸다. 회사를 안다니고 직업적 작가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내다간 회사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굳이 읽으면 시집을 읽는데 왜냐하면 시라는 형식이 소설보다는 생각이 나면 쉽게 옮겨적어 놓을 수 있어 이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섰던 동기가 소설가 같은 글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것이긴 하지만 직업적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지 오래다. 지금 사는 삶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동료들과 함께 소설은 아니지만 다른 양식으로 표현하는 창조적인 삶을 산다고 믿고있다. 굳이 된다면 '낮에는 일을하고 밤에는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싶다.

문학작품에 대한 이정우의 생각은 어른이 된 이정우의 눈으로 말하는 것이겠지만 어릴 적 기억을 더듬는 형식을 취한는 관계로 깊다기보다는 인상기에 가깝다. 굳이 평하라면 원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사이버 펑크에서 철학으로>에 대한 이호준의 평을 읽어보라하고 싶다. 하지만 <탐독>이 자신이 살아오면 읽었던 책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라 사실 이런 평을 갖다 붙이는 것이 정당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둘째 장과 세째 장을 넘기면서는 나는 이정우에 대한 부러움을 갖게 되었다. 내 스스로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과학적 성과를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스티브 호킹의 <시간의 역사>나 물리학 교과서, 과학사 책을 들척이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생소한 수식 앞에서 갖게되는 좌절감이란! 철학도로서 존재론을 공부하면서 갖고 싶었던 것을 공학도였던 이정우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소은 박홍규라는 은사와의 만남에 대한 강조이다. 사실 학부만을 다닌 나로서는 깊이 철학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은사라고 할만한 분을 만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분이 계셨다면 하는 부러움을 갖기에는 충분하다. 이정우처럼 석사와 박사까지 공부했다면 이런 분을 만났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루진 못했지만 <근대세계체제>을 쓴 월러스틴을 찾아 유학을 떠날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스탈린의 일국 혁명론에 불만이 가득하던 시절, 신식민지라는 개념에 대해 회의를 품던 시절의 일이다.

대학시절 나의 스승은 선배들과 거리의 정치였다. 선배들은 '철학과에 왔으니 철학이나 공부하라'며 줄 곧 철학사 중심의 철학만을 공부시켰다. 남들이 읽는 사회과학 서적이 눈에 보이면 '압수'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데모(가투, 가두투쟁)에는 빠짐없이 나가도록 '종용'했다. 1학년부터 한주에 2~3번씩될까? 2~3시간 지속되는 세미나를 했는데 계속되는 발제와 질문, 면박! 그리고 2학년 여름방학이 되면서 공부하던 학회가 발전적으로 '해산'을 했는데 선배들 왈 '자신들은 변증법적 사유의 기초를 가르쳤노라'고 했던 것이다. 아둔한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참이 되서야 그 의미를 이해했다. 선배들은 철학사를 통해 개념적 사유의 방법/역사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사실 함께 공부했던 분들은 말이 선배지 학번 차이는 별로 없지만 나이가 한 열살은 많은 분들이었다. 데모를 하면서도 '싸움꾼'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론가'를 꿈 꾸었다.

지금도 방 한구석에 최근 다시 언론에 나오기 시작한 '강경대사건/김기설씨(또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당시 주워 모은 전단지가 한꾸러미 있다. 언젠가 국가론을 쓰겠다면, 오늘의 사건의 구조를 분석하겠다며 모아 놓은 것이다.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된 최근의 기사와 과거에 주장되었던 '사실들'을 보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동작하면서 사건을 계열화시키고 허위를 '사실'로 만드는지, 또 이것이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획득하는지를 볼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정치사회적 사건뿐만이 아니라, 산업에서도, 지적인 장에서도 일어난다.)

요즘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원전(여기서는 철학 원서이다)을 읽었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철학은 철학사, 개론서를 가지고 공부하면 안된다는 이정우의 말에 공감이 간다. 어떤 이론도, 사물도 마찮가지이겠지만, 가지를 치고 중요한 줄기만 남겼을 때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푸른 잎과 여유롭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늘을 잃고 만다. 개론서나 철학사가 나름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 그것을 던져버리고 원전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처음엔 더디겠지만 원전의 세계로 먼저 나갈 수 있다면 뒷심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때 옆에 책을 함께 읽어주고 생각을 도와 줄 훌륭한 스승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탐독>을 읽으면서 가장 나를 좌절시킨 부분은 "철학은 오로지 원전 텍스트, 그것도 원어 텍스트를 가지고서 이야기할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이다"(p.286)라는 구절이다. 그러면서 "헬라어로 <티마이오스>를 읽고, 한문으로 <주자어류>를, 독일어로 <정신현상학>을, 프랑스어로 <차이와 반복>을 읽을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나에게는 좌절감을 주었지만 만일 이호준이 이책을 읽었다면 이런 부분에서 또 다시 김용옥의 '냄새'(또는 大家다운 풍모)를 맡지 않았을까? 이정우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보다는 '모든 사람은 철학자'라는 그람시의 편에 서 있다. 이정우가 '엄밀성'을 전제로 두고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 외국어는 영원한 숙제이다. 시간과 돈만 잡아먹는 영어 공부를 다시는 안하겠다고 마음먹은지 몇년이 지난 요즘, 회사일로 자주 외국인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하나 하고 흔들리고 있긴하다. 좋아하는 철학보다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한가보다. 나도 직업으로서 철학을 하고 있다면 이런 말을 했을까? 아니면 원전을 읽기 위해 다른 언어를 열심히 배웠을까?

또 사소하지만 이정우에게 부러운 부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유학을 갈 것을 여러 번 종용하시기까지"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대학원을 가려고 '군대'를 간 웃기는 놈이다. 집이 대학원에 다닐 학비를 대줄 형편이 못되서 돈을 좀 모아보자는 심산으로 학사장교를 지원했다. 군에 지원을 하기위해 서류를 떼러 갔을 때 속도 모르고 '이 성적으로 대학원엘 가지 군대에 가느냐'고 묻던 분이 생각난다. 결국 이때 모은 돈은 제대 후 결혼 자금이 되었다. 공부보다는 연애하고 지금의 아내와 사는 것이 더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철학과나 정치학과가 아닌 경영학과 대학원에를 갔다. 노동자를 위한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마지막으로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운동권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겪은 정치적, 역사적 체험을 내 사유의 근원으로 삼고 싶었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사유하든 그 근원을 영원히 잊지 않고 살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때 내 가슴 속에 타오른 불길은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다."(pp.367~368)고 이정우가 말하고 있다. 서 있는 곳, 바라보는 곳은 다르지만 나도 그렇다. 이것이 어떤 시대가 어떤 세대에게 던져준 화두가 아닐까? 우리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우리를 여전히 옴짝달싹 못하게 눌러대는 세계-자연, 사회, 인간-에 대해 알고 싶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따스한 햇빛이 드는 거실햇빛을 받으며 뒹굴기
▲ 가장 행복한 순간: 햇볕이 따스하게 드는 곳에서 배를 깔고 책을 읽을 때, 어디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그리고 아내가 과일을 깍아준다면 더 좋을텐데...... 뒹구는 포즈
2007/11/22 02:50 2007/11/22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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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삼국지를 읽고
book, (2007/11/11 15:41)

미국으로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미디어 삼국지』(김영환, 삼성경제연구소, 2007)를 읽었다. 저자는 필자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위치에 서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읽고 있다. 같다는 것은 저자나 필자는 모두 SBS 미디어 그룹의 우산 아래 있으면서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는 것이라면, 다른 위치는 '조직 관리와 전략을 담당하는 SBS 보도본부 특임부장'과 SBSi에서 전반적인 뉴미디어 서비스 전략을 담당하는 미디어기획팀장으로서의 위치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 있지만 우리 사이에는 서로 다른 결론과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

 

미디어 삼국지 - 10점
김영환 지음/삼성경제연구소

이런  차이를 조직의 건강성이라고 애둘러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서 있는 기반이 다르다는 것과 함께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들의 상이함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법학을 공부하고 기자로 살아온 저자와 철학을 공부하고 IT 및 인터넷 업계에서 사회생활을 해온 필자 사이에는 책의 내용을 넘어서 글을 써가는 방법, 형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느껴진다. 『미디어 삼국지』의 저자가 어떤 사건과 거리를 두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주장한다면, 필자는 『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에서 사건에 논쟁적으로 개입하고 의견을 강하게 주장한다. 또 뉴스의 생산과 유통에 집중된 저자와 달리 필자는 뉴스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콘텐츠 전체의 유통방식에 생각을 집중하고 있다.
 
