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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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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에 해당되는 글 6건

2009년 3월 16일 <뉴미디어론> 세미나를 하면서 마노비치의 "이런 것은 뉴미디어가 아니다"라는 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글이다. 전체로서의 미디어의 역사 속에서, 다른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뉴미디어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의도로 작성되었다.

이런 발제문을 쓰게 된 배경에는 학제(학문, 신문방송학과는 뉴미디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치학과는? 미학과는?)간 서로 다른 뉴미디어에 대한 정의가 있는데 이런 정의들은 모두 뉴미디어에서 어떤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노비치의 글 또한 어떤 입장 중 하나에 서서 '어떤 하나의 이데아(idea)로서의 뉴미디어'를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에서 보아도 이와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웹에서는 웹에서 정의한 뉴미디어가 있고, IPTV는 IPTV가 정의한 뉴미디어가 있다. 그리고 방송사는 방송사가 정의하는 뉴미디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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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의 언어> 중 “이런 것은 뉴미디어가 아니다” 비판

이런 것은 뉴미디어가 아니다

레프 마노비치는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뉴미디어와 과거의 미디어의 핵심적인 차이를 수적 재현(Numerical Representation)과 이에 근거한 모듈화, 자동화, 가변성, 부호 변환 등의 특성을 들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뉴미디어와 옛 미디어의 차이라고 믿는 정의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①뉴미디어는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전환된 것이고, 디지털 방식으로 기호화된 미디어는 분절적이라는 정의부터 ②컴퓨터라는 하나의 기계에서 디스플레이 되는 멀티미디어라는 정의, ③순차적(linear) 접근이 아닌 무작위적이고 동시적(non-linear) 접근이 가능하다는 정의, ④디지털화 정보손실(디지털화된 미디어에 담긴 정보의 유한성)을 초래한다는 정의, ⑤디지털화된 미디어의 훼손 없는 무한복사 가능하다는 정의, ⑥뉴미디어는 미디어가 객체와 이용자가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정의 등은 뉴미디어에 대한 잘못된 신화이다. 왜냐하면 전통 미디어의 양식에서도 이런 특성들을 찾을 수 있고, 따라서 “핵심적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디지털 재현이 한정된 숫자의 샘플들로 구성된다”는 분절성이 뉴미디어의 특성이다라는 정의는 이미 영화가 사건을 기준으로 1초당 24프레임으로 샘플 추출한 것과 원리상 다르지 않다. 따라서 “영화가 우리를 뉴미디어에 맞게 준비시켜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뉴미디어는 원리적으로 영화가 이룩한 “이러한 이미 단절적인 재현을 계량화하는 것”뿐이고, 영화가 “연속적인 것에서 단절적인 것으로의, 훨씬 더 어려운 개념적 전환”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앞서 이야기한 6가지의 “흔히 뉴미디어와 옛 미디어의 차이라고 믿고 있는 정의들”이 전통 미디어 역사 속에서 형식이나, 또는 기본적인 원리(내용)가 동일한 사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런 이유로 인해 “이런 것은 뉴미디어가 아니다(what new media is not)”라고 말한다. 결국 이런 특성들을 제외시키고 나면 그에겐 “수적 재현(Numerical Representation)“만이 뉴미디어의 핵심원리가 된다.

마노비치 비판에 대한 논리적 근거 검토

그런데 마노비치가 분절성, 상호작용성과 같은 개념들을 뉴미디어의 원리에서 배제하는 논리의 기반에는 반증주의(反證主義)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증주의는 “참인 관찰 언명의 어느 정도 유용성을 갖긴 하지만, 관찰 언명에 근거한 논리적 연역을 통해 보편 법칙이나 이론을 지지할 수 없다. 그 반면에 전제로서의 단칭 관찰 언명을 근거로 하여, 논리적 연역에 의해 보편 법칙과 이론이 거짓임을 밝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귀납적 비약(歸納的 飛躍)을 통해 성립된 과학이론(가설)이 성립되기 위한 전제조건을 만들기 위해 제안되었다.

마노비치는 “뉴미디어는 분절적이다”라는 명제(주장)에 대한 진위를 따질 때 반증주의자들이 ”보편 언명이 거짓이라는 것을 적절한 단칭 언명에서 연역해낼 수는 있다”는 논점을 철저히 활용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다만 (과학철학에서의) 반증주의자들은 과학의 전제를 다루고 있기에 ‘반증가능성’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뿐인데, 마노비치는 미디어의 역사 안에서 보편 언명에 대한 적절한 반증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반증된 명제를 뉴미디어의 정의에서 배제한다.

반증주의자들이 “검지 않은 까마귀 한 마리가 x라는 장소에서 t라는 시간에 관찰되었다”라는 전제를 통해 “모든 까마귀가 검은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추론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노비치는 “전통 미디어인 영화는 시간을 1초당 24프레임으로 샘플 추출한 분절적인 것이다”라는 반증사례를 통해 “뉴미디어는 분절적이다”라는 명제를 기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뉴미디어는 수적 재현이다”라는 명제를 이런 방식을 통해 비판할 수 있지않을까? 이런 비판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전통 미디어가 “x라는 장소에서 t라는 시간”에 “수적 재현”이라는 이런 양식을 띄었음을 입증하면 된다.

미디어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수적 재현 양식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19세기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수학 특히 기하학과 관련 없이 미술을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400년부터 1250년 사이에는 열성적인 교회의 신부들에 의해 고대의 전통이 남아있던 모든 예술 작품들을 파괴되었고, 미술과 수학(물리학)에 대한 위대한 서양의 전통도 함께 파괴되었지만 말이다.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박물관에서 가르치던 유클리드(BC 330? ~ BC 275?)는 <원론(Elements)>에서 공간에 대한 연구를 기하학이라는 학문분야로 성립시켰다. 그는 정신적 추상에 기초해 공간을 직선들의 상상적인 그물망에 의해 연계되어 있는 것처럼 체계화하였다. 또 자연은 이러한 기하학적 접근을 확증시켜주었다.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가 직선이라는 명제는 유클리드의 공간이 단일하고, 연속적이면서 균등한 곳임을 함축한다.

또 피타고라스(BC 582~BC 496)와 그에 의해 창설된 학파는 수학을 통해 정화와 불멸이라는 신비적인 종교의 문제에 도달하고자 했고, 수학적 사유가 인간을 개별적인 사물에서 벗어나 영원하고 질서 있는 세계, 즉 수의 세계로 이끈다고 생각하였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만물은 수이다’라는 주장은 모양과 크기를 갖는 만물의 기초에는 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그들은 대수로부터 기하로, 더 나아가 실재의 구조로 나아갔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를 이해함으로써 그들은 ‘형상(form)’ 개념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들의 영향 속에서 고대인들은 수를 변덕스럽게 변화하고 있는 만물의 근저에 있는 고정불변하는 절대적이고 초월적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기하학적 공간과 수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태도는 플라톤(BC 428/427 ~ BC 348/347)이 “기하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문구를 자신의 아카데미 정문에 새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계의 근원을 수라고 생각함으로써 자신들의 세계를 수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스의 미술가들은 완전성에 대한 추구를 통해 이러한 이상을 성취하였다. 우리가 쓰는 “합리적(rational)”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이성, 논리 그리고 인과성이라는 하부적인 뜻과 함께 비례라는 뜻을 의미하는 라틴어 ‘ratio’로 소급된다. 고대 건축 양식에서 발견한 직사각형의 이상적인 비례는 각면이 5:8의 비율이다. 그리스 신전들은 이 공식을 사용하여 건축되었고, 이러한 완전성의 모델이 지금 “황금비”로 알려진 것이다.

