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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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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지대'에 해당되는 글 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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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이후 '기술지대'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술지대'에 관한 이해없이 '플랫폼(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기술지대'에 대한 논의가 마르크스주의적 개념이란 점을 고려하면 플랫폼사업과 연결은 '모순'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Marx의 <자본> 전체가 그렇지만 지대이론도 고전경제학자인 D. Ricardo에서 왔다고 생각하면 다르게 볼 수도 있다.)

    지대이론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사는 <방송과 통신정책, IPTV 융합정책의 지대추구론적 분석 : 지대추구의 효율성 분석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Convergence Policy of Broadcasting and Telecommunication in IPTV Convergence Service with Reference to Rent Seeking Theory> 때문이다. 이 논문의 저자는 이상호 교수/박사이다. 2007년, 나는 KT IPTV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고, 이박사는 KT에 근무하는 counter partner(차장)였다. 그가 지대이론에 근거해 플랫폼 사업자의 wining을 이야기했고, 우리가 추구했던(?) 'Digital Contents Platform'이란 허무맹랑한 주장(?)을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때 나는 학교에 있는 친구에게 예전에 서점에서 서서 읽었던 만델의 <후기자본주의>를 제본해 보내달라고 부탁했었다. 지금도 관심을 갖고 관련된 책과 논문들을 읽고 있고, 또 그 사이 기술지대와 플랫폼의 관계에 대한 몇가지 단상을 정리해 <문화경제학> 시간에 짧게 강의를 했다.


    기술지대는 기술(기술과 기술적 장치들, 그리고 지적 재산권 등의 법률적 제도 등도 포함된 기술)을 기반으로 부(가치)의 전유를 위한 회로 중 하나이고, 부불노동에 기반하고 있다. 이것이 구체화된 형태가 플랫폼, 또는 FANNG(페이스북, 아마존, 애플, 넷플릭스, 구글 알파벳)이란 것을 모른다면 그 '사업'의 경제적 핵심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자본>이 과학이거나 어떤 경제학적 진리를 담고있다면 객관적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적 회로/기계'에 대한 이론적 분석의 명확성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것이 원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진리가 아닌 '인간적인 진실', 계급의 존재와 착취구조 그리고
    그것의 철폐에 관련된 것이다.


    따라서 '기술지대'에 대한 관심은 '양가적'이다. 한편이 새로운 착취구조에 관련된 것이 있다면, 반대편에는 '어떻게 하면 플랫폼 사업에 성공할 것인가'라는 측면이 있다. 우린 이런 모순 속에 살고 있다. 2007년부터 살펴보던 것들이지만 내 짧은 지식으로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어보인다. 지난 10년 사이 기술지대와 플랫폼에 관련된 논의들에 많은 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래 문화과학의 <플랫폼 자본주의> 특집호를 읽으면 '왜 플랫폼 사업자가 돈을 버는지'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문화과학 92호 - 2017.겨울 - 10점
    문화/과학 편집위원회 지음/문화과학사


    이 글은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2008)와 <텔레비젼: 테크놀러지와 문화형식을 읽으며>(2013) 사이에 있던 글이다. 아래 글에는 정작 기술지대에 대한 내용은 없다. 기술지대에 대해서는 이 블로그에서 '기술지대'로 검색하여 살펴보기 바란다. 2007년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미래>라는 제목으로 한국정보처리학회지에 관련 내용을 발표했었다.

    ▸ 블로그에 게재된 내용 http://dckorea.co.kr/tc/28

    또, 2009년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나온 2009년 말 발간된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이란 책자를 읽다가 이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매클루언과 윌리엄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는데, 매클루언이 윌리엄스의 생각(비판)처럼 '기술결정론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기술이 나온 사회, 경제적인 배경에 대한 관심보다 기술의 변화에 의해 변화된 미디어-인간의 '배치'와 그 '효과'에 관심이 켰다고 본다. 이런 그를 한국에서는 다시 호명해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과 같은 글들이 아전인수/침소봉대로 해석해, 뉴미디어를 위한 기술결정론자로 재탄생시킨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어찌보면 윌리엄스 역시 그렇게 호명된 매클루언을 향해 당대에 기술결정론자라고 비판했기 때문에 불려나온 면이 있다.

    정부(정책기관)에서 세금을 써서 연구를 한다면 '미리 답을 정해놓고' 보다는, 열린 형태의 연구를 후원하는 형태가 맞다고 생각한다. '철학과 비전'에는 기술에 대한 맹신과 (방송통신융합을 위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한 자기합리화만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말 미래 세대와 우리의 삶을 걱정하는 연구가 필요하다, 산업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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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지대


    “싫어하는 것에 반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조절하기 위해 스위치를 끄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두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
    마샬 매클루언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미래(1966)>, 스테파니 매클루언 ․ 데이비드 스테인즈 편저, 『매클루언의 이해: 그의 강연과 대담』, 커뮤니케이션북스, p.139

     


    테크놀로지와 문화, 그리고 우리의 삶


    기술 발전과 문화


    우리시대의 총체적인 삶의 경험, 이에 따른 감정과 생각은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이런 변화의 근원에는 공통적으로 놓여 있는 것은 기술이다. 테크놀로지(technology)는 기술을 생성하는 첨단 공학들과 이에 기반을 둔 기술 산업의 영역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고, 이미 우리 삶 속에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정보통신 공학, 컴퓨터 공학의 발전과 이에 따른 정보통신산업의 발전은 기술의 영향이 정치, 경제, 사회, 학문 등의 분야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일상생활에까지 미치고 있다. 따라서 우리시대의 문화는 ‘기술적 문화(Technische Kultur)’라 할 수 있다. 기술은 이제 삶의 형식의 총체이자 인간이 역사적으로 이루어낸 모든 내적 ․ 외적 산물의 총체로서 이해되는 문화라는 개념에 비견되는 단계에 도달한 것이다. *

    * 문병호, 「테크놀로지 시대에서의 예술적 계몽력 - 전통적 표현 수단에 기초한 예술 작품들의 위기와 기회」, 『비판과 화해 - 아도르노의 철학과 미학』, pp.109 ~ 110을 참고함


    최근 우리나라는 과학기술이 문화예술 ․ 인문사회등과 융합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문화 기술( Culture Technology)’이란 개념을 만들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문화기술대학원을 설립했다. 문화기술은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하여 방송 ․ 영화 ․ 음악 ․ 애니메이션 ․ 게임 등의 문화예술 산업을 첨단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

    ** http://100.naver.com/100.nhn?docid=794689(2009.9.14)의 ‘문화기술(文化技術, culture technology)항목을 참고함

    하지만 문화기술의 비약적 발전 때문에 문학, 회화, 음악, 영화와 같은 전통적인 문화예술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디지털화된 예술 작품들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즉 정보통신 수단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달되면서 전통적인 문화예술의 수용 형식이 근본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디지털 음원에 대한 기사를 추가 인용할 것) 또 생산방식도 이에 영향을 받아 전통적 표현 수단을 따르는 예술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거의 대부분의 디지털화된 예술작품들이 새로운 소통 양식인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감에 따라 전통적인 문화산업의 시장 질서역시 무너졌고, 새로운 질서는 아직 생성 중에 있다. 이런 위기의 근저에는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의 특징인 대량성・신속성∙복제성 등과 자본주의적 문화산업의 생존 논리인 상업성∙오락성∙소비성 등이 함께 놓여있다.


    테크놀로지 발전의 효과(effect)


    기술은 어떤 대상을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이용하는 인간 행위의 방식이다. 사람들은 기술을 이용해 주어진 대상에서 무엇을 얻기도 하고, 대상을 자신의 필요나 욕구, 희망에 맞도록 변화시키기도 한다. 기술에는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와 소망이 깃들어있다. 이런 까닭에 기술은 인간이 손과 도구를 이용하고 지적 사고 능력을 갖게 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을 해왔다. ***

    *** 문병호, 같은 책, pp.110~111을 참고 함

     

    테크놀로지가 우리의 경험과 삶을 총체적으로 바꾸고 있는 현실을 빗대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은 “새로운 테크놀로지와 더불어 변화하는 것은 액자 속의 그림일 뿐만 아니라, 액자 자체” ****라고 한다. 그에게 동시적이고 즉각적인 정보의 이동이 이뤄지는 전자기술시대는 특정 중심지역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이 중심에 해당되며 경계선도 없는 영역이다. 이 공간은 세계 전역에서 동시에 도착하는 전자정보(모자이크)에 의해 만들어지며, 정해진 연결성이 없는 접촉이 이루어지는 곳(우발성)이다.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현대의 정보환경을 떠받치는 동시성을 가진 정보들은 시각이 아닌 촉각이나 후각 등 여러 가지 감각에 어울리는 청각에 의존한다.

    ****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p.253

    ▸ "전자기술시대는 특정 중심지역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곳이 중심에 해당되며 경계선도 없는 영역"이라는 표현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정말 그런가! 현실은 그 반대의 방향을 가르키고 있다. 즉각적인 정보의 이동 가능성이 실제적인 정보의 이동을 담보해주지 않는다. 기술의 영역 밖에 정보를 취사 선택하는 구조가 온존한다. 기술적인 층위와 그것을 전달하는 언론-미디어의 층위가 만난 지점에서 '정보의 이동'이 결정된다. 물론 인터넷을 통한 publishing(공개) 가능성이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 '전통적'인 경로를 벗어나 우발적으로 '이슈들'이 만들어진다는 것도 맞지만 하나의 층위, 기술적 가능성의 층위만을 볼 때 우리는 현존하는 강고한 힘들을 읽어낼 수 없다. (2019.7.15일 추가)


    하지만 19세기 이래 서구인들이 생각한 자신이 사는 공간은 정규적이고, 자연 그대로의 합리성을 지닌 시각적 공간이었다. 이 공간은 유클리드가 마련했던 기하학적 공간으로 연속적으로 균일하며 상호 연결적이고 움직임이 없는 정적인 공간이다. 이런  시각적 공간 개념을 가진 사람들은 전자기술시대의 동시성을 가진 정보환경에서 쉽게 자리를 잃고 당황하기 마련이다. 이런 변화와 혼란은 테크놀로지, 특히 전자기술의 총화인 텔레비전에 의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낙관론자인 매클루언은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전자정보시대가 청각적인 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알고 나면, 새로운 환경과 교감하기 위해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예상되지 않는 일들이 발생할 위험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의 모든 감각들은 불빛이나 열, 소리의 강도에 대한 변화에 즉시 적응하며, 그래서 20세기 전자기술시대의 정보서비스에 의해 형성된 환경구조상 일어나는 변화들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더 나아가 우리가 원인을 알기도 전에 우리의 감각들은 이런 변화에 먼저 적응하게 되고, 적응의 결과가 먼저 드러나기조차 한다. 테크놀로지는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우리 삶의 총체적 경험을 바꾸는 것이다. *****

     ***** 마샬 매클루언, <직업윤리의 종말(1972)>, 같은 책, pp.266~268을 참고 함


    ▸ 매클루언은 "인간의 모든 감각들은 불빛이나 열, 소리의 강도에 대한 변화"에서 '강도'를 이야기하고 있다. 양화하기 어려운 상대적 위치. 유클리드적인 공간에서 벗어나있는 인간의 감각(더나아가 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기술에 의해 우리의 감각들이 '지각(의식적인 앎)보다 먼저' 적응한다고 이야기한다.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전개체적・전의식적인 신체의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기술이 우리의 지각과 어떤 개념을 만들어낸, 자각하게 만드는 시발점이 된 것은 아닌가! 이런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 이 때 불빛이나 열, 소리의 강도의 변화(환경의 변화)'는 우리 신체(몸)의 강도 변화를 수반한다. 다른 신체(불빛, 열, 소리)와 만난/접속한 인간 신체의 변화는 단순한 수동적 적응이 아니라 신체의 잠재성(역량, 힘)의 표현이다.

    "역량은 하나의 양 이다. 그렇지만, 역량은 길이와 같은 양이 아니라 힘과 같은 양이라고 정의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일반적이고 단순한 양, 곧 이른바 외연량(des quantités extensives)이 아니라 강도 단계(une échelle intensive) 를 갖는 강도량(des quantité intensives)이다. 그건 곧 이런 뜻이다. “실재들 은 다소간 강도를 갖는다. 그 자신인 실재의 강도, 그 본질을 채우는 실재의 강도, 그 실재를 그 자체로 정의하는 강도, 그것이 바로 그 실재의 강도이다.” " 김재인, <들뢰즈의 비인간주의 존재론>, 2013.2 (서울대학교 대학원), p.120 (2019.7.15일 추가)


    따라서 매클루언은 테크놀로지에 의한 인간의 확장이 어떻게 인간의 지각 능력을 변화시키는가 하는 벤야민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제기했던 문제, 새로운 기술이 만들어내는 효과라는 문제의 연장선상에 서있다. 매클루언은 관심사는 이런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문제로 삼으려고 하는 것은 기존 과정(旣存過程)의 진폭(振幅)을 증가시키거나, 속도를 빨리하는 방법, 혹은 그 표현 방법이 심리적 ․ 사회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미디어나 테크놀로지라도 그 ‘메시지’가 인간에게 관계하게 되면 그것에 의해 인간의 척도(尺度)가 달라지고 혹은 진도가 달라지며 혹은 기준이 달라진다. 철도는 달리는 일, 수송하는 일, 혹은 바퀴, 선로(線路)를 인간 사회에 도입해 온 것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종류의 도시와 일과 레저를 낳게 하여 종래의 인간의 기능을 촉진하고, 또 규모를 확대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철도가 지나가는 곳이 열대 지방이건 한대지방이건 마찬가지이며, 또한 철도라는 매체가 운반하는 물건이나 내용이 무엇이든 조금도 상관없다. 한편, 비행기도 그 사용 목적과는 전혀 관계없이 운송 속도가 빨라짐으로써 철도형의 도시 ․ 정치 ․ 인간관계를 해소하려 하고 있다.” ******

     ****** 마샬 맥루한, 같은 책, p.8에서 인용


    ▸ "어떤 미디어나 테크놀로지라도 그 ‘메시지’가 인간에게 관계하게 되면 그것에 의해 인간의 척도(尺度)가 달라지고 혹은 진도가 달라지며 혹은 기준이 달라진다"고 매클루언은 말한다. 왜 인간의 척도, 진도, 기준이 달라질까? 그것은 인간의 역량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재인박사는 "
    유한 실존 양태는 그것을 규정하는 다른 유한 실존 양태와 외적으로, 연장적 부분에 의해 관련된다"고 하면서 아래 글을 주석으로 달았다. “같은 크기를 지니고 있거나 크기가 서로 다른 일정한 수의 몸들이 다른 몸들 에 의해 제약되어(coercentur) 서로 의지할 때, 또는 그것들이 같은 속도나 서로 다른 속도로 운동하고 있을 경우에는 일정하게 규정된 어떤 관계에 따라 자신들의 운동을 서로 전달할 때, 우리는 이 몸들이 서로 연합되어 있으며, 이것들 모두가 단 하나의 몸 또는 개체를 합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개체는 몸들 사이의 이러한 연합에 의해 다른 모든 개체들과 구분된다.”(Spinoza E II P13 이 하 「자연학 소론」. 강조는 원문, 밑줄은 필자) 김재인, 같은 책, p.121

    스피노자의 말에 기대어 살펴보면 인간의 몸이 '어떤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의 메시지'와 연합되어 다른 몸(개체)이 된 것이다. 이때 메시지는 '고양이의 웃음'이 고양이 없이 존재할 수 없듯이, 미디어나 테크놀로지의 전달형식(표현방식?, 기계적 배치?, 또는 인간 몸과의 접속방식/interface)이라고 생각해보자. (2019.7.15일 추가)


    그런데 이런 접근 안에는 증기기관・철도・텔레비전, 그리고 지금의 인터넷과 같은 테크놀로지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일반적인 명제가 들어있다.



    '빛나는' 효과에 눈이 멀어버린 기술결정론


    ‘테크놀로지가 세상을 바꾼다’는 명제의 현재적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1973년 레이먼드 윌리엄스(Raymond Williams)가 텔레비전 분석을 위해 사용했던 틀을 그대로 현재의 인터넷에 적용한다 하여도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1)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그후 뉴스와 오락을 제공하는 매체로서 인터넷이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커져서 이전에 존재했던 뉴스와 오락 매체를 대체하게 되었다.

    (2)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매체로서 인터넷이 갖는 힘이 너무 커져서 제도와 사회적 관계의 틀을 상당 부분 변화시켰다.


    (3)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정보통신매체로서 인터넷이 가진 고유한 성질은 실재에 관한 우리의 기본적인 인식을 변화시켰고, 이어 개인과 개인의 관계 및 개인과 세계에 대해 갖는 관계까지 변화시켰다.


    (4)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성과로 발명되었다. 커뮤니케이션과 오락의 강력한 매체로서 인터넷은 물리적 유동성의 증가 등 다른 테크놀로지의 발명으로 초래된 요인들과 함께 사회의 규모와 형태를 변화시키는 요소로 자리 잡았다.


    (5) 인터넷은 과학기술의 연구성과에 힘입어 발명되었으며 오락과 뉴스 매체로 발전했다. 이어 예기치 않은 결과로 텔레비전은 다른 뉴스와 오락 매체의 생명력과 중요도를 떨어뜨렸을 뿐 아니라 가정, 문화, 사회생활의 핵심적인 과정에도 영향을 끼쳤다.


    (6) 인터넷은 과학기술 연구에 힘입어 하나의 가능성으로 개발되었다. 이 가능성이 새로운 사회의 요구에 부응할 것이라는 잠재력을 인정받아 투자와 개발의 대상으로 선택되었으며, 특히 분권적 의사 소통과 민주적 견해 형성 및 행동양식 형성에 영향력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7) 인터넷은 과학기술 연구에 힘입어 하나의 가능성으로 태어났으며, 새롭고 수익성 있는 전자적인 상거래, 콘텐츠 전달, 커뮤니케이션 및 커뮤니티 서비스의 면모를 인정받아 투자와 장려의 대상이 되었다. 그 결과 인터넷은 특징적인 디지털 가전 기기들과 결합되어 확산되었다.


    (8)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특징과 사용이 발전함에 따라 능동적 참여성, 집단지성 등의 요소가 두드러지게 된다. 이러한 요소들은 사람들에게 항상 잠재되어 있던 것인데, 인터넷이 보다 구체적으로 발현하게 만들었다.


    (9) 인터넷은 과학기술적 연구의 결과로 나타나게 되었다. 그것의 고유한 특징과 사용에 따라서 새로운 종류의 사회, 곧 분산되어 있고 복합적이면서도 세분화되어 있는 사회의 요구를 야기했으며 동시에 충족시켰다. 새롭게 창출된 롱테일(long tail)경제가 그 예이다.


    이런 견해들은 윌리엄스에게는 텔레비전, 우리에게는 인터넷과 같은 어떤 테크놀로지가 우리 세상을 바꾸었다는 익숙한 명제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 중 일부일 뿐이다. 많은 경우 여러 해석들이 동시에 혼합되고, 중복되어 나타난다.

    윌리엄스는 (1)~(5)와 같은 형식으로 설명할 경우 테크놀로지를 순전히 우연적 사건으로 이해한 것이라 지적한다. 이런 입장은 어떤 기술적 발명이 이루어지는 유일한 이유를 그 자체의 내적 발전에서 찾는다. 따라서 그 발명에 따르는 결과는 테크놀로지로부터 직접적으로 파생된 것이기 때문에 사실상 우연적이다. 인터넷이 발명되지 않았다면 그에 따르는 특정한 사회적 ․ 문화적 사건들도 생겨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런 입장을 기술결정론이라 부른다.


    “이 관점은 현재 사회변화의 성질을 밝히는 정설로 자리잡을 만큼 그 기세가 매우 강하다. 새로운 테크놀로지는 본질적으로 내적인 연구개발의 과정에 따라 개발되며, 그에 따라 사회적 변화와 진보의 여건이 조성된다. 진보란 특히 이러한 발명의 역사이며, ‘근대세계를 창출해 낸’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직접적이건 간접적이건, 예견된 것이든 예기치 못한 것이든, 테크놀로지의 효과는 역사적 산물이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텔레비전론』, pp.49~50


    (6)~(9)의 입장도 인터넷을 테크놀로지의 우연적 산물로 본다는 점에서는 같다. 다만 인터넷의 사용을 그 중심에 두고, 그 사용이 다른 맥락에서 결정되는 어떤 사회적 질서나 인간 본성의 몇가지 특징에 대한 징후로 여길 뿐이다. 따라서 인터넷이 발명되지 않았더라도 우리는 특정한 어떤 매체에 의해 참여적 질서를 만들었거나 세분화되고 협업적인 방식에 익숙해져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마도 현재보다는 좀 더 영향력이 적은 다른 방식을 사용하고 있을 수 있다. 앞의 입장보다 덜 결정론적인 이런 입장을 윌리엄스는 징후적 기술론(symptomatic technology)라 한다.


    “이 관점은 특정 테크놀로지 외에 사회적 변화의 동인이 되는 다른 조건들도 강조한다. 또한 특정 테크놀로지나 테크놀로지 집단이 다른 어떤 징후가 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떤 특정 테크놀로지는 그것과는 별개로 결정되는 사회과정의 부산물로 여겨진다. 이미 드러나 있는 사회과정의 목적들을 위해서 어떤 테크놀로지가 사용된다면, 그것은 단지 효과 차원의 위상만을 가질 뿐이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책, p.50


    테크놀로지와 사회적 제관계


    우리가 1970년대의 윌리엄스에 의지해 테크놀로지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살펴본 것은 이런 견해가 지금도 여전히 테크놀로지와 사회에 관한 우리의 사고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말 발간된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은 이런 사고를 대표한다. 이 책에서는 매클루언의 이론을 정리하며 “매체가 단순한 정보 전달의 수단을 넘어서 인간의 의식 패러다임과 의사소통의 구조, 그리고 사회구조 전반의 성격까지도 재편한다고 주장한 점에서 방송통신 융합의 철학적 출발점으로 삼기 적절한 이론가”라고 주장한다. 또  “그의 매체론은 커뮤니케이션의 물질성에 따라 문명의 성격까지도 바뀔 수 있다는 관점에서 ‘문명의 미디어론’으로까지 명명될 수 있다”며, 이를 기반으로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을 제시한다. *********

    ********* 황성주 외,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 정보통신정책연구원(2008.12), p.59, p.110을 볼 것. 강조는 필자. 우리는 매클루언의 통찰을 기술이 만들어낸 사회적 효과라는 차원에서 이후 다시 이야기할 것이다.


    이렇듯 현재의 뉴미디어에 대한 입론들은 대부분 기술결정론에 서있다. 테크놀로지와 사회의 관계를 살필 때 “기술을 고립적인 요인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기술은 “자율적인 힘으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창출하거나, 또는 자율적인 힘으로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이루는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생각한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책, p.51

     

    그런데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은 기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조성하는 것, 담론과 대화, 방송과 통신의 균형과 조화 속에서의 융합, 공급자중심에서 이용자의 참여와 협력을 중심으로 한 융합을 방송통신융합의 추진방향으로, 자유, 참여, 다양성, 창의성을 그것의 가치로 제시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일반적 당위론과 보편적인 가치, 그리고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사회적 효과를 적당히 버무린 몇 가지 트렌드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뉴미디어의 철학과 가치를 대변할 수는 없다. ***********

    *********** 황성주 외, 같은 책, pp.110~113을 볼 것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테크놀로지는 편안하고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와 소망이 깃든 기술이라는 일반적 특성을 넘어선 기술,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작동하여 인간을 종속시키고 장악해버린 기술, 자본주의적 상황 아래에서 특수한 용법으로 사용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 우리는 이미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테크놀로지가 만들어낸 ‘위험사회’ ************* 에 살고 있고, 테크놀로지 자체가 새로운 삶과 더 나은 문명이 만들어낼 것이라고 막연한 기대를 갖을 정도로 경험이 부족하지 않다.

    윌리엄스의 통찰에 따르면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과 같은 입장이 갖는 강조점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공동의 지적 노력이 필요하다. 근대 이후 사회관에 깊이 뿌리박힌 이런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는 다른 관점에 서서 테크놀로지, 구체적으로 텔레비전을 살펴 볼 것을 권유한다.

    ************   문병호, 같은 책, pp.111~113을 참고 함
    *************
    울리히 벡, 『위험사회 - 새로운 근대성을 향하여』, 새물결을 볼 것, 이 책에서 울리히 벡은 기술에 의해 구조적으로 조작되고, 통제되는 산업사회는 더 이상 인간의 의지에 따라 조종될 수 없는 사회라고 주장한다.


    “텔레비전의 역사뿐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 그것의 여러 가지 사용까지 살펴볼 수 있다. 텔레비전과 관련한 이 관점은 연구개발의 과정에 의도라는 요인을 되돌려 놓는다는 점에서 기술결정론과 다르다. 다시 말해서, 이미 상정된 어떤 목적이나 실천을 실현하기 위해 테크놀로지가 추구되고 발전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목적과 실천이 직접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징후적 기술론과도 다르다. 곧, 드러나 있는 사회적 요구, 목적, 실천 등에 대해 테크놀로지가 주변적인 요인이 아니라 중심적인 위상을 갖는다는 뜻이다.”
    **************


    **************   레이먼드 윌리엄스, 같은 책, p.51, 강조는 필자


    따라서 우리시대의 총체적인 삶의 경험, 이에 따른 감정과 사고 양식의 급격한 변화 양상을 살피기 전, 테크놀로지의 발전을 이끄는 사회적 요구, 목적, 실천을 살펴보아야한다. 



    비판적 기술사(技術史) ․ 기술학(技術學)


    ‘쟁기를 끄는 황소가 경제적 범주가 아니듯이 기계 ․ 기술도 경제적 범주가 아니다. 기계 ․ 기술의 현재와 같은 적용은 우리의 현재 경제체제의 제관계에 속한다. 기계 ․ 기술이 적용되는 방식은 기계 ․ 기술 자체와는 전혀 다르다. 화약을 사람들이 인간을 해치기 위해서 그것을 사용하든, 다친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 사용하든 언제나 화약인 것과 같다.’ + 사회적 제관계 속에서 기술 발전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결국은 일반적 당위론과 보편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자의적인 가정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구체적인 테크놀로지의 실제적인 발전과 그 ‘철학적 가치’는 모순될 수밖에 없다.

    +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자본론에 관한 서한집』, 중원문화, p.55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기술의 본질은 결코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리가 기술적인 것만을 생각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데에만 급급하여 그것에 매몰되거나 그것을 회피하는 한, 기술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관계를 결코 경험할 수 없다.

