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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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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에 해당되는 글 7건
황용엽은 1931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평양에서 소학교와 중학교를 다녔고 강서보고 2학년 때인 1948년 9월 소비에트 학제에 따라 평양미술학교에 입학해, 평양국립미술대학까지 진학했다. 대학 2학년 때인 1950년 12월 6.25전쟁에 따른 강제 징병을 피하려고 대동강을 건너 월남했다. 황용엽의 짓이겨지고, 꺽이고, 묶이고, 비틀려진 인간의 모습은 제국주의적 일본 치하, 사회주의 북한에서 보았던 기독교인에 대한 참혹한 학살과 그후 남한으로까지 이어지는 보복의 행로, 전장의 아수라장과 전쟁에 참여해 상이 군인으로 제대한, (갈 곳 없는 월남한 실향민인) 자신의 삶을 담고있다.



황용엽이 화가로서 이정표가 되는 그림은 1959년의 <여인, 위 그림>이다. 차가운 시선의 두 눈, 기형적이고 비틀어진 팔, 오랜 세월 버려져 두터운 먼지가 쌓은 집처럼 위태롭고 칼자욱 같이 날카롭게 뻗친 선들로 표현된 몸은 언제 흩터져 저 배경 속 물질세계로 딸려들어 갈지도 모르겠다. <마른 소년, 바로 아래 그림>에서 쇠처럼 녹이 슬어버린 듯한 소년과 세계는 서로 분리될 수 없어 보인다.(아래 '부분 확대' 그림을 볼 것) 밀려들어오는 쇠붙이로 된 세계의 흐름 속에 주체가 지워져버리는 듯 하다. 물질성 속에서 주체의 형상은 사라져버린다. 그가 마주한 세상은 그림처럼 두텁고 검붉다. 나이프로 짓이겨 쌓아올린 두터운 물감이 물질감을 강화시키고, 단순하고 두터운 색조는 (잭슨 폴락처럼 동적인 물질성과는) 다른 형태의 물질적 추상성을 끌어낸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는 운동이 아닌 침잠이거나 죽음이 아닐까!




<여인, 1959, 가장 위 그림>이나 <변질한 여인, 1960, 바로 아래 그림>에서 칙칙한 물감 더미 사이로 삐져나왔던 선명한 색채를 <마른 소년>에서는 찾을 수 없다. 생명 - 육체와 정신은 쇠붙이처럼 녹이 슬고, 고목처럼 말라버린 것일까! <변질한 여자,degenerated woman>에서 청동빛의 두터운 물감(물질) 위로 여인은 희미한 윤곽선과 함께 우중충한 삶을 뚫고 나올 듯한 원색의 빛을 내뿜고 있다. 하지만 녹슨 철/청동(금속)을 깨지못하고 <마른 소년>의 소년은 쇠처럼 굳어져 산화되어버린 걸까!



 1970년대로 들어서면서 황용엽의 세상은 바뀐 듯하다. <인간, 1977, 바로 아래 그림>을 보면, 쇠붙이들 위로 나무들이, 잘 다듬어진 목재들이 자리를 잡는다. 짓이겨진 물감대신 선적인 붓터치가 모여 잘 정돈된 면을 만들어내고 그 위에 인간이 있다. 사람은 가부좌를 틀고 명상 중이고, 그 사람을 여러 가닥의 줄들이 동여매고 있다. 종교적 아우라(aura)를 형상화한 둥그런 원, 삼각형으로 단순화된 인간(의 얼굴)은 기하학적이고, 따라서 정신성을 부각한다. 하지만 이제 구도의 시작인 뿐 인간은 여전히 닫힌 공간 속에 갇혀 있다. 황용엽은 인간은 본성상 악마적이라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처럼, 또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하반신을 성스럽게 가렸지만 악마적인 눈빛을 내뿜고 있다. <인간, 1985, 아래 아래 그림>을 보라.




이런 부조화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정신/눈빛(얼굴 또는 안면)의 악마성과 육체의 신성성은 왜 대립하고 있을까? 그 부조화와 대립을 생산해내는 것은 기억인 듯 하다. 물감이 만들어내는 붓터치와 질감, 색깔은 안정화되어가는 육체/물질의 세계를 보여준다면, 그 위에 있는, 또는 그런 물질과 함께하는 정신은 과거를, 기억을 억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감은 자연(나무)를 향하고 정신은 추상을 향해 나아간다. 물질세계가 계속 새로운 물질로 바뀌어가는 것처럼, 식민지와 전쟁을 겪었던 어린 육체도 바뀌었을 터이다. 하지만 지속되는 기억 속의 인간(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점점 명료해진다. 명료성은 기학학으로 분명한 선들로 드러난다. 선들은 어린시절 그가 평양, 양부모 집안의 큰형이 경영하던 서점에서 보았던 로트렉이거나 후앙 미로일 수 있다. 성화된 육체는 60년대 비틀어지고 왜곡된 탈성화된 육체의 극복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 1978, 위 그림>을 보면 정신도 육체를 따라 평화에 접어든 듯 하지만, 그 보다 후에 그린 <인간, 1985, 위 위 그림>에서의 인간은 여전히 악마적/갈등적이다. 이 차이는 무엇일까? 황용엽의 1978년(1970년대)의 그림에서 마주보고 대화하는 인간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내 이웃을 용서하라"는 말씀에 따라 다른 사람(타자)에 대한 용서이거나 소통을 시작했지만,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항상 들여다보고 있는 자기의 마음 속에서 꿈틀대는 악마성(전쟁과 살육의 기억들과 같은)에 대해서는 용서/소통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차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1985년의 <인간>은 작가의 자화상이 된다.



세계와 인간에 대한 표현은 철(금속)에서 나무로, 또 몸을 둘려싼 신화적(성스러운)인 천으로 감싸 안은 몸/육체로 변화한다. 자연은 바뀌어도 인간은 잘 바뀌지않는다. 아니 인간은 바뀔 수 없는 숙명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자연/물질은 모든 것을 잊지만(기억 자체가 없고 물질적/물리학적 운동뿐이겠지만), 인간은 물질 세계가 만들어낸 사건들을 만나 그것을 기억을 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 기억 속에서 변화하는 세계를 넘어서는 주체/자아/정체성(identity), 또는 개체성을 획득한다. 기억을 가진 인간은 누층적이고 과거와 미래가 현재 속에 함께 의미를 가지고 존재한다. 기억을 못할지라도 우리의 현재 속에는 과거가 꿈틀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 기운을 느끼는 감수성이 남다른 사람들, 또 충격적 사건에 휩말려 감당못할 의미(회의)의 폭풍 속에 빠져든 사람들에게 그 기억의 존재는 어떤 것일까!