사실 필자의 『미디어2.0』 머리말에 언급한 "우연히 뉴스 관련 전략수립 과정에서 국외자로서 짧은 의견을 내게" 한 분이 『미디어 삼국지』의 저자이다. 좀 단순화해서 말하면 필자는 TV방송(전통미디어)이 인터넷 포털과 현재와 같은 뉴스 생산, 유통방식을 가지고는 절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YTN이 아닌 이상 24시간 뉴스를 내보낼 수 없다는 편성상의 한계와 더불어 플랫폼의 폐쇄성, 전통적인 방송/신문 등이 추구하는 저널리즘과 당파성(입장) 등이 개방된 뉴스 플랫폼인 포털과의 경쟁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런 경쟁환경을 떠나 경쟁의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자로서 저자의 고민과 국외자로서 필자의 상황판단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상황판단이 맞다고 하더라도 고향을 뒤에 두고 떠날 수 없는 저자에게 답답함을 더했을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못했으리라. 그런데 필자는 저자의 책을 읽어보면서 상황판단이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저자가 제시하는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한 언론 기업이 TV와 신문, 인터넷, 잡지 등 다양한 매체를 운영하고 있을 경우 각 매체별로 필요한 뉴스를 생산하는 조직(뉴스룸)을 별개로 둘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로 합쳐서 원소스 멀티유스를 구현하자는 아디어가 통합뉴스룸이다." '하지만 이것을 구현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렇게 되면 기자는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이른바 멀티미디어 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신문기자나 방송기자들이 멀티미디어 기자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인적/물적 투자가 요구된다. 다수의 뉴스룸 운영에 비해 효율성이 높더라도 대규모 투자는 불가피하다. 통합뉴스룸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기자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기자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은 경영진으로서 결심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소비자와 매체 환경의 변화는 통합뉴스룸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과도 같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고자 하는 언론사라면 통합뉴스룸 이슈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보면  『미디어 삼국지』의 저자는 통합뉴스룸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하는듯 하다.

하지만 저자도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의 언론 소유와 신문.방송의 겸영 금지'는 외국의 선진기업(아니 거대 미디어 그룹)에서 추구하는 통합뉴스룸이 한국적 현실에서는 목숨을 건 일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저자는 미디어 비즈니스세력(통신사나 포털)이나 개인 진영(블로거 등)과의 동거라는 '이상적 모델'을 그려보고 있다.

이런 미래상이 좋아 보일 수는 있어도 요원한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미디어 비즈니스세력들 중 뉴스 콘텐츠에 있어서 (온라인에서 그리고 점점 더 오프라인에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털들은 스스로 미디어가 되어 '법적, 사회적 규제'를 받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런 융합은 어려울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네티즌들의 90% 정도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현실이 계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는 이솝우화의 왕이된 까마귀 이야기처럼 전통미디어의 콘텐츠를 모아 붙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아 붙인 까마귀가 가장 아름다운 새로 뽑힌 것과 같은 효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실을 알게된 새들이 각자 자기 깃털을 뽑아가버리자 초라한 까마귀의 모습이 드러난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의 상황은 이런 역관계를 알고 이것을 뒤집으려는 전통미디어들의 대응, 특히 신문사들의 뉴스뱅크 콘서시엄과 같은 대응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뉴미디어 분야에서는 아직도 화산이 폭발하고 격렬한 조산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이 계속 유지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또 개인 미디어(블로거 등)는 그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의제를 이끌어내는 힘과 신뢰성에 있어서 갈 길이 멀다고 하겠다. 사건/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이 웹에 캐스팅한 콘텐츠가 갖는 신속성이란 우연에 대한 막연한 기대일 따름이다. 미국의 Current TV와 같은 시도들을 보면 블로거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프리랜서들(또는 PCC, VJ 등으로 불리는 직업적 콘텐츠 생산자들)이 시장의 변화에 따라 이동한 측면이 크다.

블로그와 같은 개인 미디어의 '위대함'은 전체를 향해 개인이 자신들의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차원일 따름이다. 언젠가 전체가 개인을 위해 개인이 전체를 위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세계의 가능성, 다양성과 투명성의 가치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실릴 콘텐츠가 의미가 있을 것인가, 사람의 주목을 끌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개인 미디어의 미래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오마이뉴스 패러독스'를 통해 저자도 지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더 크게 요구받게 되고, 이를 위해서는 전문 편집자의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기능이 필요해진다. 이로써 시민기자의 기사가 메인 페이지톱에 오르는 기회는 줄어들고 상근기자의 비중이 높아진다. 시민언론이 성공하여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전통 언론의 발목을 잡는 신뢰성의 시험에 들게 되고, 순수한 시민언론으로서의 색채가 흐려지면서 시민기자들의 참여도가 낮아져 영향력은 다시 하강 곡선을 그린다. 이를 시민언론의 패러독스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세계가 흔들리고 있으며, 곧 망할 것처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측면이 강한데 사실 언제나 기술에 의해 매체(미디어)가 뒤바뀐다고 해서 과거의 모든 것이 없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전통미디어는 뉴미디어를 만나 스스로 새로워지기도 하고, 뉴미디어가 전통미디어의 양식을 흡수하면서 변하기도 한다. 포털의 많은 경영진이 전통미디어의 기자출신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들을 데려다 무엇을 할까 생각해보는 것도 이런 사실을 이해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가 '시민언론의 패러독스'를 이야기할 때 필자는 그들도 미디어의 세계를 이룰 여럿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에 더 강조점을 두고 이해한다. (필자가 출장 중 쓴 유튜브의 미래에 대한 글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 서있다. 호들갑 떨지말고 냉정하게 보자는 것이다.)

'통합뉴스룸'이 힘들고, 미디어 비즈니스 세력이나 개인 진영과의 연대가 진화 중인 미디어 세계에서 불명확하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냥 안된다고 말하고 '앉아서 죽자'는 것인가? 필자는 본원적인 경쟁력을 기르자는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뉴스 콘텐츠를 잘만들라는 것인데 여러 매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뉴스, '원소스멀티유즈'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짧은 토막기사, 문자중계하듯 이어지는 뉴미디어의 휘발성에 대응해서 심층적인 취재와 명확한 분석,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는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방송 뉴스 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자의 경쟁력, 뉴스의 경쟁력은 모두 이곳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소스멀티유즈의 문제 등의 유통의 문제는 달리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기자가 통합뉴스룸을 만들어 모든 매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사, 콘텐츠를 생산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방송된 원재료(생산된 뉴스)나 방송은 안되었지만 취재된 내용을 이용하여 이것을 가공하거나 유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기자가 불필요할 수도 있고, 다른 조직이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다. 현재의 수준에서는 '멀티유즈'를 위한 전문조직, 기능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멀티유즈의 문제는 아주 기술적이거나 기능적인 요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거대미디어그룹을 금지하고 있는 우리의 수준에서는 통합과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양식으로 생산된 콘텐츠를 융합하는 것보다는 방송된 콘텐츠, 또는 씌어진 신문기사의 재사용(reuse)이 현재 요구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직까지는 방송기자에게 취재,촬영도 하고 신문기사나 잡지기사를 쓰라고 요구하지 않고 있고 이것을 요구해도 표출할 매체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해외사례를 보면서 이런 요구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처럼 이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으며 앞으로 그렇게 되기도 힘들어 보인다는데 문제가 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할 수 있지않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멀티미디어 기자'로 변신하는 것은 쉽지않기 때문이다. 방송에는 장기간 만들어진 방송의 양식이 있고, 신문에는 신문의 양식이 있는 것처럼 인터넷에는 인터넷의 양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IPTV나 DMB가 활성화된다면 그곳에서는 기존의 미디어와 같으면서도 다른 어떤 형식, 문법을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다. 지금의 웹이 그러한 것처럼. 차이와 한계를 인정할 때 이것을 넘어설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노력보다 현재 잘하는 것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탁월성을 끌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일은 아닐까?

저자가 뉴스, 미디어의 세계/관점에서 벗어나 전체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가치판단(저널리즘)이 담겨진 뉴스에서 벗어나 좀 더 추상화된 콘텐츠/디지털 콘텐츠의 측면에서 사태를 바라보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 있다. 걱정과 위기, '미래가 불안한 기자'의 시각, 집단적 동류의식에서 벗어나야 전체의 변화를 좀 더 심도깊게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통합뉴스룸은 전세계적인 저널리즘/미디어의 위기에 대한 올바른 처방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집단적 환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어떻게 슈퍼맨/원더우먼이 될 것인가?

방송의 본원적 경쟁력, 또는 기자들이 생산한 뉴스 콘텐츠의 본원적인 경쟁력이 전제되면 다른 선택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강력한 뉴스 브랜드를 통해 뉴미디어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이 브랜드 우산 아래 현재 발전 중인 온라인 독립언론 매체를 흡수할 수도 있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인참여의 활성화를 이끌 수도 있다. 뉴스룸 아래의 통합이 아닌 브랜드 아래의 통합을 추구할 수도 있지않을까?

