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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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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n poem'에 해당되는 글 4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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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 -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 대한 (들뢰즈식) 주석에서 이야기한 레닌과 관련된 글들이다.




    서울역에서 종로까지

      - 서울풍경 1


일주일에 한번씩 기차에서 내려 서울역에

서면 현기증이 먼저 그 다음은

구역질이 났다 기차는 대전을 출발해

조치원, 천안, 평택, 수원, 영등포, 그 다음

한강을 건너 서울역에 오고 사람들이

참새 떼같이 떠들면서 몰려 내렸다 소리로

날카로운 바람을 만드는 버스는 뒤에 검은

연기를 달고 머리 위 고가 밑을 달리고 나는

종로 3가에 어느 건물 안에 앉아 밖을 보며

콜라에 햄버거를 먹는다 앰프에 노래 소리 들리고

피켓팅에 가두행진이 있어도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가슴은 뛰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짱돌이라도 날라와 커다란 유리를 깨고

내 머리통을 치기를 바라면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생각도 있으리라 하지만

과거는 과거로 놓자 시간은 항상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고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역사가 뒤걸음친다 해도 시간은 미래로만

흐르리라 그것을 아는 내가 무엇을 어쩌란

말이냐 나의 속에 과거가 살아 꿈틀거린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난 이미 현재 위에 서 있다

피켓팅이 있고 운동가도 있고 사람도 있지만

바리케이트가 없고 적들이 없고 구경꾼도

없다 지금은 침체기다 ‘핵심을 보존해 퇴각하라’

레닌도 생각을 못했으리라 핵심도 없다면 아니

모두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면

누가 퇴각할 수 있을까?

 


---------------------


    희망의 나이


오늘 시내에 나갔다 여기 저기

둘러보다 한 구석에 꽂혀있는

시집을 보았다 김남주가 있고 박노해가

있었다 백무산이 있고 김정환이 있었다 이 모두를

갖고 싶지만 돈이 오천원 밖에 없다 혁명,

동지, 노동자를 향한 외침은 돈에 팔려

나간다 그래도 경쟁에 직면한 조잡한

소비에트의 생필품처럼 이곳에서도 상품성이

떨어지나보다 음모하듯 음침한 구석에 이들만

몰려 있는 것을 보면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저것들을

굶주린 소비에트의 인민처럼 아귀처럼 먹던 때가

있었다 김정환의 「희망의 나이」를 샀다 목 매단

다섯명의 레닌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시집을 팔아

집이라도 장만하려나 목 매단 역사를 보면서

희망을 간직한 채 있는 그도 참 대단하다 그를

한번 흉내내 본다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는 패배했다 아니

지금이 시작인가 단돈 삼천원으로 혁명을 사려는

내가 우습다 그도 그렇다 단돈 삼천원에

희망을 팔지는 않을 것이다 내 나이는 그보다

젊다 나는 그보다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 ‘희망의 나이’ 김정환의 시집 (1992.11, 창비)



 

---------------------


  최종심급

 


• • • • • • 전략 • • • • • •


우리가 알았던 것은

온다던 약속된 시간

우리가 안 것은

기다림과 지루한 고독

우리가 알 것은

날개를 접기 시작하는 의지의 시간

몰랐던 것을 몰랐다 말하는

부끄러운 고백의 시간이 왔다

진린 누가 지고 나가는 것이 아닌

스스로 뚫고 나가는 것이라고 말하자


이성의 간지!

그래 우린 더러운 신앙의 시대에 살았다

가누지 못할만큼 무거운 짐들에

우리 다리는 휘청이면서

주여 어디에 계시나이까?

그런 신념의 교조의 뼈다귀를 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힘겹게 걷던

어둠의 나날들이 있었다


우리가 아는 필연의 세계에서도

우린 자유롭지 못하다

자유란 좌절의 자유일 뿐

아니면 우린 필연의 세계를

정말 알지 못했다

자유란 무지의 자유일 뿐

우린 가쁜 숨에 터질 것 같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버리지 못하는

아쉬움과 주저하고 우물거리는

회의의 거리를  쏴다닌다

 


• • • • • • 중략 • • • • • •

우린 다시 귀를 막고 고함을 친다

이제 가난에 찌든 의진

서푼짜리 관직과 바꾸고

등 따습고 배 부른 자들의 침묵의 시간이 왔다

바로 그 시간이 왔다

우리의 신념이 우리의 의지가

이 땅엔 절대로 절대로 오지 않는다던

오지 못한다던 그 시간이 왔다

고립감에 모두가 고독에 잠기는 시간

고독을 잊기 위해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

술에 마약에 담배에

자위에 계집질에 사내질에

그리고 강요된 노동에

어쩔 수 없는 연구에 잠겨

허우적거릴 시간이 왔다

신한국의 건설과 선진조국 창조의 시간

모든 것의 초점이 그것에 집중하는 시간

헛눈 팔면 짖터지리라 위협하며

시작되는 생산의 정치의 시간

강요된 과학의 시간

최종심급에서 경제결정의 시간이 왔다

 


• • • • • • 후략 • • • • • •


---------------------



1993.3월 졸업을 했다. 92년 말부터는 '백수'였다는 이야기다. 졸업 후 몇 달간 대전과 서울을 오갔다. 대학원엘 갈 요량으로 대학 1학년 교양영어 이후 한번도 안봤던 영어 공부를 한다고 하며. 종로 3가, 하디스에 앉아 콜라와 햄버거를 먹으며 받침에 깔린 종이에 썼던 '넋두리'이다. 


희망의 나이를 서점은 대전 역전통에 있는 대훈서적이었다.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인영이던가. 대훈서적 2층인가 시집 코너, 전시 좌판 아래 책꽂이에서 출판된지 얼마안된 김정환의 시집을 샀다. 서울로 오가는 시간은 길었고, 그 시간마다 시집을 잃은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 나를 대학에, 철학과에 가도록 했던 그 글들. 그해 7월인가, 군에 입대했다. 입대하기 전 삼사개월 간 썼던 글들을 묶어 〖최종심급〗이란 제목을 달아 몇몇 친구와 선배들에게 보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치아키가 비에라 선생을 떠올리듯이, 나는 어떤 순간마다 대학 때 읽어던 레닌의 글을 떠올리고, 되뇌인다. 비에라는 꿈일 뿐이고 슈트레제만보다 못할 수 있지만 말이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레닌은 핵심역량을 보존하며 퇴각을 고민하고 실행했다." 이런 내용을 쓰며, 다시 레닌을 생각한다. '내 나이는 그보다 젊다 나는 그보다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젠 죽음을 맞이했던 1924.1월의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고 말았다. 이젠 그 보다 오래 살 것이란 것에 걸어보자! 살아있는 한 여전히 희망은 유효한 것이다라고 .... 


오늘 아침 아이는 2학년을 시작하기 위해 홍콩으로 갔다. 우리의 대학시절처럼 홍콩은 울렁대고. 아내와 나는 아이를 걱정한다. 아내에게 우리도 그런 대학시절을 보냈지만 이렇게 살고있으니 걱정말라 이야기를 했다. 그 시절과 함께 한 '어떤' 친구들, '최악의 상황'이 마음 한구석에 있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희망은 불안의 쌍둥이 형제이다.


 ㅇ http://dckorea.co.kr/tc/search/상경기


 

2019/08/29 08:33 2019/08/29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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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슬픈 사람이 있다>

- 용산 참사 7주기에 부쳐
 
2016년 1월 16일 신문 위, 시(詩)로
7년이 지난
 지금 막 부활
예수처럼 증거된 '학살자들' !
거리가 점점 멀어지던 단어다.


   
'시민은, 방관자들은 어디로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당신이 물을 때,

찾을 때, 안보였던 것은

아담(Adam)처럼 다른 세계에 서 있었던 거다.

강퍅하던 정신, 몸은 그 거리를 떠났고

결국, 같은 대지에 발을 딛고 서 있지 않았던 거다.
   
학살자!

학살하는 자와 학살 당하는 자가 여전한

세계, 밖, 그래서 '눈 앞에 없었던 사람'
   
당신, 죽음이 망각의 늪 속에서 또 다시

죽지 않기를 바라며,

아담아, 사람아!
부르는 소리에 부끄러워 고개

숙이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가 공유한 유일한 땅,

슬픔 위에 새긴다.

언제나 이곳에 울고 서 있으라.
 
2009년 1월 20일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옥상에

사람이 있었다.
 
2016.1.16일, 심보선,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을 읽으며 ...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댄 죽어 갔지만 그댈 죽인 학살자는 살아 있어"
2011.5.19일에 "사실"(공통기억)을 지키는 것은 보수, 진보를 떠나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초이다라고 썼었다. 최근 '위안부 - 일본군 성노예' 관련된 건을 보면 더욱 더!
2016/01/16 16:46 2016/01/16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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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3년이 지났다. 이젠 "광주시민 학살은 북한 특수부대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생겼다. 사실을 지키는 것 마져도 어렵다. 이런 까닭에 역사는 "기억 투쟁"이라고도 하는걸까! "사실"(공통기억)을 지키는 것은 보수, 진보를 떠나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초이다.


write 2008.5.18 00:00 <광주항쟁 28주년을 기념하며 - 오일팔, 투명한 사회> ---------

광주항쟁
     ▲ 아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 (사진출처)

<오 일팔 - 투명한 사회>는 군대에 있을 때 쓴 시다. 김영삼 정권 때 전두환, 노태우씨에 대한 조사를 하고 5공화국에 대하여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며 면죄부를 주었다. 현실은 어떤가? 우린 또 뒤로 물러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다시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사회로 되돌아간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오 일팔
          - 투명한 사회

그댄 죽어 갔지만 그댈 죽인 학살자는 살아 있어
오, 십팔 ! 그 원수놈은 아직 살아 있어
우리 가슴 분노에 쿵쿵 거린다 북처럼 울어댄다
그대 살은 썩어 흙이 된지도 오래지만
백골에는 아직도 대검자국이, 총탄 자국이 새겨진 채 있고
영혼은 아직도 후미진 계곡에서 아픔에 버둥거린다
꽃 같던 그대 떠난 후
우리 마음 속 깊은 상처가 남아 아물 줄 모른다
그런데 이젠 잊자고 말한다고 잊혀진다더냐?
역사에 넘기자고 말하는 자는 누구냐?
그대 죽으면서도 놓지 못해 소중히 껴안고 간 희망,
그것까지 묻어 버리란 말이냐?
희망도 없이 살란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오, 십팔 ! 우리는 더 이상 절망 속에서 살 수는 없어
오, 십팔 ! 살아 꿈틀거리는 당신들을 또 다시 생매장할 수는 없어
그대 마지막 내쉬던 거친 숨결에 의지했던 지난 시절
무등산 골짜기, 남녘 땅 바람처럼 다시 일어선다
깨진 무릎 털며 일어나 어깨에 어깨를 걸고 거리로 거리로
항쟁의 거리로, 반역의 거리로, 그 살육의 거리로 물결친다
이젠 사람이 짱돌이 되고, 구호가 되고, 깃발이 되어
하늘을 날고 땅 속을 흔들어 당신들 땅 속에서 잡초처럼 일어선다
하늘에서 태풍처럼 불어온다 되살아 난다
그댄 죽어 갔지만 그댈 죽인 학살자는 아직 살아 있어
오, 십팔 ! 원수놈은 살아있어
밤마다 꿈 속에서 두눈 부릅뜨고 노려만 보던 그대여
이젠 모든 비겁을 몰아내 용기 충만한 세상, 그때처럼 투명하다

                                                  1995. 9. 29

법정에 선 전두환, 노태우씨

사진/96년 8월 1심 선고공판에 선 5공 세력. 이들은 지금도 "기본입장은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그해 겨울>도 같은 시기에 썼다. 광주항쟁과 책임자/학살자 처벌 문제가 연일 보도 되면서 학살의 현장이었던 상무대에서 훈련받던 때가 떠올랐다.
       그해 겨울
 
눈이 오면 무등산 중턱부터 뿌옇게 되었고
개 같은 몸뚱이에서 마음도 개처럼 뛰었다
바람에 부들거리던 나무엔 눈꽃이 피고
상무대 포병학교 연병장엔 눈이 덮히고
세상은 아름답고 하얗게 녹아내렸다
시린 발 동동거리며 뛸 때면 전투화 자국 밑에선
피처럼 붉기만한 황토물이 배어나왔다
동백꽃보다 붉은 빛이 땅 속에서 배어나왔다
신음소리처럼 엷은 핏빛이 소리없이 배어나왔다
눈은 풀 먹은 치마폭처럼 사륵거리며
이마로 목으로 입술로 퍼부었다 하지만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촉촉함으로만 남았었다
세상 온통 뒤엎고 앞이 캄캄하게 눈이 내리면
몸은 개처럼 부들거리며 연신 물기만 털었고
들끓는 마음은 개처럼 짖어댔지만
군인인 내가 광주에서 무슨 시냐며
그해 겨울 내내 피가 나도록 입술만 씹었다

                                1995. 9. 4

그 전에 학살자를 처벌하라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 어머니>는 면죄부를 주려는 사법적 판단에 반대하는 시위현장 사진을 보면서 쓴 글이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 어머니

어머니는 머리를 깍고 집을 나섰다
철부지 소녀도 아닌
얼굴에 깊게 패인 인생
오십이 넘은 어머니가 집을 나왔다

죽은 자식 흉부에 박힌 총탄보다
억장 무너져내리게 하는 깊은 슬픔, 분노를 가슴에 안고
생명이 거래되는 속된 세상, 바로 잡으려고
관광버스를 대절해 데모하러 상경을 했다
손에 아들이 들었던 총 한자루도 없이
매일 TV에 사람 쏴 죽이는 그 흔한 총 한자루도 없이
십년 넘게 삭여 온 한으로 서울에 왔다

어머니 떨리는 목소리, 미어지는 가슴
바람난 년처럼 거리를,
미친 년처럼 집회장, 아스팔트 위를 뛴다
보도블럭이 뿌옇게 흐려지는 페퍼포그 안개 사이를
위장 기만 허위의 장막을 뚫고 난다
구호소리 거친 숨소리 긴 경적소리 총소리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붉게 빛나던 핏줄기
몸서리 쳐지는 그날이 아직도 눈에 어머니 눈에 선한데
학살자가 살아 있고 수천 수만의 눈이 부릅뜨고 있는데
죄가 없다니 아니 죄가 있어도 처벌을 안한다니
어머니의 눈물, 떨리는 목소리, 울림 사이로
십년이 지나도 피 흘리는 아들 젊은 광주가 보인다

산사에 출가 해 명복을 빌어도
이 세상에선 공염불인 줄 아는 어머니
죽은 아들을 껴안고 산처럼 일어섰다
학살자 구속 학살자 처벌

장충단 공원, 안개보다도 진한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
머리 깍고 집나온 어머니
두주먹 쥐고 세상 밝게 하려고 싸우는 보살

                                 1995. 7. 28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1995년-97년 5월 5.18특별법 제정과 전-노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 투쟁




 
(출처: http://www.cyberhumanrights.com/media/movement/26_2.pdf)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3 차 궐기대회 1980년 5월 25일)

먼저 이 고장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다 목숨을 바친 시민, 학생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너무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본인이 알기로는 우리 학생들과 시민들은 과도정부의 중대발표와, 또 자제하고 관망하라는 말을 듣고 학생들은 17 일부터 학업에, 시민들은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당국에서는 17 일 야간에 계엄령을 확대 선포하고 일부 학생과 민주인사, 정치인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구실로 불법 연행했습니다. 이에 우리 시민 모두는 의아해 했습니다. 또한 18 일 아침에 각 학교에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에게 대검을 꽂고 돌격 앞으로 를 감행하였고 이에 우리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당국의 불법처사를 규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계엄당국의 18 일 오후부터 공수부대를 대량투입하여 시내 곳곳에서 학생 젊은이에게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였으니! 아! 설마! 설마! 설마했던 일들이 벌어졌으니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 무참이 대검에 찔리고 귀를 짤리고 연약한 아녀자의 젖가슴을 짤리우고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무자비하고도 잔인한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또한 나중에 알고보니 군당국은 계획적으로 경상도 출신 제 7 공수병들로 구성하여 이들에게 지역감정을 충동질하였으며 더구나 이놈들을 3 달씩이나 굶기고 더더군다나 술과 흥분제를 복용시켰다 합니다.