위에 있는 <인간, 1984>에서 작가의 새로운 변화를 볼 수 있다. 짓이기기(60년대)에서 섬세한 붓터치(70년대)로, 이번에는 붓을 뿌려 세계의 운동성을 표현한다. 그런데 그 운동은 구멍이 숭숭난 바위(현무암?)와 같다. 날까롭거나 모나지않고 둥글둥글해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시멘트 같은 질감이다. 또 이 운동성은 바위 속에 새긴 정지된 운동성일 수도 있다. (부동의 동자인) 정신에 새겨진 영원한 운동말이다.
아래 1983년 그림에서 우린 나무도 갖게 된다. 갖는다기 보다 이 세계에 우리와 함께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이 떠난 곳을 언제나 가득 채우는 녹색의 생명(나무)조차도 쇠붙이에 눌려 인간처럼 일그러진 듯하다. 녹색의 산과 들, 대지와 바위 위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듯한 사람도 출현한다. 흰옷에 머리를 질끈 묶은 것으로 봐서 어린시절 보았던 고향의 농부일 수도 있다. 생명은 약동하고 세계와 인간이 함께 변한다. 그래도 앙상한 육체, 웃음이 얼굴에 깃들었어도, 마음이 즐거워도 과거는 우리 육체 속에서 지속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육체와 정신 사이 어디에서!



그때 황용엽은 평화를 되찾으려는 그 육체와 정신 사이에서 무엇인가를 만났음에 틀림없다. (아래 그림을 보면) 그 만남은 엘 그레코의 그림처럼 보인다. 뻗어올라가 기둥과 높이 치켜든 두손, 회색빛 하늘에서! 아니면 프란시스 베이컨을 뒤틀린 육체, 척추가 없는 살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한다. 신과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세계(다른 인간을 포함한)와의 불화를 넘어설 수는 없는 걸까! 억압된 것들의 회귀일까! 다시 한번 기억은 누층적이고, 기억은 물질로, 그림으로 물화된다. (힘든) 기억은 (억누르는, 또는 평화를 바라는) 정신을 뚫고 나와 이 세계 속에서 '즐거워하는' 황용엽의 육체를 통해 표현되고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기억은 과거 함께 현재, 그리고 미래와 맞닿아 있기에 항상 다른 얼굴일 수도 있다. 기억은 지속되면서도 항상 새로운 것이 된다.






위에 있는 <옛이야기, 1995>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등장하고, 화면 제일 위로 산과 같은 곡선이 어어진다. 십장생에 나오는 산 모양, 위 아래로 3개씩 있는 모로 서있는 사각형과 그 안의 무늬들, 그 사각형을 있고 있는 밤색의 선들은 좀 더 안정적이고, 한국적이다. 또 기형적이지만 나무들도 좀 더 자랐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뛰어간다. 누적된 기억 안에는 항상 고달프고 피하고 싶은 것들만 있는 것는 아니다. 그 기억의 더 아래쪽에는 어린 시절 고향에서 쌓인(체험한) 즐거운 것도 있었을 것이다. 누적된 기억과 변화된 세계/현재가 만나면서 새로운 의미가 생성되고, 기억은 새롭게 배치된다. 황용엽의 인생 여정을 볼 때, 인간에게 구원의 힌트는 과거에 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날>에서는 좀 더 민화적이고 한국적인 산, 개나리꽃이 가득 핀듯한 들과 나무가 등장한다. <옛이야기, Old Story, 1995>에는 붉은 꽃이 피고 그 나무 위에서 새가 울고 있다. 옷감에 놓인 수처럼 꽃과 나무, 새는 좀 더 장식적이다. 대지는 푸르르고 원색의 생명들이 넘실댄다. 황용엽은 나이가 들면서 아련한 기억의 저편에 자리한 '옛 이야기' 속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 고향은 기억 속에만 있으며 지금도 갈 수 없는 곳이다. 아래 <고향 가는 길, On the way to hometown, 1995>은 기억 속에서 신화화된 물질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불로초와 닭 등으로 표현되는 영험성 또는 문화적 기억으로서의 역사성, 작은 흰색 천조각을 걸친 신화화된 육체, 슬픔게 쳐다보는 커다란 외눈(왼쪽)의 사람은 지친듯 엉덩이를 대지 위에 두고 쉬고 있고, 다른 두 사람은 나무를 둘러싸고 무릎을 꿇고 무언가를 간절히 갈구한다. 휴식과 갈망, 두 그림이 하나의 액자 안에 그려져 있다.

항상 흘러가버리는, 변화하는 물질 세계 속에서 변화지않는 것, 무엇인 인간을 담으려고 하면서 황용엽의 그림은 기하학적인 추상으로 흐르고, 인간을 포함한 사물들은 부자연스럽고 기형적인 것으로 표현된다. 동적인 세계를 정적인 그림 안으로 끌고들어오려는 시도는 언제나 기형적인 것은 아닌까! 현재의 재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기형화되기 마련 아닐까! 기억이 그런 역할을 한다면, 또 그 기억이 만든 정체성들이 그렇다면 ...... 우린 기억과 물질세계 사이 어디쯤에 서있어야 할까!



황용엽 인터뷰 - TV미술관, 1992.4.10 (KBS)
"사실은 이런 것이 하나의 괴로운 기록이죠. 그리고 일기라고 해서 그날그날의 사건을 말하는 일기가 아니고, 전체적인 묶음 말하자면 내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주기적으로 변화해오는 크게 봤을 때의 일기지. 그저 남과 같이 일상생활에 대해서 평범한 이런 것만 가지고는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건 아닌가?"

황용엽 인터뷰 - EBS미술관, 1993.9.19
"너무 어둡고 너무 처절하고 이런 것들이 지속하여 왔는데 최근에는 그런 것을 좀 멈추고 좀 더 새로운 좀 더 긍정적인 무언가 이제까지 살아온 것보다는 앞으로 사는 것이 짧지마는 어떤 환희 또는 내가 고향에 갈 수 있는 또는 고향에 가서 가족 혈족을 만날수 있는 이러한 것들을 ... 여러번 죽음 앞에 부딪히는 일이 있었고 또 상대를 제가 죽이지 않으면 제가 살아남을 수 없는 그런 죽음의 고비랄까 극한상황 이런 것을 여러번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술적 기억은 지속의 한 형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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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8.23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_황용엽, 인간의 길을 본 후 베르그송의 <물질과 기억>,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읽으면서 느낀, 그런 풍으로 스케치를 시도했다. 23일 시작해 30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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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23 15:00 2015/08/23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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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에서 구입한 책과 LP

9월 27일 보물섬에 LP판을 사러갔다가 헤이리에 들렀다. Horovitz, Rubinstein, Serkin이 연주한 Beethoven 작품집 3장과 최성원, 조용필, NEXT 노래, 그리고 시집 몇 권을 샀다. NEXT 음반의 경우 아주 새 것인데 250원이다. 가족 모두 전기차를 타고 헤이리 전체를 돌면서 각 건물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데 재미있다. 헤이리 안에 500살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금산갤러리

헤이리 금산갤러리(위 사진)는 <2006 한국건축가협회상>을 수상했다. 나무를 살리기 위해서 건물이 나무를 감싸안고 있다. 그런데 일주일 지난 10월 4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비슷한 모양의 조각작품을 보았다. 최재은의 <과거, 미래>(1998, 아래 사진)이다. 작가들의 동기야 다를 수 있겠지만 둘다 거대한 인공물을 뚫고 나온 나무, 아니면 나무를 생각해서 만든 인공물이다.

과거, 미래 - 최재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는 많이 갔지만 최재은씨의 작품은 처음 보았다. 자연캠핑장에서 가족과 '1박2일'하고 내려오는 길에 있었다. 미술관 초입이 아닌 안쪽 깊이 숨어(?) 있었다.