저자가 말하는 "생존을 위해서는 성문을 열고 광야의 전투에 나서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라는 인식에서 한걸을 더 나가 성을 가치를 새롭게 살펴봐야 할 필요도 있다.  생존을 위해 진지로서의 성의 가치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광야의 전투에 보급과 새로운 병사,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는 튼튼한 성을 갖고 있다면 누구보다도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이다.

기동전과 진지전을 모두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 광야의 적을 찾아 성을 버리고 나가는 장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 법적, 제도적 보호막인 성을 높이 쌓는 전략도 유효할 수 있다. 적어도 이런 보호막이 서서히 제거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도 있을 수 있다. "성을 열고 광야의 전투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은 잘못하면 적(경쟁상대)의 논리에 빠질 위험도 있다. 광야에서 거칠게 자란 상대의 입장에서야 이렇게 나온다면 손뼉을 치면서 반길 것이다. 상대들은 지금 성을 버리고 나와 정정당당하게 겨루자고 하는 상황 아닌가? 하지만 상대의 전쟁기계(자본주의적인 비즈니스)가 더 강하다는 것은 저자도 아는 상황이다.

결국 필자는 저자의 상황인식에 동의하지만 그 해결책, 또는 대응방식은 아주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통미디어의 작법(성을 위주로한 공성전)으로도 대응할 수도 있고, 광야에서 말을 타고 싸우는 기동전식으로도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을 가지고 있다면 성을 버리는 것이 '시대의 미덕'처럼 떠벌이는 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성을 버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처지가 틀린 해외의 거대 미디어 그룹을 따라해야할 이유도 없다.

그저 원칙을 견지하면서 긴 호흡으로 현재의 변화들, 사건들을 살필 필요가 있는데, 지금보면 혁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예기가 꺽이거나 여러개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필자는 사태를 그렇게 보고 있다. 아니, 스스로 그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너무 성마른 논리들이 횡횡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물론 변화의 시도들을 전혀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보다도 변화를 열망하고 있다. 그런데 싸움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최후까지 살아있기 위해서는 힘을 비축하고 이해의 끈을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또 개인들(기자들, 특정조직)의 위기감이 조직 전체(드라마, 예능, 교양 등의 다른 콘텐츠/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조직)를 감염시키지 않도록해야 한다. (뉴스도 포함된다고 생각하지만) 전체로 보면 더 많은 윈도우와 기회가 오는 것일 수 있고 아직까지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하기 나름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그 자체는 미디어 사업자가 아니지만 각종 미디어 단말기(device)를 만드는 전기, 전자 회사들은 향후 미디어 정책과 업계의 향방에 결정적인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들 중 많은 업체들이 이미 미디어 사업자이거나, 미디어 사업자가 되길 꿈꾸고 있다. 필자는 가장 잠재력이 높은 세력, '보이지 않는 위협'을 꼽으라면 이들을 말할 것이다. 이들은 개방된 네트워크 환경에서 언제든지 미디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의 우호적인 관계설정 또한 전략적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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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저자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도 그 정도(고민의 강도)를 알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은 서로가 느끼는 위기감에도 해당될 것이다. 저자의 고민 중 한조각이라도 나눠들 수 있었으면......

필자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큰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상대들도 별 두려울 것이 없는 살과 피로 된 사람들이며 똑같이 새로운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며 어리숙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위협은 두려움에 찬 비명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말을 갖았다면, 우리의 말들은 성안 갇혀 있어 달리는 법을 잊은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인가?

2007/11/11 15:41 2007/11/1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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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상의 대항해, 지식인들의 망명 1930~1965』, 개마고원, 2007

9월 29일부터 지식인들의 망명을 읽기 시작했다. 2차세계대전과 함께 유럽을 떠나 영미로 망명한 지식인들에 관련된 사회사상사이다. 비트게슈타인, 보르게세, 노이만, 아렌트,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르트만, 에릭슨 등에 대한 이론소개, 평가, 약전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책 내용은 읽기 쉽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면서 배경·시대적 맥락에 대한 소개가 좋다. 스튜어트 휴즈가 지은 총3권으로 되어있는 서구지성사 3부작 중 한권이다.

지식인들의 망명 - 10점
사회사상의 대항해: 1930~1965
스튜어트 휴즈 지음, 김창희 옮김/개마고원
 

more..

발터 벤야민, 브레히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등이 살았던 시대상황과 주변 인물들은 연관관계를 보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중문화, 복제, 기술 등에 대한 20세기 초기의 철학적 생각을 정리하고 "아우라 부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이다. 읽은 부분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에 해당되는 2장 <대이주의 서곡 - 영국의 철학>이 가장 인상 깊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책에서 알지 못했던 그의 삶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2.0-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p.35의 "언어놀이(spradhspiel)"에 대한 설명

언어 게임이란 어린이가 말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의 언어형식이다. 언어 게임의 연구는 원시적인 언어형식 혹은 원시적인 언어의 연구이다. 만약 우리가 진위, 명제와 실재의 일치여부, 주장·가정·질문의 성질 등의 문제를 연구하고 싶다면, 이러한 사유형식들이 고도로 복잡한 (현대의) 사고과정처럼 우리를 혼란시키는 배경을 갖지 않는, 그런 원시적인 언어형식을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단순한 언어형식을 보게 되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사용을 둘러싸고 있는 정신의 안개는 말끔이 걷힌다. 우리는 명백하고 투명한 행동, 반응을 본다. 우리는 또 한편으로 이 단순한 과정들 속에서 우리의 보다 복잡한 언어형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어어형식들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시적인 언어형식에다 새로운 형식들을 점진적으로 더붙여 나감으로써 복작한 형식을 세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p.75

웹2.0의 "집단지성"(<미디어2.0>, p.35를 볼 것)은 아주 "원시적인 언어형식"으로 "명백하고 투명한 행동, 반응"을 기대할 수 있도록하는 "언어게임"이다.

사진속의 비트겐슈타인과 책 속의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

… 비트겐슈타인이 길들여졌다거나 그가 '정상적인'  학자로 변모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는 여전히 외적 형식을 대할 때와 똑같은 혐오감으로 대학생활의 관습을 피했다. 그는 트리니티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식사하려 하지 않았고, 또 교수처럼 행동하거나 옷을 입으려하지도 않았다. "누구도 비트겐슈타인이 정장하고 넥타이를 매거나 모자를 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갸름하고 갈색이었으며, 그의 옆모습은 약간 굽은 듯하면서도 매우 수려했다. 그의 머리는 숱이 많은 갈색 곱슬머리로 덮여 있었다.
강의할 때든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든 비트겐슈타인은 항상 강세를 넣어서 독특한 어조로 말했다. 간혹 그의 구문 중간에 독일어투가 끼어들기도 했지만, 그는 교육받은 영국인의 억양이 포함된 훌륭한 영어를 구사했다. 그의 목소리는 맑았고 음조는 보통 남자의 목소리보다 약간 높았지만 불쾌감을 주지는 않았다. 또한 언변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 말할 때 그의 얼굴은 아주 표정이 풍부했다. 그의 눈은 그윽했고 종종 무엇인가를 격렬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가 풍기는 전체적인 인상은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었고 심지어 장엄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에게 그의 신분에 맞는 행동을 하라고 조금이라도 요구하게 되면, 그것은 지독한 고문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학자로서의 경력에는 잠정적이고 자포자기적인 기미가 엿보였다. 1930년대 중반에 그는 소련을 방문해서 그곳에 놀러앉으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제2차 세게대전이 발발하자 그에게 대학생활의 일상사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 의료기술자로 복무함으로써 자신이 항상 존경해오던 물리적 사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청년기의 연구주제는 공학이었으며 일생 동안 기계를 만지작거리기를 좋아했다. 전쟁이 끝나자 2년 동안 교수직에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1947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그는 아직 60대 전이었는데 실제보다는 젊어보였다. 그러나 마치 앞으로 살날이 수 년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하던 작업을 완성시키는 데 그의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극도로 민감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은 그의 지적인 생황를 시작했을 때(아래 러셀과의 일화를 볼 것)와 마찬가지로 외로운 방랑자로 그 생활을 끝나쳤다. 결혼도 하지 않고 교제도 남자에게만 국한한 채-물론 그 교제는 정열적이기도 했고 때론 순탄치 못하기도 했지만-비트겐슈타인은 니체나 베버처럼 거의 광인에 가깝게 살았다. 자신이 이미 미쳐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 자신이 도덕적으로 순결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가 의식을 잃어가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멎진 인생을 살았다고 그들에게 말해주시요"라는 것이었다. pp.71~73

… 그들[비트겐슈타인의 친구가 된 학생들]은 그의 엄격함과 우울함을 참아냈고 그가 정말로 즐거워하는 순간을 드물게만 맛보았다. 그들은 그의 지적·도덕적 성실성을 인정했으며 그가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한번은 인간의 위대함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에 그는 위대함의 척도가 "그 일 때문에 자신에게 가해지는 희생을 그 사람이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을 잘 아는 학생들은 그가 스스로 어두운 세상에 가냘픈 이해의 등불이라고 취급하던 것을 위해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p.77

비트겐슈타인

20대 중반에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1912년의 세 학기와 다음 해의 두 하기를 수학했다. 여기서 그는 무어와 특히 러셀을 알게 되었는데, 러셀 경은 이 젊은 방문자가 한 학기 수업을 마친 후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이 물었을 때 느낀 당혹감을 이렇게 회상했다.