    기술에 대해 누구나 알고 있는 대답은 기술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과 기술은 인간의 행동의 하나라는 것이다. 기술에는 연장, 기구, 기계 등의 제작과 사용이 속하고, 이때 제작된 것과 사용된 것 자체도 기술에 속한다. 더 나아가 욕구와 이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들도 기술에 속한다. 이러한 장치 전체가 곧 기술이고, 기술 자체 또한 장치이기도하다. 하지만 이렇게 기술을 중립적인 것으로 고찰할 때가 최악의 경우라고 하이데거는 지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방비 상태로 기술에 내맡겨지고, 이것이 옳다고 신봉하며 기술의 본질에 대해 맹목적이게 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볼 때 기술을 하나의 수단이며 인간 행동의 하나라고 보는 현대인의 통념은 기막힐 정도로 올바르다. 하지만 이 통념의 올바름이 현대 기술의 본질을 밝혀주는 것은 아니다. ++

    ++
      마르틴 하이데거, <기술에 대한 물음>, 『강연과 논문』, 이학사, pp.9~11을 볼 것


    “따라서 현대 기술도 목적을 위한 도구라는 말은 올바르다. 기술에 대한 도구적 관념이 인간을 기술과 올바르게 관계 지으려는 모든 노력을 규정하고 있다. 모든 것은 기술을 도구로서 적당한 방식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람들은 흔히 말하듯이 기술을 “정신적으로 장악하기를” 바란다. 사람들은 기술을 자유자재로 다루려 한다. 이처럼 기술을 지배하려는 의지는 기술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날 가능성이 커질수록 더욱 절박해질 것이다. 그러나 기술이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고 가정해보자. 이럴 경우에도 그것을 지배하려는 의지가 가능할까?” +++

    +++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책, p.11에서 인용, 강조는 필자


    현대의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나버린 기술이다. 19세기 중반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은 <경제학 원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모든 기계의 발명이 어떤 인간의 매일매일의 노고를 가볍게 했는가는 참으로 의문이다.” ++++

    ++++
    칼 마르크스, 『자본론 I-2』, 이론과 실천, p.427에서 재인용, 원문 <Of the Stationary State - from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John Stuart Mill (1848)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왜냐하면 자본주의적으로 사용되는 기계의 목적은 이러한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즉 자본주의적 조건하에서 테크놀로지의 발전은 그 밖의 모든 노동생산력의 발전이 그러하듯이 상품을 저렴하게 하는 것이며, 노동일 중 노동자가 자기 자신을 위해 필요로 하는 부분을 단축하여 그가 자본가에게 무상으로 주고 있는 다른 부분을 연장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

    +++++ 칼 마르크스, 같은 책, pp.427~443을 볼 것. 마르크스는 기계와 대공업을 논하면서, 자본주의적 조건하에서 ‘기계의 발달’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살펴볼 때 개념적 ․ 도구적 정의 ++++++ 에서 벗어나 그것의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성격을 이해해야 한다. 즉 ‘비판적인 기술사(技術史)’ 입장에 서야한다. 1735년 존 와이엇(John Wyatt)가 방적기계를 발명했고, 그것이 18세기의 산업혁명을 세상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불완전한 것이지만 방적기는 이미 그보다 먼저 이탈리아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영국과 같은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왜 그랬을까? 비판적인 기술사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어떤 기술 발명의 사회적 맥락과 그 사용 방식을 살핀다. 이런 입장에서 18세기 산업혁명 시대를 보면 한 개인에 의해서 발명이 이루어진 경우가 얼마나 적은가를 알게 될 것이다.

    ++++++ 하이데거는 이를 “기술에 대한 도구적 ․ 인간학적 규정”이라고 부른다. 마르틴 하이데거, 같은 책, p.11을 볼 것

    또한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연 및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이때 기술이 인간 노동 과정과 관련을 맺고 있다면, 기술학(技術學)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능동적 태도와 인간 생활의 직접적인 생산과정을 밝혀줄 수 있다. 인간 생활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온갖 사회적 생활관계와 거기서 생겨나는 정신적 관념들을 포함한다. +++++++

    +++++++   칼 마르크스, 『자본론 I-2』, p.428~429를 볼 것

    기술에 의한 사회적 효과, 즉 기술에 따른 경험과 지각을 포함한 삶의 총체적 변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그 기술의 사회적 성격을 따져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기술 자체가 아닌 기술의 사회적 이용방식에 따라 우리의 생활 방식과 경험들이 달라지고 거기서 정서와 지각, 정신적 관념들・가치들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  메모들 ----------

    하지만 이 모순은 우리가 미리 상정한 고정 관념과 실제적 운동 사이의 모순일 따름이다.


    먼저 테크놀로지 발전의 원인을 살핀 후 이에 따라 문화산업, 방송통신융합의  내에서의 변화를 기술지대(技術地代)라는 개념을 통해 살펴 볼 것이다.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예술 작품의 생산과 수용 형식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장에서 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원인 :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논의를 살필 것

    기계에 대한 프루동의 주장에 대한 마르크스의 비판, 자본론 서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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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동자본주의와 자유노동의 보상 - 독점지대, 4차 산업 그리고 보편적 기본소득, 이항우, 한울(2017.8) 정동자본주의는 감정노동과 관계가 있다. 그리고 인지자본주의, 인지와 자본 등과도 공명한다. 그리고 좀 더 관심이 있다면 프랑코 베라르디 비포의 프레카리아트를 위한 렙소디를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2019.7.16일 추가)

    2019/07/15 23:48 2019/07/15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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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추석 연휴 기간(2017.9월 말 ~ 10월 초)에 쓴 글이다. 연휴 내내 썼지만 정작 쓴 글에는 생각의 일부분만 포함되었다. 노력 결과 문체는 좀 바꾼 것 같은데, 내용은 길다. 표/그림을 포함해 10페이지 정도를 요청받았는데 결과는 21페이지이다.

    메모는 글을 쓰기 전, 어떤 내용을 쓸까 생각한 것이다. 1번 "지상파는 없다"는 내용 정도를 썼고, 8번 "국지적 전투(pooq, SMR)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지고있다"는 내용이 좀 있다. 9번 "시장 종속의 문제"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을 하긴 했다.  나머지에 대해 항목들에 대해서는 글의 마지막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다른 기회로 미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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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지대에 대해 좀 더 쓸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글을 쓰면서 미디어산업 내에서 플랫폼(기술지대)의 형태를 통한 전유를 검토해보려고 리카도의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를 샀다. 마르크스의 <잉여가치학설사>와 김수행 교수의 <정치경제학 원론>도 다시 들쳐보았다. 리카도는 영국의 곡물법 논쟁에서 '분배의 관점'에서 지대에 대해 논한다.  (첨부된)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복잡한 전체 과정(프로세스)이 얽혀있어 어디에서 가치가 증가되는지 알 수 없을 때(알기 어려울 때), 상황을 간단하게 모델링하는 방법을 도입해 리카도는 곡물법 논쟁을 분석한다. 미디어산업 내에서 플랫폼 지대 문제도 이런 식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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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과 포털의 관계처럼 방송(영상)과 플랫폼(통신)의 관계를 생각해선 안된다. 그런 관점에서 글을 썼다. OTT나 포털 때문에 (국내의) 방송산업이 어려워진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1차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어떤 에센스(본질)/프레임(문제틀)을 상정하고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된다. 실재존재(실존/fact)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가장 큰 문제는 정부정책과 (방송사) 내부적인 문제가 더 커 보인다. 이런 입장에서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공공재의 사유화, 기술지대, 이윤율의 하락 등과 (적어도 미디어산업 내에서) 이에 대한 전유양식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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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상파방송사의 뉴미디어 전략>에 대해 쓰고 싶었던 부분, 결론을 요약하면 아래 글과 같다. "전략은 제도개선투쟁이다. 구태의연한 과거, 법, 제도를 날려야 ... 새로운 rule 정립(하고), 시장적이냐 공익적이냐는 영역을 다시 확정(획정)"해야 한다.

    기계적 배치가 바뀌었고, 이것을 제도화해 (굳어진 것이) 하나의(새로운) 뉴미디어/방송 장치일 것이다. 배치는 바뀌었는데 제도가 이것을 따라가지 못한다. 공적인 언표적 배치는 이미 사유화되어 버린 방송계(기계)와 맞지 않는다 등등 ... 

    이런 것을 만들어내는(형성시키는) 메커니즘 또는 의미체계에 대해 공부를 해야겠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상파 방송사 스마트 미디어 전략의 성과와 전망>,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 미디어 이슈 & 트렌드 (20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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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도서 (일부)

    방송 재원 - 10점
    황근 지음/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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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술지대 등 때문에 읽는 책

    리카도가 들려주는 자유 무역 이야기 - 10점
    허균 지음, 황기홍 그림/자음과모음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 10점
    데이비드 리카도 지음, 권기철 옮김/책세상

    기호와 기계 - 10점
    마우리치오 랏자라또 지음, 신병현.심성보 옮김/갈무리
    2017/11/06 13:57 2017/11/06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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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1.2~3일 코엑스에서 <스마트 콘텐트 2011 어워드 & 컨퍼런스>가 있었다. 이곳에서 <미디어 환경변화와 미디어 사업 대응 시나리오>란 제목으로 발표한 자료이다.

    스마트 콘텐츠 2011
    발표 글의 전체적인 내용은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인 조영신박사의 <지상파 콘텐츠의 수익성 강화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확장 전략의 의미>를 따라가면서 작성했다. 왜냐하면 조박사의 글 중 많은 부분이 우리가 했던, 또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의견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MBC에 계신 분이 메일로 보내준 링크를 따라 글의 내용을 보고 우리의 활동이 밖에 있는 분들께 어떻게 보이는지 알게되어 재미있었다. 하지만 글 재주가 그리 뛰어나지도, 국외자의 이야기에 일일이 대응할만큼 한가하지도 않아 그냥 넘기려고 했다. 속으로 "네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단테, 신곡)을 되뇌이며......

    그런데 알고지내는 KOCCA 관계자 분의 몇번이나 계속된 요청을 거절할 수 없어 <지상파의 생존전략>이란 가제를 받아들고 그분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을 비교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 알고있던 발표시간 80분이, 실제 40분이라는 것을 알게된 후 많은 내용을 축약해서 발표해야만 했다. 이곳에는 축약되기 전, 전문을 올린다.

    발표 내용 중 ①방송환경 변화와 인터넷(page.2), ②이용자의 변화(page.9), ③경쟁구도의 변화(page.18), ⑤대응방안(page.35)에는 <지상파 연합 플래폼 구축을 위한 제안>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지난 8~10월 중에 합숙을 하면서 공동작업을 한 것이다.

    환경에 대한 인식 이외에 발표된 내용의 상당 부분은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커밍아웃이 필요한 방송사'(page.8)는 IPTV 이후로 어떤 측면에서는 기회주의적으로 보이는 방송사가 이젠 자기 지향성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글의 제일 아래쪽 EBS 서진수차장의 "처지가 비슷해 서로 최대 공약수를 빨리 찾을 수 있는 동종 사업자의 협력"이 커밍아웃의 주장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커밍아웃은 쉽게 할 수 없는 듯하다. 용기가 필요하다. 또 절박함도!)

    11.3일 발표자료에서는 확실하게 빠진 page.12~13은 2009년 이후 우리가 이야기했던 스마트TV 시장 예측이 맞지않았나를 증명해 주는 것 같아 넣은 장표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시간 관계상' 삭제되었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좀 더 상세하게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지상파 연합 플랫폼 구축 제안>에서 주로 다뤘던 주제는 N스크린 서비스이다. 이 문제를 함께 논의했던 분들과 차이점을 찾는다면 page.22~24까지가 아닐까 한다. 여기서 차이는 생각이 다르다는 것보다는 강조점(비중)이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현재 디지털 케이블 지상파 재전송 문제가 초저가 수신료에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나아가면 과포화 상태에 빠진 통신시장에서의 수익률 저하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타 산업군으로의 확장 및 기술지대를 구조화 과정에 콘텐츠 산업이 끌려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정치적 변수에 의해 만들어진 종합편성 채널이 들어온다.

    거대 통신자본 중심으로 추진되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과정에서 초저가 콘텐츠 시장이 가속화되고, 여기에 모든 사업자들이 빨여들어 이전투구 상황에 빠진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가 KT 등에 의해 진행되는 IPTV 저가 경쟁이다. 2006년 우리나라의 콘텐츠 서비스 가격이 인도네시아, 필리핀, 스리랑카보다도 낮았다. 그런데 IPTV 서비스 출시 이후 유료TV 가격이 더 낮아졌고, 이런 상황이 현재 케이블과 지상파 사이에 발생한 분쟁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말일까? 또 IPTV와 지상파 사이의 갈등 아래에도 동일한 문제가 깔려 있다고 한다면 과한 주장일까?

    올레 TV 나우
    N스크린 환경, 구체적으로 N스크린 묶음상품(TPS, QPS 등의 package 상품)에서 더욱 더 심화된 초저가 가격경쟁(마케팅)이 전개될 것이라면 허황된 주장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발표하려 했던 주요내용이 이것이다. 콘텐츠(미디어)를 초저가화 하면서 경쟁하는 통신, 케이블(MOS) 등의 가입자 경쟁의 소용돌이에 어떻게 하면 말려들지않을까? 지상파 연합 플랫폼이 필요한 이유를 개인적으로는 이것에서 찾는다.

    스마트폰 이후 휴대전화료가 2~3배 이상 올랐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일 것이다. LTE(4G) 망을 채우기 위해 대용량 콘텐츠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고객 유치를 위한 마케팅을 위해  N스크린으로 묶인 콘텐츠의 가격은 더욱 더 떨어져야 한다고, 떨어뜨리겠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그리고 가격을 떨어뜨리고 타 사업자의 고객을 끌어오고 ... (플랫폼 전쟁이 끝난 후, 독과점적 상황이 된 후 다시 가격이 오를지 모를 일이지만)

    하지만 콘텐츠(미디어) 영역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욕심 때문에 적자이다! 콘텐츠 조달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말하지않을까? 망 환경을 개선하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이고 있는데 이들이 자기 욕심만 채우려고 한다 등등 .... IPTV에서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이다. (아래 조영신박사의 인용문을 볼 것)

    앞으로 <olleh tv now>와 같은 서비스가 이런 길을 가지않을 것이라고 누가 보장할 것인가? 이것이 플랫폼을 이용하여 기술지대를 편취하는 대표적인 방식 아닐까? 데이터는 비싸게 팔고 그곳을 채울 콘텐츠(미디어)는 공짜로 만들고 ... 경쟁 사업자를 궁지로 몰아넣고 ... 또 두 사업(미디어와 데이터 사업)을 분리시켜 한곳은 적자로 만들어 파트너를 압박하고 ...

    조영신박사는 지상파가 어렵다는 것을 잘알고 있다. 그것을 걱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지상파 방송사업자들도 이러한 변화를 읽고 있다. 지상파의 광고 점유율은 하락하고 반면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프로그램 제작비는 증가하고 있다. 콘텐츠의 지배력은 여전하지만 지배력만큼 콘텐츠 사용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무재송신 문제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1천5백만명의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케이블사업자로부터 재송신료(일종의 프로그램 사용료)를 받지 못하고 있고, 이를 일부라도 만회하기 위해서 오히려 위성이나 IPTV와 같은 후발 사업자한테 가입자 당 비싼 가격으로 징수하고 있다. 단순히 정리하면 콘텐츠의 수익화가 정체되어 있다는 의미다. (조영신, <지상파 콘텐츠의 수익성 강화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확장 전략과 의미>, 강조는 필자)
    사실상 현재, 조박사의 글을 보면 케이블과 지상파의 싸움을 부추기며 즐기는 곳은 통신사들이라고 할 수도 있지않을까 생각된다. 위의 글을 보면 "1천5백만명의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케이블사업자로부터 재송신료"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또 "위성이나 IPTV 같은 후발 사업자한테 가입자 당 비싼 가격으로 (콘텐츠 대가를) 징수"하는 것은 불만이다. 앞으로 이런 걱정은 없어도 될 듯하다. 비싸지든 싸지든 모두 다 콘텐츠 대가를 내야하는 상황이 오고 있으니 말이다.

    "콘텐츠의 수익화가 정체되어 있다"는 그의 판단에 우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왜 수익화가 정체된 미디어산업에 들어오려고 하는가? 수익화가 정체되었다기 보다는 많은 부분의 수익이 플랫폼을 통한 기술지대를 통해 케이블사업자(MSO)에게로 가고 있었고, 이젠 통신사가 이것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 아니냐고. 앞으로 지상파라는 공적인 영역이 통신사에 의해 더욱 더 빨리 사유화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우공이산

    ④SBS의 뉴미디어 대응 스토리는 블로그에 많이 포스팅된 내용이다. 하지만 조영신박사의 뼈 아픈 지적에 감사를 드리고자 첨부했다. 발표자료를 만들며 하고 싶었던 말은 아래와 같다. 하지만 발표 때는 시간에 쫓겨 제대로 말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조영신박사는 "초기 IPTV가 등장했을 때, SBS는 Open API 방식 등을 통해서 일종의 PIP (Platform in Platform)의 형태로 지상파를 IPTV 플랫폼 내에 안착시키고자 했었다. 그러나 반응 속도나 수익 배분 등의 문제로 현재까지도 제대로 구현되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라고 말씀 하신다. 맞다!

    하지만 우린 PIP 계약을 지속하면서 될 때까지 땅을 팔 것이다. SBS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을 만들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page.51에 있는 우공이산의 뜻이다. 1차적으로 안되는 것을 될 것이라고 꼬드기며 계약을 하자했던 분들의 책임이 크다. 그분들은 지금 한분도 안계신다! 우리의 문제는 '그런 것(STB 사양, 폐쇄적인 IPTV 플랫폼을 개방시키는 어려움)'을 몰랐다는 무지함일 것이다. 그런데 몰라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알고 물러섰더라면 우린 어떤 꿈도 꾸질 못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최근 우리가 억지로 SBS TV포털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다는 말씀하시는 분을 만났다. 언젠가 이곳에 그분이 다니시는 회사에서 제안한 TV포털 제안서를 공개해야 할 것 같다. 매번 새로운 분이 오실 때마다 이런 이야기 듣는 것도 힘들고 불쾌하다. 공개를 위해서는 법적 검토를 먼저 받아야하나! 6년 가까이 지났는데 ... )

    땅을 파면서 우린 깨달은 것이 많다. 우리에게 아주 시간이 많고 PIP가 될 때까지 땅을 팔 준비가 되어있다. 땅을 판만큼 돌아올 것도 클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지구전을 하려고 한다. SKB, LGU+, 그리고 디지털 케이블까지 합쳐 끈질기게 SBS TV포털을 만들 것이다. (또 KT와 몇개의 산을 넘어 9부 능선까지 왔다.)

    콘팅 이야기도 말씀을 하시니 한마디 더 해야겠다. 콘팅이 우리에게 준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이와는 별도로 기생하지 않는 독자적인 플랫폼을 염두에 두고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어왔었다. 2009년 8월 15일 지상파 3사가 공동으로 출범시켰던 콘팅(conting)은 Hulu(훌루. Fox, Disney-ABC 등 거대 미디어 그룹이 공동 소유한 동영상 서비스 업체) 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시장을 겨냥한 통합 플랫폼이었다. 그러나 Hulu가 JV(Joint Venture)를 통해서 모회사와 배타적 거래 관계를 갖는 독립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라면, 콘팅은 개별 지상파 방송사업자가 콘팅이라는 브랜드명만 공유한 채 독자 사업을 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결국 현재까지 콘팅은 지상파 방송사업자의 위상에 걸맞지 않게 가입자는 물론이고 이용 규모도 변변치 못한 상황이다. (조영신, <지상파 콘텐츠의 수익성 강화를 위한, 온라인 플랫폼 확장 전략과 의미>)
    IPTV보다 콘팅은 더욱 큰 깨우침을 주었다. page.34에 있는 지상파간의 파트너십, 그리고 그 파트너십을 만들고 유지하기하기 위한 헌신과 열정, 양보와 신뢰, 그리고 시간에 대한 것이다. 또 조박사께서 생각하는 것보다 콘팅의 성과는 훨씬 크다. 100여개의 웹하드 사이트와 비교해서 콘팅에서 발생하는 지상파 콘텐츠의 매출 비중이 가장 크다는 것이 작은 성과라면, 웹하드를 합법화하는 과정에서 시장구조를 재편하는데 콘팅이 한 역할이다.

    2009.8.15일 시작된 콘팅이 지상파 콘텐츠의 다운로드 가격을 지킬 수 있도록 만들었다면 믿겠는가? 몇십원짜리 콘텐츠를 200원정도에 유통하자는 웹하드사의 주장을 한방에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콘팅의 출시 때문이었다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그때 우리도 몰랐지만 말이다.

    또 지금 우리가 N스크린 대응을 위해 <지상파 연합 플랫폼>을 구축하려는 것도 이런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


    2011.11.3일 발표문 (발표하면서 축약하기 전의 발표문을 그주에 올리기로 했으나 바로 올리지 못했다. 이제 알았는데 10M 이상은 첨부가 안되는데 발표문이 11M가 넘었다. 혹시 발표문을 기다리신 분이 계셨다면 사과드린다. apple keynote로 작성해 pdf로 저장했는데 사이즈가 너무 컸다. pdf 파일 화면을 캡춰잡아 MS ppt에 붙인 후 pdf로 저장했다.)

    -------------------------------

    발표자료와 함께 관련된 자료를 올린다. EBS 서진수차장님의 발표문이다.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방송협회, 미래방송연구회가 11.4일 '2011 가을 디지털 방송 컨퍼런스'를 개최했고 이곳에서 서차장님이 발표를 했다. 서차장님은 <지상파 연합 플랫폼 구축 제안> 작업에 함께 참여하셨다.

    블로그에 게제를 허락해주신 서진수차장님께 감사를 드린다. 아래 글은 서진수차장님의 발표 내용에 대한 신문기사 내용 중 일부이다.
    EBS 한국교육방송공사 뉴미디어기획부 서진수 차장은 "131년 기업의 코닥은 아날로그뿐 아니라 디지털 기술까지 다 갖고 있었지만 전략을 잘못 짜면서 시대에 뒤떨어지게 됐다"며 지상파TV들의 연합 전략을 지상파 TV의 생존 전략으로 내세웠다. 플랫폼 주도권 전쟁에서 콘텐츠 사업자들만 분산돼 '각개격파' 당하고 있다는 것이 서 차장의 진단이다.

    서 차장은 "지난 과거 국내 신문사들이 포털에 대항해 자사의 닷컴을 만들었지만 '한 곳에서 모든 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이용자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해 포털에 주도권을 빼앗겼다"고 지적했다.

    서 차장은 "미디어 생태계에서 처지가 비슷해 서로 최대 공약수를 빨리 찾을 수 있는 동종 사업자의 협력이 먼저 이루어지면 규모를 기반으로 2차, 3차 협상의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서 차장은 "지상파끼리 논의를 통해 공동 서비스 플랫폼 확보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운영방식 재정 등 구조적 결합 틀을 마련한 뒤 실제 서비스의 성공 가능성이 입증되면 신뢰도 확보가 가능하다"며 파트너십을 구축하는게 중요하다고 밝혔다.(CJ 헬로비젼 VOD 이용건수 3년만에 4배 급증 / [디지털 방송 컨퍼런스] 지상파 TV의 생존 전략은? 미디어오늘, 2011.11.4)


    (서진수, <플랫폼, 방송 그리고 전략>(2011.11.4, <2011 가을 디지털 방송 컨퍼런스> 발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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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목을 <....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그리고 지상파 연합 플랫폼>이라고 잡았다. 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의 논리적, 경험적 귀결이 지상파 연합 플랫폼인지 후에 시간을 내어 쓸 예정이다.


    전자신문 지상파 내년 초 N스크린 서비스 위한 합작사 설립(12.8)
    2011/12/05 00:24 2011/12/0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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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KOBA에서 발표한 자료입니다. 제목은 <지상파 방송사 뉴미디어 서비스 전략>인데 실제는 SBS 온라인 서비스 전략에 가깝습니다.

    발표자료에는 음악산업이 디지털화 과정에서 어떻게 가치를 통신사업자들에게 빼앗겼는지, 기술지대와 혼잡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2005년 이후 웹하드의 등장과 함께 동일한 일이 방송, 영화 VOD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SBS를 실례로 들어 설명합니다.
    기술지대에 의한 가치 전이 - 음악산업
    그리고 웹하드 서비스는 "실제" 합법화 되기 어렵다는 음란물/성인물 위주의 매출구조를 통해 이야기합니다. 방송, 영화 콘텐츠는 이런 '원초적인 불법콘텐츠'를 포장하기 위한 들러리이라는 것이죠. SBS사이트는 웹하드로 인해 2005년 이후 VOD 매출 70%가 하락하고, 또 그 기간 동안 동영상 광고 등의 매출은 90% 상승했습니다.

    50원, 70원짜리 웹하드와 경쟁해서 이기려면 무료까지 가야합니다. 훌루(Hulu.com)류의 광고모델이죠. 이런 모델을 만들기 위해 웹에서 어떤 서비스를 할 것인지 이야기합니다. 콘텐츠를 개방해서 접근성을 강화하고, UCC 콘텐츠의 업로드를 허용하면서 거버넌스를 어떻게 만들까, 또 뉴미디어 환경에서 브랜드란 무엇인가 등이 주제입니다.
    온라인 서비스의 전략방향
    SBS 동영상 아카이브 개방

    포털, 동영상사이트, 온라인 뉴스사이트 등에 SBS 콘텐츠를 개방하겠다는 것이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포털에는 SBS 브랜드관으로 입점해서 온라인 브랜치를 만들 것입니다. 미디어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많은 소비에 있고, 소비하면서 브랜드를 알게 만들려는 것이 브랜드관입니다. 예전 Digital Content Platform사업의 연장입니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SBS 동영상 아카이브 개방
    이젠 좀 많은 콘텐츠가 개방형 API를 통해 전달되고, 그곳에서 반응이 다시 SBS사이트로 돌아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용자들은 클립을 포털이나 동영상사이트를 통해 SBS에 업로드할 수 있도록 허용됩니다. 그 다음 해당 클립은 아웃링크로 포털, 동영상사이트에 임베디드되죠. 광고가 붙고, 광고 수익은 서로 나눠갔습니다.

    온라인 뉴스사이트들도 원하는 영상을 잘라서 기사의 참고 영상으로 쓸 수 있고, 해당 뉴스를 SBS사이트에 전달하여 추가적인 트래픽을 받아갈 수도 있습니다.

    지상파 TV포털 서비스 표준화

    동영상 아카이브를 개방화하는 것과 함께 또 하나는 TV플랫폼을 개방적 환경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IPTV에서 먼저 시작합니다. TV에서 쌍방향 서비스의 문제점을 말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지상파들이 모여 진행한 표준화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SBS TV포털 이야기는 이 블로그에서 많이 했습니다. 이런 방향이 전체 지상파의 기본적인 방향으로 되었습니다. 또 함께 쌍방향 서비스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1년 정도 표준화된 서비스, 기술에 대해 이야기한 결과를 아마 처음으로 밝히는 것 같습니다.
    지상파 TV포털 표준 어플리케이션 개념도
    그리고 이전에 이야기 했던 네트워크 없는 콘텐츠 플랫폼 이야기로 connected Device에서의 비전과 P2P에 대한 관심을 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답 없는 모바일 서비스 이야기로 마칩니다.

    발표자료를 올릴려했는데 업로드가 안되네요. 내일 올려놓겠습니다. 파일 사이즈가 너무 커 안올라갔네요. PDF 변환기를 웹에 있는 무료버전을 썼더니 ...


    2010/06/16 09:03 2010/06/1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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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 모자이크 - 10점
    스티븐 홀츠먼 지음, 이재현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학문적 관심이 없다면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나는 8장 디지털의 한계와 9장 모자이크를 재미있게 읽었다. "각기 동일한 것일지라도 다른 맥락에 있으면 다른 무엇인가를 의미하게 된다."(p.180)

    어제 쓴 글에서 현장성/가시성을 이야기하면서 참조하라고 말했던 책이다. 책을 들쳐보니 이 책 내용이 아니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와 <The World As Phantom And As Matrix>(Gunther Anders) 올해 읽은 책들의 내용이 범벅이 되어 만들어낸 '착각'이다.