영화가 1초당 24개의 프레임으로 샘플을 추출하여 시간을 근거로 한 분절성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리스인들은 세계의 근원을 수라고 생각하면서 세계를 수적 질서로 해석하고, 또 자신들이 만들어낸 미적(미디어) 양식을 수적 비율을 통해 재현하였다. 이들의 접근이 뉴미디어의 수적 재현보다 더 급진적인 접근이고, 인류문명사에서 보면 “더 어려운 개념적 전환”이었다.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비너스

파르테논 신전은 BC 447년 기공하여 BC 438년에 완성되었다. 익티노스가 설계한 파르테논 신전은 각 부분이 정확하게 기하학적인 비율로 되어 있다. 신전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외부 윤곽은 완벽한 황금 사각형이다. 신전 기둥의 윗부분은 전체 높이를 황금 분할하고 있다. 왼쪽에서 네 번째 기둥은 가로 길이를 1 : 1.618로 황금 분할하고, 다섯 번째 기둥은 가로 길이를 1.618 :1로 황금 분할한다. 또 제일 아래 기단의 가로를 한 변으로 하고 기둥의 높이를 또 한 변으로 하는 직사각형은 황금사각형 두 개를 붙여 놓은 것과 같다.

그리스 말기에 만들어진 비너스(BC 2C ~ BC 1C초) 상에서 황금비로 이루어진 수적 재현의 문제를 살펴보면 배꼽을 기준으로 상반신과 하반신의 비가 1:1.618이고, 상반신만 놓고 보면 머리끝에서 목까지, 목에서 배꼽까지의 길이의 비도 그렇다. 또 하반신에서는 발끝부터 무릎까지, 무릎부터 배꼽까지 길이의 비가 1:1.618이다.

황금비에 대해 그리스 예술가들은 완전비례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시각예술에서는 이러한 특정한 비례가 보편적으로 인정받아 ‘카논’이라고 불리었다. 15세기의 유명한 수학자 파치올리(Luca Pacioli)는 이것을 ‘신성비례’라고, 17세기 초 케플러(Johannes Kepler)는 ‘귀중한 보석’이라고 불렀고 ‘황금비’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세기 때부터이다. 이때 페히너(Gustav Theodor Fechner) 같은 사람은 심리학적 방법을 통해서 황금비에 관한 실험을 행했다. 미를 비례나 조화로 보려는 견해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고대 로마에서 꽃피고, 중세시대의 긴 침잠기를 거쳐 르네상스 이후 찬란하게 부활하여 지금도 미적 기준으로 작용한다.

꽃다발 만드는 법에 적용된 황금비율

<그림. 꽃다발 만드는 법에 적용된 황금비율>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perspective)이 발견되었다. 원근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그리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다. 시선의 법칙에 충실한 원근법은 중세 회화에서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동시에 드러내는 비현실적 공간을 배제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회화를 학예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고, 과학적인 탐구정신을 기반으로 대상을 탐구하고, 회화를 수학적으로 체계화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원근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벽, 마루, 천정에서 멀어지는 선들은 깊이를 나타내면서 그리스도의 머리 바로 위 한 점에 모아지도록 그렸다. 이 소점은 화면에서의 강조점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면서 동시에 화면 전체를 통일된 구도 속에서 파악하도록 한다.

16세기 원근법은 알프스를 넘어 북으로 퍼져 많은 미술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발전되고 정교해 진다. 독일의 뒤러는 <측정법>(1525), <인체비례론>(1528) 등을 통해 원근법이론을 한다.

뒤러, <원근법 연구>

1525년 뒤러의 목판화 <원근법 연구>를 보면 비스듬히 놓여있는 류트의 손잡이 쪽에서 보면 화면에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연구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화가와 사물 사이엔 한 장의 투시화면을 세워 화면을 통해 오는 시선을 따라 화면에서 절단되는 단면을 그리면 정확한 화상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화면에서의 사물의 형상을 정하기 위하여 화가의 눈과 사물을 잇는 선이 화면 위치에서 만나는 점을 찾아내고 있다. 뒤러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배운 미술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방법, 원근법에 매료되어 있었다.

회화와 수학을 체계적으로 연결시킨 최초의 인물인 레오나르도는 “수학의 특성 중에서 증명의 확실성이야말로 탐구자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에, 원근법은 인간의 모든 지식체계와 학설 중에서 으뜸으로 인정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예술(미디어) 형식에서 수적 재현의 문제는 음악에서도 발견된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은 음악에 하나의 정수비가 존재하면, 그 비율에 따라 각 음절들은 조화로운 음정을 이루기 위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이런 예를 통해 ‘만물은 수이다’라는 개념에 대한 개념을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노비치가 뉴미디어의 신화를 비판하면서 쓴 것처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많은 원칙들이 뉴미디어에만 유일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미디어 기술에도 역시 유효”했듯이 수적 재현의 원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예들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위에서 보인 예들이 부족하다면 마노비치가 “상호작용성의 신화”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문장을 인용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모든 고적적인 그리고 심지어 어느 정도 현대적인 예술작품들도 여러 가지 방식에서 ‘상호작용적’이다. 문학적 서사에서 생략, 시각예술에서 대상의 세부묘사의 생략, 그리고 또 그외의 재현적 ‘축도’ 등은 사용자가 잃어버린 정보를 채워 넣도록 요구한다. 연극이나 회화 역시 관람자의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연출이나 구성에 의존하며, 관람자가 디스플레이의 여러 부분들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조각과 건축에서 공간적 구조물을 경험하려면 관람자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이며 돌아다녀야 한다.”

현재 존재하는 조각과 건축은 수학적 비례와 균제, 건축공학의 산물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미디어의 수적 재현은 고대 그리스 이래 지금까지 전승되어 오는 문자 이후 가장 오래된 미디어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뉴미디어 개념에 대한 접근

이렇게 비판했을 때, 모든 뉴미디어에 대한 정의를 기각하고 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 ‘뉴미디어란 무엇인가?’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눈만 껌벅대야 한단 말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방식으로 <뉴미디어론 강의를 시작하며>에서 인용했던 맑스(K. Marx)의 <정치경제학 비판서문>과 나의 제안을 다시 ‘읽기로’ 하겠다.

“구체적인 것은 그것이 수 많은 규정들의 총괄, 즉 잡다한 것의 통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이다. 따라서 사유 속에서 구체적인 것은, 비록 그것이 현실의 출발점이고 따라서 직관과 표상의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총괄의 과정, 결과로서 나타나는 출발점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구체에서 추상으로, 또 다시 추상에서 구체로’의 사고의 운동과정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뉴미디어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다시 이런 과정을 거치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는 뉴미디어라는 어떤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이에 대한 정의를 역사적 사례들과의 대조를 통해 완전하게 새로운 특성의 발견을 통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뉴미디어는 전 미디어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거나 발명되었던, 그리고 지금도 새롭게 발견되고 발명되는 것들 사이의 관계, 그 관계 속에서 어떤 특정한 형태(특성)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강해짐으로 전체가 변형되고, 그것과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어떤 것으로 ‘가정’하면서 이해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 ‘어떤 것’을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고 싶다.)

만일 뉴미디어의 원리가 0과 1로 이루어진 수적 재현의 형식이 맞다 하더라도 이 재현의 형식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규명될 수 있다. 앞에서 마노비치가 비판했던 6가지의 개념들을 생각하지 않고 뉴미디어를 그려낼 수 있을까? 우리가 이것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이런 개념들을 다시 가지고 와야만 한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것으로서의 뉴미디어는 이러한 ‘잡다한 것의 통일’이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구체적인 층위에서 차이적/미분적(differential) 관계가 개체화되는 것을 다루기 위해 ‘강도(intensity)’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미분적인 관계는 강도적인 양을 통해서 개체적 차이로 구체화(분화)된다. 예를 들면 유전자는 뉴클레오티드들의 이웃관계(미분적 관계)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는데, 이러한 관계는 수정란 표면에 새겨지는 힘의 강도들을 통해 상이한 기관들로 분화된다. 이처럼 유기체는 차이적 관계가 작동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관계의 차이에 따라 다른 개체가 되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도 이웃항과의 관계에 따라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동일한 어떤 것이 이웃과의 관계에 따라 뉴미디어가 될 수도 전통미디어가 될 수도 있다.