<과거, 미래> 사이에 현재가 있다. 현재가 과거와 미래 사이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현재를 잡을 수 없다. 현재는 순간이다. '시간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영원한 현재'이다. 영원한 자연과 유한한 인공물, 반대로 나무보다 오래갈지 모를 쇠붙이와 유한한 생명체인 나무 사이에서 '세계 속에 존재하는 묘한 순간의 나'를 읽는다.

현재는 존재하는 것이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면, 현재를 사는 사람도 마찮가지다. 어떤 경향성을 가진 주체로서 존재하면서도 계속 변하고 있어 무엇이라 규정할 수 없는 '주체'이다. <과거, 미래>를 보면서 시간과 함께 계속 변하는 우리가 보통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예술의 영원성'을 벗어나 계속 생성하고 변화하는 작품을 본다.

잎이 피고, 단풍이 들고, 잎이 지고 눈에 묻히는 나무, 자연을 작품 안에 끌어들였다. 금산갤러리도 그렇고 <과거, 미래>도 그렇다. 그런데 그 방법은 울타리(경계)를 긋는 것이다. 자연 친화적(또는 친환경적)이라고 해도 문명 자체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이렇게 된다. 어떤 경험, 사건이 개념화될 때도 그렇다. 무엇인가를 버려야 무엇인가를 얻을 수 있다. 얻은 것이 커다란 성취였다가도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 질곡으로 변한다. 우린 문명의 성취에 있지만 한편에서는 '질곡'을 맛보며 살고 있는 것 같다.

가이꾸 - 베티 골드

베티 골드의 <가이꾸, KAIKOO XI XVII>라는 작품이다. 가이꾸는 하와이 말로 파도이다. 뜻을 알고 보면 파도처럼 보인다. 그전에는 원 같기도 하고, 하이힐 같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인식은 경험적이라기 보다 개념적이다. 원래 노란색인데 갑작스레 주홍빛으로 변했다. 며칠 전에 아저씨들이 페인트를 칠하고 갔다는데 ... !

세 개의 비결정적 선 - 베르나르 브네

베르나르 브네의 <세 개의 비결정적 선>이다. 사진에서는 잘 안보이는데 원을 자른 호들을 붙여만들었고 '세 개'로 이뤄져 있다. 녹슬어 뒹굴고(?) 있어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몇 억이 넘는 비싼 작품이다. (작품 더 보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0871697)

시점 - 오프너, 권달술

미술관 올라오는 길목 소나무 밑에 있는 권달술의 <시점 - 오프너>이다. 이 작품도 마음 먹고 찾지 않으면 잘 눈에 띄지않는다. 스팸 따개를 땅에 박아 놓은 모습인데 '시점'은 '관점(view point)'이다. 관점을 바꾸어 사물을 보면 세계의 '다면성/다양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스피노자의 존재(세계)가 가지고 있는 무한한 양태들.

노래하는 사람 - 조나단 브로프스키

조나단 브로프스키의 <노래하는 사람>이다. 잘들어보면 어디선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때 그때 기분에 따라 슬프게도, 흥겹게도 들린다. 이 작가는 주로 '거대한 인간(거인)'을 모티브로 작품을 만드는데 거인들은 험악하다기 보다는 친근한다. 왜그럴까? 광화문 흥국생명 빌딩 앞에 가면 다른 작품을 볼 수 있다.

문에서 - 이우환

이우환의 <문에서>이다. 자연물인 돌과 광석에서 추출한 쇠를 이용해 문을 만들어 놨다. 문이 사람쪽으로 열려있는데 자연과의 소통은 인간의 몫이니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파주 출판단지의 철로 만들어진 건물과 같이 작품이 녹슬어 가는데 둘 다 인공적이면서도 썩어가는 듯한 자연미를 보여준다.

사방에서 - 이우환

이것도 이우환의 <사방에서>이다. 동서남북, 세상 전체를 아주 쉽게 말하고 있는데 ...

작품86 - 끝없는, 곽인식

곽인식의 <작품86 - 끝없는>이다. 미술관 들어오는 입구 서 있는데 작품이라기 보다는 '굴뚝' 같다. <사방에서>나 이 작품을 보면 글쎄 ... 미술이 어디까지 가려고 할까? '미술계'에 들어서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예술에 대한 통념을 깨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10개의 계량기 - 곽준덕

곽준덕의 <10개의 계량기>이다. 나는 이 작품 앞에만 서면 계량기 1개의 무게 얼마인가 계산하고, 다시 층층마다 잘 계산되어 있다 살펴본다.

각축의 인생 - 황현수

제일 잘보이는 미술관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황현수의 <각축의 인생>이다. 또 사람들이 모두 작품 속의 사람처럼 자세를 취하고 사진을 찍는 곳이기도 하다. 사방에서 서로 밀고 있어 움직이지 못하는 쇠공처럼 세상이 그렇다. 재미있게 사진을 찍는 어린 아이들도 크면 서로 경쟁하면 반대에서 밀어제끼는 세상을 보면서 씁쓸해 할 지 모른다. 밀고 있는 사람들은 조각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을 떠낸 것(casting) 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은 우리나라의 봉화대와 성곽을 본 떴다. 또 우리 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화강암을 사용했다. 박수근의 그림처럼 화강암 같은 인생을 살았으면! 그림이 좋지만 조각도 알고보면 더 재미있다.

10월 3일 출발한 과천 서울대공원 자연캠핑장에서의 '1박2일'은 조각공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청계산 숲 속 벤치에 누워 바라보았던 햇살에 반짝이던 연두색 나뭇잎과 새 소리, 풀벌레 소리, 그리고 향기로운 바람이 벌써 그립다.

청계산 - 자연캠핑장 B코스 벤치 위 하늘
2008/10/08 01:05 2008/10/08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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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2008.9.6) 오후 과천현대미술관을 갔다.꼭대기 층부터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면서 상설전시된 작품들을 둘러보면서 1층 원형전시실까지 내려왔다. 한동안 꺼져있었던 백남준의 <다다익선>이 보수가 끝난듯 다시 켜져있다.
 
원형전시실에서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빌 비올라의 <해변 없는 바다, Ocean Without a Shore>를 보았다. 5.30 ~ 10.26까지 전시 중이다.  빌 비올라(Bill Viola)는 백남준의 오랜 동료이자 제자로 비디오 아트를 발전시켰다. 이 작품은 최고의 기술(technology)을 이용한 시각적 정밀함을 보여준다. 특수 제작된 3개의 스크린에 고화질 비디오와 사운드로 제작된 설치작품이다.

빌 비올라는 베니스의 산 갈로(San Gallo) 교회에서 영감을 받아 이곳에서 24명의 연기자와 20명의 기술팀과 함께 이 작품을 제작했다. 연기자들은 인종, 성별, 연령이 모두 다르다. 교회 내부에 있는 3개의 제단석을 비디오 스크린을 위한 지지대로 사용했는데 지금 전시 중인 것은 한국에서 비슷하게 제작된 것이다.
연기자들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서면서 색, 소리, 움직임, 표정 등을 갖게 되고 어떤 선을 넘어서면 이 세계로 들어온다. 산자들을 위해 죽은 자들이 잠시 모습을 드러내는 듯한 모습 속에서 24명의 연기자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모습'을 하고 있다.