    작년말부터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계속해서 맴돌고 있는 생각/주제들이 있다. "매스미디어와 개인미디어의 결합/공생 관계", "현실/사건을 가지고 유령(Phantom)/가상을 만들어내는 미디어", "매스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 - 공감, 정서적 연대 등의 관점에서", "개인미디어의 진보적 성격", "미디어에 대한 비판적 입장" 등

    지난해부터 관심을 가진 벤야민의 맥락(aura)에 대한 관심이 생각과 독서를 여기까지 진전시켰다. <팬텀과 매트릭스로서의 세계-귄터 안더스>에 대해서는 올초 강의를 하면서 진중권씨의 글을 참조했었고 최근 미국에 있는 선배에게 독일어의 영어 번역본을 받았다. 놀랍게도 11페이지 밖에 안되는 짧은 에세이였다! 아마 진중권씨의 주석이 더 긴듯하다.

    미디어가 어떻게 사실/맥락을 왜곡하는지에 대해서는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를 읽으면 좋을듯하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재미있게 본 것 중 하나이다. 돈벌이만 좇는 미디어가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다.

    다른 한권은 박영욱의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라는 들뢰즈와 데리다에 관련된 책이다. '난해한'한 두 프랑스 철학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입문서로 훌륭하다. 들뢰즈 책만 책꽂이 한칸을 넘게 차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많다. 그를 읽는다며 혼자 앉아 '오해/오독'하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 10점
    W. 랜스 베넷 지음, 유나영 옮김/책으로보는세상(책보세)

    미디어의 현재와 미래, 사회적 책임 등에 관심있다면 꼭 읽어볼 책. 미국에서 뉴미디어을 포함한 미디어산업에 투기적 자본이 들어와 어떻게 망쳤나를 알고 싶어도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 - 10점
    박영욱 지음/김영사

    창의성/창조적 상상력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하고 싶다면 세계/존재 자체가 다양체라는 것을 알면 된다. 쉽다고 말은 했지만 여전히 만만찮을 수 있다.

    아래는 이런 저런 책을 읽으면서 7.14일 적은 메모가 있다. (메모는 책 내용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을 적은 것임)

    7.24일 메모

    "미디어는 노상강도이다. 맥락에서 특정 장면을 빼앗아 온다"
    "노상강도가 강탈적으로 만든 세계는 모자이크이다"
    "나는 노상강도처럼 책을 읽는다. 이책 저책 띄엄 띄엄"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텔레비전론>,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 남수영의 <이미지 시대의 역사 기억>, <디지털 모자이크>,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 등과 김종철의 <텔레비전과 민주주의>등의 신문기사를 함께 읽으면서 나온 메모이다.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는 그 뒤에 읽기 시작했다. (사실 이책 저책 읽다보니 아직도 읽고 있다. 매주 열댓장씩)

    이즈음 메모들 사이에 "텔레비전은 상상력을 위축시키고, 아동의 정서적, 지적 능력의 정상적 발달을 가로막고,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김종철의 글(7.25일 한겨레신문)과  아마도 다른 란에서 백은하씨가 <찬란한 유산>을 평가하며 "허구적 매체는 ......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한다"고 이야기가 쓰여있다.

    2009.12.24. 17시 update --------------------------------------------------------

    인용한 "문화적 대안"에 대한 이야기는 백은하의 글이 아니다. 백은하가 <찬란한 유산>을 칭찬하며 문화적 대안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때 읽고 있던 <인권의 발명> 9페이지에 나오는 내용이다. "허구적 매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현실로 받아들이기 전부터 새로운 문화적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드라마, 공감, 정서적 연대"라는 측면에서 읽고 있었다. 보편적 인권 관념이 어떻게 형성/구성되는가 하는 것이 이 글의 주제이다.

    TV라는 매스미디어가 어떤 진보성을 갖을 수 있는가로 고민을 하고 있다. 사회적 통합 기능(이전 같으면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로 부숴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을게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개인미디어가 어떤 시각에서보면 사회적 분열을 극심하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매스미디어(객관적 관념론 경향을 갖음)과 개인미디어(주관적 관념론/유아론적 세계가 될 수 있음)의 건강한 긴장관계를 어떻게 만들까? 요즘 매달리는 화두 중 하나이다.)

    "허구적 매체(TV)는 객관적 관념론을 만든다. 2가지 방향으로. 보도/뉴스는 현실을 관념화시켜 보수화하는대로, 드라마는 이상을 관념화시켜 급진화하는 대로. 역도 가능하다. 결국 TV는 보수화 또는 급진화될 수 있다." 어떻게 사용할지 용법/선택의 문제이다. 선택은 사회적(또는 개인적) 선택이며 구조적인 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아래 메모를 볼 것)
     
    8.2일 메모

    인권의 발명 - 10점
    린 헌트 지음, 전진성 옮김/돌베개

    나는 책을 읽으면 얼토당토 않은 방향으로 읽어댄다. 인권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면서 미디어의 논리, "미디어의 효과-경험-정서"라는 것을 읽으려 했다. 세계는 다양체이고, 일원론적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반영한다는 믿음 속에

    인터넷/뉴미디어 관련된 일을 하면서 솔직히 백은하의 말보다 김종철의 말에 더 공감이 간다. “싫어하는 것에 반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고, 그런 다음에는 조절하기 위해 스위치를 끄는 곳이 어디인가를 알아두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footnote]마샬 매클루언, <인터넷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미래(1966)>, 스테파니 매클루언, 데이비드 스테인즈 편저, 『매클루언의 이해: 그의 강연과 대담』, 커뮤니케이션북스, p.139[/footnote] 나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다.

    매클루언의 이해 - 10점
    스테파니 매클루언.데이비드 스테인즈 지음, 김정태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미디어 현상에 관심있다면 아래 책을 꼭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매클루언의 <미디어의 이해>보다 읽기 편하고, 내용주는 시사점도 더 많았다.

    런 까닭에 무엇보다 "이념(스위치 끄는 곳)"의 문제에 천착하려했었다. 그런데 벌써 1년이 다갔다. (SBS콘텐츠허브 입사 이래 가장 바쁘고 힘든 한해였던 것 같다.)

    2008년 말 잡았던 에세이의 순서이다. 벤야민을 통해 다른 미디어 철학/사상을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몇가지 현상을 분석하기로 했었다.

    벤야민
    벤야민과 아도르노
    벤야민과 매클루언
    벤아민과 군터 그라스?
    벤야민과 브루디외
    벤야민과 플루서
    ---------------------------------------------
    산만함
    미세지각
    시민종교, 아우라
    블로그, 신화적 사고
    유동적 자아매몰
    흐름, 체험
    미디어와 정서
    (개인 미디어가 만든) 유아론적 세계
    (매스미디어가 만든) 객관적 관념론의 세계
    모자이크와 퍼즐

    연초에 <발터 벤야민, 마샬 맥루한, 빌렘 플루서, 그리고 기술적 복제 시대의 우리>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100매 정도를 쓰다가 중단했다. 회사 일을 마치고 밤새 글을 쓸 열정도 식고, 머리에 든 것도 없고, 또 여러 핑계거리가 생겼기 때문이다.

    8~9월에 다시 <테크놀로지와 문화, 그리고 우리의 삶>이라는 제목으로 원고지 50매 정도를 쓰다가 중단했다. 앞에 썼던 내용과는 다른 내용이다. 이 글을 쓰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잉여가치학설사>의 지대 관련 장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미디어2.0>에서 이야기했던 기술지대 개념과 사례를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비판적 미디어론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으로도 긁적댔다. <방송통신융합의 철학과 비전>이라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나온 글을 보고 열을 받은 상태에서였다. 박사들도 미디어를 연구하면서 (앞뒤 자르고 말하는) 공력을 쌓았나 철학자들의 주장을 아전인수로 해석하며 '용비어천가'성 이야기를 유포하는듯 했기 때문이다.

    요즘은 앞의 세이야기의 주제를 합쳐 <기술, 경험, 정서, 그리고 이념의 문제>라는 제목만 지어놓고 이 책 저 책 들척이면서 밤마다 놀고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올해 사 본 책들이다. 이것 저것 들고 띄엄 띄엄 웹서핑하듯이 읽었고, 또 읽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장 주관적인 매체라는 책"의 내용이 이리 저리 통접(연접+이접)되어 이상한 모습을 띄는듯하다. 한권의 책에서 주는 생각의 연속성이 깨지고 단절과 비약이 심해 비선형적인 웹서핑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이다.

    11월 ----------------------------------------------
    공간 속의 시간(도시사 연구 총서 1)(양장본) 외 3개
    텔레비전과 동물원
    미술사의 역사
    기나긴 혁명 (문화사, 대중문화에 대해)
    벤야민 & 아도르노(지식인마을30) 외 2개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에서(데리다 들뢰즈)

    10월 ----------------------------------------------
    미디어는 어떻게 신화가 되었는가 외 2개
    비잔티움 빛의 모자이크 (<디지털 모자이크>에서 말한 '모자이크'에 대해 역사/예술 내에서 알기 위해)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기술지대의 발생 동력인 기술혁신에 대해 살펴보기 위해)

    9월 ----------------------------------------------
    공론장의 구조변동:부르주아 사회의 한 범주에 관한 연구 외 3개 (부르조아 미디어/공론장의 생성과 발전에 대해 알기 위해)
    누가 아렌트와 토크빌을 읽었다 하는가(비평정신1)
    유혹하는 에디터
    뉴스, 허깨비를 좇는 정치
    군림천하. 21

    8월 ----------------------------------------------
    참회록(성 어거스틴의)
    인권의 발명
    디지털 모자이크

    7월 ----------------------------------------------
    니체는 왜 민주주의에 반대했는가 외 3개
    비판과 화해(아도르노의 철하과 미학)
    미술의 불복종
    아도르노와 자본주의적 우울
    군림천하. 20
    강연과 논문 - 마르틴 하이데거 (이학문선 03)(양장본) 외 1개
    비트겐슈타인(하룻밤의 지식여행 51)

    6월 ----------------------------------------------
    군중심리(완역본) 외 4개 (인터넷에서의 군중심리를 어떻게 이해할까 생각해 보기 위해)
    사회학의 문화적 전환 (시민종교로서의 미디어, 공감과 연대에 대한 접근법을 보기 위해)
    이미지시대의 역사기억
    텔레비전론
    생각의 탄생 (몸으로 생각한다는 것, 미세지각에 대한 사례를 보기 위해)

    5월 ----------------------------------------------
    진중권의 이매진 외 2개
    텔레비전 또 하나의 가족
    촛불에 길을 잃다: 쇠고기 수입협상에서 정권퇴진 운동까지 (촛불반대 논리를 살펴보기 위해 구입한 책, 진보적이라 생각한다면 사보지 말것)

    4월 ----------------------------------------------
    몸의 역사(살림지식총서 274) 외 1개
    휴대폰이 말하다(아로리총서 4)

    3월 ----------------------------------------------
    서양 미술사. 1 외 1개
    일방통행로

    2월 ----------------------------------------------
    매클루언의 이해: 그의 강연과 대담 외 3개 (맥루한에 관심이 있다면 이책을 볼 것, <미디어의 이해>보다 더 재미있다고 생각됨)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자본주의적 문화, 예술론의 시발점을 이해하기 위해)
    발칙하고 기발한 사기와 위조 행진 (예술에서 모작, 원본이 없는 기술적 복제 등에 대한 이해를 위해)
    아빠의 몰락

    1월 ----------------------------------------------
    문화예술경제학 (예술, 문화의 경제학적 함의를 살피기 위해, 기술지대 관련)
    발터 벤야민과 메트로폴리스
    폭력에 대한 성찰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 다시 사회구성체론으로(부커진 R2)

    --------------------------------------------------
    주석

    2009/12/24 01:26 2009/12/24 01:26
    From. Jeremy 2009/12/29 09:32Delete / ModifyReply
    철학과 아니랄까바. ㅋㅋ 30일 소주나한잔하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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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8/07 12:50 (update)

    <Online Interactive Ad Opportunity>에서 디스플레이 광고에서 빅클라이언트(대형 광고주)에 대해 이야기 했다. 아래 기사는 이와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NHN과 다음의 디스플레이 의존도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침체 가운데 대형 광고주들의 눈길은 점점 디스플레이로 향하고 있기 때문.
    포털 메인에 자리 잡고 텔레비전 광고처럼 구체적 영상을 보여주는 디스플레이는 단가가 비싸지만 효과를 어느 정도 장담할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  (출처: NHN-다음, ‘배너광고’ 얼마나 벌까?, zdnet.co.kr, 2009.8.6)

    2008/09/20 01:46 ---------------------------------------------------------

    이 글은 2008년 초에 작성되었다. 방송과 통신이 융합된 환경에서 광고사업, 또 그 이전에 광고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살펴보는 글인데, 그 중 일부 내용이다. 아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이 글의 주제는 Cross Media Ad, 그것도 실시간 방송과 통합된 Cross Media Ad 및 Interactive Ad에 대한 것이다.

    VIDEO ON THE WEB 컨퍼런스

    9월 25일 W3C가 주최하는 "Video on the Web 2008 (IPTV가 웹을 만났을 때 !)"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interactive service 전략 (The Strategy of Universal Broadcasting Initiative Service)>이란 주제로 발표를 한다. 그 중 한 페이지인 'III-4. Cross Platform Service를 위한 기술 정책 변경과 Online Interactive Ad Opportunity'를 위한 참고자료로 올린다. 발표문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또 30페이지가 좀 넘는데 발표문 차례에 맞춰 관련된 글을 연결해 놓는다. 적어도 미디어 포털의 동영상 서비스 전략과 향후 전망은 한번 읽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웹서비스 전략과 연속성 상에서 IPTV 이야기가 진행된다.
    I. Interactive Service 환경
      I-1. 지상파 방송 인터넷 현안 – 성장의 한계
             사업 실패의 경험과 성공의 조건 
      I-2. 방송, 통신 융합 환경 – 새로운 위협과 기회
            융합환경에서의 콘텐츠 산업과 기술지대의 발생

    II. SBS Interactive Service Strategy
      II-1. Digital Content Platform (DCP) 전략 개요
            미디어 포털의 동영상 서비스 전략과 향후 전망.pdf
      II-2. Digital Content Platform 전략 구현을 위한 TV포털 서비스 방향
            
    IPTV 장밋빛 전망, 그리고 브로치 효과
             IPTV, TV포털 시장 예측 - 개방형 TV포털의 가능성? 
      II-3. Digital Content Platform 전략 구현을 위한 무선인터넷 서비스 방향
      II-4. Digital Content Platform 전략, Cross Platform Service

    III. DCP 전략 수행을 위한 정책 및 사업 방향
      III-1. Cross Platform Service를 위한 기술표준
              IPTV가 웹서비스를 만났을 때 -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 
      III-2. Cross Platform Service를 위한 기술 정책 변경
              기술에 대한 선택기준 ② - DRM vs. DRM Free
              기술에 대한 선택기준 ① - H.264와 WMV(VC-1)
      III-3. Cross Platform Service를 위한 TV포털 서비스 기술 현황
              2008 KOBA - IPTV와 Web의 결합, ACAP + Web / HTML
      III-4. Cross Platform Service를 위한 기술 정책 변경과 Online Interactive Ad Opportunity
             온라인 미디어 산업전망 - Cross Media Platform & Ad.

    Appendix. Interactive Service 환경에서의 SB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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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line Interactive Ad Opportunity

    <Online Interactive Ad Opportunity> 차례

    1. Ad Market Status (광고 시장 현황)

    전통미디어 광고 점유율 하락과 온라인 광고 비중 지속적 상승

    • 광고 매체 증가 및 경쟁 심화
    • 낮은 광고 시장 성장률
    • 전통미디어 광고 점유율 하락
    • 온라인 광고 비중 지속적 상승

    인터넷 TV 다음으로 접촉시간 높아 - 코바코총 광고비 중 신문/방송 점유율 - 제일기획2008년 온라인광고 비중 18%에 육박할 전망 - 제일기획, NH투자증권
     Source: 인터넷이 바꾸는 미디어 산업 (SERI, CEO Information, 2006.5.24)
                 NH투자증권 (NH Research Center, 2006.11.30)

    우리나라의 인터넷 광고산업
    Source: 인터넷 광고의 현황과 주요 이슈 (이준호, 정보통신정책, 제20권14호 통권444호, 2008.8.1)

    융합환경에서의 온라인/Interactive 광고 비중이 더욱 증가할 것이며 이에 대한 대응 필요

    • 광고 노출 매체별 광고 비중

    광고 노출 매체별 광고 비중
    Source: IPTV와 광고 수익 모델의 결합 (정보통신정책, 제20권 6호 통권 436호, 2008.4.1)

    • 방송과 통신의 융합환경에서의 광고
      • TV와 온라인 (PC, IPTV, Digital Cable) 등에 대한 통합적 접근 필요
        • 외부 법제도 변화에 대응
        • 내부역량 점검 / 강화
        • 조직적 대응방향 설정
      • 지상파 Interactive Ad사업 협력 방향 수립 필요

    2. Online Interactive Ad Opportunity (크로스 미디어 광고 기회)

    미디어가 네트웍에 연결되면서 시청자 참여, 개인화, 커뮤니티화된 쌍방향 광고 가능해지고 이것은 TV광고의 보완재 역할을 하며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

    • Interactive Advertising is the use of interactive media to promote and/or influence the buying decisions of the consumer in an online and offline environment. Interactive advertising can utilise media such as the Internet, interactive television, mobile devices (WAP and SMS), as well as kiosk-based terminals.
      ▶ 크로스 미디어 환경에서 네트웍에 연결된 매체에 대한 통합된 쌍방향 광고 플랫폼
    • Interactive advertising affords the marketer the ability to engage the consumer in a direct and personal way, enabling a sophisticated and dimensional dialogue, which can affect a potential customer's buying decisions particularly in an e-commerce environment.
      ▶ 시청자 참여와 개인화
    • Perhaps one of the most effective implementations of interactive advertising is so-called Viral marketing. This technique uses images, texts, web links, Flash animations, audio/video clips etc., passed from user to user chain letter-style, via email. A notable example of this is the Subservient Chicken, a campaign by Burger King to promote their new line of chicken sandwiches and the "Have It Your Way" campaign.
      ▶ 소셜 네트웍(Social Network) 기반 광고
    • Interactive advertising is also assuming other avatars, such as online directories for brands. These directories presently perform a complementary role to conventional advertising, helping viewers recall and compare brands primarily seen on television. Response is mediated usually through forms and click-to-call technologies.
      ▶ TV 광고의 보완재
      Source: http://en.wikipedia.org/wiki/Interactive_advertising

     브랜드/대형 광고주가 온라인에서의 브랜드 홍보에 관심을 갖고 광고를 집행하기 시작함

    • 브랜드/대형 광고주가 온라인에서의 브랜드 홍보에 관심을 갖고 광고를 집행하기 시작함
      • 국내 상위 1000대 광고주 마케터들과 대행사 AE 506명에게 질문
        “귀사의 브랜드 검색횟수와 브랜드 선호도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귀사의 브랜드 검색횟수와 브랜드 선호도 간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국내 1000대 광고주의 검색광고 활용도 증가 추이Big Client 중심으로 키워드 브랜딩활동 강화될 것
    Source: 2006 오버추어 광고주 세미나 (Key Note Speech, Overture Korea, 김대선)

    • Big Client 중심으로 Online Ad가 더욱 강화될 것
      • 브랜드와 소비자의 Relationship를 위해

    온라인 브랜드 광고는 검색보다 디스플레이/동영상 광고가 될 것이며, 이것은 검색광고 중심의 온라인 광고 시장 재편 가능성을 보여줌

    • 해외 시장의 경우
      •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 광고를 온라인에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음
      • 이는 온라인 미디어가 차세대 뉴미디어로 광고주들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
      • 브랜드 광고는 주로 대기업 수준의 광고주가 디스플레이 광고 형태로 진행함
    • 국내의 경우
      • 과거에는 오히려 디스플레이 광고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컸고, 최근 들어 검색광고가 급성장하는 흐름을 여전히 유지
      • 이러한 현상은 해외의 경우와 반비례한다기 보다, 광고주나 사용자의 인식 변환이 조금 느리다고 해석할 수 있음

    국내 온라인 광고 매출 현황

    ▲ 국내 온라인광고 시장 (자료제공 : 인마협, 오버추어)
    Source: 검색 광고를 넘어서 브랜드 광고로! (2007/07/19, zdnet.co.kr)

    2010년경 동영상 광고가 온라인 광고의 주류가 되어 큰 성장률을 보일 것이며, 이것은 융합환경에서 온라인 광고와 TV광고가 합쳐지고, 다시 세분화(개인화, 지역화)된다는 것을 시사

    • 2009, 2010년 정도엔 Online video advertising이 주류가 될 것
      • By 2009 and 2010, however, as online video advertising becomes as mainstream as Internet advertising, its share of the pie will rapidly surpass the 10% mark.
      • "When you consider that video ads are more costly than static display ads, for instance, or most paid search campaigns, getting to such a point with spending will not necessarily indicate more video ads than for other formats."
        • "First, the desire among companies both large and not so large — and their agencies — for targeted ad messages using creative they are familiar with: video"
        • "Secondly, advertisers have long favored television as their marketing medium, and extending that preference to the Internet is a logical leap.”
        • “Finally, with video ad spending coming from such a small base, high percentage gains are readily reached."

    총온라인광고 중 온라인 비디오 AD 비중 증가율 예상온라인 비디오 AD 예상 매출규모온라인 비디오 AD 예상 성장률

    Source: Online Video Advertising: 'You Ain't Seen Nothin' Yet!‘ (NOVEMBER 7, 2006, emarker.com)

    검색광고 시장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브랜드/대형 광고주는 디스플레이형 광고를 선호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온라인 광고의 선두업체들이 지면과 비디오 콘텐츠 확보에 열중하고 있음

    • Brand 광고는 검색보다 Display 광고
      • 세계는 지금 광고를 위한 지면 / 콘텐츠 확보를 위한 경쟁 중

    Big Client(브랜드 광고주)는 배너 광고를 선호
    Source: 검색광고의 현황과 전망 (오버추어 코리아, 2007. 12. 11, 차재덕)

      • Google : youtube.com 인수

    youtube.com

      • MS : msn.com, yahoo M&A 시도, facebook.com 투자

    msn.comyahoo.comfacebook.com

        • 세계 최대의 IPTV 플랫폼 사업자 - X박스라이브: 1000만명의 온라인 게이머들에게 350개의 영화와 5000개의 TV물을 제공, 10여개국 이상의 케이블, 통신 사업자에게 IPTV 플랫폼 제공

    이미 많은 광고주들은 크로스 미디어 형태의 광고를 집행 중이며, 이를 통해 브랜드 홍보에 좋은 결과를 얻고 있음

    • 국내 상위 1000대 광고주 마케터 238명에게 질문
      • “크로스 미디어 광고 집행 경험이 있으십니까?”
      • 50%가 집행경험이 있거나, 집행을 예정으로 하고 있음

    크로스 미디어 광고 집행 의사
    Source: 2006 오버추어 광고주 세미나 (Key Note Speech, Overture Korea, 김대선)

    3. 지상파 Online Interactive Ad Opportunity

    지상파는 방송 통신 융합에 따라 TV를 이용한 쌍방향 광고 시장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며, 크로스 플랫폼 광고 등을 통해 전통 미디어(TV)와 뉴미디어 간 시너지가 예상됨

    • 방송통신 융합 촉진
      • IPTV 도입 및 상용화, 디지털방송 및 방송통신 결합서비스 확대
    • 방송광고제도 재정립
      • 민영미디어랩 도입, 중간광고 단계적 허용

    이명박정부의 미디어 정책변화와 시장효과 전망
    Source: 새정부의 미디어 정책변화와 시장효과 전망 (CJ Research, 2008-01-07)

    융합 네트웍 확대로 TV 방송과 TV포털을 이용한 쌍방향 광고 인벤토리의 증가가 예상되며, 세계시장 추세를 고려할 때 여러 모든 미디어 플랫폼 자원을 통합, 크로스 미디어 Ad 기반을 만들어야 함

    • TV 방송(Live)의 쌍방향 광고
      • IPTV 재전송 / Digital Cable 점진적 확대

    국내 IPTV 가입자 현황국내 IPTV 가입자 전망
    Source: 국내 IPTV 사업자 전략과 경쟁력 비교분석 (산은경제연구소,  2008.4.14)

    • Internet Portal형 On Demand 시장
      • 지상파 방송사 공식 웹사이트, On Demand형 IPTV 포털

    전세계 VOD 시장규모 전망SBS TV포털SBS 웹사이트
    Source: 카우치 포테이토의 변신, VOD 시장을 잡아라 (LG주간경제, 2007.2.21)

    미디어산업 재편 환경에서 콘텐츠가 소비되는 디바이스(시청자)에 대한 직접 접근이 가능하도록 네트웍 사업자의 개입을 최소화 할 때 전통 미디어(TV)와 뉴미디어 간 융합된 신사업 가능성이 확대될 것임

    • 콘텐츠 주도형 미디어산업 재구축 전략이 필요
      • 콘텐츠 제작 비중이 높은 지상파는 다양한 윈도를 통한 콘텐츠 전송, 유통·판매사업 확대해 왔음
      • 방송 콘텐츠가 전달되는 상이한 플랫폼 간 '쌍방향 서비스'에 대한 통합을 통해 인터렉티브 크로스 플랫폼 환경을 만들어야 함

    콘텐츠 중심의 크로스 플랫폼 Ad 모델

    생산/유통능력 상●, 중◐, 하○
    Source: 인터넷이 바꾸는 미디어 산업 (SERI, CEO Information, 2006.5.24)을 참조하여 작성
    ※   표시와 달리 현재 케이블 TV 포털의 경우 유통부문에서 대응력이 없음

      • 편성, 광고, 서비스, 고객, 결제 등 정책결정권 확보 (유통부분 접근성 확대/개방)
      • 유통부문 개방 후 서비스 강화를 위한 소비자부문과의 협력
        • Connected Device에 대한 web / Open IPTV 방향 기술 표준화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http://crossmedia.naver.com/


    IPTV 광고시장 高성장 2015년 케이블TV 추월” (아시아경제신문)
    (중략) ... KT경영연구소에서 최근 발표한 ‘광고, 커머스 시장 전망 및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90억원으로 추정되는 IPTV 광고시장은 매년 두 배 가까이 성장세를 지속해 오는 2015년까지 8531억원대의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같은 기간 케이블 및 위성TV 광고시장은 올해 7909억원에서 2010년경 9301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하락세로 돌아서 2015년에는 IPTV에 뒤쳐진 7506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IPTV는 모바일 광고(휴대전화+와이브로)와 함께 뉴미디어 광고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되며 전체 광고시장에서 뉴미디어 광고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0.9%에서 2015년에는 12.0%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공중파TV, 인터넷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보고서는 향후 광고 시장은 전통적인 광고(TV·라디오·신문·잡지)에서 온라인(인터넷)을 이어 뉴미디어로 플랫폼간 가치 이동을 더욱 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전망했다.

    뉴미디어의 양방향성이 광고주에게는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고객 계층별로 세분화 된 광고가 가능하다는 점, 미디어간 교차 광고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 (중략)

    2009/08/07 12:50 2009/08/07 12:50
    From. 비밀방문자 2008/10/04 16:36Delete / Modify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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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년 3월 7일 <뉴미디어론> 세미나를 시작했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하여 4명이다. 오리엔테이션 형식으로 어떤 것을 공부할지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뉴미디어론 세미나를 시작하며>를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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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 개요

    지금까지 발전되어 왔던 각종 미디어 형식들이 디지털화되면서 하나의 형식적 기반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미디어간의 경계가 사라지고 콘텐츠 간의 결합(융합)이 일어나고 있다. 디지털화에 의해 새롭게 가능해진 콘텐츠의 전달방식을 뉴미디어라 한다.

