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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2.0 -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가능성], 커뮤니케이션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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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에 해당되는 글 17건

아래 글을 썼던 1998년 5월과 지금, 그 사이에 십년이 넘는 세월이 있다. 2008년 말 정리가 마지막이다. 몸에 붙어있다 떨어져나간 비늘처럼 끄적거리던 글들의 묶음이 있다. 메고 다니는 가방 한구석에도, 컴퓨터 옆 작은 상자 안에도 있다. 상자 안의 종이는 편견이 없다. 포스트잇에서, A4지, 신문 조가리, 회사노트까지 각양각색이다.

언제부턴가 소리로 녹음되어 몇몇은 컴퓨터 안에 찌부러져 집(zip)을 마련했다. 스마트폰 메모장에 씌어졌다 어떻게 기를 쓰고 지메일 노트에 안착한 것들도 있다. 종이의 물질성을 잃자 더 흩어져 버렸다. 또 더 정리도 안한다. 마음 뿐이다.

이십대 때, 언젠가부터 형이 더이상 글을 안쓰는 것을 보면서 의아해 했었다. 왜 안쓸까? 지금 그 답을 안걸까? 모른다는 편이 맞을까? 형은 다시 펜을 들고 쓰고 있는 눈치다. 부럽지도 않다. '언제나 쓸 수 있어!' 이런 생각도 있다. 하지만 못쓴다. 안쓰는 것이 아니다. 관심사가 변했을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시선집 『끝과 시작』을 읽고 있다. <나에게 던진 질문> 전문이다.

미소 짓고, 손을 건네는 행위.
그 본질은 무엇일까?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도
홀로 고립되었다고 느낀 적은 없는지?
사람이 사람으로부터
알 수 없는 거리감을 느끼듯.
첫번째 심문에서 피고에게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내는
엄정한 법정에 끌려나온 듯.
과연 내가 타인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을 펼쳤을 때 활자나 삽화가 아닌
그 내용에 진정 공감하듯이.
과연 내가 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면서
정작 답변을 회피하고,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 농담이나 늘어놓는 주제에.
참다운 우정이 존재하지 않는
냉혹한 세상을 탓하기만 할 뿐.
우정도 사랑처럼
함께 만들어야 함을 아는지, 모르는지?
혹독한 역경 속에서
발맞춰 걷기를 단념한 이들도 있으련만.
벗이 저지른 과오 중에
나로 인한 잘못은 없는 걸까?
함께 탄식하고, 충고를 해주는 이들도 있으련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전에
얼마나 많은 눈물이 메말라버렸을까?
천년만년 번영을 기약하며
공공의 의무를 강조하는 동안,
단 일 분이면 충분한 순간의 눈물을
지나쳐버리진 않았는지?
다른 이의 소중한 노력을
하찮게 여긴 적은 없었는지?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엔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법,
누군가의 부주의로 인해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 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끝과 시작 - 10점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지음
최성은 옮김/문학과지성사

한 때, 몇번인가 시론(詩論) 같은 것을 쓰려고 시도한 적이 있다. 그때 정의한 시론이다. "존재와 당위 사이의 괴리 속에서 솟아난 비명"

쉼보르스카의 시를 읽다 내린 결론이다. 시를 못쓰는 것은 괴리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 괴리감 자체가 존재 속에 쪼아리를 튼 것이 아니었다고 해야할까? 의식화의 결과물이었을까? 아니다.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어서다. 눈 뜬 장님이다. "단 일 분이면 충분한 순간"의 주의(注意)도 없다. 그래서 공감이 없고, 시도 없다. (이런 생각과 함께 다른 존재의 지평 위에 서있다라는, 공감을 하라니까 분석하고 종합하려는 ... 젠장!)

감정도 없이, 판단을 한다며 "손해라도 입을까 겁에 질려 / 솔직한 고백 대신" 번지르르한 말이나 늘어놓는 재주만 늘은 것은 아닌지. 도구적 이성이다. "냉혹한 세상을 탓"하며, 이것을 "함께 만들어야 함"을 잊은 것은 아닌지.

"시적 감정은 도구적 합리성을 압도하는 합리적 이성의 뿌리" 1996년에 쓴 글 조각이다. 다시 감정의 문제로 돌아왔다. 참다운 우정을, 투명한 사회를 원하다고!

요즘 관심사가 시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쉼보르스카의 시집을 들게된 이유는 요즘 관심사 때문이다. "사람에게 품고 있는 사람의 마음", 너무 단순하고 명확한 것은 아닐지라도 <같은 것을 봐야, 같은 것을 느낀다>다. 대충 내려놓은 결론이다.

인쇄술 이후로 매스미디어가 만들어 낸 세계가 편협하고, 이데올로기적으로 한 세계만 보여줘다지만 이것이 <공감의 세계>를 만든 것은 아닌지, 그리고 대중민주주의를. 근대(16,17세기~) 이후 감정, 공감에 대한 철학적 논의와 이런 맥락에서 미디어의 역할이 관심사다. 역할이라기 보다는 매스미디어가 만들어낸 사회적 효과가 맞겠다.

매스미디어가 만든 공감 위에 근대적 윤리와 인권같은 제도들이 앉아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인터넷이 만든 '다양성의 세계'와 매스미디어의 '한 세계'와의 관계가 관심사다. 일하면서 나온 주제다. 최근 발표자료, 회사 보고서를 찾아보니 2005년부터 시작했나보다. 2007년 이후 본격적으로 이와 관련된 책들만 편식(?!)하고 있다. (장르는 다양한데 모두 이런 문제틀에서 읽고 있다.)

1996년 처음 회사에 들어가면서 세운 목표가 하나 있었다. 일주일에 시집 한권 읽기. 책장에 쌓여있는 시집이 몇백권이 될까? 그런데 미디어에 대해 알겠다고 몇년간 던져놨던 시집을 최근 다시 들었다. 신형철의 산문집인 『느낌의 공동체』때문이다. 제목에서 느낌이 올 것이다. "공감"! 우리 정서의 다양성에 대한, 그 정서(감정)를, "탁자 위에 놓인 유리컵 따위"를 소중히 여기며 갈고 닦은 시인들에 대한 평론집이다. 하지만 평론이 아니다. 그는 유리컵 따위를 소중히 여기는, 순간의 눈물을 흘리는 시인보다 더 섬세한 눈길을 가진듯 하다. 시에 대한 절실한 애정이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은 모국어에 대한 애정으로 쓴 시집이다. 결국 이런 신형철씨에게 낚여 다시 시집을 들었다.

느낌의 공동체 - 10점
신형철 지음/문학동네

인터넷과 시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지? 내 생각엔 정서(감정)의 다양성이다. 결국 이 정서 위에서 세계에 대한 시선의 다양성이 나온다. 이들의 단점이 무엇인줄 아는지? 그 독특성에서 나오는 불편함! 인터넷의 악플처럼 코드가 안맞는 시에 대한 악평이나 무시(안읽기)아닐까. 아니면 상대방에 대한 노골적 공격성! (인터넷도 시도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감정의 노골적 표현이 시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보통사람들은 감정을 통념에 맞춰 통제한다면 시인은 그렇게하지 못하는 존재이다.) 그것은 정서의 계발이나 새로운 세계를 볼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좋으나 소그룹으로 무리져 공감(일반성의 세계)를 파괴하기도 한다. 시끄러운 인터넷은 천편일률 매스미디어와 다르다.

관심은 "인터넷/민주주의/세계의 다양성"과 "매스미디어/공감/현 사회(공동체)에 대한 보호(유지)"이다. 어떻게 균형을 맞출 수 있을까? 이런 접근이 "과연 생각처럼 단순하고 명확한 것이려나?" (분명히 말하건데 공감은 인터넷의 것이 아니다. 매스미디어에 속한다. 공통경험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 ... 이에 대해서는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이런 관심도 사실은 존재와 당위의 괴리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공장에서 행복을 찾는 것이다. 아래 글이 1998년 5월 시론이라고 썼던 것이다. 시간은 얼굴을 붉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자기가 썼던 글들을 볼 때 말이다. 그래도 마음이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다. 블로그에도 아래 이야기했던 몇편의 시들이 올라와 있다.

요즘하는 메모들은 모두 정서, 공감, 감정과 관련된 미디어이다.

개인적 감정/심상이 사회적 사실이 될 때

김광기, <뒤르케임 경구의 재해석 "사회적 사실을 사물처럼 취급하라">를 읽으면서 해놓은 메모이다. 인터넷은 개인적 감정, 심상을 사회적 사실(표상)로 만들어 내는 가장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사회적 사실이 되는가? 그 구조를 알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의 감정을 6가지로 나눴다.(맞나 다시 확인해야 한다.) 지금은 수백가지의 감정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천가지의 공감'이 가능하고, 그래서 999개의 반감이 있을 수 있다. 모든 감정들이 역 대합실처럼 웅성대니 시끄럽다. 뒤르케임의 시민종교(공통된 윤리적, 정서적 기반) 때문에 한참 괜찮은 책을 찾다가 2주전부터 읽기 시작했다. 뒤르케임이 쓴 '사회적 사실'이란 개념, 그것이 만들어지는 구조에 대한 생각이 훌륭하다. 몇년간 뭐라고 부를까 고민하던 것인데.

그렇다면 잠정적으로 나에게 미디어란 무엇일까? 공동체를 만드는 공감! TV, 신문 등의 대중매체가 근대 이후로 했던 일. 너무 많아진 사회적 사실들에 이들이 난감해 하고 있지만 ...

뒤르케임을 다시 생각한다 - 10점
한국사회이론학회 엮음/동아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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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은 1993년부터 최근까지 5년간 쓴 詩들이다. 나는 정확히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습작형태의 시들을 쓰기 시작하였다. 그것이 ‘93년 3월부터 6월 사이에 쓴 시들일 것이다. 그때의 시들은 “이론적인 성급함”과 “현실적 절망감”을 “신념”이라는 이름 아래 극복하고자 했던 때인 것 같다.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나는 전에 썼던 시들을 “감정의 군더더기”로 몰아 태워버렸었던(「문학일기 2 -대학」) 시를 졸업하자마자 허겁지겁 달려들어 정리되지 않은 감정으로 쓰기 시작했고, 그것은 그해 7월 군입대전까지 계속되었다. 그것은 아직 익지않은 주워들은 사상들의 잔해였고, 생경한 구호였다. 그때 쓴 시들을 모아 나는 『최종심급』이라는 이름으로 제본을 했고 그안에 들어있는 시들이 「서울풍경」,「무쇠똥」등이다.

  그리고 나는 93년 7월 군에 입대를 하였고 “下級武將”으로서 군대생활을 하였다. 군생활을 하면서 쓴 시들은 “현실과 의지의 괴리에, 모순에 가득찬/나에 대한 불만”이 가득찬 시들이었다. 나의 삶이 “용기없고” “현세적이고” “기회주의적”이라고 생각하면서(「“무장무장” 투명한 사회4」), 이상적 사회(“투명한 사회”)에 대한 열망과 처에 있던 환경(“나는 군인이다”) 사이의 “실존적 간극”(「혁명적」)에 대한 것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면서도 과거에 대한 반성을 시도하면서 지난 날들을 넘어서려는 노력들을 했다(「넘어서」).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해명도 없이 “흐르는 시간에 모두 변해가는 시절”(「봄맞이」)이었고, 전국적인 마녀사냥이 공공연히 자행되고(「중세의 여름-1994년 한국」) 있었다. 이때 쓴 시들을 정리한 것이 『넘어서 - 투명한 사회』이다.

  나는 군생활을 경기도 전곡의 남계리와 장탄리 부근에서 했다. 그곳은 임진강 근처로 밤이면 안개가 무척 많이 끼었다. “임진강 자락 무럭무럭/안개만 피어난 장탄리”(「더딘 봄2-장탄리에서」)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날들을 보냈다. “내 지금 바라는 세상은 어디에, 도대체/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희망의 거처」)하는 懷疑의 물결과 함께 “살 길 찾아 앞으로 달려가다가도/너라면 그 소리 듣고 꿈쩍도 안할테냐?”(「자살바위1」)는 마음이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시간이 흐르는 것이 그래서 “언젠가는 부푼 가슴도 세월이 좀” 먹는 것이(「존재2」), 무서웠다(“세상 무서운 건 시간이더라”, 「존재1」). 그래도 “몹 쓸 내 젊음 때문/봄은 희망이 없어도 지독”했고(「지독한 봄」), 그래서 “희망은 영원하고 내가 먼저 죽을”(「희망」, ‘95.7.19) 거라고 생각했다. 이 시들을 모은 것이 『더딘 봄 -장탄리 안개』이다.

  나는 언제나 시간이 흐르면 좀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항상 생각을 한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언제나 나의 시들은 여기에 기반하는 것 같다. “이상적 사회”와 “현실”간의 괴리감이 나의 시의 근본적인 힘이다. 그 괴리감의 사이에는 언제나 어쩔 줄 몰라 하며 서서 이쪽과 저쪽을 번갈아 바라보는 내가 있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나를 채찍질한다. “입에 발린 말들과 이젠 헤어”져야 하고(「불임의 세월-나의 시」), “온 힘으로 나를 힘껏 세상에 던”지고(「돌이 된다하여도 날을 수 있는」), “세상 밖으로 나가 세상 속에 있어야 한다”(「세상 속으로」, ‘96.11.29)고 말하는 것 이다. 하지만 이런 각오 속에서도 세상 속에서 “내가 먼저 흔들리며 주저하고 머뭇”대는 것이다. 그래서 나에겐 시는 언제나 “절망을 먹고 자라는 불안한 희망”(「불안한 희망-1997년 4월 30일」)이 된다. 불안해 하는 근원은 “이 절망의 벼랑에서/사랑을 저버릴까 두렵다”는 것이다. 그것은 언젠가는 변할 수밖에 없는 사람 자체-自身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시가 아닐까?  그래서 “시는 마지막 남은 투항하지 못한 존재의 찌꺼기다.”(「태생2」) 그것으로 나가는 과정이 들어있는 것이 『불안한 희망 -사람들』이다.

2011/07/28 01:19 2011/07/28 01:19
From. 지하련 2011/09/05 17:56Delete / ModifyReply
오랜만에 들렸더니, 시 이야기가 올라와있군요! 저도 얼마 전에 꽤 오랜만에, 장석남의 시집을 꺼내 뒤적거렸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시집 읽기가 곤혹스러운 일이 되었더군요. 한때 시인이 꿈이었던 이에게 시집 읽기마저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에 ... 신형철의 저 책을 사서 읽어야겠어요.
"인터넷은 개인적 감정, 심상을 사회적 사실(표상)로 만들어 내는 가장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사회적 사실이 되는가? 그 구조를 알고 싶다." 강력하게 공감을 표합니다.
오랜만에 블로그에서 긴 호흡으로 글을 읽어 기분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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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3년이 지났다. 이젠 "광주시민 학살은 북한 특수부대 소행"이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생겼다. 사실을 지키는 것 마져도 어렵다. 이런 까닭에 역사는 "기억 투쟁"이라고도 하는걸까! "사실"(공통기억)을 지키는 것은 보수, 진보를 떠나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기초이다.


write 2008.5.18 00:00 <광주항쟁 28주년을 기념하며 - 오일팔, 투명한 사회> ---------

광주항쟁
     ▲ 아 광주여 민족의 십자가여! (사진출처)

<오 일팔 - 투명한 사회>는 군대에 있을 때 쓴 시다. 김영삼 정권 때 전두환, 노태우씨에 대한 조사를 하고 5공화국에 대하여 '역사의 심판'에 맡기자며 면죄부를 주었다. 현실은 어떤가? 우린 또 뒤로 물러나고 있는가? 우리 사회는 다시 후진적이고 야만적인 사회로 되돌아간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

          오 일팔
          - 투명한 사회

그댄 죽어 갔지만 그댈 죽인 학살자는 살아 있어
오, 십팔 ! 그 원수놈은 아직 살아 있어
우리 가슴 분노에 쿵쿵 거린다 북처럼 울어댄다
그대 살은 썩어 흙이 된지도 오래지만
백골에는 아직도 대검자국이, 총탄 자국이 새겨진 채 있고
영혼은 아직도 후미진 계곡에서 아픔에 버둥거린다
꽃 같던 그대 떠난 후
우리 마음 속 깊은 상처가 남아 아물 줄 모른다
그런데 이젠 잊자고 말한다고 잊혀진다더냐?
역사에 넘기자고 말하는 자는 누구냐?
그대 죽으면서도 놓지 못해 소중히 껴안고 간 희망,
그것까지 묻어 버리란 말이냐?
희망도 없이 살란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오, 십팔 ! 우리는 더 이상 절망 속에서 살 수는 없어
오, 십팔 ! 살아 꿈틀거리는 당신들을 또 다시 생매장할 수는 없어
그대 마지막 내쉬던 거친 숨결에 의지했던 지난 시절
무등산 골짜기, 남녘 땅 바람처럼 다시 일어선다
깨진 무릎 털며 일어나 어깨에 어깨를 걸고 거리로 거리로
항쟁의 거리로, 반역의 거리로, 그 살육의 거리로 물결친다
이젠 사람이 짱돌이 되고, 구호가 되고, 깃발이 되어
하늘을 날고 땅 속을 흔들어 당신들 땅 속에서 잡초처럼 일어선다
하늘에서 태풍처럼 불어온다 되살아 난다
그댄 죽어 갔지만 그댈 죽인 학살자는 아직 살아 있어
오, 십팔 ! 원수놈은 살아있어
밤마다 꿈 속에서 두눈 부릅뜨고 노려만 보던 그대여
이젠 모든 비겁을 몰아내 용기 충만한 세상, 그때처럼 투명하다

                                                  1995. 9. 29

법정에 선 전두환, 노태우씨

사진/96년 8월 1심 선고공판에 선 5공 세력. 이들은 지금도 "기본입장은 변한 게 없다"고 말한다.