"교수님께서는 제가 완전히 천치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네는 왜 그런 것을 알려고 하지?"라고 내가 반문하자, 그는 "그것은 제가 천치라면 저는 조종사가 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철학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 나는 자네가 완전히 천치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지만 만약 자네가 이번 방학기간 동안 무엇이든 흥미있는 철학적 문제에 관해 글을 한 편 써서 보여준다면 내가 그것을 읽고 자네에게 이야기해주겠네." 그렇게 해서 그는 다음 학기가 시작되자 자기가 쓴 글을 나에게 가져왔다. 나는 그 글의 처음 문장을 읽자마자 그가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게 전혀 조종사가 될 필요가 없음을 설득시켰다.

이리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에 정착해서 체계적으로 철학 서적들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결정했다고 해서 그의 행동에 대한 러셀의 당혹감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매일 한반중에 나를 찾아와선, 성난 야수처럼 침묵 속에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내 방을 이리저리 서성이곤 했다. 한번은 내가 물었다. "자네는 지금 논리학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아니면 자네 자신의 죄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둘 다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계속 방 안을 서성거렸다. 나는 이제는 잘 시간이라고 알려줄 수가 없었다. 그가 내 방을 나서는 순간 그는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와 나 모두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의 천재성-"열정적이고 심오하며 강렬하고 출중한"-에 대한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무에 그런 부담스런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고, 그 자신에게 "좌절감"을 안겨줌으로써 "다시는 철학의 기본적인 연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그에게 불러일으켰던 손아래 사람의 기술적인 비판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 pp.58~59

비트겐슈타인의 첫번째 사진을 보면서 그윽하고 깊은, 하지만 어딘가 침울하면서도 고독하고 두려움에 떠는 듯한 눈빛에 끌렸다. 그런데 그의 철학이 아닌 삶을 보면 왜 이런 눈빛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 것 같다. 눈을 들여다보면 착 가라앉은 심연 모양의 내면을 볼 수 있다. 바다 위의 높은 파도 아래 어둡고 무게에 눌려 꿈쩍도 않하는 심연이 있는 것처럼 강렬한 열정 아래는 견디지못할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비트겐슈타인을 읽으면서 들뢰즈를 이해할려고 노력했다. 둘 사이에 어떤 '가족유사성'이 존재한다. 언어상황과 의미의 계열화라는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생각려는 그의 태도(p.82~83)는 알뛰세르의 방법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을 아닌가?
2007/10/07 16:35 2007/10/0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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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 아우라
book, (2007/10/05 23:40)

시스티나의 성모

박설호(한신대),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에 관하여>,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제?집을 읽으며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 중 '원근관계의 착종현상'을 설명하며...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성모>를 예로 들어보자. 그림 속에서 우리는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일원성을 조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원성은 그림 속의 등장 인물을 어떠한 장소에 국한시키지 않고 있다. 등장 인물은 가까이 서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러니까 성모가 위치한 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림 속에서 커튼은 어떤 아우라를 형성시키고 있는 틀로 작용하고 있는데 , 성모가 커튼 앞에, 혹은 커튼 사이에, 혹은 커튼 뒤에 둥둥 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성모는 내려오는 듯이 솟아오르고 계시며. 천국에서 내려오면서도 상승하는 것 같다. 성모가 계신 곳은 한마디로 납치 당하는 장소이자, 동시에 귀향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광스러운 성모의 특성은 둥둥 떠 있는 상태인데, 파우스트에서 이와 근친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pp.135~136 (인용 그림위치: http://l-club.lesvacances.co.kr/premium/focus/view.asp?premMenuFlag=T&premGubn=F&fcusSeqnCode=20060710162953&fcusThemCode=00001#top)

후자의 이것(자연적 대상에 대한 아우라-역주)을 우리는 아주 가까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먼 곳의 일회적 현상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서 휴식하는 사람은 그림자를 드리운 먼 지평의 산맥 그리고 나뭇가지를 바라보게 된다. 이때 산맥과 나무 가지의 아우라는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숨쉬고 있다. pp.134~135  (원문: 발터 벤야민, <Kleine Geschichte der Photographie, 사진의 작은 역사 (1931)>)


김하우 교수, 인도철학사, 춘일계명 ".. 저녁에 붉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에또 .. 고향집을 생각하는 갖 시집온 색시의 마음을 감싸주는 부엌신 ..." 종교와 아우라에 관한 탁월한 연결점을 보여주는 사례?

예술작품은 오래 전에 마법, 주술 등과 같은 종교적 제식의 일환으로 탄생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오랫동안 일회적이고도 신비로운 독창성이라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 독창성은 관찰자와의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자생적 권위인데, 관찰자는 처음부터 이러한 권위를 무의식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신의 얼굴을  함부로 볼 수 없듯이, 예술 작품에 나타난 종교적 상 역시 함부로 쳐다볼 수 없다. pp.129~130

☞이런 관점으로 위 그림을 볼 것. 그리고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분위기'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볼 것. 신의 얼굴... 이 부분에서 이정우의 <세계의 얼굴>에서 분석한 안면성 관련 부분이 떠오른다.
자생적 권위 p.130, 자생적 작품 p.132. 여기서 말하는 자생적은 자연적(자연의 미와 같은 자연)에 해당한다.
아도르노의 발터 벤야민 해석에 대하여 pp.132~133에서 살피고 있다. 그리고 에른스트 블로흐에 대한 언급과 인용도 있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교차현상을 설명하며...
아우라의 경험이란 인간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반응 형식을 인간에 대한 생명없는 무엇 혹은 자연의 관계로 이전시키는 데 근거한다. 누군가에 의해 바라보이는 자 혹은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는 자는 눈을 부릅뜬다. 우리가 어떤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시선을 부릅뜰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p.136 (<보들레르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아우라의 경험은 자연적 풍경, 유년 그리고 시대상 등에서 발견될 수 있으며,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교차 내지 착종을 통한 어떤 가능한 화해의 상을 암시한다. p.137

아우라의 경험은 "무의지적 기억"을 통해서 드러나는 갈망의 구조이다. p.138


"부릅뜬 눈"을 듣는 순간 무의식 중에 이철규와 관련된 일련의 이미지들, 냄새들, 상황들이 떠올랐다. 80년대와 90년대 초의 시대상에서 발견되는 경험들이 나타난 것이다. 아우라의 경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특정 아우라가 개념화 되어 표현되고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종교적 제식에의 참가자가 홀연히 느낌는 체험... 이런 측면에서 벤야민은 신비주의적이다.

은폐의 발현과 매개 현상을 설명하며...
만약 우리가 무의지적 기억 속에 자리잡은 채 직관의 대상들을 모으려고 애를 쓰는 상상들을 '아우라'라고 명명한다면, 직관의 대상에 있는 아우라는 어떤 연습으로서의 실용적 대상으로부터 일탈되는 경험과 일치한다. p.138  --- 그밖에 그것들[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 - 역주]은 일회적이다. 즉 이러한 자료들은 그것을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기억으로부터 빠져나간다. 이러한 특성은 아우라 현상의 주술적 특성을 투영시켜주어야 한다. 본직적으로 멀리 있는 것은 근접 불가능하다. 실제로 근접 불가능함이란 종교적 제식에 관한 상의 어떤 주요한 특징이다. p.139 (<보들레르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일회적이다", "빠져나간다"는 개념화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킨다. 아우라는 체험적/경험적이다. 특정 사이트의 특정 페이지(패러디나 영상물에서)에서 아우라가 존재한다면 아주 일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체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상황에 대한 경험이 없는 다른 사람이 동일한 곳을 방문했을 때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에게는 체험이 없는 것이다. 김진우교수의 궁(MBC 드라마인 궁에 대한 UCC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방식)에 대한 논의들을 발터 벤야민의 <얘기꾼과 소설가>(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를 비교하면서 읽어 볼 것. '부릅뜬 눈'이란 말에서 내가 이철규를 떠올릴 때, 다른 사람은 아무 것도 떠올릴 수 없거나, 또 다른 상황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고 아우라가 이런 방식으로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구가 있다.

