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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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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에 해당되는 글 5건

제주도 여행, 올레길

지난해 연말 3박4일 일정으로 제주도에 다녀왔다. 셋이 이렇게 '길게' 여행을 간 적이 없다. 이번 여행은 그냥 걷자는 것이었다. 첫날은 오후에 도착하여 절물휴양림과 산굼부리를 둘러보았고, 둘째날은 올레길 중 첫번째 코스를 걸었다. 셋째 날은 한라산을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날은 비자림을 걸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제주도 여행은 렌터카 센터에서 시작하여 렌터카 센터에서 마친다. 차를 빌려 제주도를 이리 저리로 가로지르다 밤이 되면 숙박지로 새처럼 돌아왔다가, 또 다시 아침이 되면 이리 저리 구경거리를 찾아 나선다. 모두들 자동차를 타고 이렇게 돌아다니다보니 모든 사람들이 같은 곳에서 같은 것을 보고 돌아온다. 두번, 세번 갔다오면 어딜가든 심드렁해지기도 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이번 제주도 여행 중 이런 사회적인 현상의 원인을 찾은 듯하다. 그것도 "미디어의 이해"라는 관점에서.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찾는 구경거리들은 모두 차길 가에 있고, 만약 차가 가지 못하는 곳에 있다면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가는 곳이 이렇게 정해져 있다보니 우리가 만나는 삶과 그속의 사람들도 그리 특별하게 느껴지지않는다. 어디서나 서울의 롯데월드나 자연농원에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고, 식당엘 가도 마찮가지이다. 따라서 우리가 보는 제주도 사람들은 모두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알게 모르게 나머지 모든 주민들도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자동차 문명의 양상


이런 모든 이유가 자동차 때문이라는 것이 이번 여행에서 내가 느낀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발(足)이 잘려 장애인이 되었기 때문에, 다시말해 자동차에서 내려 서서 무거운 발걸음을 뗐기 때문이다. 머리만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때는 발도 생각을 한다. 맥루한은 이런 현상을 자동차적인 문명의 양상으로 분석한다.

"자동차는 그 마력만으로 사회적인 수준의 균일화를 꾀하였다. 그리고 자동차는 똑같은, 또한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도로와 보양지(保養地)를 만들기도 하였다. 텔레비젼의 출현이래, 당연한 일이거니와 이처럼 누구든지 같은 자동차를 타고, 같은 장소에서 휴가를 보내려고 한다는 획일적 상황에 대하여 이따금 불만의 소리를 듣게 되었다. … 한 대의 자동차가 갈 수 있는 곳에는 모든 자동차가 가고, 자동차가 가는 곳은 어디든지 반드시 자동차적인 문명의 양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커뮤니케이션북스, 1997, pp.256~257)

누구나 제주도에 간다면 성산 일출봉을 가본다. 제주도 어디서 출발하든 자동차를 타고 잘 닦인 아스팔트를 달리거나, 좁은 해변도로를 통해 갈 수 있다. 그리고 빼곡히 들어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 걸어 올라갔다 내려온다. 우리는 성산 일출봉에 가지만 얼마나 그것을 느낄 수 있을까?

아우라, 먼 것의 일회적 현상
 
벤야민이 "어느 여름날 오후에 휴식을 취하면서 지평선 너머의 산의 능선 또는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위로 그늘이 드리우는 어느 나뭇가지를 바라보는 것 - 이것은 이 산의 아우라, 이 나뭇가지의 아우라를 호흡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발터 벤야민,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파시즘에 관한 문헌을 공부하는 CP Group 번역, p.4)고 할 때의 느낌, 아무리 가까이 있다 해도 먼 것의 일회적 현상인 아우라 말이다. 관광지의 번잡함을 느꼈다면 나만 그랬을까? 내가 성산 일출봉이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것 아니다. 아주 아름답지만 제주도라는 맥락 속에서의 성산 일출봉을 볼 수 있냐고 묻는 것이다. (맥락적 이해에 대해서는 아래 소개한 전경수의 <문화시대의 문화학>을 볼 것)

제주 올레길 첫코스 - 앞에 보이는 곳이 말미오름이다.

말미오름에서 바라본 성산 일출봉 - 논둑처럼 밭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돌담(윗사진)이다.

미디어, 인간의 확장

맥루한은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 내용보다도 그 결과, 확장된 형식(기술)에 의해 유발된 효과에 관심을 둔다. 맥루한에게 자동차는 "말(馬)의 경우보다 훨씬 더 타는 사람을 슈퍼맨(superman)으로 만드는, 인간의 확장 형태"(p.256)로 간주된다. 그리고 "여행에 자동차를 사용하는 것은 사람을 '점점 몰개성적(沒個性的)'으로 만든다고, 대중 작가마저도 확신을 가지고 비난할 수 있을 때, 미국 생활의 구조가 의심된다고 하여도 좋을 것"(p.258)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기계에 의한 인간의 확장이 전통적인 맥락을 단절시키고 "인간집단의 모든 존재방식과 더불어 인간의 감관지각의 종류와 방식도 변화"(p.4)시킨다는 벤야민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때 다시 역설적인 질문을 할 수 있다. 미디어의 발달이 항상 인간의 확장으로 귀결는 것일까? 자동차를 예로 들면 항상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곳만으로 인간을 옭아매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닐까?

확장의 이면, 축소된 감각능력

제주도에서 올레길을 걸으면서 얻은 깨달음은 기술에 의한 인간의 확장의 이면이다. 확장 뒤에는 어떤 것의 축소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말미오름에 올라 보았던 성산포 앞바다와 구불거리는 돌담에 둘러쌓인 당근밭, 감자밭들, 우도와 일출봉, 그 자리에 서서 느꼈던 아우라 - 아무리 가까이 있다 해도 먼것의 일회적 현상과 같은 것이 이 속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자동차에 의한 우리 발의 확장이 이러한 것을 축소시키고 있는 것이다. 한 가지 감각능력의 증대는 다른 감각능력의 축소를 동반한다. 따라서 아이디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이러한 확장은 동시에 축소이다 … 이러한 확장은 분명히 타자에 대한 나의 포괄적인 감각경험의 전체 영역을 축소시킨다. 그래서 전화를 통하여 말할 때에는 얼굴을 마주보고 대화할 때에 가지게 되는 타자의 풍부한 시각적 현전이 없다 … 타자는 오직 부분적으로만, 오직 청각적으로만 현전한다. 이는 준현전이거나 변형된 현전이다. 나는 타자에게 확장된다. 그러나 그러한 타자는 축소된 현전이다."(김익현, <매체에 대한 윤리학적 접근 - 스피노자의 윤리학과 정치학을 중심으로>, 『매체철학의 이해』, 인간사랑, 2005, p.108에서 재인용)

기계적 삶의 초현실성


다시 맥루한에게 돌아가 보면 "자동차는 인간을 연결하거나 분리시키는 모든 공간을 전면적으로 바꾸어놓았다."(p.261) 자동차를 발로 단 우리는 더 이상 감각에 의한 이런 느낌을 기대할 수 없게된 것이다. 가끔 다리(자동차)와 귀(휴대폰), 눈(TV), 팔(컴퓨터)을 떼고 육신(肉身)만으로 세상을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확장된 육신이 초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처럼, 육신으로 느끼는 세계의 생소함이 초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한라산 백록담을 향해 걸어가는 아내와 순호

"사람들이 자신들의 걷는 모습을 모방하여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자 했을 때, 다리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바퀴를 만들어 내었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초현실적(超現實的) 행위를 하였던 것이다."(아폴리네르, 「Surrealisme」, 월간 「Europe」, 1968년, 11~12월호, 임영방, 『현대미술의 이해』, 서울대학교 출판부,1993, p.177에서 재인용)

아폴리네르의 말을 빌어 말하면 인간의 확장은 사람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초현실적인 효과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바꾸면서 살아가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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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우리 가족을 맞아 올레길과 주변에 대해 설명해 주신 시흥초등학교 교장 선생님께 이 글을 통해 감사를 드린다. 그분과의 만남 때문에 우리의 여행은 더욱 즐거웠다. 또 시흥리가 제주도가 시작되는 마을이라는 것과 바로 옆 동네인 종달리가 제주도의 마지막 동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시작과 끝은 서로 마주보며 손을 잡고 있다.