<그해 겨울>도 같은 시기에 썼다. 광주항쟁과 책임자/학살자 처벌 문제가 연일 보도 되면서 학살의 현장이었던 상무대에서 훈련받던 때가 떠올랐다.
       그해 겨울
 
눈이 오면 무등산 중턱부터 뿌옇게 되었고
개 같은 몸뚱이에서 마음도 개처럼 뛰었다
바람에 부들거리던 나무엔 눈꽃이 피고
상무대 포병학교 연병장엔 눈이 덮히고
세상은 아름답고 하얗게 녹아내렸다
시린 발 동동거리며 뛸 때면 전투화 자국 밑에선
피처럼 붉기만한 황토물이 배어나왔다
동백꽃보다 붉은 빛이 땅 속에서 배어나왔다
신음소리처럼 엷은 핏빛이 소리없이 배어나왔다
눈은 풀 먹은 치마폭처럼 사륵거리며
이마로 목으로 입술로 퍼부었다 하지만
잠시도 머물지 못하고 촉촉함으로만 남았었다
세상 온통 뒤엎고 앞이 캄캄하게 눈이 내리면
몸은 개처럼 부들거리며 연신 물기만 털었고
들끓는 마음은 개처럼 짖어댔지만
군인인 내가 광주에서 무슨 시냐며
그해 겨울 내내 피가 나도록 입술만 씹었다

                                1995. 9. 4

그 전에 학살자를 처벌하라는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 어머니>는 면죄부를 주려는 사법적 판단에 반대하는 시위현장 사진을 보면서 쓴 글이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
        - 어머니

어머니는 머리를 깍고 집을 나섰다
철부지 소녀도 아닌
얼굴에 깊게 패인 인생
오십이 넘은 어머니가 집을 나왔다

죽은 자식 흉부에 박힌 총탄보다
억장 무너져내리게 하는 깊은 슬픔, 분노를 가슴에 안고
생명이 거래되는 속된 세상, 바로 잡으려고
관광버스를 대절해 데모하러 상경을 했다
손에 아들이 들었던 총 한자루도 없이
매일 TV에 사람 쏴 죽이는 그 흔한 총 한자루도 없이
십년 넘게 삭여 온 한으로 서울에 왔다

어머니 떨리는 목소리, 미어지는 가슴
바람난 년처럼 거리를,
미친 년처럼 집회장, 아스팔트 위를 뛴다
보도블럭이 뿌옇게 흐려지는 페퍼포그 안개 사이를
위장 기만 허위의 장막을 뚫고 난다
구호소리 거친 숨소리 긴 경적소리 총소리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붉게 빛나던 핏줄기
몸서리 쳐지는 그날이 아직도 눈에 어머니 눈에 선한데
학살자가 살아 있고 수천 수만의 눈이 부릅뜨고 있는데
죄가 없다니 아니 죄가 있어도 처벌을 안한다니
어머니의 눈물, 떨리는 목소리, 울림 사이로
십년이 지나도 피 흘리는 아들 젊은 광주가 보인다

산사에 출가 해 명복을 빌어도
이 세상에선 공염불인 줄 아는 어머니
죽은 아들을 껴안고 산처럼 일어섰다
학살자 구속 학살자 처벌

장충단 공원, 안개보다도 진한 거짓말이 판치는 세상
머리 깍고 집나온 어머니
두주먹 쥐고 세상 밝게 하려고 싸우는 보살

                                 1995. 7. 28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1995년-97년 5월 5.18특별법 제정과 전-노 두 전직대통령의 구속 투쟁




 
(출처: http://www.cyberhumanrights.com/media/movement/26_2.pdf)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3 차 궐기대회 1980년 5월 25일)

먼저 이 고장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피를 흘리며 싸우다 목숨을 바친 시민, 학생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는 왜 총을 들 수밖에 없었는가? 그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너무 무자비한 만행을 더 이상 보고 있을 수만 없어서 너도나도 총을 들고 나섰던 것입니다. 본인이 알기로는 우리 학생들과 시민들은 과도정부의 중대발표와, 또 자제하고 관망하라는 말을 듣고 학생들은 17 일부터 학업에, 시민들은 상업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부당국에서는 17 일 야간에 계엄령을 확대 선포하고 일부 학생과 민주인사, 정치인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구실로 불법 연행했습니다. 이에 우리 시민 모두는 의아해 했습니다. 또한 18 일 아침에 각 학교에 공수부대를 투입하고 이에 반발하는 학생들에게 대검을 꽂고 돌격 앞으로 를 감행하였고 이에 우리 학생들은 다시 거리로 뛰쳐나와 정부당국의 불법처사를 규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 이럴 수가 있단 말입니까? 계엄당국의 18 일 오후부터 공수부대를 대량투입하여 시내 곳곳에서 학생 젊은이에게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였으니! 아! 설마! 설마! 설마했던 일들이 벌어졌으니 우리의 부모, 형제들이 무참이 대검에 찔리고 귀를 짤리고 연약한 아녀자의 젖가슴을 짤리우고 차마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무자비하고도 잔인한 만행이 저질러졌습니다. 또한 나중에 알고보니 군당국은 계획적으로 경상도 출신 제 7 공수병들로 구성하여 이들에게 지역감정을 충동질하였으며 더구나 이놈들을 3 달씩이나 굶기고 더더군다나 술과 흥분제를 복용시켰다 합니다.

시민 여러분! 너무나 경악스런 또 하나의 사실은 2 0 일 밤부터 계엄당국은 발포명령을 내려무차별 발포를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고장을 지키고자 이 자리에 모이신 민주 시민 여러분!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되겠습니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당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고장을 지키고 우리 부모 형제를 지키고자 손에 총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언론에서는 계속 불순배, 폭도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잔인무도한 만행을 일삼았던 계엄군이 폭돕니까? 이 고장을 지키겠다고 나선 우리 시민군이 폭돕니까? 아닙니다. ! 그런데도 당국에서는
계속 허위사실을 날조, 유포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은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안전을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또한 협상이 올바른 방향대로 진행되면 우리는 즉각 총을 놓겠습니다. 일부에서는 우리 시민군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시민군은 절대로 시민 여러분을 괴롭히지 않습니다.

민주시민 여러분! 우리 시민군을 절대 믿어주시고 적극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1980 . 5 . 25 시민군 일동
한국정치현실의 easton 모형적용
2011/05/19 19:36 2011/05/19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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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비밀방문자 2009/12/03 00:44Delete / ModifyReply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jjpark 2009/12/12 20:23Delete / Modify
제가 95년에 쓴 것입니다. 위에 있는 것들도 마찮가지이고 .. life & poem에 들어 있는 것 모두 해당됩니다. 만일 아닌 것이 있다면 옆에 다 써놓았을 것입니다.

Blog 출처 및 제 이름을 밝힌 후 발표하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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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과 야만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씨의 칼럼을 보았다. <문명사회는 아직 멀었다>라는 제목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애도하는 글이다. 그는 문명사회의 척도를 예절과 법도에서 찾고 문화적으로 성숙한 문명사회의 예를 노일전쟁 때의 육군대장 노기 마레스케의 일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 좀더 신중하고 지혜로워졌어야 했다고 아쉬워 한다. 그러면서 "대통령 하기 힘 들어서 그만두고 싶다" 등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될 발언의 예로 들고 있다.

지난 해부터 <문명>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문명은 강자가 만든 도덕심, 아니 형식화(의례화)된 어떤 사회적 행위의 절차인듯 하다. 이런 의례들을 익히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고 그에 걸맞는 부(문화적 자본을 포함한 부)도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것이 학연, 지연으로 묶인 엘리트집단 내에서 통용되는 '아비투스(Habitus)'일 수 있다. 이것을 습득하지 못한 노무현이란 사람이 대통령이 되자 그들은 야만인이 내뱉는 언사를 참지 못했을 법하다. (<꽃보다 남자>에서 천민과 귀족의 대조는 이런 사실을 희화화하여 보여준다.)
 
검찰 출신의 한 동기생은 연수원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판사 출신인 연수원 교수들이 수업하다가 ‘어이, 상고 출신 노무현이 대답해봐’ ‘나이 많은 노무현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런 식으로 짓궂은 질문을 많이 했다. 시보를 나가서도 ‘(상고 출신이라서)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모르냐, 너 뭘 배웠냐’ 식의 구박을 받기도 했는데, 당시 지나치게 경직된 법조계의 분위기를 못 견뎌 했고, 그래서 판사도 짧게 하고 말았다.”(한겨레신문, “이라크파병 반대 표명에 훗날 고마워해”, 2009.5.57)

한겨레의 기사에 나온 내용은 좋게 말해서 짓궂은 것이지 이야말로 하위계층 출신에 대해 '예의와 법도'를 지킬 필요를 느끼지 않는 대다수 상층부의 정신적 미성숙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예의와 법도는 자신들 사이에 지켜지는 것이지 모두에게 지켜질 이유가 없다. 이들은 문명이라는 잣대를 이용해 자신들의 가식성에 대한 반성 없이 하층부의 '비속함'을 꾸짖고 정서적으로 못견뎌하고 또 역겨워하기까지한다.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문명화과정>을 참고할 것)

예절과 법도라는 문명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진보적 지식인들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던지는 말의 생경함[footnote]노 전 대통령은 초선 의원 시절인 지난 1989년 국회 5공 청문회 마지막날 "전두환 살인마"라고 외치며 전 전 대통령을 향해 명패를 집어던지는 등의 행동의 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의와 법도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생각될 수 있을 듯 하다.
출처: 연세대 앞 굴다리에 '전두환 살인마' 등장[/footnote]에 스스로 부끄러워했거나 듣기싫어 했던 것 같다. 나 자신도 조중동, 또는 지배계급이 만든 문명의 영향을 받았든 아니면 다른 연유에서든 언제부터인가 그의 말이 '막가파'처럼 들렸다는 부인할 수 없다. (이성적으로는 좌파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조중동의 영향하에 있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이젠 이성이 아닌 정서에 대해 좀 더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진보적이라는 말이 전복적이라 말을 담보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참여정부를 욕할 때, 나는 처음부터 노무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았지만 이들에 의해 우리나라가 다시는 (파시스트적)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지 못할 정도로 '갈 때까지 갔다'(루비콘 강을 건넜다)는 점에서 그 역사성을 높이 샀다. 지금보면 과거의 상태로 되돌아 가는데 1년도 안걸리는 듯 하지만 ... 그래서 그들이 구현한 시대정신이 더 값져보인다.

이런 '막가파'식 발언이 어쩌면 대다수 국민(민중, 서민)이 말하는 방식일게다. 그는 여기서 좀 더 정제된 말을 썼지만. 말이 의식의 표현이라면, 그가 이런 말투를 바꿔 엘리트집단들(전통적 권력집단들)이 쓰는 의례적이고 정중함으로 포장된 식으로 했다면 그나마 한걸음이라도 앞으로 나갔을까? 그런 말을 쓰는 순간 그 자신도 이러 저러한 기존의 관행(습속)에 끌려들어가 똑같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노무현은 어떻게 5공화국 청문회에서 '스타'가 되었을까?[footnote][영상] 5공 청문회에서 노무현 대통령[/footnote])

기존의 정치문화(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성으로 그가 그 자리에까지 올라왔고, 그 '야생'의 시각에 대한 지지였다면 우리는 그의 '예의없음'[footnote]한편 김동길 명예교수는 지난 29일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 내외에게 사죄를 요구하며 달려든 민주당 백원우 의원도 맹비난했다. 그는 “세상에, 저런 인간도 있는가”라며 “그런 무례한 자는 마땅히 당에서, 국회에서 추방되고, 사법기관이 중형에 처해야 옳은 것 아닙니까. 나라의 꼴이 이게 뭡니까”라고 했다. 김동길씨의 이런 글은 '예의없음'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대한 전형적 예를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출처: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 언론의 편파적 태도 비난[/footnote]에 경의와 격려를 보냈어야 했다. 언제나 문명, 문화는 질서(rule)을 만들고 이것에서 벗어날 때 야만이라고 공격을 해댄다.

하지만 질서가 무너질 때도 이 야만성에 대하여 꼼짝 못할 때가 있는데 이 야만인들이 아주 우월한 폭력으로 그들의 문명을 비웃으며 장악할 때이다. 좀 비약인듯하지만 전두환이나 노태우, 박정희와 같은 압도적 폭력수단을 장악한 군사정권의 반문명적 행동(광주학살, 고문과 같은 인권침해 등)에 대해 조중동 및 지배계급이 보낸 것은 추파에 가까운 찬양이었다.

'노무현'을 보면서 어쩌면 문명이라는 저들이 쳐둔 함정에 우리 모두 빠져든 것은 아닌가? 자문한다. 이런 생각도 든다. 10년은 너무 짧다. 보수적인 엘리트집단이 만들어놓은 거미줄처럼 미세하게 사회를 감싸고 있는 습속(문명이란 이름의 야만)을 없애고 다른 '문명'을 만들기에는.

10년이면 강산은 변할 수 있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10년동안' 피트니스센터에서 몸을 만들고, 좋은 의료시설을 이용한 분들에겐 60, 70 나이가 고령도 아닌 듯하다. 적어도 한세대 이상이 지나 이들 자리가, 이들이 만들어 놓은 강고한 재생산 구조가 약해져야 '루비콘 강을 건넣다'고 평가할 수 있을 듯 하다.

이런 시간을 단숨에 넘어서려면 이 문명을 뒤흔들어 버린 무자비한 '야만성', 사람들의 몸 어느 구석엔가 흐르고 있는 분노들, 생존을 위한 욕구들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역사상 여러 문명이 있었듯이 지금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명'도 여러 개가 있을 수 있다.

김종철씨는 "전쟁이라는 절체절명의 엄혹한 상황에서, 게다가 자신의 아들들이 목숨을 잃었는데도 상대에 대한 예의를 잊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이런 정신적 기율이야말로 인간을 드높이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리고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문적 교양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라는 것을 말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가 말한 정신적 기율의 위대함을 느끼면서도 "저절로 되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친 인문적 교양과 문화적 축적의 결과"가 어떤 사회가 아닌 구체적인 개인들에게 어떻게 쌓이고 그것이 어떤 형태로 작동하고, 사회적인 효과를 만들어내는지 묻고 싶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정신적 기율을 요구한다면 결국 야만인을 몰아내고 지배계급이 만들어놓은 귀족적 정신에로의 귀의(투항?)가 아닐까?

김종철씨의 이야기를 문맥/상황 속에서 읽으면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안하고 표적수사와 확정되지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리기 등에 대한 질타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역으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문명집단(엘리트집단)이 요구하는 노무현식 막말이 예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으려 하기에 듣기 싫어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더 야비하게 행동을 한다. 야비하게 행동해서 성공하면 그것이 맞고 실용적인 것이다.

이성과 야만은 결코 대립적이지 않다. 문명과 야만도 그렇다. 우리는 문명 속에서 얼마나 많은 야만의 얼굴(핵전쟁, 아우슈비츠 ...)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많은 야만 속에서 순수한 인간의 본성을 더 잘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더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일까?

비극의 원천, 성찰적 삶의 취약성

노무현 전 대통령 비극의 원천도 여기에 있다. 그는 (상대적이긴 하지만) 기존 지배질서가 만들어놓은 틀에서 벗어난 야생성을 가진, 그래서 그 질서에 적응하기 힘든 사람이었다. 또 그의 야만성은 (모순적이지만) 감정이 아닌 윤리적, 성찰적 이성에 기반하고 있었다.

야만성/야생성에 기반을 두고 그는 기존 질서(이 나라에 깊이 깔려있는, 학연, 지연으로 연결된 엘리트주의, 권위적 지배구조)에 도전했고, 그 도전의 근거는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경험적'이고 이성적인 성찰에서 출발한 것이다.