알뛰세르는 헤겔적인 ‘총체성’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전체로서의 사회구성체’를 사고하기 위해 ‘중층적 결정(overdetermina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프로이드는 이 용어를 수많은 꿈의 사유들이 단일한 이미지로 응축(condensation)되는, 또는 특별히 강력한 사유로부터 정신심리학적 에너지가 외관상 사소한 이미지로 대체(displacement)되는 과정에서 특권적 지위를 얻은 이미지로 꿈의 사유들이 표상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다.

알뛰세르가 프로이드에 기대 이와 똑 같은 개념을 사용한 이유는, 사회구성체의 각 구성요소 내의 모순이 하나의 전체로서의 사회구성체 위에 미치는 효과들을 묘사하여, 주어진 역사적 순간에 지배 내 구조에 있는 모순들의 지배와 종속, 적대성과 비적대성을 규정하기 위해서였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모순 A의 중층적 결정이란 그 복합적 전체 내에서 있는 모순 A 이외의 다른 모순들이 모순 A에 반영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사회과학에 있어 그것을 달리 말하면 모순 A의 불균등 발전이다.)

우리는 ‘중층결정’된, 또는 이웃관계들의 강도들을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전체로서의 뉴미디어’에 접근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다음 시간부터 강의할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에서 다루는 문제이다. (본질주의적 접근이 아닌 관계적 접근을 시도한다.)

참고문헌

1.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 생각의 나무(2004)

뉴미디어의 언어 - 10점
레프 마노비치 지음, 서정신 옮김/생각의나무

2. 앨런 차머스, <현대의 과학철학>, 서광사(1985)
현대의 과학철학 - 10점
앨런 차머스 지음, 신일철 외 옮김/서광사

3. 강태희 외, <미술, 진리, 과학>, 재원(1996)
미술 진리 과학 - 10점
강태희 외 지음/재원

4. 레오나드 쉴레인, <미술과 물리의 만남>, 도서출판 국제(1995)
미술과 물리의 만남 1 - 10점
레오나드 쉴레인 지음, 김진엽 옮김/국제
5. 사무엘 E.스텀프, 서양철학사, 종로서적(1983)
서양철학사 - 10점
사무엘 E.스텀프 지음, 이광래 옮김/종로서적

6. 루이 알뛰세르, <자본론을 읽는다>, 두레(1991)
자본론을 읽는다 - 10점
루이 알튀세르 외 지음, 김진엽 옮김/두레
2009/03/16 20:00 2009/03/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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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가족이 자장면 만들기

오늘(5월 17일)은 아이와 자장면을 만들었다. 원래 강화도 캠핑을 가서 만들려고 했는데 저녁은 솔방울 구이를 하고, 아침은 된장국을 먹어 주말에 해먹기로 약속했다. 약속이라기 보다는 거의 반강제로 하기로 했지만 ... 지난주 초 학교에서 자장밥이 나와 안먹고 버티다가 얘가 늦게 왔다고 아내가 속상했다. 그래서 아이와 자장면을 만들어보자고 했었다.

순호가 다른 얘들과 달리 자장면이든 자장밥이든 자장이 들어간 것을 잘 먹지 않는다. 그래서 자장이 얼마나 좋은 음식인지를 가르치기 위해 둘이 같이 자장면을 만들기로 했었다. 돼지고기, 감자, 양파, 당근을 크게 자르게 한 후 식용유에 볶다가 자장을 넣고 계속 볶았다. 이때 식용유를 조금 더 넣는다. 야채가 어느정도 익으면 물을 적당히 넣고 끓이면 완성이다.

아내는 면은 삶고 자장은 순호와 내가 함께 만들었다. 자장이 달지도 않고 담백하니 맛이 있다. 중국집 자장면은 너무 달아서 조금 싫다. 그리고 감자하고 야채, 고기가 큼직하니 자기 맛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내가 처음 자장을 볶아 면에 부으면 '자장면'이 된다는 것은 알고 춘장을 사다 처음 자장면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아이가 잘 먹는다 싶더니 마지막에 더 못먹겠다며 토하려고 한다. 조금 많이 준 것 같기도 하다. 함께 자장면을 만들었다고 해서 앞으로 자장으로 만든 음식을 잘 먹을까? 그래도 도움이 되겠지하고 생각을 한다. 음식을 만들면 어떤 일이 있을까? (서양) 사람들은 창의성 이야기를 한다. 왜그럴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었다.

정말 그런 것 같다. 음식은 창조적 사고를 키운다. 여러가지 식재료/자연물을 섞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낼 때를 생각해보자. 아무도 먹지않고 버리는 재료를 잘 다듬고 적절하게 사용하여 맛을 나는 경우도 있다. 또 아주 궁합이 맞지않을 것 같은 것을 곁들여 기가 막힌 맛을 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창의적 맛을 보려면 용감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음식은 문화이고, 특정 문화 속에서 사람의 입맛은 길들여지기 때문이다. 또 특정 문화에서는 식재료로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것을 다른 곳에서는 쓰기도 한다.

음식이 창조적 사고를 키운다는 것은 이런 측면에서이다. 특정한 습속(문화와 관습)이 사람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강제하고 있는 규칙을 깰 때 새로운 맛을 만들어낼 수 있다. 또 이런 음식을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그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 또한 창의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굉장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포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마음가짐만 가지고 될 일은 아니고 비위가 강해야 한다!)

음식은 가장 오래된 문화적 구조물이 아닐까? 그리고 문화적 구조물이 규칙들(rule)로 만들어져있다고 할 때, 이 규칙을 익히고, 다시 이것에서 벗어날 때 창의적인 음식이 나온다. 어른들께 음식 가지고 장난한다는 말을 듣기도 하겠지만 ..

아이가 항상 새로운 것을 먹으려들지 않는다. 그러면 억지로라도 먹이는 '악취미'를 가지고 있다. 먹어보지 않으면 맛의 세계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잘 안먹으면 함께 음식을 만들어 본다. 자장면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감자, 돼지고기, 양파, 당근, 그리고 면이 들어간다는 것을 이제 알 것이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나도 특정 음식을 떠올리면 '구역질'이 난다. 또 맛조차 보지않으려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참고 먹다보면 언젠가 맛을 느끼겠지 생각하지만 .. 글쎄, 정말 그럴까?

아직도 비싼 회의 맛보다는 초장의 맛이 더 좋다. 입맛은 어렸을 때 거의 완성된다고 한다. 미각세포가 이때 모두 발달하기 때문이다. 어려서 산골에서 거친 나물과 야채만 먹은 내 입으로 회의 맛을 알기란 어렵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산나물은 먹는데 있어서는 다른 사람보다 났지않을까?

두릅과 포도주 - 너무 맛있어..싱싱한 두릅
 
지난 달(4월22일) 처가에서 두릅을 조금 받았다. 바로 데쳐서 포도주를 꺼내다 함께 먹었다. 옆에서 조금 나눠먹은 아내는 궁합이 맞는다고 놀라워한다. 내게 포도주 안주로는 치즈보다 두릅이 났다. 창의성이라기보다는 못난 시골 입맛에 포도주가 만난 것이다. 서로 잘 연결되지 않는 두가지 문화가, 시골에서 자라 도회적 삶을 사는 내 몸 속에서 공존한다.

