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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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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뛰세르'에 해당되는 글 6건

2009년 3월 16일 <뉴미디어론> 세미나를 하면서 마노비치의 "이런 것은 뉴미디어가 아니다"라는 글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 글이다. 전체로서의 미디어의 역사 속에서, 다른 미디어와의 관계 속에서 뉴미디어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의도로 작성되었다.

이런 발제문을 쓰게 된 배경에는 학제(학문, 신문방송학과는 뉴미디어를 어떻게 생각할까? 정치학과는? 미학과는?)간 서로 다른 뉴미디어에 대한 정의가 있는데 이런 정의들은 모두 뉴미디어에서 어떤 측면을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마노비치의 글 또한 어떤 입장 중 하나에 서서 '어떤 하나의 이데아(idea)로서의 뉴미디어'를 만들려는 것처럼 보인다. 산업에서 보아도 이와 유사한 현상을 볼 수 있다. 웹에서는 웹에서 정의한 뉴미디어가 있고, IPTV는 IPTV가 정의한 뉴미디어가 있다. 그리고 방송사는 방송사가 정의하는 뉴미디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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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의 언어> 중 “이런 것은 뉴미디어가 아니다” 비판

이런 것은 뉴미디어가 아니다

레프 마노비치는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뉴미디어와 과거의 미디어의 핵심적인 차이를 수적 재현(Numerical Representation)과 이에 근거한 모듈화, 자동화, 가변성, 부호 변환 등의 특성을 들고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뉴미디어와 옛 미디어의 차이라고 믿는 정의들에 대해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에 따르면 ①뉴미디어는 아날로그가 디지털로 전환된 것이고, 디지털 방식으로 기호화된 미디어는 분절적이라는 정의부터 ②컴퓨터라는 하나의 기계에서 디스플레이 되는 멀티미디어라는 정의, ③순차적(linear) 접근이 아닌 무작위적이고 동시적(non-linear) 접근이 가능하다는 정의, ④디지털화 정보손실(디지털화된 미디어에 담긴 정보의 유한성)을 초래한다는 정의, ⑤디지털화된 미디어의 훼손 없는 무한복사 가능하다는 정의, ⑥뉴미디어는 미디어가 객체와 이용자가 상호작용할 수 있다는 정의 등은 뉴미디어에 대한 잘못된 신화이다. 왜냐하면 전통 미디어의 양식에서도 이런 특성들을 찾을 수 있고, 따라서 “핵심적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디지털 재현이 한정된 숫자의 샘플들로 구성된다”는 분절성이 뉴미디어의 특성이다라는 정의는 이미 영화가 사건을 기준으로 1초당 24프레임으로 샘플 추출한 것과 원리상 다르지 않다. 따라서 “영화가 우리를 뉴미디어에 맞게 준비시켜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뉴미디어는 원리적으로 영화가 이룩한 “이러한 이미 단절적인 재현을 계량화하는 것”뿐이고, 영화가 “연속적인 것에서 단절적인 것으로의, 훨씬 더 어려운 개념적 전환”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앞서 이야기한 6가지의 “흔히 뉴미디어와 옛 미디어의 차이라고 믿고 있는 정의들”이 전통 미디어 역사 속에서 형식이나, 또는 기본적인 원리(내용)가 동일한 사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이런 이유로 인해 “이런 것은 뉴미디어가 아니다(what new media is not)”라고 말한다. 결국 이런 특성들을 제외시키고 나면 그에겐 “수적 재현(Numerical Representation)“만이 뉴미디어의 핵심원리가 된다.

마노비치 비판에 대한 논리적 근거 검토

그런데 마노비치가 분절성, 상호작용성과 같은 개념들을 뉴미디어의 원리에서 배제하는 논리의 기반에는 반증주의(反證主義)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반증주의는 “참인 관찰 언명의 어느 정도 유용성을 갖긴 하지만, 관찰 언명에 근거한 논리적 연역을 통해 보편 법칙이나 이론을 지지할 수 없다. 그 반면에 전제로서의 단칭 관찰 언명을 근거로 하여, 논리적 연역에 의해 보편 법칙과 이론이 거짓임을 밝히는 것이 가능하다”는 귀납적 비약(歸納的 飛躍)을 통해 성립된 과학이론(가설)이 성립되기 위한 전제조건을 만들기 위해 제안되었다.

마노비치는 “뉴미디어는 분절적이다”라는 명제(주장)에 대한 진위를 따질 때 반증주의자들이 ”보편 언명이 거짓이라는 것을 적절한 단칭 언명에서 연역해낼 수는 있다”는 논점을 철저히 활용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을 채택하는 것이다. 다만 (과학철학에서의) 반증주의자들은 과학의 전제를 다루고 있기에 ‘반증가능성’의 문제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뿐인데, 마노비치는 미디어의 역사 안에서 보편 언명에 대한 적절한 반증 사례를 제시함으로써 반증된 명제를 뉴미디어의 정의에서 배제한다.

반증주의자들이 “검지 않은 까마귀 한 마리가 x라는 장소에서 t라는 시간에 관찰되었다”라는 전제를 통해 “모든 까마귀가 검은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논리적으로 추론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마노비치는 “전통 미디어인 영화는 시간을 1초당 24프레임으로 샘플 추출한 분절적인 것이다”라는 반증사례를 통해 “뉴미디어는 분절적이다”라는 명제를 기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뉴미디어는 수적 재현이다”라는 명제를 이런 방식을 통해 비판할 수 있지않을까? 이런 비판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전통 미디어가 “x라는 장소에서 t라는 시간”에 “수적 재현”이라는 이런 양식을 띄었음을 입증하면 된다.

미디어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수적 재현 양식

서양에서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19세기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으로 수학 특히 기하학과 관련 없이 미술을 생각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400년부터 1250년 사이에는 열성적인 교회의 신부들에 의해 고대의 전통이 남아있던 모든 예술 작품들을 파괴되었고, 미술과 수학(물리학)에 대한 위대한 서양의 전통도 함께 파괴되었지만 말이다.

기원전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박물관에서 가르치던 유클리드(BC 330? ~ BC 275?)는 <원론(Elements)>에서 공간에 대한 연구를 기하학이라는 학문분야로 성립시켰다. 그는 정신적 추상에 기초해 공간을 직선들의 상상적인 그물망에 의해 연계되어 있는 것처럼 체계화하였다. 또 자연은 이러한 기하학적 접근을 확증시켜주었다. 두 점 사이의 가장 짧은 거리가 직선이라는 명제는 유클리드의 공간이 단일하고, 연속적이면서 균등한 곳임을 함축한다.

또 피타고라스(BC 582~BC 496)와 그에 의해 창설된 학파는 수학을 통해 정화와 불멸이라는 신비적인 종교의 문제에 도달하고자 했고, 수학적 사유가 인간을 개별적인 사물에서 벗어나 영원하고 질서 있는 세계, 즉 수의 세계로 이끈다고 생각하였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만물은 수이다’라는 주장은 모양과 크기를 갖는 만물의 기초에는 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그들은 대수로부터 기하로, 더 나아가 실재의 구조로 나아갔다. 이러한 방식으로 수를 이해함으로써 그들은 ‘형상(form)’ 개념을 형성할 수 있었다.

이들의 영향 속에서 고대인들은 수를 변덕스럽게 변화하고 있는 만물의 근저에 있는 고정불변하는 절대적이고 초월적 존재라고 생각하였다. 기하학적 공간과 수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태도는 플라톤(BC 428/427 ~ BC 348/347)이 “기하학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는 문구를 자신의 아카데미 정문에 새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세계의 근원을 수라고 생각함으로써 자신들의 세계를 수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스의 미술가들은 완전성에 대한 추구를 통해 이러한 이상을 성취하였다. 우리가 쓰는 “합리적(rational)”이라는 단어의 유래는 이성, 논리 그리고 인과성이라는 하부적인 뜻과 함께 비례라는 뜻을 의미하는 라틴어 ‘ratio’로 소급된다. 고대 건축 양식에서 발견한 직사각형의 이상적인 비례는 각면이 5:8의 비율이다. 그리스 신전들은 이 공식을 사용하여 건축되었고, 이러한 완전성의 모델이 지금 “황금비”로 알려진 것이다.

영화가 1초당 24개의 프레임으로 샘플을 추출하여 시간을 근거로 한 분절성을 만들었던 것처럼, 그리스인들은 세계의 근원을 수라고 생각하면서 세계를 수적 질서로 해석하고, 또 자신들이 만들어낸 미적(미디어) 양식을 수적 비율을 통해 재현하였다. 이들의 접근이 뉴미디어의 수적 재현보다 더 급진적인 접근이고, 인류문명사에서 보면 “더 어려운 개념적 전환”이었다.