실용적, 도구적 이성이 아닌 성찰적 이성에 기반한 삶의 취약성은 여기서 발생한다. 성찰적 이성은 우리의 이념이 진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일 것이라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유보될지라도 적어도 언젠가는 .... 따라서 진리의 담지자로서 계몽의 사명을 갖게된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 결국 세상을 바꾸자면 국민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한겨레신문, 노 전대통령 "자책골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 2009.5.28)

그런데 검찰의 최근 수사는 그 자신도 "another brick in the wall"이었음을 보여주려는, 그가 서있던 도덕적 근거가 무화되었을 때, 그 자신이 이 운동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 그의 선택이 '다른 벽돌 중 하나'가 아닌 이성적 근거를 다시 새움일 때 ... 실용적, 도구적 이성이 아닌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은 여기서 발생한다. "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일 것이고, 또 열심히 뛴다고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이라며,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이젠 제가 이 일을 책임감을 갖고 끌고 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적는다.(한겨레신문, 노 전대통령 "자책골 넣은 선수는 쉬는 것이 도리", 2009.5.28)

성찰적 이성은 어떤 과정이 잘못되었을 때 - 우리의 행동이 실패했을 때 그 목표가 진리임을 보이기 위해서는 "순교자의 지위"를 얻어야 하는 것이다. 반성의 진정성을 모두에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반성적 회고와 성찰이 없는 실용주의와 다른 점이다. 전두환, 노태우 정권(또 더 확대하여 이명박 정권)이라면 "우리의 기대가 충족되고 우리의 행동이 성공적이기 때문에 우리의 이념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1조에서 수천억원을 해먹고도 떳떳하게 살아 숨을 쉰다. 해먹었기 때문에 이것이 진리인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 반성적,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은 진리 앞에서 전두환씨처럼 '통장에 29만원 밖에 없다'고 이야기 하지 못하는, '뻔뻔하지 못함'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부끄러워함'일 것이다. 그런데 양심과 수치심이야 말로 오랜 세월 문명이 만들고자 했던 더 중요한 정신적 기율이 아니던가!  감정을 속인 예의 섞인 말도 (귀족적 삶에서 그저 몸에 배인 형식주의가 아닌) 이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자신의 알리바이를 위하여 죽음과 배를 맞대고 있는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 때문에 그 이성이 추구하는 진리는 생명력을 얻어 영원성을 획득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오래된 경구가 생각난다.

배제의 원리

요즘, '배제의 원리'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한다. 적 앞에서 왜 분열되는가? 연구대상은 91년 강경대사건 전후에 있었던 김지하씨와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외유를 다녀온 황석영씨이다. 어떤 진보적인 지식인의 행동을 평가하면서 진보주의자들이 이들을 어떻게 밀어내고, 그 밀려나간 끝에서 이들은 어떻게 변하는지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권도 이런 맥락 속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우리는 잡다한 구체(삶) 속에 박혀 있는 어쩔 수 없는 차이들에 좀 더 천착해야 하지 않을까? 그 차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어떤 추상적 이론(목표)의 힘과 필연성만을 믿을 때, 날선 칼끝에 함께 서 있던 많은 사람들이 다친다.
 
어떻게 보면 의례화된 문명이란 이런 것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사회의 지속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안전판일 수 있다. 이성화되고 야만성을 버릴수록 우리 스스로 관료화된 강철 새장(Iron Cage)에 갇혀지내야 한다. 강철 새장을 깨트리려는 사람들에게 의례화된 문명이란 없어져야 하는 그 무엇일 뿐이다.
 
막스 베버의 종교적 카리스마에 대한 분석을 보면 이런 운동 과정은 하나의 의례를 없애고 다른 의례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시지프나 오이디프스의 비극은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운명을 예시한다.

저들의 구역질 나는 삶에 욕 한마디 못하고 삶의 윤리적 우위성과 성찰적 이성의 취약성, 배제의 원리를 논하는 내 자신이 ... 애닮다!  ... 다시 시를 써야겠다.

        문학일기2
         - 대학

처음엔 어떤 진실을 간직한 소설을 쓰고 싶었다

1987년, 인천 어딘가에 있던 공사장은 아버지의 유배지였다
우리는 도망하듯 한달에 서너번 이사를 했었다
가족 모두 흩어져 어렵던 겨울 내내
눈화장이 묻어난 어머니의 눈물처럼
검게 흐르던 유등천 뚝방에 앉아 눈물을 흘리다
국문과에 원서를 썼다 그것이 타협처럼 보였었다
어머니는 時流에 따라 살아야한다고 말을 했고
철학은 때 늦은 방석 깔은 점쟁이나 때 이른 의식화된 데모꾼이었다
 
1989년, 재수를 해서 철학과에 입학을 했다
그것은 어머니의 時流에 대한 시위라고 생각했다
1990년, 쌍문동 아파트들 사이에 낀 난쟁이 옥탑방에서
감정의 군더더기로 몰아 세워 썼던 시를 모두 태웠다
鐵의 規律로 武裝한 前衛가 되고 싶었다
쌍문동과 방학동의 고층 아파트 사이 여름 내내 썩은 내 나던
개울 옆 머리 흐트러진 판자집이 승리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해 오월 처음으로 광주엘 갔었다 검게 타고 부어올라서도
눈만 살아 빛나던 이철규의 얼굴은 그때 본 그림처럼 생생하다

1991년, 강경대가 죽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죽고 관료처럼 생각했다
정권의 유감처럼 분노는 수사였고 정세판단이 중요했다
구호는 사막의 삭막하게 부는 바람처럼 들렸다  놀라 울던 가슴,
감정의 군더더기가 더욱 인간적이었고 진리처럼 보였다
분노를 가진 이성이고 싶었다 다시 억제하던 감정에 빠지고 싶었다

초라하게 주져앉았던 1991년, 방황했던 1992년이 가면서 시적 감정은
도구적 합리성을 압도하는 합리적 이성의 뿌리라고 생각했다

                                                                            1996.1.16

2009.5.28 .. 아니 그 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부터 났던 이런 저런 생각을 오늘(5.31)쓴다.

2009/05/31 14:20 2009/05/31 14:20
From. jaeuro 2010/09/17 14:35Delete / ModifyReply
정보 검색 하던중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인연은 참 오묘한 것 같군요.
아! 그 사람이네..다시 찬찬히 들여다 봅니다.

서정주의 자화상보다 더욱 강렬한 시구네요.
철학, 방송하지말고 시를 쓰셔도 될뻔 했군요.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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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life n poem, (2008/06/03 00:00)


Candle




        촛 불

태울 수는 없지 안으로
안으로만 태울 수는 없지
그래서 빛을 발하는 거다
어둠을 감싸안아 다둑거리는 거다
눈물로 밤을 지새워 낮으로
낮으로 다가서려는
몸부림의 너울거림
한줄기, 한줄기의 바람에도 참지 못해
춤으로 응대하는 너는 나의 맞수다
낮이 되면 죽고말 불꽃삶의 너는
말도 없이 은밀히 秘意를 전해
내 가슴을 태우는 거다
태워져도 재도 없이 세상, 촉촉히 적시는
뜨거운 눈물, 눈물자국을 남기는 거다
밤새 뒤척이던 몸짓을 남기고 죽고마는 거다

태울 수는 없지 안으로
안으로 태워 재가 될 수는 없지
몇 자 글이라도 남겨
싸한 냄새라도 바람에 남겨
가난한 나의 유산을 남겨
너와 같이 해야지
밤새 뒤척이던 마음의 자국을 새겨 넣어야지
아, 내 가슴 속에서도 빛이
불꽃이 난다면
세상 구석의 조그마한 자리라도
다둑거릴 수 있다면
안을 수 있다면
태워도 태워 흔적없이 사라져도 좋으리

너는 말도 없이 어둠을 다둑거리고
말도 없이 나를 일깨워 나의 상수다
너를 태워 꽃이 되어 빛나니
밤이 두렵지않다 꽃이 된다면
꽃이 되어 빛나게 핀다면
나를 태워 죽어도 좋으리

                          1996. 12. 25

<불안한 희망 - 사람들>에 실려있다. 96년 크리스마스 날에도 야근을 하던 아내를 대법원 근처 어느 카페에서 기다리며 쓴 글이다. 탁자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blog icon 고병권의 '촛불정국' 분석 - "추방된 자들의 귀환"
2008/06/03 00:00 2008/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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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 아파트 앞에 핀 백목련 (2008.4.5)

<나무에 핀 연꽃>
을 쓰면서 이전에 목련에 대하여 썼던 글들을 모았다. 봄이 되고 하얀 꽃이 피면 갖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더딘 봄 1
      - 장탄리에서

겨울은 벌써 가고
   성큼   성큼   오는 봄,
남녘 땅엔 푸른 잎새 사이로
동백꽃 붉게 피었다 지고
바람 속 살랑이던 유채꽃 따라
지리산 산자락엔 진달래 붉고
미아리 고갯길 벽돌담 너머엔
밤새 향이 짙은 백목련이 피어도
마음만은 뒤쳐져 아직 긴 겨울 밤
세월이 흘러도 흘러서 가도
가슴 속엔 휭하니 찬바람 가득
더딘 봄 더듬 더듬 오는 봄

                 1995. 4. 13


      백목련
       - 원철, 형주에게

보고 싶다
백목련
눈부시게 숨막히는 향기

보고 싶다
검게 주름진 꽃잎
바람에 떠도는 익숙한 목소리

향기 섞인 얼굴들
보고 싶다

여기,
예전 그 자리에서

            1996. 4. 11


      산목련

고향집 앞뜰
꽃보다 더 꽃다운
푸른 잎이 꽃보다 더 아름답던 산목련,
푸르게 빛나던 잎들의 찰랑거림도
유월의 햇살에 넘쳐 흐르던 광기(光氣;狂氣)도
모두 지고 가시처럼 앙상한 가지만 남아
바람이 스쳐지날 때마다 옷자락 찢기는 소리가난다
겨울 바람에 그 거칠기만 했던 헐벗은 나목의 휘어짐

꽃보다 향기가 더 좋던,
은밀한 내면의 속삭임으로
지나는 바람이란 바람은 모두 꼬드겨
푸른 치마자락 같던 잎 아래로 불러들여
깊은 입맞춤에 출렁거리며 푸르르 떨며
비 온 뒤 상큼한 육향으로 다가서던, 하지만
쉽게도 상처를 입던 하얀 꽃잎의 산목련
깊숙히 잎들 사이 숨어 지내던 나날의 세월이 그립다고
산처럼 목을 빼고 둘러보면
휘 지나는 바람에 옷자락 날리는 소리만 들려
그 거친 한숨 섞인 그리움, 박힌 숨소리

고향 떠나던 여름날 밑둥지까지 자르지 못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자르지 못해, 죽이질 못해
그리움에 내내 떨리는 가슴은 안타깝기만 하고
다시 보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도
기약한 것은 산목련,
유월의 뜨거운 햇살이 반사되며 만들던
푸르게 빛나던 잎들의 광기(光氣;狂氣), 사이로 흐르던 육향
살 비벼대며 살던
고향집 빈터를 지키며 그림자만 길게 늘어졌을 산목련
헐벗은 가지에도 달빛이 걸렸을까?
출렁거리는 달빛에 말은 못해도
느끼는 깊은 것은 그리움

                     1996. 11. 29 ~ 1997. 7. 26


      우울한 하루

텅빈 검은 하늘을
새는 난다.
여기- 저기-
기웃대보기도 하지만
내려앉을 곳은 하나도 없다.
아는 것은
갑작스레 바람에 밀려
빛 한 점 없는 세상을
날고 있다는 것.
어둠은
여기에 몸을 던져라!
안락과 나태
하품과 낮잠이 즐비하게 널려있는 곳.
유혹한다.

진달래는
잎도 없이 앙상한 가지 위에
붉은 꽃만 피우고
바람 속에 흔들린다.
그 바로 앞
하얀 목련은
움직이지도 않고 가만히 서 있다.

오늘은 4월 3일!
나보다도 더 오래된
먼 과거 어느날 일들은
머리 위를, 귓가를 맴돌며
나를 괴롭힌다.
"흔들리지말고 나가라!
여기는 여전히 그들의 소굴(巢窟)
붉게 물 든 옷자락을 깃대에 꽂고."

                        1993.4.3


      봄

봄이 왔다는 거다.
남녘 바닷가엔 어느 새
나와는 상관없는 꽃들이 피고
새들이 노래를 한다는 거다.

또 다시 4월의 바람이 불어 먼지가 날리고
노란 개나리가 피고
추운 겨울을 보낸 진달래들이
산허리를 잡고 피를 토할 것이다.
그러다 지치면 또 검붉은 땅 위에
시들어가는 처녀 같은 몸을 던질 것이다.
다시 꽃잎들은 짓이겨 질 것이다.

나와는 상관없는 꽃들이 몇 년째
지루하게 피었다 진 것처럼
세월이 가고 나이를 먹고
꽃 같던 가슴엔 콘크리트가 깔리고
철판이 깔려 이젠 새 한 마리 날아와
놀 수 없는 거다.
또 골목길 담장 안엔 백목련 봉오리가 맺히고.
가슴엔 회한이 맺히는 봄이 왔다는 거다.

                        1998. 3. 2


      백목련
      - 출근길

나무에서
하얀 새들이
돋아난다.
나뭇가지 끝에서
하얀 날개들이
피어난다.
겨우내 앙상했던
검은 가지 끝에
물이 돌고
생명들이 저절로
살아난다
난다.
난다.
새들이
아침 햇살 속으로
바람을 타고
푸릇한 향기로
날아간다.

         1998. 3. 26
 

      봄

아내는 봄과 함께 임신을 하고
이젠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보낸 서른 한해
이제야 한 우주를 끌어안고 뒹굴어본다.
초음파검사를 하며 기차소리보다
더 큰 아이의 심장 고동소리에
아내와 나는 놀라고 신기해하고
생명을 품에 안은 아내가 갑자기 빛나 보인다.
내 평생이 가도 그만큼 빛나보질 못할 것 같아
우울한 서른 한해 째
아무런 꽃도 피우지 못할 봄
나도 아내의 입덧을 따라 해본다.
창가 앞뜰에 또 백목련 꽃망울이 맺혀
뽀얀 솜털가지 끝이 불러오고
아내는 봄과 함께 긴 낮잠을 즐기고 있다.

                          1999. 3. 14.


      백목련
      - 퇴근하는 아내를 마중하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골목길을 지나
큰 찻길을 건너
열시가 넘어
퇴근하는
아내의 지친 몸을
마중 나가는 길
담장 넘어
앙상한 가지에
하얀 새들이
모여 앉아
비에 젖은 몸을 떨며
고개를 빼고 내려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아침 출근길
나무에 돋아난
하얀 새 아니냐!
눈짓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
멀리 아내의 지친 모습이 보이고
이슬비에 젖은 그녀도
어느새 담장 넘어
검은 가지 위에 올라앉아
하얀 새가 되어
봄비 같은 눈빛으로
안부를 묻고
향기가 가신 젖은 깃으로
힘겨운 날갯짓을 하며
날아온다.
여린 생명들에겐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힘든 것이다.

                   1998. 3. 26
 

     나의 사월 2

하얀 목련
골목 빼곡히 들어찬 사월
유산한 임부의 공허한 눈빛은
어딜 바라보고 있을까?
비 그친 대기엔
숨 막히는 송장 썩은 내
훌쩍대다 구역질을 한다

            1999. 4. 11.


      오월의 노래

계절이 바뀐 줄을 기차가 서울을 떠나
한참 내려온 뒤에 물댄 논을 보며 알았다
목련,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지고
벚꽃에 철쭉이 피고 지고
회사 앞 정원 구석에서 보라색 제비꽃도 보았지만
또 집 앞 라일락이 피고 졌지만
 

      오늘

오늘, 식민지 모국으로
유학간 선배를 잠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길 하고
나의  길들여진 영혼
또 다시 요동을 친다

그날은 구십삼년 사월 삼일
하얀 목련꽃이 피어
눈부시던 봄날이었다
졸업 하고 군입대를 두어달 앞두고
그와 만났던 그날을 기억한다

입대전 몇달 동안
대전 서울을 오가며 영어학원엘 다니고
종로에선 시위가 있었고
나는 탑골공원 앞
쇼윈도우 안에서 햄버걸 먹고 있었다

오늘이 그날 같다
왠지 벌써 몇 년이 지난
오늘이 그날 같다
또 요동치는 가슴
선택을 강요하는 날
용기 없는 날 비웃는 소리
울려오고
인생의 십자로에 서서
그때처럼 시를 쓰고

오늘
과거를 마주하고
미래를 생각할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내 영혼의 울음소리

1999. 6. 27


      백목련이 피다

그대 담벼락을 넘어
새처럼 하얗게 봉오리 진
목련을 보셨나요
남들 모두 파랗게 몸단장할 때
하얀 소복 옷 입고 떼로 모여 앉아
소리 없이 흐느끼는 정적의 봄날
가슴 속 솜털 같던 희망은 퍼득대고
뼈만 앙상한 가지에 하얗게 피어나는
꽃송이들을 그대는 보셨나요
바람에 깃털 날리는 학처럼 가볍게 걸터앉은
오후의 눈부신 하얀 햇살을 보셨나요
그대 담벼락을 넘어 오는
벼락같은 향기를 맡아나 보셨나요
가는 겨울의 영전 앞에 피어진
숨통이 막히는 그 향기를 맡아나 보셨나요

2000. 4. 19 ~ 2000. 5. 11
 

      백목련이 날다

봄날 바람이 불고
꽃이 피고
하얀 날개 활짝 펴고
너울대는 꽃잎 사이로
두근대는 내 심장소리
하얀 꽃잎 하나 둘
누런 하늘로 날아오르다
빙글 빙글 돌며
땅바닥에 떨어져버리고
하루도 안돼 검게
시든 꽃잎을 보며
이젠 바람이 분다고
날개 퍼덕이며
쉽게 날아오르지 않으리
시들어 가는 내 삼류 좌파 희망이여
하지만 백목련
꽃만 매달려 앙상했던 가지엔
파릇한 잎이 순식간에 돋고
함성도 없는 정적의 봄날에
꾸역꾸역 생겨나는 삶의 욕망

2000. 4. 19 ~ 2000. 5. 11


      사월이 가고

사월이 가고
또 오월이 가고
올해도 담벼락에
하얀 목련꽃들이 피었다가
말도 없이 뚝 뚝 떨어져버리고
새파란 잎들을 힘겹게 밀어내어
아기 손바닥만하게 피면서
사오월이 가고
난 글을 쓰고 싶어
입술이 부르텄다

2001. 6. 20


      내 마음의 풍경

비가 오는데 길을 걷다
봄비가 오는데 길을 걷다
검은 공장들 사이를 지나
담벼락 넘어 목련은 검게 지고
떨어지고
바닥에 꽃잎들이 하얗게 달라붙어
바닥에 벚꽃 잎들이 하얗게 달라붙어
바람이 불고 옷자락이 날리다

지난 겨울 아무도 찾지 않은
공장 담벼락 넘어 사과나무엔
철 지난 메마른 열매와 함께
다시 꽃이 피고 잎이 돋고
분홍색 꽃이 피고 파란 잎이 돋고
검은 열매가 아직도 매달려
꽃보다 많은 열매가 아직도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2003. 4. 11

2008/05/17 22:55 2008/05/1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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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캠핑 - 함허동천, 동막해수욕장, 분오리돈대

5월11일, 12일 강화도에 놀러갔다. 캠핑을 했는데 얘는 '1박2일'이라고 좋아 한다. 그런데 정말 '1박2일'로 보냈다. 함허동천 캠핑장에서 텐트를 쳤는데 보통 차를 타고 갈 수 있는데 이곳은 차는 아래 세워놓고 리어커에 짐을 실고 가야했다.