"의지적 기억"이 일상에 바탕을 둔 것이며, 과거의 체험에 국한된 것이라면, "무의지적 기억"은 우연히 떠오른 - 현재의 심적 상태와 무관하지 않은 - 과거에 대한 내밀한 경험이다. p.139

이것을 보면 단순하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떠올리며 현재의 심적 상태가 태풍 속에 휘감겨드는, 또는 현재 심적 상태가 고양되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심적 상태의 태풍 속에 휘감겨들어 융화되어 something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우라의 경험은 예를 들면 생명이 깃든 자연의 모습, 주체와 객체 사이의 간 주객적인 조우일 수 있으며, 나아가 신을 바라보는 일종이 접신론적 광휘이거나, 잃어버린 인간성에 대한 경험일 수 있다. p.141

어제(10/6) <판의 미로>를 보았는데 처음부분에 이와 관련된 동일한 이야기가 배경으로 흐른다. 그리고 햇빛(이성)을 본 공주의 기억 상실을 이야기 한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식, 아우라에 대한 평가부분(p.141~143)과 햇빛, 기억상실 등에 대한 판의 미로의 이야기 구조를 연결시켜살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역사 기술은 언제나 승리자의 손에 의해서 진척되었다. 의지적 기억은 현대사회의 주어진 제반 현상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벤야민에 의하면 인간의 일상적 현재 삶과 밀착되어 있을 뿐, 역사의 퇴행에 의해서 상실되거나 망각된 과거의 순수성 내지 이상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바로 그런 까닭에 유년, 근원 상으로서의 자연, 과거의 황금의 시대 등은 오로지 무의지적 기억에 의해서 떠오른다. p.141" 공주는 자신이 공주였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육체(반달 모양의 어깨에 있는 점)와 요정들이 살아 숨쉬는 자연은 알고 있다. 꿈과 같은 요정과의 관계를 통해서 유년, 근원, 지하왕국으로 다가간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코 총통이 지배하는 파시즘하의 스페인이다. 주인공의 양부인 대위에게서 히틀러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이 지점에서 벤야민에 대한 비판과 확장을 시작할 수 있다. 의식적인 것(이성)들에 대한 부정(이런 것들은 바이마르공화국과 히틀러의 나찌즘을 겪는 비판적 독일 지성인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무의지적/무의식적인 것과 과거의 기억 등에 대한 강조가 될 수 있다. 아우라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상황(심적 상태)과 관계를 맺는다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블로흐가 하며, 박설호는 에세이의 말미에서 벤야민과 블로흐를 비교하고 있다. 미래와 연결되면 목적론으로 귀결되기 떄문에 연결시키지 않았을까? 왜일까? 미래의 심적 상태라는 것은 말도 안되기는 하지만..
 
확장은 정말 아우라가 체험적인 것이지 표기(개념화)될 수 없는 것이라면, 체험적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벤야민이 이를 지지하는 것이 아우라가 사라지거나, 감소해도 영화와 같은 양식이 약하더라도 체험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이부분은 검증이 필요한 가설이다.

과거의 기억에 대한 강조와 함께 소외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소외도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외는 어떤 하나의 완결적인 상황을 전제하며 과거에 기반한다. 왜냐하면 ~에서 소외되었다에서 되는 것은 어떤 과정을, 빠져나가 소외로 빠져드는 과정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특정한 이상 상황을 전제하는 것과 같은, 목적론처럼 보이는 측면)에서 나는 소외에 대한 논의를 '싫어'한다. 이런 생각은 대학교 3,4학년 아니면, 졸업 후부터, 그러니까 꽤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것이다. 소외와 목적론이라는 주제도 재미있을 것같다.

아우라에 대한 사전적 정의
아우라는 유일한 원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므로 사진이나 영화와 같이 복제되는 작품에는 아우라가 생겨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아우라는 종교 의식에서 기원하는 현상으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현상(einmalige Erscheinung einer Ferne, so nah sie sein mag)"이라 정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에서도 과거의 종교적 숭배가 세속적인 미의 숭배로 대체되었으므로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원본이 지니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유일한 현존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진이나 영화처럼 현존성이 결여된 작품은 아우라가 없다는 것이다. 독특한 거리감을 지닌 사물에서만 가능한 아우라는 복제품이나 대량생산된 상품에서는 경험될 수 없는 것이다.

☞ '유일한 원본'을 '유일한 사이트(일반적인 사이트가 아닌 디씨인사이드와 같이 독특한 기풍/아우라을 지닌 사이트)' 읽어볼 것. 구전설화와 같이 증식하는 디지털 콘텐츠.. 연세대 김진우교수의 UCC 콘텐츠에 관한 분석

☞ 이런 느낌, 생각을 '아우라'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 것같다라는 지은숙씨 지적.. 속초가는 길 밤샘 대화 중.. 이런 지적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우라'라는 개념 안에서 '아우라의 부활'로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함께 든다. 미묘한 뉘앙의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를 집어내 다시 개념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충고!

발터 벤야민 주요저서
"Goethes Wahlverwandtschaften;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1928 veroffentlicht), "Einbahnstraße" (1928)
"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 (vollstandig herausgegeben 1956)
"Passagenwerk" (fragmentarisch geblieben, postum veroffentlicht)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936)
"Kleine Geschichte der Photographie" (1931)
"Eduard Fuchs, der Sammler und der Historiker" (1937)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반성완 외 역, 민음사, 1983


우연히 발견한 글들 --------------

발터 벤야민 에세이
를 게시한 블로그: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


디지털과 생성, 아우라를 연결한 진중권의 글: '생성 이미지' 디지털시대 대중의 취향 예고
[진중권의 상상] <3>복제에서 생성으로

세상에 없는 피사체 촬영한 듯… 사진같기도 그림같기도
후기산업사회 앤디 워홀의 '복제 이미지'에 이별 고해
강형구 작품 인물들의 쏘아보는 시선서 '아우라' 느껴져
아우라의 파괴
벤야민의 미디어 이론 ④

진중권의 현대 미학 강의-숭고와 시뮬라르크의 이중주 (진중권, 아트북스 출판사, 2003)
디지털 복제 시대의 문화(2) (백욱인, 1997)
동시대 미학 50문답 (막 지메네즈, 임연 역, 서광사, 2003, 29번째 주제)

2007/10/05 23:40 2007/10/0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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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24일 동안 <베르톨트 브레히트>(인물과 사상사, 2007.4)을 읽었다. 읽으면서 접어놨던 부분을 24일 저녁 동안 정리했다. 브레히트를 읽으면서 몇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 8점
얀 크노프 지음, 이원양 옮김/인물과사상사
1. 브레히트, 벤야민,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과 같이 기술이 예술에 개입하기 시작하던 시대의 문예 비평가들의 반응을 비교해보는 것이 의미있을 것 같다. 연극과 같이 복제 불가능하던 예술이 영화가 나오면서 복제가 되기 시작했을 때, 지금 우리가 아날로그 영상이 디지털화 되면서 겪는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을 이들은 받았을 것이다. 이들은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것을 통해 우리시대의 문제-통신과 방송의 융합, 기술과 문화의 융합-를 접근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은 벤야민의 기술복제, 아도르노의 대중기만으로서의 문화산업을 보면서 정리해볼 생각이다.)

2. 문화산업의 몰락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브레히트와 프랑크푸르트 학파(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견해에 차이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일치하는가? 또는 ...

3. 어떤 사람을 규정하는 "주의자"의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부분을 오랬동안 가끔씩 생각을 했었다. '강경대사건' 이후 김지하를 보면서부터이다. 사람을 규정짓는 것은 가끔 그 사람 자체보다 어떤 상황에 의해 그렇게될 때가 있다. 좌와 우의 중간이 없을 때.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에서 출발한 브레히트의 경우가 그렇지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규정되는 것은 '신문사 같은 기구'에 의하여 '계열화'되는 것이다. 계열화된 후 이 계열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완전한 변신, 또는 변절이 있기전에는.

4. 브레히트 속에서 디지털적인 글쓰기의 원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양식의 결합(텍스트와 음악과 같은), 에피그램(공식적인 보도 사진에다가 해설적인 텍스트를 붙이거나 에피그램 식 4행시를 몽타주하는 형식), 완결된 작품이 아닌 진행 중인 작품과 필자가 사라지는 것 등등.. 나는 서로 다른 양식의 결합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영상과 텍스트의 결합과 같은. 이런 부분에 대한 답, 적어도 Hint가 있지 않을까?