시흥초등학교 한쪽 옆, 붉은 동백꽃이 피었다.

말미오름 정상쪽에서 내려다본 시흥초등학교 - 교장 선생님은 학교 운동장에 잔디를 심고, 꽃을 가꾼 것 등에 대해 한참을 설명하셨다.

1월 4일 쓰기 시작하여 10일 오전 12시 30분 마침. 무슨 할 일이 그렇게 많은지 정신이 없다. 여행은 12월 10일부터 13일까지 했다. 여행에서 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밤이면 집에서 읽었던 책을 다시 뒤적였다.

참고서적 ---------------------------------------------------------------

미디어의 이해 : 인간의 확장 - 10점
마샬 맥루한 지음, 박정규 옮김/커뮤니케이션북스
<미디어의 이해>를 먼저 읽는 것보다는 몇개의 관련 논문(해설서)를 읽은 후 읽는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먼저 읽고 요즘은 관련 논문들을 조금씩 보고 있는데 장단점이 있는듯하다. 어렵다고 하는데 내용이 어렵다기보다 이리 저리 뛰는 맥루한의 글쓰기 방식이 문제가 아닐까? 이런 방식에 적응된 사람이거나,  프랑스 철학자들이 쓴 책을 읽을 수 있다면 아주 이해하기 쉬울 수도 있다. 자동차, 전화 등 여러 미디어를 예로 들면서 인간의 확장과 그 결과(변화)에 대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어 계속 읽다보면 지나쳤던 앞의 내용을 다시 이해할 수 있다. 미디어 간의 차이와 그 안에서 반복되는 동일성!

매체철학의 이해 - 10점
매체철학연구회 엮음/인간사랑
매체철학에 대한 입문서 수준으로 8편의 짧은 에세이들로 되어있다. 여러 사람들을 다루고 있지만 맥루한과 벤야민에 대한 내용이 가장 많은 듯하다. 맥루한과 벤야민의 이론에 대해 짧게 정리된 글을 찾는다면, 또 이들을 다른 철학자들(또는 철학)과 연결해서 읽고 싶다면 유용할 수 있다.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 10점
발터 벤야민 지음/민음사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이 이 책에 실려있다. 본문에서 인용한 부분이 이 책이 아닌 다른 분들이 번역한 글을 이용했다. 아우라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끄집어내 기계적 복제시대의 예술이 어떻게 영향을 받을지 이야기하고 있다. 기계문명의 발달에 따른 인간지각방식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맥루한과 연결점이다.

현대미술의 이해 - 10점
임영방 지음/서울대학교출판부
발터 벤야민의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보면 미래파에의 기술, 기계에 대한 태도 등에 대한 분석이 나온다. 미래파, Dada운동, 초현실주의 등에 대한 개념과 역사를 짧은 글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문화시대의 문화학 - 10점
전경수/일지사
아우라(맥락, 전통) 속에서 제주도 관광이 어떻게 문화를 물상화(자본주의적 상품화)시키는지를 민속지론을 통해 문화비평을 하고 있다. 이 글에는 직접 인용을 하지 않았지만 수호신으로 섬기던 돌하르방이 상품화되는 과정 등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다. 또 아우라에 대해 맥락론적 이해를 증진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2009/01/04 22:55 2009/01/04 22:55
From. 제레미 2009/01/22 16:57Delete / ModifyReply
제주도에 가서 그냥 푹 쉬다 오시지 뭔 이런 철학적 스토리를 고민하신대요^^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는 꼭 사보아야겠습니다. 미디어의 현실판을 이리저리 모아보고 분석하다보니,, 철학적 토대가 매우 빈약해 보여 무언가 갈구하게 됩니다.

미디어를 인간의 확장으로 이해한다는 맥루한의 생각이 매우 궁금합니다..

너무 철학적 글빨이예요.. 앞으로 쉽게 써주셔요..^^
jjpark 2009/03/02 08:50Delete / Modify
글발도 없고 내용 소화도 못하니 글을 써도 '냉냉하고' 재미도 없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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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인 대상 - 2007 Level Up HOT ISSUE 과정 강의 중

2007 Level Up Hot Issue 과정 책자차례 및 발표내용


9월 5일, 12일 이틀 동안 수원에 있는 KBS 연수원에서 케이블, 지상파 등의 방송 기술인을 대상으로 한 <2007 Level Up HOT ISSUE>과정에서 웹2.0을 주제로 강의를 하였다. 인터넷업계에 종사자가 아닌 방송사의 기술직 사원들이 웹2.0 강의를 듣는다는 것도 아주 큰 변화이다. 인터넷과 방송의 융합에 대하여 모른체할 수 없는, 따라서 인터넷·웹에 대해서도 작은 관심이라도 갖아야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리고, 10월 11일에는 KBS에 가서 백발이 성성한 분들이 반쯤은 되는 청자를 대상으로 같은 내용의 강의를 하였다. 11일의 강의에서는 좀 더 뉴미디어에 대한 방송의 전략, 왜 콘텐츠를 개방해야하는지를 강조하였다.
 
즉, 왜 sbs.co.kr에서 NeTV와 같은 서비스를 만들었는지, KT IPTV 포털을 만들고 참여하고 있는지, 방송·콘텐츠가 뉴미디어를 통해 무엇을 원해야하는지, 또는 원할 수 있는지, 또 왜 그 자리에 서서 이야기 하고 있는지... 그 자리에서 마지막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전략을 이렇게 밝히면 어떻게 합니까? 상대방이 알면...."

"저는 전략은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전략을 세울 때 시장환경을 이야기하고 내적인 역량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하는 것은 이것을 말해주죠. 전략은 모든 구성원이 알고 있어야 하는데 비밀결사도 아니고 개방된 조직에서의 전략은 남도 알 수 밖에 없죠. 그리고 더 나아가서 전략이 서로 경쟁하는 기업간의 관계라면 상대방이 우리에 대하여 잘 알아야 타협이나 협상의 여지가 있죠. 상호이해가 전제되지 않고는 협력한다는 것이 어렵고.. 현재의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는 상황에서 갈등이 이런 문제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만일 통신과 경쟁을 하고 있다면 이 자리(KBS)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적의 적은 아군이다'라고 생각하고 함께 연대해보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략은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기 때문에 Open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략을 경쟁하는 상대가 알면서도 당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역관계를 역전시키는 것이라고 하면 더욱 개방되고 힘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의병장이 격문을 써붙이듯이 말입니다. 반역을 일으킬 때도 마찮가지죠"

위의 답은 그자리에서 한말이 2/3 이상이고 이 글을 쓰면서 좀 더 이해를 돕기 위해 덧붙였다. 사후적으로 깨달은 것이지만 <미디어2.0>이라는 책을 쓴 커다란 동기 중의 하나도 이런 이유이다. 역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작지만 개입하고 아군을 끌어모으고, 경쟁상대에게는 우리를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고 타협의 지점이 존재함을 알리기 위해서! 조금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알뛰세르는 다른 상황이지만 이런 것을 '이론적 실천'이라 개념화한 바가 있다.