작품을 본 후 왜 <해변 없는 바다>일까 생각을 해보았다. "바다"는 작품을 지배하는 경계로서의 물, 이 물은 어둠 속을 거쳐 물을 뚫고 나오면 감정과 표정을 가진 '구체적'인 사람이 되고, 다시 이 물 뒤로 가면 어둠 속에서 無로, 형상(eidos)없는 물질(hyle, 질료)로 변하게 하는 경계가 된다. 이 경계는 소리도 빛도 없는 어둠 속의 저곳과 파도 소리, (고화질의)맨질거리는 색깔과 물결 소리가 있는 이곳을 나눈다. 연기자들이 침몰하는 스크린 저편과 드러나는 이편, 시각과 청각 즉 감각적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를 나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경계가 정말 있는 것일까하는 질문을 던지는듯 하다. 왜냐하면 "해변"은 육지와 바다가 연결되는 곳인데 이 해변이 없기 때문이다. <해변이 없는 바다>는 달리 말하면 '경계가 없는 세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나눠 놓은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존재와 무에 대한 질문, 세계가 정말 이렇게 나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진다. 경계란 장자(莊子)의 꿈과 같은 것이다.

한국현대사진 60년
우리는 어둠 속에서 스크린을 응시하면 스크린을 통해 부상하고 침몰하는 연기자들을 본다. 하지만 스크린 안의 연기자들에게는 반대로 보일 수 있다. 24명의 연기자들의 짧지만 서로 다른 표정과 몸짓을 보여주는 것처럼 스크린 앞에선 우리는 각자 자신의 표정과 몸짓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각자의 표정과 몸짓 속에는 '물/경계'로 씻어도 씻겨지지 않는'존재/기억'이 묻어있다. 이승이든 저승이든 기억은 영혼에 혹은 물질 속에 깃들어 영원한 것은 아닐까? 기억의 불멸성을 전제하지 않은 영혼불멸이란 가능할까? 상상할 수 없다.  전시장의 어둠 속에서 이런 생각에 빠져든다. 우리 자신이 세계와 세계를 넘나든다면 우리에게 경계란 존재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낱 통과의례일까? 죽어도 뼈 속까지 각인된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우리 앞으로 불러낼 수 없을 것이다.

원형전시장을 둘러본 후 <한국현대사진 60년, 1948 - 2008>과 <미술이 만난 바다> 전시회를 보았다. 사진은 '순간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을 통해 기억, 감정, 생각 등의 다발을 불러내고, 이를 매개해 주면서 예술이 되는 듯하다.

아이와 함께 코끼리 기차와 리프트를 탔다. 8시가 되어 밤 늦게 리프트를 타니 무섭다고 야단이다. 어둠 속 보이지 않는 곳에 두려움이 산다.



▲ Bill Violla의 작품 해설과 산 갈로 '고풍스러운' 교회의 제단석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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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09 02:02 2008/09/09 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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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밸리 - 강원도 원주시
오늘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오크밸리에 놀러갔다. 이년전 워크샵 때문에 이곳에 왔었다. 2006년 5월 이곳에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새벽녘에 혼자 일어나서 서쪽 능선을 타고 한바퀴 돌았었다. 좁은 오솔길 위 낙엽을 밟으며 혼자 걷던 이른 아침 산의 쾌적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슬에 젖은 납엽들이 숨죽여 사각거렸다. 그때 책을 한권 가지고 있었는데 <차이와 반복>이었나?

    ▲ 오크 밸리 전경 (골프콘도 A동 307 베란다)

어제(일요일) 오후에 두시 반에 출발하여 네시 반에 도착했다. 말끔하게 정리된 골프장을 끼고 서있는 콘도가 좋아보였다. 방에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가 나와 순호는 수영을 하고, 아내는 처남과 자전거를 탔다. 아내는 수영장에 아무도 없이 썰렁하여 싫단다. 오랜만에 아이랑 둘이 수영을 하였다. 지난 여름 몇번 수영장엘 간 후 처음이다.

오크밸리 수영장
    ▲ 오크밸리 수영장 (실내수영장과 야외수영장이 연결되어 있다.)

아내는 자전거를 차고 콘도 언덕을 따라 콘도 아래까지 내려갔다 머리에 바람이 들어 아프다고 한다. 그리고 내려갈 때는 좋았는데 자전거를 끌고 다시 위로 올라오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수영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 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은 다음 드라마를 봤다. TV를 잘 안보지만 요즘 주말에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엄마가 뿔 났다, 행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로맨스까지를 보는데 이날은 볼링장 문 닫는 시간 때문에 앞 두개로 만족했다. 처남이 "옛날에는 이런데 오면 할 일이 없었는데"하면서 TV가 잘나오는 것에 새삼 감탄을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보니 콘도는 안방 앞에 산을 갖다놓은 꼴이다. 열시정도에 나가 한시간 동안 볼링을 쳤다. 순호가 처음에 한번 맞추고 그 다음부터는 왼쪽, 오른쪽으로 계속 빠지면서 어꺠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자기편이 잘 칠양이면 소리지르며 야단이다.

볼링장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순호와 처남은 방으로 가고 아내와 함께 우산을 들고 주변을 산책했다.  땅 속으로 스며드는 가는 봄비처럼 시원한 공기가 가슴 깊이 스며든다. 비는 내리지만 바람이 없어 낮보다도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어둠을 조금씩 밀쳐내는 오렌지색 수은등 사이로 유성처럼 비방울이 스쳐지나갔다. 불빛을 따라 가다보니 조각공원이 나타났다. 이삽십 여점의 조각들이 불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 두 벤치위의 연인(Couple on Two Benches, George Segal, 127X155X155, 브론즈, 1985)

George Segal의 <두 벤치 위의 연인>
늦은 밤 산 속 콘도에서 빛과 어둠, 길게 늘어선 그림자와 가는 빗줄기를 따라 촉촉하면서 맑고 시원한 대기 속을 이리 저리 거닐다가 George Segal의 작품을 다시 만났다. 정말 뜻 밖의 만남이었다.

1993년 호암갤러리의 <포스트 모더니즘전>에서 아마 처음 보았던 것 같다. 그때는 함께 전시되었던 로버트 롱고의 작품이 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보았던 롱고의 작품보다 시걸의 작품에 마음이 갔다.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1993년 전시회에는 조지 시걸이 없었다. 1995년에 호암갤러리에 <조지 시걸展>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처음 보았을 것이다. 전곡에 있다 금곡으로 부대를 바꾼 후 주말에 나와서 보았을 텐데, 그러면 그때도 아내도 함께 가지 않았을까?)

George Segal - Walk, Don't Walk (1976)George Segal -  Woman Sitting on Bed (1996)
   ▲ 조지 시걸- Walk, Don't Walk (1976) | Woman Sitting on Bed (1996)

조지 시걸(George Segal  1924~2000)은 뉴욕 출신의 미국의 조각가이다. 1950년대까지 회화에 전념하다가 카프로(Allan Kaprow)를 만나 해프닝(happening; 비연극적, 탈영역적 연극형식)의 공간적 공연을 하면서 석고에 의한 인체상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의료용 석고 붕대를 이용해 인체에서 직접 본떠 주형으로 실물과 꼭 닮은 모조품을 만들어 일상생활 속에 있는 환경적 오브제와 함께 전시했다. (의료용 석고 붕대! 미적 체험을 통해 우리가 지닌 병을 치료하려 했을까?)