시민 여러분! 너무나 경악스런 또 하나의 사실은 2 0 일 밤부터 계엄당국은 발포명령을 내려무차별 발포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고장을 지키고자 이 자리에 모이신 민주 시민 여러분!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장을 지키고 우리 부모 형제를 지키고자 손에 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에서는 계속 불순배, 폭도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잔인무도한 만행을 일삼았던 계엄군이 폭돕니까? 이 고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우리 시민군이 폭돕니까? 아닙니다. ! 그런데도 당국에서는
계속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은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안전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또한 협상이 올바른 방향대로 진행되면 우리는 즉각 총을 놓겠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 시민군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민군은 절대로 시민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민주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을 절대 믿어주시고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980 . 5 . 25 시민군 일동
한국정치현실의 easton 모형적용
2011/05/19 19:36 2011/05/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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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비밀방문자 2009/12/03 00:44Delete / Modify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jjpark 2009/12/12 20:23Delete / Modify
제가 95년에 쓴 것입니다. 위에 있는 것들도 마찮가지이고 .. life & poem에 들어 있는 것 모두 해당됩니다. 만일 아닌 것이 있다면 옆에 다 써놓았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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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야만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씨의 칼럼을 보았다. <문명사회는 아직 멀었다>라는 제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글이다. 그는 문명사회의 척도를 예절과 법도에서 찾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문명사회의 예를 노일전쟁 때의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좀더 신중하고 지혜로워졌어야 했다고 아쉬워 한다. 그러면서 "대통령 하기 힘 들어서 그만두고 싶다" 등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발언의 예로 들고 있다.

지난 해부터 <문명>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문명은 강자가 만든 도덕심, 아니 형식화(의례화)된 어떤 사회적 행위의 절차인듯 하다. 이런 의례들을 익히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그에 걸맞는 부(문화적 자본을 포함한 부)도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것이 학연, 지연으로 묶인 엘리트집단 내에서 통용되는 '아비투스(Habitus)'일 수 있다. 이것을 습득하지 못한 노무현이란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 그들은 야만인이 내뱉는 언사를 참지 못했을 법하다. (<꽃보다 남자>에서 천민과 귀족의 대조는 이런 사실을 희화화하여 보여준다.)
 
검찰 출신의 한 동기생은 연수원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판사 출신인 연수원 교수들이 수업하다가 ‘어이, 상고 출신 노무현이 대답해봐’ ‘나이 많은 노무현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식으로 짓궂은 질문을 많이 했다. 시보를 나가서도 ‘(상고 출신이라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냐, 너 뭘 배웠냐’ 식의 구박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지나치게 경직된 법조계의 분위기를 못 견뎌 했고, 그래서 판사도 짧게 하고 말았다.”(한겨레신문, “이라크파병 반대 표명에 훗날 고마워해”, 2009.5.57)

한겨레의 기사에 나온 내용은 좋게 말해서 짓궂은 것이지 이야말로 하위계층 출신에 대해 '예의와 법도'를 지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 대다수 상층부의 정신적 미성숙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예의와 법도는 자신들 사이에 지켜지는 것이지 모두에게 지켜질 이유가 없다. 이들은 문명이라는 잣대를 이용해 자신들의 가식성에 대한 반성 없이 하층부의 '비속함'을 꾸짖고 정서적으로 못견뎌하고 또 역겨워하기까지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과정>을 참고할 것)

예절과 법도라는 문명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진보적 지식인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던지는 말의 생경함[footnote]노 전 대통령은 초선 의원 시절인 지난 1989년 국회 5공 청문회 마지막날 "전두환 살인마"라고 외치며 전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집어던지는 등의 행동의 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와 법도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을 듯 하다.
출처: 연세대 앞 굴다리에 '전두환 살인마' 등장[/footnote]에 스스로 부끄러워했거나 듣기싫어 했던 것 같다. 나 자신도 조중동, 또는 지배계급이 만든 문명의 영향을 받았든 아니면 다른 연유에서든 언제부터인가 그의 말이 '막가파'처럼 들렸다는 부인할 수 없다. (이성적으로는 좌파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조중동의 영향하에 있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이젠 이성이 아닌 정서에 대해 좀 더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진보적이라는 말이 전복적이라 말을 담보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참여정부를 욕할 때, 나는 처음부터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이들에 의해 우리나라가 다시는 (파시스트적)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갈 때까지 갔다'(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점에서 그 역사성을 높이 샀다. 지금보면 과거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데 1년도 안걸리는 듯 하지만 ... 그래서 그들이 구현한 시대정신이 더 값져보인다.

이런 '막가파'식 발언이 어쩌면 대다수 국민(민중, 서민)이 말하는 방식일게다. 그는 여기서 좀 더 정제된 말을 썼지만. 말이 의식의 표현이라면, 그가 이런 말투를 바꿔 엘리트집단들(전통적 권력집단들)이 쓰는 의례적이고 정중함으로 포장된 식으로 했다면 그나마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갔을까? 그런 말을 쓰는 순간 그 자신도 이러 저러한 기존의 관행(습속)에 끌려들어가 똑같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노무현은 어떻게 5공화국 청문회에서 '스타'가 되었을까?[footnote][영상] 5공 청문회에서 노무현 대통령[/footnote])

기존의 정치문화(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으로 그가 그 자리에까지 올라왔고, 그 '야생'의 시각에 대한 지지였다면 우리는 그의 '예의없음'[footnote]한편 김동길 명예교수는 지난 29일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에게 사죄를 요구하며 달려든 민주당 백원우 의원도 맹비난했다. 그는 “세상에, 저런 인간도 있는가”라며 “그런 무례한 자는 마땅히 당에서, 국회에서 추방되고, 사법기관이 중형에 처해야 옳은 것 아닙니까. 나라의 꼴이 이게 뭡니까”라고 했다. 김동길씨의 이런 글은 '예의없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전형적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출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언론의 편파적 태도 비난[/footnote]에 경의와 격려를 보냈어야 했다. 언제나 문명, 문화는 질서(rule)을 만들고 이것에서 벗어날 때 야만이라고 공격을 해댄다.

하지만 질서가 무너질 때도 이 야만성에 대하여 꼼짝 못할 때가 있는데 이 야만인들이 아주 우월한 폭력으로 그들의 문명을 비웃으며 장악할 때이다. 좀 비약인듯하지만 전두환이나 노태우, 박정희와 같은 압도적 폭력수단을 장악한 군사정권의 반문명적 행동(광주학살, 고문과 같은 인권침해 등)에 대해 조중동 및 지배계급이 보낸 것은 추파에 가까운 찬양이었다.

'노무현'을 보면서 어쩌면 문명이라는 저들이 쳐둔 함정에 우리 모두 빠져든 것은 아닌가? 자문한다. 이런 생각도 든다. 10년은 너무 짧다. 보수적인 엘리트집단이 만들어놓은 거미줄처럼 미세하게 사회를 감싸고 있는 습속(문명이란 이름의 야만)을 없애고 다른 '문명'을 만들기에는.

10년이면 강산은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10년동안' 피트니스센터에서 몸을 만들고, 좋은 의료시설을 이용한 분들에겐 60, 70 나이가 고령도 아닌 듯하다. 적어도 한세대 이상이 지나 이들 자리가, 이들이 만들어 놓은 강고한 재생산 구조가 약해져야 '루비콘 강을 건넣다'고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런 시간을 단숨에 넘어서려면 이 문명을 뒤흔들어 버린 무자비한 '야만성', 사람들의 몸 어느 구석엔가 흐르고 있는 분노들, 생존을 위한 욕구들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역사상 여러 문명이 있었듯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명'도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

김종철씨는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엄혹한 상황에서, 게다가 자신의 아들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정신적 기율이야말로 인간을 드높이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문적 교양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라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가 말한 정신적 기율의 위대함을 느끼면서도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문적 교양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가 어떤 사회가 아닌 구체적인 개인들에게 어떻게 쌓이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작동하고, 사회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지 묻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정신적 기율을 요구한다면 결국 야만인을 몰아내고 지배계급이 만들어놓은 귀족적 정신에로의 귀의(투항?)가 아닐까?

김종철씨의 이야기를 문맥/상황 속에서 읽으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안하고 표적수사와 확정되지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리기 등에 대한 질타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문명집단(엘리트집단)이 요구하는 노무현식 막말이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으려 하기에 듣기 싫어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더 야비하게 행동을 한다. 야비하게 행동해서 성공하면 그것이 맞고 실용적인 것이다.

이성과 야만은 결코 대립적이지 않다. 문명과 야만도 그렇다. 우리는 문명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야만의 얼굴(핵전쟁, 아우슈비츠 ...)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많은 야만 속에서 순수한 인간의 본성을 더 잘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일까?

비극의 원천, 성찰적 삶의 취약성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의 원천도 여기에 있다. 그는 (상대적이긴 하지만) 기존 지배질서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난 야생성을 가진, 그래서 그 질서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또 그의 야만성은 (모순적이지만) 감정이 아닌 윤리적, 성찰적 이성에 기반하고 있었다.

야만성/야생성에 기반을 두고 그는 기존 질서(이 나라에 깊이 깔려있는, 학연, 지연으로 연결된 엘리트주의, 권위적 지배구조)에 도전했고, 그 도전의 근거는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경험적'이고 이성적인 성찰에서 출발한 것이다.

실용적, 도구적 이성이 아닌 성찰적 이성에 기반한 삶의 취약성은 여기서 발생한다. 성찰적 이성은 우리의 이념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유보될지라도 적어도 언젠가는 .... 따라서 진리의 담지자로서 계몽의 사명을 갖게된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신문, 노 전대통령 "자책골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 2009.5.28)

그런데 검찰의 최근 수사는 그 자신도 "another brick in the wall"이었음을 보여주려는, 그가 서있던 도덕적 근거가 무화되었을 때, 그 자신이 이 운동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 그의 선택이 '다른 벽돌 중 하나'가 아닌 이성적 근거를 다시 새움일 때 ... 실용적, 도구적 이성이 아닌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은 여기서 발생한다.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일 것이고, 또 열심히 뛴다고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라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이젠 제가 이 일을 책임감을 갖고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적는다.(한겨레신문, 노 전대통령 "자책골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 2009.5.28)

성찰적 이성은 어떤 과정이 잘못되었을 때 - 우리의 행동이 실패했을 때 그 목표가 진리임을 보이기 위해서는 "순교자의 지위"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반성의 진정성을 모두에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성적 회고와 성찰이 없는 실용주의와 다른 점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또 더 확대하여 이명박 정권)이라면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1조에서 수천억원을 해먹고도 떳떳하게 살아 숨을 쉰다. 해먹었기 때문에 이것이 진리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반성적,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은 진리 앞에서 전두환씨처럼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지 못하는, '뻔뻔하지 못함'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함'일 것이다. 그런데 양심과 수치심이야 말로 오랜 세월 문명이 만들고자 했던 더 중요한 정신적 기율이 아니던가!  감정을 속인 예의 섞인 말도 (귀족적 삶에서 그저 몸에 배인 형식주의가 아닌) 이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하여 죽음과 배를 맞대고 있는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 때문에 그 이성이 추구하는 진리는 생명력을 얻어 영원성을 획득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오래된 경구가 생각난다.

배제의 원리

요즘, '배제의 원리'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한다. 적 앞에서 왜 분열되는가? 연구대상은 91년 강경대사건 전후에 있었던 김지하씨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외유를 다녀온 황석영씨이다. 어떤 진보적인 지식인의 행동을 평가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이 이들을 어떻게 밀어내고, 그 밀려나간 끝에서 이들은 어떻게 변하는지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권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는 잡다한 구체(삶) 속에 박혀 있는 어쩔 수 없는 차이들에 좀 더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 그 차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떤 추상적 이론(목표)의 힘과 필연성만을 믿을 때, 날선 칼끝에 함께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친다.
 
어떻게 보면 의례화된 문명이란 이런 것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사회의 지속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안전판일 수 있다. 이성화되고 야만성을 버릴수록 우리 스스로 관료화된 강철 새장(Iron Cage)에 갇혀지내야 한다. 강철 새장을 깨트리려는 사람들에게 의례화된 문명이란 없어져야 하는 그 무엇일 뿐이다.
 
막스 베버의 종교적 카리스마에 대한 분석을 보면 이런 운동 과정은 하나의 의례를 없애고 다른 의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시지프나 오이디프스의 비극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예시한다.