강의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웹2.0
    • 차세대 웹으로서 시맨티웹: 컴퓨터가 정보의 의미를 이해하고 조작할 수 있는 웹
    • 팀 오라일리: "What is We 2.0?"
    • 웹2.0 Meme Map과 웹2.0의 특징: 방송 콘텐츠에 적용할 경우
    • 웹2.0 개념: 차세대 웹은 시맨틱 웹이며, 웹2.0은 시맨틱 웹을 경제적, 현재적 관점에서 본
    • 웹2.0 경제: 롱테일, 방송 콘텐츠에서 롱테일의 의미
    • UCC, 또는 UGC: 참여, 개방, 공유
    • 웹2.0 기술
  2. 웹2.0 & sbs.co.kr
    • 방송이 본 웹2.0 환경: 유비쿼터스-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넘어선 방송 환경
    • 웹2.0은 An Attitude, not a technology로 미디어의 경우 이렇게 질문하는 것: 참여, 개방, 공유를 허용하면서 어떻게 하면 자신(방송)의 콘텐츠를 관리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플랫폼으로서의 웹(The web as platform)처럼 플랫폼으로서의 콘텐츠(The contnet as platform)을 만들까?
    • SBSi의 실천
      • 2005년 UCI: 메타데이터의 중요성, 표준화의 의미, 멀티플랫폼/크로스 플랫폼을 위한 준비 - 메타데이터 피딩, 검색, 변환의 의미
      • 2006년 Digital Content Platform: 유비쿼터스 환경에서의 콘텐츠 이용 방식의 변화, 크로스 미디어 전략 또는 멀티플랫포밍 전략의 필요성 - SBSi의 디지털 콘텐츠를 필요로 하는 모든 곳(cross/multi platform)에 적시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것
      • 2006년 NeTV 서비스: 아카이브 개방의 의미, 회원과 시청자의 참여란 무엇일까? 정서적 연대와 콘텐츠 공유는 어떻게 할 까? 검색을 통해 콘텐츠에 접근하는 세대의 출현
      • 2007년 NePod 서비스: Connected Device의 전략적 중요성과 다운로드 서비스, 플레이어 또는 어플리케이션의 중요성
    • 미래 서비스 로드맵
  3. 미디어2.0
    • 융합과 정보양식의 변화: 인터넷을 만난 신문의 변화
    • IP와 방송이 만날 경우 어떻게 변할까? 영상 데이터베이스와 방송의 결합, 웹 콘텐츠와 방송의 결합, 실시간 참여와 방송의 결합, 커머스와 방송의 결합
  4. Appendix. BBC creative future
    BBC의 연역법 vs. SBSi의 귀납법

정보양식의 변화에 대하여 마크 포스터의 개념을 통해서 접근했었는데 최근 발터 벤야민을 좀 더 읽으면서 그를 통해서도 접근할 수 있음을 알았다. <얘기꾼과 소설가>를 보면 인쇄기술/책과 함께 이야기가 없어지고 소설로 변화하며,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을 보면 사진·찰영기술/영화와 함께 연극/아우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기술에 따른 예술'양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10월 11일 KBS에서 미디어2.0을 이야기하면서는 1,2차 강의와는 달리 이런 이야기를 했다.

2007/10/13 13:33 2007/10/1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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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 아우라
book, (2007/10/05 23:40)

시스티나의 성모

박설호(한신대),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에 관하여>, 브레히트와 현대연극, 제?집을 읽으며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 개념 중 '원근관계의 착종현상'을 설명하며...
라파엘로의 <시스티나의 성모>를 예로 들어보자. 그림 속에서 우리는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일원성을 조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일원성은 그림 속의 등장 인물을 어떠한 장소에 국한시키지 않고 있다. 등장 인물은 가까이 서 있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다. 그러니까 성모가 위치한 곳이 이승인지 저승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림 속에서 커튼은 어떤 아우라를 형성시키고 있는 틀로 작용하고 있는데 , 성모가 커튼 앞에, 혹은 커튼 사이에, 혹은 커튼 뒤에 둥둥 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성모는 내려오는 듯이 솟아오르고 계시며. 천국에서 내려오면서도 상승하는 것 같다. 성모가 계신 곳은 한마디로 납치 당하는 장소이자, 동시에 귀향의 장소이기도 하다. 영광스러운 성모의 특성은 둥둥 떠 있는 상태인데, 파우스트에서 이와 근친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pp.135~136 (인용 그림위치: http://l-club.lesvacances.co.kr/premium/focus/view.asp?premMenuFlag=T&premGubn=F&fcusSeqnCode=20060710162953&fcusThemCode=00001#top)

후자의 이것(자연적 대상에 대한 아우라-역주)을 우리는 아주 가까이 있다 하더라도, 어떤 먼 곳의 일회적 현상으로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여름날 오후 휴식의 상태에서 휴식하는 사람은 그림자를 드리운 먼 지평의 산맥 그리고 나뭇가지를 바라보게 된다. 이때 산맥과 나무 가지의 아우라는 마치 하나의 생명처럼 숨쉬고 있다. pp.134~135  (원문: 발터 벤야민, <Kleine Geschichte der Photographie, 사진의 작은 역사 (1931)>)


김하우 교수, 인도철학사, 춘일계명 ".. 저녁에 붉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에또 .. 고향집을 생각하는 갖 시집온 색시의 마음을 감싸주는 부엌신 ..." 종교와 아우라에 관한 탁월한 연결점을 보여주는 사례?

예술작품은 오래 전에 마법, 주술 등과 같은 종교적 제식의 일환으로 탄생하였다. 그리하여 그것은 오랫동안 일회적이고도 신비로운 독창성이라는 권위를 지니고 있다. 독창성은 관찰자와의 거리감을 유지하게 만드는 자생적 권위인데, 관찰자는 처음부터 이러한 권위를 무의식적으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신의 얼굴을  함부로 볼 수 없듯이, 예술 작품에 나타난 종교적 상 역시 함부로 쳐다볼 수 없다. pp.129~130

☞이런 관점으로 위 그림을 볼 것. 그리고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분위기'와 같은 것을 생각해 볼 것. 신의 얼굴... 이 부분에서 이정우의 <세계의 얼굴>에서 분석한 안면성 관련 부분이 떠오른다.
자생적 권위 p.130, 자생적 작품 p.132. 여기서 말하는 자생적은 자연적(자연의 미와 같은 자연)에 해당한다.
아도르노의 발터 벤야민 해석에 대하여 pp.132~133에서 살피고 있다. 그리고 에른스트 블로흐에 대한 언급과 인용도 있다.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교차현상을 설명하며...
아우라의 경험이란 인간 사회에서 통상적으로 드러나는 어떤 반응 형식을 인간에 대한 생명없는 무엇 혹은 자연의 관계로 이전시키는 데 근거한다. 누군가에 의해 바라보이는 자 혹은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고 느끼는 자는 눈을 부릅뜬다. 우리가 어떤 현상의 아우라를 경험한다는 것은 시선을 부릅뜰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p.136 (<보들레르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아우라의 경험은 자연적 풍경, 유년 그리고 시대상 등에서 발견될 수 있으며, 주체와 객체 사이의 교차 내지 착종을 통한 어떤 가능한 화해의 상을 암시한다. p.137

아우라의 경험은 "무의지적 기억"을 통해서 드러나는 갈망의 구조이다. p.138


"부릅뜬 눈"을 듣는 순간 무의식 중에 이철규와 관련된 일련의 이미지들, 냄새들, 상황들이 떠올랐다. 80년대와 90년대 초의 시대상에서 발견되는 경험들이 나타난 것이다. 아우라의 경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특정 아우라가 개념화 되어 표현되고 다른 사람을 이해시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종교적 제식에의 참가자가 홀연히 느낌는 체험... 이런 측면에서 벤야민은 신비주의적이다.