그는 로이 리히텐스타인이나 앤디 워홀 등과 함께 팝아트의 중심인물로 1960년대 미국 대중미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했다. 하지만 리히텐스타인이나 워홀이 광고, 잡지, 만화 등을 소재로 삼아 영감을 얻은 것과는 달르게 시걸은 일상(하찮은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는 20세기 최고의 조형조소가가 되었다.

시걸은 실물크기의 석고조소 제작으로 유명하다. 초기의 순백한 석고상과 환경적 장치는 차츰 그 규모가 커져 1970년대 이후에는 색채를 가한 인체상까지 제작했다. 그의 환경조각은 대도시 대중의 군상을 표현했고 이런 작품을 통해 그는 현대사회에서 대중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고독과 소외를 표현하려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걸의 작품 소재는 산업사회의 발전이 만들어낸  도시의 풍경들이다. 산업사회의 상징인 규격화된 주유소, 대형 상업광고판, 레스토랑, 모텔, 지하철, 극장, 세탁소, 간이식당, 거리 등 평범한 도시의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낯익은 일상 속에 서있는(내던져진) 인간들은 호퍼의 그림처럼 소외되고 고독하며 '현대적 쓸쓸함'이 짙게 묻어난다.

그는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이름 없는 존재들인 시민들의 일상, 그 속에 배인 존재의 무기력, 권태를 표현했고, 그 중에서도 군중 속의 고독을 포착했다. 표정 없이 서 있는 사람들,  사람들 속에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시선들은 실제 인체를 떠내어 살아있는 듯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유령처럼 붕 떠 있고 비개성적인 모습인 도시민의 소외된 모습을 더욱 심화시킨다.

1993년 호암갤러리, <포스트 모더니즘전>
(잘못된 기억이지만) 조지 시걸을 처음 보았던 곳으로 생각했던 <포스트 모더니즘전>이 있었던 해에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입대하기 전 봄에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 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 에릭 피슬(Eric Fischl) , 그리고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네 사람의 작품을 보았다. 아래 포스터를 하나 사서 액자로 만들어 내 방에 걸어놓은 후 군에 입대했다. 왜 평소 안하던 그런 짓을 했을까? 지금도 미스터리다.

1993년 미국 포스트모더니즘전 -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 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 에릭 피슬(Eric Fischl) , 그리고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 AMERICAN POSTMODERN ART 포스터 (위 시계방향 슈나벨, 살르, 피슬, 롱고의 작품)

조각공원에서 1993년 <포스트모더니즘전>을 기억한 것은 조지 시걸의 작품과는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익명적 도시인들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1953~)와 두 사람이 자주 비교되기 때문이었을까? 롱고도 일관되게 탐구한 것이 시걸과 같이 도시의 삶과 문화였다. 이를 통해 현대인 일상적 부담, 고통, 그리고 자본주의적 사회제도와 장치가 지닌 억압적 성격을 폭로하려 한다.

그가 표현한 춤추는 듯, 쓰러질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누구일 수도 있다. 역동적인 포즈와 함께 가려진 얼굴, 즐겨 사용하는 흰색은 익명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또 구체적인 형상을 제시하지만 절제된 이미지(표현양식)은 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실, 당시 제일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은 '미국 부르조아계급의 문화적 타락'으로 읽혔던 에릭 피슬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했던(!) 시기였던 만큼 롱고의 <이 얼간이들아! 신 앞의 진리>에서 우둑허니 한동안 서 있었다. 두 작품이 버무려져 1993년 봄 <서울풍경2 - 호암갤러리>를 썼다. 입대 기념으로 묶은 『최종심급』에 들어있다.

시의 첫부분은 로버트 롱고의 작품(포스터에서 좌측 하단)에 대한 이야기고 중간부분인 '여자들은 접시를 내동댕이 치고, 중산층은 일상을 따분하게 생각하고 자위에 몰입하고 있다. 그들은 환상 속에서 색정에 들떠 흥분한다.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에 가려하지 않는다'는 에릭 피슬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80년을 넘어 90년대가 맞닥뜨린 이념적 상황에 대한 원론 수준의 생경한 외침이다.

 서울풍경2-호암갤러리
  이 얼간이 들아! 신 앞의 진리

무대엔 싸우는 사람들로 하나 가득했다
싸우면서 그들은 거대한 괴물과 무기를
만들었다 핏줄 돋은 공격적인 성기를 앞 세우고
깃발엔 성조기와 적기가 함께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 소리와 함께 이 세계는 끝장 나리라
하지만 달러화는 철갑같이 단단하다
고르비만 쓰러지고 레이건은 황제처럼 버티고
웃고 있었다 오페라좌는 이미 텅 비어있었다
신들도 따분한 구경을 그만 두고 전투에 참가했다
교황은 민주적 자본주의를 위해 축복을
내렸다 전투 속에 한쪽 젖퉁이는 두부처럼
잘리워져 나가고 남은 한쪽만이 세상을
유혹한다 여기에 천국같은 지옥이 있다
작가들 이론가들 열심히 그것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시와 소설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평론가들은 논평을 한다 이것은
어떻고 저떻고 신문은 연일 대서특필이다
우리시대 이성이 만든 제일 마지막 작품이
여기에 있다 와서 보라 싸움은
종반전에 이르렀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싸움은 시작하고 있다
여자들은 접시를 내동댕이 치고
중산층은 일상을 따분하게 생각하고
자위에 몰입하고 있다 그들은 환상 속에서
색정에 들떠 흥분한다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에 가려하지 않는다
노동자만이 이런 세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산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좌파가 오른쪽으로 밀리자 우파는
더 오른쪽으로 갔다 따라서 좌파는 여전히 좌파다
하지만 대칭적인 세계는 이미 균형이 깨져
조각 조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포스트 모던이고 포스트 마르크스다
브레히트가 나에게 말해준다 푼틸라
술만 먹으면 자신이 인간인 체 했다 하지만
술이 깨면 악랄한 지주가 되었다
환상이 언제까지 계속되랴 무엇이
고정불변하는 세계를 지탱해 주랴
환상이 깨면 그 아름답던 세상은 착취와 신음
굶주림과 질병 전쟁과 파괴로
가득 차있었음을 알리라 세상은 악마와도 같이
냉혹하고 그땐 자기편을 들라고 유혹도 안하리라
그땐 우파가 왼쪽으로 밀리고 좌파는
더 왼쪽으로 간다 따라서 우파는 여전히 우파다
조각 조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포스트 모던도 포스트 마르크스도 심지어는
정통적인 마르크스도 레닌도 없다
단지 투쟁하는 인간의 무리들만이
어떤 진리도 거부하고 싸울 것이다
변증법의 냉혹한 철칙 속에
어디에 선언되는 진리가 기생할 수 있겠는가

* '이 얼간이들아!-신 앞의 진리'는 로버트 롱고의 작품명이다.

15년 전의 인식과 소비 자본주의 문제
이런 질문을 해본다. '이들이 천착했던 일상이 정말 하찮은 것일까?' 하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인듯 하다. 사람들이 하루 하루의 일상의 중요성 알고 이에 천착할 때, 정말 삶이 힘겹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억압적 구조를 깨달을 때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것들'을 하찮게 만들고 세상이 어차피 그런 것으로 생각하도록, 아니 이런 것을 느끼지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세계의 위대함인듯 하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은 이런 것을 알고 느끼는 사람들까지 흡수하여 이것을 '돈을 내고 소비'하도록 만든다.