창의성은 서로 다른 차이들의 만남이다. 이 차이들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것이 불쑥 튀어 나온다. (기존의 규칙에서 벗어난) 그것을 보고 느끼면서 사람들은 새롭게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자장면에서 너무 멀리 나갔다.
2008/05/17 20:03 2008/05/1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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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휴가이다. 휴가 중에 그동안 게으르게 뒤로 밀어뒀던 자동차의 고장난 부분을 고치고, 아내의 신발을 함께 사러가고 한의원에 들렸다.

그래도 나에게 휴가의 백미는 누워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읽다가 지치면 자고, 자다가 깨면 다시 책을 읽는 것이다. 이번달 8일에 샀는데 제목만 보고 던져놨던 이정우의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을 읽었다.이정우라는 '유목적 사유자'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에 대하여 쓴 글이다. 책을 읽으며 나보다 10년을 더 산 이정우와의 차이보다 동질감을 느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말이다. 그와 내가 걸어온 길이 다른데도 말이다.

탐독 - 6점
이정우 지음/아고라

이정우가 교사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에 파묻히기 시작했다면 우리집에는 서재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은 한달에 한번씩 교당과 봉황대를 오르내리며 먼지 쌓인 마루를 청소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이후로 '동학쟁이'였던 까닭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가 '동학쟁이'였던 까닭에 나와 형들은 한달에 한번 청소를 하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동네 한가운데 있던 낮으막한 동산의 꼭대기에 있던 텅빈 봉황대에 촛불을 켜고 앉아 주문을 외웠다. 그 어둑함과 좁은 산길을 오르내릴 때의 차가운 공기와 나무 냄새들, 저쪽 어둠 속에서 울던 밤새 소리들. 이런 경험이 아직도 내 도덕적 사유의 한 끝을 잡고 있다. 스스로 몸을 닦아 윤리적으로 고양되는 삶! 모든 사람이 하늘이라는 생각!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소위 말하는 교양서보다는 셋째 형을 따라 무협지를 더 많이 보았다. 이정우가 삼국지를 읽을 때 와룡생, 사마달, 검궁인, 냉하상 등의 책을 읽은 것이다. 다만 문학도였던 둘째 형이 밤새 쓴 시를 두 동생을 앉혀놓고 읽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생활은 몇 년동안 지속되었는데 이때가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동서양의 고전과 같은 이론(또는 교양)의 세계보다는 '생활세계'에서 주어진 어떤 느낌들의 중첩이 현재의 나를 결정한(영향을 준) 것같다.

철학과를 선택하게 된 동기도 그렇다.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못했으나 스스로 '민족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철학이, 막연한 철학적 무게가 필요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땐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민족적(동학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고 대학에 들어가 처음에는 동양철학 (사서삼경과 같은) 원전 강독을 꽤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을 더 많이 공부했다.

이정우가 자연과학(공학)을 공부하고 철학으로, 그리고 현재의 '유목적 사유'를 즐기는 이정우가 되었다면, 나는 철학에서 사회과학(특히, 정치학)을 왔다 갔다 하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석사, 박사, 그리고 교수까지 갔던 그의 학문적 이력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그리고 이젠 미디어의 세계를 이리저리 맴돌고 있는 나의 삶과 비교하기 그렇지만.

80년대의 상황이 이정우에게 생각하기를 강제했던 것처럼, 80년 막바지의 상황이 나에게 생각하기를 강제했다. 이때 나의 꿈은 죽기 전에 국가론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나는 알뛰세르에서 그람시로, 푸코로, 그리고 브르디외, 들뢰즈로 움직여 갔다. 나의 화두는 국가였고, 폭력적 국가장치들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였다. 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추상화된 개념이 구현되는 형태를 장(場, camp), 담론, 계열화 등의 개념에서, 이정우가 <탐독>에서 이야기하는 바로는 사건의 철학 속에서 찾았다.
 
나는 가끔 동시대에 산다는 것, 시대정신을 함께 나누어가진다는 것을 알고 온몸이 짜르르 진동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을 어떤 사람의 글 속에서 읽을 때가 그렇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이정우보다는 이진경의 글에서 많이 느끼곤하느데, 내가 군대에 가서 (운동권에서 말하는) 원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못읽게 되면서 푸코에 빠져들게 되 것과 이것을 맑스적으로 해석하고, 맑스에게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려고 하면서 가게된 경로가 이들이 가고있던 경로와 비슷했기 때문일까? 푸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푸코를 읽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영천 3사관학교와 광주 상무대에 있으면서 푸코의 <성의 역사>, <말과 사물> 이런 것들이 보안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의 역사>를 보면서 야릇하게 웃던 훈육관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동시대를 산다는 생각은 책 속에서 뿐만이 아니라 회사를 다니면서도 느끼는데, 서로 다른 처지, 회사에 있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려는 것을 직접 듣거나, 어딘가에서 전해들을 때이다. 그럴때면 혼자 있는 것이 아닌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떤 자신감 같이 것이 모락모락 마음 속에 피어오르기도 한다.

<탐독>은 3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소년/청년시절 읽었던 문학작품에 대한 가벼운 평을 쓴 부분, 대학시절 공학도로서 만난 과학적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원에서 철학을 배우고 다시 사유하면서 읽은 책들.

사실 나는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다. 아니 애써 관심없는 척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한번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을 읽다가 어떤 영감을 얻으면 몇날 며칠을 잠을 못자기 때문이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리장성도 쌓았다 부셨다 하면서 지낸다. 회사를 안다니고 직업적 작가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내다간 회사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굳이 읽으면 시집을 읽는데 왜냐하면 시라는 형식이 소설보다는 생각이 나면 쉽게 옮겨적어 놓을 수 있어 이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섰던 동기가 소설가 같은 글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것이긴 하지만 직업적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지 오래다. 지금 사는 삶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동료들과 함께 소설은 아니지만 다른 양식으로 표현하는 창조적인 삶을 산다고 믿고있다. 굳이 된다면 '낮에는 일을하고 밤에는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싶다.

문학작품에 대한 이정우의 생각은 어른이 된 이정우의 눈으로 말하는 것이겠지만 어릴 적 기억을 더듬는 형식을 취한는 관계로 깊다기보다는 인상기에 가깝다. 굳이 평하라면 원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사이버 펑크에서 철학으로>에 대한 이호준의 평을 읽어보라하고 싶다. 하지만 <탐독>이 자신이 살아오면 읽었던 책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라 사실 이런 평을 갖다 붙이는 것이 정당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둘째 장과 세째 장을 넘기면서는 나는 이정우에 대한 부러움을 갖게 되었다. 내 스스로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과학적 성과를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스티브 호킹의 <시간의 역사>나 물리학 교과서, 과학사 책을 들척이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생소한 수식 앞에서 갖게되는 좌절감이란! 철학도로서 존재론을 공부하면서 갖고 싶었던 것을 공학도였던 이정우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소은 박홍규라는 은사와의 만남에 대한 강조이다. 사실 학부만을 다닌 나로서는 깊이 철학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은사라고 할만한 분을 만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분이 계셨다면 하는 부러움을 갖기에는 충분하다. 이정우처럼 석사와 박사까지 공부했다면 이런 분을 만났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루진 못했지만 <근대세계체제>을 쓴 월러스틴을 찾아 유학을 떠날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스탈린의 일국 혁명론에 불만이 가득하던 시절, 신식민지라는 개념에 대해 회의를 품던 시절의 일이다.

대학시절 나의 스승은 선배들과 거리의 정치였다. 선배들은 '철학과에 왔으니 철학이나 공부하라'며 줄 곧 철학사 중심의 철학만을 공부시켰다. 남들이 읽는 사회과학 서적이 눈에 보이면 '압수'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데모(가투, 가두투쟁)에는 빠짐없이 나가도록 '종용'했다. 1학년부터 한주에 2~3번씩될까? 2~3시간 지속되는 세미나를 했는데 계속되는 발제와 질문, 면박! 그리고 2학년 여름방학이 되면서 공부하던 학회가 발전적으로 '해산'을 했는데 선배들 왈 '자신들은 변증법적 사유의 기초를 가르쳤노라'고 했던 것이다. 아둔한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참이 되서야 그 의미를 이해했다. 선배들은 철학사를 통해 개념적 사유의 방법/역사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사실 함께 공부했던 분들은 말이 선배지 학번 차이는 별로 없지만 나이가 한 열살은 많은 분들이었다. 데모를 하면서도 '싸움꾼'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론가'를 꿈 꾸었다.