은폐의 발현과 매개 현상을 설명하며...
만약 우리가 무의지적 기억 속에 자리잡은 채 직관의 대상들을 모으려고 애를 쓰는 상상들을 '아우라'라고 명명한다면, 직관의 대상에 있는 아우라는 어떤 연습으로서의 실용적 대상으로부터 일탈되는 경험과 일치한다. p.138  --- 그밖에 그것들[무의지적 기억의 자료들 - 역주]은 일회적이다. 즉 이러한 자료들은 그것을 붙잡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시도하는 기억으로부터 빠져나간다. 이러한 특성은 아우라 현상의 주술적 특성을 투영시켜주어야 한다. 본직적으로 멀리 있는 것은 근접 불가능하다. 실제로 근접 불가능함이란 종교적 제식에 관한 상의 어떤 주요한 특징이다. p.139 (<보들레르에게 나타나는 몇 가지 모티브에 관하여>)

"일회적이다", "빠져나간다"는 개념화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킨다. 아우라는 체험적/경험적이다. 특정 사이트의 특정 페이지(패러디나 영상물에서)에서 아우라가 존재한다면 아주 일시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가 이런 체험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후 그 상황에 대한 경험이 없는 다른 사람이 동일한 곳을 방문했을 때 아무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그에게는 체험이 없는 것이다. 김진우교수의 궁(MBC 드라마인 궁에 대한 UCC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방식)에 대한 논의들을 발터 벤야민의 <얘기꾼과 소설가>(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민음사)를 비교하면서 읽어 볼 것. '부릅뜬 눈'이란 말에서 내가 이철규를 떠올릴 때, 다른 사람은 아무 것도 떠올릴 수 없거나, 또 다른 상황를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고 아우라가 이런 방식으로 단순하게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문구가 있다.

"의지적 기억"이 일상에 바탕을 둔 것이며, 과거의 체험에 국한된 것이라면, "무의지적 기억"은 우연히 떠오른 - 현재의 심적 상태와 무관하지 않은 - 과거에 대한 내밀한 경험이다. p.139

이것을 보면 단순하게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떠올리며 현재의 심적 상태가 태풍 속에 휘감겨드는, 또는 현재 심적 상태가 고양되는,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심적 상태의 태풍 속에 휘감겨들어 융화되어 something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아우라의 경험은 예를 들면 생명이 깃든 자연의 모습, 주체와 객체 사이의 간 주객적인 조우일 수 있으며, 나아가 신을 바라보는 일종이 접신론적 광휘이거나, 잃어버린 인간성에 대한 경험일 수 있다. p.141

어제(10/6) <판의 미로>를 보았는데 처음부분에 이와 관련된 동일한 이야기가 배경으로 흐른다. 그리고 햇빛(이성)을 본 공주의 기억 상실을 이야기 한다.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식, 아우라에 대한 평가부분(p.141~143)과 햇빛, 기억상실 등에 대한 판의 미로의 이야기 구조를 연결시켜살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역사 기술은 언제나 승리자의 손에 의해서 진척되었다. 의지적 기억은 현대사회의 주어진 제반 현상에 의존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벤야민에 의하면 인간의 일상적 현재 삶과 밀착되어 있을 뿐, 역사의 퇴행에 의해서 상실되거나 망각된 과거의 순수성 내지 이상을 기억해내지 못한다, 바로 그런 까닭에 유년, 근원 상으로서의 자연, 과거의 황금의 시대 등은 오로지 무의지적 기억에 의해서 떠오른다. p.141" 공주는 자신이 공주였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자신의 육체(반달 모양의 어깨에 있는 점)와 요정들이 살아 숨쉬는 자연은 알고 있다. 꿈과 같은 요정과의 관계를 통해서 유년, 근원, 지하왕국으로 다가간다. 영화의 배경은 프랑코 총통이 지배하는 파시즘하의 스페인이다. 주인공의 양부인 대위에게서 히틀러의 이미지가 겹쳐진다.

이 지점에서 벤야민에 대한 비판과 확장을 시작할 수 있다. 의식적인 것(이성)들에 대한 부정(이런 것들은 바이마르공화국과 히틀러의 나찌즘을 겪는 비판적 독일 지성인들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인데, 예를 들면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등)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은 무의지적/무의식적인 것과 과거의 기억 등에 대한 강조가 될 수 있다. 아우라가 단순히 과거의 기억이 아닌 현재의 상황(심적 상태)과 관계를 맺는다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닌 과거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블로흐가 하며, 박설호는 에세이의 말미에서 벤야민과 블로흐를 비교하고 있다. 미래와 연결되면 목적론으로 귀결되기 떄문에 연결시키지 않았을까? 왜일까? 미래의 심적 상태라는 것은 말도 안되기는 하지만..
 
확장은 정말 아우라가 체험적인 것이지 표기(개념화)될 수 없는 것이라면, 체험적이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이다.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에서 벤야민이 이를 지지하는 것이 아우라가 사라지거나, 감소해도 영화와 같은 양식이 약하더라도 체험을 만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 아닐까? 이부분은 검증이 필요한 가설이다.

과거의 기억에 대한 강조와 함께 소외를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소외도 답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소외는 어떤 하나의 완결적인 상황을 전제하며 과거에 기반한다. 왜냐하면 ~에서 소외되었다에서 되는 것은 어떤 과정을, 빠져나가 소외로 빠져드는 과정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특정한 이상 상황을 전제하는 것과 같은, 목적론처럼 보이는 측면)에서 나는 소외에 대한 논의를 '싫어'한다. 이런 생각은 대학교 3,4학년 아니면, 졸업 후부터, 그러니까 꽤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것이다. 소외와 목적론이라는 주제도 재미있을 것같다.

아우라에 대한 사전적 정의
아우라는 유일한 원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므로 사진이나 영화와 같이 복제되는 작품에는 아우라가 생겨날 수 없다고 하였다. 또 아우라는 종교 의식에서 기원하는 현상으로 "아무리 가까이 있더라도 먼 것의 일회적 현상(einmalige Erscheinung einer Ferne, so nah sie sein mag)"이라 정의하였다. 그러나 그는 르네상스 이후의 예술에서도 과거의 종교적 숭배가 세속적인 미의 숭배로 대체되었으므로 아우라가 존재한다고 보았다.


또 아우라는 예술작품의 원본이 지니는 시간과 공간에서의 유일한 현존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진이나 영화처럼 현존성이 결여된 작품은 아우라가 없다는 것이다. 독특한 거리감을 지닌 사물에서만 가능한 아우라는 복제품이나 대량생산된 상품에서는 경험될 수 없는 것이다.