고대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비너스

파르테논 신전은 BC 447년 기공하여 BC 438년에 완성되었다. 익티노스가 설계한 파르테논 신전은 각 부분이 정확하게 기하학적인 비율로 되어 있다. 신전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외부 윤곽은 완벽한 황금 사각형이다. 신전 기둥의 윗부분은 전체 높이를 황금 분할하고 있다. 왼쪽에서 네 번째 기둥은 가로 길이를 1 : 1.618로 황금 분할하고, 다섯 번째 기둥은 가로 길이를 1.618 :1로 황금 분할한다. 또 제일 아래 기단의 가로를 한 변으로 하고 기둥의 높이를 또 한 변으로 하는 직사각형은 황금사각형 두 개를 붙여 놓은 것과 같다.

그리스 말기에 만들어진 비너스(BC 2C ~ BC 1C초) 상에서 황금비로 이루어진 수적 재현의 문제를 살펴보면 배꼽을 기준으로 상반신과 하반신의 비가 1:1.618이고, 상반신만 놓고 보면 머리끝에서 목까지, 목에서 배꼽까지의 길이의 비도 그렇다. 또 하반신에서는 발끝부터 무릎까지, 무릎부터 배꼽까지 길이의 비가 1:1.618이다.

황금비에 대해 그리스 예술가들은 완전비례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시각예술에서는 이러한 특정한 비례가 보편적으로 인정받아 ‘카논’이라고 불리었다. 15세기의 유명한 수학자 파치올리(Luca Pacioli)는 이것을 ‘신성비례’라고, 17세기 초 케플러(Johannes Kepler)는 ‘귀중한 보석’이라고 불렀고 ‘황금비’라고 부르게 된 것은 19세기 때부터이다. 이때 페히너(Gustav Theodor Fechner) 같은 사람은 심리학적 방법을 통해서 황금비에 관한 실험을 행했다. 미를 비례나 조화로 보려는 견해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어 고대 로마에서 꽃피고, 중세시대의 긴 침잠기를 거쳐 르네상스 이후 찬란하게 부활하여 지금도 미적 기준으로 작용한다.

꽃다발 만드는 법에 적용된 황금비율

<그림. 꽃다발 만드는 법에 적용된 황금비율>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perspective)이 발견되었다. 원근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은 그리지 않고 보이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이다. 시선의 법칙에 충실한 원근법은 중세 회화에서의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동시에 드러내는 비현실적 공간을 배제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는 회화를 학예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했고, 과학적인 탐구정신을 기반으로 대상을 탐구하고, 회화를 수학적으로 체계화하였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원근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벽, 마루, 천정에서 멀어지는 선들은 깊이를 나타내면서 그리스도의 머리 바로 위 한 점에 모아지도록 그렸다. 이 소점은 화면에서의 강조점으로 우리의 시선을 이끌면서 동시에 화면 전체를 통일된 구도 속에서 파악하도록 한다.

16세기 원근법은 알프스를 넘어 북으로 퍼져 많은 미술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발전되고 정교해 진다. 독일의 뒤러는 <측정법>(1525), <인체비례론>(1528) 등을 통해 원근법이론을 한다.

뒤러, <원근법 연구>

1525년 뒤러의 목판화 <원근법 연구>를 보면 비스듬히 놓여있는 류트의 손잡이 쪽에서 보면 화면에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연구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화가와 사물 사이엔 한 장의 투시화면을 세워 화면을 통해 오는 시선을 따라 화면에서 절단되는 단면을 그리면 정확한 화상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화면에서의 사물의 형상을 정하기 위하여 화가의 눈과 사물을 잇는 선이 화면 위치에서 만나는 점을 찾아내고 있다. 뒤러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배운 미술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 방법, 원근법에 매료되어 있었다.

회화와 수학을 체계적으로 연결시킨 최초의 인물인 레오나르도는 “수학의 특성 중에서 증명의 확실성이야말로 탐구자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가장 중요한 특성이기 때문에, 원근법은 인간의 모든 지식체계와 학설 중에서 으뜸으로 인정되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예술(미디어) 형식에서 수적 재현의 문제는 음악에서도 발견된다. 피타고라스 학파의 사람들은 음악에 하나의 정수비가 존재하면, 그 비율에 따라 각 음절들은 조화로운 음정을 이루기 위해 분리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이런 예를 통해 ‘만물은 수이다’라는 개념에 대한 개념을 생생하게 설명하고 있다.

마노비치가 뉴미디어의 신화를 비판하면서 쓴 것처럼 “역사적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위에서 언급한 많은 원칙들이 뉴미디어에만 유일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미디어 기술에도 역시 유효”했듯이 수적 재현의 원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예들을 우리는 찾을 수 있다.

위에서 보인 예들이 부족하다면 마노비치가 “상호작용성의 신화”를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문장을 인용하여 이해를 돕고자 한다. “모든 고적적인 그리고 심지어 어느 정도 현대적인 예술작품들도 여러 가지 방식에서 ‘상호작용적’이다. 문학적 서사에서 생략, 시각예술에서 대상의 세부묘사의 생략, 그리고 또 그외의 재현적 ‘축도’ 등은 사용자가 잃어버린 정보를 채워 넣도록 요구한다. 연극이나 회화 역시 관람자의 관심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연출이나 구성에 의존하며, 관람자가 디스플레이의 여러 부분들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조각과 건축에서 공간적 구조물을 경험하려면 관람자 자신이 직접 몸을 움직이며 돌아다녀야 한다.”

현재 존재하는 조각과 건축은 수학적 비례와 균제, 건축공학의 산물이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미디어의 수적 재현은 고대 그리스 이래 지금까지 전승되어 오는 문자 이후 가장 오래된 미디어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뉴미디어 개념에 대한 접근

이렇게 비판했을 때, 모든 뉴미디어에 대한 정의를 기각하고 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한다. ‘뉴미디어란 무엇인가?’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눈만 껌벅대야 한단 말인가? 이에 대한 답을 찾는 방식으로 <뉴미디어론 강의를 시작하며>에서 인용했던 맑스(K. Marx)의 <정치경제학 비판서문>과 나의 제안을 다시 ‘읽기로’ 하겠다.

“구체적인 것은 그것이 수 많은 규정들의 총괄, 즉 잡다한 것의 통일이기 때문에 구체적이다. 따라서 사유 속에서 구체적인 것은, 비록 그것이 현실의 출발점이고 따라서 직관과 표상의 출발점임에도 불구하고 총괄의 과정, 결과로서 나타나는 출발점으로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면서 ‘구체에서 추상으로, 또 다시 추상에서 구체로’의 사고의 운동과정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뉴미디어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 나는 다시 이런 과정을 거치자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우리는 뉴미디어라는 어떤 구체적 현실 속에서 이에 대한 정의를 역사적 사례들과의 대조를 통해 완전하게 새로운 특성의 발견을 통해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뉴미디어는 전 미디어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거나 발명되었던, 그리고 지금도 새롭게 발견되고 발명되는 것들 사이의 관계, 그 관계 속에서 어떤 특정한 형태(특성)의 강도가 상대적으로 강해짐으로 전체가 변형되고, 그것과의 관계 속에서 재구성되는 어떤 것으로 ‘가정’하면서 이해를 시작하려는 것이다. (이 ‘어떤 것’을 하나의 유기체로 이해하고 싶다.)

만일 뉴미디어의 원리가 0과 1로 이루어진 수적 재현의 형식이 맞다 하더라도 이 재현의 형식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규명될 수 있다. 앞에서 마노비치가 비판했던 6가지의 개념들을 생각하지 않고 뉴미디어를 그려낼 수 있을까? 우리가 이것을 그려내기 위해서는 어떤 형식으로든 이런 개념들을 다시 가지고 와야만 한다. 왜냐하면 구체적인 것으로서의 뉴미디어는 이러한 ‘잡다한 것의 통일’이기 때문이다.

들뢰즈는 구체적인 층위에서 차이적/미분적(differential) 관계가 개체화되는 것을 다루기 위해 ‘강도(intensity)’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미분적인 관계는 강도적인 양을 통해서 개체적 차이로 구체화(분화)된다. 예를 들면 유전자는 뉴클레오티드들의 이웃관계(미분적 관계)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는데, 이러한 관계는 수정란 표면에 새겨지는 힘의 강도들을 통해 상이한 기관들로 분화된다. 이처럼 유기체는 차이적 관계가 작동하여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관계의 차이에 따라 다른 개체가 되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도 이웃항과의 관계에 따라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동일한 어떤 것이 이웃과의 관계에 따라 뉴미디어가 될 수도 전통미디어가 될 수도 있다.