지금도 방 한구석에 최근 다시 언론에 나오기 시작한 '강경대사건/김기설씨(또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당시 주워 모은 전단지가 한꾸러미 있다. 언젠가 국가론을 쓰겠다면, 오늘의 사건의 구조를 분석하겠다며 모아 놓은 것이다.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된 최근의 기사와 과거에 주장되었던 '사실들'을 보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동작하면서 사건을 계열화시키고 허위를 '사실'로 만드는지, 또 이것이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획득하는지를 볼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정치사회적 사건뿐만이 아니라, 산업에서도, 지적인 장에서도 일어난다.)

요즘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원전(여기서는 철학 원서이다)을 읽었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철학은 철학사, 개론서를 가지고 공부하면 안된다는 이정우의 말에 공감이 간다. 어떤 이론도, 사물도 마찮가지이겠지만, 가지를 치고 중요한 줄기만 남겼을 때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푸른 잎과 여유롭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늘을 잃고 만다. 개론서나 철학사가 나름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 그것을 던져버리고 원전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처음엔 더디겠지만 원전의 세계로 먼저 나갈 수 있다면 뒷심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때 옆에 책을 함께 읽어주고 생각을 도와 줄 훌륭한 스승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탐독>을 읽으면서 가장 나를 좌절시킨 부분은 "철학은 오로지 원전 텍스트, 그것도 원어 텍스트를 가지고서 이야기할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이다"(p.286)라는 구절이다. 그러면서 "헬라어로 <티마이오스>를 읽고, 한문으로 <주자어류>를, 독일어로 <정신현상학>을, 프랑스어로 <차이와 반복>을 읽을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나에게는 좌절감을 주었지만 만일 이호준이 이책을 읽었다면 이런 부분에서 또 다시 김용옥의 '냄새'(또는 大家다운 풍모)를 맡지 않았을까? 이정우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보다는 '모든 사람은 철학자'라는 그람시의 편에 서 있다. 이정우가 '엄밀성'을 전제로 두고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 외국어는 영원한 숙제이다. 시간과 돈만 잡아먹는 영어 공부를 다시는 안하겠다고 마음먹은지 몇년이 지난 요즘, 회사일로 자주 외국인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하나 하고 흔들리고 있긴하다. 좋아하는 철학보다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한가보다. 나도 직업으로서 철학을 하고 있다면 이런 말을 했을까? 아니면 원전을 읽기 위해 다른 언어를 열심히 배웠을까?

또 사소하지만 이정우에게 부러운 부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유학을 갈 것을 여러 번 종용하시기까지"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대학원을 가려고 '군대'를 간 웃기는 놈이다. 집이 대학원에 다닐 학비를 대줄 형편이 못되서 돈을 좀 모아보자는 심산으로 학사장교를 지원했다. 군에 지원을 하기위해 서류를 떼러 갔을 때 속도 모르고 '이 성적으로 대학원엘 가지 군대에 가느냐'고 묻던 분이 생각난다. 결국 이때 모은 돈은 제대 후 결혼 자금이 되었다. 공부보다는 연애하고 지금의 아내와 사는 것이 더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철학과나 정치학과가 아닌 경영학과 대학원에를 갔다. 노동자를 위한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마지막으로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운동권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겪은 정치적, 역사적 체험을 내 사유의 근원으로 삼고 싶었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사유하든 그 근원을 영원히 잊지 않고 살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때 내 가슴 속에 타오른 불길은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다."(pp.367~368)고 이정우가 말하고 있다. 서 있는 곳, 바라보는 곳은 다르지만 나도 그렇다. 이것이 어떤 시대가 어떤 세대에게 던져준 화두가 아닐까? 우리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우리를 여전히 옴짝달싹 못하게 눌러대는 세계-자연, 사회, 인간-에 대해 알고 싶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따스한 햇빛이 드는 거실햇빛을 받으며 뒹굴기
▲ 가장 행복한 순간: 햇볕이 따스하게 드는 곳에서 배를 깔고 책을 읽을 때, 어디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그리고 아내가 과일을 깍아준다면 더 좋을텐데...... 뒹구는 포즈
2007/11/22 02:50 2007/11/22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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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상의 대항해, 지식인들의 망명 1930~1965』, 개마고원, 2007

9월 29일부터 지식인들의 망명을 읽기 시작했다. 2차세계대전과 함께 유럽을 떠나 영미로 망명한 지식인들에 관련된 사회사상사이다. 비트게슈타인, 보르게세, 노이만, 아렌트,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하르트만, 에릭슨 등에 대한 이론소개, 평가, 약전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책 내용은 읽기 쉽고, 객관적으로 평가하면서 배경·시대적 맥락에 대한 소개가 좋다. 스튜어트 휴즈가 지은 총3권으로 되어있는 서구지성사 3부작 중 한권이다.

지식인들의 망명 - 10점
사회사상의 대항해: 1930~1965
스튜어트 휴즈 지음, 김창희 옮김/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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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브레히트,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 등이 살았던 시대상황과 주변 인물들은 연관관계를 보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대중문화, 복제, 기술 등에 대한 20세기 초기의 철학적 생각을 정리하고 "아우라 부활"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서이다. 읽은 부분 중에서 비트겐슈타인에 해당되는 2장 <대이주의 서곡 - 영국의 철학>이 가장 인상 깊었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 책에서 알지 못했던 그의 삶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되었기 때문이다.

<미디어2.0-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2007 p.35의 "언어놀이(spradhspiel)"에 대한 설명

언어 게임이란 어린이가 말을 사용하기 시작할 때의 언어형식이다. 언어 게임의 연구는 원시적인 언어형식 혹은 원시적인 언어의 연구이다. 만약 우리가 진위, 명제와 실재의 일치여부, 주장·가정·질문의 성질 등의 문제를 연구하고 싶다면, 이러한 사유형식들이 고도로 복잡한 (현대의) 사고과정처럼 우리를 혼란시키는 배경을 갖지 않는, 그런 원시적인 언어형식을 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단순한 언어형식을 보게 되면,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사용을 둘러싸고 있는 정신의 안개는 말끔이 걷힌다. 우리는 명백하고 투명한 행동, 반응을 본다. 우리는 또 한편으로 이 단순한 과정들 속에서 우리의 보다 복잡한 언어형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어어형식들을 찾아낼 수 있다. 우리는, 우리가 원시적인 언어형식에다 새로운 형식들을 점진적으로 더붙여 나감으로써 복작한 형식을 세울 수 있음을 알게 된다. p.75

웹2.0의 "집단지성"(<미디어2.0>, p.35를 볼 것)은 아주 "원시적인 언어형식"으로 "명백하고 투명한 행동, 반응"을 기대할 수 있도록하는 "언어게임"이다.