☞ '유일한 원본'을 '유일한 사이트(일반적인 사이트가 아닌 디씨인사이드와 같이 독특한 기풍/아우라을 지닌 사이트)' 읽어볼 것. 구전설화와 같이 증식하는 디지털 콘텐츠.. 연세대 김진우교수의 UCC 콘텐츠에 관한 분석

☞ 이런 느낌, 생각을 '아우라'라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다른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는 것같다라는 지은숙씨 지적.. 속초가는 길 밤샘 대화 중.. 이런 지적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우라'라는 개념 안에서 '아우라의 부활'로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함께 든다. 미묘한 뉘앙의 차이가 있는데 이 차이를 집어내 다시 개념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충고!

발터 벤야민 주요저서
"Goethes Wahlverwandtschaften;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1928 veroffentlicht), "Einbahnstraße" (1928)
"Berliner Kindheit um Neunzehnhundert" (vollstandig herausgegeben 1956)
"Passagenwerk" (fragmentarisch geblieben, postum veroffentlicht)
"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 (1936)
"Kleine Geschichte der Photographie" (1931)
"Eduard Fuchs, der Sammler und der Historiker" (1937)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반성완 외 역, 민음사, 1983


우연히 발견한 글들 --------------

발터 벤야민 에세이
를 게시한 블로그: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


디지털과 생성, 아우라를 연결한 진중권의 글: '생성 이미지' 디지털시대 대중의 취향 예고
[진중권의 상상] <3>복제에서 생성으로

세상에 없는 피사체 촬영한 듯… 사진같기도 그림같기도
후기산업사회 앤디 워홀의 '복제 이미지'에 이별 고해
강형구 작품 인물들의 쏘아보는 시선서 '아우라' 느껴져
아우라의 파괴
벤야민의 미디어 이론 ④

진중권의 현대 미학 강의-숭고와 시뮬라르크의 이중주 (진중권, 아트북스 출판사, 2003)
디지털 복제 시대의 문화(2) (백욱인, 1997)
동시대 미학 50문답 (막 지메네즈, 임연 역, 서광사, 2003, 29번째 주제)

2007/10/05 23:40 2007/10/05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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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24일 동안 <베르톨트 브레히트>(인물과 사상사, 2007.4)을 읽었다. 읽으면서 접어놨던 부분을 24일 저녁 동안 정리했다. 브레히트를 읽으면서 몇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베르톨트 브레히트 - 8점
얀 크노프 지음, 이원양 옮김/인물과사상사
1. 브레히트, 벤야민,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등과 같이 기술이 예술에 개입하기 시작하던 시대의 문예 비평가들의 반응을 비교해보는 것이 의미있을 것 같다. 연극과 같이 복제 불가능하던 예술이 영화가 나오면서 복제가 되기 시작했을 때, 지금 우리가 아날로그 영상이 디지털화 되면서 겪는 충격보다 더 큰 충격을 이들은 받았을 것이다. 이들은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았고, 어떻게 대응했을까? 이것을 통해 우리시대의 문제-통신과 방송의 융합, 기술과 문화의 융합-를 접근할 수 있다. (이런 부분은 벤야민의 기술복제, 아도르노의 대중기만으로서의 문화산업을 보면서 정리해볼 생각이다.)

2. 문화산업의 몰락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브레히트와 프랑크푸르트 학파(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견해에 차이가 존재하는가, 아니면 일치하는가? 또는 ...

3. 어떤 사람을 규정하는 "주의자"의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부분을 오랬동안 가끔씩 생각을 했었다. '강경대사건' 이후 김지하를 보면서부터이다. 사람을 규정짓는 것은 가끔 그 사람 자체보다 어떤 상황에 의해 그렇게될 때가 있다. 좌와 우의 중간이 없을 때. 바이마르 공화국(1919~1933)에서 출발한 브레히트의 경우가 그렇지않을까? 이런 상황에서 규정되는 것은 '신문사 같은 기구'에 의하여 '계열화'되는 것이다. 계열화된 후 이 계열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완전한 변신, 또는 변절이 있기전에는.

4. 브레히트 속에서 디지털적인 글쓰기의 원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양식의 결합(텍스트와 음악과 같은), 에피그램(공식적인 보도 사진에다가 해설적인 텍스트를 붙이거나 에피그램 식 4행시를 몽타주하는 형식), 완결된 작품이 아닌 진행 중인 작품과 필자가 사라지는 것 등등.. 나는 서로 다른 양식의 결합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영상과 텍스트의 결합과 같은. 이런 부분에 대한 답, 적어도 Hint가 있지 않을까?

1번과 4번이 재미있을 것 같다. 3번은 이미 스스로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2번의 이야기는 너무 추상적일 것이다. 브레히트가 미국에서 호르크하이머나 폴록을 만났을 때, 이런 주제에 대한 철학적 논의를 계속해댔다면 틀림없이 싫어했을 것이다. (책을 보면 실제 싫어했다는데) 왜냐하면 하루벌어 먹고 살기 힘들고, 먹고살려고 영화판을 기웃대던 브레히트에게 이런 이야기들은 사치가 아니었을까? 곡학아세하는 사람들(Tui, 투이들)이 하는.

차라리 3번은 배경을 이루는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의 분석을 대입해서 좌와 우의 힘의 균형상태에서 국가관료들이 나오는 것과 다른 형태로 바이마르와 같이 누구도 '(가정이지만) 패권을 잡지못하고 어정쩡한 힘의 균형상태'로 인해 국가주의 파시즘(히틀러의 나치)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 이 생각은 속초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9월 25일)에 갑자기 <브뤼메르 18일>을 읽어야기 생각한 후, 이글을 쓰면서 바이마르 공화국에 대해 찾아보면서 서로 연결됐다. 그러니 대충 이런 가설을 새워놓고 시간이 나면 이런 쪽으로 관련 책들을 읽어봐야겠다.

나는 브레히트의 시집(<살아남은 자의 슬픔>인가)을 몇번인가 읽은 것 외에는 브레히트를 직접 읽은 적은 없다. 주로 여기 저기 섞여 있는 단편들을 읽었다. 대학시절 막연히 브레히트를 좋아했는데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만이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예술적 방식이라는 테제에 대한 대답으로서이다. '소외 효과'는 사실주의적이 아니지만 현실을 더 사실적으로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모더니즘(잘은 모르지만) 자체 내에도 훌륭한 자양분이 들어있다(을 것이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역사에서 볼 때 조직에 벗어나서, 또는 조직에서 쫓겨나서 있는 사람들(특히 지식인들)이 진실을 말할 때가 더 많다. 조직의 무게(이데올로기)가 사실을 왜곡하는 것이다. 브레히트는 사실을 사실대로 보도록, 우리에게 사실을 무섭게 들이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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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는 기술 발전이 진행되는 사회는 영화사, 극장, 영화관 또는 신문사 같은 “기구”가 지배하며 모든 예술작품은 분명한 상품이 되었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작가는 상품의 생산과 판매를 조직해야만 된다는 것이었다. 작가가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서 약간의 고독, 책상, 종이 그리고 펜만 있으면 되었던 시대는 완전히 지나갔다는 것이다. 작가는 생산자가 되었으며 생산은 집단적인 것이기 때문에 공동 작업을 조직하고 거리낌 없이 세계문학을 이용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이런 것을 표절이라고 했지만 오늘날은 상호텍스트성이라고 한다. (p.45)

그는 끊임없이 이런 문화산업의 결정적인 몰락을 예언하며 힘껏 그 몰락에 가담하려고 했다. 그는 모든 장르에서 작업을 했고 이용할 수 있는 모든 기구에서 일을 했다. 그는 신문과 잡지 그리고 ‘오락성 예술’ 매체에도 끊임없이 시와 쇼트스토리를 발표했고 모든 가능한 설문에 참여했으며 서평과 이론적인 논설을 쓰면서 광범위한 독자층에게 자신이 지금 무엇 때문에 웃고 있는지를 감추지 않았다.(p.47)