'환상이 언제까지 계속되랴! 무엇이 고정불변하는 세계를 지탱해 주랴! 환상이 깨면 그 아름답던 세상은 착취와 신음, 굶주림과 질병, 전쟁과 파괴로 가득 차있었음을 알리라! 세상은 악마와도 같이 냉혹하고 그땐 자기편을 들라고 유혹도 안하리라!' 1993년, 지금부터 십오년전의 인식이다. 이때도 소비자본주의와 욕망에 대한 책은 읽었지만 이런 생각을 피부에 닿게 생각한 적은 없다. 지금 '환상이 계속되리라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가 60년대의 유럽과 같은 정도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세상이 변했을까? 아니면 내가 변했을까? 아니면...

월송계곡 산책
팔각정에서 콘도로 돌아오는 '오솔길'
일요일 아침에 조각공원을 돌아보고 월송계곡, 팔각정(실제는 육각정이다.)을 거쳐 산책로(오솔길)을 따라 콘도로 돌아왔다. 두시간정도가 걸렸다. 밤비를 맞으며 조명 속에서 보았던 조각들을 아침에 보니 달리 보인다.

계곡은 가끔 소나무가 하나씩 있고 대부분이 이름 모를 활엽수와 참나무로 이루어졌고 여기 저기 노란 산수유가 피어 있다. (사실, 산수유가 아닌 생강나무였다.) 참나무 등걸을 한참 바라보다 잿빛 색감과 거친 질감이 화강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조각공원에서 본 둥글 둥글한 것이 누이 같았던 <그리움은 저 별이 되어>가 겹쳐졌다.

좌측 산수유 꽃, 우측 생강나무 꽃
아내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향기가 좋아!" 하고 외친다. 산수유 꽃에 코를 대고 작은 꽃을 살살 문지르고 있었다. 일행 모두 코를 꽃에 들이대고 가슴 깊이 향기를 들이켰다. 잔가지 하나를 꺽어 코에 댔는데 옅은 생강내음이 난다. "산수유가 아니라 생강나무네!" 내가 말을 했다. 봄 들녘에서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구별하기는 쉽지않다. 산에서 내려와 콘도 정원에 있는 산수유 꽃에 코를 대보았는데 아무런 냄새도 없고, 꺽인 가지에서는 향긋한 것과는 거리가 먼 구리 구리한 냄새가 났다. 생강나무는 처음이다. 몇년 전 아내가 순호와 숲 체험을 다녀와 생강 냄새가 나는 나무에 대해 설명을 해준 적이 있다. (그 즈음에 아내가 생강나무를 꺽어 냄새를 맡게 해줬었나? 잘 모르겠다.)

그리움은 저 별이 되어 (고정수, 1989, 화강석)화강석 같은 참나무 껍질산수유가 아니고 생강나무였다!
   ▲ 조각공원, 참나무 껍질, 생강나무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몇 개의 계곡이 있고 지난 밤 비가 내려서인지 계곡 사이로 졸졸 거리며 맑은 물이 흘렀다. 오솔길 아래 계곡은 좀 깊고 습기가 많아 나무와 바위에 파릇한 이끼가 끼어 있어 산 자체가 멋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 그만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봄을 실감케 했다. 이번 나들이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스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는 여행이었다.

   ▲ 계곡에 흐르는 물, 그리고 이끼

   ▲ 겨울에서 봄으로 - 낙엽, 물고기, (무당) 개구리 알, 꽃봉오리, 들꽃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휘트니 미술관 소장품 - 조지 시걸의 <가시오/멈추시오>
2008/04/02 00:16 2008/04/0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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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겐하임 컬렉션 전시회 - 라스베가스

MIX08에 참석하면서 Guggenheim Hermitage Museum의 그림을 구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미국으로 가기전에 구글에서"museum las vegas"로 검색을 했고, 여기서 구겐하임 뮤지엄을 발견했다. 그런데 '라스베가스에 구겐하임이라니' 하는 의구심이 들었는데 사이트를 방문하고서 '정말 있나보네! 가봤으면'하고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함께 가는 분들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데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한쪽 옆에 있었다.

그런데 구겐하임 미술관을 방문했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 그림을 볼 기회를 가졌다. 운이 좋게도 구겐하임 미술관이 묵었던 The Venetian Hotel 안에 있었다. 구겐하임 미술관에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을 빌려다 호텔에서 상설 전시를 했다. 그리고 MIX 컨퍼런스는 호텔과 연결된 머지않은 곳에서 열렸다.

전시는 구겐하임 켈렉션에서 Portraiture(초상화), Landscape(풍경화), Still Life(정물화), Genre(풍속화)라는 네가지 주제로 10개 정도씩 방을 꾸몄다. 전시된 작품들은 이름만 들으면 모두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피카소, 세잔, 샤갈, 모딜리아니, 레거(Leger), 고호, 들로네(Delaunay), 모네 등.

현대회화, 특히 큐비즘(입체파)의 작품은 아주 분석적이다. 따라서 그림을 구경할 때도 조금 분석적으로 보면 재미가 있다. 아래 피카소의 작품명은 'Pitcher and Bowl of Fruit'이다. 그림에서 작품의 제목에 나오는 소재를 찾는 것은 조금 쉽다. 그런데 소녀와 에펠탑 등 찾아보라. 에펠탑까지는 이것을 말해주면 찾을 게다. 하지만 소녀는 어디에 있을까? 그리고 정말 커다란 얼굴이 하나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어디에 있을까? 탁자보의 녹색과 짙은 녹색과 같은 차이는 사물의 보는 시점의 차이가 평면에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이런 그림을 보면서 우리의 인식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언제나 우리는 '달의 뒷면(dark side of the moon)'을 보지 못하고 앞면만을 본다. 만일 서로 다른 입장의 차이가 이런 것 이라면 우린 좀 더 겸허하게 상대의 의견을 경청해야 하고, 상대 또한 그럴 것이다. 세계는 우리가 보는 것보다 훨씬 다양하다는 것을, 우리는 어는 일면만을 보고 '다아는 듯이 잘난 체하는 것'은 아닌지 뒤 돌아보게도 한다. 스피노자가 세계는 하나이지만 그 속성(양태)는 무한하다는 것도 이런 것과 맞닿는다. 입체파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세계의 다양성(무한성)과 일의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곤 한다. 그림은 철학으로 보면 아주 인식론적인 세계이고, 철학의 길고 지루한 이론을 한번에 보여준다. (철학과 비교해 상대적이지만) 직관적이라고 할까?

pitcher and bowl of fruit -Pablo Picasso
Pablo Picasso, Pitcher and Bowl of Fruit, 1931. Oil on canvas, 130.8 x 162.6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 53.1358. © 2007 Estate of Pablo Picasso/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Portrait of a Student - Amedeo Modigliani
옆의 몬드리아니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 대한 비밀(?)도 찾아보면서 살펴보면 재미있다. 왜 눈동자도 없이 옥색 눈을 만들어놨을까? 또 이 그림의 주인공은 남학생일까, 여학생일까? 그림을 클릭한 후 코 주변과 목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면 두번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또 눈은 '눈동자가 없다면'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네이버 지식인'에 묻는 것일 게다.