알뛰세르는 헤겔적인 ‘총체성’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전체로서의 사회구성체’를 사고하기 위해 ‘중층적 결정(overdetermination)’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프로이드는 이 용어를 수많은 꿈의 사유들이 단일한 이미지로 응축(condensation)되는, 또는 특별히 강력한 사유로부터 정신심리학적 에너지가 외관상 사소한 이미지로 대체(displacement)되는 과정에서 특권적 지위를 얻은 이미지로 꿈의 사유들이 표상되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했다.

알뛰세르가 프로이드에 기대 이와 똑 같은 개념을 사용한 이유는, 사회구성체의 각 구성요소 내의 모순이 하나의 전체로서의 사회구성체 위에 미치는 효과들을 묘사하여, 주어진 역사적 순간에 지배 내 구조에 있는 모순들의 지배와 종속, 적대성과 비적대성을 규정하기 위해서였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모순 A의 중층적 결정이란 그 복합적 전체 내에서 있는 모순 A 이외의 다른 모순들이 모순 A에 반영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사회과학에 있어 그것을 달리 말하면 모순 A의 불균등 발전이다.)

우리는 ‘중층결정’된, 또는 이웃관계들의 강도들을 ‘가족유사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전체로서의 뉴미디어’에 접근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가 다음 시간부터 강의할 <미디어2.0,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에서 다루는 문제이다. (본질주의적 접근이 아닌 관계적 접근을 시도한다.)

참고문헌

1. 레프 마노비치, <뉴미디어의 언어>, 생각의 나무(2004)

뉴미디어의 언어 - 10점
레프 마노비치 지음, 서정신 옮김/생각의나무

2. 앨런 차머스, <현대의 과학철학>, 서광사(1985)
현대의 과학철학 - 10점
앨런 차머스 지음, 신일철 외 옮김/서광사

3. 강태희 외, <미술, 진리, 과학>, 재원(1996)
미술 진리 과학 - 10점
강태희 외 지음/재원

4. 레오나드 쉴레인, <미술과 물리의 만남>, 도서출판 국제(1995)
미술과 물리의 만남 1 - 10점
레오나드 쉴레인 지음, 김진엽 옮김/국제
5. 사무엘 E.스텀프, 서양철학사, 종로서적(1983)
서양철학사 - 10점
사무엘 E.스텀프 지음, 이광래 옮김/종로서적

6. 루이 알뛰세르, <자본론을 읽는다>, 두레(1991)
자본론을 읽는다 - 10점
루이 알튀세르 외 지음, 김진엽 옮김/두레
2009/03/16 20:00 2009/03/1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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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에 이어 바슐라르에 관련된 다른 책들을 집어들어 읽다가 상상력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살펴 볼 필요성이 있구나 생각되었다. 단순 문학비평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슐라르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에 문학비평이 아닌, 다른 형태로 심대한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바슐라르의 상상력 연구는 객관적 인식의 정신 분석을 통해서도 쉽게 제거되지 않는 인식론적 방해물들을 긍정적으로 이해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객관적 앎/지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바로 상상력이다. 그런데 바슐라르에 의하면 상상력은 그 자체의 고유한 법칙을 갖고 있다. 그는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보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원형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하는데, 상상력이 이 원형을 향해가는 정신의 자체적인 힘이다.

따라서 이미지의 원형과 외계의 사물 사이에 놓인 상상력은 끊임없이 사물을 원형에 가깝게 변형시키려는 관성을 갖게 된다.

바슐라르 이전의 상상력은 이미지를 기억하는 정신 기능이었다. 하지만 바슐라르는 인간의 상상력은 대상의 형태가 아니라 그것의 물질성을 들여다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물은 일정한 형태가 없지만 물의 이미지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바슐라르는 물, 불, 공기, 대지의  물질성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이 유형화된다는 사원소론을 정초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이미지를 기억할 뿐 아니라 변형하고 극단적으로는 이미지를 지워버림으로써 <이미지 없는 상상력>의 단계에까지 다다를 수 있다고 한다.

물 위에 비친 자기 얼굴의 아름다움에 취한 나르시스의 신화는 상상력의 작용을 잘 보여준다. 거울에 뚜렷하게 비친 얼굴보다 물 위에 흐릿하게 비친 얼굴이 더 아름답다. 또 물 위에 핀 연꽃을 찍은 사진보다 그것을 그린 모네의 회화가 더 아름답다. 이러한 이유는 물위의 영상이나 회회의 영상은 흐릿하지만 그것 들여다보는 인간의 상상력은 수면의 파동을 따라, 또 그림을 따라 끊어진 부분을 이어가면서 하나의 영상을 그려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르시스의 경우 물 위의 영상이 아름답다고 느끼고, 모네의 그림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상상력의 밑바닥에 대상에 대한 사랑이 들어있기 때문이고 바슐라르는 말한다.

바슐라르는 상상력을 심리적, 사회적 요인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그 자체에 존재론적인 지위를 부여한다. 상상력은 과학에 있어서는 인식론적 장애물이지만 문학/예술에 있어서는 미적 체험과 존재의 전환을 경험할 수도 있도록 한다.

이러한 상상력에 대한 인식이 프랑스 철학적 사유에 강한 영향을 준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인식론적 장애물에 대한 인식이 그것이다.

바슐라르의 철학체계와 영향

한참 고심하여 바슐라르의 체계를 도식화한 것이다. 상상력은 각 개인들마다 서로 다른 주관적인 것이 아닌 모든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보편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이미지의 원형으로 객관적인 것이다. 개개인들이 아닌 인류 전체에게 있는 상상력의 존재는 바슐라르 이후의 프랑스 철학자들에게 세계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된다.

위 도식은 너무 도식적이므로 참고용으로 보면 된다. 그리고 도식을 그리면서 몇가지 자신없는 부분도 있다. 사유 다음에 문학적 산출물을 놓을 수 있는가, 또 상상력을 아비투스와 비슷한 것으로 유추해서 이해할 수 있는가 등이다. 그림을 그린 것은 상상력의 위치와 이것과 알뛰세르, 푸코 등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것이니 그 정도의 수준에서만 의미를 찾고자 한다.


추가적으로 이런 책을 더 찾아 관련된 부분을 같이 읽었다.
새로운 철학강의 제1부 - 논리학 및 인식론 - 8점
D.위스망, 앙드레 베르제즈 지음/인간사랑
제6장 물질의 과학 - 이론과 경험
이장에서 바슐라르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것은 아니다. 아주 조금 다루는데 하지만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을 이해하는데는 많은 도움을 준다.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 1991
오늘의 프랑스 철학사상(1960~1985)
크리스티앙 데캉 지음/책세상
제9장 인식론과 그 모델들

첫번째 책의 해당 장에서는 전반적인 인식론적 사유에 대해 알 수 있고, 두번째 책은 프랑스 철학 안에서 현대의 인식론적 논의를 다루고 있다. 두번째 책은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다. 첫번째 책은 다소 어려울 수도 있지만 철학 입문서로도 괜찮은 듯 싶다.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오류 위에 과학의 도시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 바슐라르, 알뛰세르
요즘 <프랑스 비평사 - 현대편 (1983)>을 읽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 '오해도 하나의 이해'라는 말을 듣고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지금도 가끔씩 이 말을 되뇌이곤 한다..
2008/02/03 23:18 2008/02/03 23:18
From. 비밀방문자 2013/07/02 17:53Delete / Modify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jjpark 2012/09/10 13:22Delete / Modify
맞습니다. 그때 인용은 안한 것 같은데 "상상력과 공감, 그리고 스토리"에 관련된 이야기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나옵니다. 그리고 아렌트 책에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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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rtrait de Gaston Bachelard

요즘 <프랑스 비평사 - 현대편 (1983)>을 읽고 있다. 대학을 다닐 때 '오해도 하나의 이해'라는 말을 듣고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며 지금도 가끔씩 이 말을 되뇌이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의 시작을 이 책에서 찾은 듯하다.

프랑스 비평사 (근대/현대편) - 8점
김현 지음/문학과지성사

이 책의 서문에서 김현은 이렇게 말한다. "바슐라르의 스승이었던 아벨 레이는 사람은 오류를 통해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 오류를 완전히 고칠 수는 없겠지만, 그 오류를 객관적으로 정신분석해 나가면, 그 오류를 가능케 한 내 욕망의 뿌리를 얼핏 엿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 욕망을 객관화시킬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숙할 수 있을까?"

많은 경우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않는다. 관심 갖는 부분만을 읽고, 또 다른 책에서 관련된 부분을 책아 읽고 그러다보면 네다섯권의 책이 며칠간 옆에서 뒹군다. 이런 버릇대로 제3장 <바슐라르의 문학비평>만 읽었다.