그런데 차에 실을 때 좀 많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리어커에 실어보니 한 리어커가 넘어 '정말 많구나!'하고 실감이 났다. 하루 저녁 자고 간단하게 먹기 위해 이렇게 많은 짐이 필요하다.

리어커에 가득 찬 캠핑용 짐
텐트 치기
세시 조금 지나 집에서 출발했는데 다섯시가 넘어 캠핑장에 도착했다. 여섯시가 넘어 텐트를 치기 시작했다. 텐트를 치고, 저녁을 짓고, 모아 둔 솔방울로 삼겹살을 굽고 하니 여덟시가 넘어 섰다.

가스등 달기
모닥불 피기
몇년 전 제일 처음 캠핑을 시작했을 때보다는 준수하다. 그때 산음자연휴양림인가에 갔는데 밤 아홉시에 도착해 어둠 속에서 텐트를 치고 고기가 익었는지 안익었는지도 모르고 밥을 먹었다. 또 비도 오고 ...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함허동천에서 우연히 찍힌 모기
노하우가 붙는다.

주변에 마른 나무가지를 모아 모닥불을 피고 감자와 고구마도 구웠다. 집에서 가져 온 술도 포도주도 한잔하고, 마지막으로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너무 좋다. 이번 캠핑엔 다른 가족도 함께 갔는데 그쪽은 열시가 좀 넘어 민박집으로 가고 우리 가족만 남아 텐트에서 잤다. 그런데 옆쪽에 텐트를 친 친구들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또 5월 산 속은 아직 추웠다.

몇번 캠핑을 갔다온 아내가 몸이 배긴다고 해서 바람을 넘어 푹신하게 만드는 깔개도 텐트에서는 처음 사용했는데 쓸만하다. 아이는 침낭에 들어가 자겠다고 깔개 아래로 나려갔다. 그러면서 애벌레에서 번데기가 되었다고 좋아한다. 아침이면 사람으로 변신한단다.

강화도 정수사 꽃살무늬
텐트를 칠 때 모기가  옆으로 날아다녀 아래 매점까지 내려가 모기향을 사왔는데 모닥불을 피고 연기가 나서인지 주변에 모기는 없었다. 그리고 조심해도 가족들 중 한사람은 물리는데 아무도 물리지 않았다. 아직도 날씨가 찬가보다.

5월 12일에는 정수사에 가려고 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부처님 오신 날이라 사람과 차가 너무 많았다. 정수사에 가보려고 한 것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살을 직접 보고 싶어서이다. 다음에 보기로 하고 동막해수욕장에서 놀았다.

동막해수욕장 바로 옆에 분오리돈대가 있다. 돈대는 "경사면을 절토(切土)하거나 성토(盛土)하여 얻어진 계단 모양의 평탄지를 옹벽(擁壁)으로 받친 부분"이다. 분오리돈대에는 대포4문에 설치되어있었다고 한다.

네잎 클로버
순호는 분오리돈대에서 네잎 클로버를 발견했다. 가져간 책에 꽂아놨다. 동막해수욕장은 썰물이 되면 갯벌로 변한다. 갯벌체험을 한다고 호미에 쇠스랑, 괭이를 들고 나섰는데 아무 것도 잡지 못했다. 낚시도 했는데 조그마한 새끼 망둥어 한마리를 잡았다. 지난 서울 SOS 어린이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바자회에서 산 접이식 자전거도 차에 실고 갔는데 꺼내어 바다가에서 탔다.

강화도는 이전에 세차례인가 왔었다. 한번은 석모도를 가기 위해, 또 두번인가는 주말에 차를 타고 왔었던 것 같다. 아내와 처음 강화도에 왔을 때 쓴 시다. <불안한 희망>에 묶여 있다.

    강화도
    - 바다에 대하여 18

悲鳴의 강화도
출렁이는 海風은 어이할까나
임진강 썩은 물줄기에
실려 간 감정의 파편이 쌓여
삶을 깊숙히 빨아들이는 갯벌,
슬픈 역사 속으로
前後를 잊고(아! 戰後를 잊고)
左右로만 오고 가는
눌란 게들의 숲으로

碑銘의 초지진
낡은 대포는 어이할까나
눈물처럼 흘러
바닷물이 빠지고
바위에 붙어 있던 굴은
거친 등을 햇볕에 내놓고
살진 감정과 열정이 쌓여
빛을 내는 貝塚 속으로
놀란 게들의 캄캄한 굴 속으로

悲鳴의 가슴 속
싹트는 사랑은 어이할까나
노을에 파도처럼 밀려
바닷물이 들어오고
새처럼 고깃배들 집으로 돌아오는데
만선의 기적 소리로
산 위에 걸친 붉은 구름 속으로
가슴은 모터처럼 시끄럽구나

비명의 강화도
출렁이는 海風은 어이할까나
비명의 초지진
낡은 대포는 어이할까나
비명의 가슴 속
싹트는 사랑은 어이할까나
강화도, 초지진, 가슴 속

언제 다시 가볼까나
진흙더미 비릿한 내음 속
싸이고 싸이는 그리운 흙더미

               1996. 9. 22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캠핑하기 좋은 곳
2008/05/17 19:11 2008/05/1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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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년만에 홍대 앞에 갔다. 결혼하고 홍대 앞에서 살기 시작했는데 'IMF 사태'가 나고 전세를 살던 집이 거래금지 가처분 신청이 들어가면서 꼼짝없이 계속 살아야 했다. 그리고 애가 태어난 곳이 여기이다. 그래서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이 함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 것도 없이 결혼하면서 진 높은 이자의 빚을 짊어지고 둘 다 늦게까지 야근을 하면서 보낸 나날들이었다. 나는 회사에 입사하여 바로 현재 OK 캐쉬백카드의 기본 시스템이 된 이지플러스카드를 제안하고 서비스와 시스템을 만들면서 늦게까지 일을 했다. 아내는 여행사에서 남미와 유럽을 담당하고 있어 시차 때문에 자연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아내가 애를 가졌을 때 인터넷 사업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한참 인터넷 열풍이 불고 있을 때이다. 그리고 아내가 아이를 나을 때 나는 인터넷 사업을 위한 '신사유람단'의 일원이 되어 미국에 가 있었다.

   백목련
   - 퇴근하는 아내를 마중하며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골목길을 지나
큰 찻길을 건너
열시가 넘어 퇴근하는
아내의 지친 몸을
마중 나가는 길
담장 넘어 앙상한 가지에
하얀 새들이 모여 앉아
비에 젖은 몸을 떨며
고개를 빼고 내려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
아침 출근길 나무에 돋아난
하얀 새 아니냐!
눈짓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 사이
멀리 아내의 지친 모습이 보이고
이슬비에 젖은 그녀도
어느새 담장 넘어
검은 가지 위에 올라앉아
하얀 새가 되어
봄비 같은 눈빛으로
안부를 묻고
향기가 가신 젖은 깃으로
힘겨운 날개짓을 하며
날아온다.
여린 생명들에겐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가 힘 들다.

1998. 3. 26

   봄

아내는 봄과 함께 임신을 하고
이젠 한 생명을 책임져야 한다.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보낸 서른 한해
이제야 한 우주를 끌어안고 뒹굴어본다.

초음파검사를 하며 기차소리보다
더 큰 아이의 심장 고동소리에
아내와 나는 놀라 신기해하고
생명을 품에 안은 아내가 갑자기 빛나 보인다.

내 평생이 가도 그만큼 빛나보질 못할 것 같아
우울한 서른 한해 째
아무런 꽃도 피우지 못할 봄
나도 아내를 따라 입덧을 해본다.

창가 앞뜰에 또 백목련 꽃망울이 맺혀
뽀얀 솜털가지 끝이 불러오고
아내는 봄과 함께 긴 낮잠을 즐기고 있다.

1999. 3. 14.

한시간 정도 아내 옷들을 구경하러 다녔다. 너무 이른지 옷가게들 대부분이 아직 문도 열지않았다. 점심은 아지오(AGIO)에서 먹었다. 아내가 임신했을 때도 이곳에 왔었으니 적어도 이곳을 안지 십년은 넘었다. AGIO는 예전의 건물 바로 옆으로 옮겼다.

1992년부터 있었던 AGIO - 아내의 말로는 처음에는 극동방송국쪽에 있어다고 한다

피자와 그릴에 구운 닭과 샐러드를 시켰다. 여전히 담백한 피자 맛이 좋다. 미국식 프랜차이즈 피자들의 정형화된 맛- 달고, 기름지고, 약간 짠- 대신 구운 밀가루의 구수한 맛이다. '그릴 닭'도 향도 좋고 너무 퍽퍽하지도 않다.
 
7~8년전 친구들이 우리집에 자주 놀러왔다. 며칠간 사람이 바뀌면서 계속되기도 했다. 그때 친구들과 새벽까지 술을 마시다 날이 훤해질 때 함께 집으로 간적이 있는데, 술집 앞에 커다란 나무가 있었다. 날이 막 밝아오는 홍대 근처 술집에서 커다란 나무를 보았을 때 들어던 그 생경함, 이상한 느낌! 아마도 놀라움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게다.

옮겨온 AGIO의 마당에 커다란 나무가 있다. 그때 그 나무인 것 같다.(그때는 민가여서 이렇게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이웃집 토토로'에 나오는 거대한 나무처럼 느꼈던 나무, 둥근 모양의 나무가 지금은 외소해져 있었다. 몇개의 굵은 가지가 죽어 있고 가운데 부분만 푸릇한 잎들로 덮여있다. 안본 것만 못하다.

지난 몇년 세월에 풍성했던 가지들, 푸르른 잎들은 어디로 갔을까? 밤새 술을 먹으며 소리 높여 노래하고 철학에 운동을 이야기하던 친구들은 어디로 갔을까? 또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을까? 세월에 쓸려 듬성 듬성 머리 빠진 노인처럼 변해버린 나무같이 꿈을 잊은 것은 아닌지!

   백목련
   - 원철, 형주에게

보고 싶다
백목련
눈부시게 숨막히는 향기

보고 싶다
검게 주름진 꽃잎
바람에 떠도는 익숙한 목소리

향기 섞인 얼굴들
보고 싶다

여기,
예전 그 자리에서

1996. 4. 11

위에 있는 세편의 시를 보면 모두 백목련에 대한 것이다. 나에게 봄은 항상 백목련, 동백꽃과 함께 왔다. 하지만 추상적(가보지 못했기에)인 동백보다 백목련은 훨씬 구체적이다.

새벽 신비롭게 빛나던 목백합 - 세월에 이젠 듬성 듬성 머리 빠진 노인처럼 변했다.

예전에는 무슨 나무인지 몰랐었는데 지금 보니 이 나무는 목백합이다. 어릴 때 집에서 판매용으로 목백합 묘목을 재배했다. 그래서 고향집 뒤뜰에 몇 그루가 남아자라고 있는데. 그 하얗던 꽃들!

사람은 기억 속에서 사는 것일까? 기억이 어떤 사람을 만들고, 유지해주는 것일까? 지식, 어떤 이해, 우리의 마음은 얽히고 섥힌 기억일테니 말이다. '복제인간'을 소재로 하는 영화들(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러너, 아일랜드 등)이 던지는 메시지를 보면 기억이 어떤 주체(개별적 인간)를 규정한다. 이런 기억이 없다면 우린 어떤 인간적 관계를 상상하기 어렵다.

AGIO - 담쟁이 덩굴

오늘은 노동절(메이데이)이다. 이렇게 하루 노는 것도 사실은 많은 노동자들의 희생 덕분이다. 아래 글은 1993년 5월 어느 날(아마도 노동절일 것이다) 쓴 것으로 『최종심급』에 실려있다. 노동자도 아니었던 시절 더 노동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노동자인 지금은? 역설이다!

  노동절을 노래함

                  1.
보라!
노동에 찢겨진 사람들이 손을 놓고
깃대처럼 일어났다
가슴은 기관차같이 힘찬 소리를 낸다.

                  2.
손과 손을 마주잡고
가자!
모든 것이 멈춰섰다
세상은 우리의 힘에 돌려지는 기계와 같다.

                  3.
오늘 노동절 집회는
그 누구의 도움도 아닌 우리 투쟁의 결과라는 것을
잊지말자!
노동자의 해방은 노동자의 투쟁에 달렸다.

                   4.
어깨와 어깨를 걸고
구호 소리 높이며
호시탐탐 노리는 적들을 뒤로하고 전진하면서도
생각하자!
오늘은 노동절
전세계의 노동자가 함께 해방을 향해 달려나가는 날
전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나무에 핀 연꽃
나무에 핀 연꽃 진흙탕 흙바람 도시에 어디 맘 편히 몸 둘 곳 있으랴 모퉁이 모퉁이 돌아설 때마다 황사를 맞고 선 너를 본다 진흙 속 연꽃보다 더 찬란한들 눈길 주는 사람은 얼마나 되랴 연두빛 새순 없이 꽃부터 피고 씨부터 배..

봄이 되면 언제나 - 윤이상, 동백꽃에 대한 기억
봄이 되면 언제나 깊이 잠겨있던 생각들이 떠올라 몸살을 앓게 한다. 아니 차면서도 따스한 기운을 품은 공기가 얼굴을 스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파릇한 물이 오르면서 어떤 분위기에 젖어든다. 봄몸살은 생각보다 먼저 몸이 앓기 시..
2008/05/01 21:35 2008/05/0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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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 핀 연꽃
life n poem, (2008/04/16 08:16)
백목련과 자목련 - 목동1단지


나무에 핀 연꽃


진흙탕 흙바람 도시에
어디 맘 편히 몸 둘 곳 있으랴
모퉁이 모퉁이 돌아설 때마다
황사를 맞고 선 너를 본다

진흙 속 연꽃보다 더 찬란한들
눈길 주는 사람은 얼마나 되랴
연두빛 새순 없이 꽃부터 피고
씨부터 배고보는 네 삶의 절박함에
가슴이 아프다

그래, 넌 절망처럼 우뚝 선 마른 나무에
우르르 목을 걸고 며칠이고
바람에 맞서 머릴 풀고 서있다
몸을 던져, 겨울이 가고 봄이 온들
나무 아래 검게 쌓인 주검들이 무섭다

핑계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내게도
급하게 정표를 남기고 간
네가 서있던 마른 가지에, 아침해에
움뚝 움뚝 파란잎이 돛았다

나무에 핀 연꽃 지고 봄날이 가도
먼 훗날 진흙탕 도시, 어느 골목에서
다시 네 모습을 본들 기억하지 못하랴
가슴 속 움틀대며 씨가 자란다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백목련 - 사월에서 오월로
기억들의 잔치 - 5월 1일 홍대 앞에서
2008/04/16 08:16 2008/04/16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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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크 밸리 - 강원도 원주시
오늘 휴가를 내고 가족들과 오크밸리에 놀러갔다. 이년전 워크샵 때문에 이곳에 왔었다. 2006년 5월 이곳에서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전략에 대해서 처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밤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새벽녘에 혼자 일어나서 서쪽 능선을 타고 한바퀴 돌았었다. 좁은 오솔길 위 낙엽을 밟으며 혼자 걷던 이른 아침 산의 쾌적함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슬에 젖은 납엽들이 숨죽여 사각거렸다. 그때 책을 한권 가지고 있었는데 <차이와 반복>이었나?

    ▲ 오크 밸리 전경 (골프콘도 A동 307 베란다)

어제(일요일) 오후에 두시 반에 출발하여 네시 반에 도착했다. 말끔하게 정리된 골프장을 끼고 서있는 콘도가 좋아보였다. 방에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가 나와 순호는 수영을 하고, 아내는 처남과 자전거를 탔다. 아내는 수영장에 아무도 없이 썰렁하여 싫단다. 오랜만에 아이랑 둘이 수영을 하였다. 지난 여름 몇번 수영장엘 간 후 처음이다.

오크밸리 수영장
    ▲ 오크밸리 수영장 (실내수영장과 야외수영장이 연결되어 있다.)