저들의 구역질 나는 삶에 욕 한마디 못하고 삶의 윤리적 우위성과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 배제의 원리를 논하는 내 자신이 ... 애닮다!  ... 다시 시를 써야겠다.

        문학일기2
         - 대학

처음엔 어떤 진실을 간직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1987년, 인천 어딘가에 있던 공사장은 아버지의 유배지였다
우리는 도망하듯 한달에 서너번 이사를 했었다
가족 모두 흩어져 어렵던 겨울 내내
눈화장이 묻어난 어머니의 눈물처럼
검게 흐르던 유등천 뚝방에 앉아 눈물을 흘리다
국문과에 원서를 썼다 그것이 타협처럼 보였었다
어머니는 時流에 따라 살아야한다고 말을 했고
철학은 때 늦은 방석 깔은 점쟁이나 때 이른 의식화된 데모꾼이었다
 
1989년, 재수를 해서 철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時流에 대한 시위라고 생각했다
1990년, 쌍문동 아파트들 사이에 낀 난쟁이 옥탑방에서
감정의 군더더기로 몰아 세워 썼던 시를 모두 태웠다
鐵의 規律로 武裝한 前衛가 되고 싶었다
쌍문동과 방학동의 고층 아파트 사이 여름 내내 썩은 내 나던
개울 옆 머리 흐트러진 판자집이 승리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해 오월 처음으로 광주엘 갔었다 검게 타고 부어올라서도
눈만 살아 빛나던 이철규의 얼굴은 그때 본 그림처럼 생생하다

1991년, 강경대가 죽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죽고 관료처럼 생각했다
정권의 유감처럼 분노는 수사였고 정세판단이 중요했다
구호는 사막의 삭막하게 부는 바람처럼 들렸다  놀라 울던 가슴,
감정의 군더더기가 더욱 인간적이었고 진리처럼 보였다
분노를 가진 이성이고 싶었다 다시 억제하던 감정에 빠지고 싶었다

초라하게 주져앉았던 1991년, 방황했던 1992년이 가면서 시적 감정은
도구적 합리성을 압도하는 합리적 이성의 뿌리라고 생각했다

                                                                            1996.1.16

2009.5.28 .. 아니 그 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부터 났던 이런 저런 생각을 오늘(5.31)쓴다.

2009/05/31 14:20 2009/05/31 14:20
From. jaeuro 2010/09/17 14:35Delete / ModifyReply
정보 검색 하던중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인연은 참 오묘한 것 같군요.
아! 그 사람이네..다시 찬찬히 들여다 봅니다.

서정주의 자화상보다 더욱 강렬한 시구네요.
철학, 방송하지말고 시를 쓰셔도 될뻔 했군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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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속초에서 한통, 대전집에서 한통해서 늙은 호박 2개를 얻었다. 언제 죽을 끓여 먹을까 생각하다 팥죽에 대해 호응이 좋아 크리스마스(2008.12.25)에 시간을 내었다.

먼저 늙은 호박 껍집을 벗겼다. 어릴 때는 숟가락을 가지고 박박 긁어내야 했는데 야채 껍질 벗기는 칼이 좋아 슥슥 잘 벗겨진다. 옛날 생각만하고 숟가락 들고 달겨들었다 힘이 들어 망연자실하고 있는데 야채칼을 쓰란다.

단호박도 하나 사 껍질을 벗겼다. 늙은 호박만으로 하면 구수하고 단맛이 없다. 껍질을 벗겨낸 호박을 커다란 찜통에 물에 잠기도록 넣고 푹 삶았다. 늙은 호박은 삶아내면 거의 녹은 것 처럼 흐물 흐물해지고, 호박 안엣 씨를 싸고 있던 섬유질만 조금 엉겨있다. 단호박은 밀도가 높아 쉽게 풀어지지 않아 조각을 찾아 주걱으로 일삼아 눌렀다.

호박이 풀어진 다음 찹쌀가루를 넣는데 아불싸! 수제비 덩어리처럼 뭉친다. 뜨거워 겉이 익어 안에 가루가 그대로 있다. 또 일일히 눌러 풀었다. 그 다음 찹쌀가루를 다른 그릇에 담아 찬물에 넣어 풀 끓이듯이 준비한 다음 따라 넣었다. 좀 났다.

호박죽을 끓이는데는 2시간 남짓 걸렸다. 5시 반에 시작하여 7시 반에 상을 봤으니. 호박죽에 어린아니 손톱만한 단호박 덩이가 들어있어 씹는 맛이 있어 맛있다고 한다. 일부러 한 것은 아니지만 시장에서 파는 호박죽과 다른 독특한 맛이 난다니 기분이 좋다.

아내가 많이 끓였다고 이웃집에 좀 나눠줬나 보다. 다들 맛있다고 단다. 며칠 후 남은 호박 한통을 써서 다시 죽을 끓였는데 첫번째처럼 맛이 나지 않는다. 호박이 덜 익어 그런 것 같다. 껍질을 벗겨 내는데 안이 노랗지않고 푸르스름했는데 죽에서 단내보다 풀냄새가 난다. 재료가 좋으면 맛은 따라온다.

빌리 조엘의 호텔 캘리포니아를 배경음악으로 했다. 원래 윤이상의 피리를 사용해서 동영상을 만들었는데 10분이 넣어 올리지 못했다. '귀곡성' 모양으로 불안한 피리보다 호텔 캘리포니아가 났긴하다. 피리는 Picasa에 올렸다. 94, 95년 즈음에 군복무를 하면서 밤마다 듣던 것인데 애잔하고 불안함, 어떤 불균형이 음악에 들어있다. 최근 '서거' 정국이 이 음악을 떠올리게 한듯 하다. 아내가 싫어하여 한동안 못들었는데 ...
2009/05/31 00:18 2009/05/3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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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년전인가 (그땐 순호가 없었던 것 같으니 10년이 넘은 듯 하다) 팥죽을 한번 끓였었는데 두번째다. 그때는 아마 어머니께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하는지 물었던 것 같다. 음식을 한번 먹어보면 대충 흉내를 내서 만들 수 있다. 어려서 지켜보고 옆에서 도운 것이 내 기억 어느 속 어딘가 살아 있나보다. 어려서 팥죽을 끓이면 하루에 몇그릇을 먹었다. 뜨거울 땐 뜨거운 맛으로, 차가워지면 찬 맛으로 먹었는데 ...

팥죽이 다되면 어머니는 먼저 장독대와 부엌 한 모서리에 떠 놓고 기도를 하셨다. 시골에서 군거질 거리가 없을 때 먹었던 팥죽 생각이 나서인지 해마다 동지가 되면 아내에게 끓여달라고 해도 끓여주질 않는다. 사실 좀 끓이기가 번잡스럽고 힘이 많이 들어간다. 어머니는 어떻게 그 많은 양을 끓였는지 모르겠다.

이번엔(2008년 12월 22일) 직접 끓이기로 작정하고 아내에게 팥죽 재료(팥 2봉지, 찹쌀 2봉지, 찹쌀가루 2봉지)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다. 퇴근해 옷도 갈아입지 않고 7시 반에 만들기 시작해 10시에 먹을 수 있었다. 맛이 없다면 그것이 더 이상할 시간이다.

먼저 새알을 만들면서 팥을 삶았다. 팥을 물에 담가놓지 않고 바로 씻어 압력솥에 넣었는데 푹 퍼지지지 않아 다시 물을 더 붓고 삶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 솥단지 밑부분을 태웠다. 아깝지만 탄 내가 날까봐 버리기로 했다. 팥이 퍼지면서 물을 많이 먹는데 물이 적었던 것 같다.

삶은 팥을 채를 놓고 이겨 껍질을 벗겨내고 팥앙금만 받아낸 다음 솥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 찹쌀을 씻어 넣고 끓였다. 팥죽이 끓기 시작하면 만들어 놓은 새알을 넣고, 새알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다 익었다고 생각해도 된다. 팥을 으깨 채로 쳐내는 것이 가장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들었는데 믹서기로 갈아 걸러냈으면 되었을 텐데! 팥죽이 끓기 시작하면 솥 바닦까지 열심히 젓지않으면 눌어버린다.

단팥죽을 만들려면 설탕이나 꿀을 넣으면 되는데 우리는 아무 것도 넣지않았다. 사서 먹는 것처럼 단맛은 나지 않지만 걸죽하면서 부드러운 맛이 났다. 찹쌀을 넣지않고 새알만 넣기도 하는데 그러면 (개인 취향이지만) 쉬 배가 꺼지고 씹히는 맛 덜하다. 아내도 순호도 맛있다고 하며 한사발씩 비운 후 조금씩 더 먹었다.

배경음악으로 비틀즈의 Hey Jude를 삽입했다. 아내가 닭도리탕을 보면서 자기가 더 많이 음식을 하는데 이렇게 올려놓으니 나만 하는 것 같다고 한마디 한다. 아내가 아주 많이 하고 나는 가끔 한다.

2009/05/26 23:00 2009/05/26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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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생일(2월)에 메인메뉴로 닭도리탕을 만들었다. 아침에는 미역국이 싫다고 하여 콩나물국을 끓였는데 ... 닭을 살짝 끓여 기름을 뺀 후 그 위에 당근, 고구마, 양파, 새송이, 양배추, 배 등을 올리고 고추장을 세 스푼정도 넣었다. 집에 있는 야채는 모두 넣은 듯 하다. 그 다음 물을 넣고 계속 끓여 졸였다.

세상에서 이렇게 만들기 쉬운 요리도 몇개 없을 것이다. 조금 손이 가긴 하지만 .. 고추장 넣고 끓이다 간이 안맞으면 간장을 약간 넣어도 되고 고추장을 좀 더 추가해도 좋다.

생일상은 닭도리탕에 콩나물국, 새로한 밥, 과일 몇가지, 집에 있는 반찬을 찾아 예쁘게 담아 내놨다. 그리고 백화점에서 사온 초밥 한접시를 추가했다.

퇴근한 후 한시간 반정도 준비했는데 차려놓으니 뭔가 많아보인다. 아내가 교회에서 수요예배를 보고 장모님과 함께 오고, 처남과 처제가 연이어 도착했다. 순호도 요리하는 것을 옆에서 도왔다. 밖에 나가 외식을 했어야 하는데 아내에게 미안하다.

배경음악은 밥 말리(Bob Marley)의 <Keep On Moving>을 사용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가수이다. 요즘 아침 저녁으로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면서 너무 자주 들어 질린다. 집에 있는 CD를 리핑하여 Zune에 넣었는데 그의 노래만 60~70곡이 넘나보다. CD가 열장이 넘으니 ...

동영상은 Picasa를 이용하여 만들었는데, 배경 음악을 넣는 기능도 함께 제공한다. 사진을 wmv 파일로 만든 다음 NeTV Up Loader를 이용해 등록했다.
2009/05/22 20:06 2009/05/22 20:06
From. 노씨 2009/07/22 19:31Delete / ModifyReply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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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토리노

5월 1일, 가족들과 함께 이태원 산토리니(Santorini)에 갔다. 정통 그리스 식당이란다. 장모님 주재 하에 한달에 한군데씩 서울 시내에 있는 '정통' 외국 음식점을 돌기 시작했는데 두번째다. 첫번째는 정동에 있는 브라질 음식점이었다. 브라질 음식점은 라스베가스 출장 때 두번 가봤었는데 음식을 주는 방식이 사뭇 다르다. 한국엘 오니 한국법을 따르는 듯하다. 또 귤화위지라고 맛도 좀 못했다.

차를 회사에 세워놓고 오목교역에서 공덕역까지 가 6호선으로 갈아탔다. 산토리노는 이태원 헤밀톤호텔 뒷편에 있다. (아래 지도에서 왼편 골목으로 올라간 후 왼편으로 돌아 조금가면 왼편으로 보인다.)



샐러드, 짜지키, 빵

먼저 짜지키(Tzatziki)와 샐러드, 빵이 나왔다. 플레인 요거트로 만든 그리스 소스인데 맛이 담백하고 개운하여 많이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빵에 짜지키를 찍어 샐러드와 함께 먹었다. 빵도 맛있고 부드러워 한번 더 달라고 했다.

Greek blue glass

Greek photograph

식당안은 크지 않지만 파란 하늘, 바다, 하얀 건물들로 이루어진 사진들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맞은 편 벽면은 도자기로 장식되어 있다. 또 창문과 안쪽 카운터 겸 주방이 마주해 있는데 창문에는 파란색 커튼이 파란색 창틀 위를 덮고 었다. 그래서인지 밖에 비가 왔지만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이 푸르스름하게 번지는듯 보였다.

한쪽 옆에서 그리스인인듯한 한 가족이 식사를 했고 창가쪽으로 한쌍의 연인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오갔다. 탁자 위에 놓여있는 파란 유리잔(Greek blue glass)이 정취를 더 해준다.

폭 스블라끼

폭 스블라끼(Pork Souvlaki)라는 꼬치요리를 시켰는데 훈제한 맛이 감칠 맛이 나고, 입맛에도 잘 맞았다. 폭 스블라끼로 직화(直火)로 구운 돼지고기인데 한입 크기의 고기를 양파, 토마토, 피망 등의 채소와 번갈아 끼워 올리브 기름을 발라 구워냈는데 짜지키에 찍어 먹으면 새콤한 맛이 난다.

기로스 샌드위치(Gyros Pork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와 폭 스블라끼 샌드위치( Pork Souvlaki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

기로스 샌드위치(Gyros Pork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와 폭 스블라끼 샌드위치( Pork Souvlaki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

기로스 샌드위치(Gyros Pork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와 폭 스블라끼 샌드위치( Pork Souvlaki Pitta Sandwich with French Fried)도 시켰다.

기로스는 쇠꼬챙이에 양고기나 돼지고기를 꿰어 구운 뒤 칼로 저며 내 밀전병으로 싼 것이다. 고기를 굽는 과정에서 기름이 빠지고 화덕의 향이 배어나온다. 구워진 고기는  밀가루 반죽으로 만든 피타빵 위에 양상추, 양파, 토마토, 파프리카, 올리브 등의 채소와 함께 넣고 돌돌 말아내는데, 말기 전 이 위에 짜지키 소스를 얹는다.

이것도 화덕 향과 함께 맛이 좋다.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버거킹 와퍼를 먹을 때 나는 화로향보다 짙은 맛이 나온다.