    이런 뉴미디어 기반에는 기술이 있다. 하지만 본 세미나의 목적은 뉴미디어에 필요한 구체적 기술에 대한 논의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차라리 이러한 기술이 발달하게 된 사회, 경제적 동인과 이런 기술의 쓰임새(용법, 가능성), 용법에 따른 사회, 문화적 변화들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기술 자체가 사회에 존재함에 따라 기술은 가치중립적인 것이 아니며, 특정 사회세력들에게는 전략적인 것들이 된다. 기술의 쓰임새가 서로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지식(기술)과 자본, 지식과 계급/계층들이 결합되고 흩어진다.

    따라서 뉴미디어에 대한 하나의 이론은 존재하지 않으며 여러 담론간의 경쟁이 존재하게 된다. 경쟁하는 담론들이 서로의 진리치를 주장하며 수많은 사회적 효과를 만들어 낸다. (아직까지는) 여전히 유동적이며, 비결정적인 ‘뉴미디어’에 대한 논의는 이런 현실에 대한 인식 위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빠른 변화와 유동성에 의해 고정된 이론이 불가능하다면 변화의 과정, 변화 속에 있는 논리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경제학, 사회학, 철학, (미디어에 대한) 역사학 등에서 발전한 개념을 통해 뉴미디어를 읽을 것이다. 어떤 때는 문자 이전의 시대로, 또 어떤 때는 르네상스나 인쇄술이 발견된 시대로, 결국은 이곳 저곳을 돌아다닐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뉴미디어가 품고 있는 무한한 잠재성에서 가능성을 추출해내는 방법을, 또 그 가능성을 촉발시켜 현실화 시킬 수 있는 힘들에 대해 이야기 할 예정이다. 이 강의를 통해 우리는 뉴미디어의 지도를 만드는 방법, 어떤 이론을 새우는 도구상자를 갖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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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미디어론 세미나를 시작하며

    미디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세미나를 시작하고자 한다. 미디어는 우리말로 “매체(媒體)”라고 번역된다. 매체는 “매개체(媒介體)”라고 할 수도 있다. 매(媒)는 “結緣(결연)을 꾀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개(介)는 “사람이 사이에 끼어 들어 일을 처리한다”는 의미로 “끼다”의 뜻으로, 체(體)는 “형상(形狀), 근본(根本), 격식” 등의 의미를 갖는다. 체(體)에서 음(音)을 나타내는 풍(豊)은 “신에게 바치는 많은 물건을 수북이 담은 것”을 의미하는데 뜻을 나타내는 뼈(骨)과 함께 쓰이면서 여기서는 “여러 가지 갖추어져 있음”을 뜻한다. 체(體)는 목, 두 손, 두 발 등의 여러 가지가 갖추어진 몸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매체, 미디어는 “사람들 사이를 연결시켜주기 위해 끼어 있는 여러 가지 것들(격식들)”이라고 할 수 있다.

    국어사전에서 매체는 “어떤 작용을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전달하는 물체”라고 정의한다. 사실 사람 자체가 미디어이기도 하다. 비근한 예로 명령을 전하는 사람을 전령(傳令)이라고 하며 이들은 역사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이다. 또 우리 자신도 미디어이다. 우리는 구어, 몸짓, 눈빛 등을 통해 어떤 내용을 다른 이에게 전한다.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주인공인 메멘토(Memento)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의 내용은 이렇다. 전직 보험 수사관인 레너드(Guy Edward Pearce)는 자기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된다. 그가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가 강간당하고 살해당했다는 것, 그리고 범인은 존 G 라는 것이 전부이다. 중요한 단서까지도 쉽게 잊고 마는 레너드는 자기 가정을 파탄 낸 범인을 찾기 위한 방법으로 메모와 문신을 사용한다. 묵고 있는 호텔, 갔던 장소, 만나는 사람과 그에 대한 정보를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남기고, 항상 메모를 해두며, 심지어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이 영화를 보면 우리의 몸이 노트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금 나의 말을 여러분의 귀에 들리도록 하는 공기(의 파동)도 미디어에 넣을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정보를 전달할 수 있도록 돕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앞에서 정보 이야기를 했다. 정보는 information이다. form은 어떤 꼴, 형태(shape), 외관 또는 내용과 대비한 형식을 말한다. 어떤 내용을 특수한 표현 형식에 맞춰 넣는 것(과정)이 formation이라면, 넣어진 상태가 information이 될 것이다. formation의 뜻은 형성, 구성, 편성, 조립, 구조, 형성물이고,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닌 하나의 과정을 상정한다는 점이다. 또 형식으로서의 form에 대한 내용은 content가 된다. 정보는 내용(content)과 특정한 형식(from)에 맞춰진 결과물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말하는 미디어, 매체는 content를 전달하는 수단들로 한정한다.

    그런데 content가 어떤 form에 들어가느냐에 따라 같은 내용일지라도 다른 미디어라 할 수 있다. 미디어에 있어 문제는 내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형식이 중요한 것이다. 이곳에서 뉴미디어의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새로운 information/content의 전달 형식이란 의미로 말이다.

    문명화된 우리는 정보화된 형태로의 세계를 본다. 이것은 천동설과 지동설의 이야기를 통해서,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서,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서 그리고 현대과학의 근거를 연구한 많은 철학자들 이야기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눈은 “날 것”이 아니며, 우리는 어떤 안경을 쓰고 있다. 우리가 당연시하는 원근법은 르네상스 시대의 산물이다. (서양미술에서) 이전의 그림을 보면 중요한 것이 커지고 덜 중요한 것은 작거나 흐릿하게 있었다. 동양미술에서는 원근법이나 배경조차 없는 양식(정형화된 미술형식)이 발전하였다.

    현대 광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는 이전에는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던 세계, 미생물의 세계를 관찰하기도 하고, 우리 몸을 이루는 세포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사진술은 우리가 흘려 보내던 것들 잡아 놓고 그 미세한 차이를 알 수 있게도 한다. 시간 차이를 둔 항공촬영은 불법 건축물을 잡아내고, 지도를 제작하는데 이용된다. 동일한 영화를 여러 번 본 사람은 볼 때마다 다른 것들을 보게 된다고 말한다. 반복적인 관람은 스토리가 아닌 디테일에까지 사람의 주의가 미치게 하는 것이다. 그림, 사진, 영화와 같이 어떤 형식 속에 사물, 사건, 시간의 흐름이 포착(정보화)되면서 이전에 보지 못했던 세계가 드러난다.

    미디어는 우선 형식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형식에 내용을 쑤셔(또는 구겨) 넣으면서 많은 내용이 없어지기도 하고, 또는 사실과 다르게 과장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실재하는 세계와 달라지는 내용에 대한 관심을 갖기 이전에 먼저 하나의 형식이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의 생물학적 몸을 기반으로 하는 미디어, 구어(口語)와 승리를 알리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달리는 다리 등이 있지만, 우리는 미디어의 형식을 이루는 결정적 요소를 기술(technique)이라고 부르려 한다. 우리는 이미 생물학적 몸에 기반한 미디어까지도 기술이라 부르는데 어색해하지 않다. 말하는 기술(話術)이 있고, 고대 그리스의 철학, 수사학, 논리학의 발전은 이런 기술의 발전인 것이다. 지금도 달리기 선수들은 빠르게 다리를 앞뒤로 움직여 땅을 박차고 정해진 시간 내에 많은 거리를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기술을 갖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가 미디어를 기술 기반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형식이라고 한다면 잘못된 말일까? 또 만일 이런 기술이 인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즉 인간의 근본적 한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발전한 것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우리가 함께 공부하며 다시 인간(여기에서의 인간은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 다른 것의 힘을 빌리지 않고 오로지 육체와 이에 깃든 정신만으로 살아가는 인간)으로부터 벗어나던 기술과 인간이 결합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뉴미디어를 새롭게 나타난 내용(content)의 전달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새로운 정보의 존재방식(또는 정보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뉴미디어에 대해 함께 토론하기 위해 나는 먼저 “내용(content) 없는 뉴미디어의 형식에 집중하자”고 제안한다. “내용이 없는 형식은 공허하며 형식 없는 내용은 무의미하다”고 하지만 우리는 이미 ‘뉴미디어 환경’ 속에서 살고 있기에 이제 그것의 정확한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 이런 노력, 사고를 통해 추상화(개념화)한 후 다시 구체적인 삶에 적용하는 종합의 길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맑스(K. Marx)는 <정치경제학 비판서문>에서 “구체적인 것은 그것이 수많은 규정들의 총괄, 즉 잡다한 것의 통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이다. 따라서 사유 속에서 구체적인 것은, 비록 그것이 현실의 출발점이고 따라서 직관과 표상의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총괄의 과정, 결과로서 나타나는 출발점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구체에서 추상으로, 또 다시 추상에서 구체로’의 사고의 운동과정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뉴미디어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다시 이런 과정을 거치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미디어2.0>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하지만 결과물이 썩 내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백하겠다. 그래서 함께 작업하며 서로의 부족한 부분이 채워지길 바란다. 마샬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1960년 <기술, 미디어, 문화>라는 글에서 “지식을 실행하고 교환하는 것은 지식을 함께 공유함으로써 사람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여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보람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지식의 실행과 교환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높여준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것이 가능한 전자시대에서는 그 동안의 어떤 시대보다도 풍성한 삶을 살아갈 기회가 생길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 또한 이와 똑 같은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미디어2.0>은 선과 악 같은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기 위해서, 또는 어떤 집단의 승리나 패배, 성공과 실패라는 도식적 이해를 넘기 위해서 쓰여졌다. 전체론(holism)적 시각에서 뉴미디어 현상에 접근하려는 시도였다. 이것을 위해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의 ‘가족유사성’ 개념과 부르디외(Bourdieu)의 ‘장(場) 이론’에 의지했던 것이다. 또 푸코(Foucault)의 전략, 들뢰즈(Deleuze)의 계열화 등에 의존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어떤 회사에 매인 생활인으로서의 존재 기반에 의해 ‘극한까지 사고’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런 까닭에 책을 낸 후 친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일을 받았다.

     “첫째는 새로운 지평의 성격을 규정하기 위해 철학이나 사회학으로부터 도용한 개념들이 어떤 방식으로 너의 분석에 적용되고 있는지가 확연하질 않았다. 미디어2.0은 이러 이러하게 규정될 수 있다고 선언적으로 주장한 뒤, 실제 분석은 다른 방법론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다. 왜 가족유사성이나 장이라는 낯선 개념들에 호소해야 하는지가 후속하는 분석들 속에서 설명되고 있질 못하다.

    둘째로는 두 가지 언어의 공존이 나를 좀 난감하게 했다. 한편에서는 현상을 기술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새로 올 세상을 규정하려는, 달리 말해 기술적 언어(이러 이러하다) 와 규정적 언어(이러 이러해야 한다)가 제1장부터 공존하다 보니 작업의 성격이 모호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1장에서 너는 풍경을 말한다고 하지만, 아주 빈번히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러하다 보니, 2장 과 3장이 논의의 심화가 아니라 반복으로 비춰진다.”

    이번 만남과 배움(學)를 통해 우리가 친구(朋)가 되기를 원한다. <논어>는 “學而時習之, 不亦悅乎?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로 시작한다. 이에 대해 다산(茶山)은 이렇게 해석하고 있다. “학은 가르침을 받음이다. 습은 학업을 익힘이다. 시습은 그때그때 그것을 익힘이다. 열은 마음이 유쾌함이다. 학은 아는(知)의 방법이고 습은 실천하는(行) 방법이다. 배우고 때로 익힌다는 것은 지와 행을 함께 해나가는 것이다. 후세의 학문은 배우기만하고 익히지 않으니. 그래서 기뻐할 만한 것이 없다. 붕은 도를 함께하는 자이다. 락은 깊이 기뻐함이다.” 함께 학습(學習)을 시작하며 하고 싶은 말이다.

    이제 함께 읽고 토론할 책들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고자 한다. 뉴미디어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긴 우회로를 함께 걷기로 결심했다.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함께 이야기 하며 오랜 동안 걷고, 그러면서 함께 기쁨과 슬픔, 또는 좌절감을 맛보아야 하며, 그래서 정서적 동질감과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생겨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결국 함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다면!

    1. 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1936
       기술적 복제, 장, 역사성
    2. 테오도르 아도르노, M.호르크하이머, <문화산업: 대중기만으로서의 계몽>
       (<계몽의 변증법> 내 게재), 1947
        기술지대, 문화산업, 경제
    3.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1964
        인간의 확장, 인간의 축소
        지각 : Fold(pli), Micro-perception, Virtuality(virtualite), Becoming
    4. 피에르 부르디외, <장들의 몇가지 특성>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 내 게재)
        역사성, 장(Camp), 물질성
    5.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 내 제1장 뉴미디어란 무엇인가?
    6. 김상환,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 중 일부
    7. 최진호, <흐름의 공간과 분자적 미디어>
        (<부커진 R vol2,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한국사회-다시 사회구성체론으로> 내)
    8. 빌렘 플루서,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1983
       마술적 그림, 텍스트적 계몽, 기술에 의한 새로운 마술(탈맥락화)
    9. 루이 알뛰세르,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 (<아미엥에서의 주장> 내 게재)
    10.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중 일부 (<193, 194 기계>)
    11.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 앎의 의지> 중 제4장 성적 욕망의 가치
    12. 박종진, <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2009/03/07 09:00 2009/03/0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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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통위 나팔수로 전락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방통위 나팔수’로 전락한 키스디(한겨레신문, 2009.2.11)

    <미디어2.0>에서 이런 말을 했다. 온라인 음악산업이 1조 이상 성장할 것이라는 연구기관들의 장밋빛 전망, 이동통신 사업자들에 의해서 "기술지대" 형태로 수익의 상당부분 40~50% 이상이 전이되는 현실을 이야기 하면서이다. 결국 하루 이틀 전의 이야기이거나 특정 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1조 시장은 어딜가고 2007년 말, 2008년부터 음악시장이 포화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2000년 음반시장 수준인 4000억 정도에서 말이다. 이렇게 대기업으로 가치를 전이시키기 위해 내뱉는 감언이설 수준의 사례들이 많다.

    "현상과 실제를 잘못 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 - 특히 정부 및 많은 정책연구기관 의 관계자들과 기자들 - 은 지나가던 네티즌의 댓글 수준보다 못한 보고서와 기사를 써대고 있는 것은 아닌가!"(p.110)

    그리고 전략, 변화를 위해서는 푸코식의 "지식-권력의 공모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도 말을 했다. 지식(연구기관, 박사 등으로 제도화된 지식)은 거짓을 사실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담론의 물질성!

    "뉴미디어에 대한 단순한 사고들-신문,잡지,인터넷 언론 등의 대중매체의 기사들과 이들에게 ‘기사거리’를 제공하는 정보통신 관련 기업들, 연구소들, 정부기관들의 사업과 정책·전략들, 뉴미디어에 대한 지배적인 담론들-의 배후에는 역관계들이 존재하며 이 역관계가 변화할 때까지 어떤 사고들은 권력을 잡고 다른 사고들은 그에 종속된 채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고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우리는 구부러진 사고들 위에 그것들을 정정하기 위한 ‘반대로-구부리기’를 행해야만 한다. 또 이때 잘못된 사고들을 구부린 채로 지탱하고 있는 힘을 알아야만 한다."(p.125)

    공교롭게 오늘 위 기사에서 언급된 기관에 계신 분이 회사에 와서 경영특강을 했다. IPTV 또는 방송산업에 대한 장밋빛을 이야기 한다. 반은 부탁, 반은 훈계조의 말들.

    이야기를 들으며 왜 꼭 방송이 산업이어야 할까? 돈을 못벌면 안되나? 생각을 했다. 산업화되어 현재 6불 정도인 미디어 이용료가 적어도 20~30불, 40불까지 되기를 바라는 것 같다. 그렇게 산업화된다고 국민들의 삶은 좋아질까? 양질의 콘텐츠가 생산될까? 다른 기준도 있을 수 있고,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는데 ...

    한쪽 면만을 이야기한다면, 그 한쪽 면이 설령 사실이라 한다고 해도 거짓(왜곡)일 수 있다.  앎이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면 선택가능성,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식도 돈 맛을 알면 영혼이 없어지는 것일까? 가끔 정부의 정책자문 형태의 회의에 참석하면서 학교에 있으면서도 그렇게 행동하는 분들을 보면 자괴감을 느낀다. 학교 있어도 그런데 정부 출연기관에서야 ...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은 방송통신(정책)연구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싶어한다는 이야기도 강연 초두에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법을 바꿔야 한단다. 사실이 그렇다면 이왕 이름을 바꿀바에 방송통신정책홍보원은 어떨까? 국민의 세금이 쓰이는 용처라도 분명해지지 않을까? 또 연구물들이 학문적 진위, 양심의 문제가 아닌 설득, 수사의 문제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헤갈리지 않을 수도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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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포스트 : IPTV 장밋빛 전망, 그리고 브로치 효과(2008.7.31)

    KT 미디어사업 현황 및 콘텐츠전략
    음악시장 1조원 이상 성장을 예상하는 자료

    미디어2.0> p.107에서 위 그림을 보여주면서 지식이 어떤식으로 시장에 개입하여 부익부를 만드는지 이야기하고 있다. 이 자료는 『KT 미디어사업 현황 및 콘텐츠전략』(2005. 10. 25), p. 27에서 인용했다.

    요즘 이런 생각이 든다. 한우에 태그를 붙여 유통을 관리하는 것처럼 정책보고서들의 진실성을 역사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지않을까? 광우병 문제 때 포털에 저장된 과거 조중동의 기사와 그때의 기사를 비교하여 정권의 변화에 따른 논조의 변화를 이야기한 것처럼, 학문적 연구의 결과라는 것도 말이다. 이말은 사회과학적 방법을 이용한 분석이 아닌 이런 방법으로 포장한 사설(社說)이라고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사분들, 정책연구소들도 검색의 무서움을 느끼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회사에 방문한 분은 틀리기 위해 예측을 한다는 말을 인용했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방패삼아 다른 이야기, 누군가의 구미에 맞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따져봐야 한다. 틀리지 말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만일 그들이 객관성을 주장한다면 그 객관성의 기반이 되는 '학자적 양심'이 문제이다.
    2009/02/11 23:35 2009/02/1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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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미디어 현주소, 그리고 IPTV에 대한 장밋빛 기대

    "방통위 ‘IPTV 밀어붙이기’ 안된다." 오늘 경향신문에 나온 기사이다. 케이블TV, 위성방송(스카이 라이프), 위성DMB(TU미디어), 지상파 DMB 등 정부의 뉴미디어 정책에 의해 시작된 방송사업이 모두 누적적자라는 이야기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최시중)가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IPTV) 사업을 추진하면서 케이블TV, 디지털위성방송, DMB 등 과거 정책들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기보다 장밋빛 전망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요즘 국내 미디어시장은 ‘뉴미디어 난개발’로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데다 매체 광고시장도 7조9000억원대에서 성장이 정체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부실덩어리’인 몇몇 방송매체에 대한 정리가 선행돼야 하는데도 “IPTV가 현 정부의 역점사업이니 일단 진행하자”는 식의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사업의 핵심 요소인 콘텐츠 육성 정책이 없는 데다 이용자의 선호 매체 및 채널수와 이용행태 등에 관한 조사도 선행하지 않은 채 통신사업자들의 자료에 의존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향신문, 2008.7.29)

    신규사업을 시작하면 항상 장밋빛 그림을 그리기 마련이다. 장밋빛이 아니라면 누가 사업을 시작할 것인가? 하지만 정부 정책은 개별사업자처럼 장밋빛 이전에 국가적 비전/필요성과 국민들의 수요를 고심하여 장밋빛이 아니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 또 가끔은 기업 입장에서도 당장 장밋빛이 아니라해도 장기적 안목에서 접근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이야기가 Global Standard , 진짜 '평평한 세계'는 존재하는가?에서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했던 이야기이다.


    장기이익과 단기이익, 이리저리 흔들리는 통신사

    융합환경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만일 광대역화(BcN,FTTH)가 정부의 정책 목표이거나, KT와 같은 통신사업자가 가야할 장기비전이라면 당장의 순실(투자비용)은 감수하고 인프라를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아래 그림을 보면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가장 잘 준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008년 FTTH 보급률 - 전세계 1위
    아시아 국가, FTTH 서비스 보급률 선두 - 한국이 37%로 가장 높음(아시아·태평양, 유럽, 북미 FTTH 위원회, 2008)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냐면 통신사에 계신 분들이 가끔 '마치 IPTV 때문에 통신망의 광대역화를 추진하는 듯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듣는데 IPTV는 그 중 작은 부분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기존 사업을 방어하면서 확장하려는 뜻이 더 크다는 의미다.

    또 가끔은 지난 정부의 정보통신부나 현재의 방송통신위원회가 KT 등의 통신사업자가 '마땅히 해야 할' 광대역화를 진행하면서 덤으로 IPTV(미디어산업)에 접근하도록 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정부 산하 기관이 내놓은 장밋빛 IPTV 전망과 산업유발효과, 교수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이 '바람잡이' 역할을 하며 거든다. <미디어2.0>, pp109~110을 볼 것

    천문학적인 - 매년 4조 정도를 망고도화에 KT가 투자한다고 한다 - 투자비용을 들이면서 미디어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기여하려고 하는데 이런 '충심'을 모른다고 투털대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작은 땅덩이에 약 5000만명이 모여사는 이 나라에서 미디어산업이 정말 커질까? 커진다면 얼마나? 광고산업은 GDP 성장률을 따라 커진다는 것이 이미 검증된 사실이고, 국민의 지갑은 한정되어 있다. 다먹어도 7~8조인 시장을 위해 매년 4조씩 투자한다고! 만일 이것을 사실이라면 '미쳤다'고 해야 한다.

    통신사들은 'IPTV법'이 통과한 후 '합리적이고 공정한 콘텐츠 가격'[footnote]사실 어떤 가격이 합리적이고 공정할까? 좀 과장해서 이야기하면 통신사는 VOD는 재활용품 수준에서 생각하고 Live는 '공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방송사는 콘텐츠 자체의 가격 이외에 지사파 방송물이 플랫폼에 올라감으로써 얻게되는 마케팅효과, 즉 보이지 않는 이익도 계산할 것을 요구한다.[/footnote]을 달라고 요구하자 지금까지 황금알을 낳을 것처럼 이야기하다가 돌변하여 'IPTV가 돈이 안된다'고 말하고 있다. '잡아놓은 고기에는 더 이상 떡밥을 안준다'는 이야기다.



    뉴미디어 정책의 실패
    ▲ 출처: "방통위 ‘IPTV 밀어붙이기’ 안된다." (경향신문)



    요즘 자주 SKT(하나TV), 심지어 KT도 콘텐츠 가격 등 때문에 IPTV사업을 접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버는 돈보다 비용이 더 많다면 접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때 이런 질문을 스스로 해본다. 그렇다고 통신사업자들이 광대역망을 깔지 않을 것인가? 망을 고도화하지 않을 것인가? 문제의 핵심은 망을 깔긴 해야 하는데 스스로 고도화 시킨 망에서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이웃집을 기웃거린다. 지상파 방송사보다 통신이 된 케이블과 방송이 되려는 통신이 서로 기웃대며 침을 삼키고 있는 형국이다.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 시장점유율
    초고속인터넷서비스 가입자 현황
    ▲ 출처: 2008 통신서비스 시장현황과 전망(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07 국가정보화 백서(한국정보사회진흥원)




    KT 등의 통신사는 종합유선방송이 가지고 있는 200만 가구가 넘는 케이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와 1200만이 넘는 유료 케이블 가입자가 탐이나고, 케이블은 VoIP를 통한 통신사의 전화가입자와 1200만이 넘는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탐이 난다. 또 기본상품에 콘텐츠 서비스를 올림으로써 가격인상을 통해 매출 증대도 기대한다.

    통신사의 입장에서 초기 "TPS 등의 결합서비스 상품은 기존 초고속인터넷 사업자들이 방송사업자 및 전송망사업자로의 가입자 이탈을 막기 위한 방어 전략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아 매출 확대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한다. 2008 통신서비스 시장현황과 전망(정보통신정책연구원, p.25)

    TPS, QPS 등의 결합서비스의 제공에 따라 초기에는 '결합서비스 이용이 확대되면 개별서비스로 존재할 때보다 더 많은 가입자를 유치하면서 요금수준은 하락'할 수 있으나 '결합서비스 제공에 따라 지배적 사업자의 독점력이 전이시켜 장기적으로는 요금을 인상시키려 한다'는 예측도 있다. 2008 통신서비스 시장현황과 전망(정보통신정책연구원, p.43)

    가만히 보면 방송과 통신의 융합환경에서 재주 부리는 곰이 지상파라면 돈을 챙기는 것은 디지털 케이블과 통신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재주부리는 곰은 두 사람이 돈을 놓고 싸울 때 슬쩍 어부지리를 노리는 정도 아닐까? 하지만 공짜 점심은 없는 법! 더 이상 성장이 제한된 광고를 재원으로 디지털 방송 전환도 해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브로치 효과, 어디까지가 성공이고 어디까지가 실패일까?

    최근 브로치 효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통신사들이 성장이 정체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IR을 해야하는데) IPTV를 이용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못생긴 여자가 선보러 갈 때 커다란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안에 뻥을 넣어 눈길을 얼굴이 아닌 가슴으로 시선을 끄는데 통신사들이 그랬단다.

    하지만 브로치 단 못생긴 여자처럼 IPTV를 해도 여전히 통신사는 성장이 제한적이라는 이야기다. 한 10년 지나야 IPTV에서 누적적자를 면한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두고보면 알 일이고, 더 문제는 만일 이것이 사실이고, 또 사전에 알고도 했다면 왜 브로치를 달고 나와 정부, 시장, 국민을 속이는 이야기를 했는지 묻고 싶다.

    지난 몇년간 IPTV 논쟁에서 구국의 영웅처럼 장밋빛으로 치장하고 콘텐츠 제작업체들을 사들이면서 미디어에 투자하고 산업을 발전시키겠다고 이야기 하다가 어느날 만났더니 가슴에 뻥을 넣고 브로치를 달았다고 빗대 이야기하는지 따져보고 싶은 것이다.


    Bird on the Rock



    티파니의 "Bird on the Rock" 같은 브로치를 달아 속였고, 또 이 장신구도 '가짜'라는 이야기다. 지난 6월 SKT 내부 세미나에서 발표를 했었는데 한 임원분이 '하나TV는 속아서 산 것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의견을 물었다. 하나로통신이 주인을 찾아 몸 값을 올리려고 하나TV를 부양한 것은 (업계에서) 모두가 아는 사실이고, 잘못 샀는지 잘 샀는지는 지금 판단하기는 어렵다. 사실 하나로통신을 단순히 하나TV 때문에 살 정도로 그들이 순진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잡은 물고기'라는 이야기다.


    지난 몇년 반짝이는 브로치를 가슴에 달고 다니던 통신사를 보고 보고 '콘텐츠 사용 댓가'를 이야기하는 지상파와 또 여기에다 대고 그것은 '뻥/가짜'였다고 말하는 통신사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해 봤다.