바슐라르는 과학철학자로 시작해서 문학이론가로 사고를 전개해 나갔다. 과학철학자로서의 바슐라르의 이야기는 알뛰세르로 이어진다. 막연하게 그렇겠지 생각하긴 했다. 오래된 책을 꺼내들고 그때 몰랐던 사실을 확인한다. 예전 이 책을 읽을 땐 알뛰세르도 푸코도 보기 전일게다. 아마 그 땐 책의 내용도 이해를 못하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오해'라는 방식으로 이해했을 게다.

그렇다고 이십여년이 지난 지금 바슐라르를 바슐라르 그 자체로 다시 읽으며 이해했을까? 이번엔 알뛰세르식으로 아니면 푸코식으로. 아니다.  실제는 현재의 내 수준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누가 누구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이해의 강도를 말 그대로 '털 끝만큼도 틀리지않고 똑같이'라는 기준, 즉 '사고의 동일성'이라는 기준으로 적용한다면 아마도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완벽한 이해란 스스로가 이해할 대상 자체가 '되어야' 가능하다.

이렇게 말하면 자각만이 이해했다고 말할 권리를 갖게된다. 그래서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에서 인식의 근거를 찾았다. 또 칸트는 이런 맥락에서 선험적 인식주체에 대해 생각했다.

이런 따분한 이야기 전에 우리가 살아가면서,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항상 부딪히는 것이 '왜 저 사람은 저래!', '이해를 못하겠네!' 등의 생각과 함께 의사가 통하지않는 사실에 좌절하곤 한다. 대화의 어려움이 여기서 생긴다.

초기 바슐라르는 '객관적 인식으로서의 과학적 인식이란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과학적 인식과 우리가 일반적으로 경험하여 갖게 되는 감각적 인식 혹은 공통적 인식 사이에는 커다란 단절,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말한다. 알뛰세르에게서도 중요한 개념인 인식론적 단절을 통해 바슐라르는 객관적 인식은 가능한가, 만일 객관적 인식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며, 객관적 인식이라고 알려져 온 수많은 잘못된 인식들이란 무슨 의미를 갖는가라는 문제들을 제기하고 답하려 한다.

오늘 아침 <한겨레신문>의 책과 생각에 나온 <시선은 권력이다>에 대한 소개 기사를 읽었다. "나와 타자 사이의 동시적 상호인정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사르트르의 생각이 더 옳아 보인다. 남이 자기를 보듯이 나를 보고, 또 나도 나를 보듯이 남을 본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인다는게 그 이유다." 박정자 교수의 말이다. 어제 밤에 썼던 완벽한 이해란 불가능하다는 대목과 이어졌다. 이렇듯 생각은 사나운 가시덩쿨처럼 여기 저기로 가서 붙어 얽혀버린다.

그런데 이런 상호 이해 불가능성, 오해로 점철된 인간 인식의 객관성을 주장하고 그 기반을 세우려는 노력이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이다. 바슐라르의 몇개의 명제를 살펴보자.

  1. 과학적 지식은 객관적이어야 하는 것이지, 그 자체가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즉 사실에 있어서는 과학적 지식이 객관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객관성은 그때 하나의 한계로 제시된다. 객관적인 것은 경험의 합리적 한계이다.(p.88)
  2. 사실-하나의 대상에 대한 원초적인 경험은 과학적인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실/경험은 계속적인 합리화에 의해서 객관적인 것을 가능케 한다. 즉, 끊임없는 합리화에 의해 원초적인 경험은 과학적인 경험이 되어 간다.
  3. 따라서 과학적 인식은 끊임없는 합리화 움직임 속에 있는 인식이며, 계속 검증되는 인식이다. 그런데 이런 움직임-합리화/객관화 방법은 대상을 관계 밑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대상이란, 지각할 수 있는 사실의 그룹이다. 그것은 정돈할 수 있는 일련의 지각이며, 더 나아가서는 정돈 그 자체이다.> 정돈은 하나의 관계 개념이다. 왜냐하면 관계를 짓지 않는 것은 정돈될 수 없기 때문이다.
  4. 그런데 현대과학을 돌아볼 때 객관화의 방법은 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여러개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방법이 대상보다 선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방법이 대상 기술/과학적 인식을 결정한다. 방법 자체가 대상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다.
앞의 명제들에 따라 이런 추론을 끌어낼 수 있다.
  1. 모든 사람이 받아들이는 보편성/일반성이 반드시 객관성은 아니다. 보편적/일반적인 것은 경험의 동질성(同質性)을 전제로 하고 있지, 어떤 경험의 검증과정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 객관화의 방법이 없는 한 객관성에 도달할 수는 없다. 관계에 의거한 객관성은 그것에 따라 관계를 결정하는 유동성과 관련을 맺고 있다. 사실상 대상이 관계의 복합체로 제시될 때부터, 그것을 여러 방법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객관성은 입증의 사회적 성격에서 벗어날 수 없다. 객관성에는 변증론적이며 자세한 방법으로 객관화의 방법을 제시하여야만 다다를 수 있다. 명증의 표적은 대상이 아니라 방법이다.
  3. 하나의 사고의 객관성은 그것이 오류의 교정과 관련을 맺고 있을 때 더욱 선명해진다. <어떤  생각의 객관성은 그것이 오류를 바탕으로 나타나는 그만큼 더 명백하고 분명하게 될 것이다. 도달하려면 방황해야 한다.>

상호 이해 불가능성, 오해/오류의 기반을 이런 테제를 받아들인다면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 객관적이지 않은 보편성/일반성이 실재한다는 것, 보는 각도/방법에 따라 대상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경험/사실 자체가 객관성을 담보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클라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us)의 천동설, 자본주의에 대한 애덤 스미스 이후의 주류경제학자과 마르크스의 대립, 경험주의에서 나타나는 귀납적 비약 따위가 이런 예들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방법에 따라 대상의 성격이 달라진다는 것의 측면에서 볼 때, 그리고 그것을 자연과학의 영역이 아닌 사회과학에 대입한다고 할 때 문제는 더욱 커진다. 사회는 보는 사람들의 계급적 위치에 따라, 즉 당파성에 따라 보는 방법/각도가 달라질 가능성이 더 높고 그것의 진위를 가릴 기준이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바슐라르의 논의와 실재하는 마르크스주의의 오류(또는 오류로 점철된 현실 사회주의의 위기), 여기에서 알뛰세르가 나온다. 객관적이지 않은 보편성/일반성이 어떻게 지속될 수 있는가가 알뛰세르 '이데올로기론'의 한축을 이끌고, 마르크스주의가 왜 과학인가/맞는가가 다른 한축을 이룬다. 전자에서 이데올로기적 국가이론 등이 전개된다면 후자에서 사회운동/검증 속에서 오류의 정정을 통한 '전화' 등의 이론을 전개한다. '위기를 산출케한 모체 자체를 부인'하지 않고 '그 내부에서 생겨난 위기를 극복'/돌파할려고 한다.

김현이 말하듯이 <바슐라르의 과학철학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그가 오류 위에 과학의 도시를 건설하려 한 것에 있다. 그가 오류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금세기초의 과학적 위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p.91) 바슐라르가 처했던 상황과 동일한 상황에 알뛰세르가 있었다.

철학,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사상, 역사적 사실의 내용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처한 위치를 확인하고 이것(시대의 위기)을 돌파하기 위해서이다.

오류 위에 과학의 도시를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방법을 바꾸면서이다. 그런데 방법을 바꾼다는 것은 과거의 방법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은 과거의 방법을 새로운 방법으로 감싸면서 더욱 방법적으로 되어간다. 과거의 방법을 버리지 않고 감싼다는 것은 낡고 쓸모 없게 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밝힌 과학적 지식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히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오류가 밝혀지고, 오류는 부정적인 성격이 아닌 새로운 방법을 가능케 한 긍정적인 성격으로 '전화'한다.

하지만 전화된 방법은 과거의 방법이 아닌, 과거의 것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인식론적 국경이 있다. 알뛰세르가 말하는 '인식론적 단절'과 같은!

캉기옘은 바슐라르가 죽은 후 파리대학 추도 논문집에서 그의 인식론에 대하여 이렇게 썼다.

첫번째 공리는 오류의 이론적 우위에 관련되어 있다. <진실은 논쟁의 끝에서만 그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최초의 진리란 있을 수 없다. 최초의 오류들만이 있다.> ... 최초의 진리는 단수이며, 최초의 오류는 복수이다. 보다 간결하게 같은 공식은 다음처럼 진술된다. 오류에 기초한 진실이야 말로 과학적 사고의 형태이다.

대학에 다닐 때 함께 공부하던 선배가 진리를 알려주겠다며 귀에 속닥였던 말이 생각난다. "맑스주의는 위대하다. 왜냐하면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 땐 몰랐지만 이 말은 아마도 레닌의 말일 것다. 지금 생각하면 진리성은 이런 경구/신조로 존재하지 않는다. 레닌으로부터 시작한 이런 경구들, 진리를 담보하고 있는 전위조직, 이 조직의 일괴암(一塊巖 monolith)성 등이 이데올로기(검증되지 않은 보편적 진리)로 굳어질 때 '마침내 위기'가 온다.