 Hoegaarden - 맥주

작은 맥주 2병시켜 네명이 나눠마셨는데, 아내가 시킨 Hoegaarden의 맛이 음식과 어울렸다. 맥주 이름을 기억할 요량으로 사진을 찍었다. 병 뒤로 포크를 고추세워지고 열심히 먹고 있는 순호 모습이 보인다.

처남은 그리스 전통 술이라는 우조(ouzo)를 시켰는데 그 독특한 향 때문에 마시지 못하고, 이리 저리 한번씩 맛보라고 돌리다 결국 내려놓고 맥주를 한잔 얻어마셨다. 그 향이 좋지는 않지만 익숙해 잘 생각해보니 일본에서 만든 돌사탕(?)에서 나는 향 같았다.

바클라바(Baklava)

그리스 커피(Greek coffee)

바클라바(Baklava) 한 조각과 그리스 커피(Greek coffee) 세잔을 후식으로 시켰다. 바클라바는 크라상을 파이처럼 동그랗게 만들어 눌러놓은 것 같다. 이렇게 만든 것을 꿀단지든 진한 설탕물에 다가놓은 듯한데 모두 너무 달아 조금씩 입에 댄후 남겼다.

그리스 커피는 원두를 그대로 갈아내어 끓인다고 하는데 그 향과 조금 걸죽하고 달짝한 맛은 있지만 모두 입맛에 맞지않았다. 커피 맛보다 커피잔이 이쁘다고 아내와 처제가 한마디씩 한다.

전체적인 평가는 대만족이다. 모두 다음에 또 와보고 싶다고들 한다. 다만 우조, 그리스 커피, 바클라바는 빼고. 주메뉴는 괜찮은데 곁들여 먹은 것들이 입맛에 안맞은 듯 하다. 우조와 커피를 보면 음식을 먹을 때 향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는듯 하다.
2009/05/16 21:51 2009/05/16 21:51
From. 제레미 2009/05/21 12:49Delete / ModifyReply
한번 가바야겠다.. 우리 경준이 데리고 가면 어떨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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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에서 구입한 책과 LP

9월 27일 보물섬에 LP판을 사러갔다가 헤이리에 들렀다. Horovitz, Rubinstein, Serkin이 연주한 Beethoven 작품집 3장과 최성원, 조용필, NEXT 노래, 그리고 시집 몇 권을 샀다. NEXT 음반의 경우 아주 새 것인데 250원이다. 가족 모두 전기차를 타고 헤이리 전체를 돌면서 각 건물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재미있다. 헤이리 안에 500살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금산갤러리

헤이리 금산갤러리(위 사진)는 <2006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 건물이 나무를 감싸안고 있다. 그런데 일주일 지난 10월 4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비슷한 모양의 조각작품을 보았다. 최재은의 <과거, 미래>(1998, 아래 사진)이다. 작가들의 동기야 다를 수 있겠지만 둘다 거대한 인공물을 뚫고 나온 나무, 아니면 나무를 생각해서 만든 인공물이다.

과거, 미래 - 최재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많이 갔지만 최재은씨의 작품은 처음 보았다. 자연캠핑장에서 가족과 '1박2일'하고 내려오는 길에 있었다. 미술관 초입이 아닌 안쪽 깊이 숨어(?) 있었다.

<과거, 미래> 사이에 현재가 있다. 현재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현재를 잡을 수 없다. 현재는 순간이다. '시간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영원한 현재'이다. 영원한 자연과 유한한 인공물, 반대로 나무보다 오래갈지 모를 쇠붙이와 유한한 생명체인 나무 사이에서 '세계 속에 존재하는 묘한 순간의 나'를 읽는다.

현재는 존재하는 것이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현재를 사는 사람도 마찮가지다. 어떤 경향성을 가진 주체로서 존재하면서도 계속 변하고 있어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주체'이다. <과거, 미래>를 보면서 시간과 함께 계속 변하는 우리가 보통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예술의 영원성'을 벗어나 계속 생성하고 변화하는 작품을 본다.

잎이 피고, 단풍이 들고, 잎이 지고 눈에 묻히는 나무, 자연을 작품 안에 끌어들였다. 금산갤러리도 그렇고 <과거, 미래>도 그렇다. 그런데 그 방법은 울타리(경계)를 긋는 것이다. 자연 친화적(또는 친환경적)이라고 해도 문명 자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렇게 된다. 어떤 경험, 사건이 개념화될 때도 그렇다. 무엇인가를 버려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 얻은 것이 커다란 성취였다가도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질곡으로 변한다. 우린 문명의 성취에 있지만 한편에서는 '질곡'을 맛보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가이꾸 - 베티 골드

베티 골드의 <가이꾸, KAIKOO XI XVII>라는 작품이다. 가이꾸는 하와이 말로 파도이다. 뜻을 알고 보면 파도처럼 보인다. 그전에는 원 같기도 하고, 하이힐 같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인식은 경험적이라기 보다 개념적이다. 원래 노란색인데 갑작스레 주홍빛으로 변했다. 며칠 전에 아저씨들이 페인트를 칠하고 갔다는데 ... !

세 개의 비결정적 선 - 베르나르 브네

베르나르 브네의 <세 개의 비결정적 선>이다. 사진에서는 잘 안보이는데 원을 자른 호들을 붙여만들었고 '세 개'로 이뤄져 있다. 녹슬어 뒹굴고(?) 있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몇 억이 넘는 비싼 작품이다. (작품 더 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0871697)

시점 - 오프너, 권달술

미술관 올라오는 길목 소나무 밑에 있는 권달술의 <시점 - 오프너>이다. 이 작품도 마음 먹고 찾지 않으면 잘 눈에 띄지않는다. 스팸 따개를 땅에 박아 놓은 모습인데 '시점'은 '관점(view point)'이다. 관점을 바꾸어 사물을 보면 세계의 '다면성/다양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스피노자의 존재(세계)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양태들.

노래하는 사람 - 조나단 브로프스키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이다. 잘들어보면 어디선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슬프게도, 흥겹게도 들린다. 이 작가는 주로 '거대한 인간(거인)'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드는데 거인들은 험악하다기 보다는 친근한다. 왜그럴까?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 가면 다른 작품을 볼 수 있다.

문에서 - 이우환

이우환의 <문에서>이다. 자연물인 돌과 광석에서 추출한 쇠를 이용해 문을 만들어 놨다. 문이 사람쪽으로 열려있는데 자연과의 소통은 인간의 몫이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파주 출판단지의 철로 만들어진 건물과 같이 작품이 녹슬어 가는데 둘 다 인공적이면서도 썩어가는 듯한 자연미를 보여준다.

사방에서 - 이우환

이것도 이우환의 <사방에서>이다. 동서남북, 세상 전체를 아주 쉽게 말하고 있는데 ...

작품86 - 끝없는, 곽인식

곽인식의 <작품86 - 끝없는>이다. 미술관 들어오는 입구 서 있는데 작품이라기 보다는 '굴뚝' 같다. <사방에서>나 이 작품을 보면 글쎄 ... 미술이 어디까지 가려고 할까? '미술계'에 들어서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예술에 대한 통념을 깨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10개의 계량기 - 곽준덕

곽준덕의 <10개의 계량기>이다. 나는 이 작품 앞에만 서면 계량기 1개의 무게 얼마인가 계산하고, 다시 층층마다 잘 계산되어 있다 살펴본다.

각축의 인생 - 황현수

제일 잘보이는 미술관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황현수의 <각축의 인생>이다. 또 사람들이 모두 작품 속의 사람처럼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사방에서 서로 밀고 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쇠공처럼 세상이 그렇다. 재미있게 사진을 찍는 어린 아이들도 크면 서로 경쟁하면 반대에서 밀어제끼는 세상을 보면서 씁쓸해 할 지 모른다. 밀고 있는 사람들은 조각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을 떠낸 것(casting) 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나라의 봉화대와 성곽을 본 떴다. 또 우리 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강암을 사용했다. 박수근의 그림처럼 화강암 같은 인생을 살았으면! 그림이 좋지만 조각도 알고보면 더 재미있다.

10월 3일 출발한 과천 서울대공원 자연캠핑장에서의 '1박2일'은 조각공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청계산 숲 속 벤치에 누워 바라보았던 햇살에 반짝이던 연두색 나뭇잎과 새 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향기로운 바람이 벌써 그립다.

청계산 - 자연캠핑장 B코스 벤치 위 하늘
2008/10/08 01:05 2008/10/08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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턴테이블을 샀다. 제대하면서 면세쿠폰으로 산 오디오가 제대로 작동 안한지도 이년은 된 듯하다. 십년이 조금 넘었다. 스피커는 낡아서 부석거면서 울림판이 찢겨지고, 어떤 CD는 읽고, 또 어떤 것은 못읽고 하다가 아예 하나도 안읽혀지게 되었다.

오디오는 주로 아내가 썼다. 나는 아내가 틀어주는 노래를 듣는다. 그러다가 아이가 생기고 토들러 송에서 구연동화, 영어 테이프나 CD를 듣는데 주로 썼다. 십년 넘게 함께 살았으니 막상 버린다고 생각하니 아쉽고 지난 시간이 그립다. 몇년전에 A/S센터에 맡겨 고친적이 있는데 이젠 그곳도 찾기도 어렵다. 오디오를 처분하지 않으면 다른 것을 사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지나가는 중고 가전제품 사는 차를 불렀다. 오천원 준다고 한다. 동남아로 수출한 단다. 몇 주전 일이다.

롯데 오디오 셋

그리고 크로슬리 턴테이블을 샀다. (40만원짜리라고 하는데 20만원에 샀다. 전시품이라서 싸단다. 20만원이 미국에서 판매하는 가격이다. 생활 흠집이 있다는데 눈이 나빠서인가 보이지 않는다.) '턴테이블'로 검색을 해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크로슬리'를 찾았는데 장식성은 높은데 음질은 좀 떨어진다는 것이 중평인데 '정말 음질이 않좋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들어보니 그렇다는 이야기다. 소리에 민감한 편인 아내도 그렇다고 하니.

턴테이블을 사겠다고 마음 먹은 것은 아내가 집에서 오육십여장의 LP판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다닐 때까지 사모은 것이다. 80년대의 음악세계가 모여 있다. 지난주(9월 11일)에 턴테이블이 왔다. 동영상은 그날 밤 동안 이 노래 저 노래 들으면서 찍었다. 노래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크로슬리 턴테이블

그리고 거의 이십년만에 LP판을 듣고 있으니 편리한 디지털 이전에 있었던 아날로그의 미덕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앞뒷면에 십여곡의 노래가 들어있고, 앞면이 끝나면 가서 뒷면으로 뒤집어 줘야 한다. 마음에 드는 곡이 있어 또 듣고 싶어도 다시 가서 바늘(헤드, 턴암)을 다시 맞춰야 한다. 좀 더 몸이 움직이고, 눈과 손 작업이 들어간다.

또 노래를 들으면서는 다음에 들을 음반을 골라야 한다. 음반을 산다고 모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래 저래 집중해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이전에 당연했던 것이 지금은 생소하게 느껴진다. 몸의 노고가 따르고 '무한재생'이 안되니 들려오는 노래에 좀 더 집중하게 된다. 음악 자체보다 배경음악 정도로까지 내려간 디지털화된 음악과 다르다. 느리고 불편한 것 속에서 미덕을 느낄 정도로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고, 편한 것만 찾는 것 같다.

또 다른 미덕을 찾는다면 무엇이 있을까? 아마 시간과 공간인 듯하다. LP판은 시간의 흐름에 약간의 변형이 생기면 그 변화를 소리로 알려주는데, 음악 자체를 놓고 보면 바람직하지 않지만 좀 더 자연스러운 것 같다. 카피본이라 하더라도 원본과 같은 음질,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음질보다도 손을 거칠 때마다 변하고 변형되는 음악 말이다.

사람이 변하지, 늙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은 부러워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은 그/그녀를 '징그럽게' 여길 것이다. 또 늙지 않았는데 찾는 사람이 없다면 얼마나 쓸쓸할까! 음악에 이런 감정이입을 하기에는 어렵겠지만.

공간은 소리들이 자리잡고 있는 LP판 자체가 뿜어내는 '아우라'다. 또 거기에 배어있는 기억들, 소리, 냄새, 바람, 습기와 같은 느낌들,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미세지각(micro-perception)'의 세계가 있다. 우리가 느끼면서도 느끼지 못하는 세계가 있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함께 변하고 손 때가 묻은 음악이 좋다.

컴퓨터도 좋지만 심정적으로 컴퓨터 속으로 안들어갔으면 하는 세계도 있다.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계! 내가 자란 세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느껴야만 하는 세계!

영상과 함께 녹음된 노래는 Louis Armstrong, Satchmo, What a wonderful world에 있는 <IT AIN'T NECESSARILY SO>로 함께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는 Ella Fitzgerald이다. 다음 주에는 파주 <보물섬>에 가야겠다. 헌책과 함께 철지난 LP판을 판다.
2008/09/18 00:17 2008/09/18 00:17
From. 리명선 2012/03/31 21:34Delete / ModifyReply
크로슬리턴테이블 검색해서 동영상 보게되었는데요 ㅜ
제가 턴테이블을가지고있는데 ㅜ 조작법을 잘몰라서 여쭤봅니당 ~

처음에는 포노모드로 돌려놓으면 테이블이 알아서돌아갔었는데
오랜만에 해보니 포노모드로 돌려놓아도 테이블이 움직이지 않네요 ㅜ
혹시나해서 레코드판을 올려놓아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움직이질않아요 ㅜㅜ
그리고 포노 모드로 해놓고 REC / ERASE 버튼을 누르면 NIL 이라고 뜨는데 왜뜨는지, 혹시님도 뜨시는지요 ... ㅜㅜ 아시면좀 알려주시겠어요 ~ ?
뭐가문제인지 혹시 아시면 연락좀주세요 ... 아무리지식인에검색해도나오질않아서요 ㅠ
01072099950 입니다 ! ^^
jjpark 2012/04/14 18:54Delete / Modify
"포노 모드로 해놓고 REC / ERASE 버튼을 누르면 NIL 이라고 뜨는데 왜뜨는지, 혹시님도 뜨시는지요 ... ㅜㅜ 아시면좀 알려주시겠어요 ~ ?"

- 포노모드까지는 알겠는데 REC/ERASE 버튼은 모르겠습니다. 제 리모콘엔 그 버튼이 없습니다.