    통신사의 말처럼 정말 내일이 없다면 지상파는 단기이익을 챙기는데 열중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말이 값을 깍아 협상하기 위한 정략적 수준이었다면. 서로 엇갈린 길을 가는 것이니 협상이 잘될리가 없다. 서로 벼랑끝전술이다. 'IPTV법'이 통과되었다고 바로 내일 IPTV를 즐기기는 어려울 듯 하다. 이것은 지난 정보통신부, 현재의 방송통신위원회가 통신사들과 함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며 여론몰이와 시장을 요란스럽게 흔들어댄 댓가이기도 하다. 브로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기대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기대관리에 실패했을 때 '감정적 불만족'이 나온다.  그림출처: http://www.cauippa.re.kr/notice_01/download.asp?Qnat_Key=10&File_Key=1


    고객만족이론의 한 접근방식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IPTV를 어떻게 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겠다. 약 10년 후 누적적자가 해소되고 돈을 벌기 시작한다면 성공적인 것 아니냐고. "티파니 옐로우"(원석)이 "Bird on the Rock"이 되려면 연마와 가공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아직까지는 기대수준을 낮추는 작업이 필요한데 논리- 논리보다는 진정성이 낫겠다 -가 궁색해 보인다.


    특히 성공한 기업가들은 시장의 힘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회사에 대해 장기적인 계획을 세운다.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한 기간 동안 시장의 흐름을 거스를 필요가 있는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진출하고자 하는 새로운 부문에 세운 자회사가 성장할 수 있도록 돌본다. 기존 회사에서 나온 이익으로 그 손실을 메우는 등의 방법을 통해 말이다. 노키아는 벌목, 고무장화, 그리고 전선 사업에서 번 돈으로 17년에 걸쳐 전자 사업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삼성은 직물과 제당사업에서 번 돈으로 10년이 넘도록 전자 사업에 투자했다. (p.319)

    장하준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설파한 이 말이 여기에도 필요하다. 그렇다면 험난한 10년을 어떻게 같이 지낼지 머리를 맡대자고, 그리고 그때의 이익을 어떻게 나누자고 규칙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통신사에게 방송사는 한낱 CP(content provider)에 지나지않는듯하고 서로 신뢰하지도 않는듯 하다. 위 경향신문에 난 표를 보면 케이블TV가 시작되고 PP는 순손실이 갖고 있지만 SO들은 그렇지 않고, SO는 PP에 '슈퍼 갑' 행세를 하고 있다. 지상파가 자신의 미래가 이렇게 될까 두려하는 것도 사실이다. 갈 길이 멀다. 이렇게 될 가능성을 <미디어2.0>에서 기술지대라는 개념을 빌어 설명했다. pp.95~112를 볼 것. 

    첫 단추는 서로 장기이익을 위한 현재를 희생하고 상호신뢰를 쌓는 것이다. 또 이런 태도가 두개의 서로 다른 산업에서 의식적이면서도 자생적으로 나와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미디어2.0>에서 브르디외의 장 개념과 들뢰즈의 되기 개념을 빌어설명하였다. <미디어2.0>의 1장 미디어2.0의 풍경들은 이런 개념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하지만 내용 속에 이런 개념을 적절히 버무려 맛을 나는데는 실패한 듯하다. 미디어2.0을 쓰게된 동기를 볼 것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해도 같은 산업, 또 같은 조직 내의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기 전까지는 '공허한 울림'일 뿐이기 때문이다. 공감의 과정이 통신이 미디어가 되고 미디어가 통신이 되는 '융합의 과정'이다.


    (중략) ... IPTV사업을 준비중인 통신사 관계자는 "현재의 IPTV 망으로 실시간 방송을 대규모로 서비스하기는 어렵다"며 "해외에서도 IP망으로 실시간 방송을 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또다른 통신 전문가는 "IP망은 원래 유니캐스팅 망이라 멀티캐스팅 기능을 하는 데 CPU 파워가 딸린다"며 "해외에서도 IPTV 채널 쉬프팅(Channel Shifting) 때 안정성 여부가 도마위에 올라 있으며, 케이블TV와 같은 HFC(광동축혼합망, hybrid fiber coaxial cable)를 쓰는 버라이즌의 경우 안정적이나 다른 곳은 방송 사고가 잦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략) ...

    (중략) ... 통신업체 관계자는 "IP망으로 실시간 방송이 쉽지 않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KT가 IPTV의 실시간 방송을 강조한 탓에 방송에 준하는 무거운 규제덩어리로 만들었다"며 "메가TV나 하나TV 같은 프리IPTV를 하면서 가입자가 100만, 200만이 됐을 때 보편적 시청권 보장 측면에서 재전송 이슈를 건드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중략) ...

    브로치 효과 또는 잡은 물고기에 대한 다른 버전의 이야기다. "KT가 IPTV망으로도 실시간 방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해 온 과거"와 달리 이젠 IP망에서 실시간 재전송이 어렵단다. 이렇게 된데에는 언론도 책임이 있다. 사회적 의제에 대해 사실확인 등의 검증을 거쳐 의제의 적절성을 살펴 좋은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비판적이고 반성적 시각을 가져야 하는데 사건/사고 보도처럼 받아 적고 장밋빛 이야기를 되뇌이는데 급급했다. 기술적 중립성으로 포장된 IT/정보통신 관련 기사는 더 그렇다.[footnote]미주 1.과 동일한 부분을 볼 것. 연구소, 교수 등의 전문가 집단과 언론, 그리고 정부 내의 테크노크라시 및 통신사 등의 관계를 살펴보면서 푸코가 제기한 주제 - 지식과 권력의 관계문제를 심도 깊게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주제일 듯하다. <미디어2.0> pp.112~116을 참고할 것[/footnote]

    미주 ---------------------------------------------------------------------------
    2008/07/31 01:03 2008/07/3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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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2일 지식경제부에서 주관한 포럼 조찬모임에 참석을 하였다. 7:30에 역삼동 한 호텔에서 모인다고 하여 새벽같이 집에서 나왔더니 너무 일찍 도착하였다. 삼십여분 책을 읽고 있으니 한 분, 두 분 오기 시작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두가지 시각

    OSMU(One Source Multi Use)도 모자라 MSMU(Multi Source Multi Use)란다. 그리고 다른 여러 산업영역에서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를 사용해야 한단다. 오늘 아침 <엔터테인먼트 산업 환경변화 및 기술발전 트랜드>에 대한 발표에서 들은 이야기이다.

    미국 엔터테인먼트산업 Animation Heroes

    또 창의력을 가진 인재와 글로벌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지적하며, 미국식 뻔뻔한 Show Business와 한국식 부끄러워하는 Show Art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상상력 + Tech(기술) + Art(예술) + Business(사업) = ?"이 결합되어야 먼가 나온다는 지적도 한다.

    이런 지적이 맞다하더라도 접근하는 방식이 사뭇 다를 수 있다. <국내 엔터테인먼트산업의 현황 및 과제>를 구두로 짧게 정리하면서 변혁 교수(영화감독)은 영화를 예로 들면서 현재 미국 헐리웃이 성취하고 있는 결과와 한국의 결과를 단순 비교했을 때 빠질 수 있는 위험을 이야기 한다.

    미국의 경우 이미 Art(예술)이라는 과정을 거쳐, 많은 예술적 자양분 위에서 헐리웃 영화산업이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렀다면, 한국의 경우 이런 과정이 너무 짧았다는 의견이다. 한국 영화가 과거에 잘되다 지금 한계에 온 것이 아니라 (과장하면) 언제 잘되었던 적이 있었냐는 질문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영화산업의 지형을 보면 미국 - 인도 - 일본 - 프랑스 등의 순으로 제작이 활성화되어 있는데 이런 곳의 면면을 보면 국지적(하나의 국가) 수준에서 산업적 토대를 마련한 후 이것을 기반으로 세계화나 산업화에 성공했다고 한다.


    결과 중심적 사고 vs. 과정적 사고

    이렇게 과정을 놓고 본다면 현재의 한계 문제보다 전체를 보지않고 짧게 잘라(국가별 해당 산업의 현재 수준) 놓고 비교하는 것이 더 문제이다. 이런 이야기는 지난번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읽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하여 이야기 하면서 비슷한 기조로 이야기한 적 있다. 그리고 변혁 교수의 이야기를 유추해서 보면 영화에 있어서 Art(예술)을 해보기도 전에 너무 빨리 한국은 Business(사업)화 되었다는 측면도 있다할 수 있겠다.

    방송 콘텐츠를 기반으로 한 한류(hanryu)도 비슷한 이야기를 할 수 있지않을까 싶다. 예를 들면 1억어치 콘텐츠를 수출하다 10억을 수출하게 되면 10배가 성장했다. 그리고 10명이 보다 10명이 본다면 만배로 커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헐리웃 등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일 것이다. 그런데 호들갑을 떨고 가격을 올리고 투자를 하고 난리(over)를 친다. 한류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을 세운다. 이런 관심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관심이 바탕도 없이 웃자라게(조장, 助長) 해서 장기적으로는 경쟁력을 저하시킨다. 문화에 있어 단기적 부양책은 창조력을 위해서 '마약'을 먹는 것과 다름 없다.

    이런 것은 문화산업을 역사적 과정으로 보지않고 결과로 보고 문화를 투입 대비 산출량이 나오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정말 그랬다면 우리가 제조업 등에서 경험했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압축성장과 후발효과의 덕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주체역량, 핵심역량을 키우는 것이 우선되어야

    <세계시장 전망 및 주요국 정책방향>에 대한 발표가 PwC의 엔터테인먼트산업 2008 Outlook(?)을 이용해 있었다. 나는 시장규모를 숫자 그대로 믿지않는다. 새로운 산업의 전망은 항상 낙관적이지만 현실은 훨씬 냉혹하다. 이런 숫자를 가지고 사업적 영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정부의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것에 대해서 '냉소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실상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있어 후진국이라 할 수 있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아주 제한적이라 이런 숫자는 더 쓸모없어 보인다. 전략, 비전, 과제는 우리가 통제가능한 자원을 기반으로 불확실한 미래의 기회(Opportunity)를 좀 더 구체화시키는 일이다. 주체역량, 핵심역량이 일천할 때는 이것을 키우는 것이 먼저이지 숫자에 눈을 돌리는 것이 우선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세계시장 전망보다는 이것은 미시적으로 나눠 밸류체인(가치사슬, Value Chain)을 기준으로 살피는 것이 나아보인다. 영화를 비롯한 콘텐츠,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역사가 일천하고 이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시간'이라는 투입요소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우리가 후진적인 것이 사실이라면 과거 제조업 등에서 했던 전략, 따라하기나 후발효과(선진국의 경험적 사실에 기반한 전략모델 개발)에 기대볼 수도 있지않까 하는 생각이다.

    기기(Device) + 콘텐츠(Apple)로 성공한 애플모델을 만드는 것이 모임의 목표(유효한 성공모델 중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기는 애플 수준이어도 콘텐츠는 애플 수준이 아니다. 애플의 콘텐츠는 미국 쇼 비즈니스 전체가 들어가 있다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런 모델이 단기적으로 가능할까? 나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그럼에도 미국 쇼 비즈니스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현재의 밸류체인은 하나의 가능성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정적 사고 위에서 전략, 선택과 집중을 생각해야

    발표와 토론에서 몇번 회자되었던 단어가 전략,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다. 적어도 문화 현상으로서 엔터테인먼트산업에 대한 이해, 이것의 유통과 가치획득 과정을 보면 집중점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이미 반도체와 휴대폰 등의 산업을 성장시키기 위해 써왔던 규제를 통한 콘텐츠 창작 진흥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 틀안에서 필요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한 투자(자본, 정책)가 요구된다. 이런 규제틀 안에는 FTA 등의 시장개방 정책에서 스크린쿼터의 유지 등도 필요 하고 과거, 그리고 현재 다른 산업(예를 들면 디지털 융합기기 제조, 통신 등)의 활성화를 위해 암묵적으로 눈감고 있었거나 심지어는 정책적으로 후원했던 불법적 콘텐츠 유통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

    보호받지 못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는한 애플모델은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값싼 기기만 있으면 되는 구조의 지속일 따름이다. 우리는 또 UCC(User Created Content, User Generated Content)로 이야기되는 웹2.0의 기회(opportunity) 뒤에 숨어 있는 '고급 콘텐츠' 생산을 기반으로한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위기를 이해해야 한다.

    미국의 영화시장에서 Box Office보다 DVD 등의 after market이 더 커지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이와 반대로 after market은 사라지고 있다. 한국에서 전통적인 엔터테인먼트산업은 '착취'당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기술을 기반으로 한 산업에 의해서라면 과장된 표현일까? iriver로 대표되었던 레인콤의 성공신화, 초고속통신과 웹하드업체 등의 흥기는 가치가 '기술'을 통하여 불법적으로 전이되는, 그리고 그 결과가 다른 사업자에게 넘어가는 구조, '기술지대'의 작동원리를 보여준다. <미디어2.0 - 새로운 시간과 공간의 가능성>에서 이것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기술지대에 의한 가치의 이전

    <미디어2.0 p.108에 있는 표를 2008.6.18 가치체인 형태로 다시 그림>

    밸류체인을 보자는 것이 이런 의미이다. 가치가 엔터테인먼트산업의 진흥이 아닌 쪽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주는 조치가 필요하고 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조치들은 그동안 법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사실상 방치되어왔다. 극장에서 흥행에 실패하더라도 그 소위 웹2.0식의 롱테일(long tail)과 흔히 이야기되는 크로스 플랫폼(cross platform)이 되어 다음의 가치사슬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미국에 있다면 한국엔 없다. 미국은 Box Office 이후에 After Market으로 DVD, VOD, 케이블, 해외 등의 시장이 있다. 한국 영화, 콘텐츠의 구조적 취약성은 자국 내에서도 이런 시장이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에서도 기인한다.

    “Aftermarket” Performance

    <엔터테인먼트산업의 발전비전>과 <주요정책과제>가 추가적으로 이야기되었지만 아직 구체화된 것은 없는 듯하다. 모임의 목적이 이것이니 이 내용은 가장 마지막에 채워질 것 같다. 발전비전에서는 하드웨어, 콘텐츠 중심에서 벗어나 사용자의 요구에서 접근하자는 제안과 함께 제일기획에서 조사한 라이프 스타일 변화를 인용하면서 시작하였다.

    발표가 끝나고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의견을 개진할 기회가 주어졌다. 좀 말을 많이 한 듯 하다. 사회를 보신 이승룔교수께서 몇번 눈짓과 몸짓을 주셨다.

    언제나 정부의 정책과제 산출을 위한 모임에 가보면 목표를 정해놓고 절차에 따라 형식적으로 한다는 생각을 갖곤한다. 정해진 시간 내에 성과(결과물)을 내놓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현실론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음은 무겁다. 나는 전체 발표를 듣고 난 느낌과 평소의 생각을 엮어 총평식으로 이야기를 했다.


    상상력에 대하여 - 기초 인프라(교육 등)의 부족

    상상력과 Art(예술)을 한 쪽으로 묶고, 기술과 자본(Business)를 한쪽으로 묶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창의성/상상력을 기반으로 예술(문학, 영화와 같은)이 나오고 이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기술이다. 또 자본주의사회에서 기술은 사업적 가치가 있을 때 개발된다.

    상상력 -> 예술 -> 기술 -> 자본(사업)으로 가는 흐름은 "흘러넘침의 접근법(approach)"라고 한다면 자본(사업) -> 기술 -> 예술 -> 상상력으로 가는 방향은 "쥐어짜기의 접근법"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면 후자일 경우가 많고, 지금 이 자리의 논의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기업이 이런 접근을 하더라도 적어도 정부는 이런 접근을 피해 장기계획과 투자 위주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상상력은 감성과 사유 사이에 존재한다. 많은 경험적 데이터(감성)과 문화적, 철학적 지식(사유) 기반 사이에 상상력이 있다면 우선적으로 인문학, 교육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엔터테인먼트산업을 위한 상상력 이야기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식경제부, 가끔 방송통신위원회 정도의 수준에서 이야기 한다. 실질적으로 장기 계획, 엔터테인먼트산업을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교육과학기술부도 참여해야 한다.

    해리포터 이야기가 나왔는데 해리포터는 결과만 가지고 보면 대단하지만 이런 결과를 낼 수 있게 만든 영국의 문화적 기반을 살펴야 이해할 수 있다. 그 기반에는 BBC와 같은 높은 교육적, 역사, 철학적, 문학적 콘텐츠를 생산하여 무상으로 전국민에게 제공하는 곳이 있었다.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요한 방향인 쥐어짜기의 접근법은 (아도르노나 호르크하이머가 지적했듯이) 사업/경제적 이득을 기반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또 이 기술을 예술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되면 창의성은 쉽게 고갈될 수 밖에 없다. 자본(돈)을 주고 산 창의성은 창의적인 집단, 사람에게 마약을 먹이고 그 결과를 끄집어내어 궁극에는 창작자를 파멸적으로 만들 수 있다.

    창작자가 그대로 창작만 할 수 있는 환경, 실험적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전제되고 그 후 이에 기반한 산업이 서야 오래갈 수 있고 건강할 것이다. 이런 장기계획이 중요한데 사실상 계량화된 수치, 결과를 원하는 제도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슬프게도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나도 인정한다.)


    애플모델에 대하여 - 단순모델이 아닌 성공이유, 과정을 성찰해야

    애플의 성공에 대하여 이 자리에서도 이야기 했다. 애플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 + 기술로 이해하고, 디자인을 감성으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우리가 애플사례를 연구했는데 애플의 성공은 iPod + iTunes형태의 콘텐츠 소비채널을 연결한 것에 있다. iPod의 디자인 + 기술보다 성공을 위한 사실상의 차별성은 iTunes에서 나왔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레인콤의 iriver가 있었다. 그리고 이들도 iTunes모델을 만들려다 실패했다. 하나는 성공하고 하나는 왜 실패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애플의 성공 뒤에는 스티브 잡스라는 인물이 있다. 그의 디자인에 대한 중시보다도 그가 애플에서 쫓겨나 헐리웃에서 십여년을 보내면서 한 작업, 그를 통해 형성된 인맥에 대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가 토이 스토리 등을 만들면서 알게된 콘텐츠 산업(엔터테인먼트산업)의 특성이 무엇일까를 생각해야 한다. 그곳에는 저작권에 대한 보호, 적절한 수익배분 방식 등이 있다. 그런데 인터넷, 디지털융합기기 제조 등으로 오면 이런 부분은 기술발전의 걸림돌로 이해하는 측면이 팽배해 있다.


    규제에 대하여 - 산업발전의 필요악

    규제를 항상 선이나 악으로 볼 수는 없다. 특정 영역에서의 규제는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약이었던 규제가 독으로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있어 국내 콘텐츠산업의 보호를 위한 (스크린쿼터와 같은) 시장 규제, 디지털 환경에서 저작권보호를 위한 규제는 필수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철학적 근본주의적으로 본다면) 저작권에 대하여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산업적 입장에서 본다면 저작권이 필요하다. 다만 50년, 70년 등 과도하게 길어지는 것에 대한 적절한 조정이 필요하다.

    개인적 반대의 이유는 사실상 창작물이라는 것이 (기술을 포함한) 오랜 인류문화발전의 결과없이는 불가하다는 것이고 처음부터 이런 저작권이 있었던 것이 아닌 (전체 인류사에서 보면) 이것은 아주 최근의 현상이란 사실에 있다. 또 저작권을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어떤 음계, 어떤 글자, 어떤 사유의 조합을 특정한 사람/기업이 차지해버리고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금지하는 반문명적인 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적 측면에서 이미 음악, 문학, 영화, 방송 등이 자본화된 상태에서 이런 제도가 없다면 누가 콘텐츠를 생산할 것인가라는 딜레마에 부딪히고, 이에 대한 적절한 보상과 유인이 필요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미키마우스법과 같은 접근은 안되지만 적정한 기간(얼마의 기간이 적정한가가 문제이긴 하다.) 이를 보호할 필요성은 있다. 아니면 급진적으로 사회 전체가 이런 창작에 대한 지원과 보상을 제도화하고 모든 사람이 공짜로 향유하게 해야 하는데, 이 역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마찮가지이다.

    사실 이런 저작권에 대한 문제보다 현실적으로 시급한 것이 거대자본(통신플랫폼, 방송플랫폼 등)에 의해 콘텐츠 제작, 유통이 통제되면서 창작자의 자율성과 이들의 몫이 각종 '기술적 지대' 메커니즘을 통해 빼앗긴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정부의 정책적 노력 역시 거대 통신자본, 또는 산업자본의 기술지대의 보장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대기업이 잘되는 것 = 국익'이라는 공식과 GDP, 국민소득 3만불과 같은 총량적 접근 뒤에는 항상 이런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듯 몰아치며 무지한 국민을 이끌고 가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듯 하다. 나 스스로 시장주의자라고 생각하지않지만 이런 방식으로 개입하려면 개입하지 않고 있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에필로그

    산업자본(자동차, 반도체, 휴대폰, 백색가전 등)을 위하여 스크린 쿼터를 없애고 시장을 개방하자는 것이 정부이다. 어느 정도까지 보호받아야 할 것을 진흙탕 속에 던지면서 다시 진흥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지금 진흥의 목적이 엔터테인먼트산업 자체를 위해서가 아닌 산업자본과 통신자본 등을 위해서이다. 엔터테인먼트산업, 문화산업을 수단으로 쓰기 위해 '억지로 잡아 늘려(조장, 助長)'보려한다. 또 산업 이전에 문화로 보아야 하는데 이런 먼 길을 돌아갈 생각도 없다.

    역사적으로 문화적 르네상스가 계몽된 군주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진 적이 있다. 또 이를 본 따 문화가 아닌 기술과 자본을 위해 스스로 계몽된 군주처럼 행동하는 자들도 있기 마련이다. 현대의 관료화된 국가가 그렇다. 문화를 진흥한다고 하면서 계량화된 숫자로 문화를 바꿔 측정하기 시작하면서 진짜 문화를 진흥한다는 의도와는 달리 문화의 목을 메달아 전시한다.

    하지만 그 군주가 독재적인 방식으로 개입할 때 '계몽된 인민'은 문화적 르네상스를 통해 얻은 힘을 군주에게 돌린다. 계몽된 인간은 자유롭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2008/06/23 01:10 2008/06/23 01:10
    From. 치원 2008/07/05 17:49Delete / ModifyReply
    저도 현재로서는 스티브 잡스가 컨텐츠 산업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제조사 CEO 같습니다. (물론, 현재 디즈니의 최대주주이자 과거 픽사의 전설적인 CEO였지만... ) 단, 잡스 씨가 과연 이머징 마켓을 주의깊게 보고 있는 지, 아니면 승리에 도취해 있는 지는 지켜봐야 합니다.

    제조기업은 컨텐츠의 급상승으로 인한 과거의 Value Chain의 변화에서 위기를 느끼고 있고, 마찬가지로 방송기업도 똑같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코드만 잘 맞는다면 제대로 된게 나올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된 거죠.

    현장에서 느낀 바는 아무리 가진게 많은 포털이라도 위기감이 없다면 쉬운 것도 달성할 수 없는 것이고... 위기감이 진정 있다면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입니다. 단, 위기감과 무력감은 정말 다른 것입니다. ㅡㅡ;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김치원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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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2.0 소개 기사
    media2.0, (2007/11/13 23:29)
    <미디어2.0>에 대한 소개 기사를 모았다. 대중적이지 않다고 한다. 너무 어렵다고. 책도 안팔린다. '자기이해'로 만족하고 별 기대는 없었지만 그래도 초판으로 찍은 500권은 팔려야 ...  T.T 
    원래 이런 책은 많이씩 안팔리고 꾸준히 조금씩 팔린다는 출판 전의 편집자의 말이 생각난다.
     
    "출판사의 Long Tail 전략 - 다품종 소량생산": 콘텐츠산업의 미래는 가끔의 대박보다는 이런 쪽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자세히 보려면 이미지를 누르거나 원문기사 링크를 누르면 된다.

    출판사 롱테일 참고자료: 베스트셀러 내면 망한다

     
    미디어 오늘 서평

    "새로운 미디어 트렌드 ‘2.0’ 현상을 말하는 데 올드미디어 종사자라고 빠질 순 없다. 하지만 다가올 변화와 위기(?)에 비해 이런 고민의 절대량이 적기도 하거니와 그마저도 3자적 입장에 선 듯한 분석이 많았다."

    기사의 내용 중 "3자적 입장에 선" 분석이라는 말이 있다. 이렇게 쓰는 것은 객관성을 담보하려는 것일까? <미디어 삼국지>에서 느꼈던 차이가 이런 것일까? 글 쓰는 스타일과 서로 다른 경험, 서 있는 위치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밖에서 보는 것보다 모든 분들이 "실제적 고민들"을 많이 한다고.
     
    한경비즈니스 서평
    한경 비즈니스 서평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투명한 사회 - 비판, 또는 반성
    <미디어2.0>을 쓰면서 주석을 많이 달은 이유는? 반성 없이 써대는(심하게 이야기하면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는) IT 관련 기사, 정부기관들의 연구보고서 등에 대한 항의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그냥 이러면 안된다는 이..
    미디어2.0 보도자료 내용이다. 현재는 언론보도 용도라기보다는 인터넷 쇼핑몰용 책 소개자료로 쓰이는 것 같다. 아래에 있는 <미디어2.0> 차례에 기존에 쓴 글들 중 관련된 글들을 링크하였다. 관련된 글들은 집필자료들로 활용되..


    미디어2.0 - 선택과 집중

    <미디어2.0>을 쓰면서 인터넷에서 철학자 몇 사람의 사진을 찾아서 붙여놨는데 뺐으면 좋겠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라 제외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남아 이곳에 그 자취를 남긴다. 아래는 출판사에 보낸 초고에 대하여 온 의견이고..


    미디어2.0을 쓰게된 동기

    지난 4월 <미디어2.0> 초고를 썼을 때 차례이다. 몇번의 조정을 걸쳐 차례와 부제가 바뀌었다. 처음에 부제는 '컨버전스 시대의 미디어 전략'이었는데 최종적으로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이 되었다. 처음 썼던 각장의 소..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책을 썼다.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이란 제목이다. 지난 1월부터 쓰기 시작하여 5월정도에 끝냈는데, 중간 중간 내용 수정과 편집을 하는데 시간이 좀 흘렀다. 다음은 <코드 한 줄없는 IT 이야기>, <웹..


    융합환경에서의 콘텐츠 산업과 기술지대의 발생

    이글은 미간행 에세이 <미디어2.0>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한 것으로 <정보처리학회지>(2007.5, 제14권 제3호)에 기고한 글이다. 이곳에서는 학회지에 실린 내용 중 잘못된 곳을 바로 잡았다.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디지털 콘..
    2007/11/13 23:29 2007/11/13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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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 삼국지를 읽고
    book, (2007/11/11 15:41)

    미국으로 출장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 『미디어 삼국지』(김영환, 삼성경제연구소, 2007)를 읽었다. 저자는 필자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위치에 서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읽고 있다. 같다는 것은 저자나 필자는 모두 SBS 미디어 그룹의 우산 아래 있으면서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를 겪고 있다는 것이라면, 다른 위치는 '조직 관리와 전략을 담당하는 SBS 보도본부 특임부장'과 SBSi에서 전반적인 뉴미디어 서비스 전략을 담당하는 미디어기획팀장으로서의 위치이다. 똑같은 현상을 보고 있지만 우리 사이에는 서로 다른 결론과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보인다.

     

    미디어 삼국지 - 10점
    김영환 지음/삼성경제연구소

    이런  차이를 조직의 건강성이라고 애둘러 말할 수도 있겠지만 현재 서 있는 기반이 다르다는 것과 함께 과거의 개인적인 경험들의 상이함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법학을 공부하고 기자로 살아온 저자와 철학을 공부하고 IT 및 인터넷 업계에서 사회생활을 해온 필자 사이에는 책의 내용을 넘어서 글을 써가는 방법, 형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느껴진다. 『미디어 삼국지』의 저자가 어떤 사건과 거리를 두며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하고 자신의 의견을 조심스럽게 주장한다면, 필자는 『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에서 사건에 논쟁적으로 개입하고 의견을 강하게 주장한다. 또 뉴스의 생산과 유통에 집중된 저자와 달리 필자는 뉴스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콘텐츠 전체의 유통방식에 생각을 집중하고 있다.
     