브레히트는 신문뿐 아니라 라디오 방송에서도 활동했다. 그의 희곡 <남자는 남자다>와 <도살장의 성 요한나>의 일부분을 방송극으로 방송했으며 셰익스피어의 <맥베스> 같은 다른 작가들의 텍스트도 라디오를 위해 번안했고 주로 동시대의 연극에 대한 라디오 담화나 대담에 자주 출연했다. …… 영화 분야에서 자리를 잡은 것은 1930~1931년에야 가능했다. (p.48)

당시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대화와 논쟁적 토론, 공동관극이나 영화 관람 등은 작업 일과에 속했다. 브레히트는 항상 작업이 사교적으로 조직되도록 힘썼다.  그렇게 함으로써 비평이 창작을 하는 중에 시작되며 모든 작업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가 보장되고 우연에 맡겨지지 않는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p.49)

브레히트는 아이슬러를 <마하고니> 노래극 초연 때 처음 만났다. 아놀드 쇤베르크에게서 배운 아이슬러는 자신을 정치적인 작곡가라고 생각했고 음악계에는 문단과 달리 브레히트처럼 혁명적인 좌파 예술가가 없고 소시민들만 있음을 유감으로 여겼다. 이것은 브레히트가 <남자는 남자다>의 초연으로 인하여 보수적인 신문의 연극평에서 완전히 볼셰비즘과 관련지어졌고 시민사회에서는 공산주의 작가로 취급된 1927년 초였다. 그러나 <조치>까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공산주의적이라고 할 만한 브레히트의 텍스트는 없었다. (p.56)

사회주의에 대한 브레히트의 지속적인 관심은 1929년부터 시작된다. 1928년 말 브레히트는 카르 코르쉬를 주목하게 되었고 아카데미 맥주홀에서 열린 ‘과학적 사회주의에 관하여’라는 그의 강의를 몇 번 청강했으며 후일 그가 ‘마르크스주의 노동자학교’에서 한 강연회에 산발적으로 참가했다. 코르쉬가 노이쾰른의 카를 마르크스 학교에서 ‘마르크시즘에서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에 대한 강의를 할 때인 1932~1933년 겨울에 비판적 사회이론에 관한 그의 관심이 강화되었다. 코르쉬는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11번째 테제에 따른 이론과 실천은 “정신적 행위”에서 중개해야 된다고 주장함으로써 1926년 독일공산당에서 제명되었고 이상주의적 수정주의자로 낙인찍혔다. …… 코르쉬가  마르크시즘에 대한, 또는 마르크스에 대한 브레히트의 관심을 자극하고 그로부터 ‘스승’이라는 호칭을 받았지만 브레히트는 곧 비판적인 거리를 두게 되었다. 1934년 가을에 그들이 런던에서 같은 집에 살면서 긴밀한 접촉을 하게 되었을 때 코르쉬는 마침내 투이들(곡학아세하는 식자)의 대열에 자리를 잡는다. “나의 스승은 실망한 사람이다. 그가 관심을 가진 사항들은 그가 상상했던 대로 진행되질 않았다. 이제 그는 자신의 사상이 아니라 달리 진행된 사항들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pp.57~59)

브레히트는 1929년에 발터 벤야민과, 그리고 1931년에는 세르게이 트리트이코프와 서로 알게 되었다. 벤야민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이 비극에 관한 그의 교수자격논문을 거절했기 때문에 대학 교수의 꿈을 접고 시사평론가로 근근이 생계를 꾸려갔으며 게르숌 숄렘과 사귄 후 시오니즘으로 개종했다. 그는 브레히트에게 카프카의 작품을 소개했고 브레히트가 카프카에 대해서 긍정적인 의견을 표하자 놀라워했다. 1930년에는 공동으로 간행하려던 잡지 <위기와 비평> 게획이 무산되었다. 이 잡지는 변증법적 유물론 선전에 헌신하고 “극좌파”의 입장을 가진 사람들만 필진으로 허용할 예정이었다. (pp.60~61)

(1935년) 그해 여름 발터 벤야민이 브레히트를 찾아와 수주일 동안 손님으로 머물렀다.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장서를 (덴마크의) 스벤보르로 가지고 왔다. 둘은 체스 놀이를 즐겼고 자신들이 진행하고 있는 작업과 정치 및 예술의 문제에 대해 토론했다. 여기서도 ‘유대인 청년’ 카프카의 평가가 중요한 주제였다. 벤야민은 1938년 여름 비교적 장기간의 체류를 위해 두 번째 방문을 했다. 그는 첫 번째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의 체류에 관해서도 기록을 남겼다. 이때 유럽 전역에서는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고 있었다. 벤야민은 어린이 연극, 소련의 문학, 모스크바의 재판과 모스크바에 있는 지인과 친구들에게 미칠 영향 등을 주제로 브레히트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브레히트는 소련에서의 모든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생각했고 마음속으로 벌써 미국으로 망명할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 “어떤 범죄적인 집단들이 일을 벌이고 있었다.” (pp.71~72)

망명 시기(1933~1947) 동안 브레히트는 여행을 많이 했다. 1934년에는 카를 마르크스의 전기를 쓰고 있던 카를 코르쉬를 찾아서 런던으로 갔다. 브레히트는 그에게 “사자의 가슴 혹은 사자의 갈기가 없이” 쓰라고 권했다. (p.72)

헐리우드의 이윤 창출 기계: 산타 모니카에서의 고립(941년~1947년) (p.86)

브레히트 일가는 미국으로 도피한 포이히트방어, 빌헬름 디텔레, 바일, 쿠르쉬 등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버티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속하게 영화 산업에 발을 붙이려는 브레히트의 시도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 브레히트는 영화를 위한 모든 일이 별로 소득이 없으며 ‘본래의 일’을 못하게 한다는 것을 일찌감치 경험하지 않음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브레히트가 1941년 10월에 페르디난트 라이어라는 사람을 사귐으로써 미국의 안내자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와 함께 영화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로써 지속적인 우정이 싹텄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었다. (p.87)

독일 망명객들의 집합소가 된 산타 모니카에서 브레히트는 비생산적인 투이라고 악의적으로 평가한 지식인들과 대면하게 되었다. 그들은 전 프랑크푸르트 사회조사연구소의 연구원인 막스 호크하이머와 프리드리히 폴록이었다. 그는 그들을 즉석에서 “이중 클라운”이라고 풍자했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적응하고 교제 관계를 구축하는 대신 눈에 띄게 이들로부터  물러났으며 호감을 사지 못했다. (p.87~88)

할리우드에서 브레히트의 영화 작업은 성과가 없었다고 볼 수 있지만 스토리를 팔아서 약간의 돈을 벌 수는 있었다. 이런 것들은 영화화되지는 않았다. 그는 또 시나 노래를 팔기도 했다. …… 미국 망명지에서 브레히트가 얻은 미학적 소득은 별로 없었다. …… 산문은 영어로 쓴 영화 스토리가 전부였다. 많은 단편을 제외하고는, 이런 영화 이야기들은 갈고 다듬은 표현이 아니라 주로 플롯만 설정한 것이었다. (pp90~91)