아내는 자전거를 차고 콘도 언덕을 따라 콘도 아래까지 내려갔다 머리에 바람이 들어 아프다고 한다. 그리고 내려갈 때는 좋았는데 자전거를 끌고 다시 위로 올라오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수영을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 고기를 구워 저녁을 먹은 다음 드라마를 봤다. TV를 잘 안보지만 요즘 주말에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엄마가 뿔 났다, 행복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로맨스까지를 보는데 이날은 볼링장 문 닫는 시간 때문에 앞 두개로 만족했다. 처남이 "옛날에는 이런데 오면 할 일이 없었는데"하면서 TV가 잘나오는 것에 새삼 감탄을 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보니 콘도는 안방 앞에 산을 갖다놓은 꼴이다. 열시정도에 나가 한시간 동안 볼링을 쳤다. 순호가 처음에 한번 맞추고 그 다음부터는 왼쪽, 오른쪽으로 계속 빠지면서 어꺠를 축 늘어뜨리고 있다가 언제 그랬냐는듯이 자기편이 잘 칠양이면 소리지르며 야단이다.

볼링장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순호와 처남은 방으로 가고 아내와 함께 우산을 들고 주변을 산책했다.  땅 속으로 스며드는 가는 봄비처럼 시원한 공기가 가슴 깊이 스며든다. 비는 내리지만 바람이 없어 낮보다도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어둠을 조금씩 밀쳐내는 오렌지색 수은등 사이로 유성처럼 비방울이 스쳐지나갔다. 불빛을 따라 가다보니 조각공원이 나타났다. 이삽십 여점의 조각들이 불빛을 받으며 서 있었다.

    ▲ 두 벤치위의 연인(Couple on Two Benches, George Segal, 127X155X155, 브론즈, 1985)

George Segal의 <두 벤치 위의 연인>
늦은 밤 산 속 콘도에서 빛과 어둠, 길게 늘어선 그림자와 가는 빗줄기를 따라 촉촉하면서 맑고 시원한 대기 속을 이리 저리 거닐다가 George Segal의 작품을 다시 만났다. 정말 뜻 밖의 만남이었다.

1993년 호암갤러리의 <포스트 모더니즘전>에서 아마 처음 보았던 것 같다. 그때는 함께 전시되었던 로버트 롱고의 작품이 더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때 보았던 롱고의 작품보다 시걸의 작품에 마음이 갔다.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1993년 전시회에는 조지 시걸이 없었다. 1995년에 호암갤러리에 <조지 시걸展>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에서 처음 보았을 것이다. 전곡에 있다 금곡으로 부대를 바꾼 후 주말에 나와서 보았을 텐데, 그러면 그때도 아내도 함께 가지 않았을까?)

George Segal - Walk, Don't Walk (1976)George Segal -  Woman Sitting on Bed (1996)
   ▲ 조지 시걸- Walk, Don't Walk (1976) | Woman Sitting on Bed (1996)

조지 시걸(George Segal  1924~2000)은 뉴욕 출신의 미국의 조각가이다. 1950년대까지 회화에 전념하다가 카프로(Allan Kaprow)를 만나 해프닝(happening; 비연극적, 탈영역적 연극형식)의 공간적 공연을 하면서 석고에 의한 인체상을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의료용 석고 붕대를 이용해 인체에서 직접 본떠 주형으로 실물과 꼭 닮은 모조품을 만들어 일상생활 속에 있는 환경적 오브제와 함께 전시했다. (의료용 석고 붕대! 미적 체험을 통해 우리가 지닌 병을 치료하려 했을까?)

그는 로이 리히텐스타인이나 앤디 워홀 등과 함께 팝아트의 중심인물로 1960년대 미국 대중미술 발전에 중요한 역할했다. 하지만 리히텐스타인이나 워홀이 광고, 잡지, 만화 등을 소재로 삼아 영감을 얻은 것과는 달르게 시걸은 일상(하찮은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작업을 했다. 이런 작업을 통해 그는 20세기 최고의 조형조소가가 되었다.

시걸은 실물크기의 석고조소 제작으로 유명하다. 초기의 순백한 석고상과 환경적 장치는 차츰 그 규모가 커져 1970년대 이후에는 색채를 가한 인체상까지 제작했다. 그의 환경조각은 대도시 대중의 군상을 표현했고 이런 작품을 통해 그는 현대사회에서 대중들이 겪고 있는 심리적 고독과 소외를 표현하려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시걸의 작품 소재는 산업사회의 발전이 만들어낸  도시의 풍경들이다. 산업사회의 상징인 규격화된 주유소, 대형 상업광고판, 레스토랑, 모텔, 지하철, 극장, 세탁소, 간이식당, 거리 등 평범한 도시의 시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하지만 이런 낯익은 일상 속에 서있는(내던져진) 인간들은 호퍼의 그림처럼 소외되고 고독하며 '현대적 쓸쓸함'이 짙게 묻어난다.

그는 소비 자본주의 사회의 이름 없는 존재들인 시민들의 일상, 그 속에 배인 존재의 무기력, 권태를 표현했고, 그 중에서도 군중 속의 고독을 포착했다. 표정 없이 서 있는 사람들,  사람들 속에서 다른 곳을 응시하는 시선들은 실제 인체를 떠내어 살아있는 듯한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유령처럼 붕 떠 있고 비개성적인 모습인 도시민의 소외된 모습을 더욱 심화시킨다.

1993년 호암갤러리, <포스트 모더니즘전>
(잘못된 기억이지만) 조지 시걸을 처음 보았던 곳으로 생각했던 <포스트 모더니즘전>이 있었던 해에 군에 입대했다. 군에 입대하기 전 봄에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 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 에릭 피슬(Eric Fischl) , 그리고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네 사람의 작품을 보았다. 아래 포스터를 하나 사서 액자로 만들어 내 방에 걸어놓은 후 군에 입대했다. 왜 평소 안하던 그런 짓을 했을까? 지금도 미스터리다.

1993년 미국 포스트모더니즘전 - 줄리앙 슈나벨(Julian Schnabel), 데이비드 살르(David Salle), 에릭 피슬(Eric Fischl) , 그리고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 AMERICAN POSTMODERN ART 포스터 (위 시계방향 슈나벨, 살르, 피슬, 롱고의 작품)

조각공원에서 1993년 <포스트모더니즘전>을 기억한 것은 조지 시걸의 작품과는 표현 방법은 다르지만 익명적 도시인들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로버트 롱고(Robert Longo, 1953~)와 두 사람이 자주 비교되기 때문이었을까? 롱고도 일관되게 탐구한 것이 시걸과 같이 도시의 삶과 문화였다. 이를 통해 현대인 일상적 부담, 고통, 그리고 자본주의적 사회제도와 장치가 지닌 억압적 성격을 폭로하려 한다.

그가 표현한 춤추는 듯, 쓰러질 듯한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 누구일 수도 있다. 역동적인 포즈와 함께 가려진 얼굴, 즐겨 사용하는 흰색은 익명적 공간을 만들어낸다. 또 구체적인 형상을 제시하지만 절제된 이미지(표현양식)은 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사실, 당시 제일 재미있게 보았던 작품은 '미국 부르조아계급의 문화적 타락'으로 읽혔던 에릭 피슬의 작품이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민감했던(!) 시기였던 만큼 롱고의 <이 얼간이들아! 신 앞의 진리>에서 우둑허니 한동안 서 있었다. 두 작품이 버무려져 1993년 봄 <서울풍경2 - 호암갤러리>를 썼다. 입대 기념으로 묶은 『최종심급』에 들어있다.

시의 첫부분은 로버트 롱고의 작품(포스터에서 좌측 하단)에 대한 이야기고 중간부분인 '여자들은 접시를 내동댕이 치고, 중산층은 일상을 따분하게 생각하고 자위에 몰입하고 있다. 그들은 환상 속에서 색정에 들떠 흥분한다.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에 가려하지 않는다'는 에릭 피슬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은 80년을 넘어 90년대가 맞닥뜨린 이념적 상황에 대한 원론 수준의 생경한 외침이다.

 서울풍경2-호암갤러리
  이 얼간이 들아! 신 앞의 진리

무대엔 싸우는 사람들로 하나 가득했다
싸우면서 그들은 거대한 괴물과 무기를
만들었다 핏줄 돋은 공격적인 성기를 앞 세우고
깃발엔 성조기와 적기가 함께 있었다
사람들은 서로 머리에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 소리와 함께 이 세계는 끝장 나리라
하지만 달러화는 철갑같이 단단하다
고르비만 쓰러지고 레이건은 황제처럼 버티고
웃고 있었다 오페라좌는 이미 텅 비어있었다
신들도 따분한 구경을 그만 두고 전투에 참가했다
교황은 민주적 자본주의를 위해 축복을
내렸다 전투 속에 한쪽 젖퉁이는 두부처럼
잘리워져 나가고 남은 한쪽만이 세상을
유혹한다 여기에 천국같은 지옥이 있다
작가들 이론가들 열심히 그것을 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시와 소설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평론가들은 논평을 한다 이것은
어떻고 저떻고 신문은 연일 대서특필이다
우리시대 이성이 만든 제일 마지막 작품이
여기에 있다 와서 보라 싸움은
종반전에 이르렀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싸움은 시작하고 있다
여자들은 접시를 내동댕이 치고
중산층은 일상을 따분하게 생각하고
자위에 몰입하고 있다 그들은 환상 속에서
색정에 들떠 흥분한다 학생들은
더 이상 학교에 가려하지 않는다
노동자만이 이런 세상을 먹여 살리기 위해
생산에 열중하고 있을 뿐이다
좌파가 오른쪽으로 밀리자 우파는
더 오른쪽으로 갔다 따라서 좌파는 여전히 좌파다
하지만 대칭적인 세계는 이미 균형이 깨져
조각 조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포스트 모던이고 포스트 마르크스다
브레히트가 나에게 말해준다 푼틸라
술만 먹으면 자신이 인간인 체 했다 하지만
술이 깨면 악랄한 지주가 되었다
환상이 언제까지 계속되랴 무엇이
고정불변하는 세계를 지탱해 주랴
환상이 깨면 그 아름답던 세상은 착취와 신음
굶주림과 질병 전쟁과 파괴로
가득 차있었음을 알리라 세상은 악마와도 같이
냉혹하고 그땐 자기편을 들라고 유혹도 안하리라
그땐 우파가 왼쪽으로 밀리고 좌파는
더 왼쪽으로 간다 따라서 우파는 여전히 우파다
조각 조각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포스트 모던도 포스트 마르크스도 심지어는
정통적인 마르크스도 레닌도 없다
단지 투쟁하는 인간의 무리들만이
어떤 진리도 거부하고 싸울 것이다
변증법의 냉혹한 철칙 속에
어디에 선언되는 진리가 기생할 수 있겠는가

* '이 얼간이들아!-신 앞의 진리'는 로버트 롱고의 작품명이다.

15년 전의 인식과 소비 자본주의 문제
이런 질문을 해본다. '이들이 천착했던 일상이 정말 하찮은 것일까?' 하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인듯 하다. 사람들이 하루 하루의 일상의 중요성 알고 이에 천착할 때, 정말 삶이 힘겹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억압적 구조를 깨달을 때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것들'을 하찮게 만들고 세상이 어차피 그런 것으로 생각하도록, 아니 이런 것을 느끼지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세계의 위대함인듯 하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은 이런 것을 알고 느끼는 사람들까지 흡수하여 이것을 '돈을 내고 소비'하도록 만든다.

'환상이 언제까지 계속되랴! 무엇이 고정불변하는 세계를 지탱해 주랴! 환상이 깨면 그 아름답던 세상은 착취와 신음, 굶주림과 질병, 전쟁과 파괴로 가득 차있었음을 알리라! 세상은 악마와도 같이 냉혹하고 그땐 자기편을 들라고 유혹도 안하리라!' 1993년, 지금부터 십오년전의 인식이다. 이때도 소비자본주의와 욕망에 대한 책은 읽었지만 이런 생각을 피부에 닿게 생각한 적은 없다. 지금 '환상이 계속되리라는'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우리가 60년대의 유럽과 같은 정도에 도달했기 때문일까? 세상이 변했을까? 아니면 내가 변했을까? 아니면...

월송계곡 산책
팔각정에서 콘도로 돌아오는 '오솔길'
일요일 아침에 조각공원을 돌아보고 월송계곡, 팔각정(실제는 육각정이다.)을 거쳐 산책로(오솔길)을 따라 콘도로 돌아왔다. 두시간정도가 걸렸다. 밤비를 맞으며 조명 속에서 보았던 조각들을 아침에 보니 달리 보인다.

계곡은 가끔 소나무가 하나씩 있고 대부분이 이름 모를 활엽수와 참나무로 이루어졌고 여기 저기 노란 산수유가 피어 있다. (사실, 산수유가 아닌 생강나무였다.) 참나무 등걸을 한참 바라보다 잿빛 색감과 거친 질감이 화강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조각공원에서 본 둥글 둥글한 것이 누이 같았던 <그리움은 저 별이 되어>가 겹쳐졌다.

좌측 산수유 꽃, 우측 생강나무 꽃
아내가 갑자기 탄성을 지르며 "향기가 좋아!" 하고 외친다. 산수유 꽃에 코를 대고 작은 꽃을 살살 문지르고 있었다. 일행 모두 코를 꽃에 들이대고 가슴 깊이 향기를 들이켰다. 잔가지 하나를 꺽어 코에 댔는데 옅은 생강내음이 난다. "산수유가 아니라 생강나무네!" 내가 말을 했다. 봄 들녘에서 생강나무와 산수유를 구별하기는 쉽지않다. 산에서 내려와 콘도 정원에 있는 산수유 꽃에 코를 대보았는데 아무런 냄새도 없고, 꺽인 가지에서는 향긋한 것과는 거리가 먼 구리 구리한 냄새가 났다. 생강나무는 처음이다. 몇년 전 아내가 순호와 숲 체험을 다녀와 생강 냄새가 나는 나무에 대해 설명을 해준 적이 있다. (그 즈음에 아내가 생강나무를 꺽어 냄새를 맡게 해줬었나? 잘 모르겠다.)

그리움은 저 별이 되어 (고정수, 1989, 화강석)화강석 같은 참나무 껍질산수유가 아니고 생강나무였다!
   ▲ 조각공원, 참나무 껍질, 생강나무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몇 개의 계곡이 있고 지난 밤 비가 내려서인지 계곡 사이로 졸졸 거리며 맑은 물이 흘렀다. 오솔길 아래 계곡은 좀 깊고 습기가 많아 나무와 바위에 파릇한 이끼가 끼어 있어 산 자체가 멋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 그만한 볼거리를 제공하면서 봄을 실감케 했다. 이번 나들이는 추운 겨울을 보내고 따스한 봄이 왔음을 알 수 있는 여행이었다.

   ▲ 계곡에 흐르는 물, 그리고 이끼

   ▲ 겨울에서 봄으로 - 낙엽, 물고기, (무당) 개구리 알, 꽃봉오리, 들꽃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휘트니 미술관 소장품 - 조지 시걸의 <가시오/멈추시오>
2008/04/02 00:16 2008/04/02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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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언제나 깊이 잠겨있던 생각들이 떠올라 몸살을 앓게 한다. 아니 차면서도 따스한 기운을 품은 공기가 얼굴을 스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파릇한 물이 오르면서 어떤 분위기에 젖어든다. 봄몸살은 생각보다 먼저 몸이 앓기 시작하고 생각은 그저 몸을 따라간다는게 맞다.

나에게 봄은 어떤 냄새로 분위기로 온다. 거기에 몇가지 소식이 더해지면 마음을 급속히 방망이질 친다. 후각과 청각이 만든 이미지, 신문의 기사, 머리에 떠오른 지난간 시간들이 뒤엉키면서 올해도 봄이 왔다. 나는 봄을 타는 것일까?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이 든다. 유독 봄이면 몸과 마음이 가려워져 이곳 저곳에 비벼댄다.

2008.3.17 아침 출근 길 <새싹> - 목동 아파트 2단지
모두 그렇겠지만 봄을 느끼는 것은 눈보다는 피부가 먼저이다. 3월 중순부터 출근길 자전거를 탈 때, 귀마개를 먼저 그 다음 가죽장갑을 벗어 던지고, 최근 잠바를 좀 더 가벼운 것으로 바꿔입었다. 또 목동 아파트 1단지에서 4단지로 이어지는 자전거길 옆 담장나무들 위로 파릇한 새싹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개나리, 민들레, 제비꽃, 라일락, 사과꽃, 벚꽃, 철쭉에, 이 모든 것의 정점으로 하얀 목련이 피어난다.

자전거를 타고 차고도 따스한 봄의 아침 공기를 맞으면서 울긋불긋 피어 넘쳐나는 꽃들 사이를 지나다보면 마음 속 여기 저기에서도 웅성거리면서 피가 끓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직은 눈 보다는 피부 속으로 봄이 찾아와 있다. 4월 중순이 지나야 봄은 아파트 단지 양지녘에서 후미진 뒤녘까지 울컥대며 색색깔을 쏟아낸다. 아침를 맞으며 그 사이를 지날 때도 좋지만 어둑해지는 저녁 잔잔한 바람 속에 꽃내와 갓 돈아난 푸르른 잎새 내음을 맡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더욱 좋다.