- 턴테이블이 안돌아가는 것이라면 ... 제 것에서는 헤드를 음반 있는 곳 바깥쪽으로 살짝 당기면 '딸깍'소리가 나면서 돌아가고 음반 위에 헤드를 올려놓으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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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2008.9.6) 오후 과천현대미술관을 갔다.꼭대기 층부터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상설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1층 원형전시실까지 내려왔다. 한동안 꺼져있었던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보수가 끝난듯 다시 켜져있다.
 
원형전시실에서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빌 비올라의 <해변 없는 바다, Ocean Without a Shore>를 보았다. 5.30 ~ 10.26까지 전시 중이다.  빌 비올라(Bill Viola)는 백남준의 오랜 동료이자 제자로 비디오 아트를 발전시켰다. 이 작품은 최고의 기술(technology)을 이용한 시각적 정밀함을 보여준다. 특수 제작된 3개의 스크린에 고화질 비디오와 사운드로 제작된 설치작품이다.

빌 비올라는 베니스의 산 갈로(San Gallo) 교회에서 영감을 받아 이곳에서 24명의 연기자와 20명의 기술팀과 함께 이 작품을 제작했다. 연기자들은 인종, 성별, 연령이 모두 다르다. 교회 내부에 있는 3개의 제단석을 비디오 스크린을 위한 지지대로 사용했는데 지금 전시 중인 것은 한국에서 비슷하게 제작된 것이다.
연기자들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서면서 색, 소리, 움직임, 표정 등을 갖게 되고 어떤 선을 넘어서면 이 세계로 들어온다. 산자들을 위해 죽은 자들이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모습 속에서 24명의 연기자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모습'을 하고 있다.

작품을 본 후 왜 <해변 없는 바다>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바다"는 작품을 지배하는 경계로서의 물, 이 물은 어둠 속을 거쳐 물을 뚫고 나오면 감정과 표정을 가진 '구체적'인 사람이 되고, 다시 이 물 뒤로 가면 어둠 속에서 無로, 형상(eidos)없는 물질(hyle, 질료)로 변하게 하는 경계가 된다. 이 경계는 소리도 빛도 없는 어둠 속의 저곳과 파도 소리, (고화질의)맨질거리는 색깔과 물결 소리가 있는 이곳을 나눈다. 연기자들이 침몰하는 스크린 저편과 드러나는 이편, 시각과 청각 즉 감각적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를 나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경계가 정말 있는 것일까하는 질문을 던지는듯 하다. 왜냐하면 "해변"은 육지와 바다가 연결되는 곳인데 이 해변이 없기 때문이다. <해변이 없는 바다>는 달리 말하면 '경계가 없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나눠 놓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존재와 무에 대한 질문, 세계가 정말 이렇게 나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경계란 장자(莊子)의 꿈과 같은 것이다.

한국현대사진 60년
우리는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응시하면 스크린을 통해 부상하고 침몰하는 연기자들을 본다. 하지만 스크린 안의 연기자들에게는 반대로 보일 수 있다. 24명의 연기자들의 짧지만 서로 다른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는 것처럼 스크린 앞에선 우리는 각자 자신의 표정과 몸짓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각자의 표정과 몸짓 속에는 '물/경계'로 씻어도 씻겨지지 않는'존재/기억'이 묻어있다. 이승이든 저승이든 기억은 영혼에 혹은 물질 속에 깃들어 영원한 것은 아닐까? 기억의 불멸성을 전제하지 않은 영혼불멸이란 가능할까? 상상할 수 없다.  전시장의 어둠 속에서 이런 생각에 빠져든다. 우리 자신이 세계와 세계를 넘나든다면 우리에게 경계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낱 통과의례일까? 죽어도 뼈 속까지 각인된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우리 앞으로 불러낼 수 없을 것이다.

원형전시장을 둘러본 후 <한국현대사진 60년, 1948 - 2008>과 <미술이 만난 바다> 전시회를 보았다. 사진은 '순간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을 통해 기억, 감정, 생각 등의 다발을 불러내고, 이를 매개해 주면서 예술이 되는 듯하다.

아이와 함께 코끼리 기차와 리프트를 탔다. 8시가 되어 밤 늦게 리프트를 타니 무섭다고 야단이다. 어둠 속 보이지 않는 곳에 두려움이 산다.



▲ Bill Violla의 작품 해설과 산 갈로 '고풍스러운' 교회의 제단석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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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02:02 2008/09/09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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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베큐 립 만들기
life n poem, (2008/07/22 23:21)

6월 21일 코스트코에 가서 '냉동 돈육 바베큐 갈비'를 사왔다. 아내가 어떻게 요리할지 모른다며 반대를 했는데 바베큐 립을 책임지고 한번 해보겠다고 '떼'를 써서 샀다. 아웃백 스테이크 하우스에 가끔 가는데 주로 오지 치즈 후라이즈와 바베큐 립을 먹는다. 그래서 바베큐 립을 직접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바베큐용 돼지갈비

어떻게 요리를 해야 하나 걱정 이전에, 2만6천원 어치인데 갈비가 두짝으로 양이 많아 우선 흐믓하다. 순호도 입맛을 쩝쩝대며 함께 흐믓해 하면서 언제 요리를 할 것인지를 묻는다. D-Day를 22일, 일요일로 잡았다. 코스트코에서 피자와 핫도그로 저녁을 했으니 오늘 바로 하기에는 그렇다.

오전에 운동을 한 후 오후 네시 정도가 되어 요리를 시작했다. 우선 조리법을 몰라 어떻게 요리하는지 검색했다. 요리법이 자세히 나온 것은 찾지 못했는데 이러 저리 몇군데를 돌아다니면서 보니  ①먼저 갈비를 삶아 낸 후 ②소스를 만들어 제운 다음 2시간 정도를 놔두었다가 ③오븐에 구워내는 순서이다.

갈비(rib)을 삶을 때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허브 잎을 넣어야 한다고 조언을 하는데 허브 잎이 없다. 그래서 우선 집에 있는 술을 찾아 넣고, 또 캠핑 갈 때 삼겹살 바베큐용으로 사온 Seasoning을 넣었다. Seasoning이 소금과 허브가루가 들어있으니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다'는 심정이었다. 보쌈용 돼지고기를 삶을 때 커피 한스푼과 된장을 푸는데 이것보다는 격식을 갖춘 셈이다.

냄새 제거용 술냄새 제거와 간을 위한 Seasoning

이제 갈비를 냄비에 넣고 삶으면서 앞에서 준비한 백세주와 양주를 넣고, Seasoning을 넣고 한 두시간정도 삶았다. 삶으면서 소스를 준비해야 하는데 집에 바베큐 소스가 없어서 소스를 대체할만한 모든 것을 끌어모았다. 먼저 마늘을 좀 다져놓고 냉장고에서 감식초, 캐첩, 구이용 소스, 갈비소스, 피자에 딸려온 핫소스, 그리고 레몬을 꺼냈다. 레몬이 있으니 감식초는 제외하고, 캐첩은 거의 없어 치우고 남은 것을  모아 소스를 만들었다.

돼지갈비 삶기소스 만들 재료 (22일)만든 소스 (22일)

그 다음 바베큐 립과 함께 먹을 '더운 야채(데처낸 야채)'를 위해 브로컬리를 삶고 나중에 오븐에 삶은 립과 함께 구울 감자를 준비했다. 야채를 씻고 냄비 두껑을 여닫는 것, 그리고 소스 맛을 보는 것은 아이 몫이다.

브로컬리 데치기오븐에 굽기 위해 자른 감자 - 삶는게 났다.

더운 야채와 바베큐 립만으로는 좀 허전해 보여 후실리를 삶아내고, 스파게띠 소스를 볶아냈다. 후실리를 삶을 때 집에 있던 토마토 두개를 함께 삶아내 인스턴트 스파게띠 소스의 강한 조미료 맛을 중화시켰다. 소스가 냉장고 밖에서 꽤 오래되었는데도 변질되지않아 마음 한곁에서는 찝찝해 하고, 또 한곁에서는 다행스러워 한다. 삶아낸 후실리는 먼저 올리브유에 볶아 접시에 놓은 다음 스파게띠 소스를 부었다.
 
올리브유에 삶아낸 후실리 볶기 (22일)삶아낸 토마토 (29일)

이 사이에 바베큐용 립을 삶아내어 소스를 잘바른 후 오븐에 넣고 구웠다. 약간 기름기가 흘러내릴 정도까지 넣었다가 꺼냈다. 소스를 바른 후 약 두시간을 두고 숙성을 시켜야한다고 하는데 준비를 하면서 시간이 꽤 흘러, 또 순호가 계속 언제 먹냐고 물어와서 숙성없이 곧바로 오븐으로 들어갔다. 오븐에 넣을 때 감자와 버섯을 썰어 옆에 두고 구웠다.

오븐에 넣을 바베큐 립 (22일)바베큐 립에 소스 바르기 (29일)

말로 설명하면 이렇게 긴 과정과 약 세시간 정도 걸린 결과 만들어진 더운 야채를 겹들인 바베큐 립과 스파게띠 소스에 버무린 후실리다. 그리고 옆에 후식으로 수박을 준비했다.

약 세시간 경과 후 차려진 식탁 (22일)

요리는 22일에 한번하고, 29일에 한번 더 했다. 사실 22일 요리때는 기름기를 쏙 뺀다고 하면서 약간 태웠고, 29일에는 그런 불상사가 재발하지 않았다. 오븐을 이용해 기름기를 빼기보다는 소스를 꼬득 꼬득하게 말리면서 식은 립을 데운다는 정도로 사용했다. 또 22일에는 소스를 있는 것으로 급조했는데 29일에는 아내가 22일 요리에 점수를 잘주면서 바베큐 소스를 하나 사다놨다. 바베큐 소스를 쳐서 요리를 하니 맛이 아웃백과 별 차이 나지않는다. 처음에는 한국식 구이용 소스성분이라 닭으로 치면 양념치킨을 시켰는데 '교촌치킨(간장 맛)'이 배달온 격이었다.

감자도 문제가 있었다. 오븐에서 감자가 익지 않았는데 두번째는 감자를 반으로 갈라 삶아냈다. 감자를 익힐 정도로 오븐을 달궜다면 집이 펄펄 끓지않았을까? 외식업체에서는 아마 좀 더 어린 돼지갈비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우리는 '중장년' 돼지의 갈비인듯 하다. 부드러움에서 차이가 있다. 숙성을 시키면 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양에서 만족이다. 29일에는 똑같은 메뉴를 만들어 처남과 처제를 불러 함께 먹었는데 총 8인분정도의 분량이 된 셈이다. 갈비 하나가 남아 다음날 저녁에 데워 순호와 나눠 먹었다.

퍼포먼스 중인 순호
2008/07/22 23:21 2008/07/2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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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6.8) 파주 출판단지 헌책방 <보물섬>에 다시 갔다. 지난번에 사왔던 창작과 비평 1966년 1~4호를 읽다가 지금 찾아보기 힘든 재미있는 에세이들이 있어 몇권을 더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번역된 싸르트르의 글들과 문예비평 관련 글들이다.

파주에 가기 전 공덕시장엘 가서 순대, 머릿고기, 족발을 시켜먹었다. 몇년만에 다시 갔는데 시장 앞쪽에 주차장이 생긴 것을 제외하고는 여전하다. 2000년 인터넷 사업을 하던 부서가 분사(spin off)되어 여의도에서 나와 공덕동에 둥지를 틀었다. 그때 점심시간에 자주 이용하던 곳이다. 또 아내와 여러 차례 이곳을 찾았었다. 며칠 전부터 아내가 공덕시장 궁중족발엘 가자고 이야기를 했었는데 아침으로 토스트를 먹고, 점심은 감자를 쪄 먹은 후 두시가 좀 너머 보물섬에 가려고 집을 나서면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아이는 예전에 지저분하다면서 인상을 찌뿌리고 안먹었는데 이젠 곧 잘 먹는다. 나는 족발보다 순대국을 시켰을 때 따라나오는 머릿고기와 순대가 더 좋다. 조그만 접시에 내오는데 약간 부족한 양 때문에 더 그런 같기도 하다.

파주 출판단지 보물섬

보물섬에서는 「창작과 비평」69년, 70년, 80년과 「사회경제평론7 화폐, 신용, 자본주의」,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전술론」, 「초현실주의」, 김수행교수가 번역한 「자본론」, 「목민심서」, 「아인슈타인을 넘어서」, 「사회학적 상상력」, 「브레히트 연구」, 「다산시선」,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헤겔 변증법의 모색과 전망」이렇게 14권을 2만원 조금 넘게 주고 샀다.

창작과 비평은 문예비평과 60, 70년대의 철학적 또는 정치적 에세이를 보려고 샀는데 '군부독재'의 압력 때문인지 지난번 샀던 66년에 발간된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런데 안에 있는 소설들은 거의 모두 지금 교과서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들이다. 소설은 잘 읽지 않지만 짧은 단편 위주이므로 시간이 나면 하나씩 다시 읽어보려한다.

사회경제평론은 집에 2권과 4권이 있다. 우선 눈에 띈게 「그람시, 맑스주의, 포스트 맑스주의」라는 이병천교수의 논문이다. 그리고 언제가 한번은 읽어보고 싶은 하이에크에 관한 김균교수의 논문도 포함되어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집에 한권있지만 세로쓰기로 되어있어 읽을 때 마다 불편했는데, 가로쓰기로 되어 있고 '값이 싸다'는 이유로 집어들었다. 초현실주의는 그림에 대한 열화당에서 나온 책인데 같은 시리즈의 책이 집에 몇권 더 있다. 한두시간만에 읽고 던져버리기 편한 책이다.

자본론도 집에 있다. 이론과 실천사에서 나온 것인데 번역이 좀 어려워 잘 읽혀지지 않는다. 그래서 몇번인가 교보문고에서 김수행교수 번역본을 사려고하다가 돈이 없어서, 또는 책이 절판되어 사지를 못했었다. 언제가 1권과 3권도 사야지 하면서 집어들었다.

목민심서는 다 아는 책일게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 제목만 알고 내용은 모르는 책이다. 나에게도 그런데 이번 기회에 한번 읽어볼 요량이다. 이와 함께 꽤 묵직한 다산시선도 함께 골랐는데 집에 얇은 다산의 한시를 번역해 놓은 책이 한두권 있긴 하지만 다른 시들도 실려있을 듯하다.