사진속의 비트겐슈타인과 책 속의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

… 비트겐슈타인이 길들여졌다거나 그가 '정상적인'  학자로 변모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그는 여전히 외적 형식을 대할 때와 똑같은 혐오감으로 대학생활의 관습을 피했다. 그는 트리니티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식사하려 하지 않았고, 또 교수처럼 행동하거나 옷을 입으려하지도 않았다. "누구도 비트겐슈타인이 정장하고 넥타이를 매거나 모자를 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의 얼굴은 갸름하고 갈색이었으며, 그의 옆모습은 약간 굽은 듯하면서도 매우 수려했다. 그의 머리는 숱이 많은 갈색 곱슬머리로 덮여 있었다.
강의할 때든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때든 비트겐슈타인은 항상 강세를 넣어서 독특한 어조로 말했다. 간혹 그의 구문 중간에 독일어투가 끼어들기도 했지만, 그는 교육받은 영국인의 억양이 포함된 훌륭한 영어를 구사했다. 그의 목소리는 맑았고 음조는 보통 남자의 목소리보다 약간 높았지만 불쾌감을 주지는 않았다. 또한 언변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 말할 때 그의 얼굴은 아주 표정이 풍부했다. 그의 눈은 그윽했고 종종 무엇인가를 격렬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가 풍기는 전체적인 인상은 상대방을 압도하는 것이었고 심지어 장엄하기까지 했다.

이런 사람에게 그의 신분에 맞는 행동을 하라고 조금이라도 요구하게 되면, 그것은 지독한 고문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의 학자로서의 경력에는 잠정적이고 자포자기적인 기미가 엿보였다. 1930년대 중반에 그는 소련을 방문해서 그곳에 놀러앉으려고 생각하기도 했다. 제2차 세게대전이 발발하자 그에게 대학생활의 일상사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또 한 번 주어졌다. 의료기술자로 복무함으로써 자신이 항상 존경해오던 물리적 사실의 세계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의 청년기의 연구주제는 공학이었으며 일생 동안 기계를 만지작거리기를 좋아했다. 전쟁이 끝나자 2년 동안 교수직에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1947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말았다.
그는 아직 60대 전이었는데 실제보다는 젊어보였다. 그러나 마치 앞으로 살날이 수 년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그는 케임브리지에서 하던 작업을 완성시키는 데 그의 모든 노력을 경주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극도로 민감하고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물은 그의 지적인 생황를 시작했을 때(아래 러셀과의 일화를 볼 것)와 마찬가지로 외로운 방랑자로 그 생활을 끝나쳤다. 결혼도 하지 않고 교제도 남자에게만 국한한 채-물론 그 교제는 정열적이기도 했고 때론 순탄치 못하기도 했지만-비트겐슈타인은 니체나 베버처럼 거의 광인에 가깝게 살았다. 자신이 이미 미쳐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음이 분명했다. 그 자신이 도덕적으로 순결하지 못하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가 의식을 잃어가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나는 멎진 인생을 살았다고 그들에게 말해주시요"라는 것이었다. pp.71~73

… 그들[비트겐슈타인의 친구가 된 학생들]은 그의 엄격함과 우울함을 참아냈고 그가 정말로 즐거워하는 순간을 드물게만 맛보았다. 그들은 그의 지적·도덕적 성실성을 인정했으며 그가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보다 자기 자신에게 더욱 엄격하다는 사실도 인정했다. 한번은 인간의 위대함에 관해 이야기하던 중에 그는 위대함의 척도가 "그 일 때문에 자신에게 가해지는 희생을 그 사람이 얼마나 감수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비트겐슈타인을 잘 아는 학생들은 그가 스스로 어두운 세상에 가냘픈 이해의 등불이라고 취급하던 것을 위해 얼마나 엄청난 대가를 치렀는지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p.77

비트겐슈타인

20대 중반에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1912년의 세 학기와 다음 해의 두 하기를 수학했다. 여기서 그는 무어와 특히 러셀을 알게 되었는데, 러셀 경은 이 젊은 방문자가 한 학기 수업을 마친 후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이 물었을 때 느낀 당혹감을 이렇게 회상했다.

"교수님께서는 제가 완전히 천치라고 생각하십니까?" "자네는 왜 그런 것을 알려고 하지?"라고 내가 반문하자, 그는 "그것은 제가 천치라면 저는 조종사가 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철학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 나는 자네가 완전히 천치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었지만 만약 자네가 이번 방학기간 동안 무엇이든 흥미있는 철학적 문제에 관해 글을 한 편 써서 보여준다면 내가 그것을 읽고 자네에게 이야기해주겠네." 그렇게 해서 그는 다음 학기가 시작되자 자기가 쓴 글을 나에게 가져왔다. 나는 그 글의 처음 문장을 읽자마자 그가 천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에게 전혀 조종사가 될 필요가 없음을 설득시켰다.

이리하여 비트겐슈타인은 케임브리지에 정착해서 체계적으로 철학 서적들을 읽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결정했다고 해서 그의 행동에 대한 러셀의 당혹감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매일 한반중에 나를 찾아와선, 성난 야수처럼 침묵 속에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내 방을 이리저리 서성이곤 했다. 한번은 내가 물었다. "자네는 지금 논리학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아니면 자네 자신의 죄에 대해 생각하고 있나?" "둘 다요." 이렇게 한마디 하고는 계속 방 안을 서성거렸다. 나는 이제는 잘 시간이라고 알려줄 수가 없었다. 그가 내 방을 나서는 순간 그는 자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와 나 모두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러셀은 비트겐슈타인의 천재성-"열정적이고 심오하며 강렬하고 출중한"-에 대한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무에 그런 부담스런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고, 그 자신에게 "좌절감"을 안겨줌으로써 "다시는 철학의 기본적인 연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나마 그에게 불러일으켰던 손아래 사람의 기술적인 비판까지도 참을 수 있었다. pp.58~59

비트겐슈타인의 첫번째 사진을 보면서 그윽하고 깊은, 하지만 어딘가 침울하면서도 고독하고 두려움에 떠는 듯한 눈빛에 끌렸다. 그런데 그의 철학이 아닌 삶을 보면 왜 이런 눈빛을 갖게 되었는지를 알 것 같다. 눈을 들여다보면 착 가라앉은 심연 모양의 내면을 볼 수 있다. 바다 위의 높은 파도 아래 어둡고 무게에 눌려 꿈쩍도 않하는 심연이 있는 것처럼 강렬한 열정 아래는 견디지못할 존재가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비트겐슈타인을 읽으면서 들뢰즈를 이해할려고 노력했다. 둘 사이에 어떤 '가족유사성'이 존재한다. 언어상황과 의미의 계열화라는 측면에서. 극단적으로 생각려는 그의 태도(p.82~83)는 알뛰세르의 방법론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을 아닌가?
2007/10/07 16:35 2007/10/0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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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미디어2.0>을 쓰면서 인터넷에서 철학자 몇 사람의 사진을 찾아서 붙여놨는데 뺐으면 좋겠다고 한다. 틀린 말이 아니라 제외하긴 했지만 아쉬움이 남아 이곳에 그 자취를 남긴다. 아래는 출판사에 보낸 초고에 대하여 온 의견이고 볼드체는 사진이 있던 소제목들(chapter)이다. 사진이 있던 위치를 찾아볼 수 있도록 페이지 전체를 캡쳐했다.

3. 이 책의 컨셉을 분명히 하여 선택과 집중에 충실해야 합니다.

이 책의 주제(내용), 집필 의도는 분명 ‘미디어 전략’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에 여러 철학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현상을 분석하고 문제와 해결점을 찾아가는 데 철학은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한 인용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원고의 집필 의도가  “철학적 관점에서 본 미디어 전략”이 아니기 때문에, 철학적 부분이 제목으로 강조(예: 비트겐슈타인: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기)되어 나오거나, 본문에서  특별히 강조된다면(예: 비트겐슈타인, 부르디외의 사진 등), 이 책이 철학책인지, “미디어 전략”에 관한 책인지 혼선을 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의도하신 철학적 근거(바탕) 제공이라는 좋은 아이디어는 살려주시되, 이 책의 컨셉이 흔들리지 않도록 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가족유사성과 집단지성,미디어2.0지도 만들기

비트겐슈타인
기술주의와 시장주의

브르디외


계열화의 논리와 배치의 문제

들뢰즈


모든 것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연초, 아니 작년 하반기부터 회사 일을 하면서도 느끼는 것이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하는데! 알면서도 그것이 잘안되는 것이 또 사람이다. 아니면 상황이 2개의 일 중 어느 하나라도 소홀히 대할 수 없도록 만들 때가 있다. 역량을 유료 프리미엄 서비스에 집중해야 하느냐, 사이트 트래픽에 집중해야 하느냐는 것이 연초부터 집중적으로 받아온 질문이다. 유료 프리미엄 서비스는 DCP(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사업에서 추구하는 방향이고, 트래픽은 NeTV(UCC)서비스가 가려고 하는 곳이다. 둘 다 한팀에서 하고있고 자원은 한정되어 있다. 특정 팀에 일이 몰려있다. (팀장으로서) 선택해라! 그리고, 하나에 집중해라!