Amedeo Modigliani
Portrait of a Student
L'Etudiant
ca. 1918–1919
Oil on canvas
24 x 18 1/8 inches (60.9 x 46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고호 그림을 보면서도 이런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그림에 숨어 있는 고호 얼굴을 찾아보세요?" 오른편 산을 이루고 있는 선을 자세히 살펴보면 된다. 못찾겠다면 먼저 고호의 자화상 그림을 보고 다시 찾아보는 수 밖에, 그래도 못찾는 다면 어찌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이 그림을 그릴 때 그의 마음 상태는 어땠을까? 우울했을까, 행복했을까 하는 질문도 가능하다. 고호의 다른 그림들의 색조와 이 그림의 색조를 비교하거나, 이 그림을 그릴 때 고호가 처했있던 상황를 살펴본다면, 아니 우리가 그의 그림 속에 빠져들어가 본다면 알 수 있을 게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마음이 아주 행복하나 지독히 불행하다면 이 그림- 또 다른 그림 - 도 그렇게 보일 수 있다. 인간 의식은 지독하게도 '주관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Mountains at Saint-Rémy - Vincent van Gogh
Vincent van Gogh, Mountains at Saint-Rémy, July 1889, Oil on canvas, 28 1/4 x 35 3/4 inches, Solomon R. Guggenheim Museum, Thannhauser Collection, Gift, Justin K. Thannhauser, 1978

Pastorale - Vasily Kandinsky
Vasily Kandinsky , Pastorale, February 1911, Oil on canvas, 41 5/8 x 61 5/8 inches (105.7 x 156.5 cm), Solomon R. Guggenheim Museum, Vasily Kandinsky © 2005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ADAGP, Paris

칸딘스키의 그림 속에서 세명의 사람을 찾는 것은 쉬울 것이다. 그런데 한사람을 더 찾는다면! 그 사람과 동물들이 이 그림을 이루고 있는 음악성의 원천이다. 흔들리는 나무와 춤추는 듯한 사람들, 눈을 감은 동물들은 '호른을 들고 연주하는 이 사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음악의 세계를 그림을 통해서 보여준다.

그리고 모네의 'The Palazzo Ducale, Seen from San Giorgio Maggiore'을 보면서는 어디에 서서 Ducale 궁전을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하늘과 물, 그림자가 서로 겹치는지를 볼 수 있다.

그림은 마음으로 느끼면 된다는 말에도 공감을 하지만 또 그림은 조금 '짜증나더라도' 분석하고 다시 통합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것이 단순한 경험의 결과만이 아닌 이미 어떤 이론(개념)의 틀을 가지고 본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더욱 그렇다. 인상파의 붓터치와 색감, 입체파의 복잡한 선들과 조각난 사물/사람/풍경들, 칸딘스키의 음악적 색조와 흐름들 등등. 좀 더 알면 좀 더 재미있다. 특히 미술 관련 서적을 읽은 후 다시 원화를 보면서 그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면!

아는 만큼 보인다! 이 말은 그림 뿐만아니라 철학이나, 회사의 일, 그리고 모든 세상 일에 해당되는 말이다. '무식이 역사에 도움을 준적은 없다'고 한다. 그 역사의 일부분을 이루는 개인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일게다.
2008/03/11 23:00 2008/03/1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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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판화 2008.1.27
지난 일요일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 현대 판화 1958 - 2008>에 다녀왔다. 미술관에 도착하여 차를 세워놓는데까지 한시간 정도 걸렸다. 하지만 오랜만에 하는 나들이라 그리 답답하지 않았다.

서울랜드 뒤쪽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가의 산에는 소복하게 하얀 눈이 쌓여 겨울 정취를 자아낸다. 시내에서는 매서운 바람과 앙상한 가로수 가지만 있을 뿐이다. 이렇게 쌓인 눈과 차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니 기분이 한결 가뿐하다.

미술관에는 현대 판화전을 보기 위해 간 것은 아니다. 몇 달 전부터 아내가 컴퓨터 가젯 메모장에 "과천가고싶다"고 적어놔 가야지 가야지 하면
바탕화면 - 과천가고싶다
서 이런 저런 일들과 게으름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토요일부터 과천에 가자고 다짐하고, 일요일에 교회를 다녀온 아내가 자리잡고 앉기 전에 서둘러 나온 것이 두시가 막 넘어서이다. 미술관에는 세시반이 넘어서 들어섰다.

<한국 현대 판화 1958 - 2008>은 한국 판화 도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막한 전시회이다. 133명의 작가들의 400여점의 작품이 한국판화협회가 결성된 1950년대의 여명에서부터 형성과 전개, 확산, 다변화 등 10년 단위로 끊어 전체적인 모습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작품들을 보면서 판화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낮은 지, 반대로 판화의 세계가 얼마나 깊은지를 알게 됐다. 판화는 프린트(print, 찍는다)의 일본 번역어이다. 그런데 '판화'라는 이 번역어는 어떤 것, 즉 판화 작가의 예술적 창작물을 '종이에 찍어낸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면서 다양한 현대 '판화'의 세계를 이해하는데 방해가 된다.

또 미술사에서 판화에 대해 낮게 평가하는 관행- 판화를 다루지 않거나 주변부에서 슬쩍 건드리고 지나가는 태도 -은 이런 내 생각을 고칠 틈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백문이불여일견이라고 한번에 이런 생각을 날려버렸다.

미술사에서 판화를 낮게 취급한 것은 복수성에 있다.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어 대량복제가 가능하여 원본의 유일무이성을 기대할 수 없는 예술 형식이다. 이런 원본에 대한 아우라의 결여가 판화에 대한 낮은 평가를 낳았다. 이런 태도들의 뿌리를 캐면 그리스 철학, 플라톤의 이데아론까지로 소급된다. 적어도 서양철학에서 플라톤이 아름다움(美)에 대한 학적(學的) 정의를 '유일무이'한 아름다움 자체를 대표하는 이데아로를 상정하면서부터 일 것이다.

전시회에서 낯 익은 작가들은 오윤, 홍성담, 홍선웅, 류연복 등의 민중미술계열의 작가들이다. 선이 굵고 거친 칼맛과 그때의 시대정신이 올곧게 살아있다.  그런데 그 시대에도 김태현, 구자현, 김익모 등의 추상계열의 작가들도 함께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시대정신은 그때를 사는 사람들을 '압도'하여 모두를 끌고 가는듯 보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그 안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의 화두는 융합(convergence)인 듯하다. <한국 현대 판화 1958 - 2008>의 2부 전시인 '한국 현대판화의 신세대 흐름'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시대에 민감한 작가들은 사진 전사, 레이저 커팅 등의 다양한 기법으로 판화를 '찍는다'. 거푸집에서 똑같은 모양의 포크를 찍어낸 다음 설치한 작품도 판화가 되고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프린트도 판화가 된다. 여기서 판화에 대한 의미를 다시 정의하고, 우리에게 다시 생각하도록 한다. 다양한 '찍는(printing)' 기술이 축적되고 다른 장르의 미술 양식들과 혼합되면서 판화의 외연이 확대되고 가능성은 무한대로 확장된다.

사실 이런 변화의 흐름은 십년이 훨씬 지난듯 하다. 그런데 내가 갖고 있던 판화에 대한 고정된 관념이 이런 변화들, 가능성들을 알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찍을 수 있는' 방법은 무한하다.