아인슈타인을 넘어서는 통일장(?)에 관련된 책이다. 우리나라 물리학자가 '초끈이론'이란 이름으로 여러개로 나뉘어진 장(힘, 계 ?)를 하나로 파악하려는 것이라고 몇번 신문을 통해서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올 초에 집에 있는 아인슈타인과 시간 및 공간에 대한 책들을 대여섯권 모아놓고 '집중탐구'식으로 읽어었는데 그 영향으로 집은 듯 하다. 시간에 대한, 공간에 대한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예닐곱권의 책을 읽었지만 손에 잡힐 듯 하면서도 안잡힌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이다. 언젠가 또 생각이 나서 읽다보면 지금보다는 났겠지 하면서 스스로 위로했었다. 반은 대학다닐 때 산 책들인데 20여년이 지나서야 좀 이해하겠다고 생각했으니...

사회학적 상상력은 라이트 밀즈의 책이다. 대학 졸업논문을 쓰면서 마지막에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끝마쳤었는데 사실 이책을 읽은 것이 아니고 다른 논문을 보면서 주워들은 것을 '재인용'하는 수준이었다. 이런 부채감 때문에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

브레히트 연구는 브레히트 전기 한권, 시집 한권, 여러 책들에서 단편적인 인용구 등을 통해서 읽었던 브레히트를 좀 더 알 수 있을까 해서 집었다. 스스로 브레히트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브레히트 책을 전혀 읽지않은 것도 신기하다. 연극 대본이나 이런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가?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는 회사에서 다른 분의 책상 위에 있는 것을 빌려간다고 하면서 아직도 안갔다주고 시간이 나면 되새김질하면서 읽고 있어 이번에 돌려주자는 마음으로 샀다. 이 책에 대해서는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릴까 생각 중이다.

마지막으로 헤겔 변증법의 모색과 전망은 헤겔, 임석진이란 이름 때문에 집어들었긴한데 죽기전에 읽을까 의심스러운 책이다. 욕심만 앞선 결과이고 값이 싸다는 이유도 거들었다.

아내는 이런 책을 집으로 끌어들인다고 핀잔을 준다. 그리고 모두 봐주겠는데 시꺼먼 브레히트 연구는 아니라고 한다. 집에 와서 윈덱스를 뿌려 표지를 검게 덮고 있던 때를 벗겨내니 한결 났다.

사람을 규정하는 것, 현재의 나를 만드는 것은 과거의 나인 것 같다. 과거의 경험과 이에 대한 기억들이 지금 이 순간의 판단과 행동에 끼어든다. 또 이 지금은 다시 과거가 되어 미래 언젠가 기억과 무의식의 한켵에서 기어나와 그 순간에 영향을 줄 것이다.

누군가의 손때가 묻어있는 보물섬 헌책들을 보면 몇번 먹은 순대국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침이 도는 것처럼 머리 속 한 가득 그리움이 고인다. 헌책을 몇권 사들면 찐덕거리면서 따스한 커다란 뚝배기를 들고 후루룩 대며 마셔댄 후 배를 쓸어내리는 것처럼 포만감에 빠진다. 치유하기 어려운 향수병이다.


보물섬에서 나선 후 주변을 산책하다가 심학산 돌곶이 꽃축제에 갔다. 지난번 왔을 때도 꽃축제를 하고 있었는데 인연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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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위치: C 출판도시문화재단 건물안에 있다.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파주 출판단지 - 헌책방 보물섬

2008/06/10 00:27 2008/06/10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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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life n poem, (2008/06/03 00:00)


Candle




        촛 불

태울 수는 없지 안으로
안으로만 태울 수는 없지
그래서 빛을 발하는 거다
어둠을 감싸안아 다둑거리는 거다
눈물로 밤을 지새워 낮으로
낮으로 다가서려는
몸부림의 너울거림
한줄기, 한줄기의 바람에도 참지 못해
춤으로 응대하는 너는 나의 맞수다
낮이 되면 죽고말 불꽃삶의 너는
말도 없이 은밀히 秘意를 전해
내 가슴을 태우는 거다
태워져도 재도 없이 세상, 촉촉히 적시는
뜨거운 눈물, 눈물자국을 남기는 거다
밤새 뒤척이던 몸짓을 남기고 죽고마는 거다

태울 수는 없지 안으로
안으로 태워 재가 될 수는 없지
몇 자 글이라도 남겨
싸한 냄새라도 바람에 남겨
가난한 나의 유산을 남겨
너와 같이 해야지
밤새 뒤척이던 마음의 자국을 새겨 넣어야지
아, 내 가슴 속에서도 빛이
불꽃이 난다면
세상 구석의 조그마한 자리라도
다둑거릴 수 있다면
안을 수 있다면
태워도 태워 흔적없이 사라져도 좋으리

너는 말도 없이 어둠을 다둑거리고
말도 없이 나를 일깨워 나의 상수다
너를 태워 꽃이 되어 빛나니
밤이 두렵지않다 꽃이 된다면
꽃이 되어 빛나게 핀다면
나를 태워 죽어도 좋으리

                          1996. 12. 25

<불안한 희망 - 사람들>에 실려있다. 96년 크리스마스 날에도 야근을 하던 아내를 대법원 근처 어느 카페에서 기다리며 쓴 글이다. 탁자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blog icon 고병권의 '촛불정국' 분석 - "추방된 자들의 귀환"
2008/06/03 00:00 2008/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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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아고라에 갔더니 아래와 같은 토론 주제가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팀원에게 메신저로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뉴스 영상을 삭제한 적 없다고 한다. '김윤옥 여사' 관련 영상은 뉴스가 아닌 인터넷용이고 아마 이화여대 등록금 인상과 관련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미국산 쇠고기'와는 관련없다.

아고라 - 네이버 동영상 제재

***님의 말: 주말에서 오늘까지 시위 관련한 뉴스 영상이 삭제된 건 없고요.
***님의 말: 방송 나간 거 말고 생생쪽에 김윤옥 여사 수상철회 관련 영상을 삭제한 적은 있습니다.
@@님의 말: 넵

........

***님의 말: 네이버에서 영상 재생이 잘 안되는 게 몇 있다고 합니다 .
그런데 조금있다가 다시 위와 같이 메신저 메시지가 왔다. 그 다음에 네이버에 가서 SBS 뉴스가 안나오는지 확인을 했다. 네이버 뷰어에서 정말 SBS 뉴스 플레이가 안된다. 정말 '동영상 제재'인지, '시스템 오류/트래픽 폭주로 인한 과부하'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후자쪽일 것 같다.

네이버 뉴스

왜냐하면 언론통제라면 네이버 기사 옆에 있는 <기사원문보기>도 함께 안나와야 하는데 잘 나온다. 또 내가 뉴스 인터넷 서비스 책임을 맡고 있으니 어떤 경로로든 먼저 알았을 게다.

밤을 잊은 거리시위…12시간의 긴박했던 상황
기사입력 2008-06-01 20:56 | 최종수정 2008-06-02 00:15 기사원문보기
SBS 뉴스

미디어플레이어로 화면캡쳐가 안되서 다른 뷰어를 이용했다. 기본 SBS 뉴스뷰어와는 다르지만 잘 나온다.

"sbs 동영상 뉴스 중에서도, 기사는 있지만 기사 클릭하고 동영상 재생하면, 경찰 강경진압관련 뉴스들은 동영상 재생이 되지않고, 경찰이 불리하지 않은 뉴스들만 동영상 재생 되더군요.. 참 기가 차더군요.."

그런데 다음의 자유토론방에서는 위에서 처럼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 답답한 일이다. 네이버에서 뉴스 동영상이 플레이 안되는 것은 아주 '우연'인 것 같은데 '음모론'으로 몰고 간다. 또 내가 알기로는 KBS 같은 경우는 네이버로 뉴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네이버에서 안나온다면 그 다음 SBS 사이트로 와서 뉴스 동영상이 플레이되는지를 확인했어야 하는데, 이런 확인 없이 '경찰 강경진압관련 뉴스들은 동영생 재생이 되지" 안는다고 한다. ' ~~카더라'는 '조중동'식이다.

나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 하지만 조금 더 오래 운동을 끌고 가려고 하면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90년대 강경대 사건 때 지금 조작으로 드러난 '김기설씨 유서대필'과 같은 거짓말로 여론을 꽁꽁 얼려놓고 운동권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면서 모든 것이 끝났다.
 
그때처럼 언론이 통제된 것도 아니고 대안으로 아고라와 같은 토론장과 인터넷 언론매체들도 있지만 이 장(場)이 신뢰를 얻지못하게 되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180도로 바뀔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촛불집회의 시발점이 된 인터넷 토론장이 온갖 추측과 함께 점점 어려운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기야 '혁명'기에는 온갖 이야기가 떠돈다. 그것이 더욱 큰 힘이 되어 더 나은 방향으로 끌고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반대로 끌고 갈 수도 있다. 사실 확인과 함께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주체없는(지도부없는) 촛불시위에서 모두가 주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또 지금은 모두가 우왕좌왕할 혁명기가 아닌 것도 분명하다.

이렇게 사람들이 대놓고 언론통제 운운하게 된 것도 현 이명박정권의 잘못에 기인한 바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네이버도, K, S, 그리고 M본부까지도 모두 욕을 먹고 있다. 평소 믿음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2008/06/02 20:45 2008/06/02 20:45
From. 김태균 2008/06/05 13:32Delete / ModifyReply
네. 공감되는 내용이네요. 온라인 미디어가 새로운 장을 연건 분명 사실이지만 도덕성.신뢰성에 타격을 입어서는 안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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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아파트 앞에 핀 백목련 (2008.4.5)

<나무에 핀 연꽃>
을 쓰면서 이전에 목련에 대하여 썼던 글들을 모았다. 봄이 되고 하얀 꽃이 피면 갖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더딘 봄 1
      - 장탄리에서

겨울은 벌써 가고
   성큼   성큼   오는 봄,
남녘 땅엔 푸른 잎새 사이로
동백꽃 붉게 피었다 지고
바람 속 살랑이던 유채꽃 따라
지리산 산자락엔 진달래 붉고
미아리 고갯길 벽돌담 너머엔
밤새 향이 짙은 백목련이 피어도
마음만은 뒤쳐져 아직 긴 겨울 밤
세월이 흘러도 흘러서 가도
가슴 속엔 휭하니 찬바람 가득
더딘 봄 더듬 더듬 오는 봄

                 1995. 4. 13


      백목련
       - 원철, 형주에게

보고 싶다
백목련
눈부시게 숨막히는 향기

보고 싶다
검게 주름진 꽃잎
바람에 떠도는 익숙한 목소리

향기 섞인 얼굴들
보고 싶다

여기,
예전 그 자리에서

            1996. 4. 11


      산목련

고향집 앞뜰
꽃보다 더 꽃다운
푸른 잎이 꽃보다 더 아름답던 산목련,
푸르게 빛나던 잎들의 찰랑거림도
유월의 햇살에 넘쳐 흐르던 광기(光氣;狂氣)도
모두 지고 가시처럼 앙상한 가지만 남아
바람이 스쳐지날 때마다 옷자락 찢기는 소리가난다
겨울 바람에 그 거칠기만 했던 헐벗은 나목의 휘어짐

꽃보다 향기가 더 좋던,
은밀한 내면의 속삭임으로
지나는 바람이란 바람은 모두 꼬드겨
푸른 치마자락 같던 잎 아래로 불러들여
깊은 입맞춤에 출렁거리며 푸르르 떨며
비 온 뒤 상큼한 육향으로 다가서던, 하지만
쉽게도 상처를 입던 하얀 꽃잎의 산목련
깊숙히 잎들 사이 숨어 지내던 나날의 세월이 그립다고
산처럼 목을 빼고 둘러보면
휘 지나는 바람에 옷자락 날리는 소리만 들려
그 거친 한숨 섞인 그리움, 박힌 숨소리

고향 떠나던 여름날 밑둥지까지 자르지 못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자르지 못해, 죽이질 못해
그리움에 내내 떨리는 가슴은 안타깝기만 하고
다시 보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도
기약한 것은 산목련,
유월의 뜨거운 햇살이 반사되며 만들던
푸르게 빛나던 잎들의 광기(光氣;狂氣), 사이로 흐르던 육향
살 비벼대며 살던
고향집 빈터를 지키며 그림자만 길게 늘어졌을 산목련
헐벗은 가지에도 달빛이 걸렸을까?
출렁거리는 달빛에 말은 못해도
느끼는 깊은 것은 그리움

                     1996. 11. 29 ~ 1997. 7. 26


      우울한 하루

텅빈 검은 하늘을
새는 난다.
여기- 저기-
기웃대보기도 하지만
내려앉을 곳은 하나도 없다.
아는 것은
갑작스레 바람에 밀려
빛 한 점 없는 세상을
날고 있다는 것.
어둠은
여기에 몸을 던져라!
안락과 나태
하품과 낮잠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곳.
유혹한다.

진달래는
잎도 없이 앙상한 가지 위에
붉은 꽃만 피우고
바람 속에 흔들린다.
그 바로 앞
하얀 목련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다.

오늘은 4월 3일!
나보다도 더 오래된
먼 과거 어느날 일들은
머리 위를, 귓가를 맴돌며
나를 괴롭힌다.
"흔들리지말고 나가라!
여기는 여전히 그들의 소굴(巢窟)
붉게 물 든 옷자락을 깃대에 꽂고."

                        1993.4.3


      봄

봄이 왔다는 거다.
남녘 바닷가엔 어느 새
나와는 상관없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를 한다는 거다.

또 다시 4월의 바람이 불어 먼지가 날리고
노란 개나리가 피고
추운 겨울을 보낸 진달래들이
산허리를 잡고 피를 토할 것이다.
그러다 지치면 또 검붉은 땅 위에
시들어가는 처녀 같은 몸을 던질 것이다.
다시 꽃잎들은 짓이겨 질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꽃들이 몇 년째
지루하게 피었다 진 것처럼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고
꽃 같던 가슴엔 콘크리트가 깔리고
철판이 깔려 이젠 새 한 마리 날아와
놀 수 없는 거다.
또 골목길 담장 안엔 백목련 봉오리가 맺히고.
가슴엔 회한이 맺히는 봄이 왔다는 거다.

                        1998. 3. 2


      백목련
      - 출근길

나무에서
하얀 새들이
돋아난다.
나뭇가지 끝에서
하얀 날개들이
피어난다.
겨우내 앙상했던
검은 가지 끝에
물이 돌고
생명들이 저절로
살아난다
난다.
난다.
새들이
아침 햇살 속으로
바람을 타고
푸릇한 향기로
날아간다.