1번과 4번이 재미있을 것 같다. 3번은 이미 스스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2번의 이야기는 너무 추상적일 것이다. 브레히트가 미국에서 호르크하이머나 폴록을 만났을 때, 이런 주제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계속해댔다면 틀림없이 싫어했을 것이다. (책을 보면 실제 싫어했다는데) 왜냐하면 하루벌어 먹고 살기 힘들고, 먹고살려고 영화판을 기웃대던 브레히트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사치가 아니었을까? 곡학아세하는 사람들(Tui, 투이들)이 하는.

차라리 3번은 배경을 이루는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의 분석을 대입해서 좌와 우의 힘의 균형상태에서 국가관료들이 나오는 것과 다른 형태로 바이마르와 같이 누구도 '(가정이지만) 패권을 잡지못하고 어정쩡한 힘의 균형상태'로 인해 국가주의 파시즘(히틀러의 나치)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 이 생각은 속초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9월 25일)에 갑자기 <브뤼메르 18일>을 읽어야기 생각한 후, 이글을 쓰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해 찾아보면서 서로 연결됐다. 그러니 대충 이런 가설을 새워놓고 시간이 나면 이런 쪽으로 관련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나는 브레히트의 시집(<살아남은 자의 슬픔>인가)을 몇번인가 읽은 것 외에는 브레히트를 직접 읽은 적은 없다. 주로 여기 저기 섞여 있는 단편들을 읽었다. 대학시절 막연히 브레히트를 좋아했는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예술적 방식이라는 테제에 대한 대답으로서이다. '소외 효과'는 사실주의적이 아니지만 현실을 더 사실적으로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모더니즘(잘은 모르지만) 자체 내에도 훌륭한 자양분이 들어있다(을 것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역사에서 볼 때 조직에 벗어나서, 또는 조직에서 쫓겨나서 있는 사람들(특히 지식인들)이 진실을 말할 때가 더 많다. 조직의 무게(이데올로기)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록, 우리에게 사실을 무섭게 들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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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는 기술 발전이 진행되는 사회는 영화사, 극장, 영화관 또는 신문사 같은 “기구”가 지배하며 모든 예술작품은 분명한 상품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작가는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조직해야만 된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약간의 고독, 책상, 종이 그리고 펜만 있으면 되었던 시대는 완전히 지나갔다는 것이다. 작가는 생산자가 되었으며 생산은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에 공동 작업을 조직하고 거리낌 없이 세계문학을 이용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이런 것을 표절이라고 했지만 오늘날은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한다. (p.45)

그는 끊임없이 이런 문화산업의 결정적인 몰락을 예언하며 힘껏 그 몰락에 가담하려고 했다. 그는 모든 장르에서 작업을 했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기구에서 일을 했다. 그는 신문과 잡지 그리고 ‘오락성 예술’ 매체에도 끊임없이 시와 쇼트스토리를 발표했고 모든 가능한 설문에 참여했으며 서평과 이론적인 논설을 쓰면서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자신이 지금 무엇 때문에 웃고 있는지를 감추지 않았다.(p.47)

브레히트는 신문뿐 아니라 라디오 방송에서도 활동했다. 그의 희곡 <남자는 남자다>와 <도살장의 성 요한나>의 일부분을 방송극으로 방송했으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같은 다른 작가들의 텍스트도 라디오를 위해 번안했고 주로 동시대의 연극에 대한 라디오 담화나 대담에 자주 출연했다. …… 영화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것은 1930~1931년에야 가능했다. (p.48)

당시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대화와 논쟁적 토론, 공동관극이나 영화 관람 등은 작업 일과에 속했다. 브레히트는 항상 작업이 사교적으로 조직되도록 힘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평이 창작을 하는 중에 시작되며 모든 작업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가 보장되고 우연에 맡겨지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p.49)

브레히트는 아이슬러를 <마하고니> 노래극 초연 때 처음 만났다. 아놀드 쇤베르크에게서 배운 아이슬러는 자신을 정치적인 작곡가라고 생각했고 음악계에는 문단과 달리 브레히트처럼 혁명적인 좌파 예술가가 없고 소시민들만 있음을 유감으로 여겼다. 이것은 브레히트가 <남자는 남자다>의 초연으로 인하여 보수적인 신문의 연극평에서 완전히 볼셰비즘과 관련지어졌고 시민사회에서는 공산주의 작가로 취급된 1927년 초였다. 그러나 <조치>까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공산주의적이라고 할 만한 브레히트의 텍스트는 없었다. (p.56)

사회주의에 대한 브레히트의 지속적인 관심은 1929년부터 시작된다. 1928년 말 브레히트는 카르 코르쉬를 주목하게 되었고 아카데미 맥주홀에서 열린 ‘과학적 사회주의에 관하여’라는 그의 강의를 몇 번 청강했으며 후일 그가 ‘마르크스주의 노동자학교’에서 한 강연회에 산발적으로 참가했다. 코르쉬가 노이쾰른의 카를 마르크스 학교에서 ‘마르크시즘에서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에 대한 강의를 할 때인 1932~1933년 겨울에 비판적 사회이론에 관한 그의 관심이 강화되었다. 코르쉬는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11번째 테제에 따른 이론과 실천은 “정신적 행위”에서 중개해야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1926년 독일공산당에서 제명되었고 이상주의적 수정주의자로 낙인찍혔다. …… 코르쉬가  마르크시즘에 대한, 또는 마르크스에 대한 브레히트의 관심을 자극하고 그로부터 ‘스승’이라는 호칭을 받았지만 브레히트는 곧 비판적인 거리를 두게 되었다. 1934년 가을에 그들이 런던에서 같은 집에 살면서 긴밀한 접촉을 하게 되었을 때 코르쉬는 마침내 투이들(곡학아세하는 식자)의 대열에 자리를 잡는다. “나의 스승은 실망한 사람이다. 그가 관심을 가진 사항들은 그가 상상했던 대로 진행되질 않았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사상이 아니라 달리 진행된 사항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pp.57~59)

브레히트는 1929년에 발터 벤야민과, 그리고 1931년에는 세르게이 트리트이코프와 서로 알게 되었다. 벤야민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이 비극에 관한 그의 교수자격논문을 거절했기 때문에 대학 교수의 꿈을 접고 시사평론가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갔으며 게르숌 숄렘과 사귄 후 시오니즘으로 개종했다. 그는 브레히트에게 카프카의 작품을 소개했고 브레히트가 카프카에 대해서 긍정적인 의견을 표하자 놀라워했다. 1930년에는 공동으로 간행하려던 잡지 <위기와 비평> 게획이 무산되었다. 이 잡지는 변증법적 유물론 선전에 헌신하고 “극좌파”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만 필진으로 허용할 예정이었다. (pp.60~61)

(1935년) 그해 여름 발터 벤야민이 브레히트를 찾아와 수주일 동안 손님으로 머물렀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장서를 (덴마크의) 스벤보르로 가지고 왔다. 둘은 체스 놀이를 즐겼고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작업과 정치 및 예술의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여기서도 ‘유대인 청년’ 카프카의 평가가 중요한 주제였다. 벤야민은 1938년 여름 비교적 장기간의 체류를 위해 두 번째 방문을 했다. 그는 첫 번째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의 체류에 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이때 유럽 전역에서는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벤야민은 어린이 연극, 소련의 문학, 모스크바의 재판과 모스크바에 있는 지인과 친구들에게 미칠 영향 등을 주제로 브레히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브레히트는 소련에서의 모든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생각했고 마음속으로 벌써 미국으로 망명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범죄적인 집단들이 일을 벌이고 있었다.” (pp.71~72)

망명 시기(1933~1947) 동안 브레히트는 여행을 많이 했다. 1934년에는 카를 마르크스의 전기를 쓰고 있던 카를 코르쉬를 찾아서 런던으로 갔다. 브레히트는 그에게 “사자의 가슴 혹은 사자의 갈기가 없이” 쓰라고 권했다. (p.72)

헐리우드의 이윤 창출 기계: 산타 모니카에서의 고립(941년~1947년) (p.86)

브레히트 일가는 미국으로 도피한 포이히트방어, 빌헬름 디텔레, 바일, 쿠르쉬 등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속하게 영화 산업에 발을 붙이려는 브레히트의 시도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 브레히트는 영화를 위한 모든 일이 별로 소득이 없으며 ‘본래의 일’을 못하게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경험하지 않음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브레히트가 1941년 10월에 페르디난트 라이어라는 사람을 사귐으로써 미국의 안내자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와 함께 영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로써 지속적인 우정이 싹텄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었다. (p.87)