    사실 필자의 『미디어2.0』 머리말에 언급한 "우연히 뉴스 관련 전략수립 과정에서 국외자로서 짧은 의견을 내게" 한 분이 『미디어 삼국지』의 저자이다. 좀 단순화해서 말하면 필자는 TV방송(전통미디어)이 인터넷 포털과 현재와 같은 뉴스 생산, 유통방식을 가지고는 절대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주장한다. YTN이 아닌 이상 24시간 뉴스를 내보낼 수 없다는 편성상의 한계와 더불어 플랫폼의 폐쇄성, 전통적인 방송/신문 등이 추구하는 저널리즘과 당파성(입장) 등이 개방된 뉴스 플랫폼인 포털과의 경쟁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런 경쟁환경을 떠나 경쟁의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자로서 저자의 고민과 국외자로서 필자의 상황판단이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상황판단이 맞다고 하더라도 고향을 뒤에 두고 떠날 수 없는 저자에게 답답함을 더했을 뿐 아무런 도움도 주지못했으리라. 그런데 필자는 저자의 책을 읽어보면서 상황판단이 비슷함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저자가 제시하는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해서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한 언론 기업이 TV와 신문, 인터넷, 잡지 등 다양한 매체를 운영하고 있을 경우 각 매체별로 필요한 뉴스를 생산하는 조직(뉴스룸)을 별개로 둘 것이 아니라 모두 하나로 합쳐서 원소스 멀티유스를 구현하자는 아디어가 통합뉴스룸이다." '하지만 이것을 구현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이렇게 되면 기자는 여러 매체를 넘나드는 이른바 멀티미디어 기자로 활동하게 된다. 하지만 신문기자나 방송기자들이 멀티미디어 기자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인적/물적 투자가 요구된다. 다수의 뉴스룸 운영에 비해 효율성이 높더라도 대규모 투자는 불가피하다. 통합뉴스룸이 제대로 기능하려면 기자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 기자 수를 대폭 늘리는 것은 경영진으로서 결심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소비자와 매체 환경의 변화는 통합뉴스룸을 요구하지만 이것은 자칫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한 수술과도 같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 새로운 기회를 잡고자 하는 언론사라면 통합뉴스룸 이슈를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을 보면  『미디어 삼국지』의 저자는 통합뉴스룸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하는듯 하다.

    하지만 저자도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의 언론 소유와 신문.방송의 겸영 금지'는 외국의 선진기업(아니 거대 미디어 그룹)에서 추구하는 통합뉴스룸이 한국적 현실에서는 목숨을 건 일이다. 이것을 알고 있는 저자는 미디어 비즈니스세력(통신사나 포털)이나 개인 진영(블로거 등)과의 동거라는 '이상적 모델'을 그려보고 있다.

    이런 미래상이 좋아 보일 수는 있어도 요원한 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미디어 비즈니스세력들 중 뉴스 콘텐츠에 있어서 (온라인에서 그리고 점점 더 오프라인에서도)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포털들은 스스로 미디어가 되어 '법적, 사회적 규제'를 받기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이런 융합은 어려울 것이다. 또 개인적으로는 네티즌들의 90% 정도가 포털을 통해 뉴스를 소비하는 현실이 계속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약간의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포털의 뉴스 서비스는 이솝우화의 왕이된 까마귀 이야기처럼 전통미디어의 콘텐츠를 모아 붙인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아 붙인 까마귀가 가장 아름다운 새로 뽑힌 것과 같은 효과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사실을 알게된 새들이 각자 자기 깃털을 뽑아가버리자 초라한 까마귀의 모습이 드러난 것 또한 사실이다. 현재의 상황은 이런 역관계를 알고 이것을 뒤집으려는 전통미디어들의 대응, 특히 신문사들의 뉴스뱅크 콘서시엄과 같은 대응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뉴미디어 분야에서는 아직도 화산이 폭발하고 격렬한 조산작용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이 계속 유지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또 개인 미디어(블로거 등)는 그 잠재성에도 불구하고 사회적인 의제를 이끌어내는 힘과 신뢰성에 있어서 갈 길이 멀다고 하겠다. 사건/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이 웹에 캐스팅한 콘텐츠가 갖는 신속성이란 우연에 대한 막연한 기대일 따름이다. 미국의 Current TV와 같은 시도들을 보면 블로거라기 보다는 전통적인 프리랜서들(또는 PCC, VJ 등으로 불리는 직업적 콘텐츠 생산자들)이 시장의 변화에 따라 이동한 측면이 크다.

    블로그와 같은 개인 미디어의 '위대함'은 전체를 향해 개인이 자신들의 주장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차원일 따름이다. 언젠가 전체가 개인을 위해 개인이 전체를 위해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세계의 가능성, 다양성과 투명성의 가치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 실릴 콘텐츠가 의미가 있을 것인가, 사람의 주목을 끌 수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개인 미디어의 미래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오마이뉴스 패러독스'를 통해 저자도 지적하고 있다. "오마이뉴스의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기사의 정확성과 신뢰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더 크게 요구받게 되고, 이를 위해서는 전문 편집자의 게이트 키핑(gate keeping) 기능이 필요해진다. 이로써 시민기자의 기사가 메인 페이지톱에 오르는 기회는 줄어들고 상근기자의 비중이 높아진다. 시민언론이 성공하여 언론으로서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전통 언론의 발목을 잡는 신뢰성의 시험에 들게 되고, 순수한 시민언론으로서의 색채가 흐려지면서 시민기자들의 참여도가 낮아져 영향력은 다시 하강 곡선을 그린다. 이를 시민언론의 패러독스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전통적인 미디어의 세계가 흔들리고 있으며, 곧 망할 것처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측면이 강한데 사실 언제나 기술에 의해 매체(미디어)가 뒤바뀐다고 해서 과거의 모든 것이 없어진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전통미디어는 뉴미디어를 만나 스스로 새로워지기도 하고, 뉴미디어가 전통미디어의 양식을 흡수하면서 변하기도 한다. 포털의 많은 경영진이 전통미디어의 기자출신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들을 데려다 무엇을 할까 생각해보는 것도 이런 사실을 이해하는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저자가 '시민언론의 패러독스'를 이야기할 때 필자는 그들도 미디어의 세계를 이룰 여럿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에 더 강조점을 두고 이해한다. (필자가 출장 중 쓴 유튜브의 미래에 대한 글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 서있다. 호들갑 떨지말고 냉정하게 보자는 것이다.)

    '통합뉴스룸'이 힘들고, 미디어 비즈니스 세력이나 개인 진영과의 연대가 진화 중인 미디어 세계에서 불명확하다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그냥 안된다고 말하고 '앉아서 죽자'는 것인가? 필자는 본원적인 경쟁력을 기르자는 기본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뉴스 콘텐츠를 잘만들라는 것인데 여러 매체에서 활용할 수 있는 뉴스, '원소스멀티유즈'류의 이야기는 아니다. 짧은 토막기사, 문자중계하듯 이어지는 뉴미디어의 휘발성에 대응해서 심층적인 취재와 명확한 분석,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는 기사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방송 뉴스 자체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기자의 경쟁력, 뉴스의 경쟁력은 모두 이곳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원소스멀티유즈의 문제 등의 유통의 문제는 달리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 기자가 통합뉴스룸을 만들어 모든 매체에 대응할 수 있는 기사, 콘텐츠를 생산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방송된 원재료(생산된 뉴스)나 방송은 안되었지만 취재된 내용을 이용하여 이것을 가공하거나 유통하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의미의 기자가 불필요할 수도 있고, 다른 조직이 더욱 효율적일 수도 있다. 현재의 수준에서는 '멀티유즈'를 위한 전문조직, 기능조직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멀티유즈의 문제는 아주 기술적이거나 기능적인 요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거대미디어그룹을 금지하고 있는 우리의 수준에서는 통합과 다른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서로 다른 양식으로 생산된 콘텐츠를 융합하는 것보다는 방송된 콘텐츠, 또는 씌어진 신문기사의 재사용(reuse)이 현재 요구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아직까지는 방송기자에게 취재,촬영도 하고 신문기사나 잡지기사를 쓰라고 요구하지 않고 있고 이것을 요구해도 표출할 매체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해외사례를 보면서 이런 요구들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저자의 지적처럼 이렇게 해서 성공한 사례는 아직 없으며 앞으로 그렇게 되기도 힘들어 보인다는데 문제가 있다.)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할 수 있지않는가라고 묻는다면 그것은 순진한 발상일 뿐이다.

    저자의 지적처럼 '멀티미디어 기자'로 변신하는 것은 쉽지않기 때문이다. 방송에는 장기간 만들어진 방송의 양식이 있고, 신문에는 신문의 양식이 있는 것처럼 인터넷에는 인터넷의 양식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IPTV나 DMB가 활성화된다면 그곳에서는 기존의 미디어와 같으면서도 다른 어떤 형식, 문법을 만들어 낼 것이 틀림없다. 지금의 웹이 그러한 것처럼. 차이와 한계를 인정할 때 이것을 넘어설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잘하려는 노력보다 현재 잘하는 것에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탁월성을 끌어내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일은 아닐까?

    저자가 뉴스, 미디어의 세계/관점에서 벗어나 전체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측면에서, 전통적인 가치판단(저널리즘)이 담겨진 뉴스에서 벗어나 좀 더 추상화된 콘텐츠/디지털 콘텐츠의 측면에서 사태를 바라보았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 있다. 걱정과 위기, '미래가 불안한 기자'의 시각, 집단적 동류의식에서 벗어나야 전체의 변화를 좀 더 심도깊게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이다. 통합뉴스룸은 전세계적인 저널리즘/미디어의 위기에 대한 올바른 처방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집단적 환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어떻게 슈퍼맨/원더우먼이 될 것인가?

    방송의 본원적 경쟁력, 또는 기자들이 생산한 뉴스 콘텐츠의 본원적인 경쟁력이 전제되면 다른 선택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방송을 통해 만들어진 강력한 뉴스 브랜드를 통해 뉴미디어에서의 영향력을 강화할 수도 있고, 이 브랜드 우산 아래 현재 발전 중인 온라인 독립언론 매체를 흡수할 수도 있고, 저자가 이야기하는 개인참여의 활성화를 이끌 수도 있다. 뉴스룸 아래의 통합이 아닌 브랜드 아래의 통합을 추구할 수도 있지않을까?

    저자가 말하는 "생존을 위해서는 성문을 열고 광야의 전투에 나서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라는 인식에서 한걸을 더 나가 성을 가치를 새롭게 살펴봐야 할 필요도 있다.  생존을 위해 진지로서의 성의 가치도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광야의 전투에 보급과 새로운 병사, 휴식처를 제공할 수 있는 튼튼한 성을 갖고 있다면 누구보다도 상대적 우위에 있는 것이다.

    기동전과 진지전을 모두 생각하고 연구해야 한다. 광야의 적을 찾아 성을 버리고 나가는 장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면 법적, 제도적 보호막인 성을 높이 쌓는 전략도 유효할 수 있다. 적어도 이런 보호막이 서서히 제거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을 필요도 있을 수 있다. "성을 열고 광야의 전투로 나서야" 한다는 인식은 잘못하면 적(경쟁상대)의 논리에 빠질 위험도 있다. 광야에서 거칠게 자란 상대의 입장에서야 이렇게 나온다면 손뼉을 치면서 반길 것이다. 상대들은 지금 성을 버리고 나와 정정당당하게 겨루자고 하는 상황 아닌가? 하지만 상대의 전쟁기계(자본주의적인 비즈니스)가 더 강하다는 것은 저자도 아는 상황이다.

    결국 필자는 저자의 상황인식에 동의하지만 그 해결책, 또는 대응방식은 아주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전통미디어의 작법(성을 위주로한 공성전)으로도 대응할 수도 있고, 광야에서 말을 타고 싸우는 기동전식으로도 대응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을 가지고 있다면 성을 버리는 것이 '시대의 미덕'처럼 떠벌이는 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굳이 성을 버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 처지가 틀린 해외의 거대 미디어 그룹을 따라해야할 이유도 없다.

    그저 원칙을 견지하면서 긴 호흡으로 현재의 변화들, 사건들을 살필 필요가 있는데, 지금보면 혁명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예기가 꺽이거나 여러개들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필자는 사태를 그렇게 보고 있다. 아니, 스스로 그렇게 보려고 노력한다. 너무 성마른 논리들이 횡횡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데도 말이다.

    물론 변화의 시도들을 전혀 하지 말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누구보다도 변화를 열망하고 있다. 그런데 싸움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따라서  최후까지 살아있기 위해서는 힘을 비축하고 이해의 끈을 굳건히 할 필요가 있다. 또 개인들(기자들, 특정조직)의 위기감이 조직 전체(드라마, 예능, 교양 등의 다른 콘텐츠/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조직)를 감염시키지 않도록해야 한다. (뉴스도 포함된다고 생각하지만) 전체로 보면 더 많은 윈도우와 기회가 오는 것일 수 있고 아직까지는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고 하기 나름인 상황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그 자체는 미디어 사업자가 아니지만 각종 미디어 단말기(device)를 만드는 전기, 전자 회사들은 향후 미디어 정책과 업계의 향방에 결정적인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이들 중 많은 업체들이 이미 미디어 사업자이거나, 미디어 사업자가 되길 꿈꾸고 있다. 필자는 가장 잠재력이 높은 세력, '보이지 않는 위협'을 꼽으라면 이들을 말할 것이다. 이들은 개방된 네트워크 환경에서 언제든지 미디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과의 우호적인 관계설정 또한 전략적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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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저자의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어도 그 정도(고민의 강도)를 알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런 것은 서로가 느끼는 위기감에도 해당될 것이다. 저자의 고민 중 한조각이라도 나눠들 수 있었으면......

    필자는 현재의 상황을 보면서 이제 큰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상대들도 별 두려울 것이 없는 살과 피로 된 사람들이며 똑같이 새로운 상황에서 우왕좌왕하며 어리숙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위협은 두려움에 찬 비명처럼 들린다. 하지만 우리가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말을 갖았다면, 우리의 말들은 성안 갇혀 있어 달리는 법을 잊은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인가?

    2007/11/11 15:41 2007/11/1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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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2.0 보도자료 내용이다. 현재는 언론보도 용도라기보다는 인터넷 쇼핑몰용 책 소개자료로 쓰이는 것 같다. 아래에 있는 <미디어2.0> 차례에 기존에 쓴 글들 중 관련된 글들을 링크하였다. 관련된 글들은 집필자료들로 활용되었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자료는 링크이외에 디렉토리(메뉴)의 Activity, Digital Content Platform을 보면된다.

    책을 내면서, 낸 이후 <미디어2.0>과 관련하여 쓴 글들은 모두 media2.0으로 모았다. 미디어2.0은 2006년 이후 만든 발표자료 등을 기반으로 2007년 초 약2~3개월간 정리한 글들이다.
     

    커뮤니케이션북스 - 미디어2.0 신간안내 보도자료

    커뮤니케이션북스 신간안내 보도자료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미디어2.0

    뉴미디어와 올드 미디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디지털 콘테츠 플랫폼 전략은 무엇인가?
    급격한 변화 속의 미디어 미래를 모색해 본다.


    도서명: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지은이: 박종진
    분야(분류): 사회정치>신문방송
    출간일: 2007년 9월  29일   판형: 신국판
    제본: 무선철    면수: 185쪽     가격: 10,000원        ISBN: 978-89-8499-884-1
    홍보담당: 정경환 (3700-1202, 017-288-8867)   편집담당: 정승원 (3700-1268)



    200자 핵심요약-----------------------------------------------------------------------------
    이 책은 방송과 통신 융합이 가져오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현상들을 분석한다. 그리고 방송과 통신의 결합, 서로 다른 미디어 플랫폼의 결합, 영상과 데이터의 결합에 의해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또 일어날 것인지, 그리고 여기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다양한 미디어 전략을 제시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미래 뉴미디어 산업, 서비스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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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미디어와 올드 미디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유비쿼터스 시대의 디지털 콘테츠 플랫폼 전략은 무엇인가?

    급격한 변화 속의 미디어 미래를 모색해 본다.

     

    이 책은 방송과 통신 융합이 가져오는 다양한 문화 현상들을 분석하고, 새로운 뉴미디어 환경에서 취할 수 있는 전략으로서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모델을 제시한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미래 뉴미디어 산업, 서비스의 발전 방향을 모색해 본다.


     

    기획 의도

    저자는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고찰하고, 이런 갈등들이 미디어라는 문화현상에 대한 기술결정론과 경제주의적 접근 시의 문제점임을 적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방송계, 통신계, 더 나아가 가전업체 및 인터넷업계는 서로 다른 세계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있어 공통된 논의 기반의 확보와 투명한 의사소통구조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서로 다른 전략부분에 대한 담론적 분석을 하면서 방송(콘텐츠)가 뉴미디어 환경에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전략으로서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모델을 제시하고, 이를 위해 SBS 미디어 그룹의 인터넷부분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SBSi(sbs.co.kr)가 취하고 있는 전략에 비춰 Web2.0 및 융합 환경에 맞춰 도출, 정리하여 이해를 돕고자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미디어2.0’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마케팅적 용어가 아닌 현실적/이론적 기반을 만들어 융합 환경에서의 산업, 서비스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다.

     

    주요 내용


    첫째 장은 융합 환경에서의 담론(談論)을 분석한 후 전략개념을 제시하고디지털 콘텐츠=플랫폼의 가능성을 살피고 있다.

    둘째 장은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digital content platform) 사업과 서비스 전략을 다뤘다. 특히 전통미디어와 인터넷에 기반을 둔 미디어닷컴의 관점에서 미디어 융합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마지막 장은 정보양식의 변화와 미디어의 미래를 예견해 본다.

     


    추천사

    방송은 이권산업, 장치산업이었던 시절의 천하태평에 의해 취해, 프리미엄 콘텐츠 플랫폼이라는 진정한 DNA를 잊고 있었다. 우리 방송에게는 미디어2.0이란 것이 단순히 미래 예측이 아닌 이미 현실이라는 자극이기도 하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새로운 미디어 스타일, 그리고 새로운 세계. 이 세계에서 펼칠 로드맵은 앞으로가 더 재미있다. 이 책은 그 시작의 선언이다.

    김국현

    (마이크로소프트/플랫폼전략조언가

    2.0 경제학 저자)



    저자 소개

    박 종 진

    1969년 충남 논산 태생으로 고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정보통신주식회사에서 포인트 카드 서비스 기획 및 제휴, 지역정보 포털 및 웹포스(web-POS) 기반 양방향 서비스 기획 등의 책임을 맡았다.
    2003년부터 (주)SBSi에서 정액제 사업과 신규 서비스 기획을 담당했고, 현재 sbs.co.kr, SBS IPTV 포털, SBS 무선인터넷 포털, 휴대형 기기 등 뉴미디어 전반에 걸친 전략 수립과 서비스 기획, 디지털콘텐츠플랫폼사업의 책임을 맡고 있다.
    2004년 고려대 경영대학원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면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동영상 검색, 영상과 데이터의 결합, 시맨틱웹 등과 스피노자, 알뛰세르, 푸코, 들뢰즈 철학에 관심이 많다.


    이 글의 차례

    추천사
    머리말


    1장_미디어2.0의 풍경들
    경계 없는 세계, 위기론과 대세론 → 관련글 [서론]

    올드미디어, 계속되는 진화
    디지털 콘텐츠 유통 플랫폼이 된 뉴미디어
    가족유사성과 집단지성, 미디어2.0 지도 만들기
    공간의 확장과 시간의 이동
    기술주의와 시장주의 → 관련글 [2. 통신•방송의 융합과 서로 다른 규칙들, 6. 융합, 미디어버블, 그리고 콘텐츠 산업]
    키치문화와 B급 콘텐츠  → 관련글 [3. 방송과 통신의 융합, 그리고 연계형 서비스] 논문에서는 이장의 중심주제인 키치문화와 B급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IPTV에 대한 부분만 있음미키 마우스가 된 스티브 잡스와 팟캐스팅 
    콘텐츠 왕, 디지털 콘텐츠=플랫폼
    벽으로 둘러싸인 강자들의 전쟁터


    2장_컨버전스 시대의 미디어 전략
    컨버전스의 정치경제학 → 관련글 [4.융합의 정치경제학, 5.융합환경에서의 콘텐츠 산업과 기술지대의 발생]계열화의 논리와 배치의 문제

    융합 환경과 ‘전통적’ 전략 개념의 확장
    미디어 도시, 오래된 집들과 새 집들 → 관련글 [신구매체가 함께 공존하는 미디어 매트릭스]
    변화를 향한 위험한 시도 
    시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콘텐츠
    규모의 경제에서 범위의 경제로
    폐쇄된 플랫폼들과 유목적 콘텐츠의 출현 → 관련글 [7. 결론 -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검색, 디지털 콘텐츠가 아닌 데이터베이스 → 관련글 [동영상 검색 기반 서비스 로드맵]플레이어, 데이터베이스와 결합된 영상
    아우라의 부활과 참여·공유 문화
    디지털 콘텐츠 에코시스템 안에서의 진화


    3장_정보양식의 변화와 미디어의 미래
    인터넷에 의한 정보양식의 변화

    미디어의 미래 → 관련글 [정보의 깊이와 멀티미디어 인터페이스 양식의 변화], '하이퍼비디오와 영상의 미래'와 관련있는 글임
    미디어2.0의 정보양식


    미주 → 웹에 올려져 있는 참고자료에 대한 링크 제공


    2007/10/19 23:56 2007/10/19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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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2.0

    지난 4월 <미디어2.0> 초고를 썼던 것이 몇번의 조정을 걸쳐 차례와 부제가 바뀌었다. 처음에 부제는 '컨버전스 시대의 미디어 전략'이었는데 최종적으로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이 되었다.

    처음 썼던 각장의 소제목들은 '철학'적 은유/개념들로 되어있었다. 개념들이 사용된 곳/사람을 살펴보는 것도 책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되기 - 질 들뢰즈
    지도 그리기 - 안토니오 그람시(?)
    가족유사성 - 비트겐슈타인
    키치 - 장 보드리야르
    계열화, 배치 - 질 들뢰즈
    기술지대 - 에르네스트 만델
    전략 - 레닌, 알뛰세르, 푸코, 들뢰즈
    막대구부리기 - 레닌, 알뛰세르
    유목 - 질 들뢰즈
    아우라 - 발터 벤야민
    (미디어의; 생활세계의) 식민화 - 하버마스
    정보양식 - 마크 포스터

    4월에 쓴 초고를 출력하여 두달정도 뒤척이다가 2부를 제본하여 한권을 이재현교수(서울대 언론정보학과)께 보내 "後學이 현장에서 느낌 것들을 정리한다고 ‘발버둥친 것’을 어여쁘게 생각해 拙稿를 한번 읽고 글로써의 가치가 있는지를 판단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다음은 6월 18일 이재현교수께 보낸 편지 내용 중 일부이다.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머리말에 써놓은 것도 있지만 사실은 통신과 방송이 융합되는 환경에서 방송계가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의 이면에서 기술에 대한 두려움과 통신계에서 기술을 이용하여 이런 두려움을 ‘동원’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좀 더 ‘투명하게’ 상대방의 논리구조와 기술적 배경이 아닌 사회경제적 배경과 더 나아가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이런 상황을 타개하는데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제가 몸 담고 있는 회사에 미약하지만 제가 알고, 생각하고 있는 개념들, 전략들에 대해 명확히 알리고 공유해야 하겠다는 것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이런 쪽의 학문과는 거리가 먼, 스스로는 ‘철학도’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제가 하는 이야기가 맞는지 아니면 아전인수로 해석해 객관적인 상황을 더욱 어지럽게 만드는 것인지를 누군가에게 확인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교수님이 떠오른 것은 작은 인연과 함께 책을 쓰면서 교수님이 번역한 몇 권의 책들과 논문을 살펴보면서, 적어도 교수님이 제도적으로 나뉘어져 있는 학제간의 울타리를 넘어 잘 살펴주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판단도 작용을 했습니다. 주제 넘은 판단은 관대히 용서해 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글을 통해 ‘자기정리’를 완료했다고 생각하고 PC 구석에 처박아두려고 했습니다만, 짧지만 밤을 새며 보낸 시간에 대한 아까운 마음이 있어 교수께 부탁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북스에서 전화를 받았다. 관심이 있으니 어떤 내용의 책을 쓸 것인지 간략히 적어보내란다. 그래서 정리했던 초고를 보내줬다. 그러면 끝인줄 알았는데 책의 구성에 대하여 여러가지 조언을 해주었고, 나 또한 그런 지적이 맞다싶어 구조와 제목 등을 바꾸었다. 제목들이 출판사의 '권고'로 좀 더 알기쉽게 바꾸었다. 너무 철학적이라 책이 안팔릴 것 같다고, 제목에서는 이런 것들을 빼고, 내용/시각은 (의미가 있으니) 그대로 살리자는 주문부터 독자들을 편하게 하기 위하여 영어로된 내용/사진(사이트까지도)을 번역해달라는 요청이다.

    아래는 4월의 초고에 추가로 마지막 장인 '미디어2.0과 정보양식의 변화'를 넣어 6월에 커뮤니케이션북스에 전달한 원고의 내용이다. 4월 초고를 본 이재현교수께서도 몇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장을 나누는 문제와 길이 등에 관련된 것이다.


    2007년 6월 차례

    이렇게 보내졌던 차례가 편집진들의 충고 및 자발적인 판단에 따라 책의 차례와 소제목을 바뀌었다. 하지만 이것에 문제가 있다면 전적으로 나의 책임이다. 이런 과정에서 수고해주신 커뮤니케이션북스 정승원님께 감사드린다. 메일과 전화로만 이야기하고 아직까지 서로 얼굴을 보지못했다.

    다음의 마지막으로 수정한 차례이다. 여기에서 제3장이 내용에 비해 소제목이 많아 최종 편집본에서 간략히 3개의 소제목으로 줄였다. 따라서 최종본(출판본)은 이와 약간 다르다. 4월 초고의 페이지와 최종본 페이지를 맞춰보면 어떻게 소제목이 변했는지를 알 수 있다.