이런 정치조직뿐만 아니라 기업도, 개인도 살아가며 어디서도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고 이를 받아들이며 오류 위에 진실의 돌을 쌓을 때 전진이 가능하다. 요즘 자기 전에 몇 페이지씩 짐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넘어 ... 위대한 기업으로, GOOD TO GREAT>를 읽는다. 여기에서도 위대해지려면 바슐라르가 과학의 위기에 대응하던 것과 비슷한 태도를 갖을 것을 권유한다.

좋은 회사를 위대한 회사로 이끄는 핵심 심리는 스톡데일 패러독스이다. 결국에는 성공할 수 있고 성공할 거라는 절대적인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라는 것이다. (p.140) - 짐 콜린스

과학자로서 여러분들은 과학은 파괴되지 않으며, 어떤 내적 위기도 그것의 비약을 멈추게 할 수 없으며, 그 통합력이 거기에 반대하는 것까지를 이용하는 걸 그것이 허용한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과학의 기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정상으로의 성장을 이끌어냅니다. 과학을 파들어 가면 갈수록 과학은 솟아오릅니다. - 바슐라르, <과학적 방법의 철학적 문제>

바슐라르가 말하는 '과학의 기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20세기초의 과학적 위기를 말한다. 스톡데일은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미군 장군의 이야기다. 알뛰세르에 의하면 위기의 시대에는 그 위기를 산출케한 모체 자체를 부인하려는 경향이 생겨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위기 자체에서도 벗어나려 한다. 기업들도 그렇고 그런 기업들은 '위대해'질 수 없다.

하지만 왕왕 위기를 인식하지만 모체 자체를 부인하면서 성공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지난번 살펴본 박형준씨의 경우가 그렇다. 이때 그것을 성공이라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인 문제, 가치의 문제가 제기된다. 위기의 장에 있는 사람들이 제기할 수 있는 문제이다. 아니면 그는 모체를 벗어났기 때문에 동일한 장, 또는 회사에 있지 않으므로 위기를 이야기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그의 입장에서 위기는 청산/해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위기를 바라보는 데도 수준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따라서 세계적, 사회적, 역사적, 국가적, 조직적, 개인적 등의 수식이 붙게 된다. 박형준씨의 경우 당시 제기되었던 문제를 청산하고 다른 '세속적인' 차원에서 성공한 것이다.

왜 오류에 빠질까? 바슐라르는 주체의 정신적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기능이 '틀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틀림은 그의 경험을 보다 더 풍부하게 해 준다. 자기는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틀린다.
 
바슐라르의 주체의 정신적 활동의 가장 기본인 오류라는 개념은 인식론적 방해물이라는 개념을 이끌어낸다. 인식론적 방해물은 과학적 인식의 방해물, 교정되어야할 오류와 동일어이다.

인식론적 방해물이 생기는 것은 과학적 인식에서는 자명한 것, 주어진 것은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구축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철학에서 자명한 것, 주어진 것은 데카르트의 코기토와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과학에 있어서 객관적 인식의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학에서 주어진 것은 위에서 말했던 사실, 원초적인 경험들이다.
 
그런데 <그 주어진 것이 결국 사고에 방해물이 될 때, 다시 말해 사고가 경험에 형태를 부여하거나 오히려 경험을 극복할 수 없는 어려움을 느끼는 순간에, 우리는 그것을 만나는 곳에 그것을 위치시켜야 한다>

객관적 인식을 불가능하게 하는 인식론적 방해물의 제거라는 뜻에서 정신 분석이라는 용어를 들여온다. 본능의 개입을 과학적 지식에서 제거하는 것이 객관적 인식의 정신 분석의 목적이다. 그리고 바슐라르의 정신 분석이라는 용어는 교정되어야 할 일반적 인식의 '세척', 토론과 규제를 벗어나려는 심리상태의 교정, '모든 무의식적 가치 부여-문화'로부터 과학적을로 객관화된 등의 뜻으로 사용된다.

이 글의 첫부분에서 이야기했던 오해도 하나의 이해라고 이야기했던, 그 뒤 "창조적 오해"에 대하여 생각하게 했던 부분은 정신분석에 대한 바슐라르의 이해 대한 평가이다. 바슐라르는 정신 분석에서 하나의 방법론을 찾았지, 위에서 본 그 자신의 사고의 방향을 그것 때문에 완전히 바꾼 것은 아니다. 또 바슐라르는 정신 분석에서도 인간은 치유될 수 있다는 낙관주의적 태도를 견지한다. 이런 바슐라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평가가 있다.

그(바슐라르)는 정신 분석에 대해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 오해 자체가 그에게 그의 멋진 책, 내가 찬탄한 책을 만들게 한 것이다. - 마리즈 쉬와지 (프지케, 1963년 2)

사람들 간의 오해는 불화를 만들지만 이론/사상에 대한 오해는 새로운 방법/접근법을 만들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도 한다. 그때는 더 이상 이것을 누구의 이론을 오해했다라고 부르지 못하게 된다. 오해를 통해서 그는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열어젖힌다. 바슐라르의 문학이론으로 알려진 4원소론에 의한 상상력 연구이다. 상상력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존재한다. 이 상상력이 앞에서 본 장애물이면서 문학적 세계, 미적 세계의 기반이다.

지난 목요일 회사의 전직원 모임에서 이런 '덕담'을 들었다. 5-3=2인 이유는 오해를 3번만 더 생각하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2+2=4인 이유는 이해하고 이해하면 사랑이 되니.. 노스님이이 동자승에게 문제를 내고 해석을 해준 거란다. 우리의 오해도 세번 더 생각하여 창조적 오해가 되거나, 아니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면 좋겠다. 오해 위에 위대한 기업을 어떻게 건설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불화만 있을 뿐이다.

'스스로의 오류를 자각하고, 그것을 가능케 한 내 욕망의 뿌리를 얼핏 엿볼 수 있다면. 언제 내 욕망을 객관화시킬 수 있을 만큼 내가 성숙할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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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프랑스 현대철학에서 바슐라르 상상력의 위치
어제에 이어 바슐라르에 관련된 다른 책들을 집어들어 읽다가 상상력에 대한 부분을 좀 더 살펴 볼 필요성이 있구나 생각되었다. 단순 문학비평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바슐라르 다음 세대의 철학자들에 문학비평이 아닌, 다른 형태로..
2008/02/01 22:46 2008/02/0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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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휴가이다. 휴가 중에 그동안 게으르게 뒤로 밀어뒀던 자동차의 고장난 부분을 고치고, 아내의 신발을 함께 사러가고 한의원에 들렸다.

그래도 나에게 휴가의 백미는 누워서 뒹굴거리며 책을 읽고, 읽다가 지치면 자고, 자다가 깨면 다시 책을 읽는 것이다. 이번달 8일에 샀는데 제목만 보고 던져놨던 이정우의 <탐독-유목적 사유의 탄생>을 읽었다.이정우라는 '유목적 사유자'가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에 대하여 쓴 글이다. 책을 읽으며 나보다 10년을 더 산 이정우와의 차이보다 동질감을 느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말이다. 그와 내가 걸어온 길이 다른데도 말이다.

탐독 - 6점
이정우 지음/아고라

이정우가 교사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책에 파묻히기 시작했다면 우리집에는 서재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은 한달에 한번씩 교당과 봉황대를 오르내리며 먼지 쌓인 마루를 청소하는 것이다. 할아버지 이후로 '동학쟁이'였던 까닭에,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떠난 후에도 여전히 아버지가 '동학쟁이'였던 까닭에 나와 형들은 한달에 한번 청소를 하고 보름달이 떠오르면 동네 한가운데 있던 낮으막한 동산의 꼭대기에 있던 텅빈 봉황대에 촛불을 켜고 앉아 주문을 외웠다. 그 어둑함과 좁은 산길을 오르내릴 때의 차가운 공기와 나무 냄새들, 저쪽 어둠 속에서 울던 밤새 소리들. 이런 경험이 아직도 내 도덕적 사유의 한 끝을 잡고 있다. 스스로 몸을 닦아 윤리적으로 고양되는 삶! 모든 사람이 하늘이라는 생각!

그리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소위 말하는 교양서보다는 셋째 형을 따라 무협지를 더 많이 보았다. 이정우가 삼국지를 읽을 때 와룡생, 사마달, 검궁인, 냉하상 등의 책을 읽은 것이다. 다만 문학도였던 둘째 형이 밤새 쓴 시를 두 동생을 앉혀놓고 읽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런 생활은 몇 년동안 지속되었는데 이때가 가장 행복한 때가 아니었을까? 결국 나는 동서양의 고전과 같은 이론(또는 교양)의 세계보다는 '생활세계'에서 주어진 어떤 느낌들의 중첩이 현재의 나를 결정한(영향을 준) 것같다.