독일 망명객들의 집합소가 된 산타 모니카에서 브레히트는 비생산적인 투이라고 악의적으로 평가한 지식인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그들은 전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의 연구원인 막스 호크하이머와 프리드리히 폴록이었다. 그는 그들을 즉석에서 “이중 클라운”이라고 풍자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적응하고 교제 관계를 구축하는 대신 눈에 띄게 이들로부터  물러났으며 호감을 사지 못했다. (p.87~88)

할리우드에서 브레히트의 영화 작업은 성과가 없었다고 볼 수 있지만 스토리를 팔아서 약간의 돈을 벌 수는 있었다. 이런 것들은 영화화되지는 않았다. 그는 또 시나 노래를 팔기도 했다. …… 미국 망명지에서 브레히트가 얻은 미학적 소득은 별로 없었다. …… 산문은 영어로 쓴 영화 스토리가 전부였다. 많은 단편을 제외하고는, 이런 영화 이야기들은 갈고 다듬은 표현이 아니라 주로 플롯만 설정한 것이었다. (pp90~91)

그 후(열다섯 살 이후?) 그는 언제나 모든 중요한 문학 장르를 넘나들며 동시에 작업을 진행했다. 1922년부터는 연출가 및 드라마투르크로서 활동했고 영화나 라디오 방송을 위한 텍스트 작업도 했다. 그의 서정시는 처음부터 음악성, 즉 가창성을 가지고 있었다. 브레히트는 멜로디를 스스로 작곡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작곡을 맡겼다. 텍스트와 음악의 상호작용 및 조화가 처음부터 그가 하는 작업의 중심이었다. 텍스트에 단순히 곡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예술의 협동이 중요한 것이었다. 브레히트는 뮌헨 시절부터 연극에서 이것을 요구했다. 문학, 연극, 무대장치, 그리고 음악이 상호 지원하면서 각기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작자가 간여하지 않아도 관객의 기억에 남는 노래가 나오게 되었다. (pp.117~118)

그의 일기도 새로운 장르를 이룬다. 처음부터 일기는 자기 묘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창작 작업과 그에 따르는 이론적 성찰을 위한 것이었다. 망명기의 브레히트는 개인적, 정치적, 이론적 데이터를 사진, 컷, 그리고 보도 사진, 신문 스크랩 등과 조합했다. 그래서 기록물이라기보다는 사진과 언어로 된 새로운 형태의 예술 작품이 생겨났다. 이와 관련해서 브레히트는 사진 피그램에 대한 착상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공식적인 보도 사진에다가 해설적인 텍스트를 붙이거나 에피그램 식 4행시를 몽타주하는 형식이다. 이 4행시는 사진을 해설하거나 해석하고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새로운 관점을 추가하기도 한다. (p.118)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예술로 인정을 받기 위해 싸워야만 했던 영화의 가능성과 영화를 통해 문학 작품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것도 브레히트는 즉시 알아차렸다. 물론 그는 극장보다는 영화 산업계에 훨씬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합의된 영화가 반드시 제작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서푼짜리 오페라>의 영화 제작이 브레히트의 의사와 달리 재판을 통해서 관철되었다는 사실을 원작자는 신문과 방송 캠페인을 위해서 이용했다. 그는 허구의 ‘증거’까지 대면서 독일 사회와 법원에 팽배한 법의 왜곡과 (도덕적) 기만을 가차 없이  비판한 것이다. <서푼짜리 소송>은 한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문자 그대로 춤추게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pp.119~120)

“그것이 기어 나온 자궁은 아직도 임신을 할 수 있다.”<전쟁교본>
“우선은 배불리 처먹어야 도덕심이 생긴다.”<서푼짜리 오페라> (p.122)

바일과 브레히트는 (세계적인 성공의 비결은 여기에 있는데) 텍스트와 음악을 새로 결합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현대적인 무용 음악과 재즈 음악을 사용한 음악은 냉정하고 일체의 감정을 조소하는 텍스트와 대립되며 텍스트의 인공적인 파토스가 늘 음악을 통해서 유쾌하게 무력화됨으로써 그 모순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게다가 부분적으로는 대단히 수준이 높은데도 항상 경쾌하게 들리는 음악은 노래로 부를 수 있으며 동시에 텍스트는 분명히 알아들
업에 봉사했다. (p.144)

논리적인 귀결은 공연(서사극)에 비해서 문학적 텍스트는 뒤로, 말하자면 제2선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글로 쓰인 희곡은 신성시되고 그 자체로 완결되며 자율적이고 유효한 텍스트로서의 영광을 잃게 된다. 소위 ‘원작에 충실한 공연’은 마침내 사라진다. 연극술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모든 작품 제작은 필연적으로 텍스트의 새로운 공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브레히트에게는 무대의 실증이 없는 희곡은 ‘완성된’ 것일 수가 없으며 작가 자신이 직접 연극으로 제작하거나 또는 그가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진 모든 새로운 연극 작품 제작은 새로운 텍스트의 판본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최종적인 결론은 텍스트는 원칙적으로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희곡 작품은 철저히 ‘진행 중인 작업’, 변화하고 변화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중요한 것은 착취당한 사람들이 그들의 사안을 스스로 문자 그대로 ‘손에’ 잡을 때까지 잔인한 현실의 인식을 촉진해 나가는 것이다. 선동은 이론과 실천의 기동연습을 가동시키고 촉진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p.152)

소시민이나 영화에 나오는 교양 있고 친절한 노동자들을 가지고는 혁명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효과적인 형식으로 곤경과 참상에 맞선 투쟁에서 국가의 효용성과 도우려는 의지에 대한 관람자의 신뢰감을 모조리 추락시키는 영화는 민주공화국적인 헌법에 기초를 둔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는다.” (p.157~158)

영화기법 (p.162)
이로써 브레히트는 <서푼짜리 소송>의 시론적인 부분에서 요구한, 필수적인 “문학 창작의 기술화”를 <서푼짜리 소설>에서 실천하고 있다. 즉, 문학은 영화가 그때그때의 기술적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언어적 수단을 가지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보기에는 시대에 알맞은 문학은 오직 이렇게 해서 쓰일 수 있는데, 이는 물론 모든 장르와 연극에도 해당된다. (pp.162~163)

“물론 히틀러와 함께 승리하지 못한 우리들 모두 그와 함께 패배한 것이다.”<일지> (p.188)
칸트에 의하면(칸트의 <풍속의 형이상학>에 의하면) 결혼은 “일생 동안 성기를 상호간에 사용하는 데에” 본질이 있다. 몰론 그 전에 혼인을 통해서 인간 전체가 ‘취득’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다. (p.189)

2007/09/26 00:28 2007/09/2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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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부터 <근대세계체제 1, 2, 3>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사놓은지는 몇년 지났는데 계속 이어 끝까지 읽은 적은 없다. 대충 필요한 부분이거나 아니면 관심이 가는 장을 찾아 읽다가 던져놓곤 하였다.

책이 97년에 출간된 것을 보니 군대를 제대하고 산 것 같은데 아마 '생일선물'로 받은 것 같다. 2만원짜리 3권을 한번에 사는 경우는 이럴 때가 아니곤 여간해선 없다. 또 읽고는 싶었어도 꼭 사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것이 아니면 비싸니 '선물로 받아야지'하고 생각하고 뒤로 미뤄둔다. 며칠 전 생일에도 이런 식으로 책을 한권 받았는데, 한권 가격(59,000원, 1200페이지가 넘는다!)이 만만찮아 둘이 함께 사달라고 했다.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1>이다. 2권은 내년에나 손에 들어오지 않은까?
아케이드 프로젝트 1 (양장합본) - 10점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새물결

왜 <근대세계체제>를 읽기 시작했지? 방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자리에 책이 꽂혀 있어서였나. 책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버릇이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쓴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책이 한국어로 출판되기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 다닐 때,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함께 잦아들고 있었다. 아마 3학년 아니면 4학년(91~92년) 때였나보다. 한참 혼자서 국가론과 사회구성체(사회형성체) 논쟁을 관련 논문들을 읽고 있었다. 그때 한국 사회성격을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식민지'는 개념이 담고있는 의미나 한국에서 전개된 논쟁, 운동의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다시 남아메리카에서 발전한 '종속적'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쪽도 그리 맞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종속적'이라는 개념은 신식민지와 같이 일본과 조선, 미국과 한국 등의 한국가와 다른 한국가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보다는 더 낮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국제적인 경제현상은 다자간의 관계이며, 어떤 층위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요즘의 BRICs처럼 당시에 NICs(아시아 신흥공업국)에 대한 논의들이 많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종속적이라는 개념을 국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주도적이지 못한 위치에 있는 일군의 국가들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종속적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들지않았던 것은 소위 '제국주의' 국가들도 전체/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보면 얼마나 자율적일까 하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운명도 이 체제에 '의존적'이지 않은가? 자신들의 운명이 '종속적' 상태에 있는 국가들에 달려있지 않은가? 이때 한국 자본주의에 '개량의 물적 기반'이 있는가, 없는가의 논쟁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것의 밑에는 한국 자본주의가 일본, 미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다국적 자본)처럼, 수준의 문제이긴 하지만,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것은 파시즘 체제가 아닌 민주적 체제로 이행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운명도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 의존적 이라는 말은 민주적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은 새로운 시장(신민지 또는 신식민지에 있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을 통해서만 갖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처음 월러스틴의 책을 이곳 저곳의 논문에서 짜집기하듯 읽었다. 역사적으로 자본의가 태어날 때부터 한 국가가 아닌 '세계경제'를 배경으로 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신식민지, 종속적, 이런 것보다는 공간적 은유인 주변부, 또는 반주변부라는 개념이 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같다.
 