미래와 현재/과거가 걸쳐져 있는 전환기에는 이런 요구에 대한 답을 찾기가 어렵다. 또 둘이 서로 다른 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한에는 더욱 그렇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조화와 균형의 문제다. 상황이 강제하는 어정쩡한 위치... 갈팡질팡하지 않으려면 두개의 전술을 하나의 전략/목표 아래 묶어야 하는데... 이것에 대한 이해의 일치를 끌어내기가 어렵다. 설득의 기술이 부족하거나 시간이 더 필요하다.

나는 둘 다를 선택하고 욕심 사납게 둘 다 집중하겠다고 마음 먹었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은 스스로 서비스가 되어야한다.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서비스! 이 안에 트래픽과 유저 서비스가 녹아들어가도록 만들자! 우리는 두개의 전선(전장, 싸움터)에 직면해 있다. 무료, 트래픽, 광고로 가는 동영상 서비스 계열(UCC)과 유료, 로열티, 고화질/실감영상으로 가는 IPTV, 케이블과 같은 계열. 둘 다 놓칠 수 없다. (둘 다 답일수도, 하나만 답일수도, 아니면 미래의 어는 순간 둘다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다.)

토끼 두마리를 한번에 잡는 법은? 우선 순위를 정하고 차례대로 잡는다. 이런 답은 형식 논리일 수 있고 현실은 더욱 복잡하고 상황(객관적 조건, 전체 경향성)은 이런 것을 허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결국은 상황 인식의 차이가 깔려있다.

현실에 천착해야 한다. 문제와 답이 모두 이곳에 있다. 서로 다른 노선/방향의 차이도. 그런데 세계의 다면성/다양성(수 많은 양태)은 이런 차이를 품고 있다는 것 또한 부정하기 힘들다. 결국 의지와 결단의 문제인가? 철학자들의 가르침. 의지의 낙관주의! 인간의 의지가 또 현실을 만들어낸다(세계가 안고 있는 잠재적인 가능성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인간의 열정/실천이다).

우리가 서있는 세계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극단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우리는 객관주의(실증주의?)와 주의주의 사이/경계에서 위태롭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잘못하면 주의주의자(극단적 모험주의자?)가 되거나, 활력이 떨어진 현실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감나무 밑에서 감이 떨어지길 기다릴 수는 없다(방송사 밑에서 콘텐츠가 떨어지길 기다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너무도 현실주의적이기 때문이다(또는 언제나 감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모험같이 보이지않을 수 있는 우리의 모험은 이와 같은 견제 위에서 가능하다. 우리의 조건은 이미 우리가 결코 극단적 모험주의자가 될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 힘이 너무 강해서 우리는 더욱 한계(조건) 넘어서는 사고를 해야만 겨우 조금 앞으로 갈 수 있을 뿐이다. 한계를 한계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변화를 만들 수 있다. 이곳에서 주의주의가 작동한다.

이런 의지와 현실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미디어2.0>을 썼다.  단기적으로 우선 순위의 조정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것은 전략이나 전술의 차원도 아닌 '기술(technic)'/전기(전투기술)이다. 우린 5년 뒤, 10년 뒤 우리의 모습을 상상한다(그러면 가슴이 벅차기도 하고, 때론 의기소침해지기도 한다). 긴 호흡에서 보면 우선 순위가 없고 그때 그때 강조점이 달라진다. 전술적 유연성! 하지만 모든 사건/일을 하나로 꿰뚫는 전략적 일관성! 행위의 논리적/실천적 이유를 제공하고 설명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전략이고 이것이 체화될 때 올바른 전술이다. 하지만 오늘도 여전히 선택과 집중의 중요성/당위성과 이에 대한 답변을 요구받았다. 여우의 간지와 사자의 용기가 필요하다.
2007/09/29 00:51 2007/09/29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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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국에 방문 중인 구글 본사의 고위급 인사와 인터뷰/discussion을 했다. 아래 내용은 이야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아래에서 video identification system은 SBSi에서 필드 테스트 중인 영상패턴 검색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구글에 대한 생각을 기회가 있으면 한번 정리하겠다. 개인적으로는 구글이 "악해지고 있다"(또는 이미 "악해졌다")고 생각한다.