철학과를 선택하게 된 동기도 그렇다. 철학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알지못했으나 스스로 '민족적인' 글을 쓰기 위해서는 철학이, 막연한 철학적 무게가 필요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땐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민족적(동학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어했고 대학에 들어가 처음에는 동양철학 (사서삼경과 같은) 원전 강독을 꽤 열심히 했었다. 하지만 나는 대학을 다니면서 철학보다는 '사회과학'을 더 많이 공부했다.

이정우가 자연과학(공학)을 공부하고 철학으로, 그리고 현재의 '유목적 사유'를 즐기는 이정우가 되었다면, 나는 철학에서 사회과학(특히, 정치학)을 왔다 갔다 하면서 대학생활을 했다. 석사, 박사, 그리고 교수까지 갔던 그의 학문적 이력과 비교하기는 그렇지만. 그리고 이젠 미디어의 세계를 이리저리 맴돌고 있는 나의 삶과 비교하기 그렇지만.

80년대의 상황이 이정우에게 생각하기를 강제했던 것처럼, 80년 막바지의 상황이 나에게 생각하기를 강제했다. 이때 나의 꿈은 죽기 전에 국가론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나는 알뛰세르에서 그람시로, 푸코로, 그리고 브르디외, 들뢰즈로 움직여 갔다. 나의 화두는 국가였고, 폭력적 국가장치들보다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였다. 나는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라는 추상화된 개념이 구현되는 형태를 장(場, camp), 담론, 계열화 등의 개념에서, 이정우가 <탐독>에서 이야기하는 바로는 사건의 철학 속에서 찾았다.
 
나는 가끔 동시대에 산다는 것, 시대정신을 함께 나누어가진다는 것을 알고 온몸이 짜르르 진동하는 느낌을 받곤 한다. 내가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생각들을 어떤 사람의 글 속에서 읽을 때가 그렇다. 사실 이런 부분은 이정우보다는 이진경의 글에서 많이 느끼곤하느데, 내가 군대에 가서 (운동권에서 말하는) 원전과 사회과학 서적을 못읽게 되면서 푸코에 빠져들게 되 것과 이것을 맑스적으로 해석하고, 맑스에게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려고 하면서 가게된 경로가 이들이 가고있던 경로와 비슷했기 때문일까? 푸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푸코를 읽게 된 동기는 단순하다. 영천 3사관학교와 광주 상무대에 있으면서 푸코의 <성의 역사>, <말과 사물> 이런 것들이 보안심사를 쉽게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성의 역사>를 보면서 야릇하게 웃던 훈육관의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런 동시대를 산다는 생각은 책 속에서 뿐만이 아니라 회사를 다니면서도 느끼는데, 서로 다른 처지, 회사에 있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서비스를 만들려는 것을 직접 듣거나, 어딘가에서 전해들을 때이다. 그럴때면 혼자 있는 것이 아닌 함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어떤 자신감 같이 것이 모락모락 마음 속에 피어오르기도 한다.

<탐독>은 3개의 장으로 되어있다. 소년/청년시절 읽었던 문학작품에 대한 가벼운 평을 쓴 부분, 대학시절 공학도로서 만난 과학적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원에서 철학을 배우고 다시 사유하면서 읽은 책들.

사실 나는 문학작품에 대해서는 별반 관심이 없다. 아니 애써 관심없는 척하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왜냐하면 한번 소설과 같은 문학작품을 읽다가 어떤 영감을 얻으면 몇날 며칠을 잠을 못자기 때문이다. 밤에 자리에 누우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만리장성도 쌓았다 부셨다 하면서 지낸다. 회사를 안다니고 직업적 작가라면 모르겠지만 이렇게 지내다간 회사에서 쫓겨나기 십상이다. 굳이 읽으면 시집을 읽는데 왜냐하면 시라는 형식이 소설보다는 생각이 나면 쉽게 옮겨적어 놓을 수 있어 이런 일이 발생하더라도 부담이 덜하기 때문이다.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나섰던 동기가 소설가 같은 글쓰는 작가가 되겠다는 것이긴 하지만 직업적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린지 오래다. 지금 사는 삶도 재미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동료들과 함께 소설은 아니지만 다른 양식으로 표현하는 창조적인 삶을 산다고 믿고있다. 굳이 된다면 '낮에는 일을하고 밤에는 시를 쓰는 삶'을 살고 싶다.

문학작품에 대한 이정우의 생각은 어른이 된 이정우의 눈으로 말하는 것이겠지만 어릴 적 기억을 더듬는 형식을 취한는 관계로 깊다기보다는 인상기에 가깝다. 굳이 평하라면 원문을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사이버 펑크에서 철학으로>에 대한 이호준의 평을 읽어보라하고 싶다. 하지만 <탐독>이 자신이 살아오면 읽었던 책들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독자에게 보여주고 자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라 사실 이런 평을 갖다 붙이는 것이 정당하지는 않다. 하지만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

둘째 장과 세째 장을 넘기면서는 나는 이정우에 대한 부러움을 갖게 되었다. 내 스스로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과학적 성과를 이해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스티브 호킹의 <시간의 역사>나 물리학 교과서, 과학사 책을 들척이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생소한 수식 앞에서 갖게되는 좌절감이란! 철학도로서 존재론을 공부하면서 갖고 싶었던 것을 공학도였던 이정우는 갖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소은 박홍규라는 은사와의 만남에 대한 강조이다. 사실 학부만을 다닌 나로서는 깊이 철학공부를 하면서 이렇게 은사라고 할만한 분을 만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이런 분이 계셨다면 하는 부러움을 갖기에는 충분하다. 이정우처럼 석사와 박사까지 공부했다면 이런 분을 만났을지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루진 못했지만 <근대세계체제>을 쓴 월러스틴을 찾아 유학을 떠날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스탈린의 일국 혁명론에 불만이 가득하던 시절, 신식민지라는 개념에 대해 회의를 품던 시절의 일이다.

대학시절 나의 스승은 선배들과 거리의 정치였다. 선배들은 '철학과에 왔으니 철학이나 공부하라'며 줄 곧 철학사 중심의 철학만을 공부시켰다. 남들이 읽는 사회과학 서적이 눈에 보이면 '압수'하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데모(가투, 가두투쟁)에는 빠짐없이 나가도록 '종용'했다. 1학년부터 한주에 2~3번씩될까? 2~3시간 지속되는 세미나를 했는데 계속되는 발제와 질문, 면박! 그리고 2학년 여름방학이 되면서 공부하던 학회가 발전적으로 '해산'을 했는데 선배들 왈 '자신들은 변증법적 사유의 기초를 가르쳤노라'고 했던 것이다. 아둔한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한참이 되서야 그 의미를 이해했다. 선배들은 철학사를 통해 개념적 사유의 방법/역사를 가르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사실 함께 공부했던 분들은 말이 선배지 학번 차이는 별로 없지만 나이가 한 열살은 많은 분들이었다. 데모를 하면서도 '싸움꾼'이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론가'를 꿈 꾸었다.

지금도 방 한구석에 최근 다시 언론에 나오기 시작한 '강경대사건/김기설씨(또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 당시 주워 모은 전단지가 한꾸러미 있다. 언젠가 국가론을 쓰겠다면, 오늘의 사건의 구조를 분석하겠다며 모아 놓은 것이다.  (유서대필 사건과 관련된 최근의 기사와 과거에 주장되었던 '사실들'을 보면 어떻게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가 동작하면서 사건을 계열화시키고 허위를 '사실'로 만드는지, 또 이것이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획득하는지를 볼 수 있다. 이런 일들은 정치사회적 사건뿐만이 아니라, 산업에서도, 지적인 장에서도 일어난다.)