     ▲ 2006년 4월 21일 염창동 집에서 목동 회사까지 가면서 만난 형형색색의 꽃들

이런 일들이 있기전 신문이나 텔레비젼에서 남녘부터 시작되는 꽃소식을 듣는다. 언제나 이때부터 문제다. 동백꽃 무더기 속으로, 하나둘 떨어져 내리는 붉은 꽃잎 속으로 들어가 헤메고 싶어지고 언제나 '올해는 꼭 가야지' 결심을 한다. 그 많은 결심 속에 아직까지 한번도 그곳엘 가 보지를 못했지만 똑같은 결심을 지난주 또 한번 했다.

몇년 전부터 나에게 봄은 통영국제음악제 소식으로 시작된다. 이 소식 안에는 으레 동백꽃과 윤이상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그러면 군 생활을 하면서 전곡리(정확히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남계리)에서 듣던 윤이상의 음악이 겹쳐지면서 춥고 쓸쓸했던 기억 속에서 귀곡성 같은 날카롭고 슬픈 클라리넷 소리가 울려나온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봄은 추방당한 음악가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처럼 처연한 울음 소리로 왔다.

1994년 10월 23일 고대 후문 장백서점에서 교성곡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와 교향시 <광주여 영원하라!>가 들어 있는 테잎을 샀다. 그리고 같은 해 지금도 가지고 있는 몇개의 음반(CD)를 더 샀다. 그 중 제일 좋아하는 음반은 1988년 일본에서 나온 <윤이상 클라리넷을 위한 선집 (ISANG YUN SELECTED WORKS FOR CLARINET)>이다.

ISANG YUN SELECTED WORKS FOR CLARINET - 왼쪽 가장 아래<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와 <광주여 영원하라!>

군에 있는 동안 이 안에 있는 곡들(Concerto for Clarinet and Orchestra, "Riul" for Clarinet and Piano, "Piri")을 많이 들었다. 일과가 끝나고 막사 위쪽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두평 남짓한 숙소로 돌아오면 얊은 담요를 덮고 쓸쓸한 음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봄이면 외로움을 타는 증상이 좀 더 심해졌다. 요즘은 이 곡들을 거의 듣지를 못한다. 어떻게 들으면 호곡성 같기도 한 이 음악 소리를 아내와 아이가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중앙일보에서 <통영국제음악회> 관련된 기사를 보았다. 머나먼 타국 땅에서 눈을 감은 그의 고향에도 봄이 왔다. 남쪽 바다가에는 붉은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었을 것이다. 또 오늘 같이 비가 내리면 황토 내음이 세상 가득 할거다.

이억만리 윤이상에게 봄은 자신의 피 속 어딘가로 흐르던 고향 향톳 내와 동백꽃 빛깔이었을 것이다. 고향 잃은 내 기억 속의 봄도 언제나 지독하다.


      동백꽃

겨울을 딛고 일어서는
숨막히는 봄의 문턱
따스한 바람이 불어
땅끝까지 피가 돌아
붉게 핀 동백꽃
     하나    둘   지어 세월은 가고
우리네 인생도 동백꽃 같아
붉게만 피었다
어느 아침 바람에
아무런 미련도 없이
     뚝    뚝    떨어져 내려라

      1994. 1 - 1995. 9. 29


      동백꽃 2
       - 윤이상

언제나 생각이 났지
동백꽃 빨갛게 핀
해남의 백련사 앞마당
으시시 뻗어 내리는 돌길을
그 붉고 푸르던 동백림을
떨어져 내리던 꽃잎을
꽃이 피고 지는 것은 사건처럼 보였지
가슴 깊이 새겨져 잊지못할
동백림 사건이었지

다산 초당 뒤곁 바다소리 보며
아스라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섬들
수평선을 보며
경상도 통영 어디
그 사람 가슴에 묻어놓은 - 가슴 깊이 묻혀있는
고향 냄새를 맡았지 하지만
그 사람 가고 없고
찡하게 울리는 음악소리만
깊게 울려내려 울음소리 들려오지만
조국의 끝자락까지
할퀴고 가는 아픔, 견디지못해
사건이었지 동백림에서 일어난
조국의 아픔에 달아 가슴 앓던
사람들 1백여명
연애 한번하자고 뜨겁게 뜨겁게
한겨울에 피어난 꽃이였지

꽃은 피었다
뚝뚝 떨어지고
눈물처럼 내려앉고
당신이 죽은 것은 사건이었지
내 가슴도 울컥이며 솟아나온 눈물이였지
떠났던 고향 흙 냄새보다도
외면한 우리가 부끄러워 흘린
하얀 눈에 토한 피 한모금이었지
어릴적 주린 배에 따넣던
뽕나무 검붉은 오돌개처럼
당신 음악을 듣다 아무말도 못하고
외면한 양심이 독에 취해
토하고 토하고
점점히 뿌려놓은
이어지지 못하고 사방으로 뿌려놓은
비명횡사(非命橫史)였지

언제나 음악을 들으면 생각이 났지
꽃이 피었다
뚝뚝 떨어져 내릴 때면
동서로 갈라진 이국땅에서
남남북녀 만나야겠다고 벌였던
동백림 哀史

      1996. 9. 9


      지독한 봄 

가슴 가득
진득한 눈물만 고여
썩은 고름처럼 흘러내리다
바람에 말라버리고
도랑처럼 패인
그 자국 위로
희망의 새싹이 돋아났으면

가만히 있어도
가슴 가득 물이 솟고
그 속에서 온 종일 자맥질하다
지친 몸과 마음을
햇빛에 말리고
검게 빛나는 탄 몸 위로
푸릇한 새싹이 돋아났으면

외롭고 쓸쓸할 때
온 종일 들판을 헤메며
바람이 내 머리를
텅 비게 씻어내도
당신만은 지울 수 없는
그리움으로 살아
꺼칠하게 빛 바랜 내 살갗 위
돋아나오는 새싹으로 남아
썩은 세상 속
푸르르게 빛나는 생명이었으면

말하고 싶다
세상에 이런 희망이 모두 절망으로 남아도
끝내 주저앉지 못하는 건
몹쓸 내 젊음 때문
봄은 희망이 없어도 지독하다

                        1995. 5. 25

<통영국제음악제> - 2008.3.21, 중앙일보
2008/03/23 21:12 2008/03/23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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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날 갑자기 '법질서'를 이야기하니 당황스럽다. '지금껏 법질서가 안지켜져서 문제였다'는 생각 없이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리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법이 바뀌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면 누군가는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아닐까? 신구(新舊)정권 중 하나는 '법대로'가 아닌 개인의 또는  정권의 '뜻대로' 했을 게다.
 
아래 그림은 www.naver.com에서 오늘 "법 질서"로 검색한 결과이다. 검색 결과의 최상위에는 "에 의하여 유지되는 질서" 국어사전의, 말 그대로 사전적 정의가 나온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말하는 법질서는 이런 뜻이 아닌 것 같다.

법질서 지키면 GDP 1% 상승
충성의 맹세 - 5공인가?
     ▲ 네이버에서 '법 질서'로 검색한 동영상/뉴스 결과 (2008.3.19)


94년 8월 27일 쓴 시이다. 군대간지 막 일년이 되려할 때이다. 8월 27일 즈음에 보고 들은 일을 그대로 옮겼을 게다.

노무현정권을 지지한 것은 아니지만 이때를 생각하면 최근 몇년 간 이런 생각을 없이 편하게 살았다.  그런데 다시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새로운 중세가 온 것일까? 백골단(사복체포조)이 나오고, 법기강을 확립하고...  

마녀사냥이 심해지면 지금 생각하면 아주 웃기는 이야기를 해야할 상황이 된다. 모두 신앙고백을 해야하는 상황 말이다. 이런 말의 주인공은 한나라당 의원을 하다 현재 통합민주당 대표를 맡고 있다.

#9  박홍총장이 운동권출신으로 거명한 손학규의원
     “나는 주사파와는 다른 범주라는
      박총장의 말에 따라 면죄부를 받았다“

그래서 다시 '중세'라면 끔찍한 일이다. 다시 거리로 나가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불혹의 나이에 식어버린 가슴에 불을 지피려 안간힘 쓰며 맞는 잔인한 봄이다. 미리 고백컨데 "나는 주사파가 아니다! 그리고 김정일 정권을 좋아하지 않는다!"


             중세의 여름

                - 1994년 한국


#6  대전역 광고탑(검은 화면에서 붉은 글씨로)

  주사파 1만 5천명

  정치,언론,교육계 진출


#5  서울신문 8월 26일  사설

    慶尙大교수 검찰소환 응하라


                        학생들에게 左傾敎材로 계급혁명을 가르친 교수들에 대한 수사를 「學問의 自由 侵害」운운하다니 억지중에도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는가. 학문의 자유라 해서 무한대로 마냥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2  성남 택시안 라디오 여자아나운서

 TV채널 선택권은 주로 아버지와 자녀가 갖고 있고

 어머니가 채널을 선택하는 경우는

 6.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  서울 (버스 차창 밖 가로수 사이)

  대남적화 전위세력 주사파 뿌리뽑자

        한국자유총연맹   청파1동  지도위원회


#7  버스를 타고 라디오를 들으며

                  한편 경상대는 오늘 ‘한국사회의 이해’ 강좌를 이번 2학기부터 폐강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리고 이를 교육부에 보고 했습니다.


 #8  라디오 뉴스

경찰청 특수수사과는 오늘 연극 ‘미란다’ 공연으로

외설시비를 불러일으킨 최명효씨, 황국학씨,

주연 여배우 김도연씨 등 3명을 공연음란죄위반혐의로

 불구속 입건했습니다.


#9  박홍총장이 운동권출신으로 거명한 손학규의원

 “나는 주사파와는 다른 범주라는

 박총장의 말에 따라 면죄부를 받았다“


#4  대전(8월 25일 21시 집 방안 TV 앞)

 박홍총장이 TV에서 편지를 읽으면서 울고

아버지와 아들이 그것을 보고 있다.

 父 : 빨갱이 맛을 안본 놈들이 뭘 안다고 ---- !

 子 : ------


#10 한겨레신문 8. 27.

      ‘박총장 토론회’  TV방영 논란     

 

       “교묘한  편집”


                                              시청률조사기관인 미디어서비스코리아에 따르면 <문화방송>과 <서울방송>의 토론회 시청률은 각각 8.6%와 8.3%에 머물렀다.


#3  성남 (대한극장 앞 차도)

              성      명      서

 원산업,한국피죤의 직장폐쇄와 노조탄압에 대한 우리의 입장


 94년 들어서면서 소위 문민정부라 자처하던 정부는 국가경쟁력의 강화라는 논리로 노동자의 임금을 4% ~ 8%로 묶고 쟁의 사업장에 지체없이 공권력을 투입하는가 하면 지하철과 철도노동들에 대한 공권력과 더불어 대량의 징계를 감행하면서 더 이상 노동자,민중을 위한 정부가 아님 스스로 인정하였다.   또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합당한 요구이며 기본적인 생존권인 임금인상 교섭도 성실하게 임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파업이나 준법투쟁과 같은 합법적인 투쟁조차도 가차없이 공권력이나 직장폐쇄로 맞서면서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1994. 8. 27

1994년 묶은 『넘어서 - 투명한 사회』에 실려 있는 글임.

2008/03/20 23:43 2008/03/2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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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 칼의 노래

김훈 - 칼의 노래

어제 신문을 보다가 <칼의 노래>가 100만권이 넘게 팔렸다는 광고를 보았다. 그러면서 <칼의 노래>에 대하여 김훈씨가 쓴 글이 옆에 실려있었다. 이 세계가 인간에게 가하는 모멸과 치욕, 이 세계 속에서 죽지 않고 살아서 밥을 먹고 숨을 쉰다는 것은 이가 갈리는 일이라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무쇠 똥

슬퍼도 하지 않겠다
후회도 하지 않겠다
절망도 하지 않겠다
좌절도 하지 않겠다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당신이 죽어 묻히고 나서도
나는 살아서 밥알을 꿀꺽였다
"당신이 없다면 나는 죽을 테요"
비장스러운 말을 당신에게 했었다
당신이 죽었을 때
나는 두 눈을 꼭 감았었다
마지막 당신을 잊지 못해
나만은 평생 울 것 같았다
들판 흐드러진 풀꽃도 하늘도 잊고
날아오르는 새도 잊고 당신도 잊고
평생 눈물 속에서 살다 장대같은 8월
뜨거운 장마비에 죽을 것만 같았다
당신은 죽었고 나는 살았다
맹세를 잊지못한 나는 밥알을 꿀꺽인다
밥알은 무쇠가루같다
나의 피와 살덩이도 무쇠같다
당신에 대한 나의 기억도 무쇠같다
아침에 누는 똥도 매일 무쇠같다
당신이 죽어 묻히고 나서도
세상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는 살아서 거친 밥알을 꿀꺽인다
슬픔과 좌절도 당신과 함께 이젠 무쇠같다
                                 1993. 3~6

93년 군에 입대하기 전에 쓴 <최종심급>에 있는 글이다. 비루한 삶이다. 아직도 여전히 밥 숟갈을 떠 입에게 쑤셔넣고 있으니. 가짜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없이 돌파하는 의연함이 지금 내게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땐 아무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가고 싶었다. 지금도 그렇다. 이런 속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갑자기 어금니에 힘이 꽉 들어간다. 삶이 부끄러운 것이다.
 
아마도 모멸과 치욕은 이순신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 그들과 같이 웃고 밥을 떠 넘기는 우리 - 김훈 자신을 보면서 드는 감정일 것이다. 또 비틀어 보면 이런 모멸과 치욕 속에서도 살아가는 우리 삶을 위대성과 비겁함에 경외감마저 들 때도 있다. 삶 자체가 모순적인 것일까?

그런데 이 세계가 이유없이 모멸과 치욕을 인간에게 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또는 만들어 낸) 도덕적 감성이 모멸과 치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세계는 아무런 '의지' 없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감정들을 보면 니체는 아마 노예의 도덕/윤리라고 했을 것이다. 삶(인간)을 초극하려면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연꽃 - 내용 나눔 그림막대

이 글을 쓸 때의 마음은 그들은 인생의 변곡점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최종심급』- 희망의 나이와 상경기를 보면 도움이 될까? 거의 비슷한 때이다. <칼의 노래>가 200만권이 팔려도 아마 이 책을 읽지않을 것이다. 나는 소설을 잘 읽지않는다.
2008/01/02 22:01 2008/01/02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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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공화국>을 꺼내 읽다가 양성우의 다른 시집들도 꺼냈다.<북치는 앉은뱅이>와 <그대의 하늘길>이다. 두 권다 매주 한권의 시집을 읽겠다고 결심하고 십여년 전 용강동(마포)에서 여의도로 출퇴근하면서 버스에서 읽었을 것이다. <그대의 하늘길> 사이에서 쪽지를 발견했다.
 

불안한 희망의 시대
                     4.30

                  떼무덤

   각성
   빈마루
   아침, 마포대교를 건너며


매출이 인쇄된 문서 한 구석을 찢어서 써놓은 쪽지다. 차를 타고가면서 시집을 읽다가 어떤 단어, 어구가 떠오르면 계속 중얼거리다가 사무실에 들어가서 잊기 전에 적곤했다. 중얼거리다보면 점점 길어져 다시 외울 때마다 내용이 바뀌었다. 그런데 바로 전 것에 대한 좋은 느낌이 나았다는 생각에 머리를 쥐어짜곤 했다.

그대의 하늘길 사이에 있던 쪽지

more..

쪽지에 적혀있던 것은 모두 시의 제목이 되었다. 그 땐 아침에 출근하고 있다가 퇴근하면 자취방에서 혼자 짐승처럼 씩씩대며 시를 썼다. 나 자신과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가득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도 그렇게 사는 것은 아닌지? 군대를 제대한 후 십여년 내내!

아침, 강을 건너며

more..

'마포대교를 건너며'라는 시를 1996년 11월 27일 썼다. 그래서 제목을 '아침, 강을 건너며'로 바꾼 것 같다. <그대의 하늘길은>은 1997년 3월 초에 읽기 시작했나보다. 아마 양성우의 시를 이때 함께 읽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시인을 만나면 줄창 읽어대는 습관이 있으니.

    아침, 강을 건너며 1

아침의 강은 눈이 부시다
강 위에서 부서지는 빛살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내리다
강 위를 지나는 버스 속으로 스며든다
사람들이 빛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궁금해
한사람씩 얼굴을 쳐다본다

그들의 눈에는 부서져 내리는 아침의 밝은 햇살은 보이지않고 피곤에 지친 얼굴들, 화장으로 가린 얼굴들이 졸리운 눈, 감은 눈으로 버스를 따라 흔들리고, 이어폰에 입을 중얼중얼거리거나 멍하니 버스에 메달려 있는게 고향집 처마 밑에 매달린 곰팡이가 난 메주 같았다
버스가 멈출 때마다 몰려 내리고 몰려 타는 부산함에 강에 반사되어 부서져 들어오던 빛살들은 간 곳 없이 사라지고 다시 유리창으로 강물을 본다
강이 은빛으로 출렁거리며 흔들린다

아침의 강은 눈이 부시다
강 위에서 부서지는 빛살들이
사방에서 흩어져 내릴 때
어떻게 하면 노동의 고역을 저 강물로 씻어낼 수 있을까 생각을 한다
하지만 강을 지나 건물들 사이로 들어가며
내 얼굴에서도 날로 이끼가 끼는 것을 느낀다.