그 후(열다섯 살 이후?) 그는 언제나 모든 중요한 문학 장르를 넘나들며 동시에 작업을 진행했다. 1922년부터는 연출가 및 드라마투르크로서 활동했고 영화나 라디오 방송을 위한 텍스트 작업도 했다. 그의 서정시는 처음부터 음악성, 즉 가창성을 가지고 있었다. 브레히트는 멜로디를 스스로 작곡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작곡을 맡겼다. 텍스트와 음악의 상호작용 및 조화가 처음부터 그가 하는 작업의 중심이었다. 텍스트에 단순히 곡을 붙이는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예술의 협동이 중요한 것이었다. 브레히트는 뮌헨 시절부터 연극에서 이것을 요구했다. 문학, 연극, 무대장치, 그리고 음악이 상호 지원하면서 각기 최선을 다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작자가 간여하지 않아도 관객의 기억에 남는 노래가 나오게 되었다. (pp.117~118)

그의 일기도 새로운 장르를 이룬다. 처음부터 일기는 자기 묘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창작 작업과 그에 따르는 이론적 성찰을 위한 것이었다. 망명기의 브레히트는 개인적, 정치적, 이론적 데이터를 사진, 컷, 그리고 보도 사진, 신문 스크랩 등과 조합했다. 그래서 기록물이라기보다는 사진과 언어로 된 새로운 형태의 예술 작품이 생겨났다. 이와 관련해서 브레히트는 사진 피그램에 대한 착상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공식적인 보도 사진에다가 해설적인 텍스트를 붙이거나 에피그램 식 4행시를 몽타주하는 형식이다. 이 4행시는 사진을 해설하거나 해석하고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 새로운 관점을 추가하기도 한다. (p.118)

시민사회에서 오랫동안 예술로 인정을 받기 위해 싸워야만 했던 영화의 가능성과 영화를 통해 문학 작품보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것도 브레히트는 즉시 알아차렸다. 물론 그는 극장보다는 영화 산업계에 훨씬 접근하기 어렵다는 것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사와 계약을 맺었다고 하더라도 합의된 영화가 반드시 제작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서푼짜리 오페라>의 영화 제작이 브레히트의 의사와 달리 재판을 통해서 관철되었다는 사실을 원작자는 신문과 방송 캠페인을 위해서 이용했다. 그는 허구의 ‘증거’까지 대면서 독일 사회와 법원에 팽배한 법의 왜곡과 (도덕적) 기만을 가차 없이  비판한 것이다. <서푼짜리 소송>은 한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를 문자 그대로 춤추게 하는 것을 보여 주는 기록이다. (pp.119~120)

“그것이 기어 나온 자궁은 아직도 임신을 할 수 있다.”<전쟁교본>
“우선은 배불리 처먹어야 도덕심이 생긴다.”<서푼짜리 오페라> (p.122)

바일과 브레히트는 (세계적인 성공의 비결은 여기에 있는데) 텍스트와 음악을 새로 결합하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현대적인 무용 음악과 재즈 음악을 사용한 음악은 냉정하고 일체의 감정을 조소하는 텍스트와 대립되며 텍스트의 인공적인 파토스가 늘 음악을 통해서 유쾌하게 무력화됨으로써 그 모순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게다가 부분적으로는 대단히 수준이 높은데도 항상 경쾌하게 들리는 음악은 노래로 부를 수 있으며 동시에 텍스트는 분명히 알아들
업에 봉사했다. (p.144)

논리적인 귀결은 공연(서사극)에 비해서 문학적 텍스트는 뒤로, 말하자면 제2선으로 물러나는 것이다. 글로 쓰인 희곡은 신성시되고 그 자체로 완결되며 자율적이고 유효한 텍스트로서의 영광을 잃게 된다. 소위 ‘원작에 충실한 공연’은 마침내 사라진다. 연극술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모든 작품 제작은 필연적으로 텍스트의 새로운 공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브레히트에게는 무대의 실증이 없는 희곡은 ‘완성된’ 것일 수가 없으며 작가 자신이 직접 연극으로 제작하거나 또는 그가 참여한 가운데 이루어진 모든 새로운 연극 작품 제작은 새로운 텍스트의 판본을 낳게 된다. 그리하여 최종적인 결론은 텍스트는 원칙적으로 결코 ‘완성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브레히트의 희곡 작품은 철저히 ‘진행 중인 작업’, 변화하고 변화 가능성이 있는 작품이다.

중요한 것은 착취당한 사람들이 그들의 사안을 스스로 문자 그대로 ‘손에’ 잡을 때까지 잔인한 현실의 인식을 촉진해 나가는 것이다. 선동은 이론과 실천의 기동연습을 가동시키고 촉진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다. (p.152)

소시민이나 영화에 나오는 교양 있고 친절한 노동자들을 가지고는 혁명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효과적인 형식으로 곤경과 참상에 맞선 투쟁에서 국가의 효용성과 도우려는 의지에 대한 관람자의 신뢰감을 모조리 추락시키는 영화는 민주공화국적인 헌법에 기초를 둔 국가의 근간을 뒤흔들어 놓는다.” (p.157~158)

영화기법 (p.162)
이로써 브레히트는 <서푼짜리 소송>의 시론적인 부분에서 요구한, 필수적인 “문학 창작의 기술화”를 <서푼짜리 소설>에서 실천하고 있다. 즉, 문학은 영화가 그때그때의 기술적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언어적 수단을 가지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브레히트가 보기에는 시대에 알맞은 문학은 오직 이렇게 해서 쓰일 수 있는데, 이는 물론 모든 장르와 연극에도 해당된다. (pp.162~163)

“물론 히틀러와 함께 승리하지 못한 우리들 모두 그와 함께 패배한 것이다.”<일지> (p.188)
칸트에 의하면(칸트의 <풍속의 형이상학>에 의하면) 결혼은 “일생 동안 성기를 상호간에 사용하는 데에” 본질이 있다. 몰론 그 전에 혼인을 통해서 인간 전체가 ‘취득’된 다음에야 가능한 일이다. (p.189)

2007/09/26 00:28 2007/09/2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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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초부터 <근대세계체제 1, 2, 3>를 다시 읽기 시작했다. 책을 사놓은지는 몇년 지났는데 계속 이어 끝까지 읽은 적은 없다. 대충 필요한 부분이거나 아니면 관심이 가는 장을 찾아 읽다가 던져놓곤 하였다.

책이 97년에 출간된 것을 보니 군대를 제대하고 산 것 같은데 아마 '생일선물'로 받은 것 같다. 2만원짜리 3권을 한번에 사는 경우는 이럴 때가 아니곤 여간해선 없다. 또 읽고는 싶었어도 꼭 사겠다는 마음을 먹게 만드는 것이 아니면 비싸니 '선물로 받아야지'하고 생각하고 뒤로 미뤄둔다. 며칠 전 생일에도 이런 식으로 책을 한권 받았는데, 한권 가격(59,000원, 1200페이지가 넘는다!)이 만만찮아 둘이 함께 사달라고 했다.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 프로젝트 1>이다. 2권은 내년에나 손에 들어오지 않은까?