google search

  1. 구글이 한국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와 지속적 투자여부는?
    • 초고속인터넷 사용자가 90% 이상
    • 모바일의 경우에는 더욱 높음
    • 다른 곳에서 흉내낼 수 없는 최첨단 시장임
    • 따라서,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임
  2. Localization 방향은?
    • User Experience를 중시하면 이를 강화하기 위해 한국어 서비스를 준비 중
    • Localization, Customization을 이야기 하지만  Google의 브랜드는 유지할 것
    • 이런 부분을 가지고 정부, 규제 당국과 협의 중
  3. Seoul Digital Forum에 에릭 슈미트회장이 와서 "Be Local"이라고 했는데...
    • "Be Local"이 이상적인 형태임
    • 하지만 현재 Google의 엔지니어링 팀이 모두 미국에 있어 미국의 엔지니어링 팀이 개발한 기술을 이용하여 먼저 Localize를 하고, 장차는 한국 내에서 자체적으로 "Be Local"을 추진할 것
  4. Google은 포털인가? 미디어인가?
    • 구글은 Portal도 미디어도 아님
    • 구글은 Technology Company임
      • 포털도, 미디어도 아니고 스스로 Technology 기업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떤 기술이냐하면 콘텐츠를 이용할 수 있는 Infra, distribution, promotion 등을 지원하는 기술-검색과 같은-을 말함
      • 콘텐츠를 생성하거나 소유하지도 않음 (We don't creat content. We don't own content.)
    • 콘텐츠를 생성,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파트너사가 필요함
      • Traffic은 파트너사로 보냄
      • 구글 홈에서 검색 시 속도를 재고 있으며, 이것을 재는 이유는 user들이 얼마나 빨리 원하는 콘텐츠/사이트를 찾는냐, 얼마나 빨리 구글을 떠나 Target Page로 이동하느냐를 측정하는 것인데, 이것은 user가 원하는 콘텐츠를 가장 빨리 찾아 떠나도록 하는 것이 구글 검색의 목적이라는 것을 보여 줌
  5. YouTube.com은 어떤가?
    • YouTube.com도 4번과 마찮가지의 관점에서 봄
    • youtube.com, video search의 성공여부는 user들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파트너사로 보내는냐에 있음
    • 또, 파트너사를 돕기 위해 AD Sense를 이용하는 것, 파트너사의 콘텐츠를 프로모션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등을 검토(진행?)하고 있음
    • 파트너사의 시청률을 높이고, DVD 판매량을 늘리는 것에 있음
  6. 한국에서는 customer/enduser들이 포털의 검색을 매개로 사적인 이득을 취할려고 하고 있다. 웹하드, P2P 등의 사이트로 블로그, 동영상 검색 등을 통해 이용자들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해결할 방법은?
    • youtube는 다운로드가 아니라 스트리밍만 함
    • youtube 내부에는 저작권 보호규정있고, 저작권자는 자기의 콘텐츠에 대해 표시(marking)을 하고, 그래로 유지하거나 내려달라고(take down) 요청하면됨
    • 미국에서는 콘텐츠 소유주에게 모니터링을 책임이 있으며, 발견할 경우 내려고 요청하면 됨
    • 현재 이런 규정들은 한발 늦게 대응하는 것이며,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 내에서 beta 테스트가 진행 중인데, 아마 미국 내에서는 조만간 시작될 것이고, 한국은 일정은 ...
      • video identification system ... 파트너사의 레퍼런스 콘텐츠를 먼저 등록하면 그것을 기준으로 user들이 올리는 콘텐츠가 누구것인지 mapping하여 콘텐츠 소유주가 원하면 해당 콘텐츠를 올리지 못하도록 하고, 소유주가 콘텐츠 홍보를 위해서나 광고수익을 위해서 허용하면 그대로 둘 것임
      • 콘텐츠 소유자가 허용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권한이 있음
  7. (6번 질문에 이어) 저작권에 대한 Google의 태도는?
    • 영어로 fan은 fanatic(광신자, 열광자)의 의미를 갖음
    • content의 fan도 그렇다고 생각됨
      • fan은 자신의 열의로 시간을 써가면서 콘텐츠를 upload함
      • 팬의 열정을 콘텐츠 소유주가 활용하면 됨 (6번에서 홍보, 광고 등의 방식을 통해)
      • 소유주가 통제권(control)을 갖되, 이를 긍정적으로 보고 활용해야 함
    • 이런 점에서 보면 Google은 저작권에 대해 공적적인 측면이 있음
  8. 이런 user가 팬이냐, 아니냐의 판단 근거는? 콘텐츠 소유주가 평가하고 선택(choice)할 수 있는가?
    • 기술적으로 복잡하고 아직까지 전세계적으로 개발사례가 없는 것은 사실임
    • 올해 가을 beta try가 있을 것임 (6번 질문의 답을 볼 것)
    • user의 열정과 관심을 상업적 매출로 접근/근접하게 만드는 것이 과제
      • 콘텐츠 소유주는 콘텐츠의 upload 수 등을 이용하여 user의 열정, 관심을 받고 있는 테마나 쟝르를 알 수 있을 것
      • 이것은 고객 취향을 research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
      • SBS와 같이 콘텐츠를 통제할 수 기업에게는 기회가 될 것(?)
      • video에 있어 Google과 이해관계를 같이할 수 있는 파트너가 필요
      • 한국의 미디어 중 sbs가 smart하고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
  9. 전세계에서 video 사업의 파트너십은?
    • 영국 BBC는 성공사례라고 할 수 있음
    • 유럽 전역에서 국가별로 하나 이상의 파트너를 갖고 있음
    • 중국과도 deal이 성사됨
    • 일본에서는 대화 중 임
    • 한국에서는 아직 파트너가 없음
    • 파트너들에게(과) 개방(open), 유연성, 창의성, 융통성 등을 발휘하여 새로운 실험과 혁신방안을 만들기를 바람
  10. 다시 한번 포털이 아니면 뭐냐?
    • connect people, best user experience를 중요시함
    • 구글은 technology platform company임
      • Search - 전세계의 60% 이상 차지
      • AD
      • Application - google earth와 같은 것
  11. 라디오 등 전통미디어를 계속 살 것(buy)인가?
    • 라디오 station을 인수하지 않음
    • 라디오 station들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는 것은 사실
    • 구글이 온라인에서 습득한 기술을 오프라인에 적용하고 미디어사들을 도우려는 것
    • 예를 들면 구글의 광고주를 함께 이용한다거나, auction(경매) 방식을 이용하여 광고를 파는 것 등을 미디어 파트너에게 제공하는 것임
    • (이런 협력에서) 현재 채널간의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파트너들이 에이전시들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CPM, Inventory 등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지만 초창기이며 장기적으로 잘될 것이라고 생각
      • white list, black list 운운 (?)
  12. (technology platform에 대하여 다시 설명하면서) Application과 google earth model은 만족스러운가?
    • google earth는 가장 인기 있는 application이고 수억건의 다운로드가 일어남
    • google earth를 보면서 product는 줗은데 돈은 어떻게 벌까도 고민
    • 하지만, user experience(사용자 경험), user가 원하는 것에 match(맞춰)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 즉 UX(사용자 경험)이 먼저이고 다음이 매출임
    • google earth를 많이 사용하는 사람일 수록 google search를 더 많이 사용함
  13. (google earth API를 공개한 것을 통해) 포털이 아닌 플랫폼 회사임을 다시 이야기해 달라.
    • 구글 맵의 API를 공개 - 맵을 통제하고 혼자만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면 이런 점에서 포털과 다름
    • 구글 earth를 이용해 개발하는 개발자가 5만여명
    • 홀로코스트박물관이 구글 earth를 이용한 사례 소개
      • 수단 다르푸르 사태
      • 불타없어진 다르푸르 지역마을을 볼 수 있는 application을 제공하여 수단정부의 주장(9,000명만 죽었다)을 무력화시키고 전세계의 학교들이 교육용으로 사용하도록 함
      • application이 170만건 다운로드 됨
  14. wiki approch에 대한 의견은?
    • SBS 프로그램을 외국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translation(번역)하는데 user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을 것
    • user들이 youtube의 동영상 중 긴 외국어로 된 것을 한국어로 번역하게 만드는 것도 생각할 수 있을 것
    • 이렇게 user들이 참여했을 때 어떤 credit을 어떻게 주는가 등은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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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포털인가, 미디어인가에 대답은 사실 구글 자신의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어디에 서있는가, 즉 다른 인터넷 기업 및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생각해야 한다.  포털이냐, 미디어냐의 논쟁을 떠나 그들이 어떤 회사보다 더 technology(기술)에 기반을 둔 회사라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구글이 technology를 기반/무기로 포털과 미디어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갔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2006년 11월 SBSi의 미래를 이야기하면서 구글처럼 되어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하지만 구글의 주장처럼 우리가 technology platform company가 되기 위해서가 아닌 성공적인 newmedia company(미디어 또는 포털)가 되기위해서 였다. 왜 그런가?

SBSi의 미래 - 3가지 길

= 현재 SBSi는 향후 10년 이상을 규정할 갈림길에 서있다.
   - Old Media 영역을 강화할 최선의 방법은? 인터넷 기반 기술회사를 추구하는 것이다.
   - New Media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인터넷 기반 기술회사를 추구하는 것이다.

SBSi의 미래 - 3가지 선택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구글처럼 "인터넷 기반 기술회사"를 추구한다고 해서 우리가 10년 후 구글이 되겠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10년 후 야후, 네이버, 다음과 같이 성공적(선도적이고 창의적인) 인터넷 기반 뉴미디어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기술 "편향"인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Old Media의 대체재로 존재하고, SBS(방송)와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SBS가 못하는 부분, 약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SBSi-뱀 되기
우리는 3가지 길을 뱀처럼 칭칭 감으며서, 서로의 거리를 좁히고 이리저리로 걸쳐 꽉 조이면서 우리의 길을 만들어 가기를 원한다. 또 SBSi가 뉴미디어 회사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회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왜냐하면 우리가 위쪽의 방송사 자회사로 현재 존재하고 있기때문에 좀 더 아래쪽으로 움직여야 균형점인 중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알뛰세르의 말에 따라 '막대를 구부려야 하며', 또 들뢰즈의 말을 빌면 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검색이 아닌 우리가 잘하는 다른 차원에서의 기술회사가 되기 위해서 Digital Content Platform 전략을 만들고, 실천해가는 것이다.

위 SBSi의 미래와 관련된 그림은 2006년 11월 동영상 포럼 발표자료에서 인용하였다.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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