    미디어2.0 최종 차례
    2007/09/26 22:44 2007/09/26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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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미래


     


    7. 결론 -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앞으로 다가올 디지털 기술에 의하여 재매개된 뉴미디어의 세계는 콘텐츠가 반드시 방송, 통신과 같은 현재의 주류매체 또는 산업에 종속될 필요성이 없다준다. 블로그, 웹캐스팅 등과 같이 만들어진 콘텐츠 자체가 별다른 제약없이 미디어가 되어버릴 수 있는 세계가 온 것이다. 왜냐하면 콘텐츠가 디지털화 되면서 특정 미디어에 종속된 형태에서 벗어나 모든 미디어와 결합될 수 있는 자율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코노미스트(economist.com)의 예측처럼 구글과 같은 뉴미디어와 비교하여 올드 미디어인 할리우드(Hollywood)의 콘텐츠 산업의 어렵다고 하더라도 ‘고통은 잠시뿐이고 필름은 영원할지 모른다(PAIN is temporary, film is forever).’ 왜냐하면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가 아주 극적으로 콘텐츠 유통에 있어서 전국적인 극장체인, 방송사, 통신사, 월마트(Wal-Mart)나 테스코(Tesco) 같은 대규모 유통점에 대한 의존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또 현재의 인터넷은 무성영화 시대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초고속통신망이 신문, 사진, 음악 등을 위협했지만, 그리고 여전히 디지털 해적들에게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잃을 위험이 있지만 고화질 영상(high-quality video) 시대로 막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타임워너(Time Warner), 뉴스코퍼레이션(News Corporation), 디즈니(Disney)와 다른 올드 미디어 회사들은 영화와 텔레비전 콘텐츠 아카이브들(archives)을 이용해 유통채널 없이 이용자들에 콘텐츠를 직접 제공함으로써 돈을 벌수도 있다. 오래된 콘텐츠라도 소수지만 충성도가 높은 마니아들이라는 커다란 새로운 시장을 발굴하여 콘텐츠 수명의 한계가 사라지고 롱테일 법칙이 적용될 것이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그림 8)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모델 : Content Service Provider


      디지털 세계가 되면서 처음으로 콘텐츠가 방송, 통신, 웹, 기기 등의 다른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스스로가 플랫폼이 될, 유통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 영역을 콘텐츠가 미디어•플랫폼에 대한 종속성에서 벗어나 모든 플랫폼을 자유롭게 이동하고, 서로 다른 플랫폼을 이어 붙이거나 어떤 플랫폼에도 접속할 수 있는 사회적, 기술적 체제가 마련된 ‘디지털콘텐츠=플랫폼 (digital content= platform)’이라고 부르자. 따라서 디지털 콘텐츠가 시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곳에 적시에(Just In Time) 콘텐츠를 전달(delivery) 하는 것’**이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콘텐츠 사업자의 전략적 목표가 될 수 있다면, 이때 전략이 추진되는 방향은 통신, 방송, 웹, 기기, IPTV 등의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종속되지 않고 이용자에게 직접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도록 콘텐츠 서비스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하지만 IPTV를 포함한 방송 플랫폼과 같이 여전히 폐쇄된 콘텐츠 플랫폼 영역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때 방송사의 경우 통신사의 IPTV 플랫폼을 방송 콘텐츠에 개방된 형태로 만들 수 있다면 이러한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 IPTV 플랫폼을 개방된 형태로 만든다는 것은 방송사가 스스로 IPTV 플랫폼 사업자가 된다는 것이 아닌 통신사의 IPTV 플랫폼일지라도 방송사의 독립적인 브랜드 하에 회원, 상품, 과금, 마케팅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IPTV를 통해 방송이 실시간 재전송되는 것을 현재 케이블 TV의 역할 수준으로 해결된다고 전제하면 개방의 대상은 양방향서비스가 제공될 TV포털 영역이다. 이렇게 될 때 BBC와 같은 방송사에서 말하는 콘텐츠의 크로스 플랫폼, 멀티 플랫폼 서비스가 가능하다.

      이글은 많은 부분 통신사가 주도하고 있는 뉴미디어 영역, 특히 IPTV 부분에서 과도하게 기술, 경제적 논리로 구부러져 있는 것을 바로 잡기 위해 중앙이 아닌 더 반대방향으로 힘껏 구부렸다. 통신계와 방송계의 의사소통불가능성, 방송사 독자적인 연계형 서비스와 통신사의 참여 불가능성, 통신서비스의 정체에 따른 ‘밥그릇 키우기’, 기술지대의 발생과 미디어버블, 그리고 콘텐츠 제작 생태계의 붕괴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이 현재의 상황에서 아주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적어도 소모적인 논쟁을 마치고 상호발전적인 모델을 만들기 위해서는 가려져있는 것들을 정확히 드러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글을 통해 원하는 것은 간극을 벌리는 것이 아닌, 통신과 방송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좁히는 것이다.

    참고문헌

    [1] 유관희, “차세대TV비즈니스 추진전략과 비전”, 2006
    [2] 피에르 부르디외,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 솔, 1994
                                  텔레비전에 대하여, 동문선, 2005
    [3] 박노익, “통신방송 융합과 IPTV 정책방향”, 2006
    [4] 강대영, “IPTV 제도 개선방안”, 2007
    [5] 김대호, 양방향 TV-멀키미디어 시대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융합, 나남출판, 2002
    [6] 마케리타 파가니,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쌍방향 TV,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7] 김국진, “방통융합시대 민영방송의 생존전략”, 2006
    [8] BBC, e¬britannia: the communication revolution, 커뮤니케이션북스, 2001
    [9] ISKRATEL, “The application of packet technology in networks with a growing number of subscribers” (www.iskratel.com)
    [10]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1997
    [11] 유재천,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열며”, 디지털 컨버전스, 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12] LG경제연구소, “2006년 산업의 기회와 위협”, 2005
    [13] 이은민, “MP3 등장에 따른 국내 음악산업의 구조변화”, 정보통신정책, 제17권 23호, 통권 384호, 정보통신정책연구원, 2005
    [14] 박영민, “정보화시대의 공간정치: 정보도시와 공간장벽을 넘어서”, 세계화시대 일상공간과 생활정치, 도서출판 대윤, 1995
    [15] 김상훈, “디지털 미디어, PVR이 방송광고에 어떤 영향을 줄까”, KAA저널, 9~10월호, 2004
    [16] 이진경, 노마디즘, 휴머니스트, 2002
    [17] 박종진, “미디어 포털의 동영상 서비스 전략과 향후 전망”, 2006
    [18] 김병국, “하반기 컨텐츠 산업 Preview", 리서치, 대신증권, 2007

    참고신문 및 잡지

    [1] 아이뉴스 24
    [2] 전자신문
    [3] 디지털타임즈
    [4] 데일리서프라이즈
    [5] 한국경제신문
    [6] 조선일보
    [7] 이데일리
    [8] Economist

    박 종 진
    1993년 고려대학교 철학과(학사)
    2004년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과학과 MIS(석사)
    1996년-2002년 한국정보통신(주) e-Solution팀 팀장
    2003년-현재 (주)SBSi 미디어기획팀 팀장
    관심분야: 영상패턴 인식•추적•검색/활용, 영상콘텐츠 메타데이터 구축/활용, 융합환경에서 미디어 전략
    이메일:

    ----------------------
    * economist, "Old Media King content"(2006.1.19)을 볼 것. 본문의 내용은 이것을 요약, 수정한 것이다.
    ** 박종진, 같은 책, pp.18~19를 볼 것

    이글은 미간행 에세이<미디어2.0>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한 것으로 <정보처리학회지>(2007.5, 제14권 제3호)에 실린 글이다.

    2007/09/01 19:16 2007/09/0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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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미래
     



    6. 융합, 미디어버블, 그리고 콘텐츠 산업

    통신사들은 방송•미디어산업으로 진입하기 위한 기술•경제적 담론들과 함께 콘텐츠 제작자로 변모하기 위한 실천을 병행하는데, 이런 실천들이 진짜 콘텐츠 제작자가 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이것을 흉내 내는 것이다. 통신사업자들이 스스로 방송과 콘텐츠산업의 ‘신체나 행동의 코드를 읽어내고 그것을 이용해 그것과 섞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보다는 손쉽게 이미지를 사들이고 있는 현상을 흉내라고 표현한 것이다.*

    통신사업자의 이러한 방식의 접근이 닷컴버블과 같이 ‘미디어버블’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이미 이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가까운 미래에 한국의 위키페디아(ko.wikipedia.org)에는 미디어버블이라는 신조어가 등록되어 있을 것이다. “대략 2005년~2010년에 걸쳐 있었던 주식가치가 방송과 통신의 융합으로 등장한 뉴미디어와 그 관련 분야, 엔터테인먼트 및 콘텐츠 제작 산업의 성장으로 급격하게 상승했던 투기적 버블 현상을 말한다. 그 중 대부분은 몰락했는데 일단의 신흥 뉴미디어 기반 회사들의 창업과 그 때를 같이 한다. 많은 기업들이 기존의 표준 비즈니스 모델을 무시하고 손익 구조를 희생하면서까지 콘텐츠 관련 회사에 대한 투자를 통한 콘텐츠 확보 에 급급했던 시기이다. 미디어버블은 2004~2005년경부터 미래에 대한 기대와 경쟁적 욕구에서 거대 통신사에서 시작된 콘텐츠 및 엔터테인먼트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가 ‘일단의 신흥 뉴미디어 기반 회사들의 창업’ 및 투자를 부추기며 급격한 주식 가치의 상승, 개인 투자자들의 묻지마 투기, 급격한 벤처 자본의 유입 등이 진행되면서 시작되었다”라고.**

    이미 2006년 중반에 나온 한 증권회사의 미디어•콘텐츠 산업 분석을 보면 콘텐츠 제작사의 코스닥 우회 등록과 이에 대한 검찰 조사 등으로 ‘무분별한 시장 진입과 과잉 부하라는 후유증을 경험’하면서 콘텐츠 업체들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 2007년 초에 발표된 통신사에 인수된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전년도 실적을 보면 ‘벤처캐피탈, 기관투자자,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할 정도로 거의 최악 수준’이다. SK텔레콤의 계열사인 IHQ는 2005년 62억3400만원 흑자에서 47억1100만원 적자로 전환했고, KT의 계열사인 올리브나인은 2005년보다 적자폭이 28.3% 증가한 108억9300만원의 손실을 냈다. 2006년 CJ그룹으로 인수된 엠넷미디어도 순손실만 458억6000만원으로 199.8% 급증했다. 엔터테인먼트기업들이 코스닥 등록업체를 인수•우회 등록을 하면서 기존 사업부문의 부실과 엔터테인먼트사업의 자체적인 잠재 부실 요인을 정리했다고 하지만 앞으로도 여전히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통신사의 매체력이 지상파 방송사에 못 미치는 상황에서 콘텐츠 기업 인수 때 보다 자체 콘텐츠 제작에 지속적인 대규모의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신사들에 인수된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은 통신사의 주력이 아니고 최근 추이가 통신사업자들의 사업을 위해 인수된 만큼 통신사로부터 먹고 살 정도의 이익만 받아먹는 그저 그런 회사로 전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통신업체의 관련자들이 말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되었을 경우 콘텐츠산업 전체의 생태계가 교란되면서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

    ----------------------
    * 이진경, 『노마디즘1』(휴머니스트, 2002), pp.104~105를 볼 것
    ** 박종진, 「미디어 포털의 동영상 서비스 전략과 향후 전망」(2006 대한민국 동영상 컨퍼런스, 2006.11.14), pp.26~27을 볼 것
    *** 김병국, 「하반기 컨텐츠 산업 Preview」(대신증권 리서치, 2006.8.11)를 볼 것
    **** 이데일리, “엔터테인먼트업체 실적 갈수록 태산”(2007.1.30)를 볼 것

    이글은 미간행 에세이 <미디어2.0>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한 것으로 <정보처리학회지>(2007.5, 제14권 제3호)에 실린 글이다.

    2007/09/01 18:54 2007/09/01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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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미래
     

     

     
    5. 융합환경에서의 콘텐츠 산업과 기술지대의 발생

     

    < 2> 국내 음반산업의 구조 및 비즈니스 모델* 
    국내음반산업의 구조 및 비즈니스 모델
    < 3> 국내 온라인 음악 서비스의 구조 및 비즈니스 모델 
    국내 온라인산업의 구조 및 비즈니스 모델

    # 수익배분 항목에서 실연자 몫은 5~10%가 아니고 2.5%이다. 이를 바로 잡는다. 원문을 볼 수 있도록 링크를 달았다.

      많은 사람들은 국내 음악시장이 2000 4,104억으로 고점에 도달한 후 소리바다, 벅스로 대표되는 디지털 불법 음악시장의 성장에 의하여 고전을 하다가 디지털 음악시장의 급격한 성장에 의하여 2006년 이후부터는 2000년 수준을 훨씬 넘어서고 2008년에는 1조원 이상의 규모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한국경제신문은곤두박질하던 음악 시장도 2004년을 저점으로 급속하게 회복되고 있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2004 3,450억원에 머무르던 음악 시장은 2005 3,708억원,2006 4,200억원 등으로 해마다 커지고 있다. 음반 시장은 2004 1,338억원에서 1,087억원(2005), 900억원(2006) 등으로 위축되고 있지만 디지털 음원 시장이 2,112억원(2004), 2,621억원(2005), 3,000억원(2006) 규모로 급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음반 제작사 수도 2000 568개에서 지난해 1300여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표는 단순히 현상일 뿐이다. 음악 산업의 외형적 성장이 바로 음악 콘텐츠 제작 산업의 성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음반 산업의 비즈니스모델대로 한다면 작사•작곡자, 가수•연주자, 기획사, 음반사가 갖는 수익은 전체 매출의 약 50~60%였는데 온라인 음악 서비스에서는 42.5%로 줄었다. 특히 작사•작곡자, 가수•연주자 등의 음악 콘텐츠 창작자들이 갖는 몫은 10~15% 수준에서 7.5%로 거의 절반이 줄은 상태이다. 따라서 이것을 단순비교하면 음악시장이 2배로 성장한다고 해도 음악 콘텐츠 창작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2000년 수준인 것이다. 더 나아가 실연자인 가수들의 경우 5~10%에서 2.5% 수준으로 최고 1/4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런 상태가 가수들이 음악활동에 전념하지 못하고 TV 쇼프로에 나오거나 MC, 탤런트 등 다른 엔터테인먼트 영역으로 나가는 이유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기술지대*** 형태로 통신플랫폼 사업자들과 솔루션업체에게 수익을빼앗겼기때문이다. 또 역설적이게도 음반사업보다 음악 온라인 서비스에 더 많은 유통단계를 거치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기획사•음반사의 경우도 40~45%에서 35%로 최대 10%정도 내려갔지만 가수보다 수익배분 비율의 하락이 낮은 것은 개인적 흩어져 있는 가수보다 조직화되어 있어 어느 정도 유통구조의 변화에 대응한 결과이다. 음악 산업의 실례를 통해 우리는 디지털 생태계에서도 여전히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문화 콘텐츠 창작자•제작자 집단이 불법복제와 거대기업들이 난무하는 새로운 환경에서 적절한 보호조치가 없다면굶어 죽을 수 있다는 참담한 현실에 주목해야 한다. 또 지역사회의 문화공간이었던 소규모 음반 판매 상점들, 이것은 권역별로 분리되어 있는 케이블 방송과 비교할 수 있는데, 모두가 없어지고 있다는 것도 살펴보아야 한다. 사실이 정말 이렇다면 현상과 실제를 잘못알고 있는 많은 사람들, 특히 정부 및 많은 정책연구기관의 관계자들과 기자들 무엇을 보고 이야기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융합환경에서 방송부분에서도 기술지대를 기반으로 한 가치의 재분배가 나타날 수 있다. 통신과 방송 융합의 초기 케이블TV와 통신사 간에 전송망, TPS 서비스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후 시장이 재편된 후에는 방송사와 융합 서비스 사업자간에 가치배분을 둘러싼 거친 전투가 발생할 것이다. 이러한 가능성은 현재 가구의 약 80%가 케이블TV를 통하지 않으면 지상파를 시청할 수 없다는, 이미 전송에 있어서는 네트워크에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초를 둔다.

     

    그리고 융합이 심화되면서 콘텐츠의 소비가 방송 형태에 따라 선형(linear)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비선형(nonlinear)적으로 이루어지는 비율이 확대됨으로써 현재의 광고 기반 콘텐츠 제작, 전송 등의 무료방송모델이 유료화나 또는 타깃(target) 광고모델, PPL(product placement) 광고 모델로 변화될 경우 고객정보와 과금에 있어서 효율적인 융합서비스 사업자, 현재의 통신사나 케이블TV 사업자에 대한 종속이 심화될 수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가치의 재분배가 이뤄지며, 전송수단에 대한 통제력이 없는 방송사를 포함한 콘텐츠 제작자들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으며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정보격차의 심화, 문화적 측면에서서 사회적 후생은 악화될 수 있다.

     

      이미 PVR의 출현과 시간이동 TV의 출현과 함께 방송산업의 비즈니스 모델의 위험은 예견되었지만 이것이 더욱 심화될 수 있는 환경이 올 것이다. 제이미 캘러는 “TV 프로그램 내에 제품 광고를 흡수시키는 정도로는 PVR로 인해 사라질 광고수입을 메우기에 턱없이 부족하며, 현재 무료로 제공되는 TV방송과 케이블TV 기본 채널의 유료화가 불가피할 것이다”*****라고 예측하고 있다. 하지만 네트워크와 기기, 웹 기술과 방송이 융합된 뉴미디어 기계체제는 단순히 PVR로 시작된 위협보다 그 정도가 훨씬 심할 것이다.

    ----------------------
    * 이은민, 「MP3 등장에 따른 국내 음악산업의 구조변화」, 정보통신정책연구원,『정보통신정책』(제17권 23호 통권 384호, 2005.12.16), p13과 p.18에서 인용함
    ** 한국경제신문, “또 하나의 벤처 ‘연예산업’ 5000여社 몰려 대박 꿈꾼다”(2007.1.22)을 볼 것
    *** 한국공간환경연구회 엮음,『세계화시대 일상공간과 생활정치』(도서출판 대윤, 1995)에 실린 박영민, 「정보화시대의 공간정치 : 정보도시의 공간장벽을 넘어서」, pp.263~270을 참고할 것. 방송과 통신과 같이 전통적으로 공적 영역이 민영화 되는 경제적 이유는 자본의 ‘이윤율 저하’를 상쇄하기 위하여 지역간․국가간 불균등 발전, 기술지대 등을 이용한다는 논의들이 있다.
    **** 조선일보, “지상파·케이블·위성 안테나 전쟁”(2006.9.25)을 볼 것. “지상파는 월 시청료 2500원을 내는 시청자라면 전국 어디서나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전체 가구의 약 80%는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을 통해 월 6000원 이상의 돈을 추가로 내야 KBS, MBC, SBS 등 지상파방송을 시청할 수 있다. 이렇게 시청자들이 이중부담을 해온 것은 KBS가 공영방송의 과제였던 ‘난시청 해소’를 사실상 케이블에 떠넘겨온 분위기가 역력했기 때문이다. 1995년 케이블 도입 초기 시청자들은 좀 더 깨끗한 화질의 TV를 보기 위해 케이블을 이용하는 경향이 농후했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케이블로 TV를 시청하는 비용을 부담하면서 동시에 지상파 수신료까지 내온 것이다. 이중부담이다.”
    ***** 김상훈, 「디지털 미디어, PVR이 방송광고에 어떤 영향을 줄까」(KAA저널, 2004.9~10월호), p.13, 제이미 캘너(Jamie Kellner) 미국 TBS 회장이 TV비평가협회 회의에서 연설한 내용이다. 제이미 캘너에 대해서는 http://en.wikipedia.org/wiki/Jamie_Kellner를 참고할 것

    이글은 미간행 에세이 <미디어2.0>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한 것으로 <정보처리학회지>(2007.5, 제14권 제3호)에 실린 글이다. 이곳에서는 학회지에 실린 내용 중 잘못된 곳을 바로 잡았다.
    2007/08/31 22:54 2007/08/31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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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합의 정치경제학
    activity, (2007/08/31 22:20)
    유비쿼터스 환경에서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미래
     
     
    4.융합의 정치경제학
     
     

    앞서 통신산업이 방송과 융합하기 위한 논리로 첫째 고객욕구와 이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통신기술의 발전과 이를 이용한 정보격차의 해소, 둘째 국가경쟁력 강화, 더 나아가 세계적인 통신사와 방송사의 결합, 초국적화와 거대화에 대한 국내 통신산업의 대응을 제시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은 경제적 이해를 가리고 명분 획득을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먼저 현재 수준에서 IPTV나 디지털 케이블TV 서비스 사이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방송위원회가 2006 12월 실시된 IPTV 시범사업 이용자의 이용행태를 분석한 것에 따르면 IPTV 시범사업에 참여한 이용자 중 디지털 케이블TV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이용자들(64)은 대부분 두 매체 간 차이가 없는 것으로 평가했다. 또 이용요금이 1만원∼12000원으로 동일하다면디지털 케이블TV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51.8%,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아무거나 선택하겠다는 응답이 21.9%로 나타나 디지털케이블TV를 선호하는 응답자들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IPTV를 선택하겠다는 응답은 18.8%에 불과했다. 연구결과를 보면 통신사가 제시하는 고객욕구는 디지털 케이블로도 충족된다. 보고서가 지적하듯이 IPTV는 새로운 매체로서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 개발이 시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디지털 케이블TV와 차별화를 위해 고객맞춤, 고객참여 등의 신규서비스를 제공한다 해도 정확히는적절한 가격에 선택 사용”**해야 하는 것이며, 더욱이 정보격차, 난시청 해소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다. 유료화 된 IPTV서비스가 연령별 격차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인정해도 장기적으로 가장 큰 문제인 소득별 정보격차를 확대할 수 있다. 그리고 IPTV에 의해 양방향화 된 방송에서의 배제는 고도로 정보화된 사회에서 구성원에게 정보 획득, 나아가 직접적인 행위, 시청자로서의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한 참여 등에서의 배제를 초래할 수 있어 보편적 서비스로서의 방송의 입장에서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실 난시청의 문제도 해당 가정이 위성방송 가입비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지금이라도 바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경쟁력 확보라는 차원에서의 논의도 공적영역인 방송을 산업화하여경쟁심화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된 통신사업’***을 부양하겠다는 생각이 깔려있다고 판단된다. 공익성 위주의칸막이 규제 철폐와 방송의 산업화 주장은방송이 경제현상과는 다른 문화현상이 복합된 영역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고, 즉 보편적 서비스 또는 방송의 공적 책임 등에 여과장치 없이 막바로 시장론적 사고를 도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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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5) 정체된 통신서비스 시장*****

     

    통신과 방송의 융합산업에 대한 통신사의 경제적 이해를 살펴보면 융합이 추진되는 핵심배경에 통신산업의 수익저하가 숨겨져 있다. 정보통신부와 민간연구소 등에서 나온 자료를 살펴보면 통신산업은 시장포화상태로 성장률은 둔화되어 가는데 가입자 유치를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취할 수 있는 방향은 새로운 통•방 융합서비스 시장을 만들거나 인수•합병을 통해 경쟁을 완화하고 독점적 시장을 창출하는 것이다.****** 융합추진의 배경에는 기술적 이유보다 훨씬 강한 이러한 사회경제적 이유가 있다. 따라서 통신•방송 융합을 바라볼 때 통신사업의 수익성 악화를 채워주기 위해 공적인 영역을 사영화 해주는 것은 아닌가하고 되물어야 하며, 새로운 상황에서도 어떻게 하면 방송의 공적 기반을 확장하면서 책무를 다하게 할까를 생각해야 한다. 융합의 결과는 앞서 통신사가 말한적절한 가격이 무료인 지상파 방송, 특히 5,000원 정도로 상대적으로 낮게 잡혀있는 현재의 케이블방송이, 최소 10,000원 이상이 될 것이다. 이부분에서는 디지털 케이블TV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방송을 포함한 제한된 콘텐츠 이용료만을 계산한 것이며 필수적으로 별도의 비용을 지불하고 초고속통신망을 추가로 이용해야 한다. 이 부분에서 앞서 말한 정보격차가 융합환경에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다면지상파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노인들이 보는 매체라는 인식은 지상파 방송이 현재의 케이블TV과 같이 통신망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에는 잘못된 말이 될 수도 있다.

     

    케이블 중심으로 방송이 제공되는 미국 등과 비교하면 한국은 TV를 시청하는데 국민•시청자들이 돈을 거의 안 쓴다. 왜냐하면 방송 자체가 공적영역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공적인 방송서비스를 통해 국민들이 계량화되지 않는 형태로 얻는 이득은 광고를 중심으로 유지되는 방송산업 전체의 매출보다 훨씬 더 클 것이며, 이런 한 이를 벽에 가두고 사업화하여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walled garden)을 만들려는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규제기관이 시장의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인식과 달리 새로운 환경에서도 공적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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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6) 융합의 의미: 거대통신기업도 한순간에 죽을 수 있다********

     

    사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있어 가장 큰 직접적인 갈등은 방송사와 통신사 사이가 아닌 통신사와 케이블 방송사(SO) 사이에서 발생한다. 두 사업자 사이에서 융합의 주도권을 누가 갖느냐에 따라 새롭게 만들어질 가치(value)가 어떻게 배분될 것인가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미 케이블 사업자들은 초고속통신서비스 제공을 통해 통신사업에 뛰어들었고, 언제든지 인터넷전화서비스(VoIP)를 제공하면서 TPS사업자가 될 수 있다. 또 통신사업자는 IPTV 등의 방송 서비스를 제공하면 TPS사업자가 될 수 있다. TPS와 같은 새로운 서비스가 왜 중요한가는 <그림 6>을 보면 알 수 있다. 새로운 융합서비스는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고, 기존 고객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림 6>의 조사는 새로운 융합서비스가 제공된다면 가계의 59%, 사업자의 53%가 서비스 제공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융합은 특정산업 내에서의 제한적 경쟁을 전 산업으로 확대하며, 이것은 시장 참여자 모두에게 시장 확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고 경쟁의 희생자가 될 수도 있게 만든다.