<근대세계체제>는 '1450년 당시에 유럽에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등장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체제제는 두 가지 핵심적인 제도, 즉 어느 일정지역 안에 자리잡은 "세계적" 범위의 분업과 관료제적인 국가기구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경제는 세 지역, 반주변부(semiperiphery), 핵심부(core), 주변부(periphery)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나뉜다.'(p.106)고 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나는 월러스틴이 '사회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과 어떤 주의, 주장에 헌신하는 것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어떤 주의, 주장에 헌신하지 않는 사회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과학이 객관적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한다.(p.25)
그리고 "진리는 변화하는데, 그것은 사회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어진 시간에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동시대적이다. 심지어 지나간 것까지도 그렇다. 그리고 현재 안에서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배경, 우리가 받은 훈련, 우리의 개성과 사회적 역할, 그리고 우리가 그 속에서 활동하는 구조화된 압력들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이다."라고 말한다.(p.26)
따라서 "객과성이란, 전체 사회체제의 한 함수이다. 사회체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특정한 종류의 연구활동이 특정 집단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한 그 연구결과는 이 특정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향될 것이다. 객관성이란, 이러한 활동이 세계체제의 모든 주요 집단에 기반을 둔 사람에 의해서 균형 있게 수행되도록 해주는, 사회적 투자 분배의 벡터이다. 객관성을 이렇게 정의할 경우 객관적인 사회과학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이 가까운 장래에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다."(p.27)

이렇게 월러스틴의 이야기를 쓰게된 동기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근 한겨레신문에서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한 특집을 읽었기 때문이다. 특집의 내용은 위 '사회구성체 논쟁'의 21세기적 형식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한겨레-지식논쟁
한겨레신문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① 조정환, 왜 제국인가 - 제국주의는 죽었다, 21세기는 지구  제국 시대
   ② 정성진, 왜 제국주의인가 - '지구제국'은 허상이다, 제국주의 되레 격화
   ③ 이진경, 제3의 시각 '과잉제국주의' - 제국주의는 과거형, 지구제국은 미래형

조정환, 정성진, 이진경의 주장을 읽으면서 불현듯 월러스틴이 <근대세계체제>에서 쓴 글이 생각났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독특한 특징은, 경제적 결정은 주로 세계경제를 지향한 반면, 정치적 결정은 주로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더 작은 구조들-세계경제 내의 국가들(민족국가, 도시국가, 제국)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제 및 정치의 이중 지향성 또는 "차별성"은 여러 집단들의 자기 정체성에 관한, 즉 집단 이해관계의 합당한 표명에 관한 혼란과 신비화의 근원이다."(p.109)
경제적인 세계화를 기본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조정환과 상대적으로 정치적 국가를 중시하는 정성진은 이런 혼란과 신비화의 도정에 서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나는 감성적으로는 여전히 정성진에 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진경의 지적처럼 유럽연합 등을 살펴볼 때, "경제 및 정치의 이중 지향성"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합류하고, 전지구적인 제국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현재 '경향적'으로 이런쪽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성적으로는 이진경을 지지한다.

(요즘은 이진경을 지지하는 판단에 회의가 든다. 경향성이란 말도 여러 가지 잠재성 중에 하나이고, 어떤 조건에서는 다른 것이 나타날 수가 있다. 또 국가라는 물질적 실재가 언제 없어질까? 정성진의 주장에 '감성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지만 감성 자체가 합리적 이성의 기초이기도 하다. 2009.3.20 update)

이진경의 '과잉'제국주의에서 과잉의 의미를 어떻게 볼까? 국가론에서 보면 함자 알라비(맞나?)가 과대성장국가이론을 말하는데, 그때의 '과잉'과 친연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91년 여름 내내 나는 과대성장국가이론을 한국에 적용하여 분석하는 작업을 했었다. 그리고 에세이 한편을 썼는데 언제가 이것도 posting을 하겠다.) 한 국가차원에서 상부구조가 과잉성장한다는 것과 여러 국가들의 연합을 통해서 제국주의가 과잉(성장)하다는 것. 그런데 전자가 그렇게 되기에 필요한 역사적 배경(식민경험이라는)이 있었던 것처럼 후자가 성립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 제국주의간의 경쟁, 아니면... 이진경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월러스틴은 '장기 16세기'의 유럽과 제국 중국을 비교하면서 자본주의의 탄생을 살피는데, 제국이 자본주의 발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과거 역사에서의 제국과 조정환의 제국은 어떻게 다른가? 경제와 정치의 분절(이중 지향성)이 경제적 착취구조를 감싸는 이데올로기적(신비화) 기제는 아닌가? 이것이 합치될 때는 계급투쟁에서 피아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고 있다.

여하튼 나는 "진리는 변화하는데, 그것은 사회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어진 시간에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동시대적이다. 심지어 지나간 것까지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월러스틴의 말을 믿는다.  그리고 "사회체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특정한 종류의 연구활동이 특정 집단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한 그 연구결과는 이 특정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향될 것"이며 이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알뛰세르의 말처럼 막대를 반대로 구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세계체제 1 - 10점
자본주의적 농업과 16세기 유럽 세계경제의 기원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나종일 외 옮김/까치글방
근대세계체제 2 - 10점
중상주의와 유럽 세계경제의 공고화 1600-1750년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유재건 외 옮김/까치글방
근대세계체제 3 - 10점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거대한 팽창의 두 번째 시대 1730-1840년대
이매뉴얼
2007/09/15 10:17 2007/09/1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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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네 이웃을 비정규직을 사랑하라! (2008.05.21 추가)

 실버라이트 뷰어 서비스 중단으로 영상 삭제 (2019.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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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2007년 7월 26일 "비정규직 법을 고치려는 협상이 진행되더라도, 이전보다 노동계에 결코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일단 비정규직법을 안착시키면서 한편으로 악용 사례를 차단할 수 있는 보완 입법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랜드그룹의 비정규직 대량해고에 대해서도 "법을 악용하는 사용자의 자질이 문제"라며 '법의 문제'가 아닌 '개별 기업가의 부도덕성'에서 원인을 찾았다. (한겨레신문, 2007.7.27, 13면)

법 자체가 이런 문제가 있을 때 어떻게 해야할까? "법을 악용하는 사용자의 자질"과 "개별 기업가의 부도덕성"만을 문제삼아야 할까? 정치체가 아닌 기업체이긴 하지만 어떤 사람들(노동자들)이 법 아래서 자유롭다는 것은 개별기업가의 선의를 통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닌 법 아래서 모두 자유롭다는 것이다. 그런데 개별기업가의 선의를 통해야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이 법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아닌 기업가에게 노예상태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를 유지하려면 (기업가, 전제군주, 또는 독재자의) 임의적 자유재량권의 요소가 없는 정치 체제하에서 살아야 하며 시민권이 국가의 지배자, 지배 집단, 혹은 또 다른 권력자의 선의에 의존해야만 하는 가능을 없애버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말로 하면, 입법의 유일한 권력이 인민 혹은 그들이 신임하는 대표들에게 있는, 그리고 정치체의 모든 개별적 구성원들이-지배자와 시민 다 함께-그들이 자신에게 부과한 그 어떤 법에도 평등하게 복종하는 체제에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자치 정부 체제하에서 살아야만 지배자들의 강압적 임의 재량권을 박탈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을 지배자의 선의에 의존하게 해 노예의 지위로 전락시킬 수 있는 그 어떤 폭군의 등장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퀜틴 스키너의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주의, 푸른역사, 2007>

more..


한국노총 위원장의 주장은 결국 "어떤 법에도 평등하게 복종하는 체제"가 아닌 '기업가들의 강압적 임의재량권',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을 기업가의 선의에 의존하게 해 노예의 지위로 전락'시키려는 것 아닌가? 자유, 법 앞에서의 자유는 정치체만이 아닌 모든 권력에 대한 제한을 요구한다.
2007/07/28 15:43 2007/07/28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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