                                             1997. 3. 12


이젠 얼굴에 이끼가 낀지 오래되어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시를 쓰는 것이 하루하루의 반성이었고, "각성"제였다.

    아침, 강을 거너며 2

아침 강은 눈 부시다
밤섬가 물오리들
스티로폴 조각처럼 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이 바쁜 움직임 속에서
그 물오리를 보면
가만히 물에 앉아
아침 햇살에 밤 사이 깃든
어둠을 말리려는게 틀림없다
그 모습에 강가로 내려가
밤 사이 가슴에 싸인 절망,을 꺼내
빛 속에 담가 휘적휘적
흔들어 탁탁 털어 널고싶어진다

물오리들 움직이질 않고
물 속에서만 물갈퀴질을 부산스럽게 하면서
그림처럼 떠서 靜中動
하지만 내 가슴 속 물갈퀴질엔
내내 피범벅, 저린 가슴에
아침 강은 눈이 부시고
부서져 내리는 빛무리 속에서
따스한 온기를 느낀다
물오리 내일이며 북으로
차디찬 벌판을 찾아 떠나고
이젠 나도 푸른 소나무 한그루 서 있는
겨울 한가운데로 돌아가야겠다

이 좋은 봄날 아침
못견디게 파고드는 그리운 것들
부서져 내려 강 위를 흘러
바다로 가는 빛살처럼
깊은 바닥으로 흘러들어가고
보이지는 갈 수 없는 밤섬,가
스티로폴 조각처럼 널려있던 물오리들
물오리들 날아오르네

                                    1997. 3. 12

그때 스스로 절망하고 있었을까? 절망하지 않기 위하여 혼자 담금질을 하고 있었다. 변할 수 없다는 것! 절망하지 않고 세상을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것! 쪽지를 적은 다음 날 쓴 시이다.

    불안한 희망
     - 1997년 4월 30일


투명하게, 투명하게 살려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의심을 하며 내심 불안해 했다
언제나 꿈 꿔온 세상은 불안스럽게 흔들리고
그전에 내가 먼저 흔들리며 주저하고 머뭇거렸다

삶의 투명성이나 정직성을 믿지 못하겠다
하지만 투명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믿기 힘든 생각이 내 몸 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아침과 저녁 사이의 세상은 너무 처참한 모습이다
떠날 수 있었다면 벌써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절망이
불안하게도 희망이 된다

필연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 누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회의의 핏줄기가 폭풍우가 되어
가볍게 붙어 기생하는 희망을
몸 속에서 쓸어내버리려 한다

지난 여름 뿌리채 뽑혀 쓸려내려가던
나무둥치와 돼지와 소, 그리고 희망을 보았다
꿈 꾸던 자리엔 쓸쓸한 폐허의 자취만 남고
강변엔 도깨비 불만 날아 도깨비 불만 날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밤새 떨며 어둠 속에
파랗게 반짝이며 갈피를 못 잡는, 도깨비 불
갈피를 못 잡는 사람들을 보았다

무엇이 남았을까 마음의 빈자리에는
파헤쳐진 무덤의 볼상사나운 자취
그 자릴 차지한 절망의 가시덩굴들
일상의 폭발하는 파편이 박혀
불구가 되어버린 머리와 뒤틀린 몸일까
희망을, 신념을 포기 못하는 것은
차라리 절망의 두려움이었다
이 세상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몰락의 자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불안한 희망을 갖고
불안한 현재를 생각해 보면
투명하게, 투명하게 살려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의심을 하며 내심 또 불안해 한다
강가에는 밤새 도깨비 불만 날고 도깨비 불만 날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밤새 떨며 어둠 속에
기다린다, 절망을 먹고 자라나는 불안한 희망

                                                 1997. 5. 1


무서운 것은 일상의 안온함이다. 양성우처럼 어둠을 몰아내고 새벽이 오고있다고 외칠 수 없을 때, 오늘을 넘어선 내일이 불확실할 때, 남는 것은 합리적 이성, 과학 이전에 하나의 신념이다. 인식론의 제일 마지막 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신념"이 아니었던가?

가장 무서운 것은 '이 세상을 넘어설 수 없다'는 생각이다. '몰락의 자각'이라기 보다는 현실의 고정이다. 이것에서 일상의 안온함이 온다. 꿈이 없어져버린 세상이란 사람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내일이 오늘같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어제를 반성하면서 맞은 오늘은 어제와 차이가 나며 새로운 길로 우릴 이끌 것이기 때문이다. 반성이 없는 나날은 우릴 죽음으로 이끈다! (차원은 틀리지만 가끔 팀원들 '네이버를 넘어설 수 없어요!' 또는 '넘어설 수 있어요?' 묻는다. 3년 또는 5년 뒤에보자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말은 묻지말고 스스로 반성하고 변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답은 자신들 속에 있는 것이다. 질문 안에 답이 있는 것이다.)

     빈 마루

            1
손길 없이 버려진
빈 마루 위
쌓이는 먼지
시간이 이렇게 먼지처럼 가볍다면
내 쓸어내리리
오뉴월 햇살 받으며
한나절 내내
쓸어내고 닦아내 손때를 묻히며
그대 돌아올 날
기다리리

            2
하지만
그대 떠난 뒤 버려진
빈 마루 위
싸이는 먼지
갈라진 나무틈 사이엔
그리워 고개 빼며
자라난 풀잎
하나
외롭게 흔들리는 풀잎
하나
언젠가 시간이 흘러
빈 마루 썩고
빈 집 무너져 내리면
하나 가득 하리
그리움의 풀잎들
오뉴월에 피는 꽃잎들

               1997. 4. 7

이땐 마음에 드는 단어, 구절 하나만 있으면 됐다. 마음은 모든 것을 한 방향으로 받아들이고 손쉽게 밤새 토해냈다. 모든 것이 불안했던 것이다.

불안한 희망 - 1997

2007/10/20 18:13 2007/10/20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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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 오늘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생각하면서 묶어놨던 시집을 뒤적이다 제대 후 처음 직장엘 다니면서 일주일에 시집 한권씩을 읽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감정이 울컥대며 절창은 아니지만 밤 잠을 이루지 못하고 끄적대던 때가 있었다. 한 10년은 그랬던 것 같다. 이젠 시집을 자주 읽지않는다. 삶의 강요인지 나의 선택인지.. 둘 다인 것 같다.
 
93년 6월 입대 전 처음 묶은 시집에는 다른 시인의 시집에 대한 두편의 시가 있다. 『희망의 나이』는 대전에 있는 대훈서적에서 93년 5월정도에 샀다. 내동에 있는 고향집에서 창을 열어두고 읽었을 것이다. 소쩍새 소리를 들으며... 그러던 어느 날 썼을텐데 ...

          희망의 나이 - 8점
김정환 지음/창비(창작과비평사)

                     희망의 나이

오늘 시내에 나갔다 여기 저기
둘러보다 한 구석에 꽂혀있는
시집을 보았다 김남주가 있고 박노해가
있었다 백무산이 있고 김정환이 있었다 이 모두를
갖고 싶지만 돈이 오천원 밖에 없다 혁명,
동지, 노동자를 향한 외침은 돈에 팔려
나간다 그래도 경쟁에 직면한 조잡한
소비에트의 생필품처럼 이곳에서도 상품성이
떨어지나보다 음모하듯 음침한 구석에 이들만
몰려 있는 것을 보면 하지만 언젠가 우리가 저것들을
굶주린 소비에트의 인민처럼 아귀처럼 먹던 때가
있었다 김정환의 『희망의 나이』를 샀다 목 매단
다섯명의 레닌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시집을 팔아
집이라도 장만하려나 목 매단 역사를 보면서
희망을 간직한 채 있는 그도 참 대단하다 그를
한번 흉내내 본다 나에게도 희망이
있다 하지만 엄연히 우리는 패배했다 아니
지금이 시작인가 단돈 삼천원으로 희망을 사려는
내가 우습다 그도 그렇다 단돈 삼천원에
희망을 팔지는 않을 것이다 내 나이는 그보다
젊다 나는 그보다 가능성이 더 많을 것이다

                                                   1993.

양성우 - 겨울공화국

                    서울풍경4
             上京記

나는 총도 없이 빈 손으로 왔다
어둠 속에 빛나는 서울의 거리
유령처럼 흐느적 거리며
사람들은 이리 저리로 몰려다니고
미친 놈처럼 웃다가 우는
뒤틀린 감정만이 가득 찼다

기차는 어둠 속을 멈춤없이 달렸고
나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빈 손으로 내렸다
모든 무기를 가져야 한다던 우리가
손가락질만 하면서 서 있는 사람들
불심검문에 열중하는 사복 경찰들
서슬 시퍼런 눈빛 속을 헤메인다

비 속을 헤메인다 축축하게 젖은
대기 속을 헤메인다 꿈 같은 과거와
환상같은 미래 속을 헤메인다
모든 것이 안타깝게만 느껴지고
뒤돌아 설 때마다 성벽도 없이
우둑허니 서 있는 남대문이 보였다

하늘엔 십자가와 광고탑들이
현란하게 하느님의 나라 신한국을 외치고
천사의 축복과 개혁의 주술을 내뿜을 때
나는 이 골목 저 골목 기웃거렸다
거리 거리에 새겨져 있는 함성처럼
물결치는 깃발같은 마음을 가졌지만
나는 총도 없이 빈 손으로 서울에 왔다.

                                         1993.

'나는 총도 없이 빈손으로 왔다'는 양성우의 『겨울공화국』 중 「上京記」에 나온다.
나는 1993년 9월 7일 입대 전까지 매주 한번씩 대전에서 서울로 갔었다. 정치외교학과 대학원에 가려고 영어학원을 다니면서.. 지금 다시 양성우의 상경기를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겨울공화국의 양성우는 절창이다. 『북치는 앉은뱅이』라는 시집도 좋다. 시인으로서의 양성우와 한때 정치인으로 있던 양성우는 사뭇 다른다. 모두 자기에게 맞는 자리가 있는 것이다.

1993년은 김영삼 정권이 시작하던 때이다. '신한국', '개혁'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똑같은 레토릭이 횡횡한다.

93년 군대에 가기 전 내가 생각했던 '감정의 파도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혁명과 같던 시'는 군대에서 95년 말에 쓴 시에서는 "삶이 참지못해 내뱁는 틀에 박힌 비명"이 되어있었다. (『더딘 봄 - 장탄리 안개』, 「사은회에서 - 철학」, 1995.12.8을 볼 것)
2007/10/14 18:58 2007/10/1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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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베란다쪽 광을 청소하면서 군대에 있을 때 쓰던 가방을 꺼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망치와 드라이버를 사용해서 강제로 열었다. 벌써 10년이 더 지난 한 뭉치의 종이와 노트를 찾아 냈다. 사실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고 있었으니 대수로울 것도 없다. 하지만 육군노트에 이리 저리 휘갈겨져 있는 시를 보니 느낌이 새롭다.

시 뭉치


지난번 "불안한 희망의 세계: 댄싱섀도우"에 올렸던 시의 원본을 찾았다. 처음 제목은 "연혁 - 나의 존재"였다가 정리하면서 "태생"으로 바뀐 것 같다.

연혁-나의존재
 

그리고, "무협지"라는 제목의 시도 보였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입대하기 바로 직전부터이고, 군대에 있는 동안 죽어라고 시를 썼다. 일과가 끝난 후 별 할일이 없었으니 BOQ 구석에서 시를 쓴 것이다. 특히 영천, 광주에서 군사교육을 받을 때는 더 했던 것 같다.

무협지

          문학일기1
           - 무협지

국민학교 졸업하고 겨울 내내 무협지만 읽었다
언제나 거친 갱지의 몇줄 안되는 내용에서 여백의 미를 배웠다
머리 속에선 도검이 산을 이루고
피어 젖어있던 어린 가슴은 발길질에 주먹이 난무했다
기준조차 모호한 선악의 싸움과 배신과 복수의 세상에서
밤을 샌 눈은 충혈되었고
아침이면 내내 참던 오줌을 장독대 뒤 까죽나무에 내갈겼다
밤새 보았던 것들이 오줌발에 쓸려나가고
남은 것은 피로와 어서 어른이 되어 강호를 주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바램은 세월이 장강의 강물처럼 흐르는 것이었고
그것을 잴 수 있는 전자시계를 차는 것이었다

중학교 졸업하고 겨울 내내 무협지를 읽었다
언제나 갱지의 몇자 안되는 내용에서 가슴 속 헐떡대기만 하는
욕망을 알았고 머리 속에선 얽힌 육체가 꿈틀거리고
항상 백점을 맞던 도덕책은 정파의 위선이었고
선보다 악이 더욱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밤새 읽다 던져버린 무협지가 머리맡에 가득 쌓이고
그때마다 위선적 정파와 위선적 군자
그렇게 배워온 위선적인 나에게 침을 뱉았고 침을 뱉듯
자위를 하고 남은 것은 허탈감과 가슴 짙누르던 수치심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재수하며 내내 무협지를 읽었다
가끔 무협영화를 보며 생각했다 장부는 독해야 한다
가슴에 독을 차야만 하는 줄 알았다
황량한 바람이 불고 고독한 먼지가 일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내내 독하게 굴었지
아픈 가슴에 비수를 박고
피를 흘리면 그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며
수천만의 사람을 꿈쩍않고 죽여야만 영웅이라고 생각하며

그게 아닌데 그게 아닌데
                                                              <1995.11.19>


지금도 무협지를 좋아한다. 예전처럼 그렇게 보지는 않지만 적어도 일년에 2~3번은 무협지를 빌려다 밤새워 본다. 최근에는 군림천하 18권을 만화방에서 빌리기 어려워 사버렸다.

          희망의 거처

나의 희망은 돈 몇푼 모아
집칸 마련하고 사는 것,
살다 가끔 한번은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는 것일 수는 없다
나의 희망은 몇푼 돈으로
공부 몇자 더 하고 배운 것 팔아먹으면서
예쁜 마누라 손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일 수도 없다
이런 모든 것이 희망이 될 수 없을 때,
이런 것 모두 하나 둘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내 바라는 희망은 어디에,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질문을 해보지만
대답할 수는 없는데 나는 희망은
지금 이곳에 있다고 쉽게
누군가에게 말한다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침울한 얼굴로 위로하듯 말한다
그래 바로 이곳에 희망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희망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함성이 사라지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노인처럼 항상 무표정한 얼굴만 남고
서로를 말 없이 바라고보만 있는데 그래도
희망은 가파른 일상의 절벽을 넘어서 있고
일상은 봄이면 녹는 임진강 두터운 얼음도 아닌데
희망은 두터운 얼음 밑 흐르는 물 속에 있다
나의 희망은 돈 몇푼 모아
집칸 마련하고 사는 것,
살다 가끔 한번은 외식도 하고
영화도 보러 가는 것,
나의 희망은 몇푼 돈으로
공부 몇자 더 하고 배운 것 팔아먹으면서
예쁜 마누라 손 잡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모든 것이 희망이 되면
내 지금 바라는 세상은 어디에, 도대체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1995.4.26>

생각했던 희망은 거처를 잃었다. 그래서 여전히 불안한 희망이다. 시집에 대해 이야기 하면 <불안한 희망>이란 제목으로 군대를 제대하고 1997년에 270페이지가 되는 시집으로 묶었다. '문학일기'는 연작시로 이곳에 들어있다. '희망의 거처'와 '태생'은 95년에 묶은 <더딘 봄 - 장탄리 안개>에 들어 있고, 94년에는 <넘어서 - 투명한 사회>를, 93년에는 <최종심급>이라는 제목으로 시를 묶었다. 한 10권 제본하여 친구들과 돌려보기 위해서 였다.

대학시절에 쓴 시들은 모두 불태웠다. 군대 소집 영장을 받고 다시 쓰기 시작했는데, 지금 읽어보면 <최종심급>은 무슨 투쟁선언문이나 원전같은 느낌을 준다. 97년 후 10년간은 책을 묶지 않았다. 한 뭉치 있지만...

2007/08/05 17:14 2007/08/0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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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브란스병원 암병동

밤 동안 삶과 죽음 사이에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암병동
버스 밖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처럼
간밤 자다깨다 있어던 일들,
삐걱대는 철제 침대, 그림자 없이 다가서는 발자국 소리
속을 끄집에 내는 기침에 구토, 물내리는 소리들은
졸리운 눈처럼 기억도 하기 힘들다

죽음이 다가올수록 기억은 더 어려지고
젊은 날 결혼한 어린 아내를 찾고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곳이 어딘지를 묻는다
시간이 더 흘러 기억이 더 젊어지면
전쟁 속에 헤어진 어머니,
굶주린 배를 안고 헤메던 전장을 기억하고
배가 고파도 자꾸 배가 불러오는 오늘처럼
몸을 뒤척이던 어린 날들이 무섭게 덮칠 것이다

차창 밖 비 방울 방울마다 새겨진 세상이
검은 아스팔트 위로 부서져 흐르듯
세브란스병원 암병동 기억 없이 지샌 밤들,
숨 죽여 속으로 속으로 울던 그 불안한 나날들,
삶이 아무 소리도 못내고 죽음 속으로
이렇게 흘러들어가 버린 날들
하지만 어느 날, 내 나이보다 기억이 더 어려지는 날
사진보다 뚜렷하게 기억이 떠오르고
오늘이 된 그날엔 하늘 무너지듯
엉엉 큰 소리내어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2007.8.4>

아내가 산책을 가자고하여 급히 저장을 하다가 글을 날려 다시 썼다. 다시 쓰면 새로운 글이 되고 맛이 다르다. 지난 주부터 하루걸러 한번씩 병실에서 밤을 보낸다. 아침에 병실을 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 밖에 비오는 거리를 찍었다. 아무 의미없는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커다란 의미가 되어 덮칠 때가 있다. 이보다는 우리가 중요한 것들을 쉽게 잊고 사는 것인지도 모른다. 몇년만에 다시 시를 쓴다. 시는 세상과의 갈등(부적응) 때문에 몸이 세상을 향해 내지르는 비명 소리인가 보다. 죽음을 앞두고 또 몸이, 존재가 마구 흔들린다.