판화작품이다 -  최미아, '구조장비', 레이저커팅, 스테인리스스틸, 30x0.5x240㎝ 31점, 1999년

▲ 최미아, '구조장비', 레이저커팅, 스테인리스스틸, 30x0.5x240㎝ 31점, 1999년

전시회를 돌아보면 판화를 통해서 재현, 또는 만들어진 세계가 그려진(painting) 세계에 비교해서 떨지지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예를 들면 김환기가 만들어낸 회화의 세계를 판화 작품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다른 형식을 통해 같은 내용을 표현한다. 그런데 내용의 동일성은 동시대의 사는 작가의 유사한 문제의식에서 나온다.

전시회에서 판화를 찍는 방식에 paper casting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직업적 무의식이 casting이란 단어에 눈이 가 기억하도록 했다. 물론 방송은 아니다. 종이를 믹서에 갈아 물기를 뺀 후 그것으로 모형을 떠내는 방식이다. 이 기법을 이용하여 아래 사진같은 작품을 만든다. (아래 작품은 전시와는 무관하게 paper casting을 검색한 결과이다.)

Kim Kyung Sun, Hopeful, 2005, Paper casting, 30 x 30 cm (each)Kim Kyung Sun, Hopeful, 2005, Paper casting, 30 x 30 cm (each)

▲ Kim Kyung Sun, Hopeful, 2005, Paper casting, 30 x 30 cm (each)

이런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예술이 각 기법들을 (자본주의적 노동) 분업하듯 잘게 쪼게어 왔다면 이제 한계에 부딪쳐 다시 벽을 허물고 합치기 시작하는 것은 아닌가? 예술 뿐만이 아닌 전 산업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분업의 극단은 분업화된 개별 노동을 사회적 노동으로 전화시킨다. 극단적 경쟁은 쪼게진 회사들과 산업을 뭉쳐 더욱 사회적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예술에서는 이런 것들이 어떻게 표출될까?

시대정신은 한 시대를 풍미할지는 모르지만 그 역시 유한한 것이다. 또 다시 시간이 지나면 그 시대 안에 다양한 생각과 행위가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것에 눈을 감고 살 모르는 체 하면서 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시대정신은 그 시대의 객관성/진실이기 때문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문제틀(probl matique)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만들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풍요롭게 한다.

찍는다, PRINT란 단어의 용례의 변화를 생각해 보자. 사진을 찍어 인화한다에서 프린트(출력)한다. 문서를 인쇄한다에서 문서를 프린트(출력)한다로 바뀌었다. 디지털화의 결과이다. 붓의 터치를 중심으로 한 PAINT보다 판화(PRINT)가 더 디지털쪽에 가깝다. 그림에서의 원본의 유일성과 판화에서의 다수의 복제가능성이라는 특성을 살펴보아도 그렇다. PAINT보다 PRINT를 디지털화 하는 것이 더 쉽다.

요즘은 건물의 벽체를 찍어내고, 골격(프레임)을 찍어 내거나 사출(출력)하여 조립한다. 제조업에서 시작한 모듈화가 건설에도 적용된다. 그리고 IT에도 적용된다. 필요한 모듈을 찍어 모아놓고 레고 조립하듯이 갖다 맞추는 CBD(Component Based Development)와 같은 개발방법론이 그것이다. 판화의 세계에서도 여러가지의 방식으로 찍어 내어 모듈화한 후 이것을 조립한다. 어떤 예술보다도 융합(convergence)이 용이하다. 예술이 산업을 이끌기도 하지만 산업/기술이 예술을 이끌기도 한다. 현재가 그런 때이다.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류연복의 진경산수 판화
'민중화가'들의 2000년대 모습 (1)

민중작가들의 벽화, 걸개그림 모음 - 기획 창작 공간 산방
http://www.outsideart.net/archives/cat_cat35.html
http://www.outsideart.net/archives/cat_cat33.html

Paper Casting 만드는 법

부산에서 국제판화제도 열리네요

2008/01/29 23:00 2008/01/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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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전시회 사이트 메인 이미지

한국에서 떠나기 전 LA에서 박물과을 한 곳 구경하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사이트를 검색하다가 <LA시 아트 박물관>에서 달리 전시회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첫날을 보내고 다음 날 모든 분들이 저녁 때 쇼핑을 하고 그곳에서 저녁식사를 한다고 했을 때 같은 방을 쓴 한성대 김효용교수(그리고 에듀윌 대표)와 함께 억지로 버스에서 내러 LACMA를 찾았다. 강의가 끝난 시간이 5시가 넘어 들여보내주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하면서. 사이트에서 8시까지 관람시간이라는 것을 확인해 두었기 때문에 들여보내주겠지 생각을 하면서.
항상 출장을 떠날 때면 그 도시에 있는 박물관(그림)을 구경하겠다는 생각을 갖지만 여간해선 찾아가기가 힘들다. 함께 간 분들의 기호에 맞춰서 행동해야하기도 하고, 또 낯선 곳에서 혼자 돌아다닌다는 것도 '겁 많은' 나로서는 선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마침 김교수께서 LA에서 공부를 하셨고, 함께 방을 썼기 때문에 미리 달리 전시회를 봤으면 좋겠다고 말을 해서 기회를 만들었다.

달리를 보면서 느낀 점

1. 달리의 초현실주의는 애니메이션을 통하여 '완성(또는 현실화)'되었다. 달리의 그림 속에 있는 많은 장면들은 우리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또 우리가 많이 보아왔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들로 찾을 수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초현실주의는 애니메이션에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Dali - Light Dream

2. 초현실주의는 우리에게 배치의 문제, 계열화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일반화된 현실적인 사물의 배치, 이미지/사고의 계열을 흩으려 새로운 배치와 계열을 만들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초현실주의의 전략이라면, 왜 이런 전략을 채택했을까 생각하게 만든다. 현재의 일반화된 양식(회화양식)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양식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사물/의미가 항상 고정된 것이 아님을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하나의 틀을 깨고 나갈 때 사람들은 그것이 '초'현실적인 것처럼 생각할지라도, 언제든지 그것이 현실로 전화될 수 있다. 예술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능성, 잠재성을 세계를 일깨운다.

3. 달리의 그림을 보면서 요즘 웹에서 말하는 Layer를 그럴듯하게, 아주 선구적으로 사용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지와 이미지가 곁쳐지면서 그것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인지 분리되어 있는 것인지, 여하튼 하나의 입체감을 만들어 낸다. 현재 웹에서 보여주려는 UI이런 것은 아닐까? 이날 Layer 이야기를 UCLA에서 많이 한 것이 이런 생각을 만들었다.

달리-Painting Title: The Disintegration of the Persistence of Memory, 1952/54


달리 - LACMA
▲ 아침 강의를 들으러 가면서 찍은 사진  
     

달리 전시회를 재빨리 관람한 후 상설 전시장에 전시된 미술품을 관람했다. 세잔느와 렘블란트 그림 몇점이 기억에 남고... 여하튼 이번 출장 중에는 시간을 내어 박물관을 찾았다. 지난번 싱가폴 출장 때도 조금 시간이 남아 한참을 헤메 박물관을 찾았는데 '도시계획 박물관'이어서 실망을 했었다.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5905 Wilshire Blvd., Los Angeles, CA 90036
Tel. 323-857-6000; 323-857-0098 (T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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