         1998. 3. 26
 

      봄

아내는 봄과 함께 임신을 하고
이젠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보낸 서른 한해
이제야 한 우주를 끌어안고 뒹굴어본다.
초음파검사를 하며 기차소리보다
더 큰 아이의 심장 고동소리에
아내와 나는 놀라고 신기해하고
생명을 품에 안은 아내가 갑자기 빛나 보인다.
내 평생이 가도 그만큼 빛나보질 못할 것 같아
우울한 서른 한해 째
아무런 꽃도 피우지 못할 봄
나도 아내의 입덧을 따라 해본다.
창가 앞뜰에 또 백목련 꽃망울이 맺혀
뽀얀 솜털가지 끝이 불러오고
아내는 봄과 함께 긴 낮잠을 즐기고 있다.

                          1999. 3. 14.


      백목련
      - 퇴근하는 아내를 마중하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골목길을 지나
큰 찻길을 건너
열시가 넘어
퇴근하는
아내의 지친 몸을
마중 나가는 길
담장 넘어
앙상한 가지에
하얀 새들이
모여 앉아
비에 젖은 몸을 떨며
고개를 빼고 내려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아침 출근길
나무에 돋아난
하얀 새 아니냐!
눈짓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
멀리 아내의 지친 모습이 보이고
이슬비에 젖은 그녀도
어느새 담장 넘어
검은 가지 위에 올라앉아
하얀 새가 되어
봄비 같은 눈빛으로
안부를 묻고
향기가 가신 젖은 깃으로
힘겨운 날갯짓을 하며
날아온다.
여린 생명들에겐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힘든 것이다.

                   1998. 3. 26
 

     나의 사월 2

하얀 목련
골목 빼곡히 들어찬 사월
유산한 임부의 공허한 눈빛은
어딜 바라보고 있을까?
비 그친 대기엔
숨 막히는 송장 썩은 내
훌쩍대다 구역질을 한다

            1999. 4. 11.


      오월의 노래

계절이 바뀐 줄을 기차가 서울을 떠나
한참 내려온 뒤에 물댄 논을 보며 알았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지고
벚꽃에 철쭉이 피고 지고
회사 앞 정원 구석에서 보라색 제비꽃도 보았지만
또 집 앞 라일락이 피고 졌지만
 

      오늘

오늘, 식민지 모국으로
유학간 선배를 잠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길 하고
나의  길들여진 영혼
또 다시 요동을 친다

그날은 구십삼년 사월 삼일
하얀 목련꽃이 피어
눈부시던 봄날이었다
졸업 하고 군입대를 두어달 앞두고
그와 만났던 그날을 기억한다

입대전 몇달 동안
대전 서울을 오가며 영어학원엘 다니고
종로에선 시위가 있었고
나는 탑골공원 앞
쇼윈도우 안에서 햄버걸 먹고 있었다

오늘이 그날 같다
왠지 벌써 몇 년이 지난
오늘이 그날 같다
또 요동치는 가슴
선택을 강요하는 날
용기 없는 날 비웃는 소리
울려오고
인생의 십자로에 서서
그때처럼 시를 쓰고

오늘
과거를 마주하고
미래를 생각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내 영혼의 울음소리

1999. 6. 27


      백목련이 피다

그대 담벼락을 넘어
새처럼 하얗게 봉오리 진
목련을 보셨나요
남들 모두 파랗게 몸단장할 때
하얀 소복 옷 입고 떼로 모여 앉아
소리 없이 흐느끼는 정적의 봄날
가슴 속 솜털 같던 희망은 퍼득대고
뼈만 앙상한 가지에 하얗게 피어나는
꽃송이들을 그대는 보셨나요
바람에 깃털 날리는 학처럼 가볍게 걸터앉은
오후의 눈부신 하얀 햇살을 보셨나요
그대 담벼락을 넘어 오는
벼락같은 향기를 맡아나 보셨나요
가는 겨울의 영전 앞에 피어진
숨통이 막히는 그 향기를 맡아나 보셨나요

2000. 4. 19 ~ 2000. 5. 11
 

      백목련이 날다

봄날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하얀 날개 활짝 펴고
너울대는 꽃잎 사이로
두근대는 내 심장소리
하얀 꽃잎 하나 둘
누런 하늘로 날아오르다
빙글 빙글 돌며
땅바닥에 떨어져버리고
하루도 안돼 검게
시든 꽃잎을 보며
이젠 바람이 분다고
날개 퍼덕이며
쉽게 날아오르지 않으리
시들어 가는 내 삼류 좌파 희망이여
하지만 백목련
꽃만 매달려 앙상했던 가지엔
파릇한 잎이 순식간에 돋고
함성도 없는 정적의 봄날에
꾸역꾸역 생겨나는 삶의 욕망

2000. 4. 19 ~ 2000. 5. 11


      사월이 가고

사월이 가고
또 오월이 가고
올해도 담벼락에
하얀 목련꽃들이 피었다가
말도 없이 뚝 뚝 떨어져버리고
새파란 잎들을 힘겹게 밀어내어
아기 손바닥만하게 피면서
사오월이 가고
난 글을 쓰고 싶어
입술이 부르텄다

2001. 6. 20


      내 마음의 풍경

비가 오는데 길을 걷다
봄비가 오는데 길을 걷다
검은 공장들 사이를 지나
담벼락 넘어 목련은 검게 지고
떨어지고
바닥에 꽃잎들이 하얗게 달라붙어
바닥에 벚꽃 잎들이 하얗게 달라붙어
바람이 불고 옷자락이 날리다

지난 겨울 아무도 찾지 않은
공장 담벼락 넘어 사과나무엔
철 지난 메마른 열매와 함께
다시 꽃이 피고 잎이 돋고
분홍색 꽃이 피고 파란 잎이 돋고
검은 열매가 아직도 매달려
꽃보다 많은 열매가 아직도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2003. 4. 11

2008/05/17 22:55 2008/05/1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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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이 자장면 만들기

오늘(5월 17일)은 아이와 자장면을 만들었다. 원래 강화도 캠핑을 가서 만들려고 했는데 저녁은 솔방울 구이를 하고, 아침은 된장국을 먹어 주말에 해먹기로 약속했다. 약속이라기 보다는 거의 반강제로 하기로 했지만 ... 지난주 초 학교에서 자장밥이 나와 안먹고 버티다가 얘가 늦게 왔다고 아내가 속상했다. 그래서 아이와 자장면을 만들어보자고 했었다.

순호가 다른 얘들과 달리 자장면이든 자장밥이든 자장이 들어간 것을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자장이 얼마나 좋은 음식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둘이 같이 자장면을 만들기로 했었다. 돼지고기, 감자, 양파, 당근을 크게 자르게 한 후 식용유에 볶다가 자장을 넣고 계속 볶았다. 이때 식용유를 조금 더 넣는다. 야채가 어느정도 익으면 물을 적당히 넣고 끓이면 완성이다.

아내는 면은 삶고 자장은 순호와 내가 함께 만들었다. 자장이 달지도 않고 담백하니 맛이 있다. 중국집 자장면은 너무 달아서 조금 싫다. 그리고 감자하고 야채, 고기가 큼직하니 자기 맛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내가 처음 자장을 볶아 면에 부으면 '자장면'이 된다는 것은 알고 춘장을 사다 처음 자장면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아이가 잘 먹는다 싶더니 마지막에 더 못먹겠다며 토하려고 한다. 조금 많이 준 것 같기도 하다. 함께 자장면을 만들었다고 해서 앞으로 자장으로 만든 음식을 잘 먹을까? 그래도 도움이 되겠지하고 생각을 한다. 음식을 만들면 어떤 일이 있을까? (서양) 사람들은 창의성 이야기를 한다. 왜그럴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음식은 창조적 사고를 키운다. 여러가지 식재료/자연물을 섞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때를 생각해보자. 아무도 먹지않고 버리는 재료를 잘 다듬고 적절하게 사용하여 맛을 나는 경우도 있다. 또 아주 궁합이 맞지않을 것 같은 것을 곁들여 기가 막힌 맛을 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창의적 맛을 보려면 용감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음식은 문화이고, 특정 문화 속에서 사람의 입맛은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또 특정 문화에서는 식재료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다른 곳에서는 쓰기도 한다.

음식이 창조적 사고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이다. 특정한 습속(문화와 관습)이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강제하고 있는 규칙을 깰 때 새로운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 이런 음식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 또한 창의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굉장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가짐만 가지고 될 일은 아니고 비위가 강해야 한다!)

음식은 가장 오래된 문화적 구조물이 아닐까? 그리고 문화적 구조물이 규칙들(rule)로 만들어져있다고 할 때, 이 규칙을 익히고, 다시 이것에서 벗어날 때 창의적인 음식이 나온다. 어른들께 음식 가지고 장난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겠지만 ..

아이가 항상 새로운 것을 먹으려들지 않는다. 그러면 억지로라도 먹이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다. 먹어보지 않으면 맛의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안먹으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본다. 자장면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감자, 돼지고기, 양파, 당근, 그리고 면이 들어간다는 것을 이제 알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나도 특정 음식을 떠올리면 '구역질'이 난다. 또 맛조차 보지않으려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참고 먹다보면 언젠가 맛을 느끼겠지 생각하지만 .. 글쎄, 정말 그럴까?

아직도 비싼 회의 맛보다는 초장의 맛이 더 좋다. 입맛은 어렸을 때 거의 완성된다고 한다. 미각세포가 이때 모두 발달하기 때문이다. 어려서 산골에서 거친 나물과 야채만 먹은 내 입으로 회의 맛을 알기란 어렵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산나물은 먹는데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났지않을까?

두릅과 포도주 - 너무 맛있어..싱싱한 두릅
 
지난 달(4월22일) 처가에서 두릅을 조금 받았다. 바로 데쳐서 포도주를 꺼내다 함께 먹었다. 옆에서 조금 나눠먹은 아내는 궁합이 맞는다고 놀라워한다. 내게 포도주 안주로는 치즈보다 두릅이 났다. 창의성이라기보다는 못난 시골 입맛에 포도주가 만난 것이다. 서로 잘 연결되지 않는 두가지 문화가, 시골에서 자라 도회적 삶을 사는 내 몸 속에서 공존한다.

창의성은 서로 다른 차이들의 만남이다. 이 차이들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것이 불쑥 튀어 나온다. (기존의 규칙에서 벗어난) 그것을 보고 느끼면서 사람들은 새롭게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자장면에서 너무 멀리 나갔다.
2008/05/17 20:03 2008/05/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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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캠핑 - 함허동천, 동막해수욕장, 분오리돈대

5월11일, 12일 강화도에 놀러갔다. 캠핑을 했는데 얘는 '1박2일'이라고 좋아 한다. 그런데 정말 '1박2일'로 보냈다. 함허동천 캠핑장에서 텐트를 쳤는데 보통 차를 타고 갈 수 있는데 이곳은 차는 아래 세워놓고 리어커에 짐을 실고 가야했다.

그런데 차에 실을 때 좀 많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리어커에 실어보니 한 리어커가 넘어 '정말 많구나!'하고 실감이 났다. 하루 저녁 자고 간단하게 먹기 위해 이렇게 많은 짐이 필요하다.

리어커에 가득 찬 캠핑용 짐
텐트 치기
세시 조금 지나 집에서 출발했는데 다섯시가 넘어 캠핑장에 도착했다. 여섯시가 넘어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짓고, 모아 둔 솔방울로 삼겹살을 굽고 하니 여덟시가 넘어 섰다.

가스등 달기
모닥불 피기
몇년 전 제일 처음 캠핑을 시작했을 때보다는 준수하다. 그때 산음자연휴양림인가에 갔는데 밤 아홉시에 도착해 어둠 속에서 텐트를 치고 고기가 익었는지 안익었는지도 모르고 밥을 먹었다. 또 비도 오고 ...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함허동천에서 우연히 찍힌 모기
노하우가 붙는다.

주변에 마른 나무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고 감자와 고구마도 구웠다. 집에서 가져 온 술도 포도주도 한잔하고, 마지막으로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너무 좋다. 이번 캠핑엔 다른 가족도 함께 갔는데 그쪽은 열시가 좀 넘어 민박집으로 가고 우리 가족만 남아 텐트에서 잤다. 그런데 옆쪽에 텐트를 친 친구들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또 5월 산 속은 아직 추웠다.

몇번 캠핑을 갔다온 아내가 몸이 배긴다고 해서 바람을 넘어 푹신하게 만드는 깔개도 텐트에서는 처음 사용했는데 쓸만하다. 아이는 침낭에 들어가 자겠다고 깔개 아래로 나려갔다. 그러면서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고 좋아한다. 아침이면 사람으로 변신한단다.

강화도 정수사 꽃살무늬
텐트를 칠 때 모기가  옆으로 날아다녀 아래 매점까지 내려가 모기향을 사왔는데 모닥불을 피고 연기가 나서인지 주변에 모기는 없었다. 그리고 조심해도 가족들 중 한사람은 물리는데 아무도 물리지 않았다. 아직도 날씨가 찬가보다.

5월 12일에는 정수사에 가려고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부처님 오신 날이라 사람과 차가 너무 많았다. 정수사에 가보려고 한 것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살을 직접 보고 싶어서이다. 다음에 보기로 하고 동막해수욕장에서 놀았다.

동막해수욕장 바로 옆에 분오리돈대가 있다. 돈대는 "경사면을 절토(切土)하거나 성토(盛土)하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탄지를 옹벽(擁壁)으로 받친 부분"이다. 분오리돈대에는 대포4문에 설치되어있었다고 한다.

네잎 클로버
순호는 분오리돈대에서 네잎 클로버를 발견했다. 가져간 책에 꽂아놨다. 동막해수욕장은 썰물이 되면 갯벌로 변한다. 갯벌체험을 한다고 호미에 쇠스랑, 괭이를 들고 나섰는데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 낚시도 했는데 조그마한 새끼 망둥어 한마리를 잡았다. 지난 서울 SOS 어린이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바자회에서 산 접이식 자전거도 차에 실고 갔는데 꺼내어 바다가에서 탔다.

강화도는 이전에 세차례인가 왔었다. 한번은 석모도를 가기 위해, 또 두번인가는 주말에 차를 타고 왔었던 것 같다. 아내와 처음 강화도에 왔을 때 쓴 시다. <불안한 희망>에 묶여 있다.