아케이드 프로젝트 1 (양장합본) - 10점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새물결

왜 <근대세계체제>를 읽기 시작했지? 방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자리에 책이 꽂혀 있어서였나. 책을 들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버릇이 있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쓴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책이 한국어로 출판되기 전까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에 다닐 때, "한국 사회구성체 논쟁"은 '현실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함께 잦아들고 있었다. 아마 3학년 아니면 4학년(91~92년) 때였나보다. 한참 혼자서 국가론과 사회구성체(사회형성체) 논쟁을 관련 논문들을 읽고 있었다. 그때 한국 사회성격을 "신식민지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신식민지'는 개념이 담고있는 의미나 한국에서 전개된 논쟁, 운동의 역사성에도 불구하고 적절치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다시 남아메리카에서 발전한 '종속적'이라는 개념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이쪽도 그리 맞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종속적'이라는 개념은 신식민지와 같이 일본과 조선, 미국과 한국 등의 한국가와 다른 한국가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보다는 더 낮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국제적인 경제현상은 다자간의 관계이며, 어떤 층위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시 요즘의 BRICs처럼 당시에 NICs(아시아 신흥공업국)에 대한 논의들이 많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종속적이라는 개념을 국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주도적이지 못한 위치에 있는 일군의 국가들의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종속적이라는 개념이 마음에 들지않았던 것은 소위 '제국주의' 국가들도 전체/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보면 얼마나 자율적일까 하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운명도 이 체제에 '의존적'이지 않은가? 자신들의 운명이 '종속적' 상태에 있는 국가들에 달려있지 않은가? 이때 한국 자본주의에 '개량의 물적 기반'이 있는가, 없는가의 논쟁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것의 밑에는 한국 자본주의가 일본, 미국 등의 제국주의 국가(다국적 자본)처럼, 수준의 문제이긴 하지만,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것은 파시즘 체제가 아닌 민주적 체제로 이행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제국주의 국가들의 운명도 전세계적인 자본주의 체제 의존적 이라는 말은 민주적 체제를 유지할 수 있는 물적 기반은 새로운 시장(신민지 또는 신식민지에 있는 노동자에 대한 착취)을 통해서만 갖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면서 처음 월러스틴의 책을 이곳 저곳의 논문에서 짜집기하듯 읽었다. 역사적으로 자본의가 태어날 때부터 한 국가가 아닌 '세계경제'를 배경으로 한다는. 지금 생각하면 신식민지, 종속적, 이런 것보다는 공간적 은유인 주변부, 또는 반주변부라는 개념이 덜 오해를 불러일으킬 것같다.
 
<근대세계체제>는 '1450년 당시에 유럽에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등장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체제제는 두 가지 핵심적인 제도, 즉 어느 일정지역 안에 자리잡은 "세계적" 범위의 분업과 관료제적인 국가기구들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 세계경제는 세 지역, 반주변부(semiperiphery), 핵심부(core), 주변부(periphery)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나뉜다.'(p.106)고 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나는 월러스틴이 '사회과학'을 바라보는 시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과 어떤 주의, 주장에 헌신하는 것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나는 어떤 주의, 주장에 헌신하지 않는 사회과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과학이 객관적일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한다.(p.25)
그리고 "진리는 변화하는데, 그것은 사회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어진 시간에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동시대적이다. 심지어 지나간 것까지도 그렇다. 그리고 현재 안에서 우리는 모두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배경, 우리가 받은 훈련, 우리의 개성과 사회적 역할, 그리고 우리가 그 속에서 활동하는 구조화된 압력들의 소산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 반대이다."라고 말한다.(p.26)
따라서 "객과성이란, 전체 사회체제의 한 함수이다. 사회체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특정한 종류의 연구활동이 특정 집단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한 그 연구결과는 이 특정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향될 것이다. 객관성이란, 이러한 활동이 세계체제의 모든 주요 집단에 기반을 둔 사람에 의해서 균형 있게 수행되도록 해주는, 사회적 투자 분배의 벡터이다. 객관성을 이렇게 정의할 경우 객관적인 사회과학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또 한편으로 그것이 가까운 장래에 도저히 실현될 수 없는 목표는 아니다."(p.27)

이렇게 월러스틴의 이야기를 쓰게된 동기는 책을 읽었기 때문이 아니라, 최근 한겨레신문에서 제국과 제국주의에 대한 특집을 읽었기 때문이다. 특집의 내용은 위 '사회구성체 논쟁'의 21세기적 형식이라 말할 수 있겠다.

한겨레-지식논쟁
한겨레신문
[기획] 우리시대 지식 논쟁 - 제국인가 제국주의인가


   ① 조정환, 왜 제국인가 - 제국주의는 죽었다, 21세기는 지구  제국 시대
   ② 정성진, 왜 제국주의인가 - '지구제국'은 허상이다, 제국주의 되레 격화
   ③ 이진경, 제3의 시각 '과잉제국주의' - 제국주의는 과거형, 지구제국은 미래형

조정환, 정성진, 이진경의 주장을 읽으면서 불현듯 월러스틴이 <근대세계체제>에서 쓴 글이 생각났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독특한 특징은, 경제적 결정은 주로 세계경제를 지향한 반면, 정치적 결정은 주로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더 작은 구조들-세계경제 내의 국가들(민족국가, 도시국가, 제국)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경제 및 정치의 이중 지향성 또는 "차별성"은 여러 집단들의 자기 정체성에 관한, 즉 집단 이해관계의 합당한 표명에 관한 혼란과 신비화의 근원이다."(p.109)
경제적인 세계화를 기본으로 사태를 판단하는 조정환과 상대적으로 정치적 국가를 중시하는 정성진은 이런 혼란과 신비화의 도정에 서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나는 감성적으로는 여전히 정성진에 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이진경의 지적처럼 유럽연합 등을 살펴볼 때, "경제 및 정치의 이중 지향성"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는 합류하고, 전지구적인 제국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현재 '경향적'으로 이런쪽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성적으로는 이진경을 지지한다.

(요즘은 이진경을 지지하는 판단에 회의가 든다. 경향성이란 말도 여러 가지 잠재성 중에 하나이고, 어떤 조건에서는 다른 것이 나타날 수가 있다. 또 국가라는 물질적 실재가 언제 없어질까? 정성진의 주장에 '감성적'으로 지지한다고 말했다지만 감성 자체가 합리적 이성의 기초이기도 하다. 2009.3.20 update)

이진경의 '과잉'제국주의에서 과잉의 의미를 어떻게 볼까? 국가론에서 보면 함자 알라비(맞나?)가 과대성장국가이론을 말하는데, 그때의 '과잉'과 친연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91년 여름 내내 나는 과대성장국가이론을 한국에 적용하여 분석하는 작업을 했었다. 그리고 에세이 한편을 썼는데 언제가 이것도 posting을 하겠다.) 한 국가차원에서 상부구조가 과잉성장한다는 것과 여러 국가들의 연합을 통해서 제국주의가 과잉(성장)하다는 것. 그런데 전자가 그렇게 되기에 필요한 역사적 배경(식민경험이라는)이 있었던 것처럼 후자가 성립된 역사적 배경은 무엇일까? 제국주의간의 경쟁, 아니면... 이진경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월러스틴은 '장기 16세기'의 유럽과 제국 중국을 비교하면서 자본주의의 탄생을 살피는데, 제국이 자본주의 발전을 담보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과거 역사에서의 제국과 조정환의 제국은 어떻게 다른가? 경제와 정치의 분절(이중 지향성)이 경제적 착취구조를 감싸는 이데올로기적(신비화) 기제는 아닌가? 이것이 합치될 때는 계급투쟁에서 피아가 분명해지는 것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고 있다.

여하튼 나는 "진리는 변화하는데, 그것은 사회가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떤 주어진 시간에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동시대적이다. 심지어 지나간 것까지도 그렇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월러스틴의 말을 믿는다.  그리고 "사회체제가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특정한 종류의 연구활동이 특정 집단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는 한 그 연구결과는 이 특정 집단에 유리한 방향으로 편향될 것"이며 이를 정정하기 위해서는 알뛰세르의 말처럼 막대를 반대로 구부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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