요즘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면서 원전(여기서는 철학 원서이다)을 읽었다면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철학은 철학사, 개론서를 가지고 공부하면 안된다는 이정우의 말에 공감이 간다. 어떤 이론도, 사물도 마찮가지이겠지만, 가지를 치고 중요한 줄기만 남겼을 때 우리가 즐길 수 있는 푸른 잎과 여유롭게 앉아서 쉴 수 있는 그늘을 잃고 만다. 개론서나 철학사가 나름의 미덕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단계를 넘어서면 이제 그것을 던져버리고 원전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처음엔 더디겠지만 원전의 세계로 먼저 나갈 수 있다면 뒷심이 더 커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때 옆에 책을 함께 읽어주고 생각을 도와 줄 훌륭한 스승이 있다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탐독>을 읽으면서 가장 나를 좌절시킨 부분은 "철학은 오로지 원전 텍스트, 그것도 원어 텍스트를 가지고서 이야기할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의 철학이다"(p.286)라는 구절이다. 그러면서 "헬라어로 <티마이오스>를 읽고, 한문으로 <주자어류>를, 독일어로 <정신현상학>을, 프랑스어로 <차이와 반복>을 읽을 때에만 엄밀한 의미에서 철학을 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라고 부연하고 있다. 나에게는 좌절감을 주었지만 만일 이호준이 이책을 읽었다면 이런 부분에서 또 다시 김용옥의 '냄새'(또는 大家다운 풍모)를 맡지 않았을까? 이정우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는 이보다는 '모든 사람은 철학자'라는 그람시의 편에 서 있다. 이정우가 '엄밀성'을 전제로 두고 있기는 하지만.

나에게 외국어는 영원한 숙제이다. 시간과 돈만 잡아먹는 영어 공부를 다시는 안하겠다고 마음먹은지 몇년이 지난 요즘, 회사일로 자주 외국인을 만나게 되면서 다시 공부를 해야 하나 하고 흔들리고 있긴하다. 좋아하는 철학보다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한가보다. 나도 직업으로서 철학을 하고 있다면 이런 말을 했을까? 아니면 원전을 읽기 위해 다른 언어를 열심히 배웠을까?

또 사소하지만 이정우에게 부러운 부분이 하나 더 있었는데 "유학을 갈 것을 여러 번 종용하시기까지"하는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대학원을 가려고 '군대'를 간 웃기는 놈이다. 집이 대학원에 다닐 학비를 대줄 형편이 못되서 돈을 좀 모아보자는 심산으로 학사장교를 지원했다. 군에 지원을 하기위해 서류를 떼러 갔을 때 속도 모르고 '이 성적으로 대학원엘 가지 군대에 가느냐'고 묻던 분이 생각난다. 결국 이때 모은 돈은 제대 후 결혼 자금이 되었다. 공부보다는 연애하고 지금의 아내와 사는 것이 더 좋았던 것이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철학과나 정치학과가 아닌 경영학과 대학원에를 갔다. 노동자를 위한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마지막으로 "나는 정치가도 아니고 운동권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겪은 정치적, 역사적 체험을 내 사유의 근원으로 삼고 싶었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사유하든 그 근원을 영원히 잊지 않고 살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리고 그때 내 가슴 속에 타오른 불길은 지금까지도 꺼지지 않고 있다."(pp.367~368)고 이정우가 말하고 있다. 서 있는 곳, 바라보는 곳은 다르지만 나도 그렇다. 이것이 어떤 시대가 어떤 세대에게 던져준 화두가 아닐까? 우리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우리를 여전히 옴짝달싹 못하게 눌러대는 세계-자연, 사회, 인간-에 대해 알고 싶고,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따스한 햇빛이 드는 거실햇빛을 받으며 뒹굴기
▲ 가장 행복한 순간: 햇볕이 따스하게 드는 곳에서 배를 깔고 책을 읽을 때, 어디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온다면, 그리고 아내가 과일을 깍아준다면 더 좋을텐데...... 뒹구는 포즈
2007/11/22 02:50 2007/11/22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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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인 대상 - 2007 Level Up HOT ISSUE 과정 강의 중

2007 Level Up Hot Issue 과정 책자차례 및 발표내용


9월 5일, 12일 이틀 동안 수원에 있는 KBS 연수원에서 케이블, 지상파 등의 방송 기술인을 대상으로 한 <2007 Level Up HOT ISSUE>과정에서 웹2.0을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인터넷업계에 종사자가 아닌 방송사의 기술직 사원들이 웹2.0 강의를 듣는다는 것도 아주 큰 변화이다. 인터넷과 방송의 융합에 대하여 모른체할 수 없는, 따라서 인터넷·웹에 대해서도 작은 관심이라도 갖아야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리고, 10월 11일에는 KBS에 가서 백발이 성성한 분들이 반쯤은 되는 청자를 대상으로 같은 내용의 강의를 하였다. 11일의 강의에서는 좀 더 뉴미디어에 대한 방송의 전략, 왜 콘텐츠를 개방해야하는지를 강조하였다.
 
즉, 왜 sbs.co.kr에서 NeTV와 같은 서비스를 만들었는지, KT IPTV 포털을 만들고 참여하고 있는지, 방송·콘텐츠가 뉴미디어를 통해 무엇을 원해야하는지, 또는 원할 수 있는지, 또 왜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 하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마지막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전략을 이렇게 밝히면 어떻게 합니까? 상대방이 알면...."

"저는 전략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전략을 세울 때 시장환경을 이야기하고 내적인 역량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하는 것은 이것을 말해주죠. 전략은 모든 구성원이 알고 있어야 하는데 비밀결사도 아니고 개방된 조직에서의 전략은 남도 알 수 밖에 없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전략이 서로 경쟁하는 기업간의 관계라면 상대방이 우리에 대하여 잘 알아야 타협이나 협상의 여지가 있죠. 상호이해가 전제되지 않고는 협력한다는 것이 어렵고.. 현재의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상황에서 갈등이 이런 문제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통신과 경쟁을 하고 있다면 이 자리(KBS)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의 적은 아군이다'라고 생각하고 함께 연대해보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략은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Open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략을 경쟁하는 상대가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역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이라고 하면 더욱 개방되고 힘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의병장이 격문을 써붙이듯이 말입니다. 반역을 일으킬 때도 마찮가지죠"

위의 답은 그자리에서 한말이 2/3 이상이고 이 글을 쓰면서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였다. 사후적으로 깨달은 것이지만 <미디어2.0>이라는 책을 쓴 커다란 동기 중의 하나도 이런 이유이다. 역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작지만 개입하고 아군을 끌어모으고, 경쟁상대에게는 우리를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고 타협의 지점이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서!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알뛰세르는 다른 상황이지만 이런 것을 '이론적 실천'이라 개념화한 바가 있다.

강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웹2.0
    • 차세대 웹으로서 시맨티웹: 컴퓨터가 정보의 의미를 이해하고 조작할 수 있는 웹
    • 팀 오라일리: "What is We 2.0?"
    • 웹2.0 Meme Map과 웹2.0의 특징: 방송 콘텐츠에 적용할 경우
    • 웹2.0 개념: 차세대 웹은 시맨틱 웹이며, 웹2.0은 시맨틱 웹을 경제적, 현재적 관점에서 본
    • 웹2.0 경제: 롱테일, 방송 콘텐츠에서 롱테일의 의미
    • UCC, 또는 UGC: 참여, 개방, 공유
    • 웹2.0 기술
  2. 웹2.0 & sbs.co.kr
    • 방송이 본 웹2.0 환경: 유비쿼터스-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방송 환경
    • 웹2.0은 An Attitude, not a technology로 미디어의 경우 이렇게 질문하는 것: 참여, 개방, 공유를 허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방송)의 콘텐츠를 관리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플랫폼으로서의 웹(The web as platform)처럼 플랫폼으로서의 콘텐츠(The contnet as platform)을 만들까?
    • SBSi의 실천
      • 2005년 UCI: 메타데이터의 중요성, 표준화의 의미, 멀티플랫폼/크로스 플랫폼을 위한 준비 - 메타데이터 피딩, 검색, 변환의 의미
      • 2006년 Digital Content Platform: 유비쿼터스 환경에서의 콘텐츠 이용 방식의 변화, 크로스 미디어 전략 또는 멀티플랫포밍 전략의 필요성 - SBSi의 디지털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모든 곳(cross/multi platform)에 적시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
      • 2006년 NeTV 서비스: 아카이브 개방의 의미, 회원과 시청자의 참여란 무엇일까? 정서적 연대와 콘텐츠 공유는 어떻게 할 까? 검색을 통해 콘텐츠에 접근하는 세대의 출현
      • 2007년 NePod 서비스: Connected Device의 전략적 중요성과 다운로드 서비스, 플레이어 또는 어플리케이션의 중요성
    • 미래 서비스 로드맵
  3. 미디어2.0
    • 융합과 정보양식의 변화: 인터넷을 만난 신문의 변화
    • IP와 방송이 만날 경우 어떻게 변할까? 영상 데이터베이스와 방송의 결합, 웹 콘텐츠와 방송의 결합, 실시간 참여와 방송의 결합, 커머스와 방송의 결합
  4. Appendix. BBC creative future
    BBC의 연역법 vs. SBSi의 귀납법

정보양식의 변화에 대하여 마크 포스터의 개념을 통해서 접근했었는데 최근 발터 벤야민을 좀 더 읽으면서 그를 통해서도 접근할 수 있음을 알았다. <얘기꾼과 소설가>를 보면 인쇄기술/책과 함께 이야기가 없어지고 소설로 변화하며,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을 보면 사진·찰영기술/영화와 함께 연극/아우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기술에 따른 예술'양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10월 11일 KBS에서 미디어2.0을 이야기하면서는 1,2차 강의와는 달리 이런 이야기를 했다.