"이러한 힘이 없다면 삶은 아무 소리도 못내고 죽음 속으로 흘러들어가 버렸을 것이다."<계몽의 변증법, p.181, 문예출판사> 요즘 죽어라고 이책만 읽고 있다. 서너번, 수십번을 읽겠다는 생각이다. 굳이 많은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 사람들이 사서삼경을 매일 읽고, 외운 것처럼 끊임없이 읽다보면 새로운 것이 계속 들어난다. 뒷장을 보니 이책을 95년10월 23일에 샀다. 십년이 넘어섰는데 요즘에야 이해가 가는 것 같다. 또 십년이 지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사실 인용한 구절은 본문에서 보면 시의 맥락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내가 처한 상황이 이 한 줄을 건져올리도록 한 것이다.

2007/08/04 20:51 2007/08/04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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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섀도우 포스터
7월 29일 댄싱섀도우를 봤다. 댄싱섀도우는 차범석의 <산불>을 뮤지컬로 만든 것이다. 주요 등장인물은 나쉬탈라, 마마 아스터, 신다, 솔로몬이고 태양군(太陽軍)과 달군(月軍)의 전쟁, 그리고 두 군대가 연합한 후 (가상의) 외국군대와의 전쟁이란 시대적 상황 속에 있는 산촌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사실 뮤지컬보다 뮤직컬로 만들어지기 전의 <산불>의 줄거리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더 잘 다가온다. 점례, 사월, 인텔리인 규복, 그리고 6.25전쟁 시 소백산맥에의 어느 산골마을, 밤을 지배하는 빨치산과 낮을 지배하는 국군.

우리 삶을 지배하는 원칙들의 대립

여기서 이런 줄거리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뮤지컬을 보면서 나는 태양군 대 달군, 북한과 남한,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 등의 이데올로기적인 대립보다도 더 가까이에서 우리 삶을 지배하는 원칙들의 대립을 보았다. 이것은 "이상주의 대 현실주의 대립"이라고 할 수 있지않을까? 원칙과 이상에는 나쉬탈라가 정점에 서있고, 현실('삶'이라고 해야 할까?)의 정점에는 마마 아스터가 있다. 그리고 그사이에 현실주의에 가까운 이상주의자인 솔로몬이, 또 이상주의에 가까운 현실주의자인 신다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도 그 극단 사이 어디엔가 서있을 것이다.

그런데, 희망의 원천은 무엇일까?

댄싱섀도우의 주제의식은 희망일 것이다. 어떤 역경 속에서도 이어지는 희망! 그런데, 희망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미래의 어느 시점에 우리가 원하던 어느 상태에 도달할 것을 기대하는 것일까? 하지만 실제 희망의 모습은 이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어떤 희망도-희망에 대한 이야기도-미래가 아닌 현재의 비극성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행동하는 이상주의자들에게는 희망은 새로운 세계가, 다가올 미래의 상태가 아닌 이미 존재하고 하고 있는 세계일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희망-오지않은 미래-이 아닌 엄연히 현실 속에 존재하는 세계를 하나의 원칙으로서 주장하고, 몸으로 만들며 그 세계에서 이미 살고 있는 것이다. 이상주의의 원천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의 정의를 보면 '공산주의는 현실 노동운동 속에 이미 존재하는 것'이라는 것도 이런 측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댄싱섀도우에서 나쉬탈라와 솔로몬의 희망은 복고적(과거에 얽매여있다는 의미로)이기 조차하다.

나는 궁극적으로 이상주의자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주의는 현실의 모순, 삶의 어려움의 반영이다. 이들은 현재의 어려움을 넘어서려는 가장 '현실주의자'이다. 다만 현실을 넘어선 세계가 어떤 세계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데 이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따라서 공상(다가올 미래라기 보다 새롭게 만들 세상)과 과학(현실 분석) 속에서 좌충우돌해야 하는 운명이다. 하지만 현재의 어려움과 신념, 이들을 추종하하는 대중들의 시선은 이런 좌충우돌, 내면적인 갈등을 허용하지 않는다. 여하튼 가야만 하는 것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베르그송을 인용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 삶이란, 베르그송이 장벽을 돌파하는 것이라고 했듯이, 사실 홍수처럼 밀려오는 야만성이며 사회적인 모임 속에서 어떤 망설임도 없이 자기주장을 감행하는 것이다." 이상주의자들의 이런 행동이 선택할 수 없는, 따라서 피할 수 없는 자기 운명이라는 사실에 가슴이 답답하고 슬플 따름이다.

마마 아스터의 입에서 튀어나온 희망이란 단어를 볼때 그렇다면 희망은 현실주의자의 몫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주의자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희망'은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내뱉는 말일 뿐이다. 댄싱섀도우에서 보면 딸인 신다가 자궁 속의 아이를 버리고, 숲을 버리고 미쳐버릴지도 모르는 상황 속에서 딸을 설득해서 살려놓으려는 아주 현실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희망이다. 이들이 말하는 희망이란 비루한 현실을 인정하고 목숨을 유지하자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렇다면 삶이란 욕체적 생명, 종족 보존 이외에 무엇일까? 하지만 우리가 만든 문화가 인간적인 삶이 다른 무엇이어야 한다고 가르키며 삶, 생존, 또는 거창하게 생명의 중요성을 말하지만 이것은 '현실에 만족하고 살어라, 돼지처럼!',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그래도 살아있음이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 역시 독특한 정신문명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초인'이 아닌 생물적 존재인 인간의 운명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가 얽혀져 만들어진 '자궁 속의 태아',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느쪽에도 서지못하는 기회주의자의 몫이다. 희망은 "이곳을 떠나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절망"(현실주의자의 현실)이거나, 꿈이 이뤄질까 물어오는 "회의의 핏줄기에 가볍게 붙어 기생하는" 것(이상주의자의 이상)이거나, 이 둘 모두에게 있는 "몰락의 자각에 대한 두려움"인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우리는 극 속에서
댄싱섀도우
전형화된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가 아닌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는 기회주의자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존재 자체의 비극적 기반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주제는 감동으로 다가오면서 어디에서 오는지 모를 '불안'감과 언젠가 내가 겪은듯한 기식감으로 몸과 마음을 '뒤틀'게 만든다.

댄싱섀도우, 상기된 과거들

1992년 사북탄광
댄싱섀도우를 보면서 오래전에 쓴 2편의 시와 편지글 형식의 일기가 떠올랐다. 모두 90년대의 세계를 대변한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와 같다고, 자기동일성을 주장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뮤지컬(연극)의 또하나의 기능은 상기(想起)시키는 것이다.

내가 불현듯 1991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말까지 있었던 정선군 임계면이 떠오른 것은 뮤지컬의 소품인 사과상자 덮어놓은 듯한 누추한 집들과 이상주의와 현실주의 사이의 갈등구조 때문이다. 그 집들과 똑같은 집들을 그때 고한과 사북에서 봤고, 그런 갈등을 지금도 겪으며 살고있다. 사진은 댄싱섀도우의 한장면이고, 바로 옆의 그림은 사북에서 광부들이 '살았던' 집을 그린 것이다.

1992년 3월 3일 화요일

아침도 어제 먹다남은 식빵 한 조각으로 떼웠습니다. 전화를 신청하는데 돈을 다쓰고 2,000원이 남아 그것으로 빵과 우유를 산 것입니다. 아침 일찍 낙천리를 가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너무 이른 것 같아 10시에 출발했습니다. ㅈ씨에게 신문배달하는 자전거를 빌려타고요. 사실 10시에 출발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자전거를 아침 신문 돌리며 쓰기 때문이죠. 이곳은 동아일보 3월3일자가 아침에 나옵니다.(1992년 동아일보는 석간이었다.)

자전거로 한 30분 걸렸습니다. 그런데 길이 비포장이라 흙탕물이 튀겨 신, 양말, 바지, 잠바 등부분까지 다 버렸습니다. 어제 말했듯이 가면서 내를 끼고 또 산 밑으로 집이 띄엄 띄엄 있습니다. 그리고 고개가 나오죠. 그것을 넘어야 낙천리입니다.

낙천리에는 당원이 삽니다. ㄴ씨라고 교회 집사이고 농사를 짓습니다. 진짜 촌사람같이 꺼벙 머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도 좀 꿈뜨게합니다. 낙천리에서 택백가는 시외버스 길 옆으로 가게가 있고 그 집에 공중전화가 달려있습니다. 그 집이 이 동네의 모든 정보가 집중되는 곳인 것 같습니다. 방에 40~50대의 아저씨들이 하나 차있고 그 집 둘레의 햇빛을 따라 임계에 나올 화장한 아줌마들이 모여 있습니다.

여기서 좋았던 것은 젊은 30대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집에 선전물을 돌리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정운환씨를 아는 것이었습니다. "민중당이 뭐냐?"하는데 "정운환씨가 위원장 아냐?"하고 한 사람이 받았죠. 나는 신이나 "맞습니다......"이라고 말했습니다. 젊은이가 났습니다.

버스 길가로 낙천1리고 "樂川"을 건너 산 골짜기에 형성된 촌락으로 가면 낙천2천입니다. 이곳에는 젊은이가 거의 없고 낮에도 소여물을 썰거나 아니면 이불을 뒤집어쓰고 녹화된 방송을 트는 유선방송을 보고 있습니다. 다리를 건너 처음 보이는 흰건물이 낙천교회입니다. ㄱ씨가 전도사이고 ㄴ씨가 집사죠.

ㄱ씨는 둥근 얼굴에 안경을 쓰고 작은 못집의 퉁퉁한 사람입니다. 연고자 카드에는 '적극적 지지자'라고 되어 있는데, 오늘 ㄴ씨와 만나 이야기하니 '아직 모른다'고 했습니다. 사실 아직 모릅니다. 한번 정도 만나보고 정선사무실에서 분류한 것이니까요. 좀 더 지켜보고 만나봐야겠지요. 교회가 보여 다리를 건너는데 교회가 등지고 있는 산 모퉁이를 돌아 한 30여집이 있었습니다.

1992년 임계 낙천리
한집 지붕이 보여 찾아가면 또 한 집이 보이고 그런 식이지요. 그리고 한 5~6미터씩, 또는 10미터씩 떨어져 있는 집을 두고 가기가 그래서 [선거 홍보물을] 돌리다 보면 몇개 골짜기를 헤메는 겁니다. 낙천2리를 돌리고 전도사에게 ㄴ씨 집을 물어 찾아갔습니다. ㄴ씨는 임계에 나갔다 들어오는 길이었습니다.

ㄴ씨와 사랑방 좌담회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한 5만원 투자해서 술 좀 사고 윷놀이를 하면 사람이 올까 오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민주자유당 후보인] 박우병씨가 낙천3리에는 10만원을 주고가서 마을 잔치를 3일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나는 "우리당은 그렇게 할 수 없다. 과일하고 음료수, 과자를 좀 사서 해보자"고 했습니다. ㄴ씨가 "교인 한 50여명을 초대하면 늙은이는 안오고 20~30명 정도가 올거다."라고 합니다.

확실한 것은 후보와 유권자가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기로 ㄴ씨를 이지역의 진보를 위한 정치적 구심으로 서게해야 합니다. 적극적인 당 활동과 함께! 이런 하나 하나의 작업이 우리의 미래를 밝게 해줄 것입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에게 정치적 교육도 필요합니다. 아주 많은 정치적으로 교육받은 사람을 이땅은 요구합니다. [돌아오는데] 3~4시간 헤멘듯 합니다.

ㅇ씨가 태백에서 왔나 봅니다. 그리고 오늘 되리라던 전화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울로 전화를 하려다 그만 두었습니다. 오후에는 좀 쉬다가 (다리가 아픕니다) ㅇ씨가 ㄱ씨를 소개해줘 술을 한잔 했습니다. 그러다 다른 곳에서 ㅈ씨가 술을 한다고해 그곳으로 가 자리를 합쳤습니다. 그곳에서 ㄱ씨, ㅇ씨, ㅇ씨 등과 정식으로 인사를 했습니다.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죠. 그리고 어떤 젊은 사람이 거기서 나오는데 "힘들게 일한다는 것을 안다. 수고한다"라고 할 때, 힘이 났습니다. 인사치례일지라도 말입니다.

좀 더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계라도"에 대해서. 그리고 "보안관 ㅇ"씨에 대해서. 이것은 내일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ㅂ이 씁니다

추신: 오늘은 터미널에서 차에 올라 선전지를 돌렸습니다. 뻔뻔하게요. 언젠가 지붕의 모습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오늘 술자리에서 있던 것하고요. <1992.3.3>

     태생

여지껏 악다구니도 없이 쉽게
겁 먹고 무너져 내렸다 비겁을 참지 못한
심장만 감정에 복받쳐 덜컹거렸고 머리는
가난이 몸에 밴 어머니의 처세술과
아버지가 남겨준 우유부단한 이상에 감사했다
나는 기회주의와 이상주의의 혼혈아였다
어머니의 인생에는 여름 한낮 김 매며
속살까지 검게 탄 평생 갈 화상이 있었고
그걸 보며 자란 가슴 깊숙히에는
가난에 대인 자국이 있었다 아버지의 평생은
제 한몸도 못가눌 처지에 짐을 진 어두운 여름밤
전등 불빛 속으로 날아든 풍뎅이의 좌충우돌,
나의 가슴 속 한 구석에는 날개 꺽인
지친 희망의 버둥거림이 있었다
가슴 속 희망이 버둥거릴 때마다
가난에 대인 화상이 쓸려 내내 비명을 질렀고
그래도 언제나 덜컹대며 뛰는 붉은 심장은
피비린내 질펀한 가슴 속에서 이젠
끝장을 보자고 싸워댔다 칼에 배인 흉터
세월에 깊게 패여 주름이 되고 썩은 피
흐르던 고랑에서 겁 없이 풀이 자랐다
                                                  <1995.8.13>

    불안한 희망
     - 1997년 4월 30일


투명하게, 투명하게 살려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의심을 하며 내심 불안해 했다
언제나 꿈 꿔온 세상은 불안스럽게 흔들리고
그전에 내가 먼저 흔들리며 주저하고 머뭇거렸다

삶의 투명성이나 정직성을 믿지 못하겠다
하지만 투명한 세상를 만들고 싶다는
믿기 힘든 생각이 내 몸 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아침과 저녁 사이에 세상은 너무 처참한 모습이다
떠날 수 있다면 벌써 버리고 떠났을 것이다
이곳을 떠나 어디로도 갈 수 없다는 절망이
불안하게도 희망이 된다

필연의 사슬을 끊을 수 있을까
이곳에서 누가 자유로운 수 있을까
회의의 핏줄기가 폭풍우가 되어
가볍게 붙어 기생하는 희망을
몸 속에서 쓸어내버리려 한다

지난 여름 뿌리채 뽑혀 쓸려내려가던
나무둥치와 돼지와 소, 희망을 보았다
꿈 꾸던 자리엔 쓸쓸한 폐허의 자취만이 남고
강변엔 도깨비 불만 날아 도깨비 불만 날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밤새 떨며 어둠 속에
파랗게 반짝이며 갈피를 못 잡는, 도깨비 불
갈피를 못잡는 사람들을 보았다

무엇이 남았을까 마음의 빈자리에는
파헤쳐진 무덤의 볼상사나운 자취
그 자릴 차지한 절망의 가시덩굴들
일상의 폭발하는 파편에 박혀
불구가 되어버린 머리와 뒤틀린 몸일까
희망을, 신념을 포기 못하는 것은
차라리 절망의 두려움이었다
이 세상을 넘어설 수 없다는
몰락의 자각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무너져 내리는 불안한 희망을 갖고
불안한 현재를 생각해 보면
투명하게, 투명하게 살려는 것은 어려운 것일까
의심을 하며 내심 또 불안해 한다
강가에는 밤새 도깨비 불만 날고 도깨비 불만 날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밤새 떨며 어둠 속에
기다린다, 절망을 먹고 자라나는 불안한 희망
                                                      <1997.5.1>

과거들이 현재의 내 몸 속에서 불안하게 숨을 쉬고 있다. 결코 지금 만날 수 없는 '미래는 오래 지속되는 것'일까? 희망처럼!

총선에서 지고 임계를 떠나면서 대학을 졸업한 후 다시 찾아갈 것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임계에서 한 약속은 아직까지도 가슴에 쌓여 빚으로 남아있다. 그때 그분들이 약속을 모두 잊었을지 몰라도 나의 핏 속에 희망이나 꿈이라는 단어가 남아 흐르는 동안은 계속 거친 숨을 내쉬면서 살아 꿈틀댈 것이다. 사실 그것은 변치않겠다는, 언젠가 돌아가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었다.
 
2007/07/31 15:36 2007/07/31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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