    강화도
    - 바다에 대하여 18

悲鳴의 강화도
출렁이는 海風은 어이할까나
임진강 썩은 물줄기에
실려 간 감정의 파편이 쌓여
삶을 깊숙히 빨아들이는 갯벌,
슬픈 역사 속으로
前後를 잊고(아! 戰後를 잊고)
左右로만 오고 가는
눌란 게들의 숲으로

碑銘의 초지진
낡은 대포는 어이할까나
눈물처럼 흘러
바닷물이 빠지고
바위에 붙어 있던 굴은
거친 등을 햇볕에 내놓고
살진 감정과 열정이 쌓여
빛을 내는 貝塚 속으로
놀란 게들의 캄캄한 굴 속으로

悲鳴의 가슴 속
싹트는 사랑은 어이할까나
노을에 파도처럼 밀려
바닷물이 들어오고
새처럼 고깃배들 집으로 돌아오는데
만선의 기적 소리로
산 위에 걸친 붉은 구름 속으로
가슴은 모터처럼 시끄럽구나

비명의 강화도
출렁이는 海風은 어이할까나
비명의 초지진
낡은 대포는 어이할까나
비명의 가슴 속
싹트는 사랑은 어이할까나
강화도, 초지진, 가슴 속

언제 다시 가볼까나
진흙더미 비릿한 내음 속
싸이고 싸이는 그리운 흙더미

               1996. 9. 22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캠핑하기 좋은 곳
2008/05/17 19:11 2008/05/1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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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한 의미에서 일면성을 띠지 않은 시각이나 관점은 없습니다. 모든 관점은 일정하게 당파성을 띱니다. 그렇게 때문에 객관성과 중립성을 주장하는 반론이 끊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실천적 관점입니다. (신영복,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p.33)

오늘 신영복교수가 지적한 "실천적 관점 "에 대한 실례를 보았다. 어떤 사건이 단순한 물리적 운동이 아닌 사회적으로 의미를 갖게 되려면/되면 '관점'이 개입한다. 이 관점을 레닌(Lenin)은 당파성이라고도 하고, 들뢰즈(Deleuze)는 계열화/코드화라고도 한다.

중앙일보 - 정부 "미국 쇠고기 안전"

중앙일보 - "3억 미국인, 200만 재미동포가 미국 쇠고기 먹어"

'미국 쇠고기'에 대한 두 신문사의 기사를 보면 "일면성을 띠지 않은 시각이나 관점"은 없다는 신영복교수의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그러면서 모든 신문이 말하는 "객관성과 중립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을 수 밖에 없다.

두 기사를 보면서도 미디어의 "객관성과 중립성"에 대해 말한다면 '미친소'가 웃을 일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기사는 적어도 이 세계가 일면적이지 않고, 다면적임을 알게 해 준다. 동일한 사건-정말 객관적으로 발생한 물질운동, 혀가 움직이고, 목청이 떨리고, 소리가 공기 중의로 퍼져나가고, 또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만난 사건이 사회적으로 의미가 되는 논리/방식을 알게된다.

하나의 사건이 여러 의미가 되는 것을 물리, 화학, 생물과 같은 과학의 세계에 대입하면 세계의 다양성(물질세계의 무한성)을 생각하게 하지만, 사회와 문화의 세계에 대입하면 세계의 다양성보다는 계급성을 보게 된다.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특정 사건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집단을 보게 된다. 이런 것이 경제적 이해관계(계급)가 아닌 심리적 지향성(?)에 따른 것일지라도.

한겨레신문 - '이명박정부 불신' 1만여명 '성난 촛불'

한겨레신문 - "밥상 안전 지키자" 구호 틈새 "서민미래 어둡다" 외침도

적어도'미국 쇠고기' 같은 사회적 사건에 대한 의견의 다양성은 사건의 객관성(이명박 정부가 미국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사실)을 보장해 줄 수 있어도, 그 사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입장들에 대한 객관성을 부여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간혹 그런 사건(말/정책의 발표)의 존재 사실마저 부정되는 일도 있다.

이때(정치, 사회적 의견의 다양성이 보장된 사건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받아들일 때) 신영복교수가 말한 "실천적 관점"이 중요하게 된다. 대립된 의견에 대하여 어떤 편을 들던지, 또는 그 자리를 피해 무관심해질 필요가 생긴다. '미국 쇠고기'에 대한 항의 집회가 한겨레신문 1면에 날 때, 중앙일보에서는 5면 1단 기사로 처리했다. 이런 것이 "실천적 관점"이다.
 
통계학 책을 보면 가끔 서론에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어떤 장군이 병사들을 이끌고 강을 건너는데 (평균)수심을 물었다. 1.5M이다. 병사들의 (평균)키를 물었다. 1.7M이다. 그래서 강을 '걸어서' 건너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몇명(또는 많은) 병사가 빠져 죽었다. 왜냐하면 최고 수심은 2M가 넘었고, 키가 가장 작은 병사는 체 1.5M가 안되었다는 이야기다. 왜 통계학 책의 서론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까? 통계가 만병통치가 아니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여럿 죽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뜻이 아닐까?

그런데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아주 낮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5%의 확률이어도 재수가 좋으면 아무도 안걸릴 수 있는 것이 확률이다. 또 0.00000000000001%의 확률이어도 재수가 나쁘면 누군가 걸릴 수 있는 것이 확률이다. 0%가 아닌 한 확률의 세계는 가능성의 세계이다.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있고, 이것이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일이라면 피해갈 수 있다면 피해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애가 고기를 무척 좋아한다. 이젠 학교급식을 없애라고 해야 할까? 학교를 그만두고 애를 데리고 지리산으로 들어가야 할까? 허황되지만 가끔 하는 생각이 있다. 조금 더 지나면 공부를 잘하는 것보다 유전적으로 더 건강한 아이가 더 대접받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유전자 조작 농산물을 안먹고, 미국 쇠고기를 먹지 않은 부자집 아이들만 괜찮지 않을까 하는 ....

두려움은 사람을 비굴하게도 만들지만 정의롭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입장에 설 것인가 하는는 것이 "실천적 관점"이다.

미래의 인류진화

2006년 11월 <미디어 포털의 동영상 서비스 전략과 향후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컨퍼런스에서 발표했던 자료의 한 페이지이다. 서기 10만 2000년께 인류는 '유전적 부유층'과 '유전적 빈곤층'으로 나뉜다고 예측하고 있다. 지금의 선택이 먼 미래에 재앙이 될 수 있다.

한겨레신문에 <'잘난 인종 대 못 난 인종’ - 10만년 뒤 인류는 두 가지 종으로>으로 실린 기사를 인용한 것이다. 한겨레는 BBC 보도를 인용하여 작성했다. (2008.5.27 추가)

미친소 릴레이 - 강풀 만화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강의 - 10점
신영복 지음/돌베개
2008/05/03 18:59 2008/05/0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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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만에 홍대 앞에 갔다. 결혼하고 홍대 앞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IMF 사태'가 나고 전세를 살던 집이 거래금지 가처분 신청이 들어가면서 꼼짝없이 계속 살아야 했다. 그리고 애가 태어난 곳이 여기이다. 그래서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이 함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없이 결혼하면서 진 높은 이자의 빚을 짊어지고 둘 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면서 보낸 나날들이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하여 바로 현재 OK 캐쉬백카드의 기본 시스템이 된 이지플러스카드를 제안하고 서비스와 시스템을 만들면서 늦게까지 일을 했다. 아내는 여행사에서 남미와 유럽을 담당하고 있어 시차 때문에 자연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아내가 애를 가졌을 때 인터넷 사업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한참 인터넷 열풍이 불고 있을 때이다. 그리고 아내가 아이를 나을 때 나는 인터넷 사업을 위한 '신사유람단'의 일원이 되어 미국에 가 있었다.

   백목련
   - 퇴근하는 아내를 마중하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골목길을 지나
큰 찻길을 건너
열시가 넘어 퇴근하는
아내의 지친 몸을
마중 나가는 길
담장 넘어 앙상한 가지에
하얀 새들이 모여 앉아
비에 젖은 몸을 떨며
고개를 빼고 내려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아침 출근길 나무에 돋아난
하얀 새 아니냐!
눈짓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
멀리 아내의 지친 모습이 보이고
이슬비에 젖은 그녀도
어느새 담장 넘어
검은 가지 위에 올라앉아
하얀 새가 되어
봄비 같은 눈빛으로
안부를 묻고
향기가 가신 젖은 깃으로
힘겨운 날개짓을 하며
날아온다.
여린 생명들에겐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힘 들다.

1998. 3. 26

   봄

아내는 봄과 함께 임신을 하고
이젠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보낸 서른 한해
이제야 한 우주를 끌어안고 뒹굴어본다.

초음파검사를 하며 기차소리보다
더 큰 아이의 심장 고동소리에
아내와 나는 놀라 신기해하고
생명을 품에 안은 아내가 갑자기 빛나 보인다.

내 평생이 가도 그만큼 빛나보질 못할 것 같아
우울한 서른 한해 째
아무런 꽃도 피우지 못할 봄
나도 아내를 따라 입덧을 해본다.

창가 앞뜰에 또 백목련 꽃망울이 맺혀
뽀얀 솜털가지 끝이 불러오고
아내는 봄과 함께 긴 낮잠을 즐기고 있다.

1999. 3. 14.

한시간 정도 아내 옷들을 구경하러 다녔다. 너무 이른지 옷가게들 대부분이 아직 문도 열지않았다. 점심은 아지오(AGIO)에서 먹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도 이곳에 왔었으니 적어도 이곳을 안지 십년은 넘었다. AGIO는 예전의 건물 바로 옆으로 옮겼다.

1992년부터 있었던 AGIO - 아내의 말로는 처음에는 극동방송국쪽에 있어다고 한다

피자와 그릴에 구운 닭과 샐러드를 시켰다. 여전히 담백한 피자 맛이 좋다. 미국식 프랜차이즈 피자들의 정형화된 맛- 달고, 기름지고, 약간 짠- 대신 구운 밀가루의 구수한 맛이다. '그릴 닭'도 향도 좋고 너무 퍽퍽하지도 않다.
 
7~8년전 친구들이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다. 며칠간 사람이 바뀌면서 계속되기도 했다. 그때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날이 훤해질 때 함께 집으로 간적이 있는데, 술집 앞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날이 막 밝아오는 홍대 근처 술집에서 커다란 나무를 보았을 때 들어던 그 생경함, 이상한 느낌! 아마도 놀라움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게다.

옮겨온 AGIO의 마당에 커다란 나무가 있다. 그때 그 나무인 것 같다.(그때는 민가여서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처럼 느꼈던 나무, 둥근 모양의 나무가 지금은 외소해져 있었다. 몇개의 굵은 가지가 죽어 있고 가운데 부분만 푸릇한 잎들로 덮여있다. 안본 것만 못하다.

지난 몇년 세월에 풍성했던 가지들, 푸르른 잎들은 어디로 갔을까? 밤새 술을 먹으며 소리 높여 노래하고 철학에 운동을 이야기하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또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세월에 쓸려 듬성 듬성 머리 빠진 노인처럼 변해버린 나무같이 꿈을 잊은 것은 아닌지!

   백목련
   - 원철, 형주에게

보고 싶다
백목련
눈부시게 숨막히는 향기

보고 싶다
검게 주름진 꽃잎
바람에 떠도는 익숙한 목소리

향기 섞인 얼굴들
보고 싶다

여기,
예전 그 자리에서

1996. 4. 11

위에 있는 세편의 시를 보면 모두 백목련에 대한 것이다. 나에게 봄은 항상 백목련, 동백꽃과 함께 왔다. 하지만 추상적(가보지 못했기에)인 동백보다 백목련은 훨씬 구체적이다.

새벽 신비롭게 빛나던 목백합 - 세월에 이젠 듬성 듬성 머리 빠진 노인처럼 변했다.

예전에는 무슨 나무인지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이 나무는 목백합이다. 어릴 때 집에서 판매용으로 목백합 묘목을 재배했다. 그래서 고향집 뒤뜰에 몇 그루가 남아자라고 있는데. 그 하얗던 꽃들!

사람은 기억 속에서 사는 것일까? 기억이 어떤 사람을 만들고, 유지해주는 것일까? 지식, 어떤 이해, 우리의 마음은 얽히고 섥힌 기억일테니 말이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러너, 아일랜드 등)이 던지는 메시지를 보면 기억이 어떤 주체(개별적 인간)를 규정한다. 이런 기억이 없다면 우린 어떤 인간적 관계를 상상하기 어렵다.

AGIO - 담쟁이 덩굴

오늘은 노동절(메이데이)이다. 이렇게 하루 노는 것도 사실은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덕분이다. 아래 글은 1993년 5월 어느 날(아마도 노동절일 것이다) 쓴 것으로 『최종심급』에 실려있다. 노동자도 아니었던 시절 더 노동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노동자인 지금은? 역설이다!

  노동절을 노래함

                  1.
보라!
노동에 찢겨진 사람들이 손을 놓고
깃대처럼 일어났다
가슴은 기관차같이 힘찬 소리를 낸다.

                  2.
손과 손을 마주잡고
가자!
모든 것이 멈춰섰다
세상은 우리의 힘에 돌려지는 기계와 같다.

                  3.
오늘 노동절 집회는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우리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잊지말자!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의 투쟁에 달렸다.

                   4.
어깨와 어깨를 걸고
구호 소리 높이며
호시탐탐 노리는 적들을 뒤로하고 전진하면서도
생각하자!
오늘은 노동절
전세계의 노동자가 함께 해방을 향해 달려나가는 날
전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나무에 핀 연꽃
나무에 핀 연꽃 진흙탕 흙바람 도시에 어디 맘 편히 몸 둘 곳 있으랴 모퉁이 모퉁이 돌아설 때마다 황사를 맞고 선 너를 본다 진흙 속 연꽃보다 더 찬란한들 눈길 주는 사람은 얼마나 되랴 연두빛 새순 없이 꽃부터 피고 씨부터 배..

봄이 되면 언제나 - 윤이상, 동백꽃에 대한 기억
봄이 되면 언제나 깊이 잠겨있던 생각들이 떠올라 몸살을 앓게 한다. 아니 차면서도 따스한 기운을 품은 공기가 얼굴을 스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파릇한 물이 오르면서 어떤 분위기에 젖어든다. 봄몸살은 생각보다 먼저 몸이 앓기 시..
2008/05/01 21:35 2008/05/0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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