2007/10/13 13:33 2007/10/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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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부터 <근대세계체제 1, 2, 3>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사놓은지는 몇년 지났는데 계속 이어 끝까지 읽은 적은 없다. 대충 필요한 부분이거나 아니면 관심이 가는 장을 찾아 읽다가 던져놓곤 하였다.

책이 97년에 출간된 것을 보니 군대를 제대하고 산 것 같은데 아마 '생일선물'로 받은 것 같다. 2만원짜리 3권을 한번에 사는 경우는 이럴 때가 아니곤 여간해선 없다. 또 읽고는 싶었어도 꼭 사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것이 아니면 비싸니 '선물로 받아야지'하고 생각하고 뒤로 미뤄둔다. 며칠 전 생일에도 이런 식으로 책을 한권 받았는데, 한권 가격(59,000원, 1200페이지가 넘는다!)이 만만찮아 둘이 함께 사달라고 했다.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1>이다. 2권은 내년에나 손에 들어오지 않은까?

아케이드 프로젝트 1 (양장합본) - 10점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새물결

왜 <근대세계체제>를 읽기 시작했지? 방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자리에 책이 꽂혀 있어서였나. 책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버릇이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쓴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책이 한국어로 출판되기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 다닐 때,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함께 잦아들고 있었다. 아마 3학년 아니면 4학년(91~92년) 때였나보다. 한참 혼자서 국가론과 사회구성체(사회형성체) 논쟁을 관련 논문들을 읽고 있었다. 그때 한국 사회성격을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식민지'는 개념이 담고있는 의미나 한국에서 전개된 논쟁, 운동의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다시 남아메리카에서 발전한 '종속적'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쪽도 그리 맞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종속적'이라는 개념은 신식민지와 같이 일본과 조선, 미국과 한국 등의 한국가와 다른 한국가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보다는 더 낮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국제적인 경제현상은 다자간의 관계이며, 어떤 층위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요즘의 BRICs처럼 당시에 NICs(아시아 신흥공업국)에 대한 논의들이 많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종속적이라는 개념을 국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주도적이지 못한 위치에 있는 일군의 국가들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종속적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들지않았던 것은 소위 '제국주의' 국가들도 전체/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보면 얼마나 자율적일까 하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운명도 이 체제에 '의존적'이지 않은가? 자신들의 운명이 '종속적' 상태에 있는 국가들에 달려있지 않은가? 이때 한국 자본주의에 '개량의 물적 기반'이 있는가, 없는가의 논쟁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것의 밑에는 한국 자본주의가 일본, 미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다국적 자본)처럼, 수준의 문제이긴 하지만,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것은 파시즘 체제가 아닌 민주적 체제로 이행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운명도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 의존적 이라는 말은 민주적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은 새로운 시장(신민지 또는 신식민지에 있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을 통해서만 갖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처음 월러스틴의 책을 이곳 저곳의 논문에서 짜집기하듯 읽었다. 역사적으로 자본의가 태어날 때부터 한 국가가 아닌 '세계경제'를 배경으로 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신식민지, 종속적, 이런 것보다는 공간적 은유인 주변부, 또는 반주변부라는 개념이 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같다.
 
<근대세계체제>는 '1450년 당시에 유럽에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등장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체제제는 두 가지 핵심적인 제도, 즉 어느 일정지역 안에 자리잡은 "세계적" 범위의 분업과 관료제적인 국가기구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경제는 세 지역, 반주변부(semiperiphery), 핵심부(core), 주변부(periphery)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나뉜다.'(p.106)고 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나는 월러스틴이 '사회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과 어떤 주의, 주장에 헌신하는 것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어떤 주의, 주장에 헌신하지 않는 사회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과학이 객관적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한다.(p.25)
그리고 "진리는 변화하는데, 그것은 사회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어진 시간에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동시대적이다. 심지어 지나간 것까지도 그렇다. 그리고 현재 안에서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배경, 우리가 받은 훈련, 우리의 개성과 사회적 역할, 그리고 우리가 그 속에서 활동하는 구조화된 압력들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이다."라고 말한다.(p.26)
따라서 "객과성이란, 전체 사회체제의 한 함수이다. 사회체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특정한 종류의 연구활동이 특정 집단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한 그 연구결과는 이 특정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향될 것이다. 객관성이란, 이러한 활동이 세계체제의 모든 주요 집단에 기반을 둔 사람에 의해서 균형 있게 수행되도록 해주는, 사회적 투자 분배의 벡터이다. 객관성을 이렇게 정의할 경우 객관적인 사회과학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이 가까운 장래에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다."(p.27)

이렇게 월러스틴의 이야기를 쓰게된 동기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근 한겨레신문에서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한 특집을 읽었기 때문이다. 특집의 내용은 위 '사회구성체 논쟁'의 21세기적 형식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한겨레-지식논쟁
한겨레신문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① 조정환, 왜 제국인가 - 제국주의는 죽었다, 21세기는 지구  제국 시대
   ② 정성진, 왜 제국주의인가 - '지구제국'은 허상이다, 제국주의 되레 격화
   ③ 이진경, 제3의 시각 '과잉제국주의' - 제국주의는 과거형, 지구제국은 미래형

조정환, 정성진, 이진경의 주장을 읽으면서 불현듯 월러스틴이 <근대세계체제>에서 쓴 글이 생각났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독특한 특징은, 경제적 결정은 주로 세계경제를 지향한 반면, 정치적 결정은 주로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더 작은 구조들-세계경제 내의 국가들(민족국가, 도시국가, 제국)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제 및 정치의 이중 지향성 또는 "차별성"은 여러 집단들의 자기 정체성에 관한, 즉 집단 이해관계의 합당한 표명에 관한 혼란과 신비화의 근원이다."(p.109)
경제적인 세계화를 기본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조정환과 상대적으로 정치적 국가를 중시하는 정성진은 이런 혼란과 신비화의 도정에 서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나는 감성적으로는 여전히 정성진에 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진경의 지적처럼 유럽연합 등을 살펴볼 때, "경제 및 정치의 이중 지향성"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합류하고, 전지구적인 제국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현재 '경향적'으로 이런쪽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성적으로는 이진경을 지지한다.

(요즘은 이진경을 지지하는 판단에 회의가 든다. 경향성이란 말도 여러 가지 잠재성 중에 하나이고, 어떤 조건에서는 다른 것이 나타날 수가 있다. 또 국가라는 물질적 실재가 언제 없어질까? 정성진의 주장에 '감성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지만 감성 자체가 합리적 이성의 기초이기도 하다. 2009.3.20 update)

이진경의 '과잉'제국주의에서 과잉의 의미를 어떻게 볼까? 국가론에서 보면 함자 알라비(맞나?)가 과대성장국가이론을 말하는데, 그때의 '과잉'과 친연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91년 여름 내내 나는 과대성장국가이론을 한국에 적용하여 분석하는 작업을 했었다. 그리고 에세이 한편을 썼는데 언제가 이것도 posting을 하겠다.) 한 국가차원에서 상부구조가 과잉성장한다는 것과 여러 국가들의 연합을 통해서 제국주의가 과잉(성장)하다는 것. 그런데 전자가 그렇게 되기에 필요한 역사적 배경(식민경험이라는)이 있었던 것처럼 후자가 성립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 제국주의간의 경쟁, 아니면... 이진경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월러스틴은 '장기 16세기'의 유럽과 제국 중국을 비교하면서 자본주의의 탄생을 살피는데, 제국이 자본주의 발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과거 역사에서의 제국과 조정환의 제국은 어떻게 다른가? 경제와 정치의 분절(이중 지향성)이 경제적 착취구조를 감싸는 이데올로기적(신비화) 기제는 아닌가? 이것이 합치될 때는 계급투쟁에서 피아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고 있다.

여하튼 나는 "진리는 변화하는데, 그것은 사회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어진 시간에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동시대적이다. 심지어 지나간 것까지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월러스틴의 말을 믿는다.  그리고 "사회체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특정한 종류의 연구활동이 특정 집단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한 그 연구결과는 이 특정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향될 것"이며 이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알뛰세르의 말처럼 막대를 반대로 구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근대세계체제 1 - 10점
자본주의적 농업과 16세기 유럽 세계경제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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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세계체제 2 - 10점
중상주의와 유럽 세계경제의 공고화 1600-1750년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유재건 외 옮김/까치글방
근대세계체제 3 - 10점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거대한 팽창의 두 번째 시대 1730-184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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