     

    KT 2006 IPTV 시범사업 후 발표에서시범 서비스 이용자 평균 77%가 지상파, 케이블 TV 위성방송과 차별성을 느꼈다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를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다른 서비스로 느끼고 있다”*********고 주장할 때, 방송위원회의 앞서 살펴본 보고서에서는 IPTV 전문가 59명을 대상으로 한 심층인터뷰에서는 응답자의 75%(41) IPTV의 도입에 찬성하고, IPTV를 디지털케이블TV와는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라고 보고하고 있다. KT의 발표는 통신산업이 의도적으로 케이블TV가 아닌 디지털 케이블TV IPTV가 이용자에게 동일한 서비스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감추려하는 것을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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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7) 갈등의 원인: 융합의 과실이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방송과 통신의 갈등의 시작은 방송 없이 통신만이 사용하던 서비스인 통신사의 초고속통신서비스와 통신 없이 방송만이 사용하던 서비스인 케이블 방송망가 만나는 지점, 즉 융합환경에서는동일서비스가 된다는 것에 있다. 따라서 전국적 규모의 거대자본인 통신사업자와 경쟁해야 하는, 지역으로 서비스 권역이 나뉘어져 있는 케이블TV 사업자에게 거대 통신사와 서로 협조하면서 공존하라는 상생의 논리란 생각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통신업계 실무자들은 IPTV 사업자에게 과도한 규제를 해서는 안 되며, 이미 통신사업에까지 손을 뻗친 케이블TV 사업자들이 막상 통신업체가 방송계에 진출하려고 하자 온갖 공공성의 논리를 만들어내면서밥그릇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고 지적한다. 케이블사업자의 통신사업 진출과 향후 TPS까지 확대하여 거대 통신 공룡을 저가경쟁으로 끌어들일 위험성의 존재한다는 점 등을 생각할 때 이러한 지적이 모두 틀렸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하지만 정보화가 더욱 심화된 통•방 융합환경, 유비쿼터스 사회에서 국민들의 모든 일상적 삶이 아무런 규제 없이 단순한 시장 경쟁논리에 의해 한두 개의 거대 통신자본에 귀속되는 것에는 반대한다. 왜냐하면 융합된 사회에서 콘텐츠 유통 기반을 소수의 거대자본이 장악할 경우 케이블TV 산업의 붕괴뿐만이 아닌 2차적으로는 지상파 등의 방송산업의 붕괴까지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walled garden)형태, 폐쇄형태의 융합환경에서는 정보화의 심화에 따른 국민경제의 고른 발전보다는 가치사슬(value chain)의 왜곡과 정보격차 및 소득격차의 심화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융합의 결과로 네트워크 기반 융합서비스 사업자들은 방송•영상물(문화 콘텐츠 산업)을 끌어들임으로서 <그림 7>에서 보듯이 가입자당 평균 매출액(ARPU) 증대하면서 기존 고객 유지 및 신규 고객 획득을 할 수 있으며 네트워크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그런데 네트워크 기반 사업자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보장되지만 콘텐츠 제작자에게도 이런 시장 확대의 결과가 돌아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현재 이와 유사한 예를 2000년대 이후 음악 산업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지금까지의 결과가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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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같은 값이면 디지털케이블TV 본다”(2007.3.6)을 볼 것
    ** 유관희, 같은 책, p.22

    *** 디지털타임즈, “신년 특별대담­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2006.1.3)
    **** 유재천,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를 열며」, 『디지털 컨버전스』(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pp.8~9를 참고

    ***** LG경제연구원, 「2006년 산업의 기회와 위협」(2005.10.11), p.10을 볼 것
    ****** 디지털타임즈, “신년 특별대담­진대제 정보통신부장관”(2006.1.3)을 보면 “최근, 통신시장은 경쟁심화에 따라 수익성이 악화되어 통신사업의 양수ㆍ합병(M&A) 가능성이 있으나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사업자간 자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다만, 정통부는 통신사업의 M&A관련 규제를 완화하여 기간통신사업의 원활한 양수ㆍ합병을 도모토록 할 예정이다.”고 말하고 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인터넷의 새로운 선물, IPTV⑤: 통신업체 실무자들의 호소­이해관계 사로잡힌 IPTV, 일단 시작이라도 합시다” (2005.11.18)을 볼 것

    ******** ISKRATEL, 같은 자료
    ********* 아이뉴스24, 같은 기사(2007.1.25)를 볼 것
    ********** ISKRATEL, 같은 자료
    *********** 데일리서프라이즈, 같은 기사(2005.11.18)를 볼 것

     

    이글은 미간행 에세이 <미디어2.0>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한 것으로 <정보처리학회지>(2007.5, 제14권 제3호)에 실린 글이다.
    2007/08/31 22:20 2007/08/31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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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방송과 통신의 융합, 그리고 연계형 서비스



    IPTV 서비스 영역

    (그림 2) IPTV의 서비스 영역: 광대역 융합 서비스


       (그림 2)를 보면 통신계열에서는 웹 플랫폼을 통신서비스로 분류하고, IPTV의 유사서비스 사례로서 제시한다. 그리고 IPTV는 초고속인터넷망을 통해서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양방향으로 다양한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통신방송 융합서비스라고 말한다. IPTV에서는 웹 플랫폼처럼 주문형 콘텐츠(VOD), 인터넷 검색 및 전자상거래 등을 제공하고 이용자의 요청에 따라 실시간으로 방송프로그램을 전송할 수 있다. 인터넷TV를 포함한 이런 웹 플랫폼들과 IPTV의 차이점은 인터넷 망과 PC가 아닌 TV단말기의 융합, 인터넷 접속 및 각종 양방향 서비스 제공을 위한 어플리케이션이 탑재된 IPTV용 셋톱박스와 TV단말기의 융합을 통해 방송처럼 동시에 다수의 시청자에게 동일한 콘텐츠 서비스의 질(QoS)을 보장하면서 실시간 방송프로그램을 전송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현재 방송사 웹 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온에어서비스와 같이 방송과 동일한 멀티미디어 정보를 가진 콘텐츠를 실시간으로 웹 캐스팅 하고 이것을 TV단말기를 통해서 본다고 할 때, 실질적인 차이점은 통신사의 대규모 투자가 전제로 되는 QoS에 대한 보장만이 차이점으로 남는다.

     
    따라서 통신산업에서 IPTV의 특성으로 제시되는 기술발전에 따른 무한한 확장가능성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의 특성, 웹 플랫폼이 가진 특성일 따름이다. 이렇게 보면 IPTV의 유사서비스 사례로 웹 플랫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웹 플랫폼의 유사서비스 사례로서 IPTV가 존재한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런 관점은 PC TV를 대체하거나, TV 자체가 PC와 같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이것과 궤를 같이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방송프로그램 연동 정보서비스와 각종방송 연계 연계된 양방향(interactive) 서비스로 제시되는 통신•방송 연계형 서비스 영역은 융합서비스라기 보다는 방송의 기능적인 확장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상호작용성이란 특정한 서비스 형태라기보다는 기능(functionality)을 말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현재 라디오 방송에서 인터넷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면서 청취자가 직접 라디오에 사연을 올리거나 노래를 신청하는고릴라(SBS), (KBS), 미니(MBC)’와 같은 서비스 유행하고 있다. 방송사의 정책에 의해 동시접속자수가 제한되지만 정확히 보면 통신과 방송이 연계된 양방향서비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서비스를 라디오방송이 아니라 융합서비스라고 말하지는 안는다. 굳이 말한다면 네트워크형 라디오 서비스(connected radio service), 또는 인터넷 환경에 적응해가는 라디오 방송정도가 될 것이다. 즉 편지에서 유선전화, 휴대전화에 이어 인터넷을 통한 일부 청취자의 방송참여가 좀 더 쉽게 된 것이지 방송의 본질적인 정의를 바꾸기는 어렵다. 라디오의 경우 인터넷 사이트의 게시판 기능을 이용함으로써 전화가 가지고 있는 진행자와 참여자의 일대일 통화에서 일대다 관계로, 또 사이트에 접속한 청취자들 간의 다대다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지만 대다수의 청취자들은 이러한 기능으로 좀 더 재미있고 풍부해졌다고 해도 여전히 똑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확대하여 TV방송 영역까지 적용하여 보자. ‘IPTV 방송프로그램 연동 정보서비스의 경우 현재 서비스되고 있는 해당 프로그램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하는 연동형 데이터 방송이나 프로그램과 관계없는 날씨 정보 같은 것을 내보내는 독립형 데이터방송과 유사한 서비스이므로 향후 발전될 것이라는 방송과 연계된 양방향 서비스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IPTV
    가 제공하는 양방향 서비스를 이용해서 실시간 여론조사를 하고 이것이 바로 분석되어 방송•송출이 되고 TV화면에 나온다고 해도 이것이 동일시간에 지역적으로 분산되어 있는 서로 다른 시청자가 동일한 내용의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따라서 전국적 수준의 집단적 경험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에서 나오는 방송의 본질적인 성격을 바꿀 수는 없다. 바뀐다면 방송의 제작방식과 진행방식, 영상정보와 함께 추가적인 데이터영역 및 리모콘을 이용하여 TV를 통해 바로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버튼, 그리고 실시간으로 시청자들이 참여•회신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대용량의 정보통신시스템 및 기술진의 방송제작에 대한 참여증가 등이다. 하지만 지금 모든 사람이 방송에 참여하지 않고, 또 방송 플랫폼 자체의 특성에 의하여 참여할 수 없듯이***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대다수의 사람은 현재보다 참여자수가 훨씬 많이 확대되어통계학적으로 의미있을지 모르지만 여전히 소수인 사람들이 참여하여 만든 데이터를 가공하여 만들어진 방송을 보고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 1>에서 보는 것처럼 디지털 플랫폼별로 콘텐츠 특성이 존재하며 이렇게 역사•문화적으로 구조된 것들은 생각처럼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표 1> 디지털 플랫폼별 콘텐츠 특성 차이*****


    디지털 플랫폼별 콘텐츠 특성 차이

      IPTV의 서비스 영역에 대한 이런 미래예측보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는 방송과 통신이 연계된 서비스의 영역인 콘텐츠의 제작이 실제 방송의 기획, 제작, 송출에 의하여 통제받을 수밖에 없으며< 1> 디지털 플랫폼별 콘텐츠 특성 차이 통신은 여전히 예전의 우편시스템이나, 현재의 전화, 휴대폰, 인터넷 방송 참여 사이트와 같은 기능적인 지원을 담당하는 사회적 하부구조(infra)로 방송 밖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방송사가 연동형 콘텐츠를 만들었을 때 필요한 것은 시청자 참여를 네트워크를 통해 받을 수 있는 복귀 경로(return path)의 확보이다. 이때 통신사들은 전송로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 방송과 통신의 융합서비스 영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시청자들에게는 여전히 통신은 통신일 뿐이고 다만 고객접점을 가짐으로 해서 방송사의 프리미엄 콘텐츠 및 티커머스(T-Commerce)에 대한 과금, 고객정보를 이용한 광고 지원 등으로 방송산업에 사업적으로 접근할 가능성의 확대가 존재할 것이다. 통신사에게 사업적 접근 이외에 양방향 콘텐츠 제작에 직접적인 참여가 배제되는 것은 ‘TV방송의 특징이 흐르는 시간’, 즉 선형적인 일방향 콘텐츠(linear content)이기 때문이다. 비선형적인 양방향 콘텐츠(non linear content)―시청자의 참여결과가 방송 플랫폼에 실리자마자 더 많은 사람에게는 일방향으로 변형되어 다가선다.****** 이럴 때 통신사가 당장 할 수 있는 역할이 케이블방송의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수준이다. 더 나아가 방송사들도 더 이상 콘텐츠 소비자를 단순한 시청자가 아닌 이용자•회원으로 생각하면서 고객정보를 관리하고 웹 사이트에서 유료과금을 위한 결제•정산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부분에서도 통신사에 전적으로 의존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Walled Garden

    (그림 3) 통신사가 추구하는 융합된 관문들: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


      통신사가 추구하는 융합의 목적은 통신과 방송 연계형 서비스, 공동제작과 같이 통신사의 직접적 참여에 의해 양방향성을 지원되는 형태로 만들어진 방송보다는 통신사 주도의 소비자 상품(TPS)을 만드는데 있다. 실제전 세계적으로 미디어, 통신, 인터넷의 융합을 위해 수직적으로 통합된 기업들이 나오고 있다. 기술적 혁신은 전송채널의 수를 증가시키는 반면, 수직적 통합은 시장에서 채널 수를 감소시킨다. 한국에서도 통신사업자의 뉴미디어전략은 수직적으로 통합된 비즈니스를 만드는 것이다. 즉 텔레비전, 전화, 유•무선네트워크의 관문을 통제함으로써 소비자에게 한 장의 요금고지서와 단일한 브랜드, 단일한 전자프로그램 가이드(EPG)를 제공하는 것이다. 통신사업자들은 서비스 사용자들이 이런 통합된 서비스를 원한다(User want “Single Play” Experience; Single Provider, Single Bill, Single Service)********고 말하지만 이것의 진위는 따져봐야 한다. 이 벽으로 둘러싸인 정원(walled garden)*********이 야기하는 중요한 문제는 시청자들이 다양한 정보를 정말 잘 접할 수 있느냐, 융합된 관문이 시청자•국민을 위한 경쟁과 선택을 만들 수 있을까하는 것이다.’**********


    TPS

    (그림 4)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의 융합체: Triple Play Service***********


      방송과 통신의 연계형서비스, 또는 광대역 융합 서비스는 방송 플랫폼을 통해 송출된 양방향 서비스만이 아닌, 예를 들면 (그림 4)의 뉴서비스 영역에서 보여주는 TV시청 중의 메신저하기(messaging during watching TV), 다중 터미널(multiple terminals), 멀티유저 게임(multi-user games), TV전화(missed calls on TV), SMS, 이메일 등과 같이 웹 플랫폼에서 발전한 개인화된 커뮤니케이션형 서비스가 통신사에 의해 TV를 통해 독립적으로 제공되고 이런 서비스를 방송을 시청하면서 이용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할 때 일어날 것이다. 새로운 정보양식과 콘텐츠 이용문화가 탄생하는 것은 상호이질적인 문화•기술이 부딪히면서 이용자들의 삶 속에서 녹아났을 때 나온다. 맥루한(M. Mcluhan)은 방송과 통신과 같은 서로 다른 미디어•기술의 융합과 관련하여어떠한 체계라도 그 전환의 가장 일반적인 원인의 하나는 다른 체계와의 이른바 이화수정(異花受精)에 의하여 생긴다. 인쇄와 증기 압착기, 혹은 라디오와 영화(그것이 토오키를 낳았다)의 경우가 바로 그러하다. 오늘날 전자기록장치는 말할 것도 없고, 마이크로필름, 마이크로카드의 출현에 의하여 인쇄문자는 다시금 손으로 쓴 수공업적 성격을 다분히 지니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서로 다른 계열간의 접속, 또는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의 결합•융합에 대한 이해 없이는 새롭게 생성되는 미디어의 세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없으며, 이러한 이해는 서로 다른 장()간의 상호이해일 수밖에 없다.

     
    또한 방송이 제공하는 양방향서비스에 참여하는 이용자들이 도달하게 될 곳은 통신사가 운영하는 TV포털이 아닌 방송사에서 운영하는 TV포털이다. 왜냐하면 특정 방송사와 통신사 간의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방송사에서 방송을 송출하면서 복귀경로를 통신사가 운영하는 TV포털로 지정(user traffic push)하지 않는 한 방송과 연계된, 또는 방송을 통하여 만들어진 이용자 트래픽(user traffic)이 이곳으로 흘러들어갈 수 없기 때문
    이다. 이렇게 보아도 정보통신부나 통신사들이 말하는 <그림 2>의 통신•방송 연계형 서비스가 서로 다른 사업자간의 서비스가 매쉬업(mash-up)되는 웹 플랫폼처럼 쉽게 이루어질 수 없고, 이용자의 생활•시장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상호견제와 갈등 속에서 태어난, 서로 폐쇄된 플랫폼•사업자들로 구성된 초기 융합 서비스의 숙명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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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익, 「통신방송 융합과 IPTV 정책방향」(차세대 TV 비즈니스 컨퍼런스, 2006.10.24~25), pp143~145.  강대영, 「IPTV 제도 개선방안」(IPTV 성장전략 콘퍼런스 2007, 2007.1.25), pp8~10을 볼 것.
    ** 김대호, 『양방향 TV-멀티미디어 시대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융합』(나남출판, 2002), p.39
    *** 피에르 부르디외(b), 『텔레비전에 대하여』(동문선, 2005), pp.19~64를 참고할 것
    **** 이에 대한 논의들이 미디어 생태학(media ecology)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메이로비츠(Joshua Meyrowitz)는 공존하는 미디어들의 상호 연결된 네트워크라는 미디어 매트릭스(media matrix)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이런 이론은 신문 등의 대중매체를 덮고 있는 기술결정론적인 뉴미디어 패권주의식의 편향된 시각을 교정해줄 수 있다.

     ***** 마케리타 파가니, 『멀티미디어와 디지털 쌍방향 TV』(커뮤니케이션북스, 2005), p.43의 표를 인용함
    ****** 콘텐츠에서 일방향과 양방향에 대한 분류에 대해서는 박노익의 글 p.145를 볼 것
    ******* BBC, 『e­britannia: the communication revolution』(커뮤니케이션북스, 2001), p.67의 그림을 수정하여 사용함
    ******** 김국진, 「방통융합시대 민영방송의 생존전략」(2006.12), p.19를 볼 것. 본 자료는 SBS 내부 발표자료이며, 김국진은 미디어미래연구소(mfi.re.kr) 소장을 맡고 있다.
    ********* www.wikipedia.org, ‘walled garden'(20072.16) 항목을 참고할 것
    ********** BBC, 같은책, pp.64~68을 볼 것
    *********** ISKRATEL, 「The application of packet technology in networks with a growing number of subscribers」을 볼 것. ISKRATEL에 대해서는 www.iskratel.com을 볼 것
    ************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커뮤니케이션북스, 1997), p.46을 볼 것

    이글은 미간행 에세이 <미디어2.0>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한 것으로 <정보처리학회지>(2007.5, 제14권 제3호)에 실린 글이다. 이곳에서는 학회지에 실린 내용 중 잘못된 곳을 바로 잡았다.

    2007/08/30 23:57 2007/08/30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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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술과 네트워크의 발달에 따라 방송과 통신의 융합, 서비스의 유비쿼터스화가 급격하게 진전되고 있다. 또 네트워크의 진화와 미디어 기기의 발전은 올드미디어의 단순한 시청자들을 이용자•회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방송계(放送界)의 입장에서 보면 서비스 변화를 요구하는 외부적 힘들이 내부에서의 변화를 추동하는 힘보다 더욱 강한 것이 사실이다. 서비스 변화를 요구하는 외적 힘들은 기술 변화와 이용자 기대의 변화, 앞의 변화에 기반을 둔 다양한 시청행태 등 이다.

      기술 변화는 유선인터넷, 무선인터넷, 휴대인터넷, HSDPA 등의 네트워크의 진화와 이에 따른 양방향 서비스의 확대, 댁내(indoor) 및 야외(outdoor)까지 콘텐츠 유효이용범위(coverage)의 확대를 이끌고 있다. 여기에 PMP, 휴대폰, PDA, 노트북, 디지털 TV, 각종 셋톱박스(STB) 등 다양한 미디어 기기의 출현하고, 이것들이 네트워크에 연결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용자 기대에 있어서는 고령인구, 독신가정 등 비전통적 가족유형의 증가와 미래의 이용자인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라이프스타일과 이용자 기호의 변화와 함께 TV의 단순 시청자가 능동적 수용자로 변화되고, 또 이용자와 방송사, 이용자와 이용자 사이의 정서적•감정적 연계가 중요해지고 있다. 이를 위해 방송사는 시청자가 콘텐츠 제작, 또는 유통과정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콘텐츠를 이용하는 행태에 있어서는 방송형태(push service)에서 이용자가 시간과 장소에서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콘텐츠를 찾아 이용하는 형태(pull service)로 전환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결국 중요한 콘텐츠를 제작•유통시키는 방송사는 시청자들이 콘텐츠를 이용하는 방식이 변함에 따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매체를 통하여 이용자가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해야하는 유비쿼터스 환경에 급격하게 노출되고 있다.


     
    따라서 과거와 비교할 때 방송사는 방송 콘텐츠의 제작•편성•송출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콘텐츠에 대한 메타데이터, 데이터베이스, 디지털 아카이브, 검색기술 등에 관해 생각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더 이상 콘텐츠를 방송과 같이 정해진 시간단위로 편성해서만 보여줄 수 없으며 이용자들의 미디어 이용방식이 검색•발견•이용의 형태로 변화하는 것을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뉴미디어의 관점에서 볼 때 방송사는 더 이상 브로드캐스터(broadcaster)가 아니며 콘텐츠 서비스 제공자(content service provider), 닷컴기업, 벤처가 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뉴미디어(new media)로 불리는 새롭게 나타난 콘텐츠 유통기술(content delivery technology)은 현재의 미디어(old media)를 개조(recreate), 개량(re-engineer), 재매개(re-mediate)하면서 뉴미디어와 올드미디어라는 구분을 명확하지 않게 만들 것이다. 결과적으로 뉴미디어가 올드미디어를 영구화(perpetuate)한다.

    # 위 글은 2006년 12월 10일 http://en.wikipedia.org/wiki/New_media에서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위키피디아에서의 정의는 바뀌어 있다. 바뀌기 전 인용했던 원문을 찾아 연결해 놓았다.


     
    이러한 상황인식을 기초로 하여 통신과 방송 융합의 의미, 융합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미디어 버블, 단기적인 융합의 실패와 디지털 콘텐츠 산업의 붕괴 가능성 등의 문제들에 대하여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콘텐츠 사업자인 방송사가 유비쿼터스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하나의 전략으로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digital content platform) 개념을 소개하고, 이 개념의 현실화 과정이 방송사가 뉴미디어 영역에서 추구하는 크로스 플랫폼(cross platform), 또는 멀티 플랫폼(multi platform) 전략의 심화과정임을 밝힐 것이다.

    2. 통신•방송의 융합과 서로 다른 규칙들


      통신에서 최대의 관심은 정해진 시간 동안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가에 있다. 이를 위해 여러 가정에 수도관을 통해 많은 물을 보내려면 관 자체를 넓히거나 유속을 높이고 가능하면 물을 압축하여 밀도를 높여야하는 것과 같은 일들이 최근 통신에서 일어나고 있다. 통신 네트워크가 진화된 결과가 인터넷 프로토콜(internet protocol)이며, 디지털화(digitalizing)된 모든 콘텐츠는 이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이동•이용할 수 있다. 이것이 ‘On IP based Network’가 의미하는 것이다. 이제 진화된 통신망에서는 하나의 회선에서 초고속 인터넷, 인터넷 전화, 방송을 제공하는 서비스인 티피에스(TPS, triple play service)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런 기술 환경의 변화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에서 통신사업자 중심의 시장 변화,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끌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통신산업이 방송과 접속•융합하기 위한 논리를 살펴보자.

    Triple Play Service

    (그림 1) 통신의 진화: Triple Play Service*


     
    첫 번째는고객 욕구와 이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통신기술의 발전이라는 기술•기능주의적인 담론이다. 방송이 가지고 있는 정보 제공의 단방향성, 시간적•공간적 제약성 등의 한계 때문에 PC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는 디지털 문화에서의 이용자들의 이용행태와 욕구를 현재의 방송체제•TV를 통해서는 충족시키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미래의 TV는 기존 방송의 일방적인 밀어내기(push)형 서비스에서 고객에 의한 끌어오기(on demand, pull)형 서비스 제공으로 전환되어고객맞춤이 되어야 한다. 또 단방향 중심의 수동적 서비스에서 양방향 능동적 서비스 제공으로 전환되어고객참여를 제공해야 한다. 이런 이용자들의 소비행태가 미디어 산업변화의 원동력이 되어 현재의 수직적인 방송체계는 사라지고 1인 중심의 호환적(interactive)인 주문형 서비스가 늘어나고 방송의 수동적인 소비자를 활발한프로슈머(prosumer)’로 바꿀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모두 방송이 아닌 통신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방송과 통신의 융합, 달리 말하면 통신의 방송진출은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대세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국가경쟁력이라는 시장주의적 담론이다. 2007 ‘IPTV 성장전략 컨퍼런스에서 KT의 발표 내용은 이러한 논리를 요약하여 보여준다. KT “IPTV 산업 발전과 국가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IPTV 제도화가 시급하다그동안 공익성 위주의 칸막이 규제로 방송이 산업으로 발전하지 못했다이제는 방송의 산업화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 KT는 연간 3조원을 투자하면서 많은 중소 협력업체와 협력하고 있으며 [2006 11월말 시작한] 공동 시범 사업에서도 양평과 같이 케이블TV나 지상파가 들어가지 않는 난시청 지역에서도 IPTV를 제공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적, 산업적 논리들은 보편적 서비스, 공익성, 저널리즘 등 방송 및 올드미디어가 역사적으로 쌓아온 가치를 뒤흔들고 공격한다. 이렇게 논의가 방송이 규정하는 미디어의 의미 계열과 달리 가는 것은 통신사들이 IPTV에 관련된 논의의 중심을 경제에 둠으로써 방송계가 역사적, 제도적으로 갖고 있는 합법적인 폭력, 특수한 권위의 독점, 즉 문화적 자본의 분배 구조를 전복하려하기 때문이다. 문화적 자본을 별로 갖추지 못한 통신사들은 전복의 전략을 채택하고국가경쟁력 약화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부추기고 방송에 대한 기존의 지배적 담론인규제•공익성 위주의 칸막이와의 비판적 단절을 시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진짜 콘텐츠 제작과 방송산업의 일원이 되어 융합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는 단기적 이해에 따라 콘텐츠 기업에 대한 M&A 등을 통해 콘텐츠 기업인 것처럼 행세하거나 기술적, 산업적 논리로 미디어 산업을 공격하기에 앞서 오랜 시간 참고 견뎌내야 한다. 왜냐하면 기술이 아닌 문화라고 생각하는 방송의 장(, camp)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긴 진화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 시간이 필요한지를 부르디외(Pierre Bourdieu)가 지적하는()들의 몇 가지 특성을 빌려 설명해보자.


     
    부르디외의 장()이론에 따르면새로운 회원의 선발과 모집은 항상 그 게임[방송]에 대한 동의와 투자의 표시 정도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데, 신참자인 통신사들은 방송의 가치에 대한 인정과 방송의 작동 원칙에 대한 실천적 인식에 바탕을 두는 입회 권리금을 지불해야 한다. 방송 자체까지도 파괴할 수 있는 총체적인 통신 혁명으로부터 방송이 보호되는 요인들 중의 하나는 바로 시간과 노력 등의 투자가 지닌 중요성 자체이다. 그것은 방송에의 참여가 이미 전제로 되는 것으로서, 통과제의의 시련과 마찬가지로 방송의 무조건적인 파괴를 실천적으로 생각할 수 없게 만든다. 이렇게 해서 통신이 방송의 형식을 파괴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의 습득에 드는 비용 때문에 방송은 지켜지는 것이다.’


     
    통신사들에게 암묵적으로 요구되는 방송의 원칙들에 대한 실제적인 인식을 통해 보면, 방송 행위에서 나타나는 것은 방송의 전() 역사, 과거 전체이다.’ 현재 통신사들이 IPTV서비스를 시작함으로서 방송사로 변신(變身)을 하지 못하고 것은 전통미디어의 기반이 산업적이기에 앞서 문화적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통신과 같은 산업적•기술적 기반에서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 가질 수 있지만 방송에서는, 문화적 재산인 콘텐츠, 상징을 생산하는 장들에서는 경제성과 효율성과 같은 이단적인 전복, 상투화보다 방송의 원천, 기원, 정신, 진리로의 회귀하는 공영성, 문화적•교육적•계몽적 소임 등이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뉴미디어 담론•계열화를 주도하고 있는 통신은 사실상 경제적 가치가 아닌 문화적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다른 가치를 이해하지 못함으로써 나오는 것이 앞에서 살펴본 통신계(通信界)의 매혹적인 기술과 위협적인 경제담론이며, 이것은 다시 융합이 방송의 장()에 최신 기술과 거대자본으로 무장한 통신계의 침입으로 인식되어 단기적인 논의의 회피와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 융합의 방향과 결과에 혼란과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계속해서 방송계와 통신계 사이에 사회•문화적으로 구조화되어 존재하는 가치와 게임 규칙을 서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IPTV의 상용화 이후에도 여전히 지난 기간 동안의 소모적 논쟁의 지속과 함께 중단기적으로 통신과 방송의 융합이 아닌 단순한 조합으로 끝나버릴 가능성이 존재한다.


    ----------------------
     *
    유관희, 「차세대TV비즈니스 추진전략과 비전」, p.21, 차세대 TV 비즈니스 컨퍼런스 발표문, 2006
    **  유관희, 같은 책, pp.21~22
    *** 아이뉴스24, “IPTV 컨퍼런스: KT,­이용자 77%, 케이블TV와 IPTV 달라”(2007.1.25), 아이뉴스24가 주최한「IPTV 성장전략 콘퍼런스2007」에서 KT 이영희 미디어본부장의 발표 자료를 볼 것
    ****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a), 『혼돈을 일으키는 과학』(솔, 1994), pp.128~ 129를 참고함
    ***** 피에르 부르디외(a), 같은 책, pp.130~131을 볼 것. 부르디외는 이곳에서 특정한 장(場에)서의 게임의 규칙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본문에서는 부르디외가 말하는 ‘게임’의 자리에 ‘방송’을 놓았다. 부르디외가 장을 통하여 보여주는 것이 현재 방송과 통신 각각의 전략과 대립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준거틀이 될 수 있다.

    이글은 미간행 에세이 <미디어2.0>의 내용의 일부를 정리한 것으로 <정보처리학회지>(2007.5, 제14권 제3호)에 실린 글이다.  이번호는 "디지털엔터테인먼트" 특집호이다.

    2007/08/30 23:30 